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의 부검의 니시오 하지메의 저서. 본인이 부검하면서 본 여러 경험과 이를 통해 느낀 '격차'들을 서술하고 있다.2. 에피소드
- 부검할 때는 우선 시신 전체를 살펴본다. 몸 어느 부분에 상처를 입었는지, 얼굴에 울혈이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외표면을 빠짐없이 관찰한다. 법의학에서는 부검을 시행할 때 눈에 띄는 외상과 색깔 변화가 어느 부위에 어느 정도 크기로 몇 군데 있는지 같은 정보가 최종적으로 사망 원인을 특정하는 중요 단서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칼에 찔린 흔적이 있다면 상처의 폭과 갚이가 흉기와 일치하는지가 범인 체포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등.
- 인간의 체온은 보통 37도 정도를 유지하는데, 어떤 이유로 28도 정도까지 내려가면(때로는 이 정도까지 가기도 전에) 심장에 부정맥이 발생하면서 사망한다. 도시의 일상 공간, 예를 들어 집 안에서(!) 동사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극도로 가난하고 실직하여 수입이 없는 생활고 상태로 있다가 고독사하는, 영양상태가 형편없고 바싹 마른 사람들이다. 아무리 추워도 옷을 다 껴입고 이불을 둘러싸고 있으면 얼어죽을 일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조건이 갖춰지면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주위 온도가 체온보다 낮으면 체내의 에너지를 소비해 열 발생을 일으키는데, 에너지원이 되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열 발생이 부족해진다. 발생하는 열이 발산하는 열을 따라가지 못하면 체온은 서서히 낮아진다. 빈곤해서 제대로 먹지 못하면 체력과 면역력이 서서히 떨어지고, 옷을 입든 이불을 둘러싸든 마침내 체온이 떨어져 사망한다. 주택가에 있는 집 안에서,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 홀로 사람이 얼어죽는 것이다. 정말로 무서운 이야기다.
- 인간은 동사하기 직전 상태에 몰렸을 때 '더위'를 느끼기도 한다. 때문에 일부 동사체는 옷을 벗은 채 죽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이상 탈의'라고 하며, 동사에 이르는 과정에서 뇌의 체온조절 중추에 이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유지장치의 오작동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추운데 왠지 더워서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방한 수단을 내던져 체온 저하를 오히려 앞당기기에 '모순 탈의'라고도 부른다.
- 당뇨병을 옛날에는 '사치병'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컵라면과 인스턴트 등 정크푸드의 보급으로 '저소득층의 병'이 되어가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 발표에 의하면 1980년 1억 800만 명이었던 전 세계 당뇨병 환자 수는 2014년 4억 2,200만 명으로 3.9배나 늘었으며, 당뇨병 유병자의 75%가 저~중소득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 10년 동안 컵라면만 먹다 죽은 남자의 시신을 부검한 적이 있는데, 왜 그랬냐면 이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라,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면 딱한 이야기다. 그는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하고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겨우 먹고사는 상황으로(그나마도 사망 당시에는 무직이었다) 식생활과 수입은 직결되기에 적은 식비로 가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컵라면을 주식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치우친 식생활과 불균형한 영양공급의 결과는 부검 소견에 확실히 나타났다고. 그는 간 전체가 희멀건한 노란색(원래 간 색은 붉은색)으로 변한 완전한 지방간이었으며, 이로 인한 간부전으로 사망했다.
- 일본에서는 주검을 씻기는[1] '유칸시(湯灌師)'와 관에 넣는 절차를 하는 '노칸시(納棺師)'로 나누어져 있다. 염습을 모두 장례지도사가 하는 한국과의 차이.
- 영아살해도 다뤄진다. 마트나 전철역 물품보관함이나 공중화장실 변기에서 갓난아기 시체가 발견되는 끔찍한 이야기였다고.
