1. 개요2. 등재 기준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3.1. 국가3.2.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3.3. 니더작센 주3.4. 라인란트팔츠 주3.5.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3.6.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3.6.1. 라이닝겐 후작3.6.2. 라이엔 공작3.6.3. 바덴 대공3.6.4. 뷔르템베르크 국왕3.6.5. 우라흐 공작3.6.6.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작3.6.7. 호엔촐레른-헤힝겐 후작
3.7. 바이에른 자유주3.8. 브란덴부르크 주3.9.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3.10. 작센 자유주3.10.1. 작센 국왕
3.11. 작센안할트 주3.11.1. 안할트 공작
3.12. 튀링겐 자유주3.12.1. 로이스게라 공작3.12.2. 로이스그라이츠 공작3.12.3.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3.12.4.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3.12.5. 작센마이닝겐 공작3.12.6.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3.12.7. 작센알텐부르크 공작3.12.8.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3.13. 헤센 주1. 개요
독일의 작위 요구자를 다루는 문서.1918년 독일 11월 혁명에 따라 독일 제국 황제는 물론 독일 내 모든 군주국에서 싹 다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그래도 1918년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급격한 체제변화로 인한 사회불안정을 해소하자는 명목으로 입헌군주제 복고 가능성이 나름 높긴 했으나, 군주제를 혐오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져서 좌절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는 왕족들과 귀족들 대다수가 공식적인 작위만 잃었을 뿐, 여전히 상류층이고 독일 정재계와 밀접해 있는지라 굳이 체제를 바꾸면서까지 자리를 되찾으면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질 것 같으니 정부로부터 재산만 돌려받고 독일연방공화국의 국민으로 살고 있다.
현재 옛 왕족들 및 귀족들에 대한 독일의 인식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같이 전통을 중시하는 과거 명문 집안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영토만 놓고 보면 프랑스, 중국, 인도, 러시아보다 작은데도 작위 요구자는 인도 다음으로 많다.(...) 인도는 땅도 넒고, 인구도 가장 많은 나라니 당연히 작위 요구자도 많을 수 밖에 없다. 물론 독일은 중세때부터 지방분권이 강한 나라이긴 하다.[1]
2. 등재 기준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작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현재 독일의 작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독일 황제위 요구자 겸 프로이센 왕위 요구자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
3.1. 국가
3.1.1. 독일 황제
호엔촐레른 가문 수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fff 20%, #fff 80%, #fff); color: #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000>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빌헬름 2세 | 빌헬름 폰 프로이센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 프로이센 국왕 · 독일 제국
}}}}}}}}} ||관련 칭호 | 독일 황제(카이저) 프로이센 국왕 | |
작위 요구자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
전임자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 |
후임자 | 카를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제국 멸망 |
역대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이자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 작위 요구자들은 각 문서 참고.
자세한 가계도는 호엔촐레른 가문 참고.
3.1.2. 라인 동맹 보호자
관련 칭호 | 라인 동맹 보호자 프랑스 황제 | |
작위 요구자 | 샤를 나폴레옹[2] |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3] |
전임자 | 나폴레옹 6세(루이 나폴레옹) | |
후임자 |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4] | 루이 나폴레옹[5][6] |
계승 실패 원인 | 1813년 동맹 해체 |
3.2.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다른 지방과 달리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가가 지역 전체를 지배했었다. 따라서 라인 동맹이 붕괴된 후 이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의 직할지역이 된다.3.2.1. 리페 공작
관련 칭호 | 리페 공작 |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리페 공작 | |
작위 요구자 | (리페 가문) 슈테판 폰 리페 |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리페 | (샤움부르크리페 가문) 알렉산더 폰 샤움부르크리페 |
전임자 | 아르민 폰 리페[7]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리페[8] | 필리프 에른스트 폰 샤움부르크리페[9] |
후임자 | 베른하르트 폰 리페[10]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리페[11] |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샤움부르크리페[12]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한편 레오폴트 4세의 종손인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의 프리드리히 빌헬름도 슈테판에게 맞서 명목상의 리페 공위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쪽은 딸만 3명인 데다가, 유일한 남자 형제인 동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 자식이 없는지라, 살리카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단절될 예정이다.
