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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갈등/유럽/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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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구 동독 VS 구 서독2.2. 바이에른 VS 독일의 나머지 지역2.3. 바이에른 VS 바덴-뷔르템베르크2.4. 프랑켄 지역 VS 그외 바이에른 지역2.5. 동프리슬란트 VS 하노버를 위시한 나머지 현 니더작센 지역들

1. 개요

파일:독일어 방언지도.png
독일어 방언 지도

2017년 독일 연방하원 선거 결과[1]
연방제이고 지역갈등이 있지만, 50개주 모두 서로 미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미국과 달리 지역감정의 수위가 높은 편이다. 구 동독 vs 구 서독 갈등과 바이에른 vs 그 외가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후자는 서로를 독일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이다. 갈등의 수위에 비해 분리독립을 향한 정치적인 움직임은 크지 않다.

2. 상세

2.1.동독 VS 구 서독

1945년 동서 분단이 되었다가 1990년 재통일의 결실을 이루게 되었지만 통일 이후에도 구 동독의 풍습과 구 서독의 풍습간 충돌과 지역간 언어소통과 이념문제의 잔재 등으로 여전히 대부분 상호간의 괴리감과 불신감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동서 분단시절 남아있는 고질적인 사회주의 성향과 자본주의 성향이 충돌하기도 하여서 통일 이후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일부 옛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보고 공산당에 물든 빨갱이들, 사회주의에 미쳤더니 민주주의도 모르는 거지들이라고 비하하고 옛 동독인들도 서독인들에게 자본주의와 돈에 환장한 수꼴들, 부자놈들만 살찌웠던 자본주의의 돼지들이라며 비방하였을 정도였다. 옛 동독인들을 비하해 부르는 오시(Ossis), 옛 서독인들을 비하해 부르는 베시(Wessis)라는 각각의 비하어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남북한과 비슷하기에 남북한에 자주 비견된다. 그러나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비교적 정상적으로 굴러갔지만 북한은 그냥 유사사회주의 신정 국가다. 돌격대를 만들어 무임금으로 사람을 굴리는 북한에서의 경험대로 노동권을 몰라 돈을 받지 않고 일하다가 그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된 탈북민도 존재할 지경이다. # 동독은 애초에 소련 정도를 제외하면 공산권 내에서 가장 경제 사정이 괜찮고 사회도 안정적인 나라였고, 슈타지등 억압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여성 복지나 노동권 보장, 개방적인 성문화 등 북한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진보적인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2] 특히 사회주의 이념에 긍정적인 동독 출신 인사도 북한의 세습제에 대해서는 매우 싫어한다. # 북한은 주민이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돈을 주고 직장에서 빠져 나와 장사를 해서 간혹 많은 돈을 버는 경향이 있는데 김정은이 '비사회주의'라며 싫어하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모습이 있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탈북민은 북한에서 김일성 찬양하던 트라우마를 느껴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

근래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지역기반이 구 동독이라 구 서독지역 사람들이 이를 근거로 구 동독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례도 자주 보인다.역시 뉴라이트처럼 극좌가 극우로 전향하는 사례는 한둘이 아닌듯 하다.

2.2. 바이에른 VS 독일의 나머지 지역

독일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바이에른주로 대표되는 남부 독일과 북부 독일간의 지역감정이 꽤나 강하다.

분데스리가에서도 드러나고[3] 서로서로 아니꼽게 생각하는 듯. 타 지역과 달리, 바이에른 지방의 텔레비전에서는 바이에른 가(歌)를 먼저 연주한 뒤에 독일 국가를 연주한다.

그리고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 의하면, 바이에른 사람에게 독일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대답할 정도라고 한다. 이는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계기로 그를 지지한 북부 독일지역(프로테스탄트)과 가톨릭을 사수하는 남부 독일로 양분된 것에서 비롯된다. 중세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웃 영국이나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왕국으로 통일되어갔지만 독일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틈을 이용하여 프랑스 등은 독일이 통일왕국으로 이루지 못하도록 개별 영주들의 주권을 모두 인정해 주는 바람에 독일은 수백개의 영방국가가 난립하게 되었다. 이후 북동부의 군사 강국으로 부상한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당시 독일에서 프로이센 다음으로 큰 나라[4]였던 바이에른 왕국은 통일 이후 완전 찬밥 신세가 되면서[5] 북부 독일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바이에른 주 사람에게 독일사람이냐고 물으면 자신은 독일 사람이 아니라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6]