- 열사병으로 죽은 사람이 시간이 꽤 지나 발견되면 사인을 판별하기가 어렵다. 살아있는 사람이 체온이 41도라면 당장 열사병을 의심하겠지만, 죽고 나면 체내에서 더 이상 열을 만들지 못하게 되기에 체온이 서서히 떨어져가기 때문이다. 주위 온도와 비슷해질 때까지 떨어지기에 이 온도는 계절마다 다르지만, 그래서 부검시 체온이 이미 외기 온도에 가깝게 떨어졌다면 사인이 열사병인지 아닌지 판별하기는 무척 어려우며, '사인 불상'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때도 잦다. 몇 안 되는 힌트가 있긴 있는데, 현미경으로 장기 상태를 자세히 관찰했을 때 근육세포 일부가 녹아있다면(횡문근융해증) 열사병으로 죽은 것이다. 열사병은 실내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며, 한밤중에 자다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 '독거자로 살아서 죽은' 사람을 부검한 적이 있다. 가벼운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만 실려갔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주변에 누가 있었다면 구급차를 불러주었겠지만 아무도 없었던데다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자력으로는 119를 부를 수 없었고, 결국 홀로 쓰러져 있는 동안 추위로 서서히 체온이 떨어져가며 끝내 쓸쓸히 얼어 죽어갔다.[2] '혼자 살지만 않았어도...'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고.
- 극단적일 정도로 술만 마시고 지낼 경우, 오히려 혈관은 깨끗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오로지 술만 마시며 산 사람을 부검한 적이 있는데, 알코올 이외의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니 동맥경화가 안 일어났고, 오로지 알코올만으로 최저한의 에너지를 얻고 단백질과 지방 등의 섭취가 없어 내장지방도 거의 없었다고. 비만은커녕 야위어서 피하지방 두께가 정상치(3~4cm)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몸속만 보자면 심근경색이 일어날 요소도 없어서 건강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고. 물론 그런 상태로 사람 몸이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그는 오래 살지 못하고 6개월 정도만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독사였다.
그런데 인간이 이렇게 알코올만으로 (건강하게는 아니지만) 살아갈 수도 있는데 이 사람이 왜 죽었느냐고? 알코올을 거의 유일한 영양원으로 살아갈 때, 한번이라도 감기에 걸려버리면 케톤체 때문에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양(포도당)이 부족해지면 몸의 지방을 연소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케톤체가 포도당 대신 전신의 에너지원이 되어준다.[3] 이것은 산성물질이라서 혈액 중에 너무 많으면 혈액 중에 너무 많으면 혈액의 산성도가 강해진다. 건강하다면 폐에서 혈액의 pH를 조절한다.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빨리해서 이산화탄소를 적극적으로 몸 밖으로 배출해 혈액 중의 알칼리성을 강하게 만들고, 신장 기능도 가세해서 여분의 산성은 소변으로 배출해 혈액이 알칼리성으로 기울도록 조절한다.
그런데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감기라도 걸려 영양원 공급이 완전히 끊어지면 혈액 중의 케톤체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다. 몸의 정상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혈액의 pH 수치는 아주 좁은 범위 안에서 조절되어야 한다. 혈액에 너무 많은 케톤체가 쌓이면, 혈액의 산성도가 정상 범위를 넘어가 몸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 문제의 남성도 부검해보니 혈액 속 케톤체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 뇌졸중으로 죽으면 사망 후 상당히 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된다 해도 부검에서 혈종의 흔적을 뚜렷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사후 1주일 이상 지났기에 부패가 심해 뇌가 곤죽처럼 녹아 있어서 원래 뇌의 형태를 전혀 갖추고 있지 못했음에도 회색 뇌조직 속에서 붉은빛이 도는 큰 핏덩어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여담으로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시신이 수습되고 부검을 받으러 온 이유는, 같이 사는 아내가 치매라서 남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신과 같이 평소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2주에 1번 오는 방문 간호사가 왔을 때에야 세상에 알려졌다고.
- 핵가족화로 인해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일이 줄어들게 되면서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줄여서 '노노간병' 끝에 비극이 일어나곤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2013년에 이미 '간병이 필요한 자와 간병인이 모두 65세 이상인 세대'가 51.2%나 되었다. 언제 '간병인'이 본인도 '간병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간병인이 먼저 사망하는 사태도 일어난다. 이럴 경우 비극이 겹쳐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간병을 받는 사람이 중증 치매 환자로 상황 파악을 못하거나 뇌경색으로 거동을 못한다면, 간병인이 심장이나 뇌의 돌발적인 병으로 쓰러지더라도 구조 요청을 못해 그대로 죽고 말고(배우자의 시신이 백골화가 될 때까지 같이 생활한 사례조차 있을 정도), 혼자서는 식사도 약도 먹지 못하고 도움도 청하지 못하는 상태인 환자는 전혀 돌봄을 받지 못해, 죽어버린 간병인을 따라 본인도 굶어 죽거나 앓던 병으로 죽는 것이다. 골든아워 내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간병인과 환자가 모두 주검으로 발견될 수밖에 없다.
