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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 팩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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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9ad7> HP
Hewlett Packard | 휴렛 팩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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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다국적 기업)
설립 연도 1939년
설립자 빌 휴렛, 데이비드 패커드
본사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사업 분야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프린터, IT 서비스, IT 컨설팅
2015년 이후 HP PC/프린터
HPE 서버/스토리지

1. 개요2. 역사
2.1. 창업 이후 1990년대까지2.2. 2000년대2.3. 2010년대
2.3.1. 분사에 대한 논의
2.4. 역대 최대 규모의 분사
3. 한국에서
3.1. 매체의 표기법 논란
4. 매체5. 얽힌 일화들
5.1. Apple 창업주들과의 관계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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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54AAD4A9-DAAB-4AF9-A712-C745A5385758.png
창업자인 빌 휴렛데이비드 패커드의 모습
실리콘밸리 1세대 기업. 1939년 윌리엄 휴렛(William Redington Hewlett)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가 공동으로 설립한 프린터, 컴퓨터, 서버 등의 전자제품 제조로 유명한 미국IT 회사. 미국 대공황기에 캘리포니아의 팰러앨토의 한 차고에서 사업이 시작되었다. 윌리엄 휼릿과 데이비드 패커드 모두 1934년에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HP는 지난 2015년 서버/스토리지 중심의 Hewlett Packard Enterprise(HPE)와 PC·프린터 사업 중심의 HP Inc.로 분사했다. 역사상 매출 기준 최대 규모의 기업 분할이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로.

2. 역사

2.1. 창업 이후 1990년대까지

파일:e5.png
HP의 시작
스탠퍼드 대학교 동기인 윌리엄 휴렛(William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가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의 한 차고에서 '휴렛 팩커드(HP)'를 설립하고 음향 발진기(Audio Oscillator)를 내놓으면서 실리콘밸리 1세대 벤처 기업인 HP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두 사람은 1938년 지도교수의 권유로 벤처를 창업하게 되었는데, 당시 자본금은 겨우 538달러였다. 1989년 캘리포니아 주는 HP가 탄생한 에디슨가 367번지의 허름한 차고를 '실리콘밸리의 발생지 (The Birthplace of Silicon Valley)'로 명명하고 사적으로 등록했다.

회사 이름을 정할 때의 에피소드가 꽤 재미있다. 우선 이 둘은 그들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누구 이름이 앞에 올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이 때 패커드가 이겼지만 의외로 패커드는 '팩커드-휴렛'보다는 '휴렛-팩커드'가 더 마음에 든다며 휴렛-팩커드로 결정하였다.[1][2]
파일:1280px-Hp200a-front-panel.jpg
HP가 생산한 첫 제품인 오디오 발진기 200A
HP가 생산한 첫 번째 제품은 '200A'라는 이름으로 특정 음역의 주파수를 생성하는 테스트하는 장비인 오디오 발진기였으며, 당시 이 기기의 가격은 500달러 내외였다. 당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HP에서 제작한 이 기기에 관심을 보였고, 1940년 제작한 영화 환타지아의 사운드 모니터링에 HP 장비를 사용했다.

휴렛이 1940년대에 미 육군에 자원해 들어가 있는 동안 HP는 패커드가 이끌었다. 이 기간동안 HP는 무전기, 소나, 레이더 등 선박 및 항공용 군수 장비를 주로 생산했다.

휴렛이 다시 HP로 돌아온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HP는 엄청나게 성장하는데, 이 시기에 일본에 합작 형태로 진출을 하는 등 아시아 시장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게 되었다.

1966년에 드디어 시장에 미니컴퓨터 시리즈인 HP2100과 HP1000을 선보였으며, 이 때부터 현재 익숙한 디지털 기기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HP는 당시 기업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기업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1942년부터 모든 직원에게 의료보험을 지원했고, 임원이라도 되도록 개인 방을 가지지 않는 '오픈 플로어(Open Floor)' 디자인을 적용해 직원들이 쉽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사람을 뽑을 때 신중하게 뽑아 거의 해고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강조하였다. 이 때의 HP 문화를 HP Way라 한다.

