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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01:32:10

조도양왕

파일:조(전국) 전서체.png
조(趙)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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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169E1> 조(趙)나라 4대 왕
도양왕
悼襄王
영(嬴)
조(趙)
언(偃)
아버지 조효성왕(趙孝成王) 조단(趙丹)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3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244년 ~ 기원전 236년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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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9대 국군, 4대 왕, 조씨 23대 종주. 이름은 언(偃). 행적을 보면 알겠지만 말년의 행적으로 인해 조나라의 멸망을 불렀다.

2. 생애

당시 조나라는 원래 태자였고 적장자였던 조가를 폐위시키고 애첩 사이에서 낳은 서자를 태자로 세웠는데 하필 그는 왕이 될 때 10살도 안 된 어린 소년이었고 또 그가 중용한 곽개는 조나라 멸망에 혁혁한 공을 세운 간신, 총애한 여인인 창후도 이목을 미워해 곽개와 함께 그를 몰아내는데 일조했다.

조도양왕 원년(기원전 244년), 성대한 의식을 거행해 위(魏)나라와 친선을 도모하고 평읍과 중모(中牟) 사이의 도로를 개통시키려 했다가 실패했으며, 척장이 조나라로 오자 그를 마음에 들어해 여러 차례에 걸쳐 상국이 될 것을 권했지만 거절당했다.

조도양왕 2년(기원전 243년), 이목(李牧)을 장수로 삼아 연(燕)나라의 무수(武遂), 방성(方城)을 점령했다. 조도양왕은 춘평군(春平君)을 총애했고, 진(秦)나라에서 춘평군을 억류했다가 풀어주자, 다른 인물을 보냈다. 또 조나라에서 요가로 하여금 한, 위와 동맹하러 보냈다가 요가가 정중히 대접받자 조나라에서 의심했는데, 거모가 요가를 위해 도양왕에게 이야기했다.

조도양왕 3년(기원전 242년), 방난(龐煖)이 연나라를 공격하여 장수 극신(劇辛)을 사로잡았다. 한편, 연나라에서 태자 단(太子 丹)을 진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여불위(呂不韋)가 장당을 연나라의 상국으로 삼아서, 연나라와 합세하여 조나라를 공격해 하간 땅을 넓히려 했다. 그러나 장당이 연나라로 가지 않으려 해서, 이를 설득한 감라가 조나라에 사신으로 와 5개의 성읍을 주면 진나라는 조나라와 합세해 연나라를 공격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조도양왕이 5개의 성읍을 진나라에게 줘서 하간 땅을 넓히자, 진나라에서는 태자 단을 귀국시켰으며,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해 상곡의 36개 현을 점령하고, 그 중에서 10분의 1을 진나라에게 줬다.

조도양왕 4년(기원전 241년), 방난이 연나라, 위나라, 초나라 병사를 이끌고, 진나라의 최(蕞) 땅을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제나라로 방향을 돌려 요안(饒安)을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조도양왕 5년(기원전 240년), 부저(傅抵)를 장수로 임명하여 평읍(平邑)을 지키게 하였다. 경사에게 황하 남쪽에 있는 동양(東陽)에 주둔한 병사를 이끌게 하여, 황하를 건너는 다리를 사수했다.

조도양왕 6년(기원전 239년), 장안군(長安君)을 요(饒) 땅의 제후로 봉하였다. 위나라가 조나라에게 업(鄴) 땅을 주었다.

조도양왕 9년(기원전 236년), 진나라가 조나라와 연합하면서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여 이(貍)와 양성(陽城)을 빼앗았다. 연왕 희는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는데, 조도양왕은 연나라의 사자가 조나라 땅을 지나가자 이를 억류했다. 그러나 그 사자의 설득으로 풀어줬으며, 사자가 진나라를 설득하면서 진군이 조나라의 땅 업(鄴)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이로써 진나라가 연나라를 구원했다.[1]

같은 해에 조도양왕이 창씨에게 반해 왕후로 삼으려 하자, 이목창후가 한 집안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는데, 조도양왕은 이 간언을 물리치고, 창씨를 후궁으로 맞이했다. 창씨의 계략으로 아들 조가를 태자에서 폐하고, 창씨의 아들인 조천을 태자로 삼았으며, 왕후를 내쫓고, 창씨를 왕후로 삼았다. 얼마 후에 조도양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태자 조천이 이어 왕이 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3.1. 킹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도양왕(킹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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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이 업이란 성은 당시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미 수도 인근의 요충제를 뺏겼으니 큰 타격을 받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