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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850년? |
사망 | 932년 / 933년 |
재위기간 | 노르웨이 국왕 |
872년? ~ 930년? | |
가문 | 하르파그리 가문 |
이름 | 고대 노르드어: Haraldr inn hárfagri 노르웨이어: Harald hårfagre |
[Clearfix]
1. 개요
노르웨이 하르파그리 왕조의 초대 국왕이자 노르웨이를 최초로 통일한 사람으로, "미발왕"(Fairhair) 하랄이라고도 한다. '흑왕 할프단'의 아들로 윙글링 가문이었지만 노르웨이 국왕으로서 하르파그리 왕조의 시조로 본다.[1]2. 생애
흑왕 할프단으로부터 노르웨이 남쪽 지역을 물려받고,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주변 소국들을 정복해 872년에 통일된 왕국을 성립시켰다. 전설에 따르면 통일을 완수할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헝클머리의 하랄'이라 불렸으며, 성공한 이후 머리를 가다듬자 '미발(美髮)의 하랄'이라 불렸다고 한다.정적들은 하랄 1세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아이슬란드와 오크니 제도, 페로 제도 등으로 떠나갔다. 이것이 아이슬란드 개척을 촉진했고, 나중에 후환을 막기 위해 이 땅들도 죄다 점령해 버렸다.
이후 아들들 사이에서 왕권 다툼이 일었고, 하랄 1세는 가장 총애하는 아들인 에이리크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퇴위한 후 얼마 안 가 사망했다.
3. 존재에 대한 의문
아무래도 하랄 1세 자체가, 아니 그가 속한 윙글링 왕조 자체가 반은 전설, 반은 역사에 걸쳐있다 보니 그의 존재성과 전설의 사실성에 대한 의문이 자주 제기된다. 과거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강했던 19~20세기 초중반까지 하랄 1세는 노르웨이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민족적 상징으로서 그의 존재나 생애에 대한 기록에 별다른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다.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이 기존 견해를 뒤집는 수정주의가 대두되었는데, 우선, 이 견해는 당대 노르웨이 및 주변지역의 기록에 하랄 1세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세운다. 당대 또는 근처 시기에 노르웨이의 왕으로 물증으로 입증되는 것은 하랄 블로탄이 처음인데, 그가 재위했다는 9세기 후반 알프레드 대왕에게 당대 노르웨이 지역의 상황에 대한 문서를 제공한 노르웨이 출신 선원의 글에서는 그의 존재 뿐 아니라 노르웨이의 통일왕의 존재 조차 언급되어있지 않으며, 조금 뒤의 시기에서는 1075년 독일의 연대기 작가인 브레멘의 아담이 집필한 관련 저서에는 당대 노르웨이의 왕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간혹 전설 혹은 무용담에 에이리크 1세 블로됙스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한데 문제는 이게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
12세기로 가면 그의 존재가 드디어 등장하는데, 당대 영국의 최고의 역사가라 불린 몰멜스버리의 윌리엄의 저서에서 영국 왕애설스탠을 방문하는 '하랄두스(haraldus)'라는 왕이 등장한다. 또 그의 차남인 호콘 1세도 등장하는데, 이후의 노르드 사가 전설에서도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저서가 하랄 1세가 재위한 시기에서 너무 오래 지난 시점에 편찬되었다는 것과, 또 그의 별명으로 유명한 미발(Fairhair)이라는 별명이 하랄 1세가 아니라 더 후대의 노르웨이 왕 '하랄 시구르드손'의 별명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두번째로, 그의 존재를 언급하는 수많은 아이슬란드 사가들의 계보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 아이슬란드의 유명한 연대기 작가인 아리 토르길슨(Ari Þorgilsson)이 등장한다. 그가 살았던 시점은 위에 나오는 몰멜스버리의 윌리엄이 살았던 12세기보다도 더 뒤인 13세기로, 하필이면 당대는 아이슬란드가 노르웨이의 지배를 받던 시점인지라 역사가들 중에는 당시 아이슬란드인들이 지배자 노르웨이에 대한 반감을 사가 문학을 통해 표현했고, 이것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하랄 1세'라는 인물을 설정했다고 보기도 한다.
