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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6 19:45:28

지침국

마한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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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본서기 기록

1. 개요

支侵國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소개된 마한 54개국 중 하나이다. 3~4세기 무렵 백제에 병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일본서기》에서는 397년 8월 백제 아신왕왜국에 예의를 갖추기 않았기 때문에 지침(支侵) 등의 지역을 빼앗고 왕자 부여전지를 볼모로 데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헌 특성상 이 기록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4세기 말에는 지침국이 위치했던 곳이 백제의 소유가 되었음이 확인된다. 이후에는 지삼촌(只彡村)이 되었고,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 웅진도독부가 설치될 때는 지심주(支潯州) 관할 하의 지심현(支潯縣)으로 개칭되었다.[1]

정확한 위치는 불명이나, 《삼국사기》의 웅진도독부 기사에서 지심주의 속현을 나열할 때 지심현 바로 다음으로 기재된 마진현(馬津縣)이 본래 고산(孤山)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같은 지명으로 보이는 고산현(孤山縣)이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침국의 위치 역시 그 근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자 지(支)의 당시 음가가 '기'에 가까웠다는 점을 들어 백제의 기군(基郡)이 위치했던 충청남도 서산시에 비정하기도 한다.

2. 일본서기 기록

百濟人來朝. 【百濟記云, 阿花王立无禮於貴國. 故奪我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 是以, 遣王子直支于天朝, 以脩先王之好也.】
백제인이 내조하였다. 【《백제기》에 따르면, 아화왕(阿花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귀국에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귀국이) 우리의 침미다례 및 현남(峴南), 지침(支侵), 곡나(谷那)[2], 동한(東韓)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직지(直支)를 천조(天朝)에 보내 선왕 때의 우호를 닦도록 하였다.】
일본서기》 10권 오진 덴노 8년(397년)[3] 3월


[1]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실인데, 734년 작성된 〈난원경 묘지명〉에서 백제 유민 난원경의 아버지인 난무가 지심주제군사(支潯州諸軍事)와 수지심주자사(守支潯州刺史)를 역임했다는 대목이 있어 금석문과도 교차 검증된다.[2] 백제의 욕내군(欲乃郡)으로, 곧 전라남도 곡성군을 의미한다.[3] 《일본서기》의 기년을 그대로 신뢰하면 서기 277년이지만, 아신왕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실제 연대는 이주갑인상을 적용한 서기 397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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