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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BC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대에 방영했던 코미디 프로그램. 당시 MBC는 KBS와 치열하게 코미디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KBS가 쇼 비디오 쟈키와 유머 1번지를 내밀었을 때 MBC는 이 프로그램과 일요일밤의 대행진을 내밀었다. 당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주말과 월요일에 연달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반응이 아주 좋았다.[1]
1984년 4월 29일에 청춘만만세라는 이름으로 방영이 시작되었다. 1988년 영구의 등장으로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유머 1번지에 대항하기 위해서 1988년 가을 개편 때 청춘행진곡으로 이름을 바꾸고 MC로 정재환이 기용되었다.[2] 하지만 아래 후술할 1991년 가을 개편 때 SBS의 개국 때문에 주요 출연진들이 대부분 SBS로 넘어 가면서 침체기를 겪다가, 결국 1992년 봄 개편 때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참고로 청춘행진곡의 메인 MC인 정재환도 SBS로 이적하였고 이후 당시에 신인 개그맨들이었던 김종하, 김완섭이 MC를 맡았다가 1992년 초부터 방송인 김승현이 MC를 맡았다.[3]
참고로 이 프로의 시그널 음악은 한 번 바뀐 적이 있다. 초창기에는 이탈리아의 가수인 Righeira
종영 후 2016년부터 MBC Archive를 통해 유료로 다시보기가 가능하나, 자료 관리의 부실 등으로 청춘만만세 초기 회차 등 일부가 누락되었다.
2. 리즈 시절
윤발이라 불리는 사나이, 팝비디오쇼, DJ에게 물어봐, 병팔이랑 갑경이랑 / 병팔이랑 민지랑, 좌우로 정렬, 스타데이트, 청춘교실, 앉아서 얘기합시다,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신부교실 등의 많은 코너들이 인기를 누렸다.80년대 중반 청춘만만세에 출연하는 코미디언들은 매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특집으로 극을 하나씩 만들었는데 주연은 주로 주병진이 담당했다. 청춘만만세 시절에는 주병진이 없으면 프로그램 자체가 진행이 안 될 정도로 주병진의 대중적 인기가 장난이 아니게 높았고, 훗날 일요일일요일밤에로 주병진 인생 최전성기가 되었을때, 일밤에서 청춘만만세 시절의 에피소드 영상을 보여주는 특집을 한 적도 있다. 당시 게스트가 이문세, 보조진행자는 이경규였다. 이경규는 신인시절은 이문세[6], 군복무 이후는 주병진의 영향력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방송회차 내내 두 사람의 놀림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 왜냐하면 그 두사람이 메인으로 나오고 이경규가
1986년 12월 15일에 방송된 청춘만만세 연말특집 '눈물의 웨딩드레스'. 주병진이 신부 살인사건 수사반장, 이경규와 김창준이 후배 형사로 출연했다.
3. 대표적인 코너
- 윤발이라 불리는 사나이
코미디언 박세민이 주윤발과 약간 닮은 점을 이용해서어디가?주윤발의 영화를 패러디하는 내용. 코너 시작 때는 영웅본색이라든지 여러 주윤발 영화 장면들이 나왔으나 이 코너 안에서는 주로 주윤발이 코믹하게 연기한 영화 <대장부 일기>(大丈夫日記 '1988) 를 짜깁기하고 박세민이 코믹하게 더빙했다. 대장부일기가 1989년에 국내 개봉할 당시, 신문광고에 박세민이 <윤발이라 불리는 사나이>에서 나오던 장면(주윤발이 우습게 분장하고 코맹맹이 목소리로 노래부르다가 여주인공들에게 야유와 같이 내던진 온갖 잡동사니에 맞던 부분)을 썼다고 영화 홍보도 한 바 있다.
- 서빌라이
서세원이 쿠빌라이 칸 복장으로 나온 코너. 병사들이 얼레리꼴레리~를 합창하면 서세원이 저음으로 "메~롱"하던 코너였다.