현재의 샤움부르크리페 공가 또한 1905년 리페데트몰트 공가가 단절되었을 때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에 맞서 계승권을 주장한 바 있다. 리페 공가와 샤움부르크리페 공가는 같은 가문이지만 종교(리페: 개혁교회, 샤움부르크리페: 루터교회)가 다르다.
3.2.2. 베르크 대공
관련 칭호 | 베르크 대공 홀란트 국왕 프랑스 황제 베스트팔렌 국왕 | |
작위 요구자 | 샤를 나폴레옹[13] |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14] |
전임자 | 나폴레옹 6세(루이 나폴레옹) | |
후임자 |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15] | 제롬 나폴레옹[16] |
계승 실패 원인 | 1813년 대공국 해체 |
참고로 베르크 대공국은 그 전에는 비텔스바흐 가문 분가의 영지였고 나폴레옹이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면서 프로이센의 영지인 클레페와 묶어서 강탈한 것이라 미묘하긴 하다.
3.2.3. 베스트팔렌 국왕
관련 칭호 | 프랑스 황제 베스트팔렌 국왕 |
작위 요구자 | 샤를 나폴레옹[17] |
전임자 | 나폴레옹 6세(루이 나폴레옹) |
후임자 |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18] |
계승 실패 원인 | 1813년 왕국 해체 |
3.2.4. 잘름 공작
관련 칭호 | 잘름 공작 |
작위 요구자 | 카를 필리프 폰 잘름 |
계승 실패 원인 | 1811년 공국 멸망 |
3.3. 니더작센 주
3.3.1.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관련 칭호 |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컴벌랜드 공작 테비엇데일 공작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9]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3.3.2.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관련 칭호 |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리페 공작 |
작위 요구자 | 알렉산더 폰 샤움부르크리페 |
전임자 | 필리프 에른스트 폰 샤움부르크리페[20] |
후임자 |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샤움부르크리페[21]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3.3.3. 올덴부르크 대공
관련 칭호 | 올덴부르크 대공 |
작위 요구자 | 크리스티안 폰 홀스타인고트로프 |
전임자 | 안톤귄터 폰 홀스타인고트로프[22] |
후임자 | 알렉산더 폰 홀스타인고트로프[23]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대공국 멸망 |
올덴부르크 대공가는 올덴부르크 왕조의 방계인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다. 이름과 달리 올덴부르크 왕조 전체에서 올덴부르크 왕조의 수장이자 글뤽스부르크 왕조 수장 계승서열이 맨 뒤다.(...) 참고로 부계로는 글뤽스부르크 왕조 본가와 가장 멀지만 모계로는 상당히 가까운데 올덴부르크 왕조의 수장이자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수장이었던 크리스토프가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외증손자[24]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친증손자이자 현 올덴부르크 대공가의 수장인 크리스티안과 모계로 팔촌이며, 크리스토프의 장남이자 현 수장인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1985 ~ )는 크리스티안의 9촌이다.
3.3.4. 하노버 국왕
관련 칭호 |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컴벌랜드 공작 테비엇데일 공작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25] |
계승 실패 원인 | 1866년 왕국 멸망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1918년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멸망 |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작위박탈법을 통과시켜 해외의 일부 귀족들[27]의 작위를 박탈했고, 하노버 가문은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상실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국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도 폐지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 사후 아들인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를 지나 현재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가 작위 요구자이다.
