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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0:10:01

프랭크 칼리

<colbgcolor=#000><colcolor=#fff> 프랭크 칼리
Frank Cali
파일:프랭크 칼리4.jpg
이름 Francesco Paolo Augusto Cali
프란체스코 파올로 아우구스토 칼리
출생 1965년 3월 26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사망 2019년 3월 13일 (향년 53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마피아
배우자 로자리아 인제릴로

1. 개요2. 생애3. 여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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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뉴욕 시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감비노 패밀리의 부두목(Underboss).

일명 프랭키 보이(Franky Boy)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미국 마피아 세계의 실력자였다.

2. 생애

프랭크 칼리는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피아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아니었지만 추종세력(Associate)으로서, 과거 미국 마피아와 시칠리아 마피아가 연관된 피자 커넥션(Pizza Connection) 수사 과정에서 언급됐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전과 기록을 가진 사람이었다.

프랭크 칼리는 감비노 패밀리 고위 간부 존 감비노(사진)의 조카였는데, 삼촌을 따라 마피아 세계에 발을 들였다. 동시에 시칠리아 내 유명 마피아 가문의 여인인 로자리아 인제릴로와 결혼했다.

프랭크 칼리는 당시 감비노 패밀리 두목(Boss)이었던 존 고티의 심복 중 한 명인 존 다미코(사진)와 관계를 맺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칼리는 패밀리의 추종세력(Associate) 신분이었던 시절부터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전화카드 사기에 깊이 연루됨과 동시에 여러 개의 수출입 회사를 운영하는 등 패밀리 내 고소득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프랭크 칼리는 당시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이었던 존 고티 주니어(사진)와 갈등을 빚었다. 전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마이클 디레오나르도가 밝힌 내용으로, 고티 주니어는 부하들이 전화카드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일부 가로채고 있다고 생각하여 칼리의 상사인 다미코를 행동대장에서 행동대원(Soldier)으로 강등시키고 칼리는 결코 정규조직원(Made Member)으로 입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칼리는 자신의 사업에서 전화카드 1장 당 25센트의 추가 상납금을 고티 주니어에게 상납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 당시 디레오나르도는 칼리가 다미코와 일체의 상담도 하지 않고 즉석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며 나이가 어림에도 대단한 판단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1997년 프랭크 칼리는 감비노 패밀리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되었다. 당시 FBI가 그 사실을 이탈리아 경찰 당국에 보고했다.

2002년 프랭크 칼리는 연방수용자 의료센터에서 사망한 패밀리 두목(Boss) 존 고티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프랭크 칼리는 자신의 후견인 존 다미코가 거리 책임자(Street Boss)가 되어 패밀리를 장악하는 2000년대 초반에 행동대장(Caporegime)이 되었다.

행동대장(Caporegime)이 된 프랭크 칼리는 미국으로 출장 온 시칠리아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 고위 간부들과 뉴욕에서 자주 회동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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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마피아와 회동을 가지는 프랭크 칼리(제일 좌측)
FBI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시칠리아 마피아의 수많은 미국 여행을 감시했고 필리포 카사멘토 같은 1980년대부터 활동해온 지도자급 인사들이 칼리를 방문한 사실에 주목했다. FBI는 그들의 여행 목적이 칼리가 운영하는 미국 내 합법적인 회사들을 통해 유럽과 미국 사이의 새로운 마약 경로를 구축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함이라는 강한 의혹을 품었다.

미국 연방검사 조이 립톤에 따르면 마피아 수사 중 한 이탈리아 본토 마피아 조직원의 대화를 도청했는데, 그는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을 맡고 있던 프랭크 칼리를 가리켜 "그(칼리)는 우리 친구다. 그 사람은 바다 건너 저쪽에서 절대적이다.(A friend of ours, he is everything over there.)"라고 말했다.
파일:D'Amico & Cali.jpg
존 다미코와 프랭크 칼리가 포착된 2007년 FBI 감시 사진

2008년 프랭크 칼리는 미국 마피아와 시칠리아 마피아를 겨냥한 대규모 기소에 포함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약 10개월간 교도소에 복역했다. 그의 후견인 존 다미코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했다.

