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tablewidth=100%><tablebgcolor=transparent><-6> ※ 본 틀은 매년 도급 순위(=시공능력평가순위) 상위 30개 건설사를 등재한다. 매년 순위는 당해 8월 1일에 발표해 이듬해 7월 말까지 적용하며 이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지배회사 | 계열사 |
| 호반건설 | <colcolor=#373a3c,#ddd> 호반자산개발 | 스카이리빙 | 코너스톤투자파트너스 | 플랜에이치벤처스 | 서울신문 | 이비뉴스 | 호반호텔앤리조트 | |
| 호반산업 | 대한전선 | 호반TBM | 티에스주택 | 티에스개발 | 티에스자산개발 | 티에스리빙 | 티에스건설 | | |
| 호반프라퍼티 | 아브뉴프랑 | 대아청과 | 삼성금거래소 |
| <colcolor=#fff> 주식회사 호반건설 湖磐建設 | HOBAN CONSTRUCTION CO.,LTD. | |
| | |
| <colbgcolor=#89898A> 국가 | |
| 창립일 | 1989년 7월 1일 ([age(1989-07-01)]주년) |
| 업종명 | 아파트 건설업 |
| 창업주 | 김상열 |
| 대표자 | 박철희(총괄대표 겸 이사회 의장) 변부섭(건설안전부문 대표) |
| 브랜드 | 위파크 호반써밋 |
| 규모 | 대기업 |
| 상장 유무 | 비상장 기업 |
| 매출액 | 3조 2,071억 원(2022) |
| 영업 이익 | 6,024억 원(2022) |
| 순이익 | 3,726억 원(2022) |
| 도급 순위 | 12위(2025)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대로2길 18 (우면동) |
| 웹사이트 | |
| 유튜브 | |
1. 개요
대한민국의 건설사이자 호반그룹 계열사.호반건설은 1989년에 김상열 회장이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1]에서 창립하였으며 주택건설, 토목 및 인프라 사업, 부동산 개발 등을 주력으로 한다.
브랜드로 위파크과 호반써밋, 베르디움를 보유하고 있으며, 호반그룹의 모태이자 핵심 계열사로서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품질 중심의 경영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상세
1990년대에는 광주광역시 안에서 아파트 건설사업을 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 '호반리젠시빌'이라는 브랜드로 민간임대아파트를 광주뿐만 아니라 호남 지역 전체에 엄청나게 공급하여 몸집을 키웠다.[2]2005년에는 본사를 광주 쌍촌동에서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전하고 '호반베르디움'이라는 신규 브랜드를 런칭했다.
호반건설은 설립 때부터 늘 방어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해 왔다. 분양률이 90%가 되지 않으면 다음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협력업체와 거래 시 어음 없이 현금으로만 결제하는 것이 그 예시다. 호반 스스로도 "단 한 장의 어음도 쓰지 않는 기업"이라고 캐치프레이즈로 이용하기도 했다.
