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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4:23:26

제왕절개

파일:external/www.lifesongkenya.org/c-section-graphic.jpg
1. 개요2. 상세3. 제왕절개 vs. 자연분만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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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Caesarean section

자연분만으로 출산이 불가능할 때 산모의 복부를 갈라 자궁을 절개하여 직접 태아를 꺼내는 수술법을 말한다.

아기가 너무 크거나, 아기가 거꾸로 있거나(역아 혹은 둔위), 횡으로 있거나(횡위, 견갑위), 태반이 산도를 막고 있거나(전치태반), 난산이거나, 이전에도 제왕절개로 출산했던 등의 경우에 실시한다. 한 번 제왕절개를 했다면, 자궁 벽이 얇아져 자궁파열의 가능성이 커진다. 질식분만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제약도 많고 위험요인도 많다. 또한 산모의 건강이 좋지 않아 질식분만을 할 만한 체력이 안 된다면 실시하기도 한다.

2. 상세

'제왕절개'의 영어 명칭인 Caesarean section에는 이름의 유래가 2가지 있다.

우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났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다만 소독과 마취가 사용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이전의 제왕절개는 출산 중에 산모가 사망했을 때, 태아라도 살리거나 아니면 따로 묻어주려고 하던 시술에 가깝고, 산모와 태아 모두의 생명을 살린 사례는 드물기에 이는 신빙성이 낮은 설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카이사르가 "전쟁에서 임산부가 죽었을 경우,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기를 장사지내 주라"고 지시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출처는 불분명하다. 영어 이름 Caesar가 제왕을 뜻하기도 하므로 제왕절개라고 번역되었다. 또는 라틴어 'Cedare'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설도 있는데, 이는 '자르다'라는 뜻이다. [황규인의 잡학사전] 제왕절개에서 제왕은 정말 카이사르(시저)?

제왕절개 이후에도 산모가 생존한 최초의 기록은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처음 확인된다.#

보통 자연분만이 불가능할 때만 하는 수술이며, 태위, 태향, 아두 크기, 질환유무 등 태아의 상태나 자궁, 골반 구조 및 모체의 건강 상태가 좋다면 자연분만을 권장할 수는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도 제왕절개를 무조건 피하는 경우는 오히려 태아나 모체의 위험성이나 사망 가능성을 되려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뭐로 꼭 해야 한다기보다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분만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갈수록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서양은 아예 처음부터 분만통을 겪기 전에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먼저 권하는 경우도 많아, 2012년 기준 미국에서 30% 이상의 아기가 제왕절개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나마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웬만하면 수술을 피하는 미국이 이 정도고, 한국을 비롯한 타국은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고전적인 제왕절개술, 즉 상하로 세로 절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세로로 절개하면 추후 자궁파열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1], 최근에는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좌우로 절개한다. 비키니 절개라고도 부르는데, 수술 상흔을 가리기 좋다.

수술법은 산모, 태아의 상태와 집도의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으나, 보통 하반신 마취를 한 후 정신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낸다. 여기까지 보통 10분쯤 걸린다고 한다. 그 다음 아기를 산모에게 보여주고, 수면마취로 전환해서 후처리를 한다. 대기와 마취시간 포함해서 산모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 1시간 정도 후면 병실로 이동하게 되고, 2~3시간 후 마취가 깨어나면 아기를 데려와서 볼 수 있다.

아이가 작아야 더 꺼내기 좋고, 응급으로 수술하면 예정대로 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예정일 보름 전쯤에 날짜를 잡아서 수술한다. 켈로이드 피부에 시술하면 지렁이처럼 자국이 올라오고, 비가 오면 쑤시고 가렵다.

가장 최악이자 산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분만을 하려 했으나 난산이 심해, 이대로 계속 늦어지면 산모나 아기가 (심하게는 양쪽 다) 위험할 상황이라 제왕절개로 전환하는 상황이다. 진통은 있는 대로 다 겪고 나서. 차라리 처음부터 수술해달라는 얘기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의사들도 이런 상황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계획을 잡고 수술하는 경우와 갑작스럽게 수술하는 경우는 확실히 난도 차이가 있으니까. 특히 응급제왕절개의 경우, 아무리 사전 모니터링을 열심히 했더라도 째는 순간에는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니, 더더욱 반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수술을 피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지만.

