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에 등장하는 스케치에 대한 내용은 사과문(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사과문(謝過文)은 사죄를 목적으로 작성한 글이다. 영어로는 "apology letter".토머스 울지(1473~1530)가 프랑스 국왕인 프랑수아 1세의 이권 변호한 것 때문에 1526년 영국 왕실법원 구성원들에게 사죄하는 형식 편지를 보낸 것이 최초. 영어 논문
2. 설명
인간은 누구나 언제든지 실수나 잘못을 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사람이 사람인 이상 살다 보면 크든 작든 잘못을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잘못을 했고, 이 잘못에 대해 어떻게 반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이 의도를 조리 있게 알리는 능력이 사회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즉 사과문은 잘못과 반성과 개선을 명문화하고 피해 당사자에게 이를 알리는 글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격언처럼 사람들은 최대한 남을 이해하고 용서해준다. 모든 사람은 용서받기를 원하고 죄가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사람이 항상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있지는 않기 때문에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정중하고 조리 있게 반성이 묻어나오는 사과문은 대개 사람들이 용서해준다. 그러니 반성을 멀리하지 말고 잘못한 게 있으면 꼭 반성하도록 하자.먼저 사과한 쪽이 진다는 아주 나쁜 인식이 은연 중에 퍼져 있는데, 위신과 자리싸움과 경쟁을 최선시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과를 똑바로 하고 반성하는 능력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높여준다. 사람은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말장난쟁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직의 가치를 무시하면 안 된다.
사과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문장은 면피성 발언이다. 의도와 다르게, 제가 잘못은 했으나, 제가 너무 힘들어서, 상대도 문제가 있어서, 같은 발언들이다. 설령 진심이라도 이런 발언은 쓰면 안 된다. 사과문은 아예 자신의 손해와 타인의 질타를 각오하며 써야 하는 글이다. 사과를 하면서도 그 와중에 내심 자신의 손해를 주판 굴리는 사람을 남들이 용서해줄 리 없다.
만약 사과문에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과가 들어가지 않거나, 입 꾹 닫고 있다가 법정 공방 단계에 들어가서야 쓰는 등의 행위를 한다면 설령 정중하고 논리적인 글이라도 사과문의 가치는 희석되며 되려 욕만 더 먹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연예인들의 사과문인데, 피해자에 대한 언급 없이 '팬 여러분께 죄송하다'만 들어가 있어 비난 받는 케이스가 있다. 이유는 '나를 사랑해주고 인기 많게 해주고 결제를 해주는 소비자 여러분을 불편하게 해서 그 분들에게 죄송한 것이지,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한 당사자에게는 사과할 마음이 없다' 는 해석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1]
조리 있게 쓰인 사과문과 후속 조치는 잘못을 딛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변명인지 사과문인지 분간이 안 되는 글을 쓰면 자신을 옹호하던 이들도 등을 돌릴 수 있다.
드문 사례로 모범적으로 잘 쓰인 사과문은 오히려 사과 당사자의 이미지를 올려주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는데, 사과문의 정석으로 꼽히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사과문#과 전현무 전 아나운서의 사과문이 있다. 공통점으로 무슨 잘못을 했고, 어떻게 반성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피해를 복구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사자들과 사회에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는 내용을, 정중하게, 전문에 '나도 불쌍하다' '내 잘못만은 아니다' 같은 군더더기 없이 썼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의 경우엔 '부친의 병환으로 자신도 괴로운 것을 안다'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으나, 유족의 아픔만큼은 못하다는 첨언이 들어가 있고 '나도 아프다' 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한다' 는 뉘앙스인 만큼 이 정도의 감성 정도는 감안할 수 있다. 오히려 자칫하면 감성팔이가 될 수 있는 부친의 병환을,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근거 수준에서 끊었다는 점에서 잘 쓰인 사과문이라 볼 수 있다.
