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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4 21:23:47

환빠/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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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래2. 초월3. 이유
3.1. 무지함3.2.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에 대한 열등감3.3. 국민 사기를 높이기 위해?3.4. 지적 허영심과 올바른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정의감3.5. 정부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과 음모론 맹신
4. 강단사학에 대한 반감5. 환빠의 진화6. 반작용?

1. 유래

그 유래는 20세기 초반의 민족주의 사학이나 대종교, 증산도 등 민족주의 종교들까지 올라간다. 당대 한반도에서는 일제에 대한 반감으로 민족주의가 한창 고조되었고, 천부경 같은 날조된 자료들도 이 시기의 것이 많다. 당시 민족주의 사학의 거두로 꼽히는 신채호, 정인보 등의 저서도 지금 읽어보면 과장과 억측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한국에 역사학의 체계 자체가 서지 못한 시기라는 점, 사료 데이터의 열람 및 축적이 지금보다 훨씬 수준이 낮아 교차검증 등의 작업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 그나마 존재하는 사료들도 일제의 검열 등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못해 대중적인 비판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 학자 대부분이 항일운동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 신체적 억압을 받았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강역만을 근거로 신라와[1] 조선을 무조건 비난[2]하고 고구려의 영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관은 일제가 추진한 내선일체의 일환인 '만선사관'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식민사관 항목 참조. 실제로 만주국 건국에 앞서 일본은 '예전에 만주는 조선 영토였고, 조선은 지금 일본제국령이니 만주도 우리의 차지'라는 논리[3]로 정당화를 시도하였고,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인사들은 '잃어버린 고구려 옛 땅으로' 같은 구호로 조선인의 만주 개척을 장려했다. 다만 환빠가 만선사관의 직계 후손은 아니고, 개중에서도 자기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해서 왜곡의 범위를 넓힌 정도에 가깝다. 따지고 보면 만선사관에서 한민족이 과거 만주를 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틀린 것이 아니고, 이를 현재(즉 일제강점기)의, 그것도 한국도 아닌 일본의 팽창주의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하려는 과정에서의 논리적 비약이 잘못된 것이다.[4] 반면 환빠는 반드시 현대 한국의 팽창주의와 관계되어 있지도 않고, 고대 한민족의 강역을 올려잡는 역사왜곡이 문제시되는 것이다.[5] 다만 자칭 민족주의 사관의 후계자라는 환빠들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던 일제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조선을 중국의 속국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이가 없는 상황.

해방 이후에는 정부 차원의 사료 정리가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다소 완화되었으나, 일제 및 식민사학에 대한 국민적인 강한 반감과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강하게 반영된 한국의 성장 과정에서 민족주의적인 사학은 1970년대까지 한국 사학계를 주도했다. 물론 이 때까지의 사관이 현대 한국 사학의 기틀이 되어 현재에도 사학계의 큰 줄기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요서경략설, 자본주의 맹아론 등 희망적인 학설에 대해 말 그대로 희망적이기만 한 분석이 쏟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때는 북한 사학계도 민족주의적인 기풍이 강해서, 임나일본부설에 반박하기 위한 일본 내 삼한 분국설, 요서 한사군설 등 결과적으로 '한민족'의 영역을 외부로 확장시키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성과들은 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암암리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희망적 사관이 대중화된 것은 1980년대이나, 일반 대중 사이에 이러한 학설들은 일부만이 과장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들 중 비약이 심한 것들만을 취사 선택해 버무려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환단고기. 여기에 증산도, 대종교 등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종교가 합세하기 시작했고, 연원이 고대로 올라가는 성씨 족보들의 뻥튀기도 이를 보조했다.

여기에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부터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황당한 역사관을 조장했다. 실제로 환빠의 조상격인 임승국이 10월 유신을 옹호한 바가 있으며, 이 시기 국회에서는 '국사 교과서의 단군조선이 사실이냐 아니냐'란 주제로 청문회를 하기도 했고, 육군사관학교에서도 환빠스틱한 역사관을 '일만년 새역사, 웅비하는 한민족'이라는 교재로 가르친 적이 있다. 그리고 환빠 판타지의 미래판인 <다물>이라는 책의 모티브가 된 인물 박창암은 환단고기를 발굴한 작자들 중 한 명이자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당시 정신세계사에서 출판한 김정빈의 <단(丹)>이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단은 단군 계열의 종교인인 권태훈[6]의 일대기를 다룬 책으로, 정말로 단학을 수련하고 단전호흡을 하면 도사신선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방한했던 초능력자라고 알려진 유리겔라가 TV에서 수저를 휘는 신통력을 보이자, 이런 초능력을 믿는 이들이 많아졌고, 절묘한 타이밍에 나온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환빠가 생겨난 것이다.

