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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9-06 16:14:59

종무득



1. 개요2. 행적3. 무공

1. 개요

"진인! 진인! 난 진인이 싫어!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제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진인 따위는 정말 개밥보다 맛없는 거야!"
- 『광혼록』에서 종무득이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1]
풍종호 무협소설 『광혼록(狂魂錄)』에서 개방(丐幇)의 소주(蘇州) 분타주이다. 궁가문의 뛰어난 수재라 하여 별호가 궁수재(窮秀才)이며, 비권걸(飛拳傑) 황곡, 한검객(閑劍客) 문평, 소살광(笑殺狂) 고덕명과는 한 사부를 모신 사형제 지간이다.[2] 개방에 비전 되는 삼대신법(三大身法)[3]을 완성하여 몸이 매우 날래고, 밤에도 눈빛을 빛내며 사물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어서 달리 비천야호(飛天夜豪)라고도 불린다. 천생 거지라 먹을 것만 좋아하여 여자가 뭔지 모르는 까막눈이다. 오죽하면 풍가화가 칠미(七美) 중에서도 손꼽히는 주수문을 못 알아보는 그에게 질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2. 행적

종무득은 조수인의 내력을 파악해달라는 비호도(飛虎刀) 육풍목의 부탁을 핑계로 자신의 구역인 소주를 날름 벗어나 조수인 일행에 여행 초기부터 가담한다. 그래서 수로맹(水路盟) → 형산파(衡山派) → 형주(衡州) 그리고 다시 소주에 이를 때까지 함께한다. 그렇게 짧지 않은 기간 조수인을 지켜본 그는 이매보(魑魅步)와 번천각(翻天脚)의 용권(龍拳), 비사권(飛蛇拳)의 파형추(破形錐) 등의 특징적인 초식을 알아보면서 스승에게 배운 바를 떠올려 보나, 정작 그런 특징을 보였던 고수의 이름을 듣지는 못해 조수인의 사승(師承) 내력을 파악하지는 못한다.

혈선교(血仙敎)가 조가장 및 다보장(多寶莊)을 일시에 기습한 사건이 정리가 되어 조대인의 장례가 끝난 후 종무득도 조수인을 따라 숭산(嵩山)으로 가려다가 방주인 용소백의 방해로 남게 된다. 그때 방주위를 이으라는 말에 용소백에게 풍(風) 맞은 거 아니냐며 격렬하게 반항한다. 결국, 꼼짝없이 잡혀서 교육(?)당할 뻔했지만, 조수인이 만나러 가는 신의가 수라신군(修羅神君) 공손이임을 뒤늦게 안 용소백이 꽁지 빠지게 뒤따라 달려야 했기에 그는 졸지에 보쌈당하는 신세가 된다. 숭산 준극봉(俊極峰)에서 조수인 일행에 재합류한 그는 같이 대영웅대회(大英雄大會)가 열리는 태호(太湖)로 이동한다.

영웅대회에 참가한 모든 무인을 경악과 침묵 속으로 몰아넣는 뛰어난 무위를 선보인 조수인이 갑작스레 유경하의 진실 발언에 정신을 놓는 것까지 모두 지켜본 종무득은 수밀계(樹密界)에서 있었던 혈선교와의 최종 결전까지 참여한다. 처음에 혈선교의 수괴인 금권자(金權子)가 정신이 나간 조수인과 속을 긁은 주수문을 죽이려 하는 것을 막으려 그도 공격하는데, 금선고(金仙蠱)로 인해 강화된 신체에 통하지 않아 물러난다. 조수인의 방어를 뚫을 수 없자 목표물을 자신으로 바꾸려 하는 것을 눈치챈 그는 장기인 날랜 신법으로 잽싸게 도망쳐 금권자의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그사이에 공손이, 경천객(驚天客) 무호성, 십보단혼객(十步斷魂客) 강천위는 혈고(血蠱)를 먹은 혈선교의 정예 위사들을 처리하여 승부의 추는 확실히 기울고 만다. 이후 조수인이 제정신을 차려 공손이와 다시금 떠난 비무행에도 동행한다.
후일담으로 20여 년 뒤에 제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때는 개방주가 되어서 비천신개(飛天神丐)라 불리고 있다.[4]

3. 무공


[1] 그는 육풍목의 꼬드김에 넘어가 조수인 일행에 합류할 때, 마차를 가로막고 다리에 상처를 입은 척 위장한다. 가무량은 이런 그를 알아봐 돕기 위해 마차를 잘 모는 종씨 집안의 막내라고 소개한다. 조수인은 이 말을 듣고 종무득의 거지 차림을 훑어본 뒤에 진인은 정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을 하며 마차를 맡긴다. 그리하여 같이 여행을 하면서 양노대의 변화, 이림의 정체, 조수인의 기행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면 그가 꼭 내뱉는다.[2] 그 사부의 이름이 남천산이다. 고덕명과 종무득이 하도 말썽을 부려서 노화 때문에 일찍 죽었다고 한다.[3] 종무득이 익힌 개방의 삼대신법이 『지존록(至尊錄)』의 취걸개(醉乞丐)가 익힌 삼대신법과 같은 지는 알 수가 없다.[4] 용소백의 해학(諧謔)에 도망도 못 치고 꼼짝없이 방주에 오르게 된 경위를 말해주기가 싫어서 종무득은 제자에게 조수인의 천절(天絶)이라 불린 시기의 행적에 대해서는 얘기해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