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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투팍 샤커 살인 사건 Tupac Shakur Murder Case | ||
<colbgcolor=#bc002d> 발생일 | 1996년 9월 7일 23시 1996년 9월 13일 16시 (사망) | |
발생 위치 |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 |
피의자 | 듀에인 데이비스 (1963년생 / 당시 33세)[1] 올랜도 앤더슨 (1974년생 / 당시 22세)[2] 디안드레 스미스 (1974년생 / 당시 22세)[3] 에릭 본 마틴 (1960년생 / 당시 36세)[4] 퍼프 대디 (1969년생 / 당시 27세) | |
피해자 | 투팍 샤커 (1971년생 / 당시 25세) 슈그 나이트 (1965년생 / 당시 31세) | |
유형 | 살인 (청부살인) 살인미수[5] 총기난사 (드라이브-바이 슈팅) | |
원인 | 퍼프 대디의 청부 살해 의뢰 올랜도 앤더슨의 폭행 피해에 대한 보복 | |
인명피해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 1명 |
부상 | 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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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6년 미국의 래퍼 투팍 샤커가 퍼프 대디의 사주를 받은 '사우스사이드 컴튼 크립스(Southside Compton Crips)' 갱단원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던 래퍼가 도심 한 가운데에서 총격으로 살해당했지만 오랫동안 진범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음모론을 파생시켰으며, 6개월 후에는 투팍 일생의 라이벌이었던 노토리어스 B.I.G.도 같은 드라이브-바이 슈팅으로 살해당하며 미국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2. 전개
1996년 9월 7일 밤 투팍은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데스 로우 레코즈의 CEO인 슈그 나이트을 비롯한 데스 로우 사람들과 같이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MGM 호텔로 향했다. 경기 후 호텔 로비에서 투팍 일행은 크립스 갱단 멤버인 올랜도 앤더슨(베이비 레인)을 발견했다.올랜도 앤더슨은 이전 레이크우드 쇼핑몰에서 데스 로우와 연관되어 있는 파이리츠(Pirates) 갱단[7]과 싸움을 벌인 전적이 있었다. 올랜도는 자신이 소속된 사우스 사이더스(South Siders) 크립스 갱단 몇 명과 함께 데스 로우 측 갱단에 맞섰는데 이 때 데스 로우 측 갱단의 멤버 중 하나였던 트레이 디(Tray Deee)의 목에 있던 데스 로우 목걸이 체인을 빼앗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MGM 호텔 로비에서 트레이 디와 같이 동행하고 있던 투팍은 올랜도 앤더슨을 발견하자 바로 달려들어 그를 공격했고 뒤이어 데스 로우 일행 전체가 그를 집중구타했다. 이 상황은 당시 호텔 CCTV에 촬영되어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상이 되었다.
당시 투팍과 슈그는 가석방 상태였기 때문에 집단 폭행 사건에 연루된 이상 투팍은 총격 사건이 없었더라도 슈그처럼 중형 선고를 피할 순 없었을 것이다. 총격 사건에서 살아남은 슈그 나잇은 집단 폭행 사건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고 2002년에 출소했다. 폭행 사건 이후 호텔을 나온 투팍 일행은 검은색 BMW 750iL를 타고 자신들의 클럽인 662로 향했다.
1996년 9월 7일 밤 촬영된 총격 직전의 모습의 사진. 생전 투팍의 모습이 생생히 담긴 마지막 사진으로 이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현재 영화 감독 및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레오나드 제퍼슨으로 당시 투팍과 같은 도시에 살면서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으며 사진 촬영 당시 투팍이 그를 알아보고 같이 클럽에 가자고 얘기도 꺼냈다고 한다. 이후 투팍의 총격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오후 11시부터 11시 5분까지 그들은 자동차에서 볼륨을 너무 크게 틀었다는 이유로 교통경찰에게 단속되었다가 풀려났다.
오후 11시 10분 맥심 호텔 앞에 위치한 코발 레인과 플라밍고 로드 사이 교차로에서 빨간 신호를 보고 차를 정지했는데 이때 여자 두 명이 탄 차량이 왼편에 정차한 채 슈그와 투팍에게 말을 건네 시선을 빼앗았다. 슈그는 운전하느라 보지 못했으며 투팍은 차량의 선루프 위로 몸을 일으켜서 여자들에게 클럽 662로 오라고 초대했다.
