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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colbgcolor=#00664F><colcolor=#fff> 제7대 창신대학교 총장 최경희 崔京姬 | Choi Kyung-he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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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5월 24일 ([age(1962-05-24)]세) | |
대구광역시 | ||
재임기간 | 제7대 창신대학교 | |
2025년 2월 17일 ~ 현재 | ||
학력 | 남산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 /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 석사) 템플 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 석사) 템플 대학교 대학원 (과학교육학 / 박사)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대학원 (경영학 / 최고경영자) | |
경력 | 용산여자중학교 교사 창덕여자중학교 교사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처장 대통령직속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 (참여정부) 이화여자대학교 연구처장 및 산학협력단장 한국환경교육학회 회장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장 제15대 [[이화여자대학교/역대 총장|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제7대 창신대학교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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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사 출신 교육인. 학교법인 우정학원 제7대 창신대학교 총장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하셨으며, 재임기간 동안 교육부 지원사업 시행등의 탁월한 교육행정능력을 보여주었으나, 정부 사업 유치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과의 마찰이 발생하였으며, 이후 2016년 10월 19일에 최순실의 딸 정유라 입학비리 의혹 및 출석 학점 특혜의혹 등으로 인해 사임했다.
2. 행적
1962년 5월 24일에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태어났다. 1981년 대구 남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에 입학하여 1985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1985년 3월부터 1989년 7월까지 서울 용산여자중학교와 창덕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1987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미국으로 유학 가서 1991년 미국 템플 대학교 물리학 석사, 1994년 미국 템플 대학교 과학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모교로 돌아와, 1994년 9월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 뒤로 2002년 9월 강의우수교원, 2009년, 2010년, 2012년, 2013년에 연구비 우수교원으로 선정되었다. 2002년 6월 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2012년 11월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2013년 6월 근정포장을 받는 등 교외에서도 각광받는 교수였다.
2005년 4월부터 2006년 6월까지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처장으로 일하였다. 임기를 마친 후 2006년에는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교육문화비서관으로 들어가 일하였다.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시절 2년 동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여수 엑스포 유치 등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전임 김진경 비서관과는 달리 참여정부 교육정책 기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교육정책을 시행했고, 새로운 교육개혁을 실천할 실력이 워낙 부족했던 탓에 행정관에 휘둘리고 상황에 휘둘리다 임기가 끝났다"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1]
2010년 8월부터 2012년 7월까지는 이화여자대학교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2013년 2월부터 2014년 7월까지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장을 역임하는 등, 2010년대 내내 줄곧 교내 보직에 있었다.
2014년 8월 제15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이공계 출신이 이화여대 총장이 된 것은 처음이었는데[2], 이는 당시 ‘산학협력’ 등에 박차를 가하던 학내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그때 마침 이화여대는 벨기에의 화학기업인 솔베이 그룹과 손잡고 산학협력관을 설립하는 등, 이공계 방면으로 산학협력을 확대하는 데 대학의 명운을 걸고 있던 참이었다. 최 총장은 일찍이 이화여대에서 산학협력단장을 맡아 산학 관련 프로젝트를 훌륭히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쌓은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도 총장 선임에 주효하였다.
또한 취임 당시 52세의 나이로, 1979년 이후에 선출된 이대 총장 중에서 최연소이기도 하였다. 교수 정년인 만 65세를 감안하면 무려 3번이나 연임이 가능할 정도. 일각에서는 이화여대가 장기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젊은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나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는 LINC사업, 프라임 사업등에서 볼 수 있듯 문과/예체능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강했던 문과에 비해 이공계가 약했던 이화여대로서는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 학교체질을 개선해야 할 필요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젊은 나이에 총장이 되고 보니 총장 취임 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그래서 언제나 무리하게 사업을 끌고 나갔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총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의대·공대를 키워서 2020년 세계 100위권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마곡지구에 2018년 완공예정인 제2부속병원을 짓고 첨단자동차로봇공학과, 식품영양-외식산업 등 신산업융합대학을 신설해 종합대학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대에 오면 무조건 해외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 일단, 선임이었던 김진경 전 비서관이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으로 사학법 개정, 교육양극화 해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이력을 가진 최 총장의 발탁에 의문이 일었다. 최경희의 비서관 선임 이후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상당히 바뀌었는데, 당시 최경희는 관료들의 주장에 그저 끌려다녔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김용일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새로운 교육개혁을 실천할 실력은 없으면서, 학연과 지연으로 요직을 차지하는 데 눈먼 이들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이 정책 결정 과정에 오랜 기간 전문성을 축적한 관료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당시 참여정부 관계자 역시 어느 인터뷰에서 "최 총장은 참여정부 교육정책 기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교육정책을 시행했다." "이미 교육혁신위원회가 힘을 잃은 상태에서 행정관에 휘둘리고 상황에 휘둘리다 임기가 끝난 것으로 안다." "당시 교육문화비서관을 했을 때도 허점이 많이 보였는데, 이대 총장에 취임했을 때도 의외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관련 기사[2] 제11대 장상 총장이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긴 했다(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 그러나 장상은 졸업 후 신학(개신교)을 공부하여 신학자가 되었다. 자세한 것은 장상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