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다머스 (Hans Dammers : 1913년 12월 8일~1944년 3월 17일)
1. 참전 초기
독일 제국 시대인 1913년 12월 8일에 제국 서부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왕국에 있는 도시 뫼르스(Moers) 교외의 작은 마을 쇠르펜베르크(Scherpenberg)에서 태어난 그는 다른 조종사들에 아주 늦은 25살의 나이에 루프트바페에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또래들에 비해 훨씬 나이가 많았던 그였지만, 비행에 관한 감각이 뛰어나 조종 실력이 빠르게 일취월장하여 개전 무렵에는 이미 하사로 진급되어 있었다.2. 독소전에서
독일 공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전투기 조종사가 된 한스 다머스 하사는 1941년 6월에 바르바로사 작전 발발 후, 제52전투항공단(JG 52)의 일원으로서 불과 두 달 남짓 짧은 기간 동안 소련 공군기를 무려 48대나 격추시켰다. 한스 다머스 하사의 첫 번째 격추는 1942년 5월 13일 오후 출격에서 Staryy Saltov 상공에서 조우한 MiG-1이었는데, 이 적기는 1,300 m 고도에서 엄호기도 없이 홀로 일직선을 날던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었다.이어서 같은 달 27일에는 지상군에게 기총소사를 가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페트리야코프 Pe-2를 50 m 고도에서 격추시켰다. 다음날인 28일의 오후 마지막 출격에서는 LaGG-3 전투기 2대를 1분도 안되는 사이에 떨궈버렸다.
7월 17일에 다머스는 메서슈밋 Bf 109G-2(Werknummer 13435)을 몰고 쿠르트 케셀(Kurt Keser) 하사와 로테 편대를 짜고 Yak-1으로 이루어진 전투기 대편대를 급습했다. 그러나 운수사납게도 그들이 덮친 Yak-1 중에서 1기에는 나중에 소련 공군을 통틀어 2위의 격추 기록을 세우게 되는 아주 지능적이면서도 실력이 뛰어난 에이스인 알렉산드르 포크리슈킨 중위가 타고 있었다. 곧바로 미꾸라지가 손아귀를 빠져나가듯이 임멜만 턴으로 다머스의 로테에게서 벗어난 포크리슈킨은 급작스럽게 반격을 가했고, 윙맨인 쿠르트 하사는 곧바로 피격당해 전사했다. 다머스가 탄 기체도 기관포탄에 직격당해 불이 붙었지만, 운이 다하지 않았는지 낙하산 탈출에 성공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스 다머스는 근 일주일 가까이 출격 순번에서 빠진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날의 실수에 대해 곱씹었다.
3. 마지막 서훈
얼마 후 마음의 짐을 털고 일어난 그는 7월 28일부터 다시 출격을 개시해 2대의 LaGG-3를 단숨에 해치우면서 또다시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8월 6일에 다머스 하사는 5번째와 6번째, 7번째로 적기를 3대나 떨구었고, 이제 에이스 명단의 말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지만 이것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보름 남짓 지난 8월 23일까지 합계 57대 격추의 전과를 거둔 그는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공중전 뿐만 아니라 기총 소사를 이용한 지상 공격에도 매우 능해서 지상에 주기된 항공기 11대, 기관차 8량, 트럭 34대, 장갑차 1대, 대공포 3문, 마차 39대 등의 지상 목표를 격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스 다머스가 계속 출격을 하는 이상, 그의 무공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9월 5일 오전에도 출격한 다머스는 9시 35분에 300m 고도에서 날고 있는 붉은 별이 그려진 커티스 P-40을 한 대 격추시켰다. 그 적기가 지면에 충돌하는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머리 위 3,000 m 고도에서 P-40 편대가 삼각형 편대를 짜고 나란히 날고 있는 것을 목격한 다머스는 스로틀을 한껏 밀며 조종간을 당겨 새로운 목표 뒤로 접근했다. 상승 각도 때문에 선두의 편대장기에 먼저 사격을 퍼붓자 그 P-40은 불이 붙으며 맥없이 추락했고, 그 뒤를 따르던 요기들은 좌우로 산개했지만, 한스 다머스는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2번째 적기를 잡았고 세번째 P-40은 강하하면서 달아나다 덜미가 잡혀 9시 45분에 긴 연기를 뿜으며 추락했다. 놀라운 것은 한스가 점심을 먹고 출격한 오후 출격에서 같은 공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날고 있던 P-40을 본 것이다. 자신이 보고도 믿겨지지 않던 다머스는 12시 40분과 43분에 1대씩을 처치해버렸고, 그것으로 1일 에이스가 되었다.
4. 탈출 실패
1944년 3월 13일, 이제는 상사가 된 한스 다머스가 타고 있던 Bf 109G-6(Werknummer 20162) "겔베 노인(옐로우 9)"이 소련 전투기 라보츠킨 La-5에 의해 격추되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으나 하필이면 펼쳐진 낙하산이 전투기의 날개에 걸려버렸고, 몇 초 동안 엄청난 스피드로 추락하는 기체에 끌려가던 그는 의식을 잃은 채 찢어진 낙하산에 매달려 곤두박질했다.구호반이 지면에 팽개쳐져 있는 한스 다머스 상사를 발견했을 때, 숨은 붙어 있어서 곧바로 슈타니슬라우(Stanislau)에 있는 군병원으로 후송 조치했다. 거기서 다시 민간 병원으로 옮겨진 한스 다머스는 며칠간 사경을 헤매다가 3월 17일에 결국은 더 죽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때까지 113대를 격추시키고 비공인 격추 23기를 기록하고 있던 한스 다머스 상사는 사후 소위 계급이 추서되었다.
5.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 1급 철십자 훈장공군 명예컵 (1942년 6월 29일)
독일 금십자 훈장 (1942년 7월 10일)
기사 철십자 훈장 (1942년 8월 23일)
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156b94> ▲ 52~66위 | ||||
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
67위 | 하인츠 마르크바르트 | 독일 | 121대 | ||
하인츠-볼프강 슈나우퍼 | 독일 | 야간 격추 세계 1위 | |||
로베르트 바이스 | 독일 | ||||
70위 | 프리드리히 오블레저 | 독일 | 120대 | ||
프리드리히 바호비아크 | 독일 | ||||
72위 | 에리히 라이에 | 독일 | 118대 | ||
73위 | 프란츠-요제프 베렌브로크 | 독일 | 117대 | ||
한스-요아힘 비르크너 | 독일 | ||||
야코프 노르츠 | 독일 | ||||
발터 외자우 | 독일 | ||||
하인츠 베르니케 | 독일 | ||||
78위 | 아우구스트 람버트 | 독일 | 116대 | ||
79위 | 빌헬름 크리니우스 | 독일 | 114대 | ||
베르너 슈뢰어 | 독일 | ||||
81위 | 한스 다머스 | 독일 | 113대 | ||
베르톨트 코르츠 | 독일 | ||||
83위 | 쿠르트 뷜리겐 | 독일 | 112대 | ||
84위 | 헬무트 렌트 | 독일 | 110대 | 야간 격추 세계 2위 | |
쿠르트 우벤 | 독일 | ||||
프란츠 보이디히 | 독일 | ||||
▼ 87~113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