2Pac: Assassination의 한 장면
맨 앞엔 리드카[8], 왼쪽 옆에는 트레이본 레인[9], 가운데는 슈그와 투팍이, 뒤로는 프랭크 및 Outlawz 멤버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 한 프로파일러는 차로 둘러싸인 Sitting Duck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한 마디로 퇴로가 전부 막힌 형태였다.
오후 11시 15분 여자들이 말을 걸어 시선이 쏠린 사이 우측으로 흰색 캐딜락이 조용히 다가와 차량의 창문을 열고 투팍이 타고 있던 BMW 750iL의 오른편에 정차한 뒤 글록 22를 꺼내들고 이들을 향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글록 22에서 발사된 .40 S&W 탄환 11발 중 9발이 투팍에게 집중되어 겨눠졌고 한 발은 운전 중이던 슈그 나잇의 머리에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투팍은 그 중 4발을 신체에 맞았으며 두 발은 가슴에, 한 발은 팔에,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대퇴부에 명중되었는데 가슴에 맞은 두 발 중 한 발은 그의 오른쪽 폐에 꽂혀 치명적인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당시 투팍이 탑승했던 BMW 750iL 차량의 사진. 사건 이후 이 차는 말끔히 수리된 상태로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Celebrity Cars Las Vegas 매장에 전시되어 있으며 전당포 사나이들에서 주인공들이 이 차를 알아보러 가는 에피소드에 나온다.
총격 사건 이후 경찰은 슈그 나잇과 투팍을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는 6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호흡기에 의지하게 되었다. 데스 로우의 아티스트이자 투팍의 절친이었던 대니 보이는 당시 투팍이 있었던 병실에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살해 위협에 대해 증언했다. 아웃로즈 멤버였던 나폴레옹(무타)의 말에 의하면 투팍의 병실은 병원 1층이었고 창문을 통해 건물 밖에서 쉽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투팍을 완전히 끝내버리겠다는 위협이 병원 전화를 통해 계속해서 들려오자 아웃로즈 멤버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고 한다.
1996년 9월 13일 오후 4시 3분 투팍은 결국 향년 25세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투팍의 시신은 다음날 화장되었다.
3. 올랜도 앤더슨의 죽음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올랜도 앤더슨은 생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는데 투팍의 사망으로부터 불과 2년 뒤 자신을 아끼면서 길러준 할머니를 잃고 술을 마신 상태로 동네에서 자신이 돈을 빌려줬던 갱단 멤버와 마주치게 되었다. 여기서 트러블이 생겼고 총격전 끝에 올랜도는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4. 슈그 나잇 계획설
범인이 발사한 총알 중 대다수가 투팍에게 겨눠져 있었고 슈그가 멀쩡했다는 이유와 사고 후 멘붕 상태의 행동[10]으로 인해 투팍 사후 공범이라는 루머가 돌았다.당시 투팍은 데스 로우와 세 장의 앨범을 낼 것으로 계약되어 있었다. 이미 4집 All Eyez On Me를 내고 곧 자신의 사후 앨범이 되는 The Don Killuminati: The 7 Day Theory 작업을 끝냈던 투팍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빨리 마지막 세번째 앨범을 내고 데스 로우를 나와 자신의 레이블인 마카벨리(Makaveli)를 세울 계획임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지만 슈퍼스타를 잡고 싶었던 슈그 나잇은 투팍에게 그러지 말고 데스 로우 이스트(Death Row East)라는 데스 로우의 자회사를 세울 테니 이를 투팍이 이끌 것을 추천하였다. 이러한 상황 역시 슈그 나잇이 투팍 살인에 가담했다는 루머의 근거로 쓰이기 매우 좋았다.
그러나 이후 이하 내용들을 통해 이는 곧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1) 사후 다큐멘터리에서 투팍의 보디가드는 Before i wake에서 투팍 사고 후 슈그가 데스 로우 레코드 내에서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이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에 대해 소회한다.