3. 제왕절개 vs. 자연분만

제왕절개는 진통은 적을 수 있지만, 후유증이 자연분만보다 심하다. 후산통이 무척 아프고, 1주일간 거의 움직일 수 없으며, 혼자서 일어날 수도 없다. 통상적으로 제왕절개는 자연분만에 비해 6주 정도는 더 회복이 더디다. 수술자국에 무거운 모래주머니 같은 걸로 눌러준다. 첫날은 물을 포함해 금식, 둘째 날부터 미음부터 시작하여 먹는다. 배를 가르는 큰 수술로, 산모의 피부를 절개하고 그 아래 근육층, 자궁까지 가르는데 내부는 제법 크게 절개하기 때문에, 겉 피부가 다 아문 이후에도 한참 동안[2] 수술자국 피부 그 아래의 부위가 저릿저릿하다. 한동안은 느낌도 없고 근육을 절개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배 근육에 힘이 안 들어 간다.[3]

자연분만의 경우 진통이 훨씬 심할 수 있지만, 순산했다면 다음 날에도 잘 먹고 잘 걷는다. 난산의 경우에도 나흘 정도면 몸을 추스를 정도는 되는 편. 반면 제왕절개는 회복이 느린 산모의 경우, 열흘 이상도 거동이 힘들 수 있다. 같은 날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한 산모가 있다면 자연분만한 산모는 3~4일 만에 자기 옷 입고 아이를 안고 걸어서 퇴원하지만, 제왕절개한 산모는 회복이 덜 되어 남편의 손을 잡고 걷기 연습을 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출산 후 자궁수축에 의한 통증도 제왕절개가 심하며, 아무래도 배와 자궁을 가르고 아기를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회복 과정에서 장 유착이 되기 쉽다. 과거 제왕절개 출산력이 있는 산부의 경우 다음 아이를 자연분만 시도할 경우 절개부가 터질 수도 있기 때문에 기존에는 대부분 계속 제왕절개로 출산했으나, 의료기술이 발달하며 특정 조건을 만족한다면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 일명 '브이백'이 가능하다. 출산 둘러싼 '오해'…제왕절개→자연분만 가능 다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데다가 10명당 1-2명 꼴로 응급 제왕절개를 해야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자연분만의 경우도 회음부 통증 등으로 인한 오랜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특정 분만 방법이 더 힘들다고 단정짓기 어려우며,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는 의사와 산모의 몫이다.

또한 자연분만을 한 아기의 지능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이런 연구결과에 대한 반박 연구 또한 존재하는 만큼 자연분만을 한 아기의 지능과 제왕절개를 한 아기의 지능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자연분만을 하지 않으면 모성애가 없을 거라는 속설을 믿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모성애 면에선 난산을 피하는 제왕절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산모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난산은 산후우울증을 발생시켜 아이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역사서에도 기록된 사례로, 춘추전국시대 정나라 군주인 장공은 난산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았고 동생인 공숙 단이 편애를 받았다. 14세에 즉위하고서도 무려 22년 동안이나 자기 자리를 노리는 동생과 그 동생을 밀어주는 어머니를 경계하다가[4] 결국 단이 반란을 일으키자 일거에 쳐서 동생과 어머니를 한방에 쫓아내버렸다.[5] 탄생 때의 고통으로 인해, 어머니와 아들이 무려 35년 동안이나 원수같이 지낸 것이다.

4. 여담

멕시코 오지에 사는 만삭의 여인이 남편이 없는 사이 집에서 홀로 진통하다 스스로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 일이 있다. 독한 술을 마시는 걸로 마취를 대신한 뒤, 15cm 칼로 스스로 복부를 갈라 아기를 꺼내고 가위로 탯줄까지 자른 후 기절했다. 그 후 병원으로 옮겨졌고, 천만다행으로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다. 자세한 건 자가수술 항목을 참조.

