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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루히즘 또는 하루히[ruby(주의, ruby=主義)]는 스즈미야 하루히 애니메이션의 캐치프레이즈, 혹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폭넓은 미디어믹스에 의해 발생한 세계적인 여파와 광적인 선호 현상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넒은 의미에서 하루히즘은 이런 '전 세계적으로 하루히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는 현상'을 지칭하며, 좀 더 구체적인 정의는 일본 애니메이션 및 연관 주류 오타쿠 문화의 패턴•정형화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건 이 쪽.하루히 시리즈가 원작소설, 애니메이션, 코믹, 캐릭터 상품, 웹 라디오, 캐릭터 싱글, 성우 라이브 등을 통해 2차 파생 미디어로 폭을 넓혀 간 것을 미디어믹스의 체계화된 이론(ism)으로 보고, 이후 나온 굵직한 작품에서 그와 같은 단계를 밟아 나가는 현상 자체를 '하루히즘'이라고 일반화시켜 부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하지만 이런 확장된 정의는 아직 널리 통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2. 영향
이런 애니메이션의 히트로 인한 다양한 미디어 믹스 비지니스 산업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슬레이어즈 등이 나오던 1990년대부터 이미 정착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하루히 시리즈만이 독보적으로 끼친 영향은, 이전과는 다른 스케일로 라노벨 시장을 키운 것과 미소녀를 위시로한 모에 애니메이션의 유행에 박차를 가한 것이 있다. 당시 UHF 심야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가 및 관련 시장 규모를 바꾸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하루히 시리즈는 단순히 인기나 완성도가 높은 다른 명작들과 그 궤부터 다른 문화사적 의의를 가진다. 더 구체적으로 주류 오타쿠 문화사는 현재까지 크게 3개 세대로 분류되는데, 하루히즘은 그 중 3세대의 시작을 알리는[2] '분기점'이자 '사건'인 것이다.사실 하루히 1기가 애니화된 2006년 2분기 이전에도 모에 문화는 산발적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당장 2000년의 메이드 카페 열풍으로 아키하바라가 오덕 성지화된 것, 2002~2004년에 걸친 쓰르라미 울 적에, CLANNAD, Fate/stay night의 연이은 히트, 2004년 소설가가 되자 개설 등 '모에 붐'의 씨앗은 여러 곳에 뿌려졌었다. 또 2005년부터 나노하 시리즈, 로젠 메이든, 작안의 샤나, 페스나 TVA 같은 직전 세대 심야 애니 히트작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모에 관련 시장의 성장은 그리 폭발적이지 못해 대형 신인들이 가뭄에 콩 나듯 나왔고, 그 때문에 각종 인기 투표를 비롯한 여러 지표에서 연방 vs 관리국 같은 예처럼 팬덤의 고착화 현상이 지속되었었다.
허나 하루히 시리즈가 2000년대 중반 들어 라이트 노벨과 심야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남을 최대 히트를 기록하였고, 그게 문화 현상으로 확대되며 위의 모든 빌드업이 하나의 퍼즐로 맞춰지게 되었다. 라이트한 주제의식과 그간 개발해 놓은 '모에' 속성의 시너지가 이 때 폭발하여 서브컬처를 휩쓸기 시작했고, 같은 년도에 방영한 코드 기아스나 다른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들[3]의 연달은 히트로 심야 애니메이션의 주목도가 올라가 심야 애니 시장을 키우는데 일조하였다. 또 하루히를 의식한 다른 라이트 노벨 작품들의 애니화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으며[4], 이로 인해 이후 수없이 흩어져 있던 라노벨이나 만화 출신 모에 캐릭터들이 애니화를 통해 메인스트림으로 대거 끌려나오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끝없는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고[5], 결국 오타쿠 팬덤의 중심은 작품에서 캐릭터로 완전히 넘어가버린다.
이런 캐릭터 위주의 메타 덕에 피어난 또 다른 유산이 바로, 2007년 하츠네 미쿠를 필두로 한 보컬로이드 계열이다. 또한 하루히즘은 씹덕 문화가 기존 미연시, 에로게 중심에서 라이트 노벨 천하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중요한 사건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짐과 함께, 여성향 오타쿠를 겨냥한 BL/노말 작품들이 OVA와 CD 대신 접근성이 우수한 TVA로 방영되게 만든 도화선 및 촉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성향 관련 시장이 이것의 영향[6]으로 확장되면서 동인녀, 부녀자 집단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양산되었다.
