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존 바실론 ''' John Basilone | |
출생 | 1916년 11월 4일 |
미국 뉴욕주 버팔로 | |
사망 | 1945년 2월 19일 (향년 28세) |
일본 제국 이오지마 제1비행장 | |
신체 | 175cm |
종교 | 가톨릭 |
군사 경력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1934 ~ 1937년) |
미합중국 해병대 (1940 ~ 1945년) | |
최종 계급 | 2등 중사 (Gunnery Sergeant)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과달카날 전역 └ 이오지마 전투 † |
주요 서훈 | 명예 훈장 해군십자장 퍼플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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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바실론은 미합중국 해병대 중사(Gunnery Sergeant)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인물이다. 그는 과달카날 전투에서 임무를 초월한 영웅적 행동으로 미국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고, 이오지마 전투에서 영웅적 행동으로 전사한 이후에는 그에게 해군 십자장(Navy Cross)이 사후 수여 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이 두 훈장을 모두 받은 유일한 해병대 사병이다.[1] 종교는 역시 이탈리아계 미국인 답게 가톨릭이다.HBO 제작 미니시리즈 드라마, 더 퍼시픽의 등장 인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합중국 해병대의 전쟁 영웅이다.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의 배우는 존 세다(Jon Seda).[2]
2. 생애
2.1. 전쟁 이전
1916년에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3] 그는 1934~1937년까지 필리핀에서 미 육군 병사로 3년간 근무한 뒤 제대했고, 1940년 6월 3일 미 해병대에 재입대했는데, 이때 육군 복무 경력을 인정받아 해병대 부사관으로 시작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후 그는 관타나모 만 해군 기지에서 근무하다 1942년 8월 과달카날 전투에 참가하였다.또한 이때 주필리핀 미 육군으로 복무했던 경험담을 많이 얘기해서 동료 해병들이 그에게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의 이름을 딴 "마닐라 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2. 과달카날 전투
미 해병대 제1사단 제7연대 제1대대 D중대(화기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1942년 10월 24일 밤, 그가 이끄는 기관총 분대는 룽가 지역을 공격해오는 약 3,000여 명의 일본 육군 보병 연대 병력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24시간[4]의 교전 끝에 일본군 연대를 붕괴시키고 공격을 저지해 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미군 사령부는 일본군이 마타니카우 강을 건너 공격해 올 것으로 예상하고 허먼 하네켄 중령에게 마타니카우 강을 수비하도록 명령하고, 바실론이 있는 7연대 1대대만을 핸더슨 비행장 남쪽 룽가강 동쪽 방면에 배치하였다. 당시 1대대가 담당해야 했던 방어구역은 무려 2.3km에 달했기 때문에 고작 1개 대대로 방어하기에는 무리였고, 이에 연대장 체스티 풀러 중령은 전선 방어를 기관총 중심으로 하도록 명령해 두었다.그러나 사령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본군의 주력은 모조리 룽가 방면으로 몰려왔고, 상당수의 일본군이 해병대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때 바실론은 40미터 떨어진 다른 중대의 참호까지 달려가 여분의 기관총을 운반해 오거나, 고장난 기관총을 수리해 직접 쏘아가며 증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고, 보급이 끊겨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자 90미터 떨어진 본진까지 달려가 적들의 저항을 뚫고 탄약을 추진해 오고, 탄약 보급을 끝내자마자 다시 사격을 퍼붓기를 밤새도록 반복하며, 급변하는 전황을 파악해 허점을 메우고 주변 전우들의 안위까지 챙기는 등 수도 없이 많은 맹활약을 해냈다.
또한 이 기관총 수리 에피소드는, 조명 하나 없이 캄캄한 암흑 속에서 일본군의 탄환이 빗발치는 가운데 오로지 탄약 1발의 뾰족한 끝 하나만을 도구로 쓰며 손끝 감각만으로 송탄불량을 순식간에 해결한 것이다. 사격실력, 체력(특히 압도적인 완력), 정신력 뿐 아니라 부사관답게 병기에 완전 숙달된 병기전문가로서의 기량까지 그야말로 완전체 그 자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활약.
이 활약은 드라마 더 퍼시픽 2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야말로 야수처럼 미친 듯이 싸운다. 난리통에 방열장갑을 분실하는 바람에 왼손, 왼팔에 심한 화상을 입어 가며 그 무거운 M1917 브라우닝을 손으로 들고 사격하는데, 그야말로 백발백중, 바실론이 잠깐씩 훑고 지나가는 사선에 노출된 일본군들은 단 한 명도 예외없이 줄줄이 갈려 나간다. 정신없이 교전하던 주변 전우들이, 사격하다 말고 멍한 표정으로 바실론의 기관총 무쌍에 빠져드는 모습이 그 비현실적인 느낌을 잘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엔 반전이 하나 있는데, 존 바실론의 실제 전투 장면을 부대의 기록과 주변의 증언 그대로 재현했다간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들을까 봐 드라마 제작진이 그의 활약을 일부러 축소해서 표현했다.