이러한 HP의 기업 문화와 패커드의 경영철학은 HP 출신 직원들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지금도 실리콘밸리의 모든 IT 기업은 HP를 비롯한 1세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인사 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1993년 데이비드 패커드가 HP 의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면서, 휴렛과 패커드는 모두 경영에서 은퇴했다. 70대 후반의 나이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패커드와 휴렛은 1996년과 2001년, 83세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2. 2000년대

대부분 HP의 쇠퇴를 칼리 피오리나 CEO 시절로 지목한다. 2002년, 당시 IBM, 컴팩, HP가 PC 삼대장이었던 상태에서 HP가 컴팩을 인수합병하였는데, 당시에는 그야말로 대형 M&A였으며, 창업주의 후손들은 모두 이 합병을 반대했다. PC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인답시고 컴팩(Compaq)을 무리하게 많은 돈을 주고 산 것인데, 소송에서 결국 창업주 후손들이 패하면서 합병이 이루어졌고, 결국 실패한 M&A 사례로 평가 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칼리 피오리나 문서에서 확인. 2007년에는 Opsware를 16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후 애플아이패드, 아이폰 등의 모바일 기기로 대박을 내자 이를 따라하려다가 큰 삽질을 했다. 대표적으로 HP 터치패드의 조기 철수. 사실 HP는 1990년대 후반부터 죽 PDA를 내놓는 회사였는데, 뜬금없이 후발 주자인 애플이 이를 석권하자 억울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은 칼리 피오리나로 시작하여 그녀로 끝나는 긴 여정이었다. 'HP way'로 일컬어지는 창업주들의 정신이 엄청나게 훼손된 것도 이때. 이 암흑기의 영향으로 HP는 이후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

2.3. 2010년대

한때 PDA도 잘 팔아먹던 회사였으나, 휴대폰으로 진화하는 것을 생각 못 해서 망한 Palm OS의 개발사인 Palm Inc.의 하드웨어 사업 부문을 2010년 4월에 인수해서 모바일 컴퓨터 사업을 강화했다. 1993년 Apple이 터치스크린 탑재 휴대용 컴퓨터인 Newton MessagePad을 발표하여 먼저 '상용화'하였다. 다만 Newton MessagePad는 Apple의 예전 몇몇 제품들처럼 시대만 앞서가고 성능이나 가격면에서 상품으로서의 매력은 별로라 사업적인 재미를 못 보고 1998년 포기했고, 본격적으로 PDA를 성공시킨 것은 1996년에 이 분야에 진출한 팜이 먼저이며 HP는 시장에서 팜과 자웅을 겨루었다. HP의 PDA 중에는 2000년대 직전까지 출시되던 조나다 시리즈와 컴팩으로부터 인수한 브랜드인 iPAQ 시리즈가 유명한데, 그냥 그 당시에는 IT기기에 'i'를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고.

팜의 운영체제 webOS를 이용해서 야심차게 Apple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webOS 2.2를 탑재한 HP Pre 스마트폰 시리즈와 webOS 3.0을 탑재한 HP 터치패드를 내놓았다. 버전 네이밍이 기막히게 안드로이드와 일치한다.[3] 그러나 Apple은 커녕 삼성전자모토로라에게도 밀리는 바람에 스타일 구기고, 2011년 8월, 1년 조금 넘겨 GG. 그래서 스마트폰태블릿 PC사업을 관둔다고 발표했다. 태블릿 PC 제품인 HP 터치패드가 발매된 지 49일 만의 일이다. 이후 webOS를 탑재한 제품을 내놓는 회사는 없었으며, LG전자가 인수해서 스마트 TV와 스마트 워치에 사용 중이다.

스마트 제품 사업 중단을 기점으로 스마트 제품의 판매 가격 인하를 단행했으며 파격적인 가격 인하로 인하여 반짝 잘나갔다. 대표적으로 HP 터치패드(상표명) 16GB 제품은 Apple의 iPad와 같은 $499였으나, 초기 물량 27만 대 중 2만여 대만 팔리는 등 워낙 안 팔리자 8월에 접어들어 100달러를 내려 $399로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8월 11일 사업 중단 발표 후 아예 떨이로 $299를 내린 $100달러에 판다니, 아무리 떨이라지만 다른 제품의 가격을 생각하면 거의 공짜로 주는 수준. 처음에 $499 주고 산 사람들은 가격 차이를 HP에서 직접 받을 수 있었다. 아마존닷컴 등의 쇼핑몰에서는 올라온 지 얼마 안돼서 품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걸 본 HP는 한동안 OS 지원은 해 줬다.