A가 B에게 악플로 언어폭력을 가하고 B에게 고소를 당한 뒤 사과문에 '제 아버지가 아프신데 저 처벌 받으면 제 아버지 못 돌봐요' 따위를 언급한다면 이는 아주 전형적인 감성팔이이며, 사회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만약 B가 처벌 의지를 관철한다면 B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이 되어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뒤바뀐다. 가해자이자 원인 제공자는 A인데 말이다. 피해자의 양심을 건드리는 2차 가해의 일종이며 아주 교활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피해자가 타인의 아픔에 민감할 경우나 종교적인 가르침 혹은 성찰 혹은 보복의 두려움 등에 의해 용서를 해주는 대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케이스도 있는데,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가해자가 뒷자리에서 시시덕대며 이를 비웃다 들통나는 3차 가해가 발생하는 지독한 일도 가끔 있다.
사과문이 아닌 경위서, 입장 발표문, 해명문을 내면서 사죄의 표현을 쓰는 경우[2], 글의 본 목적인 사실관계의 정립과 결백 주장의 목적을 훼손하고 이해관계나 감정에 읍소한 글로 보일 수 있으며 글의 의도를 흐리기에 자제해야 한다. 잘못을 했으면 확실하게 잘못을 했다고 인정해야 하듯이, 잘못을 하지 않았으면 확실하게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억울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사과문 혹은 해명문 같이 민감한 글에서 모호성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특징이다. 사과나 해명을 할 것이면 똑바로 해야 한다.[3]
여론을 이기지 못해 사과문을 쓰는 경우나, 용의자가 형량 감경을 위해 반성문과 사과문을 쓰는 경우가 많아 사과문을 문서화된 변명으로 보는 시각이 대중 사이에 퍼져 있다.
사과문을 작성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위배하는 행위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사죄광고제도'에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89헌마160(1991. 4. 1.) 결정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유는 상대에게 있으므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결한 것이다.
좋은 사과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발단과 전개를 정립시키고 이에 대한 사실 관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논리력, 피해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같이 이해하여 이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공감 능력, 말하고 싶은 결론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결단력, 사회와 피해자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인내력, 섬세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식힐 줄 아는 어휘력이 필요하다.
우스갯소리로 "좋은 사과문을 쓸 줄 아는 정도의 사람이면 사과할 짓을 애당초 안 저지른다"고 한다. 대중이 4과문을 유독 많이 접하는 이유일지도. 당연히 사람은 사과문을 잘 쓰든 못 쓰든 잘못을 저지르며, 우스갯소리이므로 웃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4과문이 일어나는 가장 큰 요인은 사과하는 당사자가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금전적이든 정신적이든... 자신의 잘못을 공론화하는 행위이며, 그것도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공론화 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과문을 작성하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직집적인 피해를 준다는 압박감에 휩싸인다. 특히 기업인이나 정치인 등 많은 이해관계에 엮인 사람이라면 더욱 휩싸인다. 그래서 사과문을 조리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확실하게 사실관계를 정립하고 개선을 선언한 사과문과, 두리뭉실하게 쓰인 사과문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사과문은 사과하는 당사자의 신뢰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3. 사과문 강요의 폐해
모든 잘잘못을 공론화시키고 가해자에게 엄격한 사과문을 요구하며 사회적 폭력과 집단 린치를 권장하는 극단적인 징벌주의가 퍼져나가면서 공론화와 사과문 작성이 신종 고문 수단 내지 사적 제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사과문은 분명 요구할 수 있지만, 이것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사과문에 따라 되려 비난 거리로 삼는 일은 발언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과를 했더니 대중이 우우 거리며 되려 받아치기로 욕한다면, 사과하는 입장에서 사실관계나 감정을 표현하고 입증할 여지가 없어진다. 요점은 이성적인 판단과 표현과 그에 따른 옳고 그름을 상호 존중하며 비판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잘못했으니 찍어눌러야 속이 풀린다' 는 심판의 촉매제로 사과문의 본질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사과하는 쪽이 진다' 는 인식은 이러한 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다. 사과를 했더니 되려 비판 없이 '너 잘 걸렸다' '평생 까임권' 식으로 욕만 마구 돌아오는 상황이 사회에서 반복된다면 누구도 사과를 안 하는 사회가 되기 마련이다.