3.4. 라인란트팔츠 주
3.4.1. 아렌베르크 공작
아렌베르크 공국 국장 | |
관련 칭호 | 아렌베르크 공작 |
작위 요구자 | 레오폴트 |
계승 실패 원인 | 1810년 공국 멸망 |
3.4.2. 이젠부르크 공작
이젠부르크 공국 국장 | |
관련 칭호 | 이젠부르크 공작 |
작위 요구자 | 알렉산더 폰 이젠부르크[28] |
계승 실패 원인 | 1815년 공국 멸망 |
3.4.3. 비트노이비트 공작
비트-노이비트 공국 국장 | |
관련 칭호 | 비트노이비트 공작 알바니아 공작 |
작위 요구자 | 막시밀리안 폰 비트노이비트 |
전임자 | 카를 폰 비트노이비트[29] |
후임자 | 프리드리히 폰 비트노이비트[30] |
계승 실패 원인 | 1806년 공국 멸망 |
1914년 당시 비트노이비트의 명목상 공작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비트노이비트의 남동생은 빌헬름 폰 비트노이비트로 알바니아 공국[31]의 초대 공작이 되었으나 1925년 퇴위했고, 그 아들 역시 후손을 보지 못하면서 1973년 계보가 단절되었다. 이후 해당 권리는 당시 당주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차남 카를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3.5.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3.5.1.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관련 칭호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
작위 요구자 | 보르빈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
전임자 | 프리드리히 프란츠 폰 메클렌부르크슈베린[32] |
후임자 | 알렉산더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33]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대공국 멸망 |
3.5.2.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관련 칭호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
작위 요구자 | 보르빈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
전임자 | 게오르크 알렉산더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34] |
후임자 | 알렉산더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35]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대공국 멸망 |
3.6.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3.6.1. 라이닝겐 후작
관련 칭호 | 라이닝겐 후작 |
작위 요구자 | 안드레아스 추 라이닝겐 |
전임자 | 에미히 키릴 추 라이닝겐[36] |
후임자 | 페르디난트 추 라이닝겐 |
계승 실패 원인 | 1806년 후국 멸망 |
여담으로 안드레아스의 형인 카를 에미히 공은 원래 라이닝겐 가문 후계자였는데, 재혼을 귀천상혼으로 하는 바람에 가문 계승권을 동생 안드레아스에게 넘긴 이후 본인은 러시아의 황제인 니콜라이 3세를 자칭하고 있다.[38]
3.6.2. 라이엔 공작
라이엔 공국 국장 | |
관련 칭호 | 라이엔 공작 |
작위 요구자 | 필리프 에르바인 |
계승 실패 원인 | 1814년 공국 멸망 |
3.6.3. 바덴 대공
관련 칭호 | 바덴 대공 |
작위 요구자 | 막시밀리안 폰 바덴[39] |
전임자 | 베르톨트 폰 바덴[40] |
후임자 | 베른하르트 폰 바덴[41]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대공국 멸망 |
현 대공위 요구자 막시밀리안은 독일 제국의 마지막 국가수상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바덴의 증손자로, 1966년 결혼해 세 아들을 두고 있다.
3.6.4. 뷔르템베르크 국왕
관련 칭호 | 뷔르템베르크 국왕 |
작위 요구자 | 빌헬름 폰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 |
전임자 | 카를 폰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42] |
후임자 | 필리프 폰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43]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왕국 멸망 |
현 수장인 빌헬름은 왕국 멸망 당시 추정상속인이었던[44] 알브레히트 공작의 고손자이다. 원래 아버지 프리드리히가 수장 자리를 물려받을 예정이었으나, 2018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할아버지 카를보다 먼저 사망하는 바람에 카를이 2022년 사망한 후 그 자리는 빌헬름이 이어받았다. 빌헬름은 1994년생으로 아직 미혼이기에, 현재로서는 빌헬름의 숙부 필리프가 추정상속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45]
3.6.5. 우라흐 공작
우라흐 공작 문장 | |
관련 칭호 | 리투아니아 국왕 우라흐 공작 |
작위 요구자 | 빌헬름 알베르트 폰 우라흐 |
전임자 | 카를 안젤름 폰 우라흐[46] |
후임자 | 카를 필리프 폰 우라흐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귀족 작위 폐지 |
3.6.6.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작
관련 칭호 |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작 호엔촐레른-헤힝겐 후작 |
작위 요구자 | 카를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
전임자 |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47] |
후임자 | 알렉산더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
계승 실패 원인 | 1849년 후국 멸망 |
3.6.7. 호엔촐레른-헤힝겐 후작
파일:호엔촐레른헤힝겐 후국 국장.svg | |
관련 칭호 |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작 호엔촐레른-헤힝겐 후작 |
작위 요구자 | 카를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
전임자 |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48] |
후임자 | 알렉산더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
계승 실패 원인 | 1849년 후국 멸망 |
3.7. 바이에른 자유주
3.7.1. 바이에른 국왕
관련 칭호 | 바이에른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 잉글랜드 국왕 아일랜드 국왕 프랑스 국왕 |
