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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22:24:00

김유식

유식대장에서 넘어옴
<colbgcolor=#4b59a7><colcolor=#fff> 디시인사이드 설립자 겸 대표이사
김유식
金裕植 |Kim Yusik
파일:서버 안 사는 사람.jpg
출생 1971년 2월 17일 ([age(1971-02-17)]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풍납동
(現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양친, 배우자 박유진, 슬하 2녀
학력 서울풍납초등학교 (졸업)
풍납중학교 (졸업)
서울한영고등학교 (졸업)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 경영학 /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 / 학사)
한양사이버대학교 대학원 (IT MBA / 석사)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경영학 / 박사)
신체 175cm, 80kg, A형
종교 무종교
MBTI INFJ[1]
별명 숲윾싀, 윾싀머튽(김유식, 유식대장)

1. 개요2. 생애
2.1. 창업 이전2.2.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횡령 사건3.2. 동물 학대 방조 사건
4. 성향
4.1. 디시 내 활동
4.1.1. 2000년대4.1.2. 2010년대4.1.3. 2020년대
4.2. 만두 마니아4.3. 정치 성향4.4. 주식4.5. 걸그룹 덕후4.6. 김유식 대표 에세이
5. 저서 및 칼럼
5.1. 김유식 칼럼5.2. 저서
6. 여담
6.1. 심형래 닮은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디시인사이드의 설립자 겸 대표이사 사장이다.

커뮤니티 내에서는 보통 '유식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2]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야민정음의 영향을 받아서 '숲윾싀머튽'(유식대長)이라 불리기도 한다.

2. 생애

2.1. 창업 이전

서울신문에 재직하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당시 PC 자체가 국내에서는 생소하던 80년대 초반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에 전산 학원에서 처음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청소년기 내내 컴퓨터와 게임에만 몰두하게 되는 오타쿠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때 게임을 통해서 일본어를 배운 적도 있어서 일본어에도 능통해졌다고 한다.

하이텔의 전신 케텔에서부터 PC통신에서 활동하기 시작, 90년부터 하이텔 '김유식의 횡설수담'이라는 코너에서 당시 짤막한 시리즈 유머가 대부분이던 시절에 독특한 형식의 유머 글로 큰 인기를 끌어, 하이텔에서 김현국(PC Tools)과 쌍벽을 이루는 네임드가 되었다. 당시 올렸던 유머 글들은 후에 '김유식의 원조 횡수'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군 제대 후인 92년도부터는 하이텔에 '팝니다'라는 코너를 열었다. 이곳에서 그는 용산전자상가의 지인을 통해 도매가로 싸게 사들인 컴퓨터 부품을 남성 유저가 많은 PC통신에 여자 이름으로 올리는 넷카마 상술로 판매해 돈을 벌면서 처음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경쟁 업자들이 늘어나자 힘들어진 그는 이 사업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93년 컴퓨터 네트워크를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일본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 경영과에 입학했으나 네트워크 인프라가 한국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실망해 1년 6개월 만에 학교에 관심을 끊었다. 한때는 아예 그만뒀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어찌저찌 졸업은 한 모양. 돈벌이로 눈을 돌린 그는 일본 전자 제품을 사서 PC통신을 통해 한국에 판매하다가 일본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팔기 시작했다. 이를 동경유학생정보센터, 줄여서 동센이라 불렀다.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이런 물건들을 구매하려면 보따리상을 통해 흘러 들어온 것을 발품을 팔아가며 구해야만 했고, 해외에 거점을 두고 인터넷으로 직구를 중개하는 사업가는 매우 드물었다. 덕분에 이 사업은 성황을 이루었고 김유식은 유학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평균적으로 한 달에 약 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벌었다. 주요 대기업 대졸 신입 사원의 연봉이 평균 1500만 원 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나름 잘 버는 회사원의 1년 치 수입을 김유식은 한 달 만에 벌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4월, 8억여 원의 판매고 중에서 LD 한 장이 문제가 되어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야동을 팔아서 디시인사이드를 세웠다'는 소문이 여기서 나왔다. 당시 적발된 LD는 음란물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인 무사 쥬베이(수병위인풍첩)였다고 한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CD 등을 판매하던 업체는 그 특성상 저 죄목으로 많이들 잡혀 들어가곤 했다. 김유식의 적발 기사는 현재도 확인할 수 있다. 한겨레 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