흔히들 잘못 생각하는 것이,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혹은 사회적으로 의의를 가지는 문제는 사과문을 강요해도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과는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민주사회에는 금지되며, 공산사회에서나 이루어지는 자아 비판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강요되는 사과가 바로 자아비판이다. 잘못을 법적으로 처벌할지언정, 그 잘못을 빌미 삼아 자아비판을 하는 행위는 민주사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사상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4. 사과를 요구할 때/사과문을 읽을 때
- 미숙함과 악의를 구분한다.
잘못이 일어났을 때 무조건 악의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주 많은 경우에 잘못은 실수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미숙함이며, 부드럽고 가볍게 타이르면 대개는 잘못을 깨닫고 깊게 반성해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렇게 서로 좋게 끝날 수 있는 문제를 무조건 악의라고 해석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일을 키워 상처를 주는 것은 정상적인 처사가 아니다.
- 사과문은 고문 수단이 아니다.
공론화와 마찬가지로 사과문을 요구하는 것은 상대에게 증오를 표출하고 복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과문은 상대가 반성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며, 혹시 자신이 사과문을 요구할 때 상대를 괴롭히겠다는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닌지 면밀히 생각해봐야 한다. 무조건적인 공론화와 여론 조장, 조리돌림과 뒷담화 등 사회적 폭력은 피에 피로 복수하겠다는, 증오를 쏟아내기 위한 폭력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상대가 증오와 복수심을 원한다는 의중을 읽어 냈다면, 그때부터 서로 피터지는 대결 단계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 사과를 강요하지 말자.
앞서 말했듯 민주 사회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과는 강요될 수 없다. 방법이야 어찌되든 잘못된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만 한다면 괜찮다는 사고방식은 민주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은폐된 사건을 공론화시켜 공정한 재판을 이끌어내 법적으로 처벌할지언정, 사과를 강요할 수는 없다.
- 무엇이 문제인지 명시한다.
가해자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서 맞춰보라는 식의 사과 요구는 옳지 못하다. 정확히 어떤 것에 대해서 어떤 이유로 반성을 요구하는 건지 알려주는 것이 좋다. 가해자가 정말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경우라면 사과요구를 공격으로 받아들여 법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 당연히 피곤함만 커지고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할 것이다.
-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명시한다.
제3자들이 피해자를 대신하여 사과를 요구할 때, 무작정 공론화가 이어지고 지나친 감정이입을 통해 마치 제3자 자신이 피해자가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가해자 또한 사과 대상자를 착각하고 다수 여론에 떠밀려 엉뚱한 제3자에게 사과하게 된다. 제3자들도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제3자가 사과를 요구할 때는 사과 요구자 자신이 피해자가 아님을 확실히 인지하고 감정이입보다는 이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가해자가 사과 요구자들이 아닌 피해자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 조롱이나 위협은 자제한다.
가해자를 채근할 때 조롱과 일방적 비난은 오히려 가해자가 겁을 먹어 현실부정으로 몰고 가기 쉽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싶다면 일방적인 증오와 조롱보다는 왜 속상했는지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완전히 감정적 색채를 지우자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서 위협을 느낄만한 언행은 자제하는 것이 원만한 반성과 사과를 얻어내는 지름길이다. 정의 구현과 피해자 신분을 이용해서 복수와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상대가 사과를 했는데 본인이 받아주지 않을 때도 정중하게 거절을 해야지 가해자를 조롱하거나 위협한다면 가해자에게 아무런 악감정이 없는 제3자 입장에서는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면서[4] 가해자를 옹호해주고 오히려 자신에게 안 좋은 이미지만 남을 수 있다. 용서를 해주지 않은 건 자유지만, 용서를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게 된다는 말이다.[5] 그리고 상대방이 반성을 거부하더라도 반말조로 조롱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사과가 강요 되어서는 안 되며, 최소한의 예의는 그 어떤 상대에게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점을 명심하는 게 좋다. 애초에 조롱과 위협을 가할 거면 사과 요구가 아닌 바로 재판절차를 알아보는 것이 훨씬 정신건강에 좋다.
