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일본시리즈 우승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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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일본시리즈 우승팀 |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MVP | 나가시마 시게오 |
1. 개요
NIPPON SERIES 1969 |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한큐 브레이브스 |
1969년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린 일본프로야구의 제20회 일본시리즈. 센트럴리그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퍼시픽리그 우승팀 한큐 브레이브스가 맞붙어 요미우리가 4승 2패로 한큐를 꺾고 사상 첫 5년 연속이자 통산 11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일본시리즈[1] 이래 11년 만의 3연속 동일 매치였으며, 요미우리는 이 시리즈에서 5연패를 달성하여 일본시리즈 최강팀의 입지를 다진 반면 한큐는 3년 연속으로 또 다시 우승에 실패하면서 일본시리즈만 가면 패퇴하는 콩라인 징크스를 이어가야 했다.
2. 일정 및 결과
경기 | 날짜 | 경기장 | 원정팀 | 점수 | 홈팀 |
1차전 | 10월 26일(일)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요미우리 자이언츠 | 6 : 5 | 한큐 브레이브스 |
2차전 | 10월 27일(월)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 : 2 | 한큐 브레이브스 | |
3차전 | 10월 29일(수) | 코라쿠엔 구장 | 한큐 브레이브스 | 3 : 7 | 요미우리 자이언츠 |
4차전 | 10월 30일(목) | 한큐 브레이브스 | 4 : 9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5차전 | 10월 31일(금) | 한큐 브레이브스 | 5 : 3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6차전 | 11월 2일(일)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요미우리 자이언츠 | 9 : 2 | 한큐 브레이브스 |
우승 : 요미우리 자이언츠(5년 연속, 통산 11회) |
3. 경기 내용
3.1. 1차전
10월 26일(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관객 수: 32,831명) | ||||||||||||||
팀명 | 선발투수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
요미우리 | 호리우치 츠네오 | 1 | 0 | 1 | 1 | 0 | 0 | 1 | 2 | 0 | 6 | 10 | 1 | |
한큐 | 이시이 시게오 | 0 | 0 | 0 | 0 | 0 | 0 | 4 | 0 | 1 | 5 | 10 | 0 |
▲ 패전투수 : 한큐 - 미즈타니 타카시 (1패)
▲ 홈런 : 요미우리 - 나가시마 시게오 1호 (7회 초, 1점)
3년 연속 동일 매치의 1차전. 양측 선발로 한큐는 요네다 테츠야, 카지모토 타카오와 함께 주축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이해 14승을 거둔 이시이 시게오를, 요미우리는 전년도 신인왕 수상자이자 이 해에도 12승, ERA 2.17로 활약을 이어간 호리우치 츠네오를 등판시켰다.
요미우리가 1회 초부터 도이 쇼조가 우월 2루타로 좌전안타로 출루한 선두타자 타카다 시게루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선취점을 뽑아낸 것을 시작으로 3회 초 1, 2루 찬스에서 나가시마 시게오의 중전안타, 4회 초 오 사다하루의 2루수 쪽 내야땅볼, 7회 초 나가시마의 좌월 홈런으로 계속해서 득점을 뽑아내며 7회 초까지 4:0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한큐도 7회 말 8번 오카무라 코지의 유격수 안타를 시작으로 야마구치 후지오, 사카모토 토시조, 모리모토 키요시의 3연속 적시타 등 요미우리에게서 안타 4개와 볼넷 1개로 4점을 빼앗으며 호리우치를 강판시킨 것은 물론, 4:4 동점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8회 초 2사 2루 찬스에서 도이, 타카다의 연속 적시타로 2점을 뽑으며 재차 앞서갔고, 한큐는 9회 말 2사 상황에서 모리모토가 적시타로 1점을 뽑아냈지만 끝내 동점을 만드는 데 실패하면서 요미우리가 1차전을 가져가게 된다.
3.2. 2차전
10월 27일(월),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관객 수: 24,106명) | |||||||||||||||
팀명 | 선발투수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R | H | E | |
요미우리 | 카네다 마사이치 | 0 | 0 | 0 | 1 | 0 | 0 | 0 | 0 | 0 | 0 | 1 | 2 | 1 | |
한큐 | 미야모토 유키노부 | 0 | 0 | 0 | 0 | 0 | 0 | 0 | 1 | 0 | 1x | 2 | 6 | 0 |
▲ 패전투수 : 요미우리 - 타카하시 카즈미 (1패)
▲ 홈런 : 요미우리 - 타카다 시게루 1호 (4회 초, 1점)
2차전 선발로 한큐는 2년차 5선발급 투수였던 미야모토 유키노부를, 요미우리는 이해 전대미문의 400승을 달성한 대투수 카네다 마사이치를 등판시켰다.
