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9:56:05

조지프 나이

조셉 나이에서 넘어옴
<colbgcolor=#fff><colcolor=#000> Joseph Samuel Nye Jr.
조지프 새뮤얼 나이 주니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7px-Joseph_Nye_-_Chatham_House_2011.jpg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37년 1월 19일 ([age(1937-01-19)]세)
뉴저지주 사우스오렌지
학력 프린스턴 대학교 (역사학 / 1958년 학사)
옥스퍼드 대학교 엑시터 컬리지
(PPE / 1960년 석사)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 1964년 박사)
직업 정치학자, 교수

1. 개요2. 주요 행적
2.1. 정책적 공로2.2. 학문적 공로: 자유주의, 소프트 파워의 대표
3. 학력4. 경력5. 저서6. 기타7. 관련 항목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정치학자.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학으로, 국제정세에 해박한 지식과 분석력을 가지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에 몸담고 있으며 전 케네디스쿨 학장이었으며 현재 명예교수다. 대표적인 저서로 '소프트 파워', '국제분쟁의 이해' 등이 있다.

2. 주요 행적

2.1. 정책적 공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낸 미정부 관료 출신이기도 하다. 헨리 키신저,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국제정치학자 출신으로 정부 공직에서도 활약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비록 정부에서의 직위는 키신저나 라이스보다 낮았지만, 학자로서의 위상은 두 사람보다 훨씬 높이 평가받는다.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겨우 차관보라니? 장관으로 임명해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만큼 나이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정부 관료로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시아 어느 나라의 폴리페서들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로 냉전 종식 이후 '동아시아 정책'의 수립을 주도했다. 냉전 종식 직후 아버지 부시 행정부와 미국 공화당은 주한미군 전면철수, 주일미군 대폭 감축을 추진하였으나 1992년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불거지면서 잠시 주춤한 상황이었다.[1] 이후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자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로 입각한 조지프 나이는 장래에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가 될만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동아시아 지역에 반드시 거대한 미군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도합 10만명을 핵심으로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하위 군사동맹국으로 묶어놓고 이 바탕위에서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면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한다는 일명 '나이 이니셔티브'는 지금까지도 미국 안보정책의 핵심기조로 이어지고 있다.

2.2. 학문적 공로: 자유주의, 소프트 파워의 대표

차관보 이외에도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이었던 그는 비대칭적 상호의존, 소프트 파워 등의 개념을 처음으로 창시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국제정치학자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국제정치학의 신자유주의 학파의 창시자로 로버트 커헤인(Robert O. Keohane)과 함께 거론되고 있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TED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이 미국 외교정책에 재빨리 차용되어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일부 국제정치학자는 이 개념의 타당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거나 강력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가장 유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중 한 명이자 동맹이론의 권위자 스티븐 월트(Stephen M. Walt) 하버드 대학 교수. 월트 교수가 소프트 파워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나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변한 적이 있다.

신자유주의 학파의 형성에 관한 그의 활약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신자유주의 학파의 형성은 "헤게모니 이후(After Hegemony: Cooperation and Discord in the World Political Economy)"를 집필한 커헤인의 영향력이 더 큰데,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같이 연구하면서 나이가 커헤인에게 묻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

3. 학력

4. 경력

5. 저서

출간 순서. 국문 번역판이 있다면 국문 먼저 기재.

6. 기타

그는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중국 봉쇄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2년, 조지프 나이는 일본의 위안부 망언을 비판하며 도쿄의 심포지엄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성노예에 대한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를 부인하는 것은 자학적 행위."
"고노 담화를 철회하려는 일본 정계의 움직임은 이웃 국가들에 1930년대를 떠오르게 한다."
"이웃 국가 국민은 과거에 일본이 어떻게 군사력을 남용했는지를 회상한다. 일본의 발에 총을 쏘는 격."
2021년 EBS의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 출연하였다.

2024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중국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본 생각과 덩샤오핑의 외교 정책을 폐기하면서 더 호전적인 외교 정책으로 대체한 것이 가장 큰 실수다."라고 발언했다.#

7. 관련 항목



[1] 당시 한미 양국은 작전권의 한국 반환에 합의해서 1990년 평시작전권 반환, 1992년 전시작전권 반환이라는 일정을 정했으나,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불거지면서 1994년의 평시 작전권 회복으로 폭이 축소되었다.[2] 참고로 커헤인은 국제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국제정치학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남긴 학자 1위로 꼽히기도 했다. # "현대 국제정치이론의 기초를 놓았다"는 평을 받는 신현실주의의 아버지 케네스 월츠를 제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