- 지세왕
- 팝비디오쇼
- DJ에게 물어봐
- 병팔이랑 갑경이랑 / 병팔이랑 민지랑
코미디언 최병서와 가수 조갑경이 어린이 분장을 하고 일기를 읽는 형식의 코너. 나중에는 아역배우 최형선[8]을 등장시켜 민지[9]라는 이름으로 연기를 하게 했다. 나름 인기 프로여서 나중에 어린이용 단행본도 나왔다. 병팔이가 읽는 일기에는 항상 병팔이의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병팔이의 아버지가 말하는 부분에서는 최병서의 목소리가 박력있게 변하고 항상 "아니 누가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해?" 라는 대사로 시작한다. 이 코너는 사실 시사 풍자 코너라서 인기가 있던 것이었다.(...) 지금의 영미권 코미디 프로처럼 정치풍자까지 가는 건 아니고 당시 사회상을 어린이의 시각으로 비틀어 풍자했던 것. 예컨대 그 당시 대학가 시위(91년 5월 투쟁)를 보고 "대학생 언니오빠들이랑 경찰아저씨들이 왜 투구를 쓰고 위험하게 돌싸움을 할까?"라는 식.[10] 그리고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이른바 VIP석이라며 특석을 언급하고 있다. 갑경이가 VIP석이라고 언급하자 병팔이가 좋아하지만 갑경이가 그게 뭔지 설명하자 얼굴이 일그러지는 병팔이의 모습이 압권이다.
- 짱구네 집
김병조가 짱구 아버지, 이현주가 짱구 어머니로 출연한 가족 드라마 형식의 코메디. 요즘은 '짱구'가 노하라 신노스케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짱구는 못말려를 연상하기 쉽지만 짱구는 못말려와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
- 좌우로 정렬
김정렬이 당나라에 대항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연합군 교관으로 나온 대체역사 콩트. 영화 황산벌이 개봉하기 14년 전에 나온 삼국시대와 사투리를 결합한 개그였다. 당시 고구려군으로 배영만, 그리고 해골이란 별명의 몸짱개그맨 최왕순[11], 백제군으로 김상호와 이옥주(나중에 이옥주의 SBS이적 후 임종국으로 바뀜), 신라군으로 이하원과 이제포가 출연했다. 마지막은 헌병들(김종하,김완섭)[12] 이 당나라와 내통한 자를 찾는다고 나왔는데 항상 교관인 김정렬이 범인으로 잡혀갔다. 내통 혐의에 대한 변명이라는 게 국제결혼[13], 당나라 땅 투자, 아들의 당나라 유학 등등 여러가지였다. 가끔씩 광고 패러디도 하는데 조정현과 남주희가 출현한 해태 음료 크리미 중 음료 캔을 끼워 주며 "손이 참 예쁘구나"라는 감미로운 장면이 있는데 이걸 이하원과 이옥주가 패러디 하는데 이하원이 "손가락이 아이고 발가락이네" 라고 하기도 했다. 참고로 김정렬의 대표 유행어인 "숭구리당당"은 1987년 청춘만만세의 '예언자 식당' 코너에서 처음 선보였다. 고구려 병사 역의 배영만은 평안도 사투리, 최왕순은 함경도 사투리로 연기했다. 또 당시 히트를 쳤던 이종원의 리복 광고의 의자 넘기를 코너에서 보여 줬고 이소룡 같은 몸매를 과시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 스타데이트
서세원이 연예인을 게스트로 출연시켜서 같이 얘기하는 코너인데 서세원이 91년 가을개편 때 SBS로 떠난 뒤 김보화, 김승현이 진행자로 활동했으나 다음 해 초 종영됐다. 보조MC로 김완선, 심신이 출연하기도 했다.
- 청춘교실
1989년 10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2년 이상 방영된 청춘행진곡의 최장수 코너. 여고를 소재로 선생님 역에는 김창준이, 학생 역에는 박미선, 정재윤, 신경숙[14], 최홍림, 서승만, 김성은[15], 할머니 역으로 김영하 등이 출연했다. 특히 박미선은 이 코너에서 당돌한 여자 기믹의 반전개그를 선보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할머니 역 김영하의 '뻥이야'라는 유행어가 대히트를 쳤던 코너이기도 한데, 심지어 이 뻥할망구 캐릭터는 위에 서술한 병팔이의 일기 코너에서도 교육 당국에서 "저놈의 뻥할망구 때문에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사회풍자를 주로 하던 병팔이의 일기에서 다룰 정도로 사회현상이었다는 것. 실제로 뻥이라는 말 자체는 2020년 현재도 현역이다.