3. 2020년대 이후
2010년대 후반의 오타쿠 양지화 시대를 거쳐, 훗날 2020년대에 돌입하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라이트 노벨과 심야 애니메이션 중심의 오타쿠 메타가 마침내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과 버츄얼 유튜버같은 스트리밍 쪽으로 완전히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신작 애니의 영향력이 이 두 종류의 매체를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 2024년을 기점으로 하루히즘의 시대가 마무리된 것으로 평가[7]되기도 한다. 이 외에도 2020년대 초중반 라노벨시장 지표, 인기몰이한 20년대 애니 목록, 코믹스와의 비중 역전 등 명백한 증거는 많으며 거시적으로는 후술하겠지만 숏폼의 유행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보급,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등 초개인화 기술의 발전과 보급으로 문화 유행의 다원화, 파편화가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과거처럼 오덕계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초거대 IP가 나오기 어려워졌기 때문.여담으로 하루히즘이 완전히 구시대의 산물이 된 것은 아니라는 반박도 있으나 후술하겠지만 이는 2020년대의 달라진 문화 소비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의견이다. 무엇보다 타 작품이나 게임들과 무한히 대결해 캐릭터의 역량을 직접적으로 시험받는 각종 서브컬쳐 관련 인기투표나, 혹은 다른 여러 통계 지표 등에서 현재 오덕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서브컬쳐 모바일 게임 캐릭터 개개인의 성과가 너무나 처참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아무리 2020년 초반에 들어 캐릭터보단 다른 요소들이 만드는 체급이 작품 간 경쟁에 더 중요해졌다고는 해도, 2010년대 중반 이후 애니화 등으로 이 쪽 역사에 괄목할만한 단일 캐릭터를 남기지 못한 점[8]은 모바게 업계 전체가 끝내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발목을 잡는 중. 심지어 이미 애니와 게임 향유층이 오덕판에서 갈라진 상황이라 이상의 문제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게다가 한 컨텐츠 전체 체급이 주류 오타쿠 문화에 끼치는 영향 역시, 과거 니코동 UCC와 신작애니 중심 시대에 비해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이 득세하며 평균적으로 낮아졌다. 호사가들이 씹덕 세카이를 통일했다고 큰 이견 없이 언급하는 매체는 오타쿠 2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6-97), 하루히즘 이전 과도기를 강타한 건담 시드(2003-04), 미소녀 동물원 장르의 최고점을 찍은 케이온!(2010) 셋 뿐으로, 모두 원작의 기여도에 비해 애니화의 힘[9]을 크게 받은 작품들이다. 그나마 씹덕 가챠 게임 역사를 추려 볼 때 달빠의 화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려 애니 패권 캐릭터들을 위협했던 2017년 페그오나 서구권에 최초로 일시적이나마 위 분야를 흥행시킨 2021년 원신에서 이야깃거리가 나올 여지가 있지만, 상술한 저 셋의 역사적 파급력에 이 둘을 비견하기엔 체급 측면에서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의 내용은 과거 1990년대~2000년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2020년대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라는 측면에 맹점이 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YouTube Shorts, 인스타그램 릴스, TikTok 같은 숏폼의 확산과 스낵 컬처의 유행,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유튜브, OTT 등 다양한 매체가 부상과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대표되는 소비자 개개인의 성향과 패턴을 인공지능, 빅 데이터 프로세싱 등을 사용해서 파악하여 그에 맞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개인화 기술의 보급으로 오타쿠 문화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문화에서도 취향의 다원화, 파편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컨텐츠 유행 주기도 계속 빨라지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의 영향으로 과거 1990년대~2000년대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건담 시드, 케이온!처럼 오덕계를 통일하는 IP의 출현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졌으며 하나의 IP가 오덕계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도 낮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변했다.[10] 따라서 이러한 문화 소비 현상의 패러다임이 다시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체급이 파편화된 현 상황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으며, 현 시대의 대중문화처럼 오덕계의 국민 ○○ 같은 IP와 현상도 나오기 어려워졌다.
