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卽身佛[1] / Sokushinbutsu살아 있는 스님이 스스로를 미라로 만들어 불상화되는 것. 일본 불교의 종파인 일본 밀교와 일본의 도 계통 종교인 슈겐도에서 전근대에 행하던 인신공양 방법이다.[2]
2. 상세
즉신불은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줄임말에서 유래했는데[3] 즉신성불 자체는 미혹을 열어 불도를 얻은 사람이 육신째로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뜻한다. 화엄경, 법화경, 진언종 등에도 즉신성불의 개념 자체는 존재한다. 그러나 중세 일본에서는 이 즉신성불 개념에 대한 금욕적 수행의 의미를 붙여 즉신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현재 이런 자기 학대를 넘어 자살에 가까운 행위를 수행의 일환으로 인정하는 불교 종파는 당연히 없다. 현대에 이런 일을 도왔다간 자살교사방조죄가 되는 데다 1879년 메이지 유신으로 즉신불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19세기의 것이 마지막에 만들어진 즉신불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즉신불은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 혼묘지(本明寺)에 봉안된 혼묘카이 상인(本明海上人)으로, 1683년에 입적하였다. 일본은 대처승이 일반적이고 특유의 가업 문화와 어우러져 승려도 대를 이어 가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일본에서 승려들과 대화하다 보면 '조상님 중 즉신불이 된 분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있다.
영어권에서는 등신불 등 승려의 미라를 모두 Sokushinbutsu라고 잘못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으로 인신공양을 했다고 여겨지는 일본과는 구별된다.[4] 때문에 이 문서에서는 일본 불교의 즉신불을 설명한다.
3. 방법과 실현 가능성
중세 일본의 전통을 기준으로 곡식을 금해 지방을 빼고 솔잎, 독이 있는 옻나무차를 마셔 수분을 최대한 빼는 등의 고행을 하면서 수년에 걸쳐 몸을 산 채로 미라화한 후 땅 속의 석관에 들어가 그대로 입적한다. 생매장이 아닌 방법으로는 옻나무 차, 천연방부제 등을 마시면서 스스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부좌 상태로 수행하다가 그대로 입적하는 경우도 있다. 알려진 방법에 따르면 식사를 오랜 기간 제한해서 온 몸의 지방과 근육을 없애고 일부러 독성이 있는 차를 마셔 구토와 설사를 유발해 체내 수분과 장 내 미생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사후 시신이 부패하는 속도를 극단적으로 느리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의 몸을 미라와 같은 상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미라가 된 사례는 20건 남짓으로 알려져 있다.실제로 행해졌는지의 여부도 논란이 많은데 현재 발견된 일본의 즉신불 대부분은 생전에 가혹한 고행을 통해 미라가 된 경우가 아니라 사후에 미라화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즉 중국 등 타국의 등신불과 큰 차이가 없다.
미라가 되기 위해 일부러 고행을 한 것도 아니며, 원래 중세 일본 밀교의 승려들은 곡기를 끊고[5] 산행을 다니는 수행이 기본 생활이었다. 이 때문에 자진해서 힘든 수행을 하는 승려들의 법력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이 매우 강했고 지역의 다이묘나 사무라이들에게서 시주도 많이 들어와 생활에 큰 어려움도 없었다. 특히 센고쿠 시대에는 워낙 전쟁이 일상화되었던 관계로 전쟁 전에 사무라이들이 자신이 속한 가문이 이기길 바라며 유명한 고승들에게 시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시주를 통해 승려들을 후원한 지역 권력자들은 자신은 시주로 덕을 쌓았으니 자신이 시주한 승려가 부처가 되어 복을 주거나 사후 자신들을 구제해 주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승려가 입적하면 그 제자들이 스승의 시신을 미라로 만든 후 '스승님께서는 성불하셨으니 후원해주신 분들도 구원받으실 겁니다'라고 일종의 덕담을 해 줬다.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이야기에 살이 붙으면서 승려들이 특별한 고행을 하면서 스스로를 미라화한다는 소문으로 퍼진 것이다. 아무래도 평범하게 사후에 미라화되었다면 모양새가 빠지기 때문에 자신이 후원하던 승려는 죽은 후에 시신이 부패하지도 않을 정도로 법력이 강했다고 믿고 싶었던 후원자들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진짜로 스스로 미라화 과정을 거친 즉신불이 아예 없다고 단언하기는 힘들겠지만 절대 일반적인 수행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며, 대부분은 상술했듯 평범한 등신불이다.
일본에는 자신의 사리를 만들기 위해 건강한 승려가 스스로 토굴 등에 들어가 미라가 되는 것을 기다리는 수행도 있었는데 역시 즉신불로 본다. 다만 이때 죽어도 시신이 부패하면 실패한다. 자세한 설명은 미라 항목 참고.
4. 대중문화에서
- 오컬트 만화 공작왕에서도 초반 퇴마 옴니버스물 시기에 등장한 적이 있다. # #
- 호러 드라마 공포극장 언밸런스 1화 '미이라의 사랑[6]'은 100여 년 전 즉신성불한 고승이 어떤 연유로 다시 살아났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7]
- 팝 팀 에픽 4화에서는 즉신불이 유행한다(...). 유행하는 즉신불을 포푸코와 피피미가 해 봤다고 말할 때 옆 테이블 아저씨가 왜 살아 있냐고 딴지를 걸자 말장난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삼겹살('サム'[8]ギョプサル)이 나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문서 참조.