- 앉아서 얘기합시다
정재환이 사회자로 다수의 패널들과 함께 대담을 하는 코너이다. 코너의 제목답게 무조건 앉은 상태에서 이야기해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건 일어서는 순간 퇴장당하는 규칙이 있었다. 물론 사회자도 예외가 없다.
-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정재환이 시청자들의 고민을 풀어나가는 코너.
- 신부교실
이영자의 데뷔작. 이영자 항목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살아 살아 내 살들아~"가 여기에서 나왔다.
- 장군의 손자
당시 흥행했던 영화 장군의 아들을 패러디한 내용으로 김두한의 포지션을 정재환이 담당했고 김상호와 이재포가 오른팔, 왼팔 역할을 담당했다. 매회 굉장히 위험한 임무가 나오며 이를 수행할 지원자를 받는데 당연히 다들 서로 안하려고 별의별 이유를 붙이는게 개그 포인트이다. 이때 김상호의 차례가 되면 정재환과 한동한 눈싸움을 하다가 결국 임무를 못하는 이유를 대는데 이때 대는 이유라는게 항상 "전 ??와는 안친해요."라는 고정대사였다. 마지막 차례는 항상 이재포였는데 앞서 다른 부하들이 말했던 못하는 이유들을 종합해서 자신도 못하는 이유를 만들려고 하는데 결국 기억력의 한계로 다른 부하들이 했던 대사가 생각안나는 나머지 "에이 까먹었다..."라는 대사와 함께 임무에 당첨되는 패턴으로 나갔다.
- 구르몽과 시몬
김은우, 정재환, 김종석 출연.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에서 소재를 따왔다.
4. 프로그램 종영과 출연자들의 행보
KBS의 유머 일번지와 마찬가지로 SBS의 개국 때문에 주요 출연진들이 대부분 SBS로 가며 프로그램의 침체기가 찾아왔고[16] 결국 MBC는 이 프로그램을 1992년 3월 30일에 봄 개편으로 종영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MBC는 한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을 편성하지 않다가 그 해 가을개편 때 오늘은 좋은 날과 웃으면 복이 와요로 코미디를 부활시켰다. 이 중 오늘은 좋은 날이 박명수, 서경석, 이윤석, 조혜련, 이경실 등의 활약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강호동이 연예인으로 전향하고 나서 주로 출연한 프로그램도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한편, 프로그램 종영 당시 출연진들 중에 박세민[17], 이원승[18]은 아예 개그 프로그램 활동을 중단했고 김창준, 김은우[19], 이현주, 이웅호는 SBS로 이적했다. 이들 중 1988년 4월 제2회 MBC TV 개그맨 콘테스트로 데뷔했지만 갑작스런 군 입대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어 온 이웅호는 SBS 이적 뒤 틴틴파이브로 재기에 성공했다. 아울러, 해당 프로그램 종영 당시 남아 있었던 출연진들에 속한 이영자도 93년 말 '오늘은 좋은 날'에서 중도하차한 뒤 SBS로 옮겨갔다.[20] MBC 측에서는 박세민, 이원승, 김창준, 김은태, 이현주, 이웅호, 이영자 등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KBS에서 김국진, 김용만, 조혜련을 영입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코미디언 중 아직도 현역인 인물들로는 이경규, 박미선, 이영자 등이 있다.
