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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23:30:36

필리오퀘 문제

필리오퀘 논쟁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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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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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필리오퀘 문제 · 요한의 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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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교회의 시각3. 가톨릭의 시각4. 개신교의 시각
4.1. EKD4.2. 성공회
4.2.1. 성공회 연속 측4.2.2. 세계성공회공동체
5. 역사
5.1. 정교회의 관점에서5.2. 가톨릭의 관점에서
6. 신경의 차이
6.1. 정교회6.2. 가톨릭6.3. 성공회
7. 여담

1. 개요

한편으로는 거룩한 그리스 교부들의 정식들은 설명될 수 있고 또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거룩한 라틴 교부들의 정식들을 비롯해 필리오퀘 역시 그렇게 설명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각자가 지닌 고유한 독창성에 대해 온전히 존중하고 양측 간의 합의를 강조해야 한다. 6세기를 기점으로 '필리오퀘'는 서방 전통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는 교회 간의 일치가 다른 여러 동기로 인해 분열되기 전까지 결코 교회 일치의 장애물로 간주되지 않았다.
-정교회 아드리아누폴리스(하드리아노폴리스) 대주교 다마스키노스Δαμασκηνός, 'Réflexions et perspectives au sujet du rétablissement de la communion sacramentelle', in 〈Oriente Cristiano〉 15 (1975), pp.7-25; 〈Irénikon〉 48 (1975), p.219.에서 인용[1]

필리오퀘 문제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 중 하나인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라틴어본에서 한 단어인 '필리오퀘'를 둘러싸고 동방교회(정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과 가톨릭에서 종교개혁을 통해 나온 개신교) 사이에서 1천 년 넘게 진행중인 신학 논쟁이다. 이 문제의 단어 필리오퀘(Filióque, [filiˈokwe])는 ‘그리고 아들’이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이다. 즉, ‘필리오퀘 논쟁’을 풀어쓴다면 ‘그리고 아들 논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아래에 제시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그리스어본과 라틴어본의 차이를 살펴보자. 해당 신경에서 성령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제3문단의 일부를 발췌해서 제시한다.
τό ζωοποιόν, τό εκ τού Πατρός εκπορευόμενον,
토 조오피온 토 에크 투 파트로스 엑포레보메논
성령은 성부께서 좇아 나시며,

τό σύν Πατρί καί Υιώ συμπροσκυνούμενον καί συνδοξαζόμενον,
토 신 파트리 케 이오 심브로스키누메논 케 신독사조메논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τό λαλήσαν διά τών Προφητών.
토 랄리산 디아 톤 프로피톤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그리스어 원문
Qui ex Patre Filióque procédit.
퀴 엑스 파트레 필리오퀘 프로체디트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聖子)에게서 발하시고

Qui cum Patre et Fílio simul adorátur et conglorificátur:
퀴 쿰 파트레 에트 필리오 시물 아도라투르 에트 콩글로리피카투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Qui locútus est per prophétas.
퀴 로쿠투스 에스트 페르 프로페타스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라틴어본. 위 원문에 대응되지 않는 Filióque('필리오퀘')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필리오퀘 문제는 단순히 번역 과정에서 단어 하나를 추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교의적으로는 삼위일체론 및 그리스도론과,[2] 관련되어있고, 부차적으로는 교회법적, 역사적, 해석학적 질문들과[3] 얽힌 복합적 문제다.

이 문제는 지금껏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였으며, 정교회에서 '성부에게서만 발한다'는 입장을, 가톨릭개신교에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한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4]

필리오퀘 논쟁을 신학적으로 파악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각각의 맥락에서 ㄱ. 교의적인 이단 논쟁인지 ㄴ. 같은 교의임을 전제한 신학적 표현 논쟁인지.ㄷ.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표현 정식에 관한 규율의 문제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2. 정교회의 시각

정교회에서 필리오퀘를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입장은 성령은 성자에게서도 발하신다는 믿음까지는 용인할 수 있으나, 로마 측에서 신경을 독단적으로 수정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입장이다(세르게이 불가코프 등).

두 번째 입장은 성부와 성자 모두로부터 성령이 나온다는 믿음 그 자체가 심각한 신학적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의 복음서 15:26
요한의 복음서 15장 26절 말씀을 필리오퀘를 반대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3. 가톨릭의 시각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에 나오는 아래의 구절은 가톨릭의 시각인 '...그리고 성자'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요한 복음 16장 7절

또한 이후 가톨릭의 필리오퀘 관련 주요 문건은 아래와 같다.
'Propter hanc unitatem Pater est totus in Filio, totus in Spiritu Sancto; Filius totus est in Patre, totus in Spiritu Sancto; Spiritus Sanctus totus est in Patre, totus in Filio. Nullus alium aut praecedit aeternitate aut excedit magnitudine, aut superat potestate. Aeternum quippe et sine initio est, quod Filius de Patre exstitit; et aeternum ac sine initio est, quod Spiritus Sanctus de Patre Filioque procedit.' Pater quidquid est aut habet, non habet ab alio, sed ex se; et est principium sine principio. Filius quidquid est aut habet, habet a Patre, et est principium de principio. Spiritus Sanctus quidquid est aut habet, habet a Patre simul et Filio. Sed Pater et Filius non duo principia Spiritus Sancti, sed unum principium: sicut Pater et Filius et Spiritus Sanctus non tria principia creaturae, sed unum principium.
"성자께서 성부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영원하시고 시작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는 것은 영원하며 시작이 없기 때문이다."[5] 성부의 모든 것이나 성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그분께서는 다른 누구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근원이 없는 근원이시다. 성자이신 모든 것이나 성자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그분께서는 성부에게서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근원에서 나온 근원이시다. 성령이신 모든 것이나 성령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그분께서는 동시에 성부와 성자에게서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창조의 세 근원이 아니라 하나의 근원이시듯이, 성부와 성자께서는 성령의 두 근원이 아니라 하나의 근원이시다.
- 피렌체 공의회 칙서: "Cantate Dominio" 야고보파를 위한 칙서[6]
Spiritum quoque Paracletum (Paraclituml esse, qui nec Pater sit ipse, nec Filius, sed a Patre (Filioque) procedat (procedens). Est ergo ingenitus Pater, genitus Filius, non genitus Paracletus, sed a Patre (Filioque) procedens.
한 분의 (성)령께서는, 성부 자신도 성자도 아니라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 보호자이시나이다. 따라서 성부께서는 나지 않으시고, 성자께서는 나시며, 보호자께서는 나지 않으시고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나이다.
447년 톨레도 교회회의[7]
Et tamen non frustra in hac trinitate non dicitur uerbum dei nisi filius, nec donum dei nisi spiritus sanctus, nec de quo genitum est uerbum et de quo procedit principaliter spiritus sanctus nisi deus pater. Ideo autem addidi, principaliter, quia et de filio spiritus sanctus procedere reperitur.
하지만 이 삼위일체에서 성자만 '하느님의 말씀'이라 일컫고, 성령만 '하느님의 선물'이라 일컬으며, 말씀이 태어나고 성령이 주로 발하는 대상이 성부 하느님이라고 일컬음도 부질없이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주로'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성령은 성자로부터도 발출함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De Trinitate) 제15권 17.29.[8]
Spiritus Sanctus a Patre et Filio: non factus, nec creatus, nec genitus, sed procedens.
성령께서는 생겨나지도 창조되지도 나지도 않으셨으며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나이다.[9]
- 퀴쿰퀘(Quicumque) 신경.[10]

필리오퀘에 대한 교의적 지지는 비단 라틴 교부들에게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그리스 교부인 고백자 막시모스도 성자로부터의 성령 발출(ekporeuesthai)에 대해선 명시적으로 동의하였다.
물론 도시의 여왕(콘스탄티노폴리스)의 사람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현 교황님의 시노드 서한을 공격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분이 쓴 모든 장(章)들을 공격한 것은 아니고 그중에서 두 장만 공격했습니다. 하나는 (삼위일체) 신학으로 그들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은 또한 성자로부터도 자신의 발출(ekporeuesthai)을 갖는다." 또 다른 하나는 신적 강생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로마인들)은 첫 번재 사안과 관련해서 만장일치로 라틴 교부들의 증언들을 제시했으며, 거기에 더해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가 성 요한의 복음에 대해 작업했던 거룩한 연구에 따라 그의 증언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여러 증언에 바탕을 두고 성자를 성령의 원인(aition)으로 만들지 않은 점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ㅡ 실상, 그들은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점, 곧 한 분은 출산을 통해서 다른 한 분은 발출(ekporesi)을 통해서 유일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ㅡ 무엇보다도 그들은 성자를 통한 발출(to dia autou proïenai), 그리고 이를 통한 본질의 일치와 동일성을 입증했습니다. ··· 그러므로 그들(로마인들)은 잘못 비난 받은 것들과 관련해서 비난당했습니다. ... 당신의 질문에 따라, 저는 로마인들이 자신들에게 고유한 것("또한 성자로부터")을 번역하도록 청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서부터 유래할 수 있는 애매모호함을 피하게 했습니다. ... 그밖에 그들의 생각을 하나의 언어로, 그들의 모국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외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고백자 성 막시모스(AD 580-662), 키프로스의 사제 마리노스에게 보낸 편지(AD 655)[11]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신경의 라틴 전승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발하신다.”고 고백한다. 1438년의 피렌체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성령께서는 그 본질과 존재를 성부와 성자에게서 동시에 받으시며, 유일한 근원이신 한 위와 또 다른 위에게서, 유일한 발출(spiratio)을 통하여 영원히 나오신다. …… 그리고 성부께서는 아버지로서 외아들을 낳으시고, 당신의 존재만을 제외하고는 당신께 있는 모든 것을 외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성자에게서 나오신 성령의 이 발출도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신 성부에게서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6항
동방 전통은 우선 성부께서 성령의 첫 기원이심을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요한 15,26) 성령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나오신다는 것을 확언한다. 그러나 서방 전승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필리오퀘) 발하신다고 말함으로써 우선 성부와 성자께서 한 본체로서 이루시는 일치를 표현한다. 서방 교회는 이를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본체로서 일치를 이루는 하느님 위격의 영원한 질서는, 성부께서 “근원이 없는 근원”으로서 성령의 일차적 근원이심을 내포하고 있지만, 한편 독생 성자의 성부로서 성자와 함께 “성령께서 나오신 유일한 근원”이시라는 사실 역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당한 보완은, 그것을 지나치게 고착시키지 않는다면, 동일하게 고백하는 신비의 실재를 믿는 신앙의 단일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8항

