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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12:28:51

반일/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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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파일:중국 반일시위.jpg
2005년 중국에서 일어난 반일 시위. 일본이 전범 행위를 미화하는 교과서 개정안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하여 1만 여 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중국 국내에서 조사하는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설문에서 거의 대부분 일본이 1위를 차지한다. 이는 과거 중국일제와 피터지게 싸운 과거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별개로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아시아 패권국가였던 일본과 21세기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최대의 패권국가가 된 중국간의 마찰 때문이다. 일본 또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 2위 경제대국의 타이틀을 빼앗아간 중국을 그 어떤 나라보다 경계하는 중이며 유사 설문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중국을 1위로 꼽으니 이러한 마찰은 현재진행형.

2. 상세

기본적으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1] 청일전쟁중일전쟁, 난징 대학살, 센카쿠 제도 영토분쟁, 야스쿠니 신사 참배, 최근 일본이 시행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의 이유로 일본에 좋은 감정이 있을 수가 없다. 물론 중국에서의 격렬한 내전에 의한 사상자가 포함된 수치이기는 하나 최대 3천만명이 죽었다는 비공식 통계마저 있을 정도니... 이렇다보니 중국이 승전국이 되어 UN 상임이사국이 된 이후에도 일본에 악감정이 남아있다. 중국 드라마들만 봐도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양판소 수준으로 쏟아져 나오며 심지어 비료 첨가제 광고에서 대놓고 일본인을 구이쯔왜노라고 디스하는 일도 있었다.

다만 알아둬야 할 부분은 과거사를 이유로 들어 일본을 비판하는 중국의 행보는 21세기 들어 집중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문제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전후 배상 문제를 청산하지 않았으나 이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스스로 국가 차원의 청구권을 포기하였으며, 이후에도 개인 차원의 청구권이 살아있어[2] 일본이 여러 배상을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사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던 과거에는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로 한일관계가 개선됐듯 일본과 중국의 관계도 그렇게 험악하지 않았다.[3]

이러한 분쟁이 격화된 것은 중국이 일본을 막 제친 2010년대 초반부터이다. 이 당시부터 중국은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힘자랑을 시작했고, 남중국해에서의 영토 분쟁에서도 해군을 동원하여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압박하면서 이들을 보호하는 미군자위대와 충돌하기도 하였다. 중국이 남아메리카아프리카 지역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일본을 지원하고,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지원하는 연결고리가 워냑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라 중국이 포위망을 뚫을만한 껀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들의 국력이 팽창하고 주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데 시시건건 미국과 일본이 방해하니 좋게 보일 수가 없다. 중국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에 대한 사료를 대거 공개한 것 또한 중일감정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충돌은 점점 국민감정 악화로 번져 2012년 9월경, 중국 각지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 및 일본제 상품 파괴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오쩌둥은 중일전쟁을 국민정부를 약화시켜 자신이 중국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항일을 주장하는 자들을 국민정부 편이라며 숙청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일본의 사죄에는 진절머리를 내면서 오히려 일본이 침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일본 군인에게 했다가 중국인들의 비난을 들었다. 항일은 공산당 중심이었다?, 신격화된 항일전쟁 참조.

[1] 이쪽도 간토 대학살, 강제징용, 등으로 인해 좋은 감정이 있을 수가 없다. 자세한 건 반일/대한민국 문서 참조.[2] 한일기본조약과의 최대 차이점이다.[3] 정확히는 항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는 바람에 반일감정이 생길만한 내용이 가장 응축됐다고 할 수 있는 중일전쟁에 대해선 대충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해 여유가 생겨 친북 인사들의 항일 운동도 조명해주는 것처럼, 중국이 대만을 국력으로 압살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장제스의 국민당에 대해서도 잘한건 잘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