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c0013><colcolor=#fff> | |||
출생 | 1749년 1월 29일 | ||
덴마크-노르웨이 코펜하겐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 |||
사망 | 1808년 3월 13일 (향년 59세) | ||
홀슈타인 공국 렌츠부르크 | |||
재위 기간 | 덴마크&노르웨이 국왕[1] | ||
1766년 1월 14일 ~ 1808년 3월 13일 | |||
올덴부르크 백작 | |||
1766년 1월 14일 ~ 1773년 7월 1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c0013><colcolor=#fff> 가문 | 올덴부르크 가문 | |
아버지 | 프레데리크 5세 | ||
어머니 | 영국의 루이자 공주 | ||
형제자매 | 소피 마그달레네, 빌헬미네 카롤리네, 루이세 | ||
배우자 |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 공주 (1766년 결혼 / 1772년 이혼) | ||
자녀 | 프레데리크 6세, 루이세 아우구스타 | ||
종교 | 루터교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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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국왕이자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올덴부르크 백작.잦은 근친혼의 영향으로 무능력한 잉여인간이자 암군이었다.
2. 생애
부왕 프레데리크 5세가 1766년 43세의 나이에 요절하자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4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덴마크를 통치했다. 그런데 궁정 물건을 마구 부수고 사람들을 마구 때려눕히는 등, 워낙 포악한 행보를 많이 보여서 제대로 나라를 통치한 시기는 거의 없다. 외사촌인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 공주[2]와 결혼해서 프레데리크 6세와 루이세 아우구스타를 낳았다.[3]통치력과 판단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1770년부터 1772년까지 자신이 직접 왕실 주치의로 데려온 요한 슈트루엔제가 섭정을 맡았는데, 크리스티안은 슈트루엔제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데다 슈트루엔제의 막강한 권력과 급진적인 개혁은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슈트루엔제가 왕비 캐롤라인 마틸다와 불륜관계라는 소문이 퍼지면서[4] 1772년 1월 16일 새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의 율리아네 마리 여공작과 이복동생 프레데리크 공[5]이 군대를 동원해서, 슈트루엔제와 캐롤라인 마틸다를 체포했고 이후 슈트루엔제는 처형되고 캐롤라인 마틸다도 크리스티안과 이혼하고 덴마크에서 추방당한 뒤 하노버의 첼레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슈트루엔제가 처형된 이후 1772년부터 1784년까지 이복동생 프레데리크 공이 섭정을 맡았다.[6]
올덴부르크 왕조 본가인 덴마크 왕실의 분가인 올덴부르크 백작가가 단절된 이래로 프레데리크 3세부터 크리스티안 7세까지 덴마크 국왕[7]은 올덴부르크 백작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크리스티안 7세가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의 파벨 1세와의 영지 교환을 통해 올덴부르크 백국을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에게 넘기고,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을 덴마크에 합병시켰다.
3. 기타
- 집착적, 발작적 자위행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