경기는 4회에 요미우리가 타카다 시게루의 좌월 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아낸 것을 빼면 계속해서 투수전으로 흘러갔고, 한큐가 선발 미야모토를 계속 앞세운 반면 요미우리는 3이닝마다 투수 교체를 단행하며 중간계투들을 앞세워 경기를 이끌어갔다.
그러던 중 8회 말에 요미우리 측 3번째 투수 타카하시 카즈미를 상대로 한큐가 1사 2루 찬스를 만든 상황에서 한큐의 2번 타자 사카모토 토시조가 좌전안타를 날렸고, 이때 대주자였던 야마모토 코지(山本公士)[2]가 요미우리 포수 모리 마사히코의 블로킹을 재빨리 피해가는 뛰어난 주루 플레이로 홈인에 성공하면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경기는 연장전으로 흘러가서 10회 말, 한큐가 2아웃 상황에서 사카모토의 투수 땅볼을 요미우리 투수 타카하시 카즈미가 놓치는 실책을 저지르며 출루를 허용한 데 이어, 후속타자 모리모토 키요시의 1루수 쪽 땅볼을 이번에는 1루를 보던 오 사다하루가 악송구로 내야안타를 허용하며 1, 2루 찬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찬스를 놓치지 않은 4번 나가이케 토쿠지가 타카하시를 상대로 중전안타를 뽑아내어 사카모토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한큐가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둠과 함께 양팀 모두 1승 1패를 기록하며 요미우리의 홈구장인 코라쿠엔 구장으로 향하게 된다.
3.3. 3차전
10월 29일(수), 코라쿠엔 구장 (관객 수: 31,088명) | ||||||||||||||
팀명 | 선발투수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
한큐 | 아다치 미츠히로 | 0 | 1 | 0 | 0 | 0 | 2 | 0 | 0 | 0 | 3 | 10 | 1 | |
요미우리 | 타카하시 아키라 | 1 | 0 | 0 | 1 | 0 | 5 | 0 | 0 | X | 7 | 9 | 1 |
▲ 패전투수 : 한큐 - 카지모토 타카오 (1패)
▲ 홈런 : 한큐 - 이시이 아키라 1호 (2회 초, 1점), 사카모토 토시조 1호 (6회 초, 1점) / 요미우리 - 나가시마 시게오 2, 3호 (4회 말, 1점 + 6회 말, 2점)
코라쿠엔 구장으로 무대를 옮겨 맞이한 3차전. 양팀 선발로 요미우리는 이해 5선발급으로 10승을 거뒀고 시리즈 1차전에서 승리투수를 기록한 타카하시 아키라를, 한큐는 2차전 승리투수이자 2년 전인 1967년에 한큐의 첫 퍼시픽리그 우승을 이끌며 MVP를 수상했지만 직후에 터진 어깨 부상으로 당해 시즌까지 고전했던[3] 아다치 미츠히로를 등판시켰다.
이 경기도 1차전과 비슷하게 1회 말에 좌측 외야라인에 걸치는 2루타로 선두타자 타카다 시게루가 출루한 다음, 1사 상황에서 오 사다하루가 중전안타를 날려 타카다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요미우리가 선취점을 뽑아냈다. 2회 초 한큐는 오쿠마 타다요시가 좌전안타로 출루했지만 후속타자 야노 키요시가 좌익수 쪽 뜬공으로 자신을 포함해 루상에 있던 오쿠마까지 아웃시켜버리는 바람에 찬스를 날려버렸으나, 곧바로 야노의 후속타자 이시이 아키라가 우월홈런을 날리며 직전의 병살 때문에 경기를 역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긴 했으나 1:1 동점을 만들어 냈다.
4회 말 요미우리는 나가시마 시게오가 아다치를 상대로 좌월홈런을 날려 1점을 뽑아내며 재차 앞서나갔으나, 6회 초 한큐가 선두타자 사카모토 토시조의 좌월홈런으로 동점을 만든 다음 2사에서 오쿠마, 쇼가키 야스히로, 모리모토 키요시의 3연속 안타로 1점을 더 뽑아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곧바로 6회 말 요미우리가 아다치의 후속 투수로 등판한 한큐의 2번째 투수 카지모토 타카오를 상대로 나가시마가 좌월 2점 홈런을 날려 다시 역전한 데 이어 카지모토의 뒤를 이어 등판한 이시이 시게오에게도 모리 마사히코와 타카다가 연달아 적시타를 뽑아내며 도합 5득점으로 한큐 투수진들을 연달아 격파함으로써 승기를 굳혔고, 7회에 등판한 호리우치 츠네오가 남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요미우리가 시리즈 2승을 가져온다.