정신세계사는 이어 <한단고기>[7]와 '겨레를 밝히는 책'이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역사관을 담은 유사역사서가 여러권 나왔는데, 이 책들이 많이 팔리고 널리 읽혀짐에 따라 극렬 환빠들이 생겨났다. 이덕일김진명 같은 비전문적 역사 저술가들[8]에 의해 유포되는 잘못된 사료 해석이나 사료 왜곡도 민족주의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파시즘적 테이스트로 말미암아 사회 전반에서 초보적 환빠를 양산하는 기제가 되었다.

일부는 환빠가 생겨나게 된 것에 중국이 한몫을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환빠의 태동이 1980년대인데, 그 당시 한국에서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공"이라고 불렀고,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서 그 내부 사정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연히 역사에 관련된 중국 당국의 정책이나 사론, 연구성과들도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 중국 때문에 환빠가 생겨났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애당초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팽창주의와 식민주의가 혼합된 역사왜곡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야 1990년대 중반이며, 실제로 동북공정, 즉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라고 이름을 붙인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2002년이었다. 오히려 중국이 이런 무리수를 두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환빠들이 만주지역에 가서 "조상의 고토" 운운하여 중국 측을 자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떻게 보면 동북공정을 시작으로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 등 중국이 한국 역사 및 문화에 대한 침탈을 행하고 있는 것은 환빠들이 이 상황을 자초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 초월

사실 대륙 삼국설 이상의 각종 대륙설 등은 《환단고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환단고기》에 나온 것은 고구려까지고, 백제는 산둥 반도에서 한반도로, 신라는 만주에서 한반도로 내려왔다고 돼있다. 즉, 이 이상은 환단고기에서도 볼 수 없는 판타지라는 것이다.

애초에 대륙 삼국설을 주장하던 자들은 그 위치를 만주로 비정했고, 그 흔적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에 남아있다. 때문에 대륙삼국설은 《환단고기》가 아닌 다른 사료들을 왜곡한 것으로 기초를 삼고 있다. 때문에 나름대로 정통(?) 환빠들은 대륙삼국설을 배제한다.

문제는 《환단고기》를 읽어보지도 않고 이를 《환단고기》의 주장으로 알고 있는 환빠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연한 것이 나름대로 한문투성이 '사서'를 지향한 《환단고기》를 볼 정도의 능력이나 열정이 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걸 알고 비판적인 의견으로 돌아서고, 극소수만이 인지부조화에 의해 더 깊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환단고기》를 아예 무시하고 있다는 통념과 달리, 《환단고기》는 원조 환빠들의 기세가 죽은 80 ~ 9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 연구되어왔다. 물론 그 수는 적은 편이지만 아예 무시한다는 말이 나올 수 없을 정도의 연구가 있었다. 물론 결과는 당연히 위서. 때문에 환단고기에 대한 논쟁을 보면 환빠보다 이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더 《환단고기》에 대해 잘 아는 경우가 많다.

사실 환빠들 중에는 《환단고기》보다는 2차 창작물을 통해 사이비 사관을 접한 경우가 많다. 이 점을 가지고 '난 《환단고기》는 얼마간만 사실이라고 보니까 환빠는 아님'이라는 개드립을 시전하는 종자들이 있는데, 어차피 그들이 근간으로 하는 역사관은 십중팔구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에 근본이 있고 그것들은 죄다 사이비니 별 상관은 없다. 아니, 애초에 《환단고기》는 이미 완전히 논파됐는데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신뢰성은 수준이 뻔하다.

《환단고기》의 내용을 아는 환빠들은 그 수가 극히 줄어 자기들 노는 데서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글루스 등에는 아직 그런 환빠들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어쨌든 지식은 있는지라 논파된 것을 재논파할 정도의 실력은 있다. 물론 이것도 틀렸지만.

그 외 인터넷에 떠도는 나머지 환빠들은 사료나 한문을 읽을 능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귀찮아서 안 본다. 말을 해도 안 먹히는 이유는 결국 이것 때문이다. 환단고기의 내용을 아무리 논파해도 자기가 《환단고기》를 모르니 뭔 말인지 알겠는가. 그냥 욕 하는 것인줄만 알지.

때문에 소위 환빠들로 불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의 학설을 펼치기 시작하면 자기네끼리도 정리가 안 된다. 누구는 지명을 만주에 갖다놓고 누구는 지명을 중국에 갖다놓고 누구는 지명을 서아시아에 갖다놓고 하는 식이라 합의가 안 되는 건 당연지사. 앞에서 말한 책들끼리도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다만 '식민사학 까기'라는 대의(?)가 있는지라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은 보기 힘든 편이다.