이미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래와 같이 고백하였다.
두 분에게 나온 성령
같은 찬미 드리세.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입을 열어 찬양하세(Pange, lingua)의 마지막 부분

4. 개신교의 시각

개신교 역시도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적 맥락에서 신학을 하기에, (교의 그 자체에서 필리오퀘가 맞다고 봄은 물론이고) 필리오퀘가 신학적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이는 근본주의 개신교만의 입장이 아니라, 근본주의든 신정통주의든 개신교 신학 전반의 공감대이다. 실제로 필리오퀘 논쟁에서, 현대 신학자 중 정교회에 대해 가장 모욕적인 부류의 발언을 날린 카를 바르트는 가톨릭 신학자가 아닌 개신교 신학자이다. 바르트는 러시아 정교가 철학과 신학, 이성과 계시, 전통과 직접적인 조명, 성령과 본성, 신앙(pitis)과 지식(gnosis),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를 혼동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혼동의 원인이 필리오퀘의 생략에 의해 야기되었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러시아 신학자들과 종교 철학자들은 철학과 신학, 이성과 계시, 전통과 직접적인 조명, 성령과 본성, 신앙(pitis)과 지식(gnosis),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리오퀘에 대한 완고한 부인과 그러한 사고의 형태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Karl Barth, 《Kirchliche Dogmatik》 Volume I, 1
다만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하신다'라는 명제가 개신교 신학에서 옳다고 인정받음에도 불구하고,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고백할 때는 필리오퀘를 생략하는 것도 정교회와의 대화를 위해 괜찮지 않냐는 시선도 많아졌다.[12]

요약하자면,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한다'라는 신학적 명제에 대해선 거의 모든 개신교 교단이 동의를 한다. 그러나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어떻게 고백할지에 대해서는, 교단 및 신학자에 따라서 견해가 엇갈린다.

4.1. EKD

Wir glauben an den Heiligen Geist,
der Herr ist und lebendig macht,
der aus dem Vater und dem Sohn hervorgeht
EKD,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Nizänisches Glaubensbekenntnis)
EKD[13]에서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기본 본문으로 필리오퀘가 들어간 버전을 공지했으며, 다만 주석을 통해 필리오퀘가 서방 전통임을 명시하고 있다.

4.2. 성공회

The Holy Ghost,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is of one substance, majesty, and glory, with the Father and the Son, very and eternal God.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 성령은 참되며 영원하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함께 같은 본질과 권세, 영광을 가진다.
성공회 39개 신조5조
3. [...] requests that all member Churches of the Anglican Communion should consider omitting the Filioque from the Nicene Creed, [...].
3. 성공회 연합 회원 교회 모두가 니케아 신경에서 '필리오퀘'를 제거할 것을 고려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1978년 11차 람베스 회의 결의안 35의3#
5. Asks that further thought be given to the Filioque clause, recognising it to be a major point of disagreement, (a) recalling Resolution 35.3 of the Lambeth Conference 1978 and the varied, and on the whole positive, response from those provinces which responded to ACC-4's request to consider the removal of this clause from liturgical texts, (b) noting that the Report of the Faith and Order Commission of the WCC "Ecumenical Explication of the Apostolic Faith as expressed in the Niceno-Constantinopolitan (381) Creed" bases itself on the original text, (c) believing that it may be possible to achieve unity of action on the part of all the 'Western Churches' to adopt the original form of the Creed without any betrayal of their theological heritage, (d) recommending to the provinces of the Anglican Communion that in future liturgical revisions the Niceno-Constantinopolitan Creed be printed without the Filioque clause.
5. '필리오퀘' 문제가 주된 의견 불일치 지점임을 인정하며 이에 대해 더욱 숙고할 것을 요청합니다. (a) 1978년 람베스 회의 결의안 35.3 등을 상기하고, 전례용 텍스트에서 필리오퀘를 제거할 것을 고려해달라는 ACC-4의 요청에 응한 일부 관구들로부터의 긍정적 신호를 상기합니다. (b)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언급된 "381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표현된 사도적 신앙의 교회일치적 실현"이 원본 텍스트에 기반을 둔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c) 모든 '서방 교회'의 측에서 각자의 신학적 전통과 배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경의 원형을 채택하는 데 일치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믿습니다. (d) 성공회 연합 내 모든 관구 교회에 차후 전례 개정 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필리오퀘 없이 발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1988년 12차 람베스 회의 결의안 6의5#
Resolved, That this 71st General Convention, following the resolution of the 68th General Convention, and responding to Resolution 19 of the joint meeting of the Primates of the Anglican Communion and the Anglican Consultative Council (Capetown 1993), hereby reaffirm its intention to remove the words "and the Son" from the third paragraph of the Nicene Creed at the next revision of the Book of Common Prayer.
결의안: 71차 관구회의는, 68차 회의 결의안에 따라 또한 1993년 케이프 타운에서 열린 ACC-9의 결정사항에 상응하여 차기 성공회기도서 개정 시 "..와 성자"의 표현을 니케아 신경의 세 번째 단락에서 삭제할 의사를 재차 천명한다.
1994년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 71차 관구회의 #

종교개혁 과정에서 성공회에서는 필리오퀘에 관한 가톨릭의 입장을 유지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성공회가 Continuum 측과 Communion (성공회 연합) 측으로 분파됨에 따라 필리오퀘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현재 캔터버리를 중심으로 성공회의 주류를 이루는 Anglican Communion (성공회 연합) 측에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원본을 따라 필리오퀘를 제거하는 것이 표준이다. (... and the Son) 등 괄호를 사용하여 필리오퀘가 선택사항인 양 표현하는 것은 표준이 아니다. (참조: 캐나다 성공회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경)

다만, Anglican Communion에서 '선택 없이 필리오퀘가 제거된 신경'이 표준임에도 불구하고, 이 신경 자체의 선택 여부는 소속 교구들의 자율이다. 그래서 대한성공회는 성공회 연합에 속하지만, 78년 88년의 결의 이후에 발간된 2004년 기도서(2018년 개정) 에서도 여전히 괄호안에 '...와 성자' 를 포함한다.[14] 대한성공회에서 필리오퀘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결의를 시도하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결의의 결과가 성공회 내 근본주의 행보를 암암리에 endorse하는 것인지 여부는 불명이다.[15]

또한 성공회 39개 신조와의 역사적 연속성 및 소속 교구들의 신경 채택 자율에서 보듯, 성공회 연속이 교의적 필리오퀘[16]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4.2.1. 성공회 연속 측

성공회의 신학적 보수파인 성공회 연속(Anglican Continuum)[17]에서는 성공회 39개 신조의 5조에 명시된 "성부와 성자로 부터 나온 성령..."을 들어 필리오퀘를 신앙의 필수 요소로 간주한다.

그러나 Anglican Continuum 측 내에서도 ACNA (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 등 옥스포드 운동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교단에서는 고대 보편 공의회를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에 필리오퀘를 제거한 신경을 표준으로 받아들인다.[18] 단 이것이 필리오퀘가 상징하는 신학(성자로부터 성령이 발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이것은 개별 교파의 변칙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고, 성공회 연속 측의 국제적 의사결정체인 Global Fellowship of Confessing Anglicans에서는 필리오퀘를 제거하지 않은 신경을 여전히 표준으로 삼고 있다.

4.2.2. 세계성공회공동체

캔터버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성공회의 주류인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에서는 동방정교회와의 대화 및 WCC의 결의사항에 의거하여 필리오퀘를 제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적어도 위에서 언급된 1978년, 1988년 '람베스 회의'의 결과 상으로는 그러하다. '람베스 회의'는 대한성공회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성공회 교회에서 파견된 주교들의 회의인데, 그 결과는 각 관구(province)에 결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각각의 관구는 람베스 회의의 '권고사항'을 자국의 교회에 반영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미국, 캐나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성공회 등은 필리오퀘를 기도서에서 제거하기로 결의하였다. [19]

5. 역사

그렇다면 이 논쟁은 언제, 어떻게 촉발되었는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한다는 교의는 Quicumque 신경(5세기)과 447년의 톨레도 시노드(공의회)에서도 이미 발견되며, 따라서 교의적 의미에선 아무리 늦게 잡아도 5세기에는 개별 라틴 교부의 신학을 넘어, 라틴 교회의 공통 믿음이었다.