3.4. 4차전
10월 30일(목), 코라쿠엔 구장 (관객 수: 29,900명) | ||||||||||||||
팀명 | 선발투수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
한큐 | 미야모토 유키노부 | 0 | 1 | 1 | 1 | 0 | 1 | 0 | 0 | 0 | 4 | 9 | 1 | |
요미우리 | 타카하시 카즈미 | 0 | 0 | 0 | 6 | 0 | 2 | 1 | 0 | X | 9 | 10 | 0 |
▲ 패전투수 : 한큐 - 미야모토 유키노부 (1패)
▲ 홈런 : 한큐 - 나가이케 토쿠지 1호 (2회 초, 1점), 이시이 아키라 2호 (4회 초, 1점) / 요미우리 - 오 사다하루 1호 (7회 말, 1점)
4차전 선발 투수로 요미우리는 이 해 22승을 거두며 팀의 우승을 이끈 에이스 투수이자 시리즈 2차전에서 패전투수를 기록한 타카하시 카즈미, 한큐는 2차전 선발투수를 맡았던 미야모토 유키노부를 등판시켰다.
이번엔 한큐가 2회 말 나가이케 토쿠지의 좌월 홈런으로 이번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선취점을 뽑아낸 것을 시작으로, 3회 말 사카모토 토시조의 좌월 2루타와 4회 말 이시이 아키라의 우월 홈런으로 4회 초까지 각 이닝마다 1점씩을 뽑아내며 3: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4회 말, 요미우리가 도이 쇼조와 오 사다하루를 연속으로 출루시키며 1, 3루 찬스를 만들었고, 여기서 경기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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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홈인 장면이 찍힌 사진. 도이 쇼조의 발이 홈플레이트에 닿아 있다.(왼쪽) 격한 항의 끝에 오카다 이사오 구심을 폭행하는 오카무라 코지(오른쪽) |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1점을 얻으며 분위기를 잡게 된 요미우리는 뒤이어 2사 상황에서 쿠니마츠 아키라, 스에츠구 타미오의 2연속 안타에 모리 마사히코의 유격수 쪽 땅볼을 한큐의 유격수 사카모토 토시조가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저지르며 동점을 만들어냈고, 뒤이어 대타 츠치다 마코토의 좌측 외야라인에 걸치는 2루타, 타카다의 좌전 2루타로 역전에 성공하며 4회 말에 도합 6득점을 얻어냈다.
판정을 둘러싼 해프닝이 겹치며 역전을 당한 한큐는 6회 초에 오쿠마 타다요시의 적시타로 1점을 얻어내며 반격에 나섰으나, 곧바로 6회 말 요미우리가 대타 아이바 요시히로의 우전안타와 타카다의 중견수 쪽 희생 플라이로 2점을 뽑아낸 데 이어 7회 말에도 오 사다하루의 우월홈런으로 1점을 더 얻으며 경기는 사실상 요미우리에게 넘어갔고, 이렇게 요미우리가 시리즈 3승을 거두며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두게 된다. 반면 한큐는 판정 논란까지 겹쳐 3:0이었던 경기를 역전패당하며 시리즈 패퇴 위기에 몰렸다.
이날 경기에서 요미우리가 역전승을 거둔 계기가 상술한 4회 말 도이 쇼조의 홈인을 둘러싼 판정 논란에서 시작되었고, 거기다 사건 당시의 중계 모니터상으론 도이의 발이 홈플레이트에 닿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경기 직후엔 심판의 잘못된 판정이 경기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며 각 매스컴에서 오카다의 판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5], 위 사진에서도 보이듯 다음 날 각 스포츠지에 도이 쇼조의 왼발이 정확히 홈플레이트에 걸쳐있는 사진이 실리면서 오카다의 판정이 정확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3.5. 5차전
10월 31일(금), 코라쿠엔 구장 (관객 수: 29,197명) | ||||||||||||||
팀명 | 선발투수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
한큐 | 아다치 미츠히로 | 0 | 2 | 0 | 0 | 0 | 1 | 2 | 0 | 0 | 5 | 9 | 3 | |
요미우리 | 타카하시 아키라 | 1 | 0 | 0 | 2 | 0 | 0 | 0 | 0 | 0 | 3 | 5 | 1 |
▲ 패전투수 : 요미우리 - 호리우치 츠네오 (2승 1패)
▲ 홈런 : 한큐 - 고디 윈드혼[6] 1, 2호 (2회 초, 1점 + 6회 초, 1점), 나가이케 토쿠지 2호 (7회 초, 2점) / 요미우리 - 쿠로에 유키노부 1호 (4회 말, 2점)
요미우리의 시리즈 제패까지 1승이 남은 5차전. 요미우리는 선발 투수로 3차전 선발이었던 타카하시 아키라를 재차 등판시켰고, 벼랑 끝에 몰린 한큐는 선발 투수로 2차전 승리투수였던 아다치 미츠히로를 등판시켜 희망을 걸었다.