프랭크 칼리는 출소 후 부두목(Underboss)이 되었다. 서열상 그의 위로 두목(Boss) 피터 고티(사진)와 두목 대행(Acting Boss) 도메니코 세팔루(사진)가 존재했지만,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고티는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명목상 두목이었고 세팔루 역시 고령의 나이로 적극적인 활동이 제한되는 상황이었기에 사실상 칼리가 패밀리의 실세로 통했다.

감비노 패밀리 내 시칠리아 파벌을 대표하던 프랭크 칼리는 미국 마피아의 주(駐) 시칠리아 대사(Ambassador to Sicilian mobsters)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그림자 속에서 불법 사업을 총괄하며 교묘히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정통 마피아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감비노 패밀리 지도부 회의에서 도메니코 세팔루가 프랭크 칼리에게 두목 대행(Acting Boss)직을 물려주려 했지만 칼리가 거절했다고 한다. 동시에 칼리가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업체와 부동산의 가치가 도합 3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이는 정부에서 추적하기 힘든 불법 사업으로 얻는 수익이나 직업 범죄인이 통상 숨겨놓는 각종 차명 자산과 은닉 자산을 제외한 수치다. 더욱이 칼리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상당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종종 그곳에서 휴가를 보냈다.[1]

2018년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프랭크 칼리가 뉴욕 시의 식품산업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프랭크 칼리는 본인의 자택 앞에서 괴한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는 폴 카스텔라노 이후 34년 만에 발생한 뉴욕 마피아 수괴 살인 사건으로,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다.
프랭크 칼리 살인사건을 다룬 뉴스

FBI는 프랭크 칼리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뉴욕 5대 패밀리 두목(Boss) 전원과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전원에 요원들을 붙여 그들을 미행하고 암흑가 동향 파악에 나섰다.

경찰에 검거된 앤서니 코멜로(24)라는 평범한 청년이 미국 전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중 한 명을 살해한 것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셀윈 랍(Selwyn Raab)이라는 마피아 전문가는 인터뷰에서, 칼리는 평소에 눈에 띄는 걸 경계해 “경호원을 두지 않았고, 여행을 갈 때에도 폭력배 수행원들을 거느리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마피아로부터는 안전했지만 괴짜로부터 안전하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CCTV에 찍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앤서니 코멜로는 자신의 픽업트럭을 몰고 뉴욕 시 스태튼 아일랜드 토트 힐에 위치한 프랭크 칼리의 자택 앞까지 가서 그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들이받았다. 그 후 칼리가 나오자 몇 분간 대화를 이어갔고 악수까지 나눈 뒤 집으로 들어가려는 마피아 부두목(Underboss)의 등 뒤에다 총을 난사한 것이다. 서로 안면이 있어 보이는 이 대목 때문에 사건 초기 수사기관에서는 마피아 조직의 처형으로 보았다. 반면 전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살바토레 그라바노는 가족들이 있는 집 앞에서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건 뉴욕 마피아 스타일이 아니고 예비차량이 없었던 점을 보아 처형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했다고 밝혔다.

지문도 검출되고 범행에 이용된 차량도 발견되는 등 허술한 뒤처리 끝에 붙잡힌 앤서니 코멜로는 기자들이 방청한 범죄인 인도 심리에서 손바닥에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구호인 MAGA Forever[2]를 볼펜으로 적어 방청석에 보여주는 기행을 일삼았다. 이에 마피아 전문가 셀윈 랍은 자신이 직접 대화해본 몇몇 마피아 조직원들도 대부분 공화당을 지지하며 세금과 이민자들을 싫어한다고 밝혔다.

앤서니 코멜로의 변호인 로버트 고틀리브는 자신의 의뢰인이 범죄인 인도를 거부했으나 다음 주에 뉴저지 주에서 인도된 뉴욕 주의 공판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을 예정이며, 매우 ‘심각한 위협’을 받은 뒤 보호 수용되어 있고 현재 마피아 암살자(Mafia hitman)들이 복수를 위해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2019년 3월 19일 프랭크 칼리의 장례식이 열렸다. 묫자리의 가격이 4만 5천 달러라고 알려졌다. 장례식을 취재하던 한 기자는 조문객으로부터 머리를 뜯어버린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보석 심리에서 앤서니 코멜로가 총격 이후 '도주 중이다. 이제 우리 가족은 표적이 되었다.'라는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4월 3일 앤서니 코멜로가 기소되었다. 당국은 코멜로가 어느 교정시설에 구속되어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 변호인은 다시 한번 피고인의 안전 보장을 강조했다.#