한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의 필리오퀘 문장 삽입은 6세기 말에 일어났다.[20] 589년 톨레도 교회회의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고백하면서 본래는 없던 Filioque 문장을 삽입히였다. 이는 당시 횡행하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파를 견제할 요량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특히 톨레도에서 개최된 여러 공의회(589,638,653,675,693)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서방교회는 아리안 이단과 격렬하게 논쟁하고 있었다. 따라서 Filioque의 사용은 "성자와 성령"에 대해서 말하는 신약성서의 텍스트들(로마 8,9[21]; 필리 1,19[22]; 2코린 3,17[23]; 갈라 4,6[24])을 위해서도 필요했고, 성자가 성부와 완전한 동일본질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했으며, 삼위 중 제2위와 제3위의 위격을 구별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이다.[25]
-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2014), 446쪽
그러나 이 수정은 프랑크 왕국의 미사에서 암송되기 시작한 800년경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800년 경부터 이 수정이 널리 알려졌는데, 847년에 ‘필리오퀘’ 신경이 프랑크 왕국 수도자들에 의해 예루살렘에 전해지자, 예루살렘의 동방 교회 수도자들은 그에 대해서 크게 반발하였다.

로마의 반응을 보자면, 교황 레오 3세는 신경에 필리오퀘를 첨가하는 것은 막으려고 하였고, ‘필리오퀘’가 없는 신경을 코이네 그리스어라틴어로 각각 성 베드로의 묘에 봉헌된 은탁자 두 개에 새겨 넣도록 지시하기까지 한다. 다만 교의적인 문제에서는 필리오퀘에 동의하였다.
이후 9세기에 들어 교황 니콜라오 1세는 영향력 증대를 위해 ‘필리오퀘’ 교리를 불가리아 제1제국에 퍼뜨리려고 하였다. 이에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였던 포티오스는 86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의회를 열어 니콜라오 1세를 파문하였다. 이 사건을 포티오스 분열이라고 한다.

1054년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세계 총대주교’ 칭호를 버릴 것과, 또한 ‘필리오퀘’ 신경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동방 교회는 이러한 서방 교회의 주장은 억지스러운 요구라 여겼으며, 끝내 세계 총대주교는 당시 교황 레오 9세의 특사였던 훔베르트 추기경을, 추기경은 세계 총대주교를 파문한다.

Filioque 삽입구의 해석에서 또 하나의 난점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언어의 문제이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에 의하면 동방의 그리스어 ekporeusis는 성부에게서만 발출하는 성령의 기원을 가리키며, 일반적 의미의 발출인 tò proïénaí와 구별이 된다. 즉 그리스어 신경에서의 εκπορευόμενον(ekporeuomenon)과 라틴어 신경에서의 procedit이 뉘앙스를 다르게 하며, 이 차이가 양자의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가톨릭에서 그리스어 신경의 ekpóreusis의 고유한 뉘앙스를 존중하고, 정교 측에서 Filioque의 신학적 가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화의 결실이 커지고 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성령의 발출에 관한 한 성부에게만 그 권한을 부여하는 동방교회와 희랍 교부들의 전승인 것은 사실이다. 성부만이 근원 없는 근원으로서 성자와 성령의 유일한 원천이다. 게다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도 성령은 자신의 기원을 "으뜸으로"(principaliter), 즉 으뜸의 자격으로,[26] 또는 고유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27] 성부에 둔다고 증언한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에 의하면 동방의 언어에서 성부에게서만 발출하는 성령의 기원을 일컬어 ekpóreusis라고 했다. 가령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는 성부에 기원을 둔 성령의 발출을 ekpóreusis라고 함으로써 일반적 의미의 발출(tò proïénaí)와 구분했다.
성령은 성부에게서 나오지만(proion) 낳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발출(ekpóreusis)하는 것이다.[28]
이 ekporeusis는 proienai와는 달라서 오로지 삼위일체의 근원 없는 근원인 성부라는 기원과의 관계만을 나타낸다. 그래서 동방교부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한다."는 말을 거부하는 것이다.
어쨌든 동방교회는 성자와 성령이 그들의 기원인 성부와 갖는 관계를 다음의 정식으로 표현한다. "Dià toû Huioû ekporeuómenon", 즉 성령은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하여"[29] 발출한다.
동방교회에서는 성령과의 관계에서 성부를 으뜸가는 기원으로 꼽지만, 서방교회에서는 성부와 성자가 갖는 동일본질에 초점을 맞춘다.
라틴교회의 Filioque는 그 의미는 옳다고 하더라도 삼위일체 안에서 성령을 종속적인 관계로 몰고 가지 말아야 한다. 가톨릭교회가 동일본질의 차원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한다고 표현할지라도, 동방교부들이 ekpóreusis라고 표현하던 그 관계, 즉 성령이 성부와 위격으로 갖는 원래의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30]
...최근에는 Filioque가 서방교회의 신경에 삽입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나,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서방교회 전반의 신경에 수록되어 있는 Filioque의 신학적 가치에 대해서 동방교회의 차원에서도[31] 긍정적인 인식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32]
-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2014), 444-446쪽

또한 가톨릭-정교회 대화를 넘어, 동서방 에큐메니컬 운동에서도 이 논쟁에 대한 긍정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1978년 10월 26-29일과 1979년 5월 23-27일에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근처의 클리엥탈(Schloss Klingenthal)에서 필리오케와 관련하여 두 차례 회담을 개최하였다.[33] 이 회담에는 다양한 교파적 배경을 가진 신학자들이 참여하였고, 이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제안서를 작성하고 비준하였다.[34] 제안서는 필리오케와 관련하여 전 세계 교회들의 상호이해와 화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위원회는 각 교파가 “자신들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서,”[35] “이 문서의 내용이 교회들에 의해 공유되어져야”[36]함을 피력하였다.
... 제안서는 589년 톨레도 공의회가 당시 스페인에 퍼져있던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필리오케에 준하는 문구(“에트 필리오”)를 신경에 첨가해야 했던 역사적, 신학적 정황을 정당하게 인정하고,[37] 신경을 수정한 행위와 톨레도의 신학이 동방정교회의 가르침에 적대적인 행위가 아니었음도 지적하였다.[38] 또한 제안서는 샤를마뉴와 그의 신학자들이 필리오케를 적극적으로 고백할 때, 교황 레오 3세(Leo III)가 신경을 변경하는 것을 거부했던 사건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였고,[39] 성부단일원인성에 대한 포티오스(Photios)의 이해가 지나치게 논쟁적이었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균형 잡힌 역사적 접근에 더하여, 회담에 참여한 신학자들과 제안서는 카파도키아 교부들로 대표되고 성부의 단일원인성을 강조하는 동방정교회의 삼위일체론 전통과 아우구스티누스로 대변되며 필리오케를 인정해 온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 전통을 상호보완적으로 화해시키고자 하였다.[40] 먼저 성부단일원인성이 동 ‧ 서방 교회의 교부들의 공통된 전통이라는 것을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신성의 원인(아이티아[αἰτία])으로서의 위격적 독특성이 성부 하느님께만 해당한다는 성부단일원인성은 그리스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라틴교부들에게도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제안서는 강조하였다.[41] 이러한 공통된 전통에 신학자들과 제안서는 서방교회의 필리오케 전통을 화해시키고자 하였다. 화해의 방향성은 보리스 볼로토프가 1898년 익명으로 출판하였던 논문에서 일찍이 제안하였던 정식인 ‘성령이 성자의 아버지이신 성부로부터 발출 하신다’를 따르는 것이었다.
성령께서 성부로부터만 발출하시지만, 그분의 발출은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께서 성부로서 행동하신다 관점에서 드러나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와 연결된다. 그러기에 성부로부터의 성자의 출생은 성령의 발출을 성자의 성부로부터의 발출로 규정한다. ... 필리오케는 성령의 온전하고 완벽한 위격이 성부로부터 발출하신다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삼위 간의 관계성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지닌다.[42]
즉, 제안서는 성령이 위격적 측면에서는 성부로부터만 발출하신다는 것으로 강조하여 성부의 단일원인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필리오케는 단일원인이신 성부께서 삼위일체 안에서 ‘성자의 성부’이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여 두 전통을 조화시키려 하였다. 이같은 방식으로 필리오케가 성부의 단일원인성과 조화될 때, 필리오케는 삼위 모두가 동일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고 상호교류적 관계(perichoresis) 안에 존재하심을 보여 줄 수 있는 표현이 됨을 제안서는 강조하였다.[43]
-이충만. 〈필리오케(Filioque) 논쟁의 교의적 문제들과 의의 ―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1981년 제안서와 로마가톨릭교회의 1995년 해설서를 중심으로〉