1~3차전처럼 이번에도 요미우리가 1회 말 선두타자 타카다 시게루가 우월 3루타로 출루한 다음 2사 상황에서 나가시마 시게오의 우전안타로 타카다를 홈으로 불러들여 선취점을 따냈으나, 한큐는 곧바로 2회 초 고디 윈드혼의 좌월 홈런과 오쿠마 타다요시의 적시타로 2점을 따내 역전하며 반격에 나섰다.
요미우리는 4회 말 6번 스에츠구 타미오가 3루수 실책으로 출루한 데 이어 7번 쿠로에 유키노부가 좌월 2점 홈런을 날려 재차 역전했지만, 한큐가 6회 초 고디 윈드혼이 한번 더 좌월 홈런을 날려 동점을 만든 데 이어 7회 초 2사 상황에서 나가이케 토쿠지가 좌월 2점 홈런[7]을 날리며 5차전의 승부를 결정지었고, 그렇게 한큐가 시리즈 2승을 거두며 기사회생함과 동시에 우승을 향한 마지막 찬스를 걸고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으로 향하게 된다.
3.6. 6차전
11월 2일(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관객 수: 33,242명) | ||||||||||||||
팀명 | 선발투수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R | H | E | |
요미우리 | 타카하시 카즈미 | 0 | 1 | 0 | 0 | 1 | 7 | 0 | 0 | 0 | 9 | 14 | 1 | |
한큐 | 미야모토 유키노부 | 0 | 0 | 0 | 0 | 0 | 1 | 0 | 0 | 1 | 2 | 6 | 1 |
▲ 패전투수 : 한큐 - 미야모토 유키노부 (2패)
▲ 홈런 : 요미우리 - 오 사다하루 2호 (6회 초, 만루), 나가시마 시게오 4호 (6회 초, 1점), 쿠로에 유키노부 2호 (6회 초, 1점) / 한큐 - 이시이 아키라 2호 (9회 말, 1점)
다시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으로 돌아온 6차전. 한큐는 4차전 선발 겸 패전투수였던 미야모토 유키노부를 재차 등판시켜 시리즈 동률을 걸었고, 요미우리는 우승을 결정지을 선발 투수로 타카하시 카즈미를 낙점했다.
6차전에서도 2회 초에 선두타자였던 쿠로에 유키노부가 좌전안타로 출루한 데 이어 후속타자 쿠니마츠 아키라가 친 3루 쪽 땅볼을 한큐의 3루수 모리모토 키요시가 처리하다 실책을 저지르는 틈을 타 쿠로에가 거의 폭주하다시피 홈으로 내달리며 요미우리가 선취점을 따내는 데 성공했고, 이어 5회 초에도 쿠로에의 우월 2루타로 1점을 더 뽑아냈다. 또 다시 요미우리의 우세로 경기가 흘러가자 한큐는 6회 초에 마지막 승부수로 5차전에서 완투승을 기록하는 등 시리즈에서 혼자 2승을 거뒀던 아다치 미츠히로를 재등판시켜 역전 찬스를 노렸으나, 이 선택이 도리어 시리즈 패퇴를 결정짓는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다.
아다치를 상대로 맞이한 요미우리 타선은 1사 1, 2루 상황에서 타카다가 좌전안타로 3점째를 따낸 데 이어 도이 쇼조가 내야안타로 만루 찬스를 만들었고, 후속 타자였던 오 사다하루의 만루포, 나가시마 시게오와 쿠로에의 솔로 홈런이 연달아 터지며 아다치를 박살내 버렸다. 결국 요미우리가 6회 초에 7점이나 따내며 9:0이라는 점수차와 함께 사실상 승부의 추는 기울었다.