이 중에는 프로그램 종영 이후로 행보가 좋지 못한 출연자가 있었는데, 황기순과 서세원이다.[21] 황기순은 프로그램이 종영된 지 5년 뒤인 1997년 4월 필리핀으로 원정도박을 떠났다가 파산했고, 설상가상으로 이혼까지 당하면서[22] 귀국을 못 하고 있다가 이듬해에 지인들의 도움과 정부의 해외 도박사범 사면 조치에 따라 귀국했다. 이 때의 황기순은 얼마나 몰골이 비참했는지 귀국할 차비가 없어서 필리핀에서 계속 구걸하고 있었는데 이봉원이 차비를 대줘서야 겨우 귀국할 수 있었다. 그 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김정렬의 도움으로 2001년 초 지금은 없어진 지상파 방송국 iTV의 코미디 프로그램 '최양락의 코미디쇼'를 통해 방송에 복귀하였고 2005년에 재혼하면서 이후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또 다른 출연자인 서세원은 종영 이후에도 10년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2002년에 마카오에서 원정도박을 한 것도 모자라 횡령, 주가조작, 전 부인 서정희를 폭행한 사건 등으로 사실상 연예인으로서의 목숨이 끊어진 상태로 지내다가 2023년에 링거 투약 도중 쇼크사로 사망했다. 향년 67세.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주병진도 2000년에 강간치상 누명 사건으로 한동안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다만 주병진의 경우는 코미디언 일만 안한다 뿐이지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며 강간 누명 이외에는 아무 구설수가 없는 데다가[23] 속옷 사업이 엄청난 대박을 터뜨려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떠날 당시 이미 엄청난 갑부였다.
[1] 참고로 KBS도 월요일 밤 8시대에 KBS 2TV에 코미디 하이웨이-웃는날 좋은날-한바탕 웃음으로로 이어지는 코미디 슬롯을 편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KBS2의 쇼 비디오 쟈키는 인기가 좋긴 했으나 1980년대 후반이라 일요일밤의 대행진보다는 약간 후대의 프로그램이다.[2] 이때 일요일밤의 대행진도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제목이 변경된다.[3] 이 때 이휘재가 신인 시절이어서 딱 한번 출연하기도 했다. 이휘재가 인기를 얻게 된 건 이 개편 이후 등장한 코미디 동서남북에서 최성훈과 함께 그 유명한 롱다리-숏팔이를 유행시키면서부터이다. 비틀즈의 "O bladi O blada"에 맞춰 "롱다리~ 롱다리~ 롱~ 롱" 하고 부르는 유행어 기믹이었는데, 사실 최성훈은 "타잔이 10원짜리 팬티를 입고~" 의 타잔송으로 인기를 얻었지 롱다리 기믹은 이휘재만 띄워주었다.[4] 카스타드 CM송으로도 사용되었다.[5] 본래 엔딩으로 사용.[6] 방송진행을 많이 한 것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외지만, 이문세는 8090 시기에 MBC 드라마타이즈 개그나 꽁트도 종종 나와서 연기를 했었다. 물론 대스타답게 본인의 점잖은 이미지를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는 정상인 역할을 주로 했으나 마지막 장면에서 망가지고 끝나는 경우는 많았다. 연기도 못하지는 않는 편이나 베이스는 거의다 점잖은 역할 위주였다. 종종 노숙자나 거지 코믹 연기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게다가 당시는 의외로 점잖은 이미지의 스타연예인이 일부러 예능에서 추한 연기로 망가지는 걸, 예술을 위한 희생으로 간주하여 그 스타를 오히려 시청자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높게 쳐 주는 사회분위기가 있어서 이미지 손상이 없었다. 그러니까 당시 이문세가 원로연예인이 아님에도 청춘만만세나 일밤에서 바보나 거지나 망가지는 연기를 하면, 마치 훗날 대배우 이순재가 야동순재처럼 하이킥 시리즈에서 흉한 모습을 보이는 할아버지 역할을 연기해낸 것을 높게 평가하는 것처럼, 진행자들이 웃기보다 발라드 대스타 겸 최고의 진행자가 이런 걸 해내다니 대단하다며 극찬을 했고 시청자들도 그에게 웃긴 이미지를 씌우기보다 존경스럽게 보기도 하고 그랬다. 오늘날과 약간 차이가 있다. 그당시는 희한하게도 망가지고 추해지는 코믹연기(땅에 떨어진 걸 주워먹거나 침흘리거나 오줌싸거나 하는 더러운 연기 포함)를 하는 비코미디언 연예인은 망가지는 만큼 존경받았다. 