5.1. 정교회의 관점에서

필리오퀘 삽입은 신경의 수정을 금지한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뿐만 아니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수정을 금지한 879-880년의 제8차 세계 공의회의 결정을 어기는 행위이다. 로마 교황 또한 이 제8차 세계 공의회의 결정을 인정하다가 11세기에 돌연 취소하고 869-870년의 '강도 회의'를 보편 공의회로 인정했다.[44] 이는 또한 서방의 독단적 행위이며 그 이면에는 로마 교회의 결정에 모든 교회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즉 교황 수위권의 주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다만, 상술했듯이 필리오퀘 문제는 단순히 교회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주저함 없는 결의와 신앙의 순수함으로, 뿐만 아니라 동요되지 않는 판단력을 지닌 그분의 거룩한 제자들인 사도들의 거룩한 법령들과 교회법적 규정들로, 또 참으로, 한 분이시고 같은 분이신 성령의 영감으로 지도되고 [그리스도인] 설교를 가져온 저 거룩한 일곱 세계 공의회로, 우리 지성의 가슴 속에 확립되어온, 우리 주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경할만한 신적 가르침을 공동으로 축성하고 보전하며, 또한 가장 정직하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로 해칠 수 없고 위조될 수 없는 교회법적 제도들을 공동으로 수호하며, 우리는 교회로부터 쫓겨난 자들은 축출하고,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들 자신이 명한 바대로 영예와 성스러운 경의가 마땅한 정교회의 스승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 또 선언하며, 우리는 아무것도 빼지도 않고,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 교부들에 대한 비난과 용납할 수 없는 공격으로부터 제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내놓는 사악한 자의 독창적인 거짓말에 어떤 이단도 동요되지 않을 때, 빼거나 덧붙이기 위해 아무것도 위조하지 않는 교부들을 통하여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온 가장 순결한 그리스도인 신앙의 이 호로스(규칙)를 '지성과 언어로'(τῇ διανοίᾳ καὶ γλώσσῃ)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선언한다.
교부들의 호로스들을 위조된 말로 바꾸는 행위에 관해 말하자면 앞의 것보다 더 나쁘다.
따라서, 이 거룩한 세계 공의회는 온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적 열망과 지성의 올곧음으로 선언하며, 그 위에 구원의 굳은 체계를 확립하고 곤두세우며, 이와 같이 우리는 생각하고 이 전언을 큰 소리로 모두에게 선포한다.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나이다 ... 그리고 또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 하느님의 외아들 … 그리고 주님이신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께서 좇아나시며 … [신경 전체가 열거됨]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앙 고백 안에서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가 세례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통해 진리의 말씀께서 모든 이단은 산산조각이 나고 상쇄됨을 입증하셨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을 형제들과 아버지들, 하늘 나라의 상속인들로 등록한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감히 신앙의 규칙을, 우리의 복되고 거룩한 교부들에 의해 위로부터 우리 자신들에게까지 널리 펼쳐져 온 성스러운 상징과 견준 다른 설명으로 고쳐 부르고, 저 신적인 사람들의 고백의 권위를 강탈하고 '그 자신이 창안해낸 웅변'(ἰδίαις εὑρεσιολογίαις)을 강요하며 신앙인들이나 이단의 한 종류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공적인 교훈으로 내세운다면, 그리고 위법적인 말들이나 덧붙임, 덜어냄 따위로 이 성스럽고 공경할 만한 호로스의 유물을 '뻔뻔하게도 완전히 위조한다면'(κατακιβδηλεῦσαι ἀποθρασυνθείη), 그런 사람은 이미 우리 앞에 만장일치가 된 거룩한 세계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그가 만일 성직자라면 완전한 면직될 것이고, 평신도라면 파문당하여 쫓겨날 것이다..
-제8차 세계 공의회(879~880) 결의문
대분열은 서방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 간의 분열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대분열은 11세기에 일어났습니다. 동방과 서방이라는 두 위대한 전통의 관계는 4세기부터 자주 삐걱거려 왔습니다. 하지만 신학적 표현과 전례적 관습 그리고 권위의 관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성과 조화는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9세기경, 정치적 환경, 문화적 균열, 교황의 요구와 주장 그리고 서방 교회에서 니케아 신조에 ‘필리오쿠에(Filioque)’를 삽입한 것 등으로 인해서 차이는 점차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필리오쿠에는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교황의 법적 수위권 주장과 필리오쿠에는 동방에 의해 강력하게 거부되었습니다.
정교회 한국 대교구
로마인들의 거룩한 교회에 있는 친교의 공유자이자, 공동 참가자이며, 상속자인 우리의 형제 총대주교이자 공동 예배집전자이며 가장 경탄스럽고, 지극히 경건한 하느님의 대사제인 포티오스를 받아들입니다 ... 우리는 그를 가식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 누구도 그를 거슬러 개최된, 그에게 불리한 부당한 공의회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 누구도. 이는 소떼처럼 행동하는 많은 이들이 보기에 옳았기 때문에 우리보다 앞선 복된 성직자들이 그에 대한 반대표를 냈었습니다. 니콜라오와 하드리아노는 포티오스를 거슬러 교묘하게 꾸며낸 이유들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포티오스를 반대하는 모든 것들이 이제는 중지되고 추방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8세, 바실리오스레온알렉산드로스 황제에게 보내는 편지(Mansi vol xvii, cls. 400D & 401BC. For the Greek see Dositheos op. cit. p. 281f)
성하를 거슬러 소집된 공의회를 나의 복된 전임자 하드리아노 교황이 이 회의에 참가하지 않은 것과 몇몇 다른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이를 무효화했고, 제거하고, 우리의 기록 보관소에서 추방했습니다.
-교황 요한 8세, 포티오스 총대주교에게 보내는 편지(Mansi vol. xvii cl. 416E. For the Greek see Dositheos op. cit. p. 292)
우리는 이러한 행위들을 규탄했고, 소위 8차 공의회라 불리는 이것을 우리 문서고에서 제거하고 단죄하여(anathematize) 지극히 거룩한 우리 총대주교 포티오스와 연합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당신 스스로 앞서 언급했던 포티를 거슬러 쓰이고, 말하여졌던 소위 8차 공의회라 불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이들을 파문했습니다.
-교황 요한 8세, 포티오스 총대주교에게 보내는 편지(Mansi vol. xvii, cl. 472AB)
8차 세계 공의회의 사례는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할 뿐만 아니라, 동방 정교회와의 분리 이후 로마 교회의 자의적 공의회의 발전을 나타내는 계기를 제공한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8차 세계 공의회는 869~870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열린 8차 세계 공의회이며, 이그나티오스를 총대주교좌에 복위시켰고, 다른 사항 중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포티오스에 대한 단죄가 포함되어 있어 이그나티오스 공의회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그나티오스 공의회는 정확히 10년 후에 열린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현대의 연구에 의해 명확히 확인된다. 이 공의회는 성 포티와 그의 동료 사제들이 무죄임을 밝혀 주고, 성 포티오스가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에 복위했으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모두에게 서명을 받았다. 천주교는 어떻게 공의회의 사실을 무시하게 되었을까? 파파도풀로스 케라메오스(Papadopoulos Kerameus)에 이어 879~88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가장 철저한 연구의 저자인 요한 메이어(Johan Meijer)는 천주교의 교회법 학자들이 12세기 초에 처음으로 제8차 세계 공의회(이그나티오스 공의회)를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드보르닉(Dvornic)과 다른 학자들과 함께, 메이어도 이것이 의도적으로 행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이들 교회법 학자들이 그 공의회의 교회법 조항 22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이 공의회는 879-880년의 포티오스 공의회에 의해 무효화 되었고, 그 법령(Acts) 또한 교황청 문서고에 보관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고, 나중에 천주교에서 오히려 이 포티오스 공의회를 “Conciliabulum Oecumenicum Pseudooctavum(거짓 8차 세계 공의회)”로 불렀고(그들 스스로도 포티오스 공의회에 교황사절을 보내 동의와 서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것을 그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또 다른 8차 세계 공의회의 대립 공의회로 암묵적으로 인정하였음이 흥미롭다!
The 8th Ecumenical Council:Constantinople IV (879/880)and the Condemnation of the Filioque Addition and Doctrine


살라미스의 성 에피파니오스의 「정박자」에서의 서술을 근거로 신경의 변개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 한 주교의 행위를 근거로 그것이 올바르거나 해도 좋을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에피파니오스의 행위가 교회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그릇되었는지 어떠하였는지는 제쳐두더라도, 그의 행위가 서방의 필리오퀘 삽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예컨대 어느 주교가 아리우스주의나 단성론 등의 이단을 주장한다고 하여서 그것이 그 주장을 믿거나 따라도 좋을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에피파니오스 주교 개인이 신경을 변경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하여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다른 주교나 지역교회가 신경을 마음대로 바꾸어도 좋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논리를 일관적으로 주장한다면 역사상의 여러 대립 교황이 있었으니 현대에 대립 교황을 다시 세워야 한다거나, 성 호노리오 1세는 단의론을 믿었으니 우리도 단의론을 믿어야 한다거나, 아타나시오스 성인이 아리우스주의에 경도된 로마 주교를 반대하고 나서서 파문을 당한 상태에서 성직자들을 서품하고 교회를 수호하였으니 현대주의에 경도된[45]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반대하여 주교를 성성한 마르셀 르페브르도 정당하다는 등의 주장도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측 입장에서 포티오스 성인의 에페소 공의회 논증에 대해서 긴 반박을 하였으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879~880년 8차 세계 공의회에서 필리오퀘는 단죄되었으며 또한 필리오퀘가 없는 신조의 변경 금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하였고 이는 요한 8세의 서방교회와 포티오스의 동방교회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포티오스의 논증이 역사적으로 틀렸던 어쨌던 당대의 서방교회는 포티오스의 복위를 인정하고 필리오퀘를 단죄한 공의회에 동의하였으나, 11세기에 이르러 프랑크족과 그레고리안 개혁의 영향으로 교황 수위권 주장 강화를 위하여 케케묵은 869년의 공의회를 끄집어내어 수 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교회 공통의 합의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5.2. 가톨릭의 관점에서

그것은 "성자로부터도(라틴어로는 Filioque)"라는 구절을 추가한 것이다. 즉 "성부로부터 발하는 ...... 성령을 믿나이다."라는 구절에 서방 교회가 "성자로부터도"라는 구절을 추가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와 똑같이 성자로부터도 발하게 되었다. 이 구절은 589년 스페인의 제3차 톨레도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추가되었고, 8세기 후반 이후 전 프랑크 제국에 급속히 전파되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신성에 있어 성자-성부의 동등성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잔존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교황들은 처음에 이 구절을 추가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동방 교회는, 특히 포시우스(Photius)가 9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로 재임하는 동안에, 신학적인 근거와 더불어 신경에 어떤 변경도 금지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첨가를 강하게 반대했다. 이는 11세기 동·서방 교회의 대분열의 주원인이 되었고, 이후 재일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55-56쪽

포티오스의 주장은 2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신경을 변경했다는 것이고, 2번째로는 신학적으로 그릇되었다는 것이다.