2017년의 기사에 의하면 바이에른 주민의 3분의 1이 독립을 원한다고 한다. 격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독립운동을 외치는 카탈루냐나 연방 혹은 국가의회 하원의석을 상당수 점하여 직간접적으로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스코틀랜드플란데런과는 달리 독립을 외치는 독립파정당이 연방의회에 없는 등 딱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 않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플란데런 vs 왈롱 같은 (정치적으로) 격한 지역감정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2.3. 바이에른 VS 바덴-뷔르템베르크

이 지역은 좀 사정이 특이한데 바이에른주는 독일에서도 상당히 경제력이 뛰어난 주로 유명하다. 게다가 한때 남부독일을 대표하는 왕국이었고 주가 된 역사를 따져도 바이에른이 바덴-뷔르템베르크보다도 앞서는 상황일 정도로 바이에른의 자존심은 강한 편. 반면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종교개혁 이래 독일 개신교의 남방한계선을 이루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모든 면에서 바이에른과 맞먹는 만큼 바이에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바이에른 대표로 BMW가 있다면 바덴-뷔르템베르크 대표로는 벤츠가 있다. 과거에는 프로이센으로 대표되는 북부와 오스트리아로 대표되는 남부의 극심한 대립이 있었고, 그 중간지점인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양 국가가 모두 몰락해버린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과 손잡았다 하면 망하기 일쑤라서, 한때는 같은 독일인이라고 했다가도 지금은 굉장히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4. 프랑켄 지역 VS 그외 바이에른 지역

프랑켄 지역은 본래 바이에른에 속하지 않았던 곳이나 바이에른 공국이 프랑켄 지역을 합병하면서 현재 독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바이에른에서는 바이에른 방언이 쓰이지만 프랑켄 지역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2.5. 동프리슬란트 VS 하노버를 위시한 나머지 현 니더작센 지역들

동프리슬란트의 경우 역사적으로 다른 북독일 지방과 달리 도시가 상대적으로 덜 발전해있어 깡촌으로 무시당하던 역사가 있었다. 여기에 언어적, 종교적으로도 주변과 매우 달라서[7] 더더욱 별종 취급을 당하곤 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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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색 지역이 작센이다.[2] 의외로 여성 인권과 성문화에 대한 보수성은 서독이 훨씬 강했다. 동독은 12주 이전 낙태가 허용되었고 누드비치도 보편적이었으며 탁아소도 활성화되어 맞벌이가 쉬웠지만, 서독은 낙태 전면 불법, 기독교 엄숙주의에 탁아소도 부족해 경단녀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통일 논의 당시 가장 반대가 심했던 세력이 바로 동독의 페미니스트 세력이었다. 실제로 사회주의 국가는 남녀 구별 없이 전 인민이 노동하는 사회를 만들고 아이들도 국가에서 사회주의 인민으로 키우자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의외로 중국, 북한, 동독은 국영 탁아소가 잘 되어 있는 반면,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일본, 서독이 탁아소 부족 문제는 더 심하다. 실제로 통일 직후 동독인들의 서독 이주가 가속화되었는데, 안 그래도 서독은 탁아소가 부족한 반면 동독은 인구가 유출되니 서독은 탁아소가 더더욱 부족해지고 동독은 남아도는 탁아소가 문을 닫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졌다.#[3] 바이에른 뮌헨 VS 함부르크 SV라든가 바이에른 뮌헨 VS 베르더 브레멘 등.[4] 바이에른 왕국독일 연방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다음 세번째 강국이었지만 통일을 위한 주도권 전쟁에서 패한 오스트리아 제국은 아예 독일 통일에서 제외되었고, 독일 제국으로 통일되었던 국가 중에서는 바이에른 왕국이 두번째 강국이었다.[5] 통일 후 모든 국가 시스템이 프로이센의 것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황제, 수상도 모두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차지했고 바이에른 왕국은 완전히 배제되었다.[6] 반대로 옛 프로이센 왕국 지역인 브란덴부르크, 작센안할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등에 사는 사람도 바이에른 사람을 독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바이에른의 문화에 대한 동영상을 나머지 독일지역 사람에게 보여주면 화를 내기도 한다. 또한 BMW를 독일의 자동차 회사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BMW 차량 연쇄 화재 사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독일에 관한 문제가 아닌 바이에른에 관한문제인 것 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안전하다.[7] 표준독일어 사용지역인 하노버와 달리 아직도 저지독일어(Platdüütsk) 방언을 쉽게 들을수 있고, 종교적으로는 네덜란드 국경을 접한 특성때문에 독일 개혁교회(Evangelisch-Reformierte Kirche)의 실질적 지주 역할을 맡는 교회가 레어(Leer)에 있다.[8] 다만 이와 별개로 동프리슬란트에 관한 지역드립은 생각보다 늦게 생겨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