2) "The killing of Tupac Shakur"의 저자 저널리스트 케이티 스캇도 슈그 공범설에 대해 부정하였다.
3) 1996년 당시 사건을 담당하고 조사했던 라스베가스 경찰 소속 브렌트 베커도 슈그의 공범 가능성은 없음을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슈그는 투팍을 죽일 타당한 이유가 없다. 저작권료 때문에 투팍을 죽였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차피 투팍의 사후 저작권료는 그의 어머니였던 아페니 샤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고 실제로 어머니가 전액 수령했다.[11] 게다가 슈그는 가중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가석방 상태에 있었으므로 살해에 동조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 투팍은 데스로우와의 계약이 남은 상태였다. 즉, 본인에게 큰 돈을 벌어다 주었고 앞으로도 활약할 인기 아티스트를 어떤 명분도 없이 본인 목숨까지 걸어 가면서 해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부분이다. 시기적으로도 투팍은 2장으로 이뤄진 전례 없는 볼륨의 All Eyez on Me 앨범을 내면서 음악적 성취는 물론이고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며 이는 단지 데스로우에서의 첫 앨범일 뿐이었다. 투팍은 이용가치가 떨어지거나 말을 안 듣는 골칫덩이가 아니라 창출해낼 금전적 가치가 앞으로도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는 보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슈그 공범설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 주장이다.
한편 올랜도 앤더슨은 슈그 나잇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주는 대가로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 대형로펌의 변호사를 선임해 본인과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살해 직전까지 고향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
투팍의 사망 사건 등을 다룬 키피 D의 자서전인 Compton Street Legend의 내용을 보면 투팍에게 총격이 가해지던 때 총알 중 한 발이 슈그 나잇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것을 잘못 보고 슈그가 총에 맞은 줄 알고 죽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때문에 슈그 나잇은 당연히 공범이 아니다.
다만 처음에는 비기 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그렉 케이딩 형사는 보복을 원했던 슈그 나잇이 비기 살인에는 가담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한 바 있다.
2023년 키피 D가 구속되자 슈그 나잇은 재판 증언을 거부하며 키피 D 석방을 주장했다. 이유는 스니치가 되기 싫어서로 추정된다.
사실, 총격 당시 슈그는 캐딜락 조수석에 타있는 그의 친구였던 키피 D가 타고있는걸 목격했었다. 그래서 총격사건 이후 언론의 인터뷰에서도 범인을 알아도 말하지 않을것이라 밝혔으며 경찰조사에서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 데스로우 내부 스눕 독을 포함한 동료 래퍼들과 직원들이 슈그가 무언가를 숨기고있다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스눕은 1997년 데스로우 레코드를 탈퇴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슈그가 투팍을 살해한것이라고 언론에 이야기함으로서 인터넷에서 suge 살해설 음모론이 불이 붙게되는데, 2pac 사망당시 보디가드였던 Frank Alaxader가 생전 이 소재를 활용해 Reggie Wright가 배후에서 투팍을 죽이는데 설계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다큐멘터리도 제작했었다.
5. 사건 전모
5.1. 키피 D의 제안자 합의
당시 컴튼 지역에서 마약거래로 유명했던 갱단 멤버이자 올랜도 앤더슨의 삼촌인 두에인 "키피 D" 데이비스(Duane "Keefe D" Davis)는 투팍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조카인 올랜도와 함께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를 보러 갔고 그 날 밤 투팍에게 총격을 가했던 차에 탑승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키피 D는 사건 이후 여러 인터뷰는 물론이고 Compton Street Legend라는 자신의 자서전까지 내면서 수 차례에 걸쳐 당시 사건의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인터뷰 클립들은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다.로스앤젤레스 경찰국 소속 형사로 일했었던 그렉 케이딩(Greg Kading)은 본래 LA에서 살해당한 노토리어스 B.I.G.의 사망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투팍 살인 사건과 키피 D에 대한 연관점들을 알아내기 시작했고 라스베이거스 경찰국의 협조를 얻어 투팍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렉 케이딩은 투팍 사망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키피 D에게 다른 확실한 죄목을 빌미삼아 으름장을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마약상이었던 키피 D의 불법 마약류 소지 및 판매 사실은 이에 적합했다. 그 결과, 2009년 그렉 케이딩은 다른 형사 한 명과 함께 키피 D에게 그의 마약 거래 혐의는 물론 투팍 살인에 관련해서 자신이 수사로 밝혀낸 것들을 나열하며 키피 D가 투팍 사망에 대해 입을 열지 않으면 그를 체포할 것임을 밝혔다. 당시 40대 후반의 나이에 암 투병 중이던 키피 D는 감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았고 결국 모든 사실을 그렉 케이딩에게 밝히기로 결정했다.