병이 아닌 사고로 이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치매인 아내를 간병하던 남편이 욕조에서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사건현장은 대단히 기이한 상태였는데, 조사 결과 아내가 욕조에 들어가 나오지 못하게 되자 남편이 꺼내려다 발이 미끄러져 욕조 속으로 들어갔으며, 미끄러진 찰나에 우연히 아내 밑에 깔려 욕조 밑으로 가라앉았고, 아내가 남편을 누르는 바람에 익사했다. 그나마 부부와 연락이 끊어져 걱정한 친척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가면서 비교적 빨리 발견되어 아내는 구조되었는데, 그때까지도 욕조 속에서 죽은 남편을 깔고 앉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남편이 자기를 돌보다 사망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실로 참담한 이야기.
- 동맥경화로 죽은 사람을 부검하면, 대동맥을 꺼내 내측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위로 혈관을 자를 때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라고 한다.
- 수시렁이라는 벌레가 있다. 딱정벌레목의 곤충으로 더듬이는 곤봉 모양이며, 앞가슴이 쑥 들어가 그 속에 더듬이를 담고 머리는 자유로이 신축한다. 이놈 역시 건조한 동물 단백질과 견직물, 모직물 같은 섬유질, 가죽제품 등을 먹어치운다. 일본어로는 가쓰오부시무시라고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가쓰오부시를 먹어치우는 성질의 벌레(무시)이기 때문이다. 시신도 건조될 경우 수시렁이가 좋아하는 먹이와 상태가 같아져서, 미라화한 주검을 개복해보니 흉부와 복부 등에 장기 대신 그것들을 다 먹어치운 수시렁이 떼가 꽉꽉 들어차 있다가 넘쳐나는
으아아아악!!!!걸 본 적 있다고.
- 심하게 부딪히거나 폭행을 당해 근육이 광범위하게 손상을 받고 몸 전체의 20~30%에 걸쳐 멍이 생기면 급성 신부전을 일으켜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근육이 외상을 입으면 신독성(腎毒性)[4]을 지닌 미오글로빈[5]을 혈액으로 배출하는데, 이게 도가 지나칠 경우 이 정도 상태에 이르는 것. 근육이 손상될 경우 미오글로빈이 분해되어 혈액을 타고 흐르는데, 이 물질이 한도 이상으로 콩팥을 통과할 경우 찌꺼기가 점차 쌓이면서 혈류를 막아 신장을 직접적으로 망가뜨린다. 횡문근융해증, 크러시 증후군도 이와 비슷하다.
- 시반(屍斑)이란 사후에 시체의 피부에서 볼 수 있는 반점이다. 사망으로 심장박동이 정지되면 혈액이 중력의 작용으로 몸의 저부(低部)에 있는 부분의 모세혈관 내로 침강하여 그 부분의 외표피층에 착색이 되어 나타난다. 8~12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색이 이동하지 않지만, 사후 5~7시간 정도 사이[6]에 시신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몸 양쪽에 나타나기도 한다. 한번 시반이 고정되면 손가락으로 눌러도 그 부분 색이 사라지지 않지만, 고정되지 않은 상태라면 색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망 시간을 추측한다. 전신 문신을 했거나 흑인인 경우 확인하기가 좀 어렵지만. 보통 적갈색이며, 청산가리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면 시반이 붉다. 위장은 통상적으로 위산에 의해 산성이 되지만 청산염은 수용액과 결합하면 강한 알칼리성을 나타내어 구토물이 강알칼리성을 보일 때가 있으며, 저체온에 의한 동사와 마찬가지로 혈액 색에 변화가 있다. 혈액의 헤모글로빈이 청산염에 포함된 시안화합물과 아주 강하게 결합해서 혈액이 선홍색이 된다. 반면 황화 수소로 인해 사망하면 시반 색깔이 녹색이라고 한다.
