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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2-03 20:56:14

제민왕

전제(田齊)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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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 제3대 왕'''
규(嬀)
전(田)
지(地) / 수(遂)
아버지 제선왕(齊宣王) 전벽강(田辟彊)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323년 ~ 기원전 284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300년 ~ 기원전 284년(《죽서기년》)
기원전 324년 ~ 기원전 284년(《사기》)

1. 개요2. 생애
2.1. 한나라 왕위 계승에 개입2.2. 초나라와 진(秦)나라와의 관계2.3. 송 강왕을 무찌르다2.4. 연나라에게 영혼까지 털리다
3. 평가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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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제의 6대 국군. 3대 . 제선왕의 아들. 제양왕의 아버지. 이 사람이 처음에는 맹상군(孟嘗君)을 기용해 정치를 잘했으나, 나중에 송강왕(宋康王)이 다스리던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교만해져서 폭정을 벌이다가 연소왕(燕昭王)이 보낸 장수 악의(樂毅)의 공격을 받아 2개 성만 남기고, 나머지 70개 성을 빼앗기는 굴욕을 당했다.[1] 결국 초나라에게 구원을 청하는데, 초나라의 장수 요치(淖齒)가 연나라와 결탁했고, 제 민왕은 그 요치의 손에 죽었다.[2]

2. 생애

2.1. 한나라 왕위 계승에 개입

제 민왕 원년(기원전 300년), 한(韓)나라공자 구(公子 咎)는 공자 기슬의 태자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한나라의 사회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3] 이에 제 민왕은 한나라로 출병해 권력 투쟁에 개입했다. 제 민왕은 한나라의 공숙망과 함께 공자 구를 도와 태자인 공자 기슬을 몰아내고, 공자 구를 태자로 세웠다. 공자 기슬은 초나라로 망명했다.

제 민왕 2년(기원전 299년), 제 민왕은 위양왕(魏襄王)과 함께 한양왕(韓襄王)을 협박해 공자 구를 태자로 세우라고 했다.

2.2. 초나라와 진(秦)나라와의 관계

같은 해(기원전 299년)에 초나라는 초회왕(楚懷王)이 장의(張儀)에게 끌려다녔기 때문에 장의의 계략으로 원수진 제나라에 강화를 청했다. 그리하여 태자 웅횡을 인질로 보냈다. 그리하여 양국은 강화하게 되었다.

제 민왕 3년(기원전 298년), 초 회왕이 진(秦)나라에 억류되었다. 이에 제 민왕은 인질인 태자 웅횡을 원래는 안보내 주려 했으나 결국 돌려보내 주었다. 그리고 제 민왕은 전영(田嬰)의 아들 맹상군에게 명령해 한, 위 삼국 연합군과 함께 진나라의 변경이자 험요지인 함곡관을 치게 했다. 제 민왕은 전영을 설 땅에 봉했다.

제 민왕 4년(기원전 297년), 진나라 공주를 아내로 맞았다.

제 민왕 5년(기원전 296년), 제, 위, 한, 조, 송 연합군은 끝내 진나라의 염지(鹽氏)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진 소양왕은 제나라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때 연나라의 소왕은 제나라에 원한을 품고 그 원한을 갚기 위해 힘을 키웠다.

2.3. 송 강왕을 무찌르다

제 민왕 7년(기원전 294년), 제 민왕은 송나라와 연합해 위나라를 쳐 관진에서 위군을 꺾었다.

제 민왕 12년(기원전 289년), 제 민왕은 소대(蘇代)(소진의 동생)를 재상으로 삼았는데, 그것이 제 민왕의 몰락의 원인이 된다.[4]

제 민왕 13년(기원전 288년), 진 소양왕(秦 昭襄王)은 제 민왕에게 제안했다.

"과인은 서제(西帝)를 칭하고, 제왕(齊王)께서는 동제(東帝)를 칭하시오."[5]

제 민왕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자 했으나 소대가 나머지 위(魏)나라, 한나라, 조(趙)나라, 연(燕)나라, 초나라 등 5개 국이 합종하여 제와 진을 칠 것이라는 말을 하여 결국 간을 보고는 진나라만 혼자 서제를 칭했는데, 그 일로 욕을 먹어 결국 폐기했다.[6] 그리고 이때 송나라의 강왕이 폭정을 일삼는다는 제보를 받고 송나라를 멸할 뜻을 품었다.