이보다 훨씬 나중인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의 홍석천조차 커밍아웃 전 여성스러운 남자인 쁘아송 연기를 했을때도 게이설이 있긴 했지만 의외로 파급력이 약해 믿는 사람이 매우 적었고, 그 이미지보다 "남자다운 사람이 극을 위해 여성스럽게 연기하며 망가진 대단한 연기자일 것이다"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7] MBC 코미디언 족보는 구봉서>이주일>배일집>김병조>강석>이홍렬>주병진>이용식>이경규=김정렬=김혜영>최병서=황기순=김창준=이원승>김상호>이경실=정재윤=김성은>박미선>서승만>이영자=이휘재>서경석=이윤석=박명수=강호동=홍기훈>김진수=정준하>정성호>이혁재>전환규 이런 식이다.[8] 1981년 서울 출생. 1987년에 CF 모델로 연예 활동을 시작하여 같은 해 KBS1 <TV문학관> '생명채집'을 시초로 연기에 입문했고, 이후 MBC 미니시리즈 <사랑과 야망>, <상처>, <조선왕조 오백년: 파문>, <배반의 장미> 등지에 나오면서 점차 입지를 다졌다. 예능 활동도 활발해서 <청춘행진곡> 외에 <코미디 세상만사(MBC)>의 코너 '꼭지네 집'에 출연하거나 어린이 프로 <파란마음 하얀마음>, <즐거운 꼭두나라>에서 MC 활동도 했으며 동요/구연동화 음반도 냈다. 1992년 이후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으며, 1996년 2월 8일 <그 사람 그후>와 2000년 7월 21일 <뉴스&정보 피자의 아침>에 따르면 학업에 전념했다고 나왔다.(이하 1991년 경향신문 기사, <피자의 아침> 방송내용 참고)[9] 당시 인기 있던 김수현 극본의 주말 드라마 배반의 장미에서 최형선이 맡았던 배역 이름.[10] 여담으로 지금은 민주화가 되고 그 당시 사회상에서 왜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야 했는지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저 당시에는 여전히 방송에서 저런 소재를 언급조차 하기도 힘들었다. 나름대로 풍자한 게 병팔이와 민지랑 같은 코너나 MBC라디오 싱글벙글쇼의 서울공화국 같은 수준이었다. 실제로 최병서는 청춘행진곡 이후 코미디 동서남북 같은 데서도 박정희 분장을 한 재연배우와 함께 정치군인으로 나와서 사회풍자를 하다 코너가 잘리기도 했다. 현재 최병서 본인의 정치성향을 생각해 보면 세월이 바뀐 건지 사람이 바뀐 건지...[11] 당시 분위기는 전두환 체제였고 때려잡자 북괴 분위기라 피골이 상접한 개그맨들을 고구려 병사로 캐스트 했다.[12] MBC 개그맨 공채 2기 출신들이다. 둘다 준수하고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다.[13] 당시 김정렬이 중국 화교와 결혼을 해서 코너 막간에 중국말로 숫자를 세기도 했다.[14] 이 코너의 '뚱녀' 캐릭터로 KBS의 이경애와 함께 뚱뚱한 여자 기믹 개그우먼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지만 92년 이영자가 등장하면서 사실상 방송에서 사라졌다.[15] KBS TV 유치원의 '깔깔마녀'로 유명하다.[16] SBS에서 이 때 신설되었던 프로그램이 '코미디 전망대'였다.[17] 사실상 박세민이 개그맨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여기까지였으며 이후에는 본업인 개그 프로그램 활동 끝냈다. 현재는 제작자로 전향. 그러다가 2017년에 방송에 복귀하였다.[18] 이원승은 종영 후 한동안 연극판에서 활동하다 1997년 KBS2 도전 지구탐험대의 이탈리아 편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대학로에 나폴리 피자 전문점 '디마떼오'를 창업하였고 현재도 CEO로 활동하고 있다.[19] 밴드 레드애플 효석이 아들이다.[20] 이영자는 이 때 이적한 SBS에서 버스 안내양 코미디 "영자의 전성시대"를 선보였고, 슈퍼모델이던 홍진경을 코너에 영입하여 예능인으로 발굴해냈다. 이런 인연으로 현재도 이영자와 홍진경은 나이를 뛰어넘은 절친이다.[21] 황기순은 이미 이 프로그램이 종영될 즈음부터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22] 공교롭게도 이 사례가 훗날 나훈아의 유부녀 불륜과 얽히기도 했다.[23] 최양락 사건은 주병진이 아닌 최양락쪽 구설수인데 최양락이 대놓고 주병진을 빡칠때까지 어그로를 끌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