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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2:05:45

헨리 소사/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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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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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절. 유망주 순위 9위를 기록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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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2006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루키 리그를 통해 미국 무대에 데뷔한 헨리 소사는 2011년 2루수 제프 케핀저(2014년 현재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 트레이드 때 자이언츠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했다. 그해 메이저로 승격해 8월 1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커리어 첫 메이저리그 선발등판을 했으나 6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고, 이후 10경기에 선발 등판해 3승 5패 평균자책점 5.23, 53이닝 동안 54피안타 23볼넷 38탈삼진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으로는 2012년 초반 트리플A인 오클라호마에서 6경기에 선발 등판, 2승 무패의 성적을 남겼으며 31⅔이닝 동안 37피안타 10볼넷 21탈삼진 평균자책점 5.12를 기록했다. 마이너 통산 기록은 41승 21패 평균자책점 3.62이다.

2.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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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경쟁에서 밀려 트리플 A에서 시즌을 시작하였으며 6경기 2승 31.2이닝 5.12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KIA 타이거즈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오클라호마는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브라이언 배스를 영입했다.

입단 당시 헨리 소사는 시속 155km에 육박하는 강속구가 주무기로 커브슬라이더가 수준급이며 안정적인 투구 밸런스와 탈삼진 능력, 이닝 소화력까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했을 정도로 젊은 투수 유망주였던 만큼 한국에 입성한 용병들에 비해 젊은 나이도 이점으로 꼽혔다. 이 선수의 출생년도만 놓고 봐도 같은 팀이용규, 나지완, 김주형 등과 동갑이다.

헨리 소사를 영입했을 당시 아직 KIA 타이거즈에 외국인 투수 호라시오 라미레즈앤서니 르루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소사가 영입 확정되기 전까지는 이 두 선수들이 불안 속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당초 불안한 제구력을 보이면서 성적이 좋지 않은 같은 포지션의 우완 선발 앤서니 르루가 퇴출이 유력시되었으나 정작 앤서니 르루는 호투를 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고[2] 좌완 계투 호라시오 라미레즈가 마무리로 올라왔는데 투아웃을 잡은 뒤 갑자기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결국 라미레즈가 퇴출되고 말았다.

2.1. 2012 시즌

그의 첫 한국프로야구 등판일이 마침 이종범의 은퇴식이 열렸던 5월 26일 LG전이었다. 이 날 소사를 포함한 모든 KIA의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7번 이종범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가졌다. 소사는 코치진과 팬들의 부응에 힘입어 6이닝 2실점의 겉으로 보기에는 무난한 데뷔전을 치렀다. 150km/h대에 형성되는 패스트볼을 구사하면서 위력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면서 선발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뼈아픈 안타를 맞는 등 심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작용되었다. 특히 이날 소사가 등판한 가운데 총 3번의 만루 찬스를 만들어주면서 투구수를 많이 가져갔다는 점은 소사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겨졌다. 하지만 충분한 한국 타자들의 정보가 없이 시범경기를 가지지 않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이 많다. 이 날 경기는 박빙으로 흘러가면서 승리투수 요건이 날아가는 불운을 맞이했고 최종적으로는 KIA의 6:5 역전승을 기록하였다.

그의 불운은 6월 1일 두번째 등판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날 소사는 8이닝 1실점 완투패를 기록했다.

6월 6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는 4이닝 동안 7실점 7자책을 기록하며 크게 부진하였다.

6월 12일 넥센전에서도 3이닝 7실점으로 난타당하면서 패전. 팀은 0:13의 완패를 당했다. 일각에선 이번 용병교체도 실패 아니냐는 시각도 슬슬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맙소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고 말았다.

6월 17일 LG와의 군산 홈경기에서 드디어 8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첫 승을 신고하였다. 선동열이 쿠셰는 신경쓰지 말고 너의 공을 던지는 데만 집중하라고 조언한 덕분이었다고.

6월 23일 SK와의 홈경기에서도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여 2승을 거뒀다. 삼성, 넥센전에서의 부진을 점차 만회하는 분위기. 다만 이날 火펜의 막판 퐈이아로 2승이 날아갈 뻔했으나 박지훈이 겨우겨우 막아 힘겹게 승수를 추가했다.

6월 29일 한화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8이닝 2실점 無볼넷으로 다시 한번 QS를 기록하며 팀의 6연승을 이어가는 승리투수가 되었다. 특히 120투구 내외로 오랜 이닝 투구할 수 있는 이닝이터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7월 7일 넥센전에선 오윤에게 투런을 맞는 등 1이닝에만 4실점을 쓸어담아서 남은 이닝 동안 다른 불펜들을 돌려막게 하고선 자신은 패전을 챙겼다. 이상하게 목동에서는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모습.