3. 이유

3.1. 무지함

말이 심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진짜다. 더불어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이후 서술되는 다른 이유들 역시 무지에서 기반한다. 이 인간들은 사서를 보고 옛날에는 나왔던 광물이 지금은 안 나온다며 그 광물이 나오는 지역이 진정한 강역이라고 주장한다. 지하자원이 유한하다는 기초상식 자체가 없다. 그리고 사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찾지 못하고 있던 자원을 찾아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재해를 보면 어느 땅에는 가뭄이 들고 어느 땅에는 홍수가 들었으니 한반도처럼 좁은 땅에서 이런 의 날씨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고 난리를 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반도처럼 좁은 땅에서도 이런 극과 극의 날씨가 거의 매일 일어난다. 이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군인들을 멘붕시키는 강원도 한정 폭설이 전국적으로 와야 한다. 일기예보뉴스도 안 보고 사는 모양이다. 애초에 기후 자체가 해발고도나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9]

또다른 환빠가 되는 이유는 그냥 환빠가 되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서, 근거나 연구과정은 무시한 채 연구결과가 필요해서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종의 광신도에 가까운 것으로[10], 딱히 근거가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경우 믿지도 않으면서 주장할 수도 있으니, 종교의 프로세스와 같다.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에 대한 반응도 종교적인 유사사례와 비슷한 듯하다.

예를 들어, 7만년 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마고시대의 영토를 그릴 때 현대 지도에 가져다 대고 그리고는 한다. 사실 이 때는 마지막 빙하기의 시작이라 일본에서 필리핀까지 거의 직선에 가깝게 걸어가게 해안선이 후퇴한 상태며, 따라서 '한반도'같은 건 없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의 지도, 한반도는 그냥 육지 덩어리에 묻혀있다.

그래도 이들은 꿋꿋하게 7만년 전 존재했다는 국가의 영토를 현대 지도에 대고 그린다. 왜? 첫째는 애초에 마지막 빙하기 같은 걸 아예 모르니까. 위에서도 서술했듯 지하자원이 유한하다는 상식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빙하기의 존재 같은 지식을 요구하는건 무리다.

둘째는 당시 뭐가 있었는지 하나도 모르니까. 그냥 7만년 전이 그럴 듯해보여서 그렇게 말하지, 뭔가 생각을 해보고 7만년 전이라고 하는게 아니다. 그저 7만년 전이면 공식적으로 밝혀진 역사적 사실도 없으니까 적당히 7만년 전 역사로 주장하면 개쪽은 안당하겠지 하는 계산으로 우겨대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기록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자기들 입맛대로 한자를 해석한다. 그러면서 자신들과 정반대되는 학설에 대해서는 한자 하나하나의 뜻을 풀이하면서 한자가지고 장난친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한자 하나하나의 뜻을 자기들 입맛대로 풀이하는 경우가 잦다.

셋째는 "7만 년 전 지도"를 찾을 수 없어서. 지금 인터넷에 당시 지도를 쳐봐도 부분적인 지도만 나와서 마고시대같은 크고 아름다운 국가의 영토는 표시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어떤 미친 놈도 '7만 년 전 지도'라고 올리지 않기 때문에 검색해도 찾기 어렵다. 당시 지도는 '빙하기 지도'이지 '7만년 전 지도'가 아니다. '빙하기 지도'를 찾겠다고 검색 엔진에 '7만년 전 지도'라고 검색하는건 야동을 보겠다고 구글에 '야구 동영상' 이라고 검색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행동이다.

3.2.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에 대한 열등감

자기들 딴엔 자국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자국의 역사를 못난 역사로 규정하고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환빠 이론에 중독되는 케이스도 있다. 때문에 자신의 말이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은 환빠들은 할말이 없어지면 너는 한국 사람도 아니냐면서 매도하기 시작한다. 감정이 섞이면 패드립도 간간이 친다. 객관적인 한반도의 역사를 논하는데 한국인이냐 아니냐가 왜 중요한지는 불명이지만, 이들의 말에 따르면 "자랑스러운 한국의 국민이라면 당연히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옆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때때로 주장하는 역사왜곡 또한 다 옳다는 셈이 된다.

그런데 당연히 말도 안되는 주장임에도 이들이 이런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잘못된 애국심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나라가 자랑할 만한 역사가 있다면 나쁠건 없지만[11] 그렇다고 역사를 왜곡시킨들, 그건 타인에게 피해만 주는 자기 만족일 뿐이다. 도리어 본인이 이제부터라도 인류를 위해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 진짜 참된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특히나 제대로인 증거도 없이 이런 주장만 한다면 타국에게 비웃음만 받는다. 당장 후술하듯 환빠들의 주장에 대한 해외 반응을 봐도 '한국은 인류 문명의 원류이고 저렇게 위대한 역사를 가졌구나!'는 감명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환핀대전 같은 개그성 밈까지 나올 정도로 비웃음거리 취급받고 있다. 당장 외국의 환빠들을 본 한국인들의 반응이 어떠한지만 봐도 답이 나온다. 환빠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이런 나라 망신시키는 행동을 하는 환빠들이야말로 한국인으로서 실격이다. 그 전에 일단 인간 됨됨이부터 미달이고.