결국 바실론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연대장 풀러 중령의 강력한 추천으로 미국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2.3. 전시공채 판매 홍보와 전선 복귀
명예 훈장 수훈 후 바실론은 본국으로 소환되어 전국을 돌며 전시공채 판매를 홍보하게 된다. 그러나 대중의 지나친 관심을 거북해했던 바실론은 상부의 몇 차례나 되는 배려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전선 복귀를 끊임없이 강력하게 요청했다. 결국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 바실론은 미 해병대 제5사단 제27연대 소속으로 다시 전선에 나가게 되었다.바실론은 전선 복귀 전인 1944년에 같은 부대에 근무 중이던 해병대 여성예비군(Women's Reserve, WR) 소속 레나 바실론 병장과[5] 결혼했다.
2.4. 이오지마 전투에서의 전사
미 해병대 제5사단 제27연대 제1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1945년 2월 19일, 이오지마의 레드 비치 2에 상륙한 그는 부하들이 잘 방호된 일본군 방어진지에 저지당하자 단신으로 포화를 뚫고 방어진지 꼭대기에 올라 수류탄과 폭탄으로 방호진지를 무력화시켰으며, 일본군의 중화기 포격을 무릅쓰고 지뢰밭에 갇힌 아군 전차를 안전지대로 유도하는 등 과달카날에 이어 또 다시 큰 활약[6]을 하였다. 그 활약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존 바실론이 소수의 병사들을 이끌고 거의 홀로 진격한 지점이 상륙당일 해병대의 최전방 진격 지점이었을 정도. 심지어 바실론의 진격은 오전 작전 시간이었고. 그 날 오후까지도 해병대는 그 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적진지를 파괴하고 진격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베테랑 부사관들이 아니고선 따라오지도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 포탄 구덩이 안에서 박격포 파편에 맞아 사망한다.[7]# 당시 바실론을 따르던 부사관 4명도 함께 전사했으며, 당일 취사장에서 요리 중이던 부인 레나도 신문을 통해 존의 죽음을 접하게 되고 충격으로 기름을 다리에 쏟고 병원으로 실려가게 된다.사후 이오지마 전투에서의 공로로 해군 십자장에 추서되었다. 그의 시신은 이오지마에 안장되었다가 1948년 3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3. 여담
1945년, 전사한 바실론을 기념해 기어링급 구축함 한 척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8] 이 구축함의 진수식 때 바실론의 아내 레나 바실론이 샴페인을 터트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구축함이 퇴역한 후, 2016년 8월 16일, 72번째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에 다시 명명되었다.[9]미 해병대와 관련된 도로나 낙하산 착륙장, 그리고 여러 민간 시설과 도로(Gunnery Sergeant John Basilone Memorial Freeway) 등에도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의 고향인 미국 뉴저지 주의 래리탄(Raritan)시에서는 아래 사진과 같은 동상이 있으며 매년 시가 주관하는 그를 기리는 퍼레이드가 있다. 또 현지 고등학교의 미식축구장이 바실론 필드라고 불리며 래리탄시에 위치한 다리 말고도 뉴저지 다른 지역에 바실론을 기리는 도로, 다리, 건물 등이 있다.
존 바실론이 사용한 M1917 브라우닝 기관총은 M16 소총 5정의 무게이고 탄약의 무게[10]까지 합치면 20kg 이상이며, 총기 반동도 무지막지하기 때문에[11] 들고서는 쏘기만 하는 것도 힘든지라 거치시켜서 사용하지만 이 사람에겐 예외였다. 실제로 그가 이 총을 들고 싸웠다는 증언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의 고향인 래리탄 시 아메리칸 리전 트라이앵글에 세워져 있는 사진 속의 동상도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 장면을 보면 알수 있듯이 '들고 쏠 수만 있으면' 자체 무게[12]로 반동이 엄청나게 적어진다.
더 퍼시픽에서는 평상시엔 동료 해병대원들과 어울려 다니며 육군 보급품을 약탈하거나 헌병 지프를 훔쳐 몰려는 등 일탈행위를 자주 벌이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지만 전투에만 들어가면 충실한 군인이 되는 그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일단 과달카날 전투에서 실화대로 M1917을 들고 적들을 쓸어버리고, 적의 시체가 쌓이자 사격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며 참호에서 뛰쳐나가 시체더미를 치우고 다시 사격하는 대활약이 일품으로, 동료들마저 그의 무모함에 넋을 놓고 쳐다볼 정도다.