25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뒤 풀려난 그는 하이텔 횡설수설 동호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할 일 없이 인터넷만 하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북한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와 방송 3사의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근거로 이 사건이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성 글을 하이텔 횡설수설 게시판에 올렸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의해 검거되어 보안분실에 연행된 적이 있었다.

실컷 취조를 당한 후 어쨌건 무사히 나오긴 했는데,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PC통신에 '대공분실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하나 이후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겁이 난 나머지, 영국으로 도피 유학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는 영어나 배울까 해서 갔는데 배우기는커녕 도박에만 빠져서 호텔 카지노만 매일 출근하다시피 드나들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PC통신에 연재했던 '대공분실 이야기'는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에 게재되어 있다.

파일:external/img.khan.co.kr/16_a.jpg
영국 유학 시절 사진들.[3]

1997년 빈털터리가 되어 귀국 후 자신의 일본 체류 경험을 살려서 책을 냈다. 《일본인과 성문화》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출판사인 학영사가 인세를 지불하지 않아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한다.

2.2.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

1999년 7월 하이텔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회사로 출발, 초기 직원 3명에 단칸방에서 디지털인사이드를 시작했다. 이후 디지털인사이드는 디시인사이드와 노트북인사이드 두 개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창업 이후 디지털카메라의 인기가 날로 높아짐에 따라 디시인사이드의 유저 유입이 폭증, 2000년 3월 법인으로 전환하고 점점 사업 규모를 늘려서 한때 국내에서 가장 큰 디지털카메라 공동 구매 사이트가 되었다. 노트북인사이드(NB인사이드)도 운영하였으나 2008년 초에 타 회사에 매각하였다. 현재 입장에선 디카는 완전히 몰락하고 노트북은 근 10년간 최전성기를 맞고 있기에 아이러니할 따름. 노트북인사이드는 2000년대 초중반 이후 몰락하여 김유식이 반쯤 애정으로 운영하는 수준에 그쳤고 2010년에 문을 닫았지만, 거기서 서식하던 유저들은 디시인사이드 노트북 갤러리에 이주했다는 말이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DC는 원래 디지털 카메라(Digital Camera)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디지털 콘텐츠, 디지털 커뮤니티, 디지털 커머스라는 뜻도 담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및 주변 기기를 취급하며 기업 간 거래와 광고·홍보, 이벤트 대행, 디카 초보자들을 위한 촬영 강좌, 출사[4], 자체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디시뉴스를 통한 정보 제공 등도 했었다. 지금이야 중앙일보와 같이 운영하지만 당시에는 딴지일보처럼 자체적인 언론사 기능을 했다. 물론 주 내용은 디카와 같은 정보 기기 관련 뉴스.

2010년대 들어서는 디시에서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없애고 커뮤니티 사이트로서의 역할로 완전히 전환했다. 디카 판매 글은 사라졌고, 일부러 관련 갤러리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디카의 D 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본래 갤러리 자체가 디카로 찍은 사진 등을 공유하는 데였다 보니, 디지털 카메라 갤러리 같은 건 마갤로도 없다. 오히려 필름 카메라 갤러리가 있는 상황. 뉴비들 중에는 디시인사이드가 사실 '디지털카메라 인사이드'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디시인사이드의 보다 자세한 역사는 디시인사이드/역사 문서에서 알 수 있다.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외치며, 솔로였던 수많은 디시인들로부터 솔로들의 큰 별로 불리었으나 2005년 3월 20일 34세의 나이로 디시뉴스 관리 직원이었던 박유진(당시 27세) 대리와 결혼해 수많은 디시인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았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3.1. 횡령 사건