2.3.1. 분사에 대한 논의

IBM이 제조 부문 비중을 줄이고, 솔루션 및 컨설팅 비중을 높인 것을 따라하는 것이 결단의 주 내용이나, 이 소식이 들리자마자 뉴욕 주식 시장에 찬물을 제대로 부어버렸다.(...) IBM이 PC 사업부를 매각하고, 통계 분석을 통한 경영 컨설팅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블루오션에서 거의 혼자서 떼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HP는 이를 부러워한 듯하다. 시장의 반응은 변신하는 건 좋은데 왜 지금 같은 위험한 시기에 하냐라는 것.

이 발표를 한 후 얼마 안 가(한 달) 2011년 9월 CEO 레오 아포테커는 이사회에서 전격 해임되었다. 태블릿 컴퓨터 사업의 실패의 책임을 물은 것. 그러나 컴퓨터 사업을 매각한다는 전임 회장의 방향은 후임인 멕 휘트먼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연말까지는 이에 대한 결말을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1년 10월 26일, 경영진은 장고 끝에 PC 사업부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시장은 이를 환영했고 주가는 4%가 올랐었다. PC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발표했을 때 주가가 20%나 빠졌었다.

2011년 오토노미라는 회사를 인수했는데 오토노미의 분식회계로 88억 달러를 감가상각했다. 주식이 12% 빠져서 1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

2012년 9월, CEO인 멕 휘트먼은 스마트폰 사업에 다시 뛰어들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스마트폰은 뛰어들지 않았지만, 노트북-태블릿 컨버터블 PC는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14년 10월 서버 사업부와 PC+프린터 사업부를 분리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뉴스가 떴다. 2011년에 PC 사업부를 왜 매각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있지만, 그때 팔았으면 제값을 못 받았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2.4. 역대 최대 규모의 분사

2014년 11월자로 분사를 확정지었다. 기존의 프린터와 PC 사업부는 HP Inc.로 이름을 바꾸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한편, 3D 프린팅 등 신시장 사업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며, 기업용 컴퓨팅 관련 사업은 휴렛 팩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리되어 급변하는 클라우드 시장에 대한 독자적인 전략과 사업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결국 HP는 2015년 11월 1일 프린터·PC 사업부가 포함되는 기존 존속법인인 HP 주식회사와 기업 하드웨어·서비스를 담당하는 휴렛 팩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사하였다. 2015년 당시 포츈 500 기업 중 19위 기업의 유례 없는 대형 분사 프로젝트였다. 로이터의 보도

HP Inc.는 5만 명의 직원 규모로 가정용, 업무용 컴퓨터와 프린터 사업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

휴렛 팩커드 엔터프라이즈는 25만 명의 직원 규모로, 기업용 컴퓨팅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버,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

3.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1984년 8월 삼성전자와 합작 형식으로 삼성휴렛패커드를 설립하여 최초 진출했다. 지분 규모는 HP 55%, 삼성전자 45%였다. 이 시절 로고는 HP 로고 앞에 S를 붙인 shp 형태였다.[4] 1995년 삼성전자가 '마이젯'을 내놓으며 HP의 주력 사업인 프린터 사업에 진출하는 바람에 파트너십을 종료하여 현지 법인 한국휴렛패커드로 탈바꿈하였으며, 3년 뒤인 1998년에 삼성전자의 지분을 모두 인수함으로써 100% 지분을 휴렛 팩커드가 소유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2002년에 유한회사로 법인 전환 후 컴팩코리아를 합병했다.

이 때 HP는 현금이 말라붙었던 삼성전자에게 프리미엄까지 얹어 달러로 지분 인수 대금을 결제했다. HP는 SK 그룹에도 1억 5,000만 달러를 융자해 줬다. 당시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한국HP는 2년간 1,200대 1로 환율을 고정해 영업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단, 이 즈음 한국시장은 휴렛 팩커드가 진출해있는 전세계 시장 중 7위 규모였으며, 97년 기준 연 9,000억원대 매출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으므로 한국에 정성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IMF 구제금융 시기인 1998년에 퇴출된 고려증권의 여의도 사옥을 매입해 HP 빌딩으로 개명한 후 본사 건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후 삼성의 프린터 사업부를 2016년에 HP가 인수하게 되며 삼성 로고를 달고 나온 프린터들이 HP의 드라이버를 공용하고 원격 프린터 기술 개발이나 개선에 삼성이 참여함으로써 삼성과 HP Inc.의 협력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지법인 한국휴렛팩커드는 HP가 분사되며 HPE쪽으로 갔고, HP Inc.측에서는 따로 HP 코리아가 생겼다.