키피 D의 자백 과정에서 키피 D와 그렉 케이딩 및 다른 한 명의 형사는 제안자 합의(proffer agreement)를 약속했다. 제안자 합의란 미국 연방 검사 혹은 형사와 피고인, 또는 범죄 수사를 받는 사람 간의 서면 계약으로, 피고인이 형사에게 유용한 사실적 정보를 제공하기로 동의하는 것이며, 수사를 받는 이가 제안자 합의로 그 현장에서 자백하는 진술은 기소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즉, 제안자 합의가 이루어진 그 자리에서 털어놓는 내용만큼은 진술을 하는 사람을 구속하는 용도로 쓸 수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렉 카이딩 형사는 키피 D의 입에서 그가 투팍 살인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자백 받았음에도 그 현장에서 쓰인 자백은 제안자 합의에 따라 그를 체포하는 데에 쓰이지 않았다. 참고로 그렉 카이딩이 다른 형사 한 명을 대동한 이유는 제안자 합의에는 최소 두 명의 형사가 필요해서였는데, 둘 중 하나가 나중에 은퇴하거나 죽어서 형사 일을 하지 않더라도 혹시나 나중에 키피 D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제안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다른 곳에서 밝힐 경우에는 여전히 형사로 활동하는 나머지 한 명이 그를 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술된 키피 D의 이해 부족으로 어차피 이럴 필요도 없었지만.
그런데 키피 D는 제안자 합의라는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그 자리에서 그렉 케이딩에게 자백한 내용이 앞으로 평생 기소용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이해했다. 이것은 면책약관(immunity agreement)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이없게도 자신이 모든 걸 털어놓음으로써 영원히 투팍 사망에 관련하여 면책을 받았다고 착각한 것. 실제로 키피 D와 그렉 케이딩은 Vlad TV(채널명: djvlad)라는 유튜브 채널에 따로따로 출연한 바가 있는데, 이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키피 D는 자신이 아예 면책을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그렉 케이딩은 이것이 제안자 합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키피 D는 체포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무용담마냥 여기저기서 떠벌리고 다녔고 자서전과 인터뷰들을 통한 수익 및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키피 D의 이런 행보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았고 경찰국은 그가 스스로 말하고 다닌 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투팍 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가 밝힌 내용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5.2. 사건 경위
자신의 조카 올랜도가 투팍 및 데스 로우 일행에게 폭행을 당하자[12] 키피 D는 복수를 결심했다고 한다. 키피 D는 자신과 관련된 갱스터 '에릭 본 "집" 마틴'(Eric Von "Zip" Martin)[13]으로부터 권총을 넘겨받았다. 키피 D 측은 투팍과 슈그 나잇이 662로 갈 줄로 알았기 때문에 대기를 타고 있었으나, 한 시간 넘게 그들이 나타나지 않자 그냥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키피 D는 차를 흰색 캐딜락으로 바꿔 탄 후 조수석에 앉아 집이 넘겨준 권총을 올랜도와 디안드레 스미스(DeAndre Smith, 빅 드레)[14]라는 다른 한 명이 타고 있던 뒷좌석으로 넘겼다. 그런데 키피 D 일행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투팍이 검은색 BMW 밖으로 몸을 내밀며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당연히 이들은 투팍이 타고 있는 차를 쫓아 조금 후 그들이 신호에 걸려 멈춰 있을 때 바로 옆으로 접근하였다. 그 차 안에는 투팍과 슈그 나잇이 있었으며 슈그 나잇과 키피 D는 눈이 마주쳤다. 이내 키피 D 차의 뒷자리에서부터 투팍에게 연속으로 총격이 가해졌고 키피 D 일행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가 호텔로 돌아갔다.