작위 요구자 | 프란츠 폰 바이에른[49] |
전임자 | 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후임자 | 막스 폰 바이에른[50]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왕국 멸망 |
후임자인 막스 폰 바이에른은 5명의 딸을 두었으며, 그중 장녀는 리히텐슈타인의 왕세자빈인 조피(Sophie)이고 그녀는 3명의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왕국은 다른 독일 국가들처럼 살리카법인데다 다른 남계후손들도 꽤 남아있기에 막스의 사후에는 조피와 그 후손이 아닌 프란츠와 막스의 6촌 동생(부계혈통상)이자 고종사촌인 루이트폴트에게 왕위 요구권이 넘어갈 것이며,[54] 설령 조피와 그 후손들이 바이에른 왕위를 요구한다 해도 비정통 왕위 요구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3.7.2. 뷔르츠부르크 대공
관련 칭호 | 뷔르츠부르크 대공 |
작위 요구자 | 지기스문트 |
전임자 | 레오폴트 프란츠 |
후임자 | 레오폴트 아마데우스 페터 페르디난트 아르히발트 |
계승 실패 원인 | 1814년 대공국 멸망 |
3.8. 브란덴부르크 주
3.8.1.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관련 칭호 |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프로이센 국왕 | |
작위 요구자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
전임자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 |
후임자 | 카를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
계승 실패 원인 | 1806년 변경백국 멸망 |
3.8.2. 프로이센 국왕
관련 칭호 | 독일 황제(카이저) 프로이센 국왕 | |
작위 요구자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
전임자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 |
후임자 | 카를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왕국 멸망 |
3.9.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3.9.1.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관련 칭호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 |
작위 요구자 |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
전임자 | 크리스토프 |
후임자 | 알프레드 |
계승 실패 원인 | 1866년 공국 멸망 |
3.9.2.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
작센-라우엔부르크 공국 국장 | |
관련 칭호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 |
작위 요구자 |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
전임자 | 크리스토프 |
후임자 | 알프레드 |
계승 실패 원인 | 1866년 공국 멸망 |
이와는 별개로, 현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하위 행정구역인 라우엔부르크는 정식명칭이 라우엔부르크 공국(Herzogtum Lauenburg)으로, 명목상으로나마 공국으로 존속중이다.
3.9.3.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관련 칭호 |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 ||
작위 요구자 |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 | 앤드류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 | 카를 에미히 추 라이닝겐 |
전임자 |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55] | 드미트리 로마노비치 로마노프 | 에미히 키릴 추 라이닝겐[56] |
후임자 |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 | 알렉세이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57] | 안드레아스 추 라이닝겐[58] |
계승 실패 원인 | 1721년 영토 대부분이 덴마크에 합병됨 카를 페터 울리히(표트르 3세) 치세에 모든 영토를 상실함 |
3.10. 작센 자유주
3.10.1. 작센 국왕
관련 칭호 | 작센 국왕 바르샤바 공작 폴란드 국왕 리투아니아 대공 | |||
작위 요구자 | (작센게사페 가문) 알렉산더 |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다른 친족) 다니엘 | 미하엘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 |
전임자 | 마리아 에마누엘 | 뤼디거 | 마리아 에마누엘 | |
후임자 | 게오르크 필리프 | 게로 | (임시) 레오니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59] | (장래)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왕국 멸망 |
수장인 마리아 에마누엘[60]이 2012년 사망하면서 직계가 끊겼고, 살리카법을 접고 그의 누이의 후손인 작센게사페 가문[61]의 알렉산더와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육촌 형제 뤼디거[62]가 계승해야 할지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일단 구 작센 왕국 헌법과 1997년 마리아 엠마누엘에 의해 정해진 계승법에 의하면 여계 후손이 귀천상혼 후손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작센게사페의 알렉산더가 앞서지만 일부 친족들이 반발하여 뤼디거를 옹립한 상황이다. 여기서 귀천상혼 배제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에는 귀천상혼 계열인 뤼디거를 건너뛰고 또 다른 육촌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63] 수장 카를 프리드리히가 왕위요구자가 된다. 반대로 살리카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에는 마리아 엠마누엘의 막내여동생이 작센 왕실과 같은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의 헝가리계 분가(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의 공작과 혼인했으므로 이 경우 현재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 공작인 시메온 2세[64]가 작위 요구자가 된다.
