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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10:21:35

폰티악 GTO

파일:폰티악.png
파일:폰티악 GTO.jpg
GTO

[1]

1. 개요2. 역사
2.1. 1세대 (1964~1967)2.2. 2세대 (1968~1973)2.3. 3세대 (1973)2.4. 4세대 (1974)2.5. 5세대 (2004~2006)
3. 미디어에서4. 둘러보기


Pontiac GTO

1. 개요

제너럴 모터스폰티악 브랜드를 통해 1964년부터 2006년까지 생산한 머슬카다.

2. 역사

1957년 미국 자동차산업협회(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 AMA)의 자발적 조치를 근거로 GM의 경영진들이 1963년 초부터 각 브랜드의 자동차 경기 관여를 금지하자, 1960년대 초반에 고성능 이미지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던 폰티악에서는 자동차 경기 대신 공도주행을 중점으로 홍보하기로 방량을 틀었다.

당시 폰티악의 임원이었던 존 드로리언(John DeLorean)과 빌 콜린즈(Bill Collins)[2], 그리고 러스 지(Russ Gee)가 중형차인 템페스트 2세대를 기반으로 대형차였던 카탈리나보네빌의 6.4L 폰티악 V8 엔진 및 변속기를 얹어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차를 만들고자 했다. 당시 판매부서장이 첫 해 5000대만 한정 생산한다는 계획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당시 회사 규정상 중형차 플랫폼인 A-바디 플랫폼에 얹을 수 있는 엔진 배기량이 최대 5.4L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폰티악을 담당했던 엘리어트 "피트" 에스테스(Elliot "Pete" Estes)[3]는 GTO의 판매를 승인했다.

2.1. 1세대 (1964~1967)

파일:폰티악 GTO 1세대.jpg

GTO는 폰티악 르망의 고성능 옵션으로 시작했다. 1966년 별개의 모델로 독립한 후에도 르망과 외형을 공유했고, 1974년 폰티악 벤츄라의 옵션으로 바뀔 때 까지 이는 쭉 이어지게 된다.

2.2. 2세대 (1968~1973)

파일:폰티악 GTO 2세대.webp

2.3. 3세대 (1973)

파일:스크린샷 2022-08-27 오후 10.28.25.png

2.4. 4세대 (1974)

파일:폰티악 GTO 3세대.jpg

석유파동의 영향을 받아, 이때는 중형차가 아닌 벤츄라(Ventura)라는 준중형차 기반으로 제공되는 패키지가 되었다. 1975년형부터 벤츄라가 풀 모델 체인지를 하면서 단종되었다.

2.5. 5세대 (2004~2006)

파일:폰티악 GTO 4세대.jpg
2004년식 폰티악 GTO. 차량에 따라서는 보닛 위의 공기 흡입구가 없는 경우도 있다.

폰티악이 GTO의 생산을 그만둔 지 한창 지난 2000년대 초반, 제너럴 모터스의 전 임원이었다가 부회장으로 복귀한 밥 루츠는 제너럴 모터스의 그릇된 회사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루츠는 "카 앤 드라이버" 지에서 홀덴 코모도어 SS를 시승한 평가 중 "GM이 만드는 차들 중 최고지만, 미국에서 살 수가 없다."는 부분을 떠올렸고, 코모도어를 뷰익이나 폰티악 브랜드를 통해 북미로 들여올 생각을 하게 된다. 나중에 이 계획은 임원들과 토의를 거치다가 홀덴 모나로를 도입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루츠는 모나로를 북미로 들여오려고 했는데, 호주 지사에서는 이를 환영한 반면 미국에서는 자신들의 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했었다.[4] 이때 루츠는 북미 임원들을 설득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쏟았고, 북미와 호주 지사의 테스트 기준이 완전히 달랐던 탓에 북미 기준에 따라 새로 맞추느라 출시 기간이 상당히 길어져 차량의 신선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환율이 올라 2만 5천 달러에 팔 계획이었던 게 3만 달러까지 가격이 비싸져 출시 당시 호응은 기대 이하였다.[5] 홀덴을 통해 새로 부활한 GTO는 호주 엘리자베스(Elizabeth)의 홀덴 공장에서 생산되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차량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완성되었다.

2006년 2월 21일에 뷰익-폰티악-GMC의 총책임자인 존 라슨(John Larson)이 새로운 에어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GTO의 수입 중단을 발표해 2006년 6월 14일에 마지막 차량이 생산됨에 따라 단종되었고, 이때까지 총 40,808대의 4세대 GTO가 생산되었다.[6] 대신 홀덴이 적극 활용해오던 V-바디 플랫폼의 후신인 제타(Zeta)는 GM이 자사 라인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3. 미디어에서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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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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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콜베어 폰티악 템페스트 뷰익 스페셜 AMC 램블러 포드 모터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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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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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의 1세대은 폰티악 르망과 외형을 공유하며, 오른쪽의 5세대는 홀덴 모나로와 동형이다.[2] 1970년대에 GM으로부터 독립해 드로리안 모터 컴퍼니를 창립했다. DMC-12 드로리안 역시 그들의 대표작이다.[3] 1970년대에 GM의 회장이 되었으며, GM 라인업 전반의 전륜구동화에 기여한 사람 중 하나이다.[4] 심지어 북미 개발팀에서는 폰티악 그랑프리를 후륜구동으로 개조해 자신들도 비슷한 걸 할 수 있다고 반박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들어가는 돈이 새 차를 개발하는 수준이라 거절당했다.[5] 본래 GM에서는 1만 8천대가 한 해 동안 팔리리라고 예측하고 있었지만 보수적이고 그저 그런 디자인에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2004년 한 해 동안 총 15,728대가 수입되어 13,596대가 판매되는 기대 이하의 실적을 남겼다.[6] 다만 4세대 GTO는 처음부터 3년 동안만 판매할 예정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7] 무한질주2에서도 5세대가 등장했다.[8] 기지 격납고 안에 세워져 있던 차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