이들은 한국교육이 식민사학에 오염되어 조선사의 장점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12], 이 또한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공부를 안 해서이다. 7차교육과정의 국가에서 편찬한 국사교과서는 조선시대와 한반도 역사 전반에서 전혀 편향적이지도 않고, 식민사관론적인 말도 없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과장 좀 보태서 설명하자면, 고조선에서부터 조선까지 중앙집권의 발전 과정은 조상들의 노력이 멋지게 보인다. 고대의 왕이 신하를 찍어 누르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면 쉽게 찍어누를 수 없는 정치구조가 만들어진 것도, 조선시대의 이조전랑, 삼사대간, 왕이라는 각각의 정치기관들의 서로를 견제하며 유연한 정치적 발전을 이룩한 모습도, 고조선시대의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에서 조선시대의 세련된 종묘제례악과 왕릉으로 발전하는 문화, 정치, 경제, 사회의 발전상도 다 나온다.

즉, 환빠들이 하는 얘기는 우수한 한국 문화와 안타까운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갖은 시련을 꿋꿋이 이겨낸 조상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역사를 멋대로 후졌다고 낙인 찍어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안 통할 해괴한 판타지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고조선이 정말 고구려에 버금가는 강대국인지[13], 발해의 역사는 오롯이 한국사의 범주에 들어가는지[14] 등 기초적인 국사 교육만 받은 사람들 눈에는 당연해 보이는 사실이라도 사학계에서는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이 넘친다. 이런 점 때문에 사실 한국 사학계가 식민사학에 오염되기는커녕, 반대로 한국의 역사교육에 국수주의를 주입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는 한중일 사학계가 상당부분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15]

그래봤자 입시교육 아니냐는 말도 하는데 수능 역사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출제 포인트가 주체적, 자주적, 독창적 요소가 들어간 내용들이다. 이미 역사교육에서 식민사관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기간은 오래였고, 또한 성공적이었다. 지금의 역사교과서만 잘 읽고 공부해도 한국사에 애정을 충분히 품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 한국 사학계에 환빠 따위가 끼어들 이유도 필요도 없다.

3.3. 국민 사기를 높이기 위해?

사학(史學)의 學 자가 무슨 뜻인지 생각 해 보자. 학문이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기존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지, 부차적인 목적에 휘둘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학문이라고 불릴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변질되고 만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비판받는 주된 이유는 동북공정의 모든 내용이 허무맹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는 각각 고구려사, 발해사로써 독립적인 존재로 취급받아야지, 중국사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순수한 한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냐는 주장은 당장 국내 사학계에서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역사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변질시켜 자국의 팽창주의를 정당화하고 소수민족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학자들의 비난을 받은 것이다.

환빠들 스스로는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 맞는데? 국민 사기(詐欺). 차라리 그게 옳다구나 하면 그냥 미친놈 취급이면 끝나는데, 지들도 찔리는건 있나보다. 허나 거짓된 정보로 국민들의 사기를 높인다는 그릇된 명분이 멀리 갈 것도 없이 고작 몇십 년 전 유럽에서 한 게르만족 골수빠에 의해 어떤 비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민족우월주의에 빠져 군국주의 체제의 독일[16]은 자국민에게 수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말았다.

이런 종류의 환빠 중엔 역사 교사들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환빠적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이 동북공정·임나일본부설·독도 영유권 등을 내걸어 한국 고대사를 왜곡시키고 있으니 이에 맞서기 위해 환단고기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7] 그러나 환단고기위서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없는 책이다.[18] 그들은 이렇게라도 자신들이 환단고기의 내용을 퍼뜨려야 국민의 사기가 올라가고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방어할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말하지만, 이는 오히려 역사를 종교화하고 저들에게 한국의 역사왜곡이라고 떠벌리는 빌미만 줄 뿐이다. 타국의 역사왜곡스런 주장은 객관적인 팩트로 반박하면 되는 것이다.