그러나 그 다음 등판인 7월 12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는 폭투로 인한 1실점(비자책점)을 제외하면 롯데 타선을 틀어막으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 KIA의 5할 승률에 +1을 만들어내는 데 공헌하였다. 다음 등판인 7월 18일 두산과의 홈경기에서는 3회에만 4실점을 기록하여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외 이닝에서는 상대 타선을 비교적 잘 막아내면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다. 공교롭게도 12일과 18일 모두 강우콜드 게임이 선언된 경기였고 특히 18일 경기는 소사가 5회까지 던진 이후 비가 내리면서 운좋게 승수를 쌓았다.

7월 25일에는 상대전적이 제일 약했던 넥센을 상대로 6⅔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6승째를 챙겼다. 그 이전까지 ERA가 넥센을 상대로 24.75였던 것을 본다면 넥센에게 약했다기보다는 목동과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8월 29일 삼성과의 군산 홈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였으나 제구 난조를 보이며 3실점을 허용. 타선은 윤성환에게 묶이며 점수를 내지 못했고, 그대로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날은 6이닝 24타자 96투구수 17타수 4피안타 1피홈런[3] 3사사구 7K 3실점 2자책점[4]을 기록. 와중에도 7K나 잡아내며 QS를 기록하긴 했다(...). 팀은 4:0으로 패배했다.

9월 28일 SK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초반부터 투구수가 많았다. 그러나 끝까지 내려오지 않고 결국 9이닝 150구[5] 2피안타 1실점(비자책) 완투승을 기록하며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의 4경기 연속 선발 완투의 대기록[6]을 작성하였다! 사실 이 경기에서 이렇게 무리할 이유는 없었는데 이전 3경기에서 선발들이 모두 완투승을 거두자 본인 욕심과 팀의 기록 욕심이 더 해져서 그랬던 것. 또 체력이 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0월 5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해 9이닝 동안 역투하며 5: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2경기 연속 완투승에 완봉승. 소사이어인급 활약으로 많은 팬들이 2013년 시즌에도 재계약하길 바랐다. NPB로 진출하거나 선동열 감독에 의해 좌완 OR 마무리 투수를 외국인 선수로 영입할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결국 12월 19일 앤서니 르루와 함께 KIA재계약.

아래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이미 석 달 동안 80여 이닝을 던졌다고 한다. 한국 와서 150이닝 가까이 던졌으니 1년동안 도합 230이닝을 던진 셈이다. 그리고 이 혹사의 여파는...

2.2.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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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넥센 히어로즈 시절

3.1.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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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KBO 리그 승률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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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즌 중반에 합류했으나 10승 2패로 승률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4.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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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과 결별한 후 2014년 12월 7일 LG 트윈스와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식 발표는 12월 8일. 보장금액은 60만 달러(계약금 20만+연봉 40만)에 옵션 비공개.

넥센과의 협상 당시 앤디 밴 헤켄보다 높은 연봉을 요구했다는 말이 나왔기에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있었는데, 기사에 따르면 에이전트가 지나치게 높은 금액 요구 → 다년 계약을 요구하는 수법을 시도했으나 먹히지 않아서 웨이버 공시로 풀리게 되었고, 차선책으로 LG를 선택한 듯하다. LG로서는 어부지리인 셈. 참고로 이 에이전트는 당시 펠릭스 피에의 에이전트도 겸했는데, 똑같은 수법을 시도하다가 피에는 한화에게 임의탈퇴로 묶여버리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이쪽 참조.

4.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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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5061703755_0.jpg

4.2.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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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enter.lgtwins.com/2016131036582.jpg
항목 참조. 안타는 많이 맞는데 잘 막아준 선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타선이나 불펜이 도와주지 않아 날아간 승리가 대략 4-5경기는 된다. 그러다가 후반기 들어 자기 자신도 피안타가 어느 때보다 급격하게 늘어나고 실점도 대량으로 늘어나면서 시즌 후 교체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작년처럼 어찌어찌하여 10승을 달성했고 이 승리로 LG는 4위를 확정지었다.[7]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우려와 달리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으며, NC와의 1차전에서도 비록 임정우가 말아먹긴 했지만 6.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게다가 3차전에서도 불펜등판하여 1.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가을야구 3경기 1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단 1점도 실점하지 않았다. 덕분에 재계약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즌 후 총액 90만 달러로 재계약에 성공했으며 이로서 한국에서 6번째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사실 소사의 성적이 2015 시즌보다 안 좋은 건 갑작스러운 BABIP의 상승에 의한 바가 크고 올시즌 FIP는 오히려 두산더스틴 니퍼트보다도 낮은데다가 올해 세부 성적을 보면 삼진ㅡ볼넷 비율에 큰 차이가 없고 피장타율의 상승도 없이 딱 피 1루타의 상승으로 인한 성적 저하이기 때문에 반등의 가능성은 높다.

4.3.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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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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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으며 올해도 LG 트윈스에서 뛰게 됐다. 다만 재계약 과정에서 소사를 거르고 리즈와 계약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며 선수 본인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힌 프런트와 양상문, 류중일은 까였다. 그리고 소사가 시즌 들어 작년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페이스를 보여주면서 까임은 한층 더 많아졌다.