프랭크 칼리 사망 이후, 미 사법당국은 칼리의 빈자리를 로렌조 만니노(사진)가 대체했다고 보고 있다.[3]

연합뉴스 보도. 변호인에 의하면 피고인 앤서니 코멜로는 chan계열 이미지보드를 시작으로 미국 웹상에서 떠도는 대안 우파 음모론 QAnon에 심취해있었고 범행 자체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돕기 위한 의도였다고 한다. 피고인은 본인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택받은 자경단원이라고 여겼다. QAnon에 따르면 미국 정부를 배후조종하는 범죄자들로 구성된 도당인 딥 스테이트라는 게 있는데[4] 피고인은 프랭크 칼리가 미국 최대 범죄조직 중 하나인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Boss)이라고 확신했고 나아가 딥 스테이트의 핵심 구성원으로 여겼다.[5] 특히 그를 미국적 가치와 미국적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데 골몰한 국제범죄조직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은 딥 스테이트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에 의한 체포(Citizen's Arrest)를 추구했고 칼리를 체포한 후 미 육군에 신변을 넘기려고 했다. 즉, 최초에는 살해할 의도가 아니라 체포할 의도였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이 수갑을 지참하고 칼리의 집을 찾아갔지만, 막상 대면하자 그가 체포를 거부하고 총을 꺼내는 듯한 동작으로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뻗자 공포를 느낀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총을 꺼내 살해했다는 것이 변호인의 변론이다. 앞선 보도에 의하면 총을 꺼내는 등 방어태세를 취하지 않고 그저 악수를 하고 뒤돌아 가는 칼리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보도되었지만, 현재로서는 언론에 CCTV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어느 쪽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수 없다. 칼리 사건 두 달 전에는 피고인이 또 하나의 딥 스테이트 관계자라고 생각한 미국 민주당 소속 뉴욕시장 빌 더블라지오를 목표로 2번 체포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막혀 접근에 실패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더블라지오 시장은 사건 발생 직후, 칼리 살인의 원인을 마피아 간의 항쟁으로 추측하고 “(마피아 간의 싸움이 빈발한) 그러한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매우 놀랐다(We thought those days were over, very surprising)"라고 평한 바 있다.[6]

2020년 2월경 연방 서류를 통해 프랭크 칼리 사망 당시 급박했던 상황이 알려졌다. 감비노 패밀리의 수괴가 살해되었다는 정보를 처음 입수한 수사기관에서는 패밀리 내 주도권을 장악한 시칠리아계와 상대적으로 밀려난 미국계 사이의 갈등이 폭발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추정했다. 그날 새벽 감비노 패밀리의 전 간부는 비상소집되어 회의를 가졌다. 수사기관에서는 몇몇 조직원을 참고인으로 조사하기 위해 접촉했다. 그때 한 조직원이 사건 당일 칼리의 집에 있던 여자(아마도 그의 애인)을 범행 동기로 추정했고, 이 때문에 사건 초기 CNN 등 여러 언론이 치정관계에서 비롯된 살인사건이라는 오보를 낸 것으로 보인다. 한편 FBI는 어느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을 도청했는데, 그는 대외적으론 칼리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같은 파벌 소속 조직원에겐 “칼리의 사망은 우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드루 캄포스(사진)가 수뇌부로 승격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좋은 일(a good thing)이다.”라고 얘기하는 육성을 포착했다.

3. 여담

4. 관련 문서



[1] 굳이 도미니카 공화국인 이유는 가장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시민권을 딸 수 있는 나라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돈 세탁과 연관 있을 가능성이 높다.[2] Make America Great Again Forever[3] 자세한 사항은 감비노 패밀리 문서 참고.[4] 원문에서 쓰인 표현인 'cabal'이란 단어는 단순한 집단이나 무리가 아니고 사전적으로 '정권 쟁탈 음모에 연루된 비밀결사'라는 의미다.[5] 칼리가 패밀리의 실세는 맞지만 직책은 부두목(Underboss)이었다.[6] 정치인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범죄자를 암살하는 내용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현실판이 아닌가 생각나는 이야기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은 마피아 수괴가 아닌 한낱 거리의 포주를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는 차이가 있다. 범행 동기의 결은 조금 다르지만 과거 존 힝클리 주니어라는 정신병자가 택시 드라이버 영화를 보고 실제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