중·일의 역사왜곡 주장 중 상당수는 민족주의 사관에 근거하여 각종 증거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결과물[19]이지, 환빠들처럼 지나치게 위서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환빠들은 환단고기라는 위서만 갖고 제대로된 증거도 없이 한반도 내 역사적인 국가들의 위치를 비상식적인 곳에 가져다 놓지만, 중국은 적어도 고구려를 갑자기 뚝 떼어서 티벳 고원에 가져다 놓고 중국사라고 하는 게 아니고, 일본은 '임나일본사'같은 위서를 만들어내서 조작하는 게 아니다. 없던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과 일일이 끼워 맞추는 건 엄연히 다르다.

3.4. 지적 허영심과 올바른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정의감

역사학습만화 등을 통해 다른 또래들보다 비교적 일찍 역사적 상식을 갖춘 아동은 주변 어른들로부터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랄 확률이 높아지고, 역사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자기 또래들에 비해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 상태에서 언뜻 보기에 그럴싸한 환빠 자료를 접하면 거기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자기 딴에는 역사를 좀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초상식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다 어린이가 아무리 똘똘하더라도 비판적 사고력은 청소년기를 거치고 나야 완성되는 고등지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환빠 자료를 계속 접하다 보면, '악랄한 일본놈들이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축소하기 위해 역사서를 마구 불태웠고 그러한 일제 사학자를 스승으로 받들며 맹종하는 머저리 강단사학자들이 기득권을 꽉 붙잡고 있으나 몇몇 진실된 재야사학자들만이 한민족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분법적 사고관이 잡히게 된다. 재야사학은 애국이자 이고, 매국식민강단사학은 이라는 사고관이다. 이러한 사고관은 마치 종교적 광신도나 음모론자들의 그것과 같아서 이성적 접근을 거부하게 되는데, 사실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 반박을 반박으로 보지 않고 매국식민강단사학을 옹호하기 위한 매국노들의 울부짖음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3.5. 정부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과 음모론 맹신

환빠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위 항목의 제목처럼 1. 정부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에다가 2. 음모론을 맹신하는 성향이 더해져서다.

즉, "지금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들한테 역사를 숨기고 있다! 이런 음모를 파헤쳐야 하는데, 그것에 도움이 되는 열쇠가 바로 환단고기다!"라는 식의 음모론 맹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로 환빠다.

실제로 위의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진 다음 아고라나 다음의 다른 카페들에서도 환빠들이 거의 점령을 하다시피했었고, 지금도 다음의 카페들에서는 환빠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들한테 숨기고 싶어하는 역사는 환단고기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도대체 수천 년 전의 까마득한 옛날 일을 왜 1948년에 들어서야 겨우 성립된 한국 정부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무슨 이유로 그걸 숨긴단 말인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오히려 정말로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들한테 숨기고 싶어하는 역사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이나 국민방위군 사건, 나주부대 민간인 학살 사건, 서울 홍제리 집단총살 사건 같이 현대사에 들어오면서 정부가 폭력을 사용해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들이나 혹은 한국전쟁 무렵 북한군에 협조했던 55만 명의 부역자들이나 1950년 3월 한국정부의 토지 개혁에서 제외된 머슴들 수십만 명이 여기에 불만을 품고 북한군이 쳐들어오자 적극 협조했던 일링크 및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 강행으로 인해 분노한 중공군이 집중 공격을 퍼부어 한국군 3만 명과 미군 5천 명이 전사했고 그로 인해 분노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에버레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쿠데타를 꾸민 일 등이다.링크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통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환빠들로 우글거렸던 다음 아고라나 기타 다음의 다른 카페들에서는 저런 위의 사건들을 거론하면서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들한테 진실된 역사를 숨기고 있다! 라고 울분을 토로하는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입만 열면 진실과 음모를 운운하는 환빠들이 사실은 얼마나 멍청하고 무식한지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20]

4. 강단사학에 대한 반감

환빠는 강단사학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애초에 대학에서 학문으로 정립되고 연구되는 역사학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며 이는 국내외를 막론한다. 한국의 사학계는 대부분 일제식민사관의 후예로 보아 믿지 못하고[21] 중국은 광개토대왕릉비를 뽑아다가 엉뚱한 곳에 박아놓고 한민족 피라미드에 한무제릉이라는 비석을 박아논 왜곡을 일삼기 때문에 못믿는다고 한다. 구미의 사학자들은 백인 우월주의자들로 간주해 못믿는다.

헌데 이렇게 되면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길이 없다. 그들은 환빠가 형성될 당시부터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위대한 역사서가 발굴될 것이라 믿었지만, 그런거 없다. 모든 사학계를 불신하면 결국 의지할 건 환단고기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삼국사기도 인용 못한다. 삼국사기를 대중이 볼 수 있게 연구하고 정리하고 번역해서 출판한게 환빠들이 식민사학에 물들었다고 그렇게나 비난해대는 대학의 학자들과 역사학계이니까. 중국사서도 인용하면 안된다. 중국사서를 연구하고 인터넷과 논문 검색할 수 있게 한게 중국학자들과 서양의 이른바 백인우월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서는 당연히 인용하면 안된다. 애초에 우리가 접하는 역사책들은 모두 학자들이 연구후 정리해서 출판한 것들이다.