-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승정은 마신의 경지에 이른 즉신불이다.
- 에도 시대 후기의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의 '하루사메모노가타리'에 수록된 단편 '이세의 인연'과 이를 재해석한 엔지 후미코의 '이세의 인연 습유'의 소재가 되살아난 즉신불이다. 100여 년 전 즉신불이 된 고승이 어떠한 연유[10]로 현세에 부활하는 이야기로, 되살아난 즉신불은 생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오로지 욕망과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11]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 신앙에 회의적인 생각을 품게 만드는 존재가 되고 만다.
- 프롬 소프트웨어의 닌자 액션게임 세키로에서는 선봉사라는 타락한 절의 고승들이 끔찍하게도 '살아있는 즉신불'이 되어 절간 여기저기에 모셔져있는데, 사실 변약수라는 약물을 복용하고 불사의 삶을 얻은 대신 거대한 지네에게 몸을 잠식당한 숙주의 상태가 된 것이다. 초회차 플레이어는 처음 만나는 즉신불 앞에 놓인 표주박 씨앗을 먹기 위해 실수로 건드렸다가, 배경 장식품인줄 알았던 즉신불이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충격에 휩싸이곤 한다.
불사베기가 없으면 체간이나 HP를 다 깎아서 인살해도 계속해서 다시 살아난다[12]. 불사베기가 있는 상태라면 쿠사비마루로 인살 후 다시 불사베기로 재차 인살을 해서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능. 하지만 좋은 아이템은 기대하지 말자.
-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 등장한 시커 도사들이 즉신불과 매우 유사하다. 특히 말라버린 미라에 가까운 모습이나 수행을 하는 자세등이 즉신불과 매우 닮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되고도 100년 후까지 살아있는 사례가 있다.
- 불새(만화)/봉황 편에서 주인공 가오우(我王)의 스승 로우벤(良弁)의 최후로 나온다.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데 어느정도 기여한 로우벤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가오우 곁을 떠나 몰래 즉신불이 된다. 뒤늦게나마 그 모습을 목도한 가오우. 그토록 훌륭했던 스승의 초라한 마지막을 보며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의문을 가진다. 결국 한낱 미물이였지만 세상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 하야메를 떠올리며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죽음에서 언급된다. 1200년 전부터 현재까지 소쿠신부쓰가 된 승려는 24건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 몽환신사에 '미이라의 사랑'이라는 관련 단편이 실려있다.
- 주술회전에서도 료멘스쿠나의 생전 육신[13]이 즉신불과 비슷한 형태가 된 것으로 나온다. 정작 수육한 당사자는 텐겐의 짓인지 아니면 누구 짓인지는 깊이 따지진 않지만 신불이라니 비꼬는 거냐며 자기 시체를 즉신불처럼 만들어놨던 것에 대해선 어이가 없다는 기색을 드러낸다.
4.1. 유희왕에 등장하는 카드
자세한 내용은 육신보살 문서 참고하십시오.4.2. BEMANI 시리즈의 수록곡
자세한 내용은 Sol Cosine Job 2 문서 참고하십시오.[1] 일본 신자체로는 即身仏[2] 현재 일본에서는 즉신불이 자살을 방조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3] 일본어 발음으로는 '소쿠신죠-부츠(そくしんじょうぶつ)'다. DJ TECHNORCH의 곡 Sol Cosine Job 2의 제목이 여기서 유래했다.[4] 영어권에서도 즉신불이 먼저 알려져 용칭이 같을 뿐 일본의 즉신불을 구별해 설명한다.[5] 흔히 알려진 것처럼 초근목피만 먹는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정말로 초근목피만 먹었다면 오래 지나지 않아 영양실조로 승려들이 전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곡식만 먹지 않았을 뿐이지 나무 열매, 나물, 버섯 등으로 식사를 했다. 곡식도 완전히 금한 것은 아니고, 간혹 가다 누군가가 쌀을 시주하는 경우 먹기도 했다고 한다.[6] 에도 시대의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의 '하루사메모노가타리(春雨物語)'에 수록된 단편 이세의 인연(二世の縁)을 소설가 엔지 후미코가 재해석한 '이세의 인연 습유'가 원작이다.[7] 극 초반부에 스님이 산 채로 땅 속의 석관에 들어가 묻히는 장면이 나온다.[8] サム으로 라임을 맞추고 있었다.[9] 습기를 먹으면 몸의 살이 돌아와 도로 부활해 버린다고 한다(...)[10] 원작에 해당하는 우에다 아키나리 버전에서는 고승이 부활한 명확한 이유가 언급되지 않으며, '이세의 인연 습유'에서 작가는 즉신불이 된 고승이 생전에 만족하지 못했던 욕망, 특히 성(性)에 대한 강한 집착과 욕망을 원동력으로 부활한 것으로 해석했다.[11] 이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때 입정(入定)했다가 현세에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뉴죠노 죠스케(入定の定助)'라는 이름으로 불린다.[12] 선봉사 지역 한정으로 이 인살을 반복해 HP를 풀로 채울 수 있다.[13] 정확히는, 료멘스쿠나 사후 영혼이 분리되어 주물화된 시랍 손가락이 없는 육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