가톨릭의 관점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된다.

첫 번째 주장에서 포티오스는 기초적인 사실 관계를 잘못 파악하였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하였다. 포티오스의 전제와는 달리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변경을 금지한 신경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이다.
381년 공의회[46]의 그 신경은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가 열린 451년부터 비로소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확증되었으며 "보편 공의회"로 명명되었다.
-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2014), 445쪽

즉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변경 금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문서실에서 "졸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칼케돈 공의회 이전 시기에는 동방에서도 그저 드물게만 알려지고 사용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니케아 신경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수용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다가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 신경이 황제의 관리들에 의해 교부들에게 정식으로 강권되었고, 그리하여 거기서 이 381년 공의회가 추인받아 보편성을 획득했다.
(중략)
로마에서는 ··· 500년경까지만 해도 니케아와 에페소와 칼케돈 공의회 셋만 보편공의회로 인정했다.
-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9-60쪽
이 교회회의는 이미 콘스탄티노폴리스 지역 교회회의(382년)가 교황 다마소에게 보낸 서한에서(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교회사」Historia ecclesiae) "세계 공의회"로 불린다. 그렇지만 이 교회회의가 일반적으로 "세계 공의회"로 인정받은 것은 훨씬 나중 일이다.
- 덴칭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소개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신경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인 것은 언뜻 보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왜 직전 세계 공의회가 아니라, 훨씬 전의 세계 공의회 신경을 겨냥한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세계 공의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이해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공의회들이 "보편적"ōkumenisch인가라는 물음은 가장 까다로운 물음 가운데 하나다. 역사학자로서 교회론적으로 먼저 결단하지 않고는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보편적"(즉, "전반적"allgemein) 시노드와 지역적(부분교회적) 시노드의 명확한 구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제쳐놓더라도,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던 많은 시노드의 보편성이 오랫동안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까지도 논란되거나 부인되는 반면,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전혀 보편적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전체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들도 있다. 후자의 대표 사례로는 그 신경이 오늘날 모든 중요한 그리스도 교파의 구속력있는 교리문서들 속에 들어 있는 저 공의회, 곧 381년에 개최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들 수 있다.
-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15쪽
니케아 공의회는 일차적으로 이전 공의회들도 했던 일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공의회는 이단을 단죄하고 그것에 맞서 신경을 확정했다. 이전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해 보건대 니케아 공의회는 아직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고, 단지 양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을 따름이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예를 들어 갈리아 지방에서 아리우스설에 앞장서 대항한 걸출한 전사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가 니케아 신경을 공의회 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 역시 360년경에도 이 신경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공의회들은 뭐라 해도 시대와 상황에 메인 기구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니케아 이후의 공의회들이 니케아 신경의 정식들을 간과하고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정식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후대의 관점에 터해 거기서 전체 교회의 "교의"에 대한 침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니, 이 "새로운" 정식들의 실패를 통해 비로소 전체교회의 구속력있는 신앙규범으로서의 니케아 신경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사실 새로운 상황에서 전승되어 온 신앙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식화를 모색하는 것은 뭐라 해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45쪽

사실 세계 공의회(혹은 보편 공의회)라는 말은 엄밀하지 않았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경우 이전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할 때 양적으로는 우위성을 지닐 수 있어도,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령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은 360년경에도 니케아 신경(325년)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의 경우는,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보편적이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전체 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에 해당한다.

게다가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공식 문헌이 있었는지도 의심되며, 현대에는 참석자들의 단편적인 기록들로만 그 과정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공식 문서들이 전해 오는 에페소나 칼케돈 공의회와는 달리, 이 첫 보편 공의회는 회의록과 공식 문서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는 니케아 공의회에 관해 단지 결실, 측 카논(법규)들과 신경만 가지고 있을 뿐, 토의 과정과 내용은 모른다. 공의회의 진행과정에 관해서는 아타나시우스 같은 참석자들의 단편적 메모들과 하나 하나 매우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할 교회사가들의 기록들(예컨대 에우세비우스의 「콘스탄티누스의 생애」나 1백 년 뒤 소크라테스의 저술) 약간만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공식 문서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필경 고대 공의회들은 국가적 회합들의 관례를 넘겨받아 재판 기록들을 작성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밖의 자문회의들에 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
-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39-40쪽

또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경우도 비슷하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 동방 제국만 통치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 공의회를 소집했다. 당시 서방의 황제는 그라티아누스(375~383 재위)와 발렌티아누스 2세(375~392 재위)였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150여 명 가운데(소크라테스 『교회사』 5,8), 서방 사람들은 없었고,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는 사절을 파견하지도 않았다. 이런 까닭에 공의회의 영향력은 처음엔 보잘 것 없었다. (중략)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신경도 공의회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법규들만 여러 교회법 모음집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 에른스트 다스만, 《교회사 II/2》,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16), 98쪽

물론 "무슨 시노드가 세계 공의회인가?"가 엄밀하지는 못했더라도 역사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와 신경은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점점 지위를 확립해나간 것은 맞기는 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옛 사람들에게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후대의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와 에페소 공의회에 비해서 '매우' 우월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의 기정사실화한 다음과 같은 가정이 생겨났는데, 칼케돈 공의회에서야 비로소 거기서 벗어나게 될 터였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의 손바닥 안에, 높디높은 니케아 공의회의 넓디넓은 그늘 아래 있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와 대등하게 병렬하지 못하며, 비록 엄밀하게 예속적인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아무튼 근본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의 현실화"일 따름이다. 여타 공의회들은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진술들이 니케아 신경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상치되는지를 규명해야 하며, 전자는 승인하고 후자는 단죄해야 한다. 모든 것을 판단하는 척도는 니케아 신경이다. 여기서 니케아 공의회는 일련의 공의회 중 첫 공의회가 아니라, "슈퍼(超) 공의회", 후대의 모든 공의회를 규정하는 규범이 된다. 바로 이런 공의회관에 터해 1차 에페소 공의회(431)가 개최되었고, 2차 에페소 공의회(449) ―이른바 "강도 공의회" ―에서는 이 공의회관이 더 극단화됐다.
-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2쪽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칼케돈 공의회(451년) 시대에 이르러서야 오늘날과 비슷하게 변화한다.
그러나 어쨌든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을 통해 공의회 이념의 발전과정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단계의 본질은 이 수용에서 니케아 공의회 후 결정적인 둘째 걸음이 내디뎌졌다는 데 있다. 과연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과정에서 니케아 공의회의 독점적 지위가 점차 와해되었고, 니케아 공의회의 권위는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 새로운 이단들과 새로운 역사적 상황들에 대응하여 언제나 새로운 신앙정식들이 요구되고, 또한 모든 참된 공의회는 동일한 권위를 보유하기 때문에 ― 반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의식이 뚜렷이 대두했다. 이런 의식은 458년 황제가 칼케돈 공의회의 유효성에 관해 문의한데 대한 주교들의 답변 「코덱스 엔키클리우스」Codex Encyclius로 처음 나타났다. 여기서 모든 주교들은 원칙적으로 칼케돈 공의회의 니케아 및 그때까지의 모든 공의회와의 연속성과 일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주교들에게는 여전히 오직 니케아 공의회만이 이 일치의 척도요 준거점이었다. 그들은 강조하기를, 칼케돈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와 일치하기 때문에 유효하고 정통적이라 했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은 동등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크레타 주교들의 한 서간은 그때까지 네 차례의 구속력있는 보편공의회를 서로 일치하는 동등한 공의회로 열거했다.[47]
―이런 맥락에서 이제 처음으로 그때까지의 보편공의회들이 확정·명기되었고, 또한 낮은 등급의 공의회들과 명확히 구별되었다. 이제 "네 공의회"는 고정된 상투어가 되었다.
(중략)
―더 나아가 6세기부터는 "네 거룩한 시노드"라 하여 네 복음서에 견주기 시작했으니, 이 공의회들은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다른 한편, 이제 넷이라는 고정된 숫자는 그것에 뒤이어 일련의 숫자를 꼽을 수 있게 했다. 과연 이 숫자는 뒤이은 보편공의회마다 고정된 서수序數를 부여했다: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 보편공의회. 이 줄은 원칙적으로 완결되지 않고 계속 추가될 수 있었으나 "가운데 끼어들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름 붙이기는 피상적인 셈하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한 공의회의 자기이해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으니, 공의회를 앞선 공의회들과 결합시키고 그 연속성에 편입시켰다.
어떤 공의회가 몇째 보편 시노드로 지칭됨으로써, 그 공의회는 자신의 권위를 공시하고 동시에 다른 공의회들과의 연속성과 한 계열 안에 정렬하게 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때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한 공의회의 고유한 권리 주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이런 셈하기는 통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바로 그런 일을 통해서 예컨대 381년 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그 연속선상에 "끼어들" 수 있었다.
-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85-88쪽