- 치매 환자는 뇌가 수축하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부터 잃고, 계속 수축되면서 팔과 다리 등을 움직이는 중추 부분마저 수축해 결국에는 거동을 못하게 되다가 결국 죽는다. 뇌 자체가 수축하기 때문에 사망 후 부검해보면 치매 환자의 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가벼우며, 대뇌이랑[7]이 가늘어져서 대뇌고랑[8]이 눈에 띄게 넓어진 인상을 준다고 한다.
환자의 '배회'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자신이 부검한, 행방불명 중 사망한 치매 환자는 대부분 자택에서 5km 이내, 도보권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고. 당연히 실종되면 가족들이 찾겠지만, 걸어서 1시간 남짓한 거리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 죽는 사람도 많다. 병사로 죽는 치매 환자는 전체의 20% 정도이고, 익사, 동사, 전도사 및 추락사, 교통사고 등 사고사로 사망한 사람이 30%로 더 많다고. 그나마 시신이 발견되는 사람은 다행, 많은 사람들이 행방불명된 후 시신조차 발견되지 못한 후 영원히 실종되거나, 발견되어도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채 미상으로 남는 사람 중 다수가 치매환자로 예상된다. 무연고자였거나 독거자였을 경우 아예 실종신고도 안 될 수도 있다.
실 사례로 2007년 일본 아이치현에서는 91세 남성이 배회 중 전철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으며, JR 도카이가 유족에게 720만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사건으로 'JR도카이 치매 사고 소송'이라고 불린다. 1,2심에서는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났다. 아내는 85세로 본인도 간병이 필요한 상태였고, 아들은 요코하마시[9]에서 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 아들은 이후 "아버지는 목적의식을 갖고 걷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련의 보도에서 사용한 배회라는 단어는 잘못된 이미지를 준다."는 말을 남겼다.(2016년 6월 12일자 아사히신문)
실 사례로 2007년 일본 아이치현에서는 91세 남성이 배회 중 전철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으며, JR 도카이가 유족에게 720만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사건으로 'JR도카이 치매 사고 소송'이라고 불린다. 1,2심에서는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났다. 아내는 85세로 본인도 간병이 필요한 상태였고, 아들은 요코하마시[9]에서 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 아들은 이후 "아버지는 목적의식을 갖고 걷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련의 보도에서 사용한 배회라는 단어는 잘못된 이미지를 준다."는 말을 남겼다.(2016년 6월 12일자 아사히신문)
남성은 그전에도 자택을 나와 예전에 근무했던 농협이나 생가로 향한 적이 있다고 한다. 목적 없이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발길이 향하는 곳은 자신의 인생에 연고가 있던 장소였다. 옆에서 보기에는 '배회'라는 한 단어로 정리해버리는 치매 환자의 외출 행동도 실은 본인 나름의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중략)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는 있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이것이 치매의 두려운 단면이라 생각한다.
- 요코하마 병원 링거 살인 사건도 언급한다. 환자들이 오늘내일하는 곳인 종말기 의료를 행하는 병동이어서 평소 사망자가 빈번히 발생하기에[10] 연쇄살인임을 의심하기가 어려웠다고. 독살인지를 알아내려면 사망한 사람의 혈액을 전용 분석장치에 돌려 의심되는 약물이 혈액 중 어느 정도의 농도에 달했는지, 과거에 보고된 치사량에 달했는지, 사인이 될 수 있는지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 사망자를 부검하지 않으면, 약물 투여가 사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 진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미 사망진단서가 수리되어 시신이 화장되었다면 사망자의 혈액은, 그러니까 살인 사건의 증거는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중독사'였으나 그냥 '병사'로 처리되고 만 피해자들의 여부를 알 길이 없어진 것이다. 아직 범인이 잡히기 전 나온 책이지만 한국에서는 범인이 잡힌 후에 이 책이 번역 출간되어, 그 사실에 대해 역자가 주석을 달아 추가해놓았다.
- 비장은 심장, 뇌 등과는 달리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기관은 아니라서. 완전히 제거하더라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
- 큰창자는 수분을 흡수하는 기능 정도뿐이라 전부 잘라내도 물 같은 변이 나올 뿐 큰 이상이 없지만(수분이 흡수되지 않아 대변이 고체화되지 않기 때문), 작은창자를 절제하면 꽤 애로사항이 생긴다. 영양분 흡수를 못해서 생명유지에 지장이 생긴다.