제 민왕 14년(기원전 287년), 제나라, 조나라, 한나라, 연나라 연합군이 모여 송나라를 치는데 그 기세가 매우 대단했다. 그리고 제나라는 연합군의 힘으로 결국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송 강왕을 살해했다. 그리고 연합군의 통수를 쳐 송나라 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2.4. 연나라에게 영혼까지 털리다

제 민왕 15년(기원전 286년), 진 소양왕은 제나라의 하동을 치니 제 민왕은 그것을 막으러 갔다. 바로 이 틈을 노려 연 소왕은 악의를 대장으로 해서 제나라를 치는데, 이때 연나라와 연합한 나라는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등 삼진이었다. 그리고 2년 동안 제나라는 70개의 성을 빼앗겨 거(莒)와 즉묵(即墨)만 남는 막장 상황이 벌어진다.[7]

제 민왕 17년(기원전 284년), 제 민왕은 추(鄒)나라[8], 노나라, 위(衛)나라로 갔는데, 거기서 천자 대우를 해달라며 갑질을 해대자 잘 대우해줄 마음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결국 제민왕은 거 땅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가까운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초나라에서 요치를 보냈는데, 제 민왕은 요치를 제나라의 상국으로 삼았다. 그가 연나라와 내통했으므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요치는 제 민왕의 죄를 조목조목 나열한 뒤 왕을 죽였다. 일설에는 유폐되어 굶어 죽었다고 하며 《사기》 <범저채택열전>에서는 요치가 늑골을 뽑은 상태로 민왕을 종묘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적고 있다. 그후 제나라 사람들은 제 민왕의 아들 전법장(田法章)을 왕으로 모시니 그가 바로 제양왕(齊襄王)이다.

3. 평가

일단 그는 어느 정도 능력이 있어 할아버지 제위왕과 아버지 제선왕전성기를 이어갈 수 있었으나 인성은 좋지 못하여 타국에 어그로를 많이 끌었다. 대표적으로 한나라 왕위 계승에서의 강압적인 행동, 그리고 송나라의 강왕을 죽이고 그 땅을 대부분 독차지하는 등의 행동이 그러했다. 그리하여 아버지 제 선왕 대에 연나라를 유린한 것에 원한을 품은 연 소왕의 장수 악의의 공격을 받아 제나라는 72개 성 가운데 70개를 잃어 사실상 멸망하게 되었다. 그 아들 제 양왕이 충신 전단(田單)의 도움으로 나라를 수복하고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아 나라를 다스려 부흥시켰으나, 이미 국력은 예전같지 못했다. 결국 기울어가던 나라는 민왕의 손자인 건(建)이 할아버지의 어리석음을 물려받았는지 진나라에 제때 대적하지 못하면서 멸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민왕이 내쳤던 맹상군은 사촌형이기도 했다. 맹상군과 제민왕 모두 제위왕의 손자이며 아버지인 제선왕은 맹상군의 숙부이기 때문. 그러고 보면 가족한테도 냉혈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오히려 친척이었기 때문에 더 견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멀리 보면 당시 제나라 왕실인 전씨부터가 원래 제나라를 다스리던 강태공의 후손인 강씨로부터 나라를 찬탈한데다가, 가까이 보면 민왕의 증조부인 환공은 형인 제후 섬과 조카를 죽이고 찬탈한 자였다. 게다가 맹상군은 천하에 명성이 널리 퍼진 인물이었는데 그를 견제하지 않다가 자리를 찬탈당했으면 대놓고 인재를 불러모으는데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욕먹었을 것이다.

4. 대중매체에서

2022년 드라마 제추무염지파경중원에서는 후궁 하영춘의 음모로 태어나자마자 궁녀가 빼돌렸고 우연히 초나라 장군에게 입양되어 키워졌다. 장군의 아들이라 무예가 뛰어나다.


[1] 연 소왕이 그런 까닭은 제나라가 연나라의 내란을 틈타 침공하여 약탈하였기 때문이다.[2] 일설에는 유폐시킨 뒤 굶겨 죽였다고도 전해진다.[3] 그 이유는 당시 철칙 중 하나인 적장자가 아닌 사람이 왕위 계승자가 되려 해서였다.[4] 원래 재상이었던 맹상군을 밀어내고 연나라 인물이었던 소대를 재상으로 앉힌 것이다. 이후 제민왕의 견제에 환멸을 느낀 맹상군은 악의의 연합군이 조성되는데 일조하고 제나라를 갈아버린다. 현대에는 소대조차 제나라에 대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가지고 있던 연나라가 제나라로 파견한 스파이였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전국책》이나 <전국종횡세가> 등의 기록에선 소대가 대놓고 연나라가 제나라에 심은 반간으로 묘사된다. 형이었던 소진도 처음 중용되었던 나라가 연나라임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한 부분.[5] 즉 주나라 천자보다 더 위에서 놀자는 것이다.[6] 그만큼 진나라가 제나라를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다.[7] 거는 옛 거나라 땅이다.[8] 전신이 주(邾)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