독일의 다른 왕조들은 엄밀히 말해 알베르트 계통이 단절된 것으로 보는데 알렉산더는 여계 후손인 데다 아버지가 레바논계 멕시코인이고[65] 뤼디거는 아버지인 티모 왕자가 귀천상혼 때문에 작센 왕조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정통성에 결함이 있어 독일 귀족 연감에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승권 분쟁에 에른스트 계통도 끼어드는데 작센 왕국 이전 베틴 가문의 구 상속법이 준살리카법[66]에 엄격한 귀천상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알렉산더와 뤼디거를 모두 부정하고 에른스트 계통의 수장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가 작센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상술했듯 여기도 단절되는 것은 기정사실.
3.11. 작센안할트 주
3.11.1. 안할트 공작
관련 칭호 | 안할트 공작 |
작위 요구자 | 에두아르트 폰 안할트 |
전임자 | 프리드리히 폰 안할트[67] |
후임자 | 율리아 카타리나 폰 안할트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마지막 공작 에두아르드의 아들 요아힘 에른스트의 자손은 전원 귀천상혼(...)을 했으며, 에두아르드의 장녀 마리 아우구스테는 요아힘 폰 프로이센 왕자와 혼인해 카를 프란츠를 낳고 이혼했고, 카를 프란츠의 아들 프란츠 빌헬름은 러시아 제국 제위 요구자인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과 혼인해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을 낳는다. 다만 에두아르트 폰 안할트 역시 평민과 혼인하였으나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었던 것을 보면 동군연합을 구성하기는 힘들 듯하다.
3.12. 튀링겐 자유주
3.12.1. 로이스게라 공작
관련 칭호 |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로이스게라 공작 |
작위 요구자 | 하인리히 14세 폰 로이스 |
전임자 | 하인리히 4세 폰 로이스[69]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1918년 당시 로이스그라이츠, 로이스게라 두 계통이 있었는데 1927년에 그라이츠 계통이 끊겼다. 그러나 1945년에 하인리히 45세가 소련군에 납치되어 게라 본가도 끊기고, 지금은 17세기에 게라 계통에서 분가한 로이스쾨스트리츠 계통이 로이스 가문을 대표한다. 현 당주 하인리히 14세는 1955년 생으로 2남 2녀를 두었다. 정작 현 당주 하인리히 14세나 그의 아버지, 자녀들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진첸도르프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에 있는 성을 그 대가 끊기면서 로이스쾨스트리츠 계통이 19세기 초에 상속해서인데, 로이스 지역에 있던 성들이 소군정에 의해 몰수되고 동독이 되어버리면서 더더욱 독일 본토와의 연고가 희미해졌다.
3.12.2.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관련 칭호 |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로이스게라 공작 |
작위 요구자 | 하인리히 14세 폰 로이스 |
전임자 | 하인리히 4세 폰 로이스[70]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1918년 당시 로이스그라이츠, 로이스게라 두 계통이 있었는데 1927년에 그라이츠 계통이 끊겨서 게라 계통이 로이스 지역 전체를 대표한다.
