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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증조부 최승현 · 조부 최병규 · 아버지 최영섭 | ||
20대 대선 |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열린캠프 | ||
사건사고 | 월성 원전 감사 논란 | ||
기타 | 비판 및 논란 · 별명 |
<colbgcolor=#000><colcolor=#ffffff> 최병규 崔秉圭 | |||||
출생 | 1909년 1월 2일 | ||||
강원도 평강군 고삽면 서하리 상옹동 94번지 (現 강원도 세포군 서하리 상옹마을) | |||||
사망 | 2008년 7월 26일 (향년 99세) |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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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 주봉(朱峯) | ||||
부모 | 아버지 최승현 1887 ~ 1953 (향년 66세) 어머니 밀양 박씨 1896 ~ 1970 (향년 74세) | ||||
형제자매 | 3남 4녀 중 둘째 | ||||
배우자 | 이상현 | ||||
자녀 | 장남 최영섭 1928.4.2 ~ 2021.7.8 (향년 93세) 차남 최웅섭[2] 삼남 최호섭[3][4] | ||||
학력 | 평강공립보통학교 (졸업) 관립춘천고등보통학교 (퇴학 / 명예졸업)[5] | ||||
종교 | 무종교 → 개신교 (예장통합)[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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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영섭의 아버지이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조부로 본래 독립운동가로 알려졌으나, 동작문화연구소 및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독립운동가로 행적을 조작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받았다.2. 생애
1909년 1월 2일, 강원도 평강군 고삽면(현 강원도 세포군)에서 아버지 최승현(崔升鉉)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재근(朴載根)의 딸 사이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춘천고등보통학교에 1회로 입학했다. 1938년 처자식과 함께 만주 해림현(海林縣)[7]으로 건너가 조선인거류민단 대표를 맡았다.광복 직전인 1944년 만주에서 고향 평강군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도중 이북 지역이 소련군에게 점령당하고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재산을 전부 몰수당하자 1947년 가족을 이끌고 월남한 이후 1984년, 강원도 독립운동사에 대한 책인 평강군민회 군지를 집필했다.
2002년에는 미수복강원도평강군민회의 고문으로서 '투철한 국가관과 통일 애향의 사명감으로 군민회 조직 활성화 강화에 앞장섰다'라는 이유로, 표창을 받았다.#
2008년 7월 26일 사망한 뒤 경기도 의왕시 학의동 선산에 매장되었다.
3. 행적 조작 및 친일파 의혹
2021년 8월 5일,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김학규가 인터넷 언론사인 오마이뉴스를 통해 최병규의 행적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근거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평강 출신의 최병규가 없고, 최병규의 아버지 최승현이 교사 출신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로 11년 근무했고 이후에 평강군 유진면 면장을 지냈다는 것, 아들인 최병렬과 최병규도 젊어서 면협의회 의원과 강원도회 선거를 했었고, 최승현의 환갑 잔치 비용을 아껴 국방헌금에 자진 헌납했으며, 만주국 행정체계 속에서 일제의 신임을 얻은 조선인이 얻을 수 있는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는 점이다. 기사에서는 이런 행적이 최영섭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 최승현에 대한 서술이 없고 만주 시절 서술이 매우 짧은 이유로도 추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겉으로 성실한 황국신민인척 하면서 뒤로 독립운동 세력과 통해왔던 것이면 모아서 건네줬다는 독립운동 자금이 어느 독립운동가에게 흘러갔는지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썼다.
또 최영섭의 회고록에는 최병규가 2002년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나 훈장은 수여받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실제로는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8월 6일, 최재형 캠프의 공보특보단은 부친 최영섭씨가 회고록을 쓸 당시 표창 사유에 대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조부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은 분명하다, 최병규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동과 최재형 후보에 대한 음해를 멈춰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8월 12일,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최재형 후보의 증조부인 최승현이 1932년 10월 1일자로 '국세조사기념장'을 수여했음을 확인했고 상훈 이유는 불명이지만, 통상 기념장은 일제 통치의 적극 협력자에게 내려지는 상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최재형 후보의 조부 최병규에 관해서는 "조부가 춘천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당시 일제에 맞서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퇴학을 당하는 등 독립운동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민족문제연구소 "최병규가 참여한 동맹휴학 사건은 여태까지 항일운동으로 인정된 사례가 없다"면서 "백번 양보해 항일로 인정하더라도 최병규의 20대 이후 행적은 친일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최재형 캠프 측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어떤 자격과 근거로 친일이냐 아니냐를 재단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조부 최병규의 독립운동은 지역 언론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같은날 입장을 바꿔 조부와 증조부의 이러한 행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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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운부정공파 34세 병(秉) 항렬.[2] 대한민국 해병대 대령 전역.[3] 대한민국 해군 부사관 전역. 현재는 한국해군협회 미국 서부회장 직을 맡고 있다.[4] 최병규 본인이 아들들의 이름을 지을때 영웅호걸 글자 중 하나에 '섭'을 붙여 지었다.[5] 제1회 학생으로 입학했으며 한국인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일본인 교무주임 하야시 히로미에 대항해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졸업을 앞두고 퇴학당했고 퇴학 당한지 73년 만인 1999년 2월 12일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다.[6] 원래 종교가 없었지만 2005년 3월 26일 신촌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7] 현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하이린(海林)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