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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인의 왕 Theuderic IV | 테우데리크 4세 | ||
제호 | 한국어 | 테우데리크 4세 |
프랑스어 | Theuderic IV | |
생몰 년도 | 712년 ~ 737년 | |
재위 기간 | 프랑크인의 왕 | |
721년 ~ 73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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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로베우스 왕조 프랑크 왕국의 왕.2. 행적
712년 다고베르 3세의 아들로 출생했다. 715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네우스트리아 귀족들이 킬페리크 2세를 왕으로 옹립했을 때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721년 킬페리크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그를 수도원에서 꺼낸 뒤 왕위에 앉혔다. 그 후 카롤루스 마르텔은 내치를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군을 격파해 기독교의 수호자로서 만인의 칭송을 받았다. 그동안 그는 궁정 구석에 박힌 채 조용히 살아갔다.737년 테우데리크 4세가 사망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왕을 세우기를 거부하고 왕좌를 비어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기록이 미비해 분명하지 않으나, 왕으로 오르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마르텔은 741년 사망할 때까지 왕이 없는 왕국의 궁재로서 전권을 행사했고, 뒤를 이어 궁재를 세습한 두 아들 카를로만과 피핀 3세는 743년 테우데리크 4세의 아들 킬데리크 3세를 왕으로 옹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