하지만 압도적인 페이스를 보였던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에는 비교적 부진했고 LG가 새 외국인 투수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출신 케이시 켈리를 영입했고, 타일러 윌슨과도 재계약하여 소사가 설 자리를 잃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 선수들의 세금 문제로 인하여 한국에 남아 있기가 사실상 어려웠던 듯. 결국 정든 LG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5. 푸방 가디언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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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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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브록 다익손의 대체 외국인 선수를 구하던 SK 와이번스와 계약금 35만 달러, 연봉 17만 달러, 총액 52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반 년 만에 KBO에 복귀하게 되었다. 계약금이 연봉보다 높은 건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납된 세금을 급하게 내기 위해 이런 계약을 한게 맞다는 기사도 나왔다.

한편 LG 시절 쓰던 50번은 박종훈이 쓰고 있어 브록 다익손의 번호였던 61번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6.1.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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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소사의 KBO 리그 마지막 시즌.

7. 푸방 가디언즈 2기

7.1. 2020 시즌

결국 대만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2019년과는 달리 1년 계약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해서 시즌 중 한국 복귀는 어려울 듯. 대신에 보장금액 월봉 5만 달러로 역대급 대우를 받게 되었다.[8]

개막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산뜻한 출발을 했다. 경기 MVP 선정은 덤.
4월 19일 라쿠텐 전에서 시즌 1호 벤치클리어링[9]을 일으켰다. 나중에 알려지길 상대팀 타자가 포수와 실랑이를 벌이는걸로 오해하고 보복구를 던져 일어났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29경기 15승 5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다. 194⅓이닝을 던지며 172탈삼진을 잡았다. 완투는 4회, 완봉은 1회 기록했다.

다승-방어율-탈삼진 모두 2위로 제대로 콩라인을 찍었지만 소화이닝 1위와 WAR 1위로 팀의 1선발 역할은 여전히 해줬고 시즌 후 2년 연장계약을 맺었다.

7.2. 2021 시즌

투구 중 발을 잘못 디뎌 십자인대 파열로 부상을 입어서 시즌 아웃됐다.

외국인 선수 쿼터 문제로 2군에 소속됐다. 본래 계약이 2년 계약이기도 하고 구단측에서는 복귀를 기대하며 연봉을 지급한 모양인데, 십자인대 부상은 치료와 재활에 1년은 걸리는 부상인 데다가 소사가 36세의 노장이라 현역복귀가 불투명했고, 결국 방출되었다.

8. 라쿠텐 몽키스 시절

푸방 퇴단 이후 같은 대만 리그 소속 구단인 라쿠텐 몽키스와 입단 협상을 했고, 2022년 1월 9일 라쿠텐 몽키스와 계약했다. # 라쿠텐 구단은 “윈터리그에서 소사의 경기를 모니터링했다. 무릎 부상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소사는 몇 년간 대만 경험을 갖고 있다.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헨리 소사에 대해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5경기에만 등판하고 팀을 떠났다.

9.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 시절

9.1.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

2022년 7월 13일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 소속 구단인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와 계약했다.

2023년 1월 19일 방출되었다.

9.2. 피라타스 데 캄페체

2023년 6월 27일 피라타스 데 캄페체와 계약했고 7경기 선발 등판해 32이닝 ERA 3.94 25탈삼진을 기록했다.

9.3. 콘스피라도레스 데 케레타로

2024년 4월 11일 콘스피라도레스 데 케레타로와 계약하였다.

현재 리그에서 20경기 (12선발) 6승 4패 ERA 6.63을 기록하고있다.

10. 애틀란틱 리그 시절

2023년 8월 12일 미국 애틀란틱 리그의 신생팀 스파이어 시티 고스트 하운즈와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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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선수들은 매디슨 범가너, 버스터 포지, 트래비스 이시카와, 세르지오 로모.[2] 하지만 앤서니 선발 당시 수비진의 실책으로 인해서 패전의 멍에를 쓰고 말았다.[3] 박석민의 솔로 홈런.[4] 배영섭의 번트 타구를 잡은 후 아무도 없었던 3루에 송구했다![5] 마지막 공이 150구째였는데 구속이 154km가 찍혔다.[6] 서재응-김진우-윤석민-헨리 소사[7] 10월 6일 경기에서 5할 -1에서 KIA삼성에 패배하여 4위 수성 및 5할 승률 불가를 확정지었다.[8] 대만에서 용병선수는 연봉 10-20만 달러 정도를 받고, 보장금액 25만 정도면 특급이다. 그런데 소사의 2020년 연봉은 보장금액만 50만 달러이니 한국으로 치면 200만불 이상의 초특급 대우. 여기에 옵션까지 합치면... 그런데 중신 브라더스가 소프트뱅크에서 뛰었던 아리엘 미란다를 연봉 60만 달러라는 역대 최고수준 금액을 현질해가며 데려와서 묻히게 생겼다. 참고로 대만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급으로 장수하는 용병투수 마이크 로리의 2020년 연봉이 30만 달러 수준.[9] 전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1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