- 부검 현장에 있던 의사들과 경찰이 결핵에 걸린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전염병에 걸린 시신이 다 비슷하지만, 시신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어서다. 물론 죽은 사람이 숨을 쉬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기감염이라는 특성상, 부검 중 폐를 꺼내거나 자르다가 결핵균이 공기중으로 퍼지고 그걸 흡입하면 감염크리인 것이다. 신원미상 변사자의 시신은 생전 어떤 병원미생물에 감염되어 있는지 정보가 없는 채로 부검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저자 자신의 법의학 교실은 들어오는 이들 모두에게 결핵전문병동이 있는 병원에서 쓰는 감염방어용 특수 마스크를 쓰도록 했다고 한다.
- 시신이 부패하는 속도를 계산할 때 법의학에서는 '카스페르의 법칙(Casper's Law)'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지상에서 시신의 부패 속도가 1이라면 수중에서는 2분의 1, 땅속에서는 8분의 1까지 느려진다고 한다. 물론 땅속이라도 몇십 cm 정도라면 지표와 별로 다를 것이 없고, m 단위로 묻힌 경우. 살인범이 피해자의 시신을 밭에 암매장했는데, 2~3m나 땅을 파고 묻은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보존환경이 완성되었고, 범인이 남긴 타박상의 크기와 범위가 명확하게 그대로 남은 사례가 있었다고. 시신을 감추려고 했지만 증거를 고스란히 남겨버린 것이다.
- 화재사한 사람을 부검해보면 기도 점막이 검댕으로 검게 덮여 있다. 화재 발생 당시 살아있어서 호흡을 하면 화재로 발생한 매연을 들이마시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 그런데 화재 발생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라면, 숨을 쉬지 않으므로 기도가 깨끗하다. 이 부분을 통해 사망자가 화재로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예를 들어 (박한상(범죄자) 사건처럼) 살인범이 범행을 저지른 후 방화로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
- 시신에 남겨져있는 상해나 기타 문제들이, 생전에 생긴 것인지 사후에 생긴 것인지 판정하기 위해 확인하는 생활반응이 있다. 살아 있어야만 생길 수 있는 손상과 현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부를 갑자기 메스로 자르면 당연히 피가 난다. 하지만 시신에서는 피가 나지 않는다. 심장이 뛰지 않아 피가 흐르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걷다가 발을 부딪치면 멍이 들지만 시신은 두들겨패도(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 멍이 생기지 않는다. 멍이란 피부 안쪽에서 피가 나는 것이므로 피부 손상과 같은 원리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이미 죽은 시신의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혀 자살로 위장시키려할 경우, 부검과 생활반응을 통해 직접적 사인을 찾아 간파해낼 수 있다. 또한 사망자의 피부, 결막, 장기가 혈액을 잃고 흰색으로 변했다면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죽은 사람의 심장은 찔려도 출혈하지 않아서 장기에서 혈액이 없어지지도, 흰색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장기가 흰색이 되었다는 것은 심장이 움직여 혈액이 순환하고 출혈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토막살인 사건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사망한 후 시신이 절단되기 때문에, 시신을 팔다리 등 일부만 찾았다 해도 절단된 피부에서 생활반응이 없음을 확인하고 이를 알 수 있다.
- 총살 시체를 부검해본 경험도 나온다. 탄환은 작지만 날아가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거대한 운동에너지를 만든다. 몸속을 통과할 때 열에 의해 주변 조직이 손상을 입고,[11] 사입구는 대개 탄환처럼 작고 동그란 구멍이지만, 사출구는 몸의 내측에서 외측을 향해 파열된 듯이 일그러진 모양이 많다. 머리 총창의 경우 내측에서 외측을 향해 마치 방사선 모양으로 파열된 듯한 두개골 골절이 사출구 아래에 생긴다. 단단한 뼈에 맞으면 탄환이 방향을 바꾸고, 관통하지 않고 박혀있는 맹관(盲貫) 총상의 경우 사입구만 있고 사출구는 없다.
- 익사가 아주 얕은 곳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술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넘어져서 도로 옆 배수구에 빠져 고작 10cm 정도의 물에 익사한 사례 등이 그러한데, 정말 드물다.
