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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9 13:57:54

203고지(영화)

1. 개요2. 평가3. 이념성4. 극중 인물
4.1. 가상인물4.2. 실존인물

1. 개요

뤼순 공방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토에이 영화사에서 제작, 1980년에 개봉되었다.

2. 평가


테마곡은 사다 마사시(さだまさし)의 변방수비병의 노래(防人の詩)

영화는 러일전쟁이라는 시대적 사건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고통과 애환을 그리고자 하였으며, 가상인물의 대표인 코가 타케시와 실존인물의 대표인 노기 마레스케를 통해 각각 병사들과 사령관의 입장에서 전쟁을 통해 그들의 심경과 고통, 애환과 변화, 사연을 그려낸 수작이다.

인간 드라마 못지 않게 전쟁영화로서의 스케일도 당시 일본 최대를 자랑하였으며, 뤼순 요새와 203고지를 재현하기 위해 이즈오오시마(伊豆大島)에 대규모 요새 세트장을 건설하고, 당시 사용된 총기와 군복, 공성전의 백미인 280mm유탄포를 정확하게 재현해냄으로써 밀리터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0년 당시 개봉되자마자 일본에서 압도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이때의 흥행을 기반으로 1981년 1월 7일부터 동년 2월 25일까지 8부작 드라마 <203고지 사랑은 죽습니까>가 TBS 테레비방송 수요극장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또 3군사령부 일원들과 나레이션을 통해 자칫 놓치기 쉬운 전쟁의 진행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전쟁이라는 배경 자체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전달하였다.

옥의 티는 포격씬에서 대포의 포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라지만 사실 당시 사용된 28cm 유탄포는 주퇴복좌기가 없이 포 중량 자체로 반동을 받아내는 방식이라 후퇴 연출이 나오면 그게 더 에러다.

뤼순 요새 공략전의 막대한 희생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은 부분이 지적되었다. 당시 무익한 희생과 3차에 걸친 정면 총공격은 참모인 이치지 고스케 소장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그 점을 지적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가령 1차 총공격 씬에서 총공격 중지에 동의한다던가, 총공격 속행을 테라지마 중대의 활약을 본 노기 대장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나오는 연출, 그리고 2차와 3차 총공격은 고다마 겐타로대본영의 압박에 의한 노기의 자충수로 그리고 있다. 실제로는 203고지로의 공격 전환을 거부하고 정면 공격만 고집하며, 매달 26일에 정기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등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치지 소장의 행동이 큰 희생을 낳은 것인데, 203고지 공격를 거부하는 씬은 있으나 그외 기행은 전혀 그리고 있지 않다. 280mm유탄포의 배치를 거부했던 것이라든가(...)

노기 마레스케에 대한 이미지 전환을 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기 대장은 제국주의 시대까지는 충신이자 명장으로만 알려졌지만, 시바 료타로의 소설 등을 통해 뤼순 공략 당시의 무능함이 드러나면서 당시에는 돌대가리 이미지가 박혀 있었다. 그러나 영화 203고지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신파극으로 완화시키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얼굴마담 처지만을 요구받던 그의 처지와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병사들의 고통을 대면하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 종반부의 관중보고에서의 통곡 등으로 대변되는 연출이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러한 연출은 일정부분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무능 이미지를 덮으려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203고지의 배우들이 거의 다시 출연하는 재활용품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후속편격인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이 1982년에 개봉됐는데 영화 '203고지'와는 다르게 꽤나 우익적 성향이 강한 영화로 평가되고있다. 하지만 실상은 뜯어보면 극우들이 비판할 점이 꽤 많았고 실제로 우익 시점에서는 온갖 욕을 다 먹었으나[1][2] 흥행에는 성공했다.

3. 이념성

크게 흥행했기 때문에 자연히 좌익계통에서는 우익 영화로 비판했으나, 그 이유는 영화가 단지 일본제국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논조를 당시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붉은기>등에서 제시하며 군국주의 미화영화, 일본 미화영화, 우익영화로 비난했고, 이 영화의 주제가를 부른 사다 마사시도 마찬가지로 우익반동 취급을 했다.

그러나 일본 좌익이 이 영화를 비판한 이유를 그저 일본의 승리를 그렸기 때문이라는 것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돌격(특공)작전을 되풀이 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영화가 이를 메이지 덴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실상은 전술적 실패로 인한 떼죽음을)로 미화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용이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군국주의 미화영화로 흐를 위험이 있었으나, 감독인 마스다 토시오[3]는 수뇌부의 고집불통으로 무익하게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과, 참담함을 강조한 연출, 사지절단을 불사하는 과격한 연출로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했고, 또한 전쟁 속에서 동료와 가족을 잃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작품 전반적으로 비극성을 깔아 전쟁의 미화를 차단했다. 주인공인 코가 타케시의 설정을 보면, 처음에는 러시아를 동경하는 섬세한 문학청년이지만, 이후 같은 일본인 전우의 복수를 위해 모든 러시아인을 죽여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죽는 순간까지 러시아인을 죽이는 살인귀로 흑화된다.

4. 극중 인물

4.1. 가상인물

4.2. 실존인물


[1] 도조 히데키는 노골적으로 개전을 고민하다가 에라 될대로 되라(...)라는 대사를 날리고 덴노가 재가하고 독려한 여러 결정에 대해서 죄를 뒤집어 쓰고 죽는다. 덴노는 은근히 무력하지만 막후의 의견결정자로 나오고 있고, 무엇보다도 종전 선언을 들은 등장 인물들이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데 왜 전쟁을 끌었냐고 혀를 차는 장면이 백미.[2] 다만 우익적 성향 문제는 여러 등장 인물들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일본의 비극적인 느낌이 지나치게 난다는 점, 그리고 도죠를 무식하지만 덴노의 죄를 뒤집어 쓴 나름 희생양으로 그렸다는 점 때문이다.[3]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후카사쿠 킨지와 함께 일본 파트를 감독했다.[4] 그러나 이 양반이 직접식 교수법으로 배웠는지 문법 번역식 교수법으로 배웠는지 알 수 없다.[스포일러] 마지막 전투때 러시아군 1명의 공격으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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