{{{#!wiki style="display:inline-table; margin:-10px"<tablebordercolor=#4a56a8>파일:디시인사이드 심볼.svg파일:디시인사이드 로고 닷컴포함 흰색.svg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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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edf1ff,#000>~2004<colbgcolor=#fff,#1f2023>병욱 대첩 · 을용타 · 여옥대첩 · 갑신왜란
2005서민정 탁탁탁 사건 · 연예인 X파일 유출사건
2006린든 사건 · 프리게이트 사건 · 웃대 곤갤 테러 사건
2007일오 대첩 · 다빈치코드 사건 · 클릭 잘못해서 입대 · 두타스님 사건 · 다크서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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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는 150억 원의 투자를 받았고, 이를 이용하여 2006년 11월, 코스닥 상장 회사인 아이씨코퍼레이션을 320억 원으로 인수했다. 전형적인 우회 상장이다. 그러나 이후 아이씨코퍼레이션의 또 다른 대표이사와 부사장이 대형 횡령을 저지르며 캐나다로 도피하였고 이 과정에서 김유식도 대표이사 자리를 이용해 수차례 횡령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면서 2009년 10월 8일 특정경제 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 되었다. 이후 넉 달간의 서울구치소 생활을 마치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관련 기사. 특가법상 양형 재량 없는 형기 2년 6개월로 검사의 구형대로 나왔다고 한다.

김유식 본인은 집행유예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서 부인과 농담 따먹기 하고, 강원랜드에서 도박도 하는 등 여유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법정 구속 될 때는 자기 형기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역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된 강의석이 수형 생활에 대해 온갖 불만을 토로하며 징징거리자 직접 저 4개월간의 서울구치소에서의 수형 경험을 강의석과의 설전에서 써먹었다. 그 상황을 캡처한 사진 파일이 강의석 항목에 있다.

직원이 올린 글과 판결문에 보면 김유식은 개인적으로 한 푼도 착복한 일이 없다고 되어 있다. 개인적인 이익이 없다는 것이지, 횡령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를 오인해서 간혹 무죄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판결문에는 대표이사 자리를 악용해서 수차례 횡령을 저질렀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판결문에는 김유식이 기망과 협박에 의해 해당 범죄에 가담하였으며,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는 내용도 분명히 적혀있다.

2010년 1월 13일 디시에는 수감 중인 김유식의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김유식 탄원서명 갤러리'가 개설되었다. 유식대장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디시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서명을 벌였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감형이 확정, 2010년 1월 28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재판부에서는 횡령 금액 가운데 상당 부분이 회수되었으며 상호 합의가 된 점, 그리고 개인적으로 착복한 금액이 없는 점, 기망과 협박에 의해 범죄에 가담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한다. 디시 내에서는 재판부가 '소녀시대 2집 발매에 맞춰서 석방해 준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왔다.

그리고 횡령으로 판결받기 전에, 구 주갤횡령을 저지르세요라는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김유식 본인은 개드립 파라다이스 첫 장에서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후회한다."라면서 저질렀다가 후회만 남겼다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이전 행적에서 알 수 있지만, 크게 뭔가 해보려고 페이퍼 컴퍼니도 몇 개씩 만들고, 구속되기 이전에도 200억 원 이상의 빚을 지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폭풍 같은 활동 중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디시 대장답다.

2020년 12월, 디시뉴스의 김유식 인터뷰에서 튄 대표가 2020년만 지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처벌받지 않았는데, 그 대표가 중동에서 인천을 경유하는 홍콩행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잡혔다고 한다. 관련 기사 다만 이는 김유식이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피의자가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해외로 도피하면 공소시효가 정지된다(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 아무리 도피 생활을 오래 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셈. 현재 재판 중이며, 형량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고 한다. 1심은 징역 4년이 나왔다. 아마도 밀항을 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출국한 기록이 없고 국내에서 도피 생활을 했다고 우기면 공소시효가 완성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물론 경찰이 그리 만만한지는 모르겠다.