한큐는 뒤늦게 이시이 아키라가 6회 초 적시타, 9회 초 좌월홈런으로 2점을 따내며 반격에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그렇게 요미우리가 6차전을 승리하며 사상 최초로 5년 연속 일본시리즈 제패를 결정지었다.
3.7. 타이틀 시상
- 최고수훈선수상(MVP), 타격상 : [[요미우리 자이언츠|{{{#fe5a1d 요미우리}}}]] - 나가시마 시게오 (22타수 9안타, 타율 .409 4홈런 6타점)
- 감투선수상[8] : [[오릭스 버팔로즈|{{{#dc3d22 한큐}}}]] - 나가이케 토쿠지 (23타수 6안타, 타율 .261 2홈런 4타점)
- 최우수투수상 : [[요미우리 자이언츠|{{{#fe5a1d 요미우리}}}]] - 타카하시 카즈미 (4등판 16이닝, 1완투 1승 1패, 평균자책점 2.25)
- 기능상 : [[요미우리 자이언츠|{{{#fe5a1d 요미우리}}}]] - 타카다 시게루 (24타수 9안타, 타율 .375 1홈런 7타점)
- 우수선수상 : [[오릭스 버팔로즈|{{{#dc3d22 한큐}}}]] - 아다치 미츠히로 (5등판 17.1이닝, 1완투 2승 0패, 평균자책점 5.82)
4.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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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 시리즈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8 · 2019 · 2021 · 2024 | |
시즌별 요약 | 2011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현역 선수 경력 | 사카모토 하야토/선수 경력 · 토고 쇼세이/선수 경력 · 마루 요시히로/선수 경력 | |
경기장 | 1군 도쿄 돔 · 2군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 · 지방 홈구장 선 마린 스타디움 미야자키 | 과거 고라쿠엔 스타디움 | |
홈 중계 채널 | 닛폰 테레비 | |
주요 인물 | 감독 아베 신노스케 · 선수회장 오시로 타쿠미 · 주장 오카모토 카즈마 | |
구단 상세 정보 |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과거 응원가 · 유니폼 · 순혈주의 · 여담 · 전통의 일전 · 10.8 결전 도쿄 시리즈 ·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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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에이스 투수 이나오 카즈히사가 니시테츠가 0승 3패로 궁지에 몰린 4차전 이후의 역투로 혼자 4연승을 거두며 요미우리에게 사상 첫 일본시리즈 리버스 스윕이란 굴욕을 안겨준 시리즈였다. 참고로 요미우리는 다음 해 일본시리즈에서도 1명의 투수에게 혼자 4승을 안겨주게 된다.[2]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레전드(山本浩二)와는 관계없는 1942년생 외야수로, 1963~1970년까지 한큐에서 백업으로 뛰면서 1966년엔 32도루로 도루왕을 수상했으며, 당시 기록했던 158타석은 2021년 와다 코시로가 경신하지 전까지 양대리그 이후 역대 최소타석 도루왕 기록으로 남았다. 은퇴 후엔 스카우터로써 마츠나가 히로미 등을 발굴했다.[3] 1968년엔 5시합 등판에 그치며 단 1승도 못 거뒀고, 이 해엔 5월에 또 다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중간계투로 주로 뛰며 33등판 60.1이닝 2승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4] 시리즈 종료 직후 요미우리 카와카미 테츠하루 감독은 신문 기고로 그 때의 상황에 대해 "오카무라가 (판정 문제로) 오카다 구심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 후 포수들이 공을 대놓고 받지 않으며 오카다를 저격한 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절대로 한큐에겐 우승기를 내어줄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라는 의견을 보이며 당시 한큐 포수진들의 행동을 비판했다.[5] 이날 오카다는 경기 종료 후 프로야구 커미셔너 위원, 각 리그 및 구단 대표들이 모인 귀빈석으로 불려가 엄중주의 처분을 받기까지 했다. 다만 엄중주의 처분을 받은 이유는 홈인 판정 논란 때문이 아니라 한큐 포수진의 저격에 공을 바로 주지 않는 행위로 맞대응한 것을 지적받은 것이었다.[6] 일본에서 뛸 당시엔 윈디라는 등록명을 사용했다.[7] 본래는 선두타자 오쿠마와 사카모토 토시조가 연달아 출루하면서 3점 홈런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나가이케의 전 타자였던 모리모토가 2루수 쪽 직선타로 본의 아니게 자신은 물론 오쿠마까지 아웃시켜 병살을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2점 홈런이 되었다.[8] 패배한 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