한국에선 제왕절개도 일종의 수술이기 때문에 환자(=산모) 보호자(=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는 중국도 그런데, 2017년 9월경 난산으로 힘들어하던 임산부가 제왕절개 수술을 받지 못해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결국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고, 산모와 뱃속 아이 모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남편 측은 "병원이 수술을 못하게 했다"며 잡아떼며 책임을 물었지만, 병원이 산모가 2번이나 무릎 꿇고 남편 식구들에게 사정하는 장면이 담긴 CCTV와[6] 남편 가족이 수술을 3차례 반대했다는 병원기록을 공개해[7] 중국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그러나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가 무조건 건강하다는 것은 한참 잘못된 편견으로, 제왕절개가 강하게 요구되는 정도의 난산 상황에 무리하게 자연분만을 고집하다가는 태아에게 뇌손상이 와서 사망하거나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뇌성마비발달장애인의 최소 10% 이상이 출산 중에 이렇게 잘못되어 장애를 얻은 경우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저자인 류승연 전 기자의 아들도 이런 난산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다. 쌍둥이 누나는 정상인데, 동생인 아들은 누나가 태어난 지 한참이 되도록 나오지 못했고 태어난 직후 울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때의 뇌손상이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국 정신 발달이 많아야 2~4살에서 멈춘 최중증 자폐성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산모의 요구만으로 제왕절개가 가능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그 이전에도 가족들이 제왕절개를 거부하거나 산모보다 아기를 보전하려 했다는 사건들이 종종 보도되기도 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하는 건 위험하지만, 과거에 유사 사례가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언론들은 가족 반대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중국의 이 사례처럼 극단적인 경우까진 없었지만, 현재의 한국에서도 일부 중노년층 시부모들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수술을 반대한다는 얘기는 맘카페의 단골 팝콘감이다. 아이가 아프면 꼭 '제왕절개로 낳아서 그렇게 약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든지.

제왕절개의 발달로, 예전에는 자연도태되었을 머리 큰 아이들이 살아남아 인류 진화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른바 '벼랑 끝 가설'. 그래서 먼 미래에는 불독처럼 모든 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다만 태아의 머리는 겸자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들의 머리가 엄청나게 찌그러져 있다가도 며칠 뒤 돌아오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말랑한 편이므로, 산모의 몸에서 밀려나오는 만출력이 충분하다면 잘 나올 수 있다. 아기 머리의 지름이 어지간히, 즉 상당한 우량아나 거대아 정도로 크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난산은 아이가 이상한 방향으로 누워있거나[8] 산모 골반 기형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부분 '걸려서' 못 나오는 아기의 경우, 머리가 걸려서 그런 게 아니고 머리에 비해 몸이 비대해 어깨가 걸려서 그렇다. 이를 견갑난산이라고 하며, 난산 중에 비중은 적지만 5분 이상 어깨가 못 나오게 되면 아이가 죽을 수 있고, 나온다 하더라도 골절을 입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위험하다. 견갑난산의 경우 임신성 당뇨를 앓는 임신부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서양에서는 자연분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훨씬 우세하다. 제왕절개는 실제로 큰 수술 중의 하나이며, 난산의 위험 외에도 이런 수술로 인한 합병증, 내부출혈 및 감염의 우려를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두 번은 괜찮지만 다산은 어렵다. 따라서 의사와의 상담을 통한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상업적 이유로 과다한 제왕절개를 권고하는 경향과 고통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자연분만을 피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제왕절개를 선택한다면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 왕은 여자가 낳은 사람에게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믿고 자신만만했으나 결국 제왕절개로 나와 여자가 100% 낳지는 않은 파이프의 호족 맥더프에게 살해당한다.


[1] 특히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던 산모가 둘째를 자연분만할 경우, 자궁파열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2] 사람에 따라 1년까지도[3] 다만 시술시 무통주사를 통해 피할 수 있다.[4] 그나마도 아버지인 정무공이 자신을 적극 밀어주어 세자가 되고 자리도 물려받았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심지어 후계자도 못 될 뻔했다. 자기를 미워하는 어머니가 공숙 단을 밀어주었기 때문.[5] 그래도 공숙 단과는 달리 어머니인 무강은 처음에는 "황천에 가기 전까지는 절대 보지 않겠다"며 노발대발했지만 어쨌든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인지 곧 그 발언을 후회하여, 한 신하의 조언으로 꼼수를 써서 다시 만난다.[6] 시가에서는 "진통 때문에 주저앉은 것"이라고 반박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주저앉을 정도로 고통이 극심했다는 거겠지[7]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가 더 건강하다는 편견, 그리고 둘째를 가지고 싶다는 게 원인이라고 한다.[8] 엉덩이가 아래라든지, 땅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와야 하는데 반대로 하늘을 보고 있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