이후 2023년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디시인사이드 횡령 사건 당시였던 시점 사외이사 행적이 밝혀져 이후 논란이 다시 화두에 오르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3.2. 동물 학대 방조 사건

2022년 2월 15일 김유식 대표가 동물 학대 방조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동물사랑실천협회(케어)가 야옹이 갤러리 등에 올라온 동물 학대 사진/영상 등을 대상으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 23일에 수사를 맡은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김유식을 소환하여 조사한 결과, 해당 디시 게시물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IP로 밝혀져서 국내 수사로서는 어렵게 되어서 책임자인 김유식을 불송치시키고 수사도 중단하였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관련 기사 댓글에는 김유식을 지지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댓글들이 달리면서 케어에 대해서는 죄 없는 사람을 왜 고발했냐, 동물만 소중하고 사람은 중요하지도 않냐며 비난을 퍼붓는 댓글이 달렸다.

4. 성향

4.1. 디시 내 활동

은근히 디시 이곳저곳에 그의 이름을 내걸고 댓글을 달거나 게시물을 쓰면서 활동하는 등 내부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으며, 이 때문에 갖은 삽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디시의 큰형님이기 때문에 시비 걸다가 방법당한 회원도 있다고 한다. 시비를 건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소녀시대 갤러리에서 껄떡대는 걸 아내에게 꼰지른 디시인사이드 3대 유저 중 한 명인 다빈치 코드를 3년 차단 먹여버렸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이게 정확히 맞는 정보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현재 대표 에세이에 올라온 댓글을 보면 그는 다빈치 코드를 차단한 적이 없으며, 디시에 3년 차단 같은 것은 없다고 본인 스스로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개설에 개인적 취향을 많이 반영시키기도 하고 아래 언급하는 횡령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기도 했으나, 디시 대부분에서는 여전히 유식대장이라 부르며 좋아하고 있다.

4.1.1. 2000년대

4.1.2. 2010년대

4.1.3. 20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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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근첩 김유식-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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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전문과 해당 댓글}}} || 후속 댓글 ||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가 쓰는 아재 말투를 두고 유입에게 근첩이냐는 말을 듣는 수모를 겪기도.[5]

4.2. 만두 마니아

파일:T3zAsR3.jpg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만들어준 김치만두를 먹고 자란 탓에 김유식은 만두, 특히 '김치 왕만두'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03년부터는 만죽대장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으며, 굽시니스트 역시 그를 만두 머리 캐릭터로 표현한 적이 있다.[6]

그래서 누군가가 갤러리를 신설하고 싶으면 그에게 만두 한 박스를 조공으로 바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며, 이를 흔히 만두조공이라 표현한다. 실제로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는 만두를 디시 본사로 반입한 끝에 개설되었으며, 엘소드 갤러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2008년까지만 해도 갤러리 하나 만드는 데 참으로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데, 특히 남자 연예인 갤러리의 경우 수많은 사람들이 짤방까지 동원해서 애원해도 안 들어주는 바람에 만두 조공을 통해서 겨우 갤러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7] 2009년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갤러리를 잘 만들어준다. 만두까지 조공하면서 갤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이 새삼 불쌍해 보여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물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갤 만들어진 당시에만 활동하고 식어버려서 정전갤(속칭 잉여갤)이 돼버린 갤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하지만 만두만 바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유입률이나 그에 따르는 광고 수익도 중요하기 때문에 만두 조공으로 갤러리가 무조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메탈 갤러리는 디씨 외부에 개인 사이트로 생기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다만 상술한 바와 같이 디시에 큰 수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뜬금없이 갤러리가 만들어지긴 한다. 위키 갤러리가 그 예시.

만두 마니아답게 디시인들에게 통 큰 만두 선물을 공약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공약이 올라온 날만우절인 게 함정.

파일:20200908dcinside12.jpg
파일:20200908dcinside13.jpg

가장 좋아하는 냉동 만두는 풀무원 김치왕만두라고 한다.

디시인사이드의 만두 이모티콘도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만두 캐릭터가 여기저기 등장하기도 한다.