그래서 요즘은 슬금슬금 강단사학이 만든 논문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들의 행태는 이와 같은데 이를테면 삼국사기는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고 그 필사본의 표지에는 그냥 '삼국사'라고만 적혀있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저자인 김부식 스스로가 '삼국사기'라고 쓰고 있고 책권수 표시에도 '삼국사기'라고 쓰여저 있다. 김부식이 쓴 표문에 진삼국사기표라고 쓰여있다. 헌데 환빠들은 '아닛! 표지를 무시하다니 강단사학들은 참 멍청하군요! 아닛! 일제 논문에도 삼국사기가? 이런 식민사학자들!'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이들의 저자인 김부식 부터가 삼국사기라고 하는걸 일제의 논문이나 신문에 '삼국사기'라고 표기했다고 삼국사기는 식민사학의 잔재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사실 환빠들 대부분은 한문 지식도 없어서 원사료를 해석할 능력도 없고, 그저 대중 교양 도서로 나온 2차 자료들만 죽어라 파대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다분히 그 사실성이 의심스러운 흥미 위주의 가십성 책들만 읽고 자기가 한국사를 전부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 환빠의 진화

젊은 환빠들이 나온 지도 10년이 넘어가고 그 사이 환빠의 주장들을 많이 논파한 지라 이리저리 도망가면서 기묘한 진화를 잇는다. 대륙 삼국설이나 수메르국 한민족 설 같은 황당무계한 주장들은 어느정도 사라졌으나, 건더기가 일말이라도 존재하는 대륙 백제설 등의 주장은 그들이 그렇게도 증오하던 두계 마왕 이병도의 후신인 강단사학의 논문을 가져다가 옹호한다. 환빠들이 그렇게도 믿고 의지하는 사이비 재야 사학계는 너무 좁고 협소해서 10년 파내면 더 나올 게 없다. 애초에 내세우는 주장이 중국 황제묘 사진 가지고 와서 대륙의 한민족 피라미드다! 수준이라 나이가 들면 그들도 이런 주장은 안 믿는다. 끝내 온갖 사이비스러운 사상은 다 사라지고 오직 강단사학에 증오심만 남는다.

이들은 문헌학, 인류학, 고고학 등 제반 학문의 교차 연구를 통한 기성 역사학자들의 역사상과 이론을 식민사관의 답습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는 그 어떠한 과학적 이론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이 주장하는 역사상이야말로 한국사가 지니고 있는 세계사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들의 역사상이야말로 자신들이 그토록 부정하는 식민사관의 역사 채점지를 점수만 바꾸어 답습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제 환빠계 재야사학 자료에서는 가져올 논거가 더 없으니 이제는 강단사학자들의 실수를 파고들어 진실을 탐구한다는 대의명분으로 발악한다. 그럼 문제가 나오는데, 환빠나 환빠와 논쟁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나 닮는다. 같은 소스에서 나온 자료로 논쟁하는데 당연하다. 끝내 환빠들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식민사학계의 자료를 가져다 쓰다보니 나오는 참극이다. 여기까지 오면 수밀이국, 대륙삼국설, 기타 등등 한국의 참역사를 찾아간다는 환빠들의 명분은 사라지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하고 싶다는 열등감만 남는다.

여기까지 온 환빠들은 폭력적인 논리로 인터넷 역사게시판을 찾아다니며 환빠스러운 글을 남기고 돌아다닌다. 나는 식민사학계에 오염된 우매한 니들과는 달리 진실을 안다라는 전제로 글을 쓰니 당연히 갈등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매한 대중을 계몽하는 영웅이라는 사상 자체가 추축국 파시스트에서 시작해 일본제국/한국으로 넘어와 군부독재에 쓰던 사상이다. 끝내 환빠들은 일본이 만든 식민사학을 논파한다는 대의명분에서 시작해서 일본제국이 한국에 남겨놓은 영웅주의 악습으로 돌아온다.

일부 환빠들은 1990년대에 이루어진 학계 차원의 비판, 2000년대에 활발했던 대중 차원의 비판을 거친 뒤 환단고기를 직접 인용하기보단 여타 사료의 견강부회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기도 한다.[22][23] 소로리 볍씨 논란[24] 등이 대표적인데, 세계 주류 학계의 정설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환빠들의 주장과 다르게 학계에서는 상당한 회의를 가지고 있다.[25] 사실 환빠들은 기사를 헷갈리게 써서 2003년에 열린 고고학 대회를 최근에 열린 것처럼 오해를 주거나 실제 책의 내용을 슬쩍 왜곡하기도 한다.