평시에는 이러한 경영 기조로 큰 성장을 이루기 어렵지만 경제위기시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여파로 국내 건설업 경기가 얼어붙자, 대기업 건설사들은 국내 사업을 축소하고 해외 플랜트 사업으로 대거 진출한다. 공급되는 주택이 현격히 감소한 상황에서 2기 신도시의 공공택지 등이 풀렸는데, 호반건설은 이 부지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시행과 시공을 직접하는 자체사업방식으로 큰 이윤을 남겨 성장한 것이다. 무차입 경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량의 부지를 무리 없이 매입할 수 있었다. 특히 분양을 통해서 시공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3~4%인 반면 시행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최고 20%에 이르기 때문에 다른 건설사들과 달리 자체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호반건설은 시행사(디벨로퍼)와 시공사(건설사)를 함께 하면서 이익을 전부 다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급성장의 배경이 됐다. 호반건설의 성장을 보고 대형 건설사들이 호반건설을 벤치마킹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처럼 부동산 개발사업에 진출하려는 건설사들이 생겨났다.[3] 다만 자체 부동산 개발사업은 수익성이 높은 만큼 위험부담도 높아서 재무적으로 취약한 건설사들은 직접 디벨로퍼까지 역임하려다가 위기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4]
2018년 기준 대형 건설사들 평균 부채비율이 200%인데 비해, 호반건설은 부채비율이 10%대로 사실상 빚이 없는 무차입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무차입 경영이 기업의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건설업은 특성상 현금 흐름에 민감한 업종이기 때문에 무차입 경영을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해태그룹이 해태전자, 해태중공업 진출로 부실해진데 더하여 사업본부를 새로 차려 건설업까지 진출하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룹이 해체되어버린 사례나 진로그룹이 마찬가지로 건설업에 진출하기 위해 진로건설을 설립했다가 부도로 그룹이 해체된 사례처럼 건설업은 이윤도 크지만 리스크도 커서 현금만 보고 이 업종에 문외한인 기업이 도전했다가 부도난 사례가 많은 것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크지만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엄청난 물량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면서 2009년, 2010년, 2014년 전국 주택 공급 실적 1위에 오르는등 2000년대 후반부터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다수의 신도시 및 택지지구 개발에 참여했다. 광교신도시, 판교신도시, 동탄신도시,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배곧신도시, 세교신도시, 한강신도시, 전북혁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경북도청신도시, 도안신도시 등에 진출하였으며, 그 외에도 수원 호매실지구, 평택 소사벌지구, 의정부 민락2지구, 부천 옥길지구, 고양 원흥지구, 청주 성화지구, 오송지구, 강서지구, 용인 흥덕지구, 춘천 거두지구, 부산 명지지구, 대구테크노폴리스, 경산 임당 역세권 도시개발지구 등에도 진출했다.
3. 시공능력평가 순위
| <rowcolor=#fff> 연도 | 시공능력평가 순위 | |
| <colcolor=#fff><colbgcolor=#808080> 2005년 | 114위 | |
| 2006년 | 86위 | |
| 2007년 | 79위 | |
| 2008년 | 77위 | |
| 2009년 | 77위 | |
| 2010년 | 62위 | |
| 2011년 | 49위 | |
| 2012년 | 32위 | |
| 2013년 | 24위 | |
| 2014년 | 15위 | |
| 2015년 | 15위 | |
| 2016년 | 13위 | |
| 2017년 | 13위 | |
| 2018년 | 호반건설주택 | 호반건설 |
| 13위 | 16위 | |
| 2019년 | 호반건설 | |
| 10위 | ||
| 2020년 | 12위 | |
| 2021년 | 13위 | |
| 2022년 | 11위 | |
| 2023년 | 10위 | |
| 2024년 | 12위 | |
| 2025년 | 12위 | |
4. 지배 구조
| <rowcolor=#fff> 주주명 | 지분율 |
| 54.73% | |
| 10.84% | |
| 10.51% |
5. 비판 및 논란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호남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이지만 전국 단위 대형 건설사로 큰 이후로는 호남을 외면하는 모습에 호남을 도외시하는 호남 향토기업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가령 광주광역시 광산구 호반2차 아파트의 경우, 앞의 송도로162번길이 23년째 비포장도로로 방치되고 있는데도 전혀 개선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만 대기업으로 성장해서는 다른 지역에도 기부를 하지만 호남 지역에서도 지역사회에 봉사한 공으로 광주시민대상을 받았고, 광주 지역 경제단체를 대표하는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기도 했고, 10년을 넘게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계속 맡고 있으며, 2020년에도 대한민국을 빛낸 호남인상을 받기도 할 정도로 지역 사회에 꾸준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목소리는 크지 않다.2019년 8월 3일 경기도 하남시 현안2지구 ‘하남 호반베르디움 에듀파크’ 공사 현장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진 인부를 발견한 안전관리자가 119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현장 책임자가 안전관리자에게 폭언과 폭행을 자행하고 구급차 대신 일반 차량으로 지정병원으로 후송한 사실이 드러났다. 산업재해 은폐 정황이 의심되는 상황.#