이후 명예 훈장을 받고는 일선부대에 다시 복귀하는데, 사람이 달라졌는지 이전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사라지고 진중하게 훈련병들을 대하는 훈련교관으로 완전히 바뀐 모습을 보인다. 훈련병들을 엄격하게 다루면서도 명예훈장 수여자라는 유명세와 뛰어난 전투 노하우로 훈련병들의 경외를 받고, 실전 투입된 이오지마 전투에서도 해병들의 사기 고취에 일조하지만, 결국 역사대로 전사하며 안타깝게 퇴장한다.
8화에서 존 바실론이 M1917보다 1kg 가벼운 M1919 브라우닝를 고리쇠를 걸고 도수로 무의탁 사격하는 시범을 보이자 훈련병들이 황당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훈련병이 존 바실론이 총을 거치대에서 빼고 들고 이동하는 시범을 보면서 "저렇게 들고 쏘면 창고 벽도 못 맞추겠네."라고 말하다가, 존이 기관총으로 쏜 표적인 지프차가 벌집이 된 것을 보고는 그 옆의 훈련병이 "그럼 빨리 배워야겠네."고 말한다.[13] 과연 명예 훈장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1] 2차대전 기간 중에 해병대에서 이 기록의 소유자는 바실론을 제외하면 에이스 파일럿 패피 보잉턴을 비롯해 모두 장교들이었다.[2] 시카고 PD의 안토니오 도슨 역으로도 유명한 배우이다.[3] 따라서 원래 이름도 존 바실론이 아니라 조반니 바실로네였을 것이다.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미국 정체성을 강조하길 원했고 유명 마피아 알 카포네의 경우에도 알 카폰으로 불리길 좋아했으며 영화 대부의 비토 콜리오네도 콜레온으로 불리길 더 즐겼다.[4] 당시 채권 판매를 위한 워 밴드 활동 중 채권 판매 등의 이유로 72시간 등으로 길게 과장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존이 내버려 두기도 했지만 솔직했던 그가 진실하게 말한 교전 기간은 24시간이었다.[5] 미국에서 병장(Sgt.)은 부사관이다. 해병대 여성예비군은 1943~1946년까지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조직으로, 레나 바실론은 여성예비군 병장으로 입대해서 병장으로 제대했다. 당시 여군은 이등병으로 입대하지 않고 부사관인 병장(Sgt.)으로 입대했다.[6] 더 퍼시픽 8화 후반부에 그의 활약이 나온다.[7]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는 그가 공격 목표였던 모토야마 1번 비행장 활주로 끝의 참호에서 일어나 비행장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여러 발의 총알이 날아와 그의 오른쪽 사타구니와 목에 명중했고, 왼팔이 완전히 날아가버리면서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8] 함번은 DD-824. 1977년까지 활약한 후 퇴역, 마지막은 훈련함으로 이용되다 1982년 가을 플로리다 앞바다에서 표적함이 되어 바닷속으로 수장되는 것으로 함의 운명을 마쳤다.[9] DDG-122 USS 존 바실론, 현재 기술 테스트 중이다.[10] 30-06 탄이다. 이 탄의 반동을 줄이고 가볍게 만든다고 개조한 것이 7.62×51mm NATO 탄이다.[11] 기관총은 거치시켜 놓고 사격하면 삼각대를 통해 반동이 지면에 흡수되므로 사수로서는 소총보다 반동이 적게 느껴진다. 하지만 들고 쏠 경우는 반동을 흡수해줄 삼각대도 없고, 수랭식 기관총이라 소총처럼 개머리판으로 어깨에 견착하고 반동을 줄일 수도 없다. 게다가 무거워서 균형을 잡기 힘들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M1917은 애초에 삼각대에 사용하는 게 당연한 중기관총이라 분대 지원 화기로 쓰이는 K3 경기관총, FN 미니미, M249 등 교본상으로도 들고 쏠 수 있는 경기관총들과는 무게도 반동도 전혀 다르다.[12] 동영상의 무기는 SIG MG338로 M1917보다 가벼운 약 9kg정도 된다.[13] 드라마 상에서 존 바실론이 가장 먼저 가르친 훈련병이다. 다른 신병들보다 더 빨리 훈련받아서 그런지, 기관총 사격 연습에서 존 바실론이 칭찬했을 정도로 시범을 잘 보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