3.1. 매체의 표기법 논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면 Hewlett을 휼렛으로 써야 하고, Packard를 패커드라고 써야 하니,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명칭은 '휼렛 패커드' 이다. 링크
하지만 한국HP 측이 휴렛 팩커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매체들도 이 표기를 따른다.[5]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미국 본사를 언급할 때는 국립국어원 기준을 따른다는 것이다.[6] 쉐보레 같은 경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통일하여 쓰기 때문에 언중들에게 혼란을 준다.

이는 우리나라 언론사의 어문 기자들이 기업 측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립국어원 기준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급되었듯이 기업의 명칭은 명칭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의 의견이 우선이므로 기업 측에서 해외 본사도 한국 법인명과 통일해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면 언론사도 이를 따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해 하는 어문 기자들도 있다. 이 글만 해도, 한국법인명이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다르다면 애초에 등록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7]

즉, 기업과 언론사의 기싸움으로 인해 빚어진 혼선일 가능성이 높다. 휴렛 팩커드의 경우, 어차피 HP라는 약자를 더욱 자주 사용하므로 풀네임의 표기법에 관심을 갖는 언중들은 적은 듯하다.

4. 매체

5. 얽힌 일화들

휴렛 팩커드는 남친이 있는 몸이니 찝적대지 말자. 라는 유머가 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번호를 가르쳐 달라는데 직원 자신의 번호를 가르쳐달라는 걸로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HP 고객센터는 중국으로 조선족이 상담을 하게된다. 참고로 이 유머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기사로 나왔다.

메이플스토리에서 2014년 진행된 11주년 이벤트 중 학자 주황버섯이 유저를 전투 맵으로 보내주는 데에 실패하면 "앗! 힝! 엣! 훅! 보내주는데 실패했어. 하하.. 잠시 기다렸다 다시 말을 걸어줄래."라고 말하는 것으로 패러디했는데, 문제는 유저들이 너무 많아 전투 맵으로 가기 힘들었다.

* 미국에서는 IBM, 구글, 아마존닷컴 등과 더불어 무노조 경영을 하는 기업이기도 하나, 한국에서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 1995/96 시즌부터 1998/99 시즌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토트넘 홋스퍼 FC의 메인 스폰서였는데, 2013/14 시즌에도 또 맡았다.
*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한국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국계 1위 기업이었다. 외국계 기업 취업선호도 1위 '한국HP'
* 출시하는 노트북의 기종마다 처음부터 장착된 부품만 사용 가능하게 설정해 놓았다. 화이트리스트 제도라고 불린다. 물론 하드디스크 혹은 SSD 같은 저장 장치나 은 아무 제품이나 교체해도 되고 해당 사항이 아니지만, 그외 부품에 해당된다. 만약 그 기종에 맞는 부품이 아닌 다른 부품을 장착 후 부팅하면 에러 메시지를 띄우면서 부팅을 막아버린다. 대표적인 예가 무선랜 카드인데 이 제도 때문에 무선랜 카드조차 맘대로 바꿀 수가 없다! 즉 HP에서 그 기종에 사용할 수 있게 인증한 무선랜 카드만 사용이 가능하다. 노트북을 몇 년 사용하면 무선랜 카드가 느려지거나 끊기는 등의 문제가 생기거나 더 빠른 와이파이 사용을 위해 무선랜 카드 교체를 하게 되는데 HP의 경우는 그 기종에 맞는 무선랜 카드를 확인해 봐야 한다. 노트북의 BIOS 개조를 하여 부품을 교체해도 부팅이 가능하게 할 수는 있다만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에 쉽지는 않은 부분. 여담으로 레노버 제품의 노트북도 해당된다.