6. 반작용?

환빠에 대한 반발심도 심해지다보니, 일부에서는 국뽕과 비슷한 스멜만 나면 나름 권위가 있는 사학자의 주장이라도 일단 닥치고 환빠로 몰아가는 사회적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일본의 에가미 나미오 같은 저명한 도쿄대 교수가 주장한 "기마민족설" 같은 내용도 일부에서는 마냥 환빠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애초에 사학이란게 확실한 실증이 없다면 여러 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학문이다. 물론 환단고기가 욕먹는 이유는 대놓고 날조했기 때문이지만. 그 외 비슷한 이유로 국까도 나타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알타이 제어 가설에 해당되었던 몽골계, 퉁구스계, 투르크계를 혐오하는 부류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을 정도다.

환단고기의 내용을 소재로 다루었다고 무조건 환빠라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환단고기의 신뢰성 문제를 알면서도 차용했다면 의심해볼 순 있지만 치우천왕이나 쥬신 이런 단어들 나온다고 다 환빠라고 몰아붙이는건 신중해야 할 부분. 참고로 치우의 경우 단순히 산해경 등 중국측 기록을 참조했거나 묘족의 전설을 참고했으면 "치우천왕"이 아니라 "치우"라고 적어야 한다. 치우"천왕"이라는 표현은 유사역사학 계통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환빠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 양쪽 다 주의하면서 환빠적 사상이 들어 있는지, 단순히 허구적 소재로 차용한 것인지 구분해야 할 것이다.