4.3. 정치 성향

전체적으로 반공 보수주의 성향에 가깝다.[8] 자유주의 우파적 면모로 인해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국가의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인종 문제 등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한때는 극렬 노빠였다는 주장도 있다.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노빠보다는 조갑제에 가까운 보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나중에 디시에서 해명하면서 무조건 극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일단 안보반공을 강조하는 성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민족끼리 테러 사건으로 대변되는 디시인사이드 내 반북 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기회를 장사꾼의 마인드로 잘 캐치하는 듯. 2004년 탄핵 역풍 속의 친노적 네티즌들을 (구)정치, 사회 갤러리로 많이 흡수했었다.[9] 사실 그때를 언급하면서 김유식은 자신이 친노가 아니라고 대답하며 '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며, 노무현 정권에 반대하는 입장이나 친노 네티즌들에게 개입하면 안 되고, 내가 운영자로서 권력을 휘둘러도 안 된다'는 인터뷰를 조선일보에서 한 바 있다. 보수 디시인들이 행하던 호남에 대한 극심한 지역드립에 대해서도 비판하거나 관련 글 삭제를 한 적은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올바름의 충돌의 제어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며 '내가 통제하기 힘들다'라는 의견을 표하며 그냥 모든 걸 자유롭게 방치하기로 마음먹고 놔두었다.

실제로 디시는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며, 운영자의 정치 성향과 반대되는 정치적 의견을 가져도 탄압을 전혀 행하지 않기에 인터넷 커뮤니티 수장 중에서는 가장 민주적으로 사이트를 운영한다.

2007년에는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긴 손학규 지지 모임인 선진연대. 정확히는 전진코리아의 공동 대표로 있기도 했다.# 당시 자신과 엮여있었던 iC코퍼레이션도 대선 테마주로 엮여서 이득 좀 봤다고 개드립 파라다이스에서 밝히고 있으니 이 부분은 확실. 후에 보수화된 디씨에서 '왜 우파라는 당신이 손학규랑 어울렸냐'라고 묻기도 했지만 손학규도 YS를 따르는 개혁 보수 성향이 강한 운동권이었고 당시 시기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근혜와 경쟁하던 관계이기도 했었다. 다만 이후로도 손학규를 지지했을지는 불분명.

젊었을 적 코렁탕을 마신 경험 때문인지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서 개인이 쓴 글이나 언론 보도에 관해서는 정부가 규제해선 안 된다는 자유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대형 사이트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했던 인터넷 실명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악플러에 대한 처벌은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본인도 디시 내에서의 7명의 악플러를 직접 고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작성한 칼럼에서, "올해부터 악플러들에 대해 검찰이 강력한 사법처리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이기 전에 네티즌의 한 사람으로서 크게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일부 악플러들은 필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찾아온 손님(이용자)을 고소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으나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자 입장에서 악플러는 절대 이용자가 아니다. 오히려 선의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선량한 네티즌들을 괴롭히는 범죄자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때는 조선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덕분에 여러 갤러리에서 욕을 한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2012년쯤 쓴 칼럼 중에 인터넷에 부는 홍어 매카시즘이 있다. 지나친 홍어드립과 전라도 혐오증, 호남 차별을 비판하는 칼럼이다.

방송 출연도 자주 하는데, 2007년 1월, 100분 토론에 나왔다가 시민 논객과 같은 편이었던 진중권 교수가 앨라이를 풀고 공격을 시전하여 고생을 하기도 했다. 종합편성채널 창립 이후 대담 프로에 등장하기도 한다.

구 정사갤에서 "김유식님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지금은 성역화되어 있어 못 건드리지만 언젠가 역사가 재평가할 것입니다"라고 답변을 한 바 있다. 이것을 본 다른 사람이 해당 발언에 대해 비판하자 "책도 보시고 관련 자료도 좀 찾아보세요. 디씨 내에서도 관련 자료가 꽤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관련 링크

몇 년 뒤, 5.18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고갤 링크 댓글에 본인이 직접 '민주화운동입니다 ㅠㅠ'라고 댓글을 달았다. 다른 갤에서도 그냥 '저 때는 그랬지만...' 하는 식으로 얼버무린다는 걸로 보아 음모론에 속았다가 정신 차리고 쪽팔려하거나, 아니면 당시 글이 올라왔던 시기를 감안해 봤을 때 시류를 타서(2000년대 초중반 친노 성향 네티즌들의 대거 수용처럼) 입장을 선회해 버린 것일수도 있다. 사실 5.18 관련 음모론이 일부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들만 믿는 것이라는 걸 감안하면 성향이 아예 바뀐 것보다는 그냥 저 음모론만 거르게 된 것뿐일 수도 있다.