- 진정성을 보자.
아래 이미지에서 말하는 '쓰면 안되는 용어', '써야하는 내용'을 위반했더라도 다른 곳에서 진정성이 보인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진정성이지 사과문의 공식과 문법, 내 맘에 드는지 여부가 아니다. 사과문을 통해서 상대방이 잘못을 깨우쳤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지, 피해자 비위를 잘 맞춰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과문을 채점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며, 지엽적인 부분에 매몰돼서 전체를 보는 능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5. 사과문을 쓰는 방법
사과문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6] 사과문을 작성해야 하는 상황은 매번 달라지며, 이 문서에서 그 많은 상황을 고려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아래 사항만 지켰다고 해서 무조건 모범적인 사과문은 아니며, 아래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사과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또한 위 문단에서처럼 사과문을 무작정 채점하려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만약 사과문을 쓰는 입장이 아니라 읽는 입장이라면 아래 기준보다는 진정성을 보도록 하자. 사과문을 쓰는 입장에서도 아래 내용에 대해 도움말로서의 참고가 가능할 뿐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사사로운 인간관계에서 하는 사과는 사죄 문서를 참고. 이곳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사과문 작성법을 말한다.
- 사과해야 하는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한다.
잘못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거나, 잘못을 다른 것으로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주변 상황을 보며 중립적인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부적절한 발언', '경솔한 행동' 등의 어휘로 사과하고자 하는 문제를 에둘러 말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만약 정말로 사과할 것이 없거나 상대방의 잘못에 비해 미약하다고 생각한다면,[7] 사과문보다는 어떤 경위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경위서나 해명문을 쓰는 것이 좋다. 사과문을 억지로 쓰게 되면 그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받거나 허위사실이 유포될 수 있다.
- 잘못이 무엇인지 육하원칙으로 서술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경위를 상세히 서술한다. 특히 '누가'에 해당하는 주어를 빠트리지 않도록 한다. 또한 사과문에 사과하려는 잘못이 나타나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과문을 쓰고도 욕을 먹는 가장 많은 경우가 바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언급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불편을 끼쳐드려',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 심려를 끼치게 되어' 따위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경우다. 누가 어떤 잘못을 어떻게 저질렀는지 상세하게 쓰지 않고 저렇게 쓰는 건 진정성이 결여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다만 잘 쓴 사과문에서도 저런 표현을 쓴 걸 볼 수 있긴 한데,[8] 저 표현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저것만으로 '무엇을 + 어떻게'에 해당하는 부분을 퉁치지 말라는 것이다.
- 피해자, 혹은 피해 대상에게 사과를 하는 마음가짐과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논란이 되어 쓰여진 사과문이나 반성문 등을 볼 때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오직 주변 사람들이나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사과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예를 들어 갑이 을에게 피해를 주어 갑이 사과문을 쓰는데, 사과의 대상이 을이 아닌 국민들(혹은 여론)을 향해있는 경우가 있다.[9] 사과문에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진정성 있게 피해자(혹은 피해 대상)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책임을 진다는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다. 여론이나 타 집단이 이해하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피해측이 인정할 수 있도록 피해자 측에게 직접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더 옳다.
- 사과 주체와 관계없는 타인/타 단체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과문이 아닌 책임회피문, 변명문으로 생각하게 되는 1순위. 주제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과문에서 진심을 못 느끼게 한다. 흔한 케이스가 '나도 잘못했지만 너도 책임이 있어'류인데, 보는 사람에게 '정말 인성이 나쁘고 사과하기 싫어서 억지로 쓰는구나'하는 인상을 주게 된다.