세번째로, 사가 내의 모순점이다. 노르웨이 본토의 사가에서 하랄 1세가 등장하는 것은 13세기 '왕들의 무용담'이라는 사가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데, 여기 사가에는 그가 재위했던 9세기 그의 궁중 시인이었다는 토르비요른 호른클로피(Þórbjǫrn Hornklofi)의 두개 사가가 원전이라고 전하고 있지만 증거가 없으며, 10세기부터 구전되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글쎄...
하여간 이 사가 중 첫번째는 그가 하프스피요르드 전투(battle of Hafrsfjord)에서 승리했다는 것, 궁정에서의 삶 묘사, 그의 아내가 덴마크인이었다는 것 등이 묘사되어 있다. 두번째는 하랄 1세가 승리한 여러 전투들에 관한 것인데, 이 두시에서 나오는 전투들 및 그 세부사항과 무용담에서 나오는 내용이 전혀 맞지 않는다. 또 첫번째 시의 사본들 중 가장 신뢰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판본에는 아예 하랄 1세가 아니라 하랄 할프다나르손(Haraldr Hálfdanarson)이 등장하는것도 모자라(...) 그의 별명도 나오지도 않는다. 일부 연구자는 이 외에 다른 시들에서도 하랄 할프다나르손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 걸로 보아 하랄 1세가 아니라 그가 진짜 노르웨이의 왕이었던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네번째로, 영국의 전설에서도 하랄 하르파그리라는 인물이 등장하지만(그것도 아이슬란드 사가보다 더 빠른 시기에!), 문제는 이 이름이 하랄 3세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현재 학계에서 하랄 1세의 실존성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그의 실존성 및 사실성에 대해선 두 의견으로 나뉘는 편인데, 그중 하나는 위에 언급했던 아이슬란드인들의 완전한 창작인데 이게 노르웨이로 역수출되었다는 설과, 그가 실존하기는 했지만 알려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노르웨이의 통일왕이 아닌 서부 노르웨이, 그 중에서도 송(sogn)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소왕이었을 것이라는 설, 또는 노르웨이의 왕이었더라도 노르웨이 전역을 총괄하기 보다는 서부 지역에만 직접적인 통치권이 미치는 마치 중세 프랑스 국왕 같은 왕이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의 근거지가 베스트폴드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2], 이에 대해선 그의 전설이 활발히 창작되던 13세기에 베스트폴드, 정확하게는 비켄 지역에서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노르웨이가 비켄이 자기들 영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근거지를 조작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4. 대중문화에서
- 드라마 바이킹스에서 핀란드 배우 피터 프란젠이 연기한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동료로 등장하는데 하랄이 활동한 시기는 라그나르가 활동한 시기보다 50년 정도 나중이다.
-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바이킹의 시대의 올드갓 시나리오(867년)에서 아직 통일이 안 된 노르웨이의 베스트폴드 공작으로 플레이 가능하다. 전용 디시전이 있어 역사속의 하랄처럼 노르웨이를 통일하고 왕국을 세우기 쉽다. 하랄 본인의 전투 능력치도 매우 높아 전투에는 최적이다. 이후 크루세이더 킹즈 3에도 등장하였고, 출시 초기에는 관련하여 어떠한 결단이나 이벤트도 없었지만, 1.4.0 업데이트 이후 소소하지만 고유한 이벤트[3]가 생겼다.
- 게임 마운트 앤 블레이드 워밴드의 DLC인 Viking Conquest에서 노르웨이 왕으로 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위치가 맵 북동쪽 끝이라 노르웨이땅의 남서쪽만 나온다.
- 만화 《빈란드 사가》에서 '해럴드'라는 이름으로 언급이 되는데 작품의 주인공 토르핀의 조상들이 아이슬란드의 이주하게 된 배경으로 하랄의 노르웨이 통일이 언급된다. 물론 작중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위에 하랄에 대한 글에서 그의 반대파들이 아이슬란드에 도피했는데 그들 중 토르핀의 조상도 포함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토르핀은 빈란드, 즉 신대륙으로 향하고자 한다.
- 게임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프롤로그에서 등장해 악역 쿄트베가 죽은 후 노르웨이를 통일한다. 주인공 에이보르가 노르웨이를 떠나 잉글랜드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 승자와 패자 DLC의 1개 시나리오가 이 인물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