외부 시각에서 보면, 단순히 정치적 지향성이 약하고 그 나이의 사업체 관리자에 맞는 생계형 보수 정도로 취급받는다. 김유식의 발언들은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것 다 배제하고 단순히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만 고려해서 보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찬성하지 않을 리 없고, 사이트 관리자 입장에서 악플러 처벌 환영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면 인터넷에서의 의사 표현 자유가 어디까지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김유식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이득이 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깟 모순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4.4. 주식

주식에 관심이 있어서 전부터 (구)주식 갤러리를 드나들었다. 구 주식갤을 쓰윽 방문하여 마치 소스를 던져주듯이 코멘트를 던져줘서 많은 주갤러에게 회자가 되었는데, 결국 많은 이들이 떡밥을 덥석 물었다가 욕을 옴팡지게 먹은 뒤 구 주식 갤러리를 떠나게 된다. 이후, 08년 10월 17일 화학업체인 메이드(제조업체)에 80억 원을 투자하였으나 10월 24일 기준 단 일주일 만에 36억을 날렸다. 그날 구 주식갤이 순간 개명당한 이유가 그것이다.

김유식이 주식에 얽히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이후에 아프리카TV 주식에도 투자했으나 돈만 날리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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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걸그룹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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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소녀들을 보는 김유식.

이전부터 소녀시대, 그 중에서도 특히 태연의 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갤에 비해서 자주 태연 갤러리에 출몰하는 편이고 한창 빠졌을 땐 본인이 상주하며 악플은 모조리 지우겠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원더걸스안소희 갤러리는 조공도 없이 만들어준 걸 봤을 때 잡덕으로 추정된다. 원더걸스의 선미 갤러리도 팬들의 개설 요청이 전혀 없었으나 직접 만들어주었다.

그 후 러블리즈의 덕후가 되었으며, 울림엔터테인먼트 이중엽 사장과 식사를 함께했다.

한때 프로듀스 48을 봤던 듯. 프로듀스 48 갤러리에 댓글도 남기고 시타오 미우 마이너 갤러리에도 출몰했다. 심지어는 광고 잘하기로 소문난 미야자키 미호 마이너 갤러리에도 나타나 디시에 광고 달라며 영업을 하기도 했다. 장규리도 한때 사이트의 상징이었던 개죽이 때문인지 사이트 차원에서 지지하는 듯하다. 프듀 때 사이트 홈페이지엔 ## 개죽규리 가즈아! 디시인사이드입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 위에서 언급된 3명은 모두 귀신같이 탈락했다.

PRISTIN시연 덕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연의 나이는 2000년생으로, 1971년생인 김유식과는 무려 29살 차이가 난다. 김유식에게 시연은 딸뻘인 셈이다. 2016년 3월 26일 디시인사이드의 메인 홈피에는 "퀸시연 힘내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2023년에는 IVE안유진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태연은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서 관심을 끊었다고. #

여담으로 한 유저가 제목 바꾸기로 김유식을 엿 먹인 적이 있다.# 원래 '아직 태연 좋아하냐'는 글을 '아직 마누라랑 사이 좋냐'로 바꿔 아내의 오해를 사게 만든 것.

