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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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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Γρηγόριος ὁ Ναζιανζηνός | Gregorius Nazianzenus | |
| |
<colbgcolor=#ebd58f,#ebd58f><colcolor=#813525,#813525> 출생 | <colbgcolor=#ffffff,#191919>329년 |
로마 제국 폰투스 관구 카파도키아 아리안조스 | |
사망 | 390년 1월 25일 (향년 60~61세) |
로마 제국 폰투스 관구 카파도키아 아리안조스 | |
종교 | 기독교 |
직업 | 성직자(대주교), 신학자, 시인 |
재임 기간 | 제35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
379년~381년 | |
성인명 | 가톨릭 그레고리오 정교회 그레고리오스 성공회 그레고리 |
칭호 | 신학자, 교회학자, 카파도키아 교부, 3대 교부 |
상징물 | 오모포리온[1], 복음서, 두루마리 |
축일 | 1월 2일[2][3] 1월 10일[4] 1월 25일[5] 1월 30일[6] 5월 9일[7] 6월 14일[8] 변모 축일 네 번째 일요일 전날 토요일[9] |
1. 개요
제35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신학자, 그리고 시인.과거 수사학과 논리학을 습득한 유능한 웅변가이자 철학자로 기독교에 헬레니즘 이념을 도입해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 간의 상호적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의 동일한 본질을 확증하는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을 확립한 신학계의 거물이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레고리오스는 다양한 칭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인 대 바실레이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형제와 함께 카파도키아 교부로 불리며, 대 바실레이오스와 요한 크리소스토모와는 3대 교부로 칭송받는다. 또한 그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에서 교리 형성에 큰 공헌을 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교회학자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특히 동방교회에서는 추가로 신학자라는 별도의 칭호를 받은 단 세 명의 인물[11] 중 한 명이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 교파 상관없이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톨릭과 성공회 축일은 1월 2일, 정교회 축일은 1월 25일이다.
1월 1일에도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축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아버지의 축일이다.
2. 생애
330년경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레고리오스는 아테네에서 바실레이오스를 만나면서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아테네 수학 이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세례를 받고 바실레이오스가 카파도키아에서 시작한 은수, 금욕 생활에 동참했다. 362년 자신의 원의와는 달리 나지안조스의 주교였던 아버지에 의해 서품을 받는데, 이는 아버지의 집요한 요청과 권유 때문이었다. 372년 그레고리오스는 사시마라는 작은 교구의 주교로 서품된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아리우스파가 점령하다시피 했기에 그는 나지안조스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사망 이후 그 뒤를 이어 나지안조스에서 활동했다.379년 아리우스파에 압도당하여 소수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신자들은 그레고리오스를 자신들의 주교로 앉혔다. 그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교회 대부분은 아리우스파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그레고리오스는 변변한 성당 건물도 없이 일반 가정집을 교회로 바꾸어야 할 형편에 처해 있기까지 했다. 그러나 380년 정통 신앙을 옹호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등장과 함께 모든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레고리오스는 자신의 교구에서 아리우스 이단자를 몰아내는 한편 마침내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황제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라는 직분은 그레고리오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적대자들은 그가 이미 이미 사시마의 주교로 서품되었다는 사실을 빌미로, 한 주교가 다른 주교좌에 앉을 수 없다는 당시 관례를 들어 그를 배척했다. 이러한 비난에 직면한 그레고리오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 나지안조스로 돌아가야 했고 새로운 주교가 세워질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 후 나지안조스 인근의 아리안조스의 사택에서 은거하다가 390년 선종했다.
[1] ὠμοφόριον(omophorion),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에서 주교가 착용하는 전례복.가톨릭에 팔리움과 같은 것이다[2] 가톨릭, 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 축일.[3] 1월 1일은 그의 아버지인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1세 주교 축일이다.[4] 루터교회 미주리 시노드(LCMS) 축일.[5] 정교회, 동방 가톨릭 축일.[6] 정교회 3대 교부 축일.[7] 성공회(미국 성공회) 축일.[8]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축일.[9]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축일.[10] 고전 그리스어. '니프손 아노메마타 메 모난 오프신'이라고 읽는다. 회문이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읽어도 똑같이 읽을 수 있다.[11] 나머지 두 명은 요한의 묵시록의 저자 파트모스의 요한과 새 신학자 시메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