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1-29 23:38:11

탈모 갤러리

탈모갤에서 넘어옴
1. 개요2. 탄생 및 분위기3. 저주글들4. 탈모갤 3억 내기5. 관련 문서

1. 개요

링크
학술 영역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로, 탈모에 대한 고민이나 경험담 등을 다루는 갤러리이다. 약칭은 탈모갤 혹은 탈갤이다. 아래 짤방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6단어 소설로 알려진 것과 맥락을 공유한다.
파일:XuukMqA.jpg

2. 탄생 및 분위기

2013년 12월 생성되었으며 탈모로 인해 고민하는 탈모인들의 고민글, 치료제 처방 경험담 같은 것들이 주로 올라오지만 간혹 탈모인들을 놀리는 분탕종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탈모갤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는 다음과 같은 용어들이 있다.
파일:external/goos.wiki/680px-%EB%AF%BC%EB%91%90%EB%85%B8%EC%B4%9D.jpg
또한 탈모갤에서는 '탈모'와 관련된 글이다 싶으면 몰려드는 성향이 있는지라, 아래와 같은 일들도 일어난다.

3. 저주글들

파일:탈모빔.jpg
파일:external/img.gaedrip.kr/e79dab12acdff0b3c323345b50ca413e14f60e036017eb2a1ca1a7a9.png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22948374oqpVL1aWHyo6iiJNjBWwMa3C.jpg
파일:pUtjxjr.jpg
탈모갤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탈모갤에 올라온 '저주글'들이 여러 사이트들에 올라오면서부터이다. 사실 저주글들은 디씨 여타 갤러리 뿐 아니라 수많은 사이트들에 일상적으로 올라오지만, 징징이김광규라는 뜬금없는 주제와 탈모갤러들의 처절한 댓글 달기가 인상을 남겨 이젠 아예 탈모갤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정확한 역사를 알 수는 없으나 15년 5월 말 기준 탈모갤에서의 유행도는 꽤나 자주 올라오는 꾸준글 급이다.

파일:야무치가 압도적 손해.gif
그리고 탈모갤 공식 금지 짤은 이것이다.

이말년 서유기 67화에도 탈모갤 저주글이 나왔다. 대상은 압룡동 구미호 노마님. 주호민의 혼을 실은 댓글 "썩 물러가라!! 사악한 요괴야!!!!!!"가 나왔다.

4. 탈모갤 3억 내기

발모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 대표와 유식대장 사이의 술자리 논쟁으로 벌어진 발모제 임상실험 내기. 뉴스로도 나왔다.

사건은 2014년 1월 초 강남구 신사동에서 지인 소개로 술자리를 가진 유식대장과 박 대표는 발모제의 효능을 두고 논쟁을 벌였는데. 박 대표는 "우리 발모제를 21일만 바르면 누구나 효과를 본다"고 주장했고 유식대장은 "그동안 숱한 발모제를 봤는데 머리카락이 났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반박해 공개적으로 내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내기 방식은 탈모갤에서 신청을 받은 인원 중 무작위로 100명을 선정해 발모제 제품을 사용하게 한 뒤 21일 후와 42일 후에 각각 머리카락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 인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승패를 나누는 조건은 체험자 100명 중 95명 이상이 효과를 보는 것으로 했다.

내기를 못 믿겠다는 디시인들 때문에 박 대표는 현금인증까지 했지만, 76명 중 21명이 효과를 보았고 결과는 유식대장의 승리로 돌아갔다.

다만 내기 결과 공지글에서 보듯 유식대장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가 아니라 람보르기니 엔진을 얹은 아우디[4]를 받았는데. 람보르기니 가야르도가 단종되었고 제대로 사용/응답하지 않는 신청자들 때문에 어차피 100명 중 95명이 나올 수 없는 구조여서 람보르기니를 달라고 하기 뭣했다고 한다.[5]

5. 관련 문서


[1] 헤밍웨이가 6단어로 사람을 울릴 수 있다고 내기한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의 패러디이다.[2] 여담으로 아이티의 정당 "아이티 민당"도 대머리를 의미하며 민주당이 아니다.[3] 심지어 이 날은 치과의사단체에서 임플란트 보험적용으로 이재명 지지선언을 한 날이었다.[4] 실제 1세대 R8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V10 모델은 가야르도의 엔진을 디튠해서 얹었다. 2세대 R8 역시 가야르도의 후속인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기반으로 해서 출시되었다.[5] 그러나 확률로 따져도 95/100의 성공률보다는 낮게 나왔다. 물론 당시에는 76명 중 21명 효과를 본 정도면 꽤 상당한 효과로 봤기 때문에, 본 글의 댓글 반응과는 달리 발모제 효능 홍보 및 인지도 측면에서도 서로 윈윈이었다고 한다. 유식대장이 내기에 응한 것도 숱한 발모제 중 머리카락이 실제 났다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할 만큼 브랜드를 불문하고 발모제의 인지도는 정말 바닥을 치던 때다.[6]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사과는 쿨리지를 말리지 못한 당시 상무장관이자 바로 다음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