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c0013><colcolor=#fff> | |||
출생 | 1768년 1월 28일 | ||
덴마크 코펜하겐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 |||
사망 | 1839년 12월 3일 (향년 71세) | ||
덴마크 코펜하겐 아말리엔보르 궁전 | |||
재위기간 | 덴마크 국왕[1] | ||
1808년 3월 13일 ~ 1839년 12월 3일 | |||
노르웨이 국왕 | |||
1808년 3월 13일 ~ 1814년 2월 7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c0013><colcolor=#fff> 가문 | 올덴부르크 가문 | |
아버지 | 크리스티안 7세 | ||
어머니 |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 공주 | ||
형제자매 | 루이세 아우구스타 | ||
배우자 | 헤센카셀의 마리 (1790년 결혼) | ||
자녀 | 카롤리네, 빌헬미네 마리 | ||
종교 | 루터교회 | }}}}}}}}} |
[clearfix]
1. 개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이자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2. 생애
프레데리크의 어린 시절, 아버지 크리스티안 7세는 조현병에 걸려 궁정에 있는 온갖 물건들을 부수고 마구 폭행하고 다녔으며, 가정폭력을 마구 일으키자 크리스티안이 정치를 수행할 정신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한 슈트루엔제가 1770년부터 1772년까지 섭정을 맡았고, 1772년부터 1784년까지 크리스티안 7세의 이복동생 프레데리크 공작(프레데리크 6세가 아님)이 섭정을 맡다가 그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야 부왕을 대신해 섭정을 맡았다.즉위한 이후 프레데리크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했으나 영국이 덴마크 해협에 호레이쇼 넬슨을 보내 코펜하겐 해전으로 덴마크를 괴롭히니깐 이에 반발하다가 이웃나라 스웨덴의 구스타브 4세 아돌프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잡은 러시아 제국과의 핀란드 전쟁에서 패전한 여파로 폐위당하자 나폴레옹의 편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몰락하자 덴마크 국왕이 겸임하던 노르웨이를 상실했고 이후 1839년 사망하였다.
3. 가족
헤센카셀의 마리와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으나 아들이 없어서 사촌동생인 크리스티안 8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크리스티안: 1791년 9월 22일 ~ 1791년 9월 23일
- 마리 루이세: 1792년 11월 19일 ~ 1793년 10월 13일
- 카롤리네: 1793년 10월 28일 ~ 1881년 3월 31일
- 루이세: 1795년 8월 21일 ~ 1795년 12월 7일
- 크리스티안: 1797년 9월 1일 ~ 1797년 9월 5일
- 줄리아나 루이세: 1802년 2월 12일 ~ 1802년 2월 23일
- 프레데리케 마리: 1805년 6월 3일 ~ 1805년 7월 14일
- 빌헬미네 마리: 1808년 1월 18일 ~ 1891년 5월 30일 - 6촌인 프레데리크 7세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이혼 후 글뤽스부르크 공작 카를과 재혼했지만 자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