키피 D는 뒷좌석에 타고 있던 올랜도 앤더슨과 디안드레 스미스 둘 중 누가 투팍을 쐈는지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사람들은 디안드레 스미스가 투팍의 차와 더 가까운 자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고 보는 편이다. 한편 키피 D는 자신들의 차가 투팍의 차 옆으로 접근하자 투팍이 총을 꺼내려고 했다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고 주장했는데, 투팍과 슈그 나잇의 차에는 총이 발견되지 않았다.
참고로 키피 D는 슈그 나잇과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로 학교까지 같이 나온 관계였다. 때문에 나중에 슈그 나잇과 데스 로우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 Death Row Chronicle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자신이 그 날 밤 벌인 행적에 대해 말했다.
5.3. 퍼프 대디의 암살 의뢰
여기서 줄곧 투팍의 사망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의심을 받아 온 배드 보이 레코즈의 CEO 퍼프 대디가 연결된다. 키피 D는 1990년대 초반에 마약 거래를 하면서 집(Eric Von "Zip" Martin)을 알게 되었고 집을 통해 퍼프 대디를 만나게 되었다.[15] 1995년 9월 23일 애틀란타에서 열린 파티에 슈그 나잇과 퍼프 대디 둘 다 참여했고 여기서 총격을 포함한 큰 싸움이 일어났다. 이 둘이 총을 쏜 것은 아니었지만 슈그 나잇은 이러한 소동에 퍼프 대디의 멱살을 잡고 ‘너가 꾸민 짓이냐’며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싸움에서 슈그 나잇의 친구이던 빅 제이크(Big Jake)가 사망하기도 했다.[16]이후 퍼프 대디, 집, 키피 D 세 명은 한 스트립 클럽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퍼프 대디는 그들에게 '투팍과 슈그 나잇을 죽이면 백만 불을 넘기겠다'고 제안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누구든 데스 로우 체인을 뺏어오는 사람에게 만 달러를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레이크우드 쇼핑몰에서의 싸움이 일어나자 트레이 디의 데스 로우 체인이 노려졌다.
그리고 투팍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퍼프 대디는 키피 D와 집에게 그들의 소행이 맞냐고 물었고 키피 D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투팍의 사후 FBI가 키피 D에게 말하기를, '퍼프 대디는 실제로 백만 불을 집에게 넘겼는데 그 돈을 집이 모두 독차치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키피 D 본인은 한 푼도 못 받았다고 한다.
퍼프 대디는 사우스 사이더스 크립스 측과도 아는 사이였다. 물론 퍼프 대디는 이런 얘기를 완강히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2024년 7월 25일, 한창 디디 게이트로 떠들썩한 와중 법원 문서로 퍼프 대디가 암살자에게 백만 달러를 지급해 투팍 샤커 암살을 의뢰했음이 드러나, 결국 투팍을 살해하라고 한 의뢰자가 디디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6. 27년 만의 용의자 검거
2023년 7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경찰국은 라스베이거스 외곽의 한 주택을 수색했다고 밝혔다. 네바다주에는 살인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다.2023년 9월 30일, 미국 경찰이 27년 만에 투팍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키피 D를 검거하였다. 법원 출석 모습
7. 여담
- 투팍을 직접 쏜 장본인으로 추정되는 디안드레 스미스(빅 드레)는 이후 믹스테잎을 내며 래퍼로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워런 G와 스눕 독 등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투팍과 같은 레이블에 몸 담고 있었던 스눕 독이 투팍을 죽인 사람과 같이 작업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 당시 투팍과 갈등을 빚고 있었던 맙 딥은 1996년 8월 25일에 3집 <Hell on Earth>의 첫 번째 싱글이자 투팍 디스곡인 'Drop A Gem On 'Em'을 발매했지만 불과 19일 후에 투팍이 사망하면서 해당 디스곡 또한 의도치 않게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디스곡의 가사를 보면 투팍의 죽음을 예견한 듯한 가사도 포함되어 있었기에[17] 맙 딥도 해당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당시 존재했었다. 참고로 맙 딥은 투팍이 사망하자 그에 대한 추모와 존중의 의미로 곡이 라디오에서 송출되지 않게끔 조치를 취해서 해당 곡은 정규 앨범의 리드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투팍 사후에 라디오로 송출되지 못했다.