어쨌든 라이트 노벨이 오덕계 중원의 주도적인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그 자리를 일본 만화 원작 애니와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버츄얼 유튜버가 대신 채우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럼에도 이들의 팬덤이나 그 뿌리 역시 미연시, 러브 코미디, 일상물 난민 등 하루히즘의 간접적 영향에 들어가 있는 모습은, 향후 어떠한 오타쿠 서브컬쳐가 생겨나도 하루히즘은 떼놓을 수 없는 기반으로 작용할 것임을 자명하게 하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루히즘도 거시적으로 문화 소비 현상의 큰 흐름 아래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며, 2000~2010년대와 달리 모에 팔이가 더 이상 핵심이 아닌 환경을 맞은 탓에 자연히 오덕계에서 하루히즘의 직접적인 영향력도 20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종결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결국 서브컬처도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에 거시적으로는 큰 유행의 흐름에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숏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초개인화 기술의 보급 등으로 초래된 2020년대의 범세계적 다원화, 파편화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이 쪽으로 써도 영어 문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영어권에선 이렇게 더 많이 쓰인다.[2] 비록 앞서 언급된 에바(1996-97), 건담 시드(2003-04), 케이온!(2010) IP과 같이 팬덤 측면의 통일을 불러오진 못했고, 반대로 자기가 야기한 모에 붐 때문에 희대의 인기 분열기를 불러왔다. 하지만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저 둘과 달리 에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대 구분의 기준이 될 수 있었다.[3] 소위 쿄애니 리즈 시절이라 불리는 시기로, 러키☆스타, 클라나드, 케이온!이 연이어 성공했다.[4] 반대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거대로봇물과 일본의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장은 점점 축소되었다.[5] 대표적인 예로, 애니화된 모에 캐릭터 사이의 무한 경쟁성 인기 투표인 모에 토너먼트는 2001년 탄생했음에도 정체되어 있다가, 2006년 한 해 만에 무려 20배 이상 성장하게 된다.[6] 이전에도 그랬지만 13시즌 Free!의 히트 이후에는, 거의 모든 여성향 애니들이 예외 없이 남성향 오타쿠 문화에서 확립된 개념과 클리셰만큼은 그대로 차용하게 되면서, 하루히즘과의 연결고리는 더욱 견고해졌다.[7] 비록 오타쿠 역사가 긴 일본 통계이나, 이 해 만화 원작 초인기 애니조차 평균 팬 연령대가 30대 중반~40대 중반이 되며 20대 초반~30대 초반의 최신 게임/버튜버에 비해 젊은 뉴비 오타쿠들에게 외면받았다.[8] 그나마 찾아보면 2년간 스테디로 수많은 밈을 만들고 애캐토 우승까지 한 캬루, 호요버스를 홀홀단신의 매출로 일으켜 세운 라이덴 쇼군, 타입문 진영의 외부 인기투표 최전성기 및 FGO의 소니 미디어 최대 매출에 기여한 잔 다르크 얼터 & 스카사하 정도. 그러나 이 수준으론 세이버, 미코토, 렘 같은 라노벨 애니 시대를 재패했던 캐릭터의 체급에 그저 즈려밟히며, 하루히즘이 낳은 영향력 최고점 미쿠는 말할 것도 없다.[9] 그래서 4대 IP로 불리는 것들 중 타입문을 제외한 동방 프로젝트, 아이돌마스터, 보컬로이드는 시대별로 롤코를 거듭할지언정 꾸준히 살아남아 있어 매체의 내실이 고평가될 뿐, 실제로 그 영향력은 하츠네 미쿠 개인을 제외하면 씹덕 세카이 자체를 들어먹는 거시적 변화까지 뻗지 못했다. 반대로 이 하루히 시리즈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절대적이나 당대 팬덤과 인기 쪽에서 통일을 못한 게 문제인 케이스.[10] 이러한 취향의 파편화는 단순히 오타쿠 문화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2020년대의 모든 문화가 겪는 현상이다. 2020년대 이후 대두된 국민 ○○의 쇠퇴도 이러한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단적으로 오덕계뿐만 아니라 2020년대 이후에는 가요계에서도 국민 가수라고 불리는 가수가 없으며, 아이돌도 마찬가지로 국민 아이돌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전국민적으로 하나의 컨텐츠를 소비하거나 어떤 컨텐츠가 전국민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 자체가 2020년대에는 사실상 쇠퇴하여 극도로 어려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