물론 사건에 따라서 분명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왜곡되어 알려져 있거나 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일단 사과문에서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고, 즉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만 확실히 하고, '해명'을 사과문 앞이나 뒤에 첨부하던가, 아예 사과문을 쓰기 전에 먼저 따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올리던가 하자.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사건이 잘못 알려져 억울하게 욕을 먹는 게 확실한 경우에나 이렇게 하라는거지, '누구도 이런 잘못을 했고 누구도 저런 잘못을 했다'며 불필요하게 안 알려진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하라는 게 아니다.
- 첨언은 하지 말자.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마음이 아픈 것을 강조하면 안 된다. 사과문은 상대방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쓰는 글이다. 사과문의 전체적인 주제가 자신의 고통 쪽으로 흘러간다면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가 피해자가 된 양 책임을 회피한다고 보일 수 있다. 공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과문의 말미에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돌려쓰는 것이 좋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서 스스로 자아성찰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 안된다. 상대에게 고통을 준 일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었다는 말로 들리게 된다.
- 마무리
마지막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안녕히 계세요' 또는 '수고하세요' 같은 문장으로 쓰면 성의없어 보인다.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와 같이 쓰거나 '고개 숙여'같은 비유적 공감 단어를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라.
말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행동이 말보다 더 강력하다. 관련 직책에서 물러나거나, 사퇴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다만 자결을 요구한다면 주변인에게 피해를 끼치겠다는 구체적 위협이 없는 한 사과가 아닌 대결 단계로 나가야 한다. 약간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사과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단, 직책에서 물러나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잘못하면 책임회피로 볼 수도 있다.
- 후속 조치
사과는 열심히 해 놓고 잘못된 행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거나 자숙을 전혀 하지 않고, 자숙이 끝난 뒤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뻔뻔하게 굴면 지탄을 받기 쉽다. 심지어 기껏 사과문을 써놓고 잘 썼든 못 썼든 나중에 지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안 좋은 행동이다.[10] 그리고 사과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게 사소한 맞춤법이나 오타 문제가 아닌 이상 되도록 그냥 두거나, 2차 사과문을 쓰거나, 수정하되 몰래 수정을 하지 말고 어디를 어떻게 수정했는지 표시하거나 따로 공고하기라도 하는 편이 좋다.
5.1. 무용론
앞서 열거한 '올바른 사과문'을 작성했다 하더라도 사건의 파장이 너무 크다면 대중 입장에서는 사과문의 형식이나 진정성과 상관 없이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과문의 내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부적절한 단어나 문장이 들어갈 가능성도 커지고, 트집을 잡을 구석도 많아진다. 무엇보다 사과문을 작성한 당사자를 싫어하는 안티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떻게든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모든 사과문을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여 당사자의 본심을 왜곡시켜 명예에 큰 훼손을 입히기도 한다.반대로, 사과문에 부적절한 내용을 삽입했거나 사과문 없이 SNS나 영상 상에서 약식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대체하고도 자신의 콘크리트 팬덤과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것을 이용하여 해당 사건을 무마하거나 논란을 종결시키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에는 당사자가 진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아도 팬덤이 '이미 사과하지 않았냐'고 반론하며 당사자를 감싸주기에 아무리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 지적하더라도 당사자의 명예에 큰 영향이 가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사과문 작성 방법을 설명한 사진. 오른쪽에 있는 보석은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의 유료 재화다. |
6. 사과문을 쓸 때 넣으면 안 되는 표현들[12]
- 본인의 무지 및 본인의 의도를 어필하는 표현.
예시: 저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예시: (과거 저지른 잘못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철 없을 때 일 입니다.
예시: (상식적으로 어긋난 일을 했음에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13].