[1] 사실 이건 환빠만의 문제가 아니라, 1980년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퍼진 역사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의 김유신이 민족의 미래를 팔아먹은 배신자라며 매도하는 여론이 무려 2020년인 현재에까지 계속 존재할 만큼,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2] 정작 발해의 멸망 이후 조선은 한반도 최대 강역을 이루었다.[3] 지금 중국의 역사관이나 동북공정의 논리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지금 만주는 중국령이니 만주지방 옛 국가들의 역사는 죄다 중국사이고, 만주 지역에 있던 고구려도 중국사이며 고구려가 장악했던 북한에도 지분이 있다는 식. 언젠가 만주 지방 뺏기고 역으로 당하고 나면 무슨 소리 할지 참 궁금하다[4] 게다가 일제가 주장했다는 이유로 이를 비난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일제가 어떤 주장을 했다는 것이 반드시 틀렸다는 증명은 될 수 없고, 반대로 일제가 거부하고 탄압했던 생각이라고 반드시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저런 사관이 역사를 단편적으로 해석한다는 관점에서 비판해야지, 단순히 반일감정에 의존해서 "일제가 했으니 아몰랑 나쁜 것!"이라는 비판은 또 다른 민족적 배타주의의 발로일 뿐이다.[5] 환빠의 주장대로 고대 한민족이 예컨대 모스크바를 지배했다고 한들 그게 현대 대한민국이 거기를 지배할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독일이 동프로이센의 역사적 주인임에도 (나치 정권의 과오라는 정치적 이유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반대로 설사 고구려가 중국사라 하더라도 미래의 외교정치적 지형이 변화하면 우리가 만주를 점유하고 그 때부터 우리의 역사를 써나갈 수도 있는 것이며, 실제로 인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국가 간의 세력구도는 끊임없이 변화했고 변화하며 변화해나갈 것이다. 역사와 정치는 연관성은 있지만 반드시 서로가 서로를 결정짓는 관계는 아니다.[6] 정작 권태훈은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했다.[7] 환 桓이라고 쓰고 '한'이라고 써야한다고 우겨댄다.[8] 이덕일은 전문 연구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전공한 시대 외의 영역에서도 신빙성 낮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전문적 저술가라고 볼 수 있다.[9]이 많고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날씨가 뒤죽박죽이다.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조금 달리면 오던 비가 멈추거나 안오던 비가 내리기도 한다.[10] 사실 환빠는 광신도가 맞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것에 적용된다. 혈액형 성격설, 음모론도 그 일부. 사실 나름대로의 이상한(타인 기준) 믿음을 가진 건 많은 이에게 해당된다.[11] 애초에 이들이 주로 자랑스럽다고 주장하는 가치도 보면,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 같은 현대의 선진국을 판단하는 기준과는 그닥 맞지도 않다. 강대국 기준으로 봐도 300년도 안된 역사의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시대라 역사성 따지는게 웃플 따름.[12] 다만 환빠들 중에서는 조선왕조를 가리켜 중국의 식민지 시절이었다고 증오하는 부류들도 많다. 이런 부류들은 대신 중국과 대등하게 동아시아 패권을 양분했었던 고구려, 발해 나 거란을 자력으로 몰아내어 북송에서도 무시못할 국력을 지녔던 무신정권 이전 고려를 빨아댄다.[13] 동시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진, 한에 비해 기록이 부실한 나머지 강역부터 해서 여러모로 논란이 있는 부분이 많다.[14] 제일 논란인 부분은 발해인들의 민족적 기원이다. 현재 교과서에서는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과 말갈계 고구려인, 피지배층이 말갈인 이라고 피상적으로 가르치지만, 학계에서는 발해의 건국자인 대조영의 출신조차도 고구려인이 맞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다.[15] 일본은 근현대 전쟁범죄를 비롯한 제국주의시절 흑역사 왜곡과, 이주갑인상 및 일본서기의 교차검증 문제를 비롯한 고대사 왜곡이 있으며, 중국은 문혁시기 자국 문화재들을 자기들이 파괴한 것으로 비롯한 '중국이 원조' 논란과 동북공정을 비롯해 '현재 중국 영토에 있는 모든 민족의 역사는 중국 역사' 라는 중화문명설 등의 논란이 있다.[16] 독일제국, 나치독일.[17] 예전에 '독도는 누구 땅?'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질문 하는 학생을 매국노 취급하는 등 길길이 날뛰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독도 관련 역사를 일장연설 늘어놓는 교사들이 보통 그런 부류다. 보통 교사라면 도도는 한국땅이라고 하고 끝내지 학생이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상대를 매국노취급하면서까지 길길이 날뛰진 않는다.[18] 물론 위서의 경우에도 근현대 한국 내 비주류 역사관 혹은 역사왜곡의 흐름을 이해하는 측면 등으로 연구될 가치는 있을 것이다. 진짜 역사라고 믿으면 곤란한거고.[19] 예컨대 고구려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시도는, 중국사를 속지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중국 입장에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임나일본부설 역시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계 세력의 영향력이 존재했다는 점은 대체로 인정받고 있으며, 단지 이들이 국가나 도시거점을 장악할 만큼 조직적인 형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20] 사실 이런 현상에는 김진명이 쓰는 엉터리 음모론 소설들이 한 몫을 했다.[21] 허나 한국의 사학계는 식민사학을 많이 벗어난걸로 추정되며, 오히려 일부에서는 되레 민족주의에 치우쳤다는 비판 받는다.[22] 뽕에 빠져 자기 마음대로 주장을 하다 보니 전체적인 논리에도 모순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엄청나게 찬란한 과거를 망상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많은 것들이 알려진 조선보다 과거의 왕조들을 아주 높이 평가하여 조선의 금속 기술이 고구려와 같은 과거 왕조보다 떨어지니 뭐니 하는데 막상 그런 과거 왕조들보다 형편없는 조선이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조선 시대의 기술을 엄격히 검증해서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과거 기술은 더 형편없었다고 볼 수 있으나 희한하게도 환빠들은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주장을 주로 하며 심지어 고조선의 기술이 뻥튀기되어 미래 왕조들을 바르기도 한다. 그런 환빠들의 주장들을 모아보면 우리의 왕조들은 나날이 퇴보하나 이상하게도 엄청난 일들을 이룰 가능성도 있었던 괴상한 나라들이 된다.[23] 사실 환빠들의 주장을 다 옳다고 가정한다면 처음부터 모든 게 완벽한 엄청난 문명이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이유를 모르게 남긴 사료가 빈약하게 된다. 예를 들어, 문자 활동도 활발하고 체계도 좋았으나 희한하게도 요괴와 같은 상상물, 문학이나 혹은 동양의 과학 비슷한 것들에 대한 최초의 기록물들이 잘 나오지 않는 모순이 생긴다. 미신적인 것들이나 문학 등의 출처가 우리인 동이라는 기록물들도 있으나 의외로 그런 것들은 조사를 해보면 상상을 통해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른 지방의 요괴나 문학적 방법이라는데 막상 그 지방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기록도 남긴 바가 없다든지 대표적으로 신선이나 닌자 등이 언급되는 신비주의 무술의 경우는 그런 게 은근 많다.)[24] 재배벼처럼 주장.[25] https://en.wikipedia.org/wiki/Rice In 2003, Korean archaeologists claimed to have discovered the world's oldest domesticated rice. Their 15,000-year-old age challenges the accepted view that rice cultivation originated in China about 12,000 years ago. These findings were received by academia with strong skepticism, and the results and their publicizing has been cited as being driven by a combination of nationalist and regional interests. In 2011, a combined effort by the Stanford University, New York University,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and Purdue University has provided the strongest evidence yet that there is only one single origin of domesticated rice, in the Yangtze Valley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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