즉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동급인 공의회가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은 칼케돈 공의회(451년) 때에나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에페소 공의회는 뭐라고 말했는지를 직접 살펴보자.
···Statuit sancta Synodus, alteram fidem nemini licere proferre aut conscribere aut componere, praeter definitam a sanctis Patribus, qui in Nicaea cum Spiritu Sancto congregati fuerunt. ···
···거룩한 공의회는 성령과 함께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것과 다른 신앙 고백을 제시하거나 작성하거나 편찬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 ···
- 에페소 공의회, 치릴로파의 제6회기, 431년 7월 22일[48]

즉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문장 자체로 보든,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것은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신앙 고백이다. 다시 말해 니케아 신경(325년)이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다. 그렇기에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선 안되고, 다소 느슨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엄격한 의미로 이해해버린다면, 훗날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것 부터가 에페소 공의회를 위반한 것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의 신경은 유명한 설교가이자 알렉산드리아의 한 본당신부였던 아리우스(?~336)의 가르침에 관한 논쟁을 통해 생겨났다. 이 논쟁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인 하느님 아들의 신성에 관한 문제였다. 니케아 공의회의 구성원들은 이 신경을 자신들의 믿음이 가장 잘 표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비록 아리우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다소 부족한 신성을 가졌다는 그의 주장을 단죄하였다. 엄밀히 말해서 어떻게 이 신경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는 공의회의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중략)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는 이 신경에 어떤 것을 첨가하거나 변경하는 것도 파문의 형벌로 금지시켰다(COD, p.65). 한편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특히 더 이상 어떤 것도 추가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에페소 공의회의 맥락에서 공의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니케아 신경을 넘어서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니케아 신경은 새로운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특히 325년 이후 발생한 수많은 논쟁들을 고려할 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부제(archdeacon)는 381년 자기 도시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선포되었던 신경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이 신경은 선포된 이후 명백하게 교회 전반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이 381년 신경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에페소 공의회의 금지령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것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 이로써 합법적인 개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48-51쪽

그리고 칼케돈 공의회(451년)의 교부들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논리도 주목할 만 하다. 그들은 381년의 신경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놀랍게도 칼케돈 공의회의 제2회기인 451년 10월 10일 콘스탄티노플의 대부제大副祭인 아에티우스Aetius가 공의회에 모인 교부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150명의 주교들의 신앙"[49]에 대해서 읽을 때였다. 그 후 이 신앙고백문은 칼케돈 공의회의 신앙정식이 만들어지기 전에 니케아 신경과 통합되었다. 니케아 신경의 교정본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교정본을 감수한 바 있는 도세티Dossetti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한 모든 희랍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이 칼케돈 공의회 제2회기나 아니면 칼케돈의 신앙정식을 만들때쯤에 다음과 같이 이구동성으로 재확인했다고 전한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처럼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에서 알려지고 승인되었음을 시인한다.[50]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70년이 넘도록 침묵을 지킨 이유[51]에 대해서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는 잠시 접어 두고 그 신경의 출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칼케돈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이단규정을 간단하게 덧붙여서 니케아 신경을 본질적으로 추인하는 성격의 신경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니케아 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니케아 신경의 개정판 정도로 볼 수 없게 하는 어떤 편차가 보인다. "사실 이 두 텍스트는 전적으로 다르다."[52] 여기서 학자들의 의견은 양편으로 갈린다. 폰 하르낙과 같은 부류(F. J. A. Hort)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이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는 무관하고 독립적이라고 한다. 반면 칼케돈 공의회의 회의록을 수집-편찬한 슈바르츠 등은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자체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두 주장 모두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니케아 신경의 재확인이라는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소홀히 하고 있다.[53] 그렇다면 부인할 수 없는 이 상이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해결책은 1936년 프랑스 신학자 르봉[54]에 의해서, 그리고 이어서 켈리,[55] 리터,[56] 도세티[57] 등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이들에 의하면 "니케아의 신앙"이라든가 "신경" 또는 "318명의 교부들의 해설(ékthesis)" 등과 같은 표현은 성문화된 어떤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신경의 신학적 내용, 무엇보다 "동일본질" 같은 니케아 공의회의 키워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이라든지 "니케아 신앙"이라는 호칭은 니케아에서 결정된 신앙내용을 근본적으로 수용하고 숭앙하는 어떤 특정한 신경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교의사적 추이에서 볼 때 "니케아 신앙"이란 말은 "동일본질"이란 말로 결정된 확고부동한 내용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한 나머지 그들 사이에서도 종종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 안에서도 신앙고백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니케아 신경을 약간 각색해서 세례 때의 신앙고백정식으로 사용한다든지, 신경의 말미에 이단에 대한 경고문구 등을 삽입한다든지 하지만, 이 정식들은 그래도 여전히 "니케아 신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58]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본질에 있어서는 "니케아적인" 어느 한 지역의 신경을 선택해서 아폴리나리스 이단과 마체도니오 이단을 반박하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공의회는 새로운 신경을 따로 채택하지 않고 단순히 반-이단적인 명문을 삽입하여 니케아 공의회의 교의적 결정을 재확인한다.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새로운 신앙개조를 창작하지도 아니하고 니케아 신경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경을 보유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도세티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신경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단순히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59]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통성이 검증된 하나의 반-이단적 명문화를 삽입한 신경, 즉 니케아신경을 자구적으로 재생한 것은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재확인하는 신경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신부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2014), 428-431쪽

따라서 니케아 신앙을 고수한다는 것은, 신경의 텍스트 모든 글자를 엄밀한 의미에서 보존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교회의 역사에서 볼 때 오직 세계 공의회만이 신경을 변경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은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정통교리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니체아 공의회 신경을 넘겨받고 보완하였다는 가정은 (오늘날까지 신경의 출전에 관한 상황 연구가 어렵다 할지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으며 공의회 신경은 공식적인 형태로 칼체돈 공의회 문서에서 처음 전해지나, 그 이전에 이미 콘스탄티아(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가 자신의 작품 「정박자」[60](374년)에서 이 고백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른트 마누엘 바이숴Bernd Manuel Weischer는 후대에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이 「정박자」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신경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칼체돈 공의회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본문을 협의하거나 작성하였다는[61] 것이 오늘날[62]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이다.
- H. R. 드롭너, 《교부학》,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1), 407쪽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 「정박자」(Ancoratus), 374년

이 작품에는 두 양식의 신앙 고백이 들어 있다. 짧은 양식(118,9-13)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150)과 매우 유사하며, 에피파니우스가 본래 니케아 신경을 인용한 자리에 후대 어느 필경사가 끼워넣은 것이다. B. M. Weischer, Qerellos IV 2: Traktate des Epiphanius von Zypern und des Proklos von Kyzikos(Äthiopistische Forschungen 6; Wiesbaden 1979) 49-51. 긴 양식(119,3-12)은 에피파니우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교리 교육 때나 이단자들을 위한 세례 신앙 고백으로 쓰인 것이다.
(중략)
(ㄴ) 긴 양식
한 분이신 하느님, 전능하신 아버지,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저희는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외아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유형무형한 만물이 생겨났으며,
저희 인간 때문에, 저희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육이 되셨으며, 곧 성령을 통하여 거룩하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완전하게 태어나시어 사람이 되셨으니, 곧 성자께서는 죄 말고는 영혼과 몸과 정신과 인간의 모든 요소를 지닌 완전한 인간을 취하셨으며, 남자의 씨로도 아니고 인간 안에서도 아니라, 자신 안에서 유일하고 거룩한 일치로 육신을 이루셨으며, 예언자들 안에서 숨 쉬시고 말씀하시며 행하신 방법이 아니라 완전하게 인간이 되셨으며("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그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분의 신성도 인성으로 바뀌지 않았나이다.), 〈육신을〉 자신의 거룩한 완전함과 유일한 신성에 합치시켰으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오니, 바로 그분이 하느님이시고, 바로 그분이 주님이시며, 바로 그분이 임금님이시옵니다.), 바로 그분이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바로 그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영광 속에 성부 오른편에 앚으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바로 그 몸으로 영광 속에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 믿나이다.
또한 율법 안에서 말씀하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하시고 요르단강에 내려오셨으며, 사도들 안에서 말씀하시고 성도들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을 저희는 믿나이다. 바로 거룩한 영, 하느님의 영, 완전한 영, 보호자이신 영이시며, 창조되지 않으시고 성부에게서 발하시며, 성자께서 받아들이고 믿으신 분을 저희는 믿나이다. 하나이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저희는 믿으며, 회개의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혼과 몸에 관한 공정한 심판을 믿으며, 하늘 나라를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그러나 성자나 성령이 없던 때가 있었다거나, 무에서 생겨났다거나, 또는 하느님의 아들이나 성령이 다른 실체(히포스타시스)나 본질에서[63] 나왔다거나,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여러분과 우리의 어머니인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파문한다. 또한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과 이 올바른 믿음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이단을 파문한다.
- 덴칭거 42-45항

살라미스의 주교 성 에피파니오의 저작 「정박자」(Ancoratus)에서는 2개의 신앙고백을 전한다. 이 중 짧은 것은 후대의 가필이니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긴 것은 덴칭거의 소개문에서 보듯 "에피파니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여겨진다. 즉 로마도 알렉산드리아도 콘스탄티노폴리스도 아닌, 살라미스의 주교 역시도 니케아 신경의 텍스트를 수정한게 교회사의 현실이다.