예시: 저를 차단할 때까지 제 행동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시: 다른 사람들도 하길래 나도 했다[14].
예시: 너한테 막말한 건 미안해. 하지만, 너 잘되라는 마음에 그랬어. - 법에 위배되는 범죄를 저질러 감형에 집착하거나 선처를 호소하는 각종 표현들
예시: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미안하다. 사과 할 테니 합의 좀 해줘라.
예시: 앞으로는 정말 이런 일이 없고 엮일 일도 없을 거다. 그러니 고소 좀 취하 해줘라.
예시: 다시는 이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차단을 풀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사과와는 전혀 연관 없는 일 혹은 사람을 끌어들여 책임을 떠넘기려 하거나 회피 하려 하거나 사과와는 불필요한 내용이 담겨있는 경우[15]
예시: 사과와는 나의 잘못과는 별개로 나를 욕할 경우 법적 처리하겠다[16].
예시: 나만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17].
예시: 나 또한 억울한 부분이 있다[18]. - 이유 불문하고 사과한다거나 용서를 강요하는 경우
예시: 내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겠으니까, 이제 화 풀어라[19].
예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오해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 변명을 하는 경우
예시: 그 점은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말 이후 구구절절 변명거리를 늘어놓는다)
예시: 제가 이러저러한 것은 죄송하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었기에 그것만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데 비난에 못이겨서 억지로 사과한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는 경우[20]
예시: 저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저의 행동이 진짜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저를 비난하시니 일단 사과는 드리겠습니다. - 논란이 생겨 유감입니다.
아시다시피 '유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안타깝다' 는 뜻을 완곡히 하는 표현이다. 본인의 언행이 잘못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본인의 잘못으로 논란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엄연히 본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논란에 대해 사과해야 할 상황이라면 절대 넣어서는 안 될 단어이다. -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 상대방을 탓하는 경우
예시: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네 탓도 있어. - 상대방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
예시: 사과받고 싶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7. 사례
이 문단은
- [ 개별 등재 기준 펼치기 / 접기 ]
- * 사과문 문서의 5. 사례 문단에는 제도권 언론사의 사과문 전문이 실린 기사 링크만 기재하며, 나무위키 문서와는 연결할 수 없다.
- 해당 문단에는 해당 사과문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관련한 별도의 서술을 할 수 없다. (제도권 언론사의 사과문 전문이 실린 기사 내에 있는 서술은 무관)
- 5.1 사과문/사과 발표의 모범 사례 문단과 5.2 사과를 빙자한 변명 때문에 사건을 더 키운 사례 문단은 삭제한다.
- 이재용 부회장 메르스 사태 대국민 사과문
- 전현무의 연예대상 시상식 발언 관련 사과문
- TV조선 미스터트롯 지연 발표 사과문
- 정몽규의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관련 사과문
- LCK 사무총장 이정훈의 디도스 사태 관련 사과문
8. 4과문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거나, 반성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단순히 당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쓴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가짜 사과문을 조롱하는 의미의 속어이다. 메갈리아4에서 유래하여 숫자 4를 '사' 대신 붙여 4과문이라고 한다.보통 연예계에서 문제를 일으킨 인물이 사과문을 발표할 경우 십중팔구는[22][23] 4과문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24] 4과문이 등장하는 이유는 사과의 진정성 문제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본인이 비판받는 이유와 본인의 잘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여 발생하는데 대부분 4과문으로 비판받는 사례는 사과문 작성자의 인성 문제라기보다 이쪽에 가깝다. 특히나 악질적인 경우 남을 조롱하거나 사과를 받는 대상을 은근히 비방하는 사과문을 일컬으며 이를 작성하게 되면 '안 하느니만도 못한' 뭇매를 맞는다. 조금 더 공식적인 표현으로는 '변명글'로 부른다.
'사과'와 '문'의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Apple Door[25]라는 표현도 가끔 등장한다.