3.12.3.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관련 칭호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
작위 요구자 |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 |
전임자 | 마리에 안토이네테 |
후임자 | 콘스탄틴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3.12.4.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관련 칭호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
작위 요구자 |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 |
전임자 | 마리에 안토이네테 |
후임자 | 콘스탄틴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다만 이를 무시하고 준살리카법을 적용할 경우 마지막 통치자 귄터 빅토르의 여동생 마리에의 후손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대공위 요구자 크리스티안[71], 로이스-게라의 공족인 하인리히 8세[72], 마지막 직계 상속인 프리드리히 귄터의 대고모 테클라의 후손 쇤부르크-발덴부르크의 공위 요구자 울리히[73]가 공위 요구자가 된다. 이 중 쇤부르크-발덴부르크의 울리히가 가장 정통성 측면에서 앞서는데, 크리스티안과 하인리히 8세가 살리카법을 2번 위반한 것과는 달리 울리히는 1번만 위반했으며, 그와 그의 아버지 빌헬름이 귄터 빅토르의 양손 및 양자로 입양되었기 때문. 그러나 쇤부르크-발덴부르크 역시 현재 공위 요구자와 유일하게 남은 남성 후계자에게 후사가 없어, 졸름스-빌덴펠스 백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단절될 것이 유력하며 살리카법을 2번 이상 위반한 후손들만 남게 된다.
3.12.5. 작센마이닝겐 공작
관련 칭호 | 작센마이닝겐 공작 |
작위 요구자 | 콘라트 폰 작센마이닝겐 |
전임자 | 베른하르트 폰 작센마이닝겐[74]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3.12.6.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관련 칭호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 |
작위 요구자 | 미하엘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 |
전임자 | 카를 아우구스트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77] | |
후임자 | (임시) 레오니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78] | (장래)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79]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대공국 멸망 |
남은 방계 가문은 작센 왕가, 작센마이닝겐 공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로 세 개가 있지만 작센 왕가와 작센-마이닝겐 공가는 귀천상혼 문제가 있어서 만약 대공가가 단절된다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 대공위를 계승한다고 한다.
3.12.7.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관련 칭호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 |
작위 요구자 | 미하엘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 |
전임자 | 게오르크 모리츠 폰 작센알텐부르크[80] | |
후임자 | (임시) 레오니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81] | (장래)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일단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에 합쳐졌지만 그조차도 단절이 확실시되는데, 상술했듯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는 작센코부르크고타에 통합될 것으로 추정되는 중이다. 영지가 재조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처럼 작센코부르크고타로 통합된다고 가정.
3.12.8.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관련 칭호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
작위 요구자 |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전임자 | 프리드리히 요시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82] |
후임자 | 후베르투스 미하엘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3.13. 헤센 주
3.13.1. 나사우 공작
관련 칭호 | 나사우 공작 룩셈부르크 대공 |
작위 요구자 | 앙리 |
전임자 | 장 |
후임자 | 기욤 |
계승 실패 원인 | 1866년 공국 멸망 |
3.13.2. 발데크피르몬트 공작
관련 칭호 | 발데크피르몬트 공작 |
작위 요구자 | 비테킨트 추 발데크운트피르몬트 |
전임자 |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86] |
후임자 | 카를 안톤 추 발데크운트피르몬트[87]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공국 멸망 |
3.13.3.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졸름스-빌덴펠스 백국 국장 | |
관련 칭호 |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
직위 요구자 |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 |
전임자 |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5세 |
후임자 | 콘스탄틴 |
계승 실패 원인 | 1806년 백국 멸망 |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부터는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와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의 공위 요구자를 겸하지만, 그의 두 아들에게 모두 자녀가 없어 다음 세대부터는 다시 동군연합이 해체될 것이 유력하다.
3.13.4. 프랑크푸르트 대공
프랑크푸르트 대공국 국장 | |
관련 칭호 | 프랑크푸르트 대공 로이히텐베르크 대공 |
작위 요구자 | 니콜라우스 폰 로이히텐베르크 |
전임자 |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
후임자 | 콘스탄틴 폰 로이히텐베르크 |
계승 실패 원인 | 1813년 대공국 멸망 |
아버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도 그렇고, 전임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3대 공작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로이히텐베르크가 니콜라이 1세의 딸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혼인하면서 러시아로 귀화했기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독일어 사용자라서 그야말로 혼돈.