- 디디 게이트 사건이 점화되자 제이 콜의 She Knows, 칸예 웨스트의 No More Parties In LA, 에미넴의 Killshot[18], Antichrist, Fuel, Bad One, 켄드릭 라마의 meet the grahams 같이 이 사건을 은유해서 전달하는 듯한 곡이 재조명을 받았다.
[1] 2023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당시 피의자 중 퍼프 대디와 함께 유일한 생존자였다.[2] 1998년 사망.[3] 2004년 사망.[4] 2012년 사망.[5] 퍼프 대디는 투팍 샤커와 더불어 슈그 나이트의 암살도 의뢰했으며, 사건 당시 총알 중 한 발이 슈그 나이트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6] 총에 맞은 이후 출동한 경찰들이 괜찮냐고 물어보자 남긴 유언으로,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했다.[7] 데스 로우는 경호원들부터 시작해서 연관된 상당수가 블러즈 멤버들인 살벌한 환경이었다. 아티스트들부터 직원들까지 모두가 입을 모아 데스 로우 내부에서는 잔혹한 폭행이 비일비재했으며 지옥과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거기서 CEO인 슈그 나잇은 절대 권력을 자랑하며 모두를 공포에 떨게 했다. 정작 슈그 나잇은 갱스터 출신은 아니고 미식축구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녔던 과거가 있지만 험하디 험한 컴튼 출신이라 무서울 게 없었으며 워낙 덩치가 산만하고 위압감이 넘치던 터라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8] 리드카는 보통은 슈그가 운전하였으나 사건 당일엔 이례적으로 슈그가 운전하지 않고 투팍을 태우고 리드카를 따라갔다.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도 의심을 사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9] 슈그와 같은 블러즈 갱 멤버이자 슈그 나잇의 어린 시절 친구.[10] 슈그는 총격을 받자마자 멘붕이 와서 차를 유턴해 2km 떨어진 E. 하몬 애비뉴까지 도망쳐 현장보존에 실패하고 말았다. 출동한 경찰들에게 차량 안에서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며 경찰과 대치하는 바람에 또 시간을 소요했다. 그동안 조수석의 투팍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11] 투팍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기에 부모가 1순위 상속인이 된다. 그런데 투팍은 사생아라서 아페니와 결혼했던 루뭄바는 아버지가 아니었고, 실제 아버지였던 빌리 갈랜드는 투팍의 육아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기에 아페니 샤커가 투팍의 모든 유산을 상속받았다.[12] 사실 너무 많은 이들이 떼거지로 정신없이 공격하는 바람에 올랜도는 어깨 쪽의 충격을 제외하면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고 한다.[13] 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14] 빅 드레라는 별명답게 매우 뚱뚱했는데 결국 몇 년 후에 건강상의 문제로 세상을 떠났다.[15] 처음 알게 된 후 얼마 안 가 퍼프 대디는 어셔의 Can you get with it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키피 D에게 2,400불을 주고 차를 대여받았다.[16] 얼마나 퍼프 대디가 이 일로 두려움에 떨었는지 키피 D의 증언에 따르면 이후 퍼프 대디는 네이비 씰 출신의 경호원들을 고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인이어를 주어 마치 그들이 CIA 요원들인 것처럼 하게까지 했다고 한다.[17] Clocks tick, your days are numbered in low digits.
시계는 째깍이고, 너한테 살 날은 얼마 남지가 않았지.[18] "네가 히트곡 내는 날은 디디가 투팍을 죽인 것을 시인하는 날이 될 것"이라는 가사가 있다.
시계는 째깍이고, 너한테 살 날은 얼마 남지가 않았지.[18] "네가 히트곡 내는 날은 디디가 투팍을 죽인 것을 시인하는 날이 될 것"이라는 가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