에피파니오의 사례를 가볍거나 사소한 사안으로 여기고 넘어갈 수는 없다. "세례 신앙 고백"은 결코 가볍거나 사소한 사안이 아니며, 에피파니오의 수정판이 서방의 수정(필리오퀘 삽입)보다 분량상으로는 분명히 더 많다. 정교 측의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필리오퀘 삽입'이 분량으로는 에피파니오의 수정보다 소량이지만 신학적으로 그릇되었다는 주장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애초부터 논쟁의 대상은 '신학적 합당성'이지 '수정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정교 측은 589년의 톨레도 시노드를 지나치게 낮춰서 다루고 있다. 비록 오늘날 589년 톨레도 시노드는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와는 달리 세계 공의회로 여겨지지 않지만,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경우도 공의회 당시에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동급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니케아급이 아니었다고 해서 381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4세기 기준 히스파니아의 지역 시노드와 완전히 동급으로 취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으나, "589년 톨레도 시노드는 해당 시대에는 니케아 신경을 바꿀 권한이 없었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노드는 해당 시대에는 니케아 신경을 바꿀 권한이 있었다"는 식으로 정교 측이 당연시하는 전제부터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말해서, "니케아 신경은 바꿀 수 없고, 예외적으로 세계 공의회에서만 바꿀 수 있다"는 명제부터가 문헌상의 근거가 없다.

결국, 서방 교회가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를 위반했다는 것은 에페소 공의회 문헌 그 자체에서[64] 보든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부적절하며,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 보존하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 만약 서방 교회에 대한 그 비판이 타당하다면, 똑같은 원리로 칼케돈 공의회 교부들을 단죄해야 할 것이다. 칼케돈 공의회의 정신에서 볼 때,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면, 신경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리고 서방 교회 측의 필리오퀘 삽입을 독단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 니케아 신경은 살라미스의 성 에피파니오에 의해서도 수정된 바 있으며, 589년의 톨레도 교회회의의 권위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건 당연히 아니며, 비록 교황 레오 3세가 필리오퀘 삽입에 부정적이였다고는 하나 로마의 주교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것도 아니다.

6. 신경의 차이

6.1. 정교회

우선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아래와 같다.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 전능하시고,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나이다.
그리고 또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로부터 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요, 참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시며, 만물이 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을 믿나이다.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성령으로 또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
본티오 빌라도 시대에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라 믿나니,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그리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인,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세례를 알고 믿나이다.
죽은 이들의 부활과 후세의 영생을 굳게 믿고 기다리나이다.
아멘.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시며’ 라고 확실히 명시하고 있다.

6.2. 가톨릭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신경은 아래와 같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고 분명하게 적어 놓았다.

6.3. 성공회

성공회는 계보상 서방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현재의 성공회는 서방 교회 안에서 징검다리 교회(Bridge Church) 역할을 하며 각 교파들의 주장을 유연히 받아들일 뿐 아니라, 동방 교회로부터 이어져내려온 그리스도교 전통도 소중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에 있다. 대한성공회의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믿나이다.
한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니, 모든 세계에 앞서 성부께 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시요, 빛에서 나신 빛이시요,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시며, 만물이 다 이 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로 더불어 같은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와, 죄를 용서하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후세의 영생을 믿고 기다리나이다.
아멘.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며’라고 표기해 놓았다. 신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와 성자]’는 외우지 않아도 상관 없다. 자신이 필리오퀘에 동의하지 않으면, 신자들과 함께 니케아 신경을 봉독할 때 다른 신자들이 '와 성자' 부분을 읽는 잠시 동안만 기다려주면 되는 것이다.[65] 즉, ‘필리오퀘’ 문제로 교회에서 신자에게 따로 간섭하는 것은 없다.

단, 윗 문단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람베스 회의의 권고사항은 '...와 성자'를 제거하는 것이며, 캐나다 성공회# 및 스코틀랜드 성공회(기도서pdf파일, 7페이지 참조)에서는 이를 반영하여 필리오퀘 없이 신경을 고백한다. 예컨대, 아래 제시된 캐나다 성공회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중, 제3단락에서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이후 괄호 없이 마침표이다.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the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at is, seen and unseen.

We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 became incarnate from the Virgin Mary,and was made 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eath and was burie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We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the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With the Father and the Son he is worshipped and glorified. He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We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We acknowledge one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We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7. 여담