- 사후경직은 몸의 위에서 아래쪽을 향해 서서히 진행된다. 사람의 경우 턱, 목,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고관절, 무릎, 발목, 발가락 순. 운동하다가 죽은 경우도 근육이 활동 중이었던 상태라서 사후경직이 빠르게 진행되며, 더운 지역이나 계절의 경우, 사후경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추운 지역이나 겨울이라면 그 반대이다. 운동을 하다가 죽은 경우도 근육이 활동 중이었던 상태라서 사후경직이 빠르게 진행되며, 근육질인 남성은 시강이 강하게 나타나고 노인이라 근육량이 적다면 그만큼 약하다. 사산된 아기나 아사체의 경우, 시강이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그 이외에도 패혈증 등을 앓아 체온이 높은 상태에서 사망한 경우, 부패가 빨리 진행되어 사후경직이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 법의학에서 사망시간을 추정할 때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다음, 시강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만 사용한다.
- 시반, 경직, 체온 저하를 법의학에서는 '초기 사체 변화'라고 부른다. 후에 일어나는 부패, 미라화, 백골화는 '후기 사체 변화'라 부른다.
- 후기 사체 변화 중 시랍이라는 것이 있다.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깨끗한 인상을 준다고 하며, 몸의 윤곽은 그대로 남아 있고 크기도 생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미라화와 마찬가지로 '영구 사체'라 불리며, 일단 시랍화되고 나면 고대 이집트의 미라가 수천 년이 지나도 상태가 그대로인 것처럼 반영구적으로 그 형상이 남는다. 외표로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피하조직과 근육도 흰색으로 변한다. 시랍화될 때의 주변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디였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경우도 있고 단단해지는 경우도 있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로 전문 부검의들도 이런 시신을 볼 일은 드물다고 한다.
- 목을 졸려 죽을 경우 결막에 일혈점[12]이 나타나곤 한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고 동시에 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일어난 혈압 상승으로 실금하기도 한다. 뇌는 산소결핍에 취약한 장기로, 몇 분만 산소가 전달되지 못해도 신경세포는 죽어버리고 그로 인해 몸도 죽는 것이다.
- 일본의 부검의는 150명 정도로, 저자 왈 이리오모테삵의 추정 숫자와 별로 다르지도 않다. 이리오모테삵은 일본의 멸종 위기 동물이다. 쉽게 말해 천연기념물 수준으로 적다는 얘기. 한국은 2018년 10월 기준으로 59명이다(대학 소속 16명). 절대수로는 일본보다 적고 인구대비[13]로는 엇비슷하다. 이런 세부직종의 종사자 수가 적은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21년 KBL 등록선수는 총 154명이다.
[1] 때에 따라서는 상처와 부패 등으로 손상된 부위를 고쳐 본모습으로 돌려놓고 얼굴에 화색이 돌도록 화장까지 해준다.[2] 이 부분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이라면 보일러를 틀어놓은 상태로 쓰러졌다면 그래도 좀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일본 주택은 잦은 지진에 의한 파손 및 비용 문제로 인해, 어지간한 고급주택이 아닌 이상 한국처럼 바닥난방을 설치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겨울에는 냉난방 겸용 에어컨이나 코타츠 등의 난방기구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이 코타츠도 이불 안에서나 따뜻하지 이불 밖은 그냥 엄동설한이며, 에어컨도 위쪽 공기만 따뜻해질 뿐이고 바닥은 여전히 냉골이다.[3] 이 원리를 이용해 탄수화물 섭취량을 극도로 줄이는 '케톤체 다이어트'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틀 정도 단식하면 혈액과 소변 중에 케톤체가 만들어진다.[4] 신장에 손상을 주는 독성[5] 근육 중에 있는 색소 단백질[6] 색 침착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혈액의 이동이 가능한 경우[7] 뇌 표면의 구불구불한 구조물.[8] 대뇌이랑 사이사이에 약간 움푹하게 들어간 곳.[9] 가나가와현에 있다. 아이치현과의 거리는 약 200km.[10] 고령자라면 심근경색이나 뇌출혈이 언제든 발병할 수도 있고, 연이어 돌연사가 발생한 점에 위화감을 느낄 수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쉽다.[11] 총구로부터의 거리에 따라서는 사입구 주변에 화약과 열기에 의한 화상과 상처가 남는 때도 있다.[12] 점상(점 모양) 출혈[13] 한국 인구는 일본의 40%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