3.13.5. 헤센 대공
관련 칭호 | 헤센 대공 헤센 선제후 핀란드 국왕 |
작위 요구자 |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헤센[89] |
전임자 | 모리츠 폰 헤센[90] |
후임자 | 모리츠 폰 헤센[91] |
계승 실패 원인 | 1918년 대공국 멸망 |
3.13.6. 헤센카셀 선제후
관련 칭호 | 헤센 대공 헤센 선제후 핀란드 국왕 |
작위 요구자 |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헤센[92] |
전임자 | 모리츠 폰 헤센[93] |
후임자 | 모리츠 폰 헤센[94] |
계승 실패 원인 | 1866년 선제후령 합병 |
[1] 참고로 통치 가문의 귀족이든 일반 귀족이든 상관없이 귀족 자체의 수는 유럽에서 프랑스가 제일 많다.[2]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3] 장 크리스토프 루이 페르디낭 알베릭 나폴레옹.[4]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 위의 샤를 나폴레옹의 대립 왕위 요구자와 동일인이다.[5] 루이 나폴레옹.[6] 샤를 나폴레옹의 장손이자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의 장남.[7] 슈테판의 아버지.[8]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버지.[9] 알렉산더의 아버지.[10] 슈테판의 장남[11]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남동생. 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12] 알렉산더의 아들.[13]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14] 장크리스토프 루이 페르디낭 알베릭 나폴레옹.[15]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16] 제롬 그자비에 마리 조제프 빅토르 나폴레옹.[17]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18]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19]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들.[20] 알렉산더의 아버지.[21] 알렉산더의 아들.[22] 크리스티안의 아버지.[23] 크리스티안의 장남.[24]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 올덴부르크의 잉게보르크 알릭스 - 샤움부르크리페의 마리 알릭스 - 크리스토프[25]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들.[26] 영국의 작위이다.[27] 대부분이 독일, 오스트리아 등 적국의 귀족들이었다.[28]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위 요구자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의 처남이다.[29] 막시밀리안의 아버지.[30] 막시밀리안의 동생.[31] 정확히는 알바니아 공령[32] 슈베린 계통의 마지막 대공.[33] 보르빈의 장남.[34] 보르빈의 아버지.[35] 보르빈의 장남.[36] 안드레아스의 아버지.[37] 초혼을 귀천상혼으로 하는 바람에 후계자 자격이 박탈된 장남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재혼으로 얻은 외동딸.[38] 단, 카를 에미히 공 본인은 가문명을 "레이닌겐-로마노프"(Лейнинген-Романов, 라이닝겐-로마노프의 러시아어식 바리에이션)라 칭한다.[39] 막시밀리안 안드레아스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베른하르트 폰 바덴.[40]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카를 폰 바덴.[41] 베른하르트 막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구스타프 루트비히 크라프트 폰 바덴.[42] 빌헬름의 할아버지.[43] 빌헬름의 숙부, 현 시점에서 추정상속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44] 빌헬름 2세의 8촌 동생에 해당한다. 빌헬름 2세의 사후 명목상의 왕위를 계승했다.[45] 빌헬름의 할아버지 카를은 오를레앙 가문 출신 부인과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빌헬름의 아버지 프리드리히고, 차남 에버하르트는 귀천상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에버하르트를 건너뛸 경우 3남인 필리프가 1순위 계승권자가 된다. 필리프는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 부인(리히텐슈타인 공세자빈 조피의 여동생이다)과의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다.[46] 현재는 귀천상혼으로 왕위 요구권을 박탈당한 상태다.[47]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버지.[48]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버지.[49]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50] 참고로 리히텐슈타인의 왕세자빈인 조피(Sophie)의 아버지이다.[51] 성이 바이에른에서의 공작이다. 후에 프란츠 공이 사망할 경우 바이에른의 공작(Herzog von Bayern)으로 성이 바뀌게 될 것이다.[52] 보통 공작의 손자까지.[53] 바이에른의 공자(公子). 왕국 승격 이후엔 왕자(王子).