5.1. '벌떼 입찰' 공공택지 편법 수주 및 부정승계 논란
2010대 전후 중견 건설사 시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벌떼 입찰이라는 편법을 사용했다는 비판이 있다. 벌떼 입찰이란 시공능력이 없는 페이퍼 컴퍼니까지 포함한 수십 개의 계열사를 한꺼번에 동원하여 특정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함으로써 당첨 확률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수법을 말한다. 중흥건설, 우미건설, 제일건설, 반도건설 등 호반건설을 포함한 5개의 당시 중견 건설사가 LH가 공급한 공공주택용지 전체 473개 필지 중 142개(약 30%)를 집중적으로 낙찰받는 데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건설과 분양이 이루어진 단자의 분양수익은 6조 3,000억 원어치로 추정된다.#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2013년 ~ 2015년 계열사를 동원해 23곳의 공공택지를 낙찰받고, 이를 김상열 전 회장의 장·차남이 운영하는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에 양도했다. 그 결과, 총수 자녀들의 회사는 공공택지 사업으로 분양 매출 5조 8,575억원, 분양 이익 1조 3,587억원을 취득했다. 호반건설은 2세 회사를 위한 입찰낙찰금을 무상으로 빌려줬고, 택지 양도 후에도 사업 전과정에 걸쳐 업무·인력·PF 대출 지급보증(2조 6,393억원) 등을 지원했다. 공정위는 이를 호반건설이 경영권 편법 승계를 목적으로 부당한 내부거래 행위를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여기에 사용된 호반건설주택은 장남 김대헌이 미성년자였던 2003년부터 그의 지분 100%로 설립되었다. 이후 거의 호반건설로부터의 내부거래만으로 10년도 채 되지 않아 자본금 5,000만원에서 자본총액 1,840억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8년 호반건설이 호반건설주택을 흡수합병했는데, 피합병회사인 호반건설주택의 장남 김대헌이 반대로 합병회사인 호반건설의 지분 54.73%를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는 일감몰아주기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피합병회사 대주주의 합병회사 지배력을 키우는 전형적인 승계 방식이라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반면 호반건설은 '벌떼입찰'은 시장 상황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의도적 지원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2023년 공정위는 호반건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2025년 3월 27일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 (구회근·김경애·최다은 부장판사)는 호반건설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하며 과징금을 243억으로 감액했다. 2세 회사를 위해 무상으로 지급보증을 서준 행위와 건설공사를 이관한 행위 등은 그대로 유지했으나, 공택지 전매 행위(= 벌떼입찰)와 입찰신청금 무상대여 행위 등 2건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를 취소한 것이다. 벌떼입찰이 당시 정책상으로는 위법사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2023년 벌떼입찰이 문제가 된 이후 3년 한시 제도로 '1사 1필지' 규제가 적용되었으나, 2025년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공공 택지가 안 팔린다는 이유로 이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논란이 되었다. 과거의 벌떼입찰을 강도 높게 제재하면서 정작 규제는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6. 관련 문서
[1] 현재 그 위치는 재개발로 옛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지금은 호반이 시공한 광주 그랜드센트럴이 들어섰다.[2] 이 당시 동업관계의 회사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독립해서 골드클래스와 리젠시빌주택이 되었다.[3] 건설업과 부동산 개발 사업은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이질적인 분야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최근 위기도 뒤늦게 부동산 개발 사업에 진출하면서 본업인 건설업에 소홀한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4]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아파트는 건설사가 직접 땅을 사서 시행과 시공을 겸하여 짓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호반보다 더 먼저, 더 많이 아파트를 지어본 회사들이 결코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이러한 방식이 ‘잘 될땐 엄청나게 잘 벌지만 안 될땐 회사가 망할 수 있다’라는 것을 뼈 저리게 경험하였고 정부 차원에서도 건설사들의 부실한 재정을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모든 리스크를 건설사 혼자 짊어져야 하는 기존의 방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대신 시행사를 끼고 수익과 리스크를 같이 분담하는 지금의 방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호반의 성공비결은 단순히 시행과 시공을 겸하는 사업방식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단 김상열 회장의 재정관리와 판단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