[1] 이 인용문은 가톨릭의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추기경의 저서인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 제3권에서 찬성과 함께 언급되었다.(본문의 인용문도 콩가르 추기경의 이 책 한국어판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정교회와 가톨릭의 이 두 주교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필리오퀘에 대한 논쟁은 동일한 신앙에 대한 두 표현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6세기엔 필리오퀘가 개별 교부의 견해를 넘어서 서방의 지역 시노드 차원에서 채택되었고, 동서방의 개별 교회들은 이를 친교 속에서 받아들였으며, 수백 년간 단죄되지 않았다. 가톨릭에선 필리오퀘에 대한 교의는 물론이고, 논쟁 그 자체도 동서분열의 결정적 원인이 아니라고 본다. 정교회의 경우 인용된 다마스키노스 대주교를 포함해서, 바실리 볼로토프Василий Васильевич Болотов, 세르게이 불가코프Серге́й Никола́евич Булга́ков, 파벨 에브도키모프Павел Николаевич Евдокимов 등의 성직자/신학자들이 필리오퀘 논쟁이 가톨릭과의 분열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본다.[2] 즉 "성령의 발출이 성부에게서만인가?","애당초 '발출'은 무엇인가?", "'발출'이라는 말에 대해 혹시 라틴 신학과 그리스 신학이 다른 정의를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등[3] 즉"로마 주교는 세계공의회와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 "톨레도 시노드를 비롯한 지역 시노드는 세계공의회와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 "에페소 공의회가 변경을 금지한 신경은 니케아 신경인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인가?", "필리오퀘가 추가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필리오퀘가 없는 그리스어 원문의 뜻을 거스르는가?" 등[4] 더 깊이 들어가자면, 필리오퀘가 없는 그리스어 원문 자체는 당연히 가톨릭-개신교의 교의를 거스르지 않으므로, 에큐메니컬 차원에선 필리오퀘 없는 신경도 괜찮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그러나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한다"는 신학적 명제가 잘못되었다는 정교회의 주장에 대해서는, 가톨릭-개신교 모두 단호히 반대한다.[5] (책 속 주석)루스페의 풀겐티우스, De fide seu de regula fidei ad Petrum 1, n. 4 (J. Fraipont: CpChL 91A [1968] 714 / PL 65,674AB) 참조.[6] 번역 출처: 덴칭거 한국어판 1331항[7] 번역 출처: 덴칭거 188항. 필리오퀘가 삽입된 589년의 톨레도 교회회의와는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8] 번역 출처: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성염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15), 1261쪽[9] 번역 출처: 덴칭거 한국어판 75항[10] 서방 교회에서 '아타나시오 신경'이라고 부르는 주요 신조이다. 한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가 저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아타나시오 신경이라고 불렸는데 오늘날에는 저작권이 부정되어 퀴쿰퀘 신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추정 연대는 덴칭거에 의하면 430-500년.[11] 번역은 Yves Congar 지음, 윤주현 옮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제3권 113-114쪽에서 발췌.[12] 성령이 성부에게서'만' 발출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면 개신교 신학에서도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13] 대부분의 독일 개신교 인구가 가입된 연합체로, 독일 복음주의교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의 약칭이다.[14] 참고로 괄호안에 필리오퀘 넣기는 Communion이 아닌 Continuum에 속하는 ACNA에서 취하는 방식이다.(ACNA 2013년 기도서에서 괄호안에 (... and the Son)이 포함된 데 대한 설명)[15] 참고로 선교지 국가의 성공회에서는 (특히 아프리카의 과거 영국 식민지들의 경우) 신학은 Continuum을 지지하면서 캔터베리와의 관계, 특히 소속국가의 영연방 회원으로서의 위상을 생각하여 Communion 측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대한성공회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이 영국과 정치적 접점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 외적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더더욱이 어떤 노선인지 불확실하다.[16] 즉,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본문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하는 성령'이라는 명제 그 자체[17] 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 Anglican Catholic Church, United Episcopal Church of North America 등의 성공회 교단으로 구성된 연합체이다. 성공회의 주류인 '성공회 연합'(Anglican Communion)과 달리 여성의 서품을 허용하지 않으며 동성애를 죄악으로 인식하는 등 19세기 성공회 신학을 견지한다.[18] 2013년 ACNA 주교회의 결의안: "ACNA에서 사용하는 니케아 신경의 규범형은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채택된 원본으로 한다. 이 규범형은 가능한 한 정확한 형태의 영어 번역으로 변용되어야 한다."
The normative form of the Nicene Creed for the 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 is the original text as adopted by the Councils of Nicaea (325 A.D.) and Constantinople (381 A.D.). This form shall be rendered in English in the best and most accurate translation achievable.
[19] 단 미국의 경우 1979년 이후 기도서 갱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행 기도서 상에서는 여전히 필리오퀘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교구의 판단에 따라 전례상 필리오퀘를 포함한 신경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나 표준은 필리오퀘가 없는 신경이다.[20] 시노드 차원에서 일어난 삽입은 AD 589의 톨레도 시노드에서 있었다고 알려져있지만, 이 부분은 사본 연구상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아무튼 6세기 말에는 그러한 추가가 있었다. "589년 개최된 제3차 톨레도 공의회로부터 결정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국왕인 레카레도(Recaredo)는 자기 백성의 이름으로 가톨릭 신앙을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성자에게서'(et Filio)가 삽입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낭송했는지에 대해서는 의혹의 여지가 있다. 물론 레카레도 국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함께하는 실체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해야 합니다.'(Denzinger 470항) ... 필리오퀘는 분명 6세기의 마지막 십년간 신경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이브 콩가르Yves Congar,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 제3권, 윤주현 번역, 가톨릭출판사 2018, pp.111-115)[21]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22] 『여러분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움으로 이 일이 나에게는 구원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23]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4]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25] (책 속 주석)Yves Marie-Joseph Congar OP , "Synthèse générale de la problématique pneumatologique. Reflexions et perspectives", in La signification et l'actualité..., p. 367.[26] (책 속 주석) 참조: Agostino, De Trinitate XV, 25,47; PL 42,1094-1095.[27] (책 속 주석) 참조: Tommaso d'Aquino, STh I, q.36, a.3,1-2.[28] (책 속 주석)Gregorio Nazianzeno, Discorso 39,12: SCh 358,175.[29] (책 속 주석) 참조: Conseil Pontifical pour la Promotion de L'Unité des Chrétiens, Dans son premier rapport. les traditions greque et latine concermant la procession du Saint-Esprit(1995, 9,8): EV 14/2966-2992.[30] Dans son premier...: EV 14,2986.[31] (책 속 주석) 참조: Boris Bobrinskoy, "The Filioque Yesterday and Today", in ''La signification et l'actualité...", pp.275-287.[32] (책 속 주석) 참조: Gabriel Widmer, "La théologie réformée et le Filioque", in ''La signification et l'actualité...", pp.319-337.[33] (논문 속 주석)위르겐 몰트만 (Jürgen Moltmann)의 자서전에 따르면, 몰트만 자신이 이 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Jürgen Moltmann, A Broad Place: An Autobiography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09), 86.[34] (논문 속 주석) Lukas Vischer, ed., Spirit of God, Spirit of Christ: Ecumenical Reflections of the Filioque Controversy, Faith and Order Paper 103 (London: SPCK, 1981).[35] (논문 속 주석) 앞의 책, 18.[36] (논문 속 주석) 앞의 책, v.[37] (논문 속 주석)앞의 책, 14; J. N. D. Kelly, Early Christian Creeds, 3rd ed. (New York: Longmans, Green, 1972), 361-362; Franz Courth, Trinität: In der Schrift und Patristik, Handbuch der Dogmengeschichte 2/1a (Freiburg: Herder, 1988), 128. 앤드류 E. 번(Andrew E. Burn)은 문제의 문구가 톨레도 공의회에서 첨가되지 않았고, 공의회 후에 밝혀지지 않은 계기에 의해서 공의회의 ‘악타’(Acta)에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Andrew E. Burn, “Some Spanish MSS of the Constantinopolitan Creed,” The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9, no. 34 (1908): 301-303. 그러나 번의 주장은 아직 역사적으로 고증되지 않았다. 고려되어야 할 역사적 사실은 톨레도 공의회를 주최한 서고트족의 왕 레카르드가 개회연설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성부로부터 그리고 성자로부터 발출하신다”(a Patre et a Filio procedure, Mansi 9. 977-978)라고 고백한 것, 톨레도 공의회 ‘악타’에는 “그리고 성자로부터 발출하시는 []”(ex... et Filio procedentem, Mansi 9.981)이 381년 신경에 분명히 첨가되어 있으며 이것을 고백하지 않는 자에 대한 저주(Mansi 9.985)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톨레도 공의회 이후 스페인과 카롤링거 왕조의 공의회들에 유사한 문구들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Siecienski, The Filioque, 69, 88-89; A. Edward Siecienski, “The Filioque: A Brief History,” in Ecumenical Perspectives on the Filioque for the 21st Century, ed. Myk Habets (London: Bloomsbury, 2014), 10.[38] (논문 속 주석) Vischer, Spirit of God, Spirit of Christ, 5[39] (논문 속 주석) 앞의 책, 6.[40] (논문 속 주석)이러한 태도는 보리스 볼로토프(Boris Bolotov)의 관점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Boris Bolotov, “Thesen über das ‘Filioque’ von einem russischen Theologen,” Revue Internationale de Théologie 6, no. 24 (1898): 681–712. 볼로토프는 러시아정교회(the St. Petersburg Commission)와 구 가톨릭교회(the Rotterdam Commission) 간의 신학적 논의에 참여하였고, 이그나츠 폰 될링거(Ignaz von Döllinger)를 중심으로 1874-1875년에 본(Bonn)에서 열린 필리오케 논쟁에 대한 초교파적 학회의 결과물을 발전시키기 위해 익명으로 이 논문을 작성하였다.[41] (논문 속 주석) Vischer, Spirit of God, Spirit of Christ, 15: “서방신학을 고려할 때, 성령은 자신의 완전한 위격(휘포스타시스)을 성부로부터 받으신다고 볼 수 있다.”[42] (논문 속 주석) Vischer, Spirit of God, Spirit of Christ, 14-15.[43] (논문 속 주석) 앞의 책, 14-15.[44] 이 '강도 회의'는 383명이 참석한 제8차 세계 공의회와는 달리, 첫 회기에 참석한 주교가 고작 12명이였을 정도로 참석률이 극히 저조했다.[45] SSPX의 주장[46]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47] (책 속 주석)E. Schawartz 등 편 Acta Conciliorum Oecumenicorum (1914~) II, 5:97, 6-13.[48] 번역 출처: 덴칭거 265항.[49] (책 속 주석) 참조: ACO II,I,2, pp. 79s. 도세티는 칼케돈 공의회의 제2회기에서 낭독된 그리스어 텍스트는 "정통성이 확실하게 보존된" 텍스트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G. L. Dossetti, II simbolo di Nicea e di Constantinopoli. Edizione critica, Herder, Roma 1967, p. 269). 아에티우스는 황제의 문서고에서 이 텍스트를 찾아내어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상동, pp. 171, 269.) 이 텍스트는 681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도세티에 의하면 슈바르츠(E. Schwartz)는 칼케돈 공의회의 제2회기에서 낭독된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텍스트는 "원본"(allo stato puro)이었던 반면에, 칼케돈 공의회 제5회기와 제6회기에서 작성되어 451년의 신앙정식에 삽입된 텍스트는 공의회 교부들에 의해서 "잘 손질된"(armonizzati) 텍스트였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슈바르츠는 칼케돈 공외희의 신앙정식에 대한 교정본에(ACO II,I,2, pp. 127s.) 전해진 것과는 확연히 다른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텍스트 원본을 수록하게 했다는 것이다.(참조: 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 269.) 그러나 도세티는 Lebon, Kelly, Ritter 등과 함께 이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상동, pp. 269-284.)[50] (책 속 주석)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 264.[51] (책 속 주석) 참조: A. De Halleux, "La réception du symbole oecuménique, de Nicée à Chalcédoine", in Ephemerides Theologicae Lovanienses 61(1985), pp. 5-47.[52] (책 속 주석) J. N. D. Kelly, I simboli di fede della chiesa antica. Nascita, evoluzione, uso del credo, Dehoniane, Napoli 1987, p.300.[53] (책 속 주석) 참조: J. N. D. Kelly, I simboli..., pp. 298-301.[54] (책 속 주석)J. Lebon, "Les anciens symboles dans la définition de Chalcédoine", in Revue d'Histoire Ecclésiastique 32(1936), pp. 809-876.[55] (책 속 주석) 참조: J. N. D. Kelly, I simboli..., pp. 318-327.[56] (책 속 주석)A. M. Ritter, Das Konzil von Konstantinopel und sein Symbol, 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65.[57] (책 속 주석) 참조: 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p. 24, 277-284.[58] (책 속 주석) 참조: 위의 책, p. 278.[59] (책 속 주석)참조: 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284.[60] 《Ancoratus》[61] (책 속 주석) 이와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Kannengiesser: EECh(Encyclopedia of the Early Church, 2 vol., Cambridge 1992 Église et Théologie, Paris.) I, 195-6쪽과 DH(H. Denzinger,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Quod emendavit, auxit in linguam germanicam transtulit et adiuvante H. Hoping edidit P. Hünermann, Freiburg/Br.{ }^{37}1991.), 150쪽 참조. 칸네기서는 바위서(Weischer)의 결과를 알지 못한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아브라모브스키(L. Abramowski)와 리터(A.M. Ritter)의 최근의 토론 참조.[62] 이 책의 한국어판은 1994년판을 바탕으로 함.[63] 니케아 신경의 파문조항에서는 히포스타시스와 우시아가 동일시된다.[64] "거룩한 공의회는 성령과 함께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것과 다른 신앙 고백을 제시하거나 작성하거나 편찬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Statuit sancta Synodus, alteram fidem nemini licere proferre aut conscribere aut componere, praeter definitam a sanctis Patribus, qui in Nicaea cum Spiritu Sancto congregati fuerunt.)[65] 성공회 신자들은 다양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습들을 관용하고 포용하는 데에 꽤 익숙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필리오퀘에 대해 신학적으로 깊게 고찰하여 자신의 입장을 취하는 신자는 많지 않고, 대부분 그냥 '와 성자' 부분을 읽고 넘어간다.[66] 사실 작중에서는 이미 제국 내에서 가톨릭이 이단으로 단죄되어 와해된 상황이라, 북방 야만인들만 믿는 가톨릭보다 아이깁투스 속주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를 중심으로 제국 내에 분란을 일으키는 단성론과 그것이 단죄되는 공의회가 더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