4.6. 김유식 대표 에세이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에서 가끔씩 글을 쓴다고 한다. 2004년부터 연재했는데, 가장 마지막 글이 2018년도에 올라왔고 두 번째로 마지막글이 2014년도에 올라온 것을 보면 지금은 잘 안 쓰는 듯. 2013년에는 태국 방콕에 다녀온 글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글 자체는 2011년에 쓰인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글이 올라오면 유저들의 반응은 글 내용에 대한 얘기보다는 제발 서버 좀 해결해 달라, 주작/신고 처리 좀 어캐 좀 해봐라 등 평소 유저들이 겪는 불편한 상태를 토로하는 반응이 주류다. 하도 서버 문제가 많이 터지고 갤러리마다 주작도 많은데 신고 기능도 부실하고 고객 센터 기능 역시 미비하다 보니 여기서라도 말해서 해결해 달라는 부탁이 많은 듯하다.

5. 저서 및 칼럼

5.1. 김유식 칼럼

2010년 12월 3일 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칼럼을 디시뉴스올렸다. 그동안 보수 성향을 보였던 김유식의 글을 봐서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칼럼이 올라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이었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칼럼은 각 매체에 상당히 많이 기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에도 칼럼을 자주 쓴다.

5.2. 저서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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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심형래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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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본 배우 후지이 미나가 김유식과의 인증샷을 심형래와의 인증샷이라고 올린 글이 퍼지는 바람에 김유식과의 인증 사진이 올라올 경우 김유식 사진이 아닌 심형래 사진으로 취급하는 것이 암묵의 룰이 되어버렸다.[14] 묘하게 닮은 외모뿐만 아니라 김유식, 심형래 두 사람 모두 횡령 혐의를 받은 점 때문에 드립이 더 흥한 감이 없잖아 있다.

지금은 심형래가 완전히 몰락하면서 밈이 식었지만, 그 유산은 곳곳에 남아 있다. 이를 아는 201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디시인들은 김유식을 돌려 깔 때 심형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ex. "형래야 디시 서버 제대로 관리 안 해?")이외의 예로 들어 디시위키의 심형래 문서에 들어가 보면 심형래가 아니라 김유식 사진이 들어가 있는데 상당히 자연스럽다. 문서 내용도 심형래가 아니라 김유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1] 직접 INFJ 마이너 갤러리에 인증 글을 남겼는데, 이 소식을 듣고 몰려온 갤러들이 댓글에다 온갖 것들을 물어봐 Q&A가 열렸다.[2] 키뮤식, 김무식, 기뮤식 등의 별명으로도 불린다.[3] 왼쪽 사진에서 김유식의 뒤에 있는 전차는 런던의 제국 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야크트판터 구축 전차이다.[4] 디시 유저들이 단체로 나와서 사진을 찍는 대회[5] 그것보다는 2020년대 이후 아이템의 인벤토리 등의 유튜버들의 영향으로 디시인사이드에 잼민이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고전 디시 감성과 요소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디시 특유의 나대는 말투만 보고 배운 것이 크다. 사실 짤방의 유저가 정말 잼민이인지는 불명이지만 디시 내에서도 무분별한 근첩몰이선근필승가 잼민이들의 폐해이기도 한 것을 생각해 보면 해당 짤방의 유저가 잼민이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6]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만두 머리 김유식 캐릭터를 써먹었다.[7] 그러나 여자 연예인 갤러리의 경우엔 신청한 사람이 거의 없어도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많았다.[8] 자신의 에세이에서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따지자면 보수 우익에 가까울 거 같다."고 저술하기도 했다.[9] 한편 디시에서의 친노 성향은 탄핵 역풍 때만 그치지 않고, 2007-8년 사이까지 의외로 짙게 지속되어 왔었다. 2021년 현재와 비교하면 격세지감.[10] 1998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적도 있다고 한다.[11] 일본인과 성문화를 출판사와 이름만 바꿔서 출판한 거라고 한다.[12] 두 번째 선물은 김유식도 불쾌해했고, 구 주갤도 별 찌질이가 디시랑 현실을 구별 못 하나냐는 반응이다. 김유식은 좋게 넘어갔지만, 모욕적인 행동임은 분명하다.[13] 링크아카이브[14] 차유람은 김유식과의 인증샷과 함께 "심형래 감독님과 인증사진도 찍었어요. 근데.... 순간 김유식 대표님이신줄...^^;;" 라는 트윗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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