[54] 루이트폴트에게는 3남 2녀가 있는데, 장남과 3남은 미혼이고, 차남 하인리히 루돌프가 아들 한 명(2021년생)을 두고 있다. 장녀와 차녀는 각각 3남, 1남 1녀를 낳았다. 다만 영국의 왕위 계승법은 아들 우선 상속법이므로(아들을 우선하되 아들이 없을 경우 딸이 계승), 이론상의 자코바이트 계승권은 막스를 거쳐 조피와 그 후손들에게 넘어갈 예정이다.[55] 마리아 여대공의 아버지.[56] 카를 에미히의 아버지. 어머니가 알렉산드르 2세의 증손녀이다.[57] 앤드류 안드레예비치의 아들.[58] 제8대 라이닝겐 후작, 카를 에미히의 동생.[59]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60] 마리아라는 이름이 세컨드네임도 아니고 당당히 첫머리에 나왔지만 당연히 남자다.[61] 1997년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선언했다. 게사페 가문은 레바논의 마론파 출신으로 멕시코로 이민한 성공한 사업가 가문이다.[62] 어머니가 평민으로 정육점 집 딸이어서 아버지가 왕실에서 절연당했다.[63] 호엔촐레른 왕조의 가톨릭 분파이다.[64] 불가리아의 마지막 차르인 그 사람 맞다. 불가리아 왕실도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분가였다가 본가의 남계 후손이 단절되면서 새롭게 본가가 되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폴란드-불가리아 이중 제국(…) 같은 것도 가능하다…만 불가리아 왕실이 가톨릭이 아닌지라 폴란드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갖춰줬는지는 다소 불확실하다.[65] 이 때문에 본래 알렉산더의 어머니 아나의 결혼 역시 당초에는 귀천상혼 취급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알렉산더를 후계자로 정한 것.[66] 모든 남성 후손이 단절됐을 때만 여성에게 계승권이 돌아간다.[67] 에두아르트의 형.[68] 왜냐하면, 아스카니아 가문의 남성이 에두아르트 본인 밖에 없고, 작센 계열 공국들과 달리 방계 가문도 없기 때문.[69] 하인리히 14세의 아버지.[70] 하인리히 14세의 아버지.[71] 마리에 > 올덴부르크 대공비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리네 > 니콜라우스 > 안톤귄터 > 크리스티안[72] 마리에 > 발트 연합 공작 아돌프 프리드리히 > 보이츨라바 페오도라 > 하인리히 8세[73] 테클라 > 게오르크 > 울리히 게오르크 > 빌헬름 > 울리히[74] 콘라트의 아버지.[75] 다만 어머니는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직전 공위 요구자인 프리드리히 요시아스의 딸 베아트리체이다. 그런데 베아트리체도 귀천상혼으로 태어났다(...).[76] 에른스트는 콘라트의 이복형인데, 어머니가 평민이라 귀족 어머니를 둔 이복동생 콘라트가 형을 제치고 수장이 되었다. 현 수장의 직계자손이라면 수장의 판단에 따라 동등결혼 승인이나 복권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전임 수장의 결정을 번복하고 콘스탄틴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는지가 논란의 쟁점인 셈이다. 일단 콘라트는 콘스탄틴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승계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여지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77] 미하엘의 아버지.[78]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79]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의 현 수장. 그러나 안드레아스 역시 1943년생으로 고령이기 때문에, 안드레아스는 대공가 단절 이전에 먼저 사망하고 그 장남이자 후계자인 후베르투스가 대공위를 계승할 가능성도 있다.[80] 작센알텐부르크 공가의 마지막 당주.[81]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82] 안드레아스의 아버지.[83] 다만 생물학적으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하고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글뤽스부르크 왕조로 교체되었다. 그냥 이름만 계속 윈저일 뿐이다.[84] 특히 벨기에는 이른바 벨기에 강간이라고 할 정도로 독일군에게 막심한 전쟁 범죄의 피해를 당했다. 흡사 벨기에판 난징 대학살 수준이라서 오늘날까지도 벨기에 내에서는 독일을 증오하는 여론이 크다.[85] 프랑스어로는 '드 벨지크(de Belgique)', 네덜란드어로는 '판 벨히어(van België)', 독일어로는 '폰 벨기엔(von Belgien)'.[86] 비테킨트의 아버지.[87] 비테킨트의 장남.[88] 일단 영지는 장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다스리던 바이에른 왕국에서 분리되어 생성되었다.[89] 하인리히 도나투스 필리프 움베르토[90]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아버지.[91]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장남. 할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92] 하인리히 도나투스 필리프 움베르토.[93]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아버지.[94]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장남. 할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