5.1. Apple 창업주들과의 관계

Apple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어릴 적에 주파수 측정기를 만들다가 부품이 없어서 이미 초거대 기업이었던 HP의 CEO인 빌 휴렛의 집에 전화하여 당돌하게 부품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빌 휴렛은 이 당돌한 꼬마와 20분 가까이 통화한 후, 부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여름방학 동안 휴렛 팩커드 주파수 측정기 조립 라인에서 일하게 해주었다고. 과연 대인배. 그런 인연 덕분인지 스티브 잡스Apple을 경영하며 교육 사업에 많은 신경을 썼고 App Store로 콘텐츠 플랫폼 영역을 개척하면서도 디즈니를 방불케 하는 수준의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숨이 막힐 듯한 빡빡한 어린이 보호 정책을 시행했다.

Apple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Apple을 창립하기 전에 몇 년간 잠시 다니던 회사이기도 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자서전에 따르면 HP에 다닐 무렵, 그는 이미 회사 창고에서 남는 부품과 공구를 집에 가져다가 재미 삼아서 Apple 컴퓨터를 설계하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 워즈니악은 HP의 높으신 분들께 개인용 컴퓨터 프로젝트를 제안했지만 HP는 개인용 컴퓨터에 관심이 없었고 이에 실망한 워즈니악은 '다른 걱정 없이 평생 연구에만 몰두하게 해 주겠다'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HP를 퇴사하고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Apple에 몸을 담게 된다. 이후 Apple 컴퓨터의 설계를 완성한 워즈니악은 HP가 개인용 컴퓨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HP에 지원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채용에 불합격하였고 워즈니악을 빼고 구성된 HP의 PC 개발팀은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사용해서 엉성한 Apple 모방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결국 HP가 개인용 컴퓨터에 진출한 것은 코모도어 64가 엄청나게 팔려 나가고, Apple 컴퓨터나 기타 개인용 컴퓨터가 미국 내에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다. C64는 단일 기종으로 1700만대나 팔린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진 컴퓨터로 실질적으로 컴퓨터라는 물건을 가정에 보급한 건 IBM이나 Apple이 아닌 코모도어 인터네셔널의 코모도어 64였다.

이 인연이 영향이 있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2005년에 HP가 Apple의 4세대 iPod을 자사 마크를 뒤에 박아서 iPod+HP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예상되는 결과였지만 소비자들이 HP 마크가 각인된 iPod을 좋아할 리 만무했고, 결국 1년 만에 판매를 접었다.
파일:external/kmug.co.kr/hp-ipod2.png

6. 관련 문서



[1] 링크[2] The HP Way 휴렛 팩커드 이야기(저자:데이비드 패커드) ISBN:9788946102248 에서는 동전을 던져서 휴렛(빌)이 이겼다고 나와있다. P65 참조 (우리는 회사 이름에 누구 이름을 먼저 쓸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동전을 던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빌이 이겼다. We flipped a coin to see whose name would come first in the company name. Needless to say, Bill won.)[3] 핸드폰용 OS = 안드로이드 2.1 / 2.2 / 2.3 | 태블릿용 OS = 안드로이드 3.0[4] 일본에서도 HP 로고 앞에 Y를 붙인 YHP 형태였는데, 계측기 전문회사인 요코가와전기(横河電機)와의 합작회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쪽도 일본휴렛팩커드(日本ヒューレット・パッカード)고 HP 분사 때 HPE쪽으로 갔다.[5] 대표적인 예로, '포르셰' 표기가 맞으나 PORSCHE 사에서 포르쉐코리아로 상표를 등록하는 바람에 '포르쉐'가 정식 명칭이 되어버린 사례가 있다. 고유명사의 경우, 해당 명칭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의 의견이 우선되기 때문에 공문이나 정부문서, 언론 등에서도 휴렛팩커드, 포르쉐 등으로 적는다. 다만 한겨레 같은 일부 매체에서는 휼릿패커드로 표기하여 혼선을 빚고 있다.[6] 심지어 제대로 따르는 것도 아니다.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자체에, 상표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어긋나도 그대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7] 그러나 이는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오뚜기오뚝이로 강제 수정해야 하는데, 그러면 장난감 오뚝이와 식품회사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부작용이 따른다. 우리말에는 영어의 정관사가 The와 같은 기능을 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유명사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해외 기업이면 국제적으로 분쟁이 빚어질 수도 있다.[8] http://bit.ly/bNCAV에서 r 하나가 빠졌다[9] 휴렛 팩커드의 지원을 받고 설립된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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