글뿐만 아니라 언론에 공개되는 정치인들의 사과들도 대부분 4과문으로 받아들여져 화를 재촉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자신과 관련된 논란에 빠른 시일 내에 진솔한 태도로 사과를 한다면 자신에게 미치는 화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만,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사과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반 장난입니다. 이걸로 이 꽉 깨무시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또는 "단순 개별의 선택이기 때문에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와 같은 태도로 나온다면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결과로 돌아오게 된다.
넷마블이 한국 Fate/Grand Order 2021년 근하신년 스타트 대시 캠페인 중단 사태에서 유저들의 분노를 진정시키긴커녕 오히려 촉발시키기만 하는 사과문을 5차 이상 발표하면서 5과문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에선 게임계에서 유저들을 진정시킬 때 주는 보상을 뜻하는 은어인 사료와 4과문 드립을 응용해서, 유저들을 분노케 하여 무마시킬 수 없을 지경의 효과가 떨어진 사료를 4료라고 하는 경우도 생겼다. 다만 이쪽은 디렉터를 바꾸고 서로 원만하게 해결하면서 24년 기준 5만 정도의 고정 유저층을 지키고 있다.
이런 4과문이 나올 경우 "나다 씹새끼들아."로 시작하는 해석문이 돌기도 한다.
9. Mistakes were made
영어권에서도 이러한 사과 아닌 사과는 비일비재하며, 특히 정치인이나 기업 등이 사과라고 읊어대는 공허한 말을 일컬어 “mistakes were made”(실수가 발생하였습니다)라 부른다. 잘못의 내용은 서술하면서도, 주어가 빠진 수동태 문장만을 구사함으로써 잘못을 저지른 주체가 자신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10. 관련 문서
[1] 이러한 부조리한 대응이 가능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감정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 하나로 먹고 사는 연예인으로서 갑자기 폭로나 비판 등에 의해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입장이니, 다른 직업으로 비유하면 잘 나가나 싶더니 청천벽력으로 강등 혹은 실직을 당한 꼴이다. 잘못을 한 사람임에도 되려 개인적으로 피해자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2]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여 결백함을 증명하려는 글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않겠다.', '사회에 물의를 끼치게 되어 죄송하다.' 같은 사족을 다는 경우.[3] 해명문 자체가 '확실하게 밝히는 글'이라는 목적을 가진 글인데, 이런 글에서 관습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을 썼다는 것은 해명문에 대해 무지하거나 겉으로만 해명문이라는 근거이다.[4]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격언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대한 남을 이해하고 용서해주려고 하며 이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제3자 입장에서는 반대 심리가 들 수밖에 없다.[5] 가해자한테 아무런 악감정이 없는 제3자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고 하면 피해자가 용서를 해주지 않았더라도 "그래도 피해자한테 사과는 했구나" 하고 넘기며 더 이상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제3자에게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반응해 줘야 할 의무는 없다.[6] 때문에 후술한 4과문도 성의없긴 하나 사과문에 해당한다.[7] 예를 들어 자신이 길드장인데 한 길드원이 반복적으로 분쟁을 일으켜서 강퇴했더니 권력 남용, 규칙 위반이라고 사과문을 요구하는 경우,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길드원이 어떤 잘못을 했길래 강퇴하였는지 모르니 뭐라 할 수 있다. 이 경우엔 사과문으로 '논란을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두루뭉술하게 사과하느니 그 길드원이 어떤 잘못을 했고 그 때문에 자신이 어떤 규칙에 따라 강퇴한건지 설명을 하는 게 우선이다. 그 뒤 그래도 자신이 잘못한 점이 있다거나 하다면야 일이 다 해결된 다음 사과하면 되고.[8] 사과문 작성 당시 아직 법적으로 재판이 끝나지 않았거나 사건의 경위가 상당히 복잡한 경우, 섣불리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그만큼 재판에서 불이익을 보거나 사건에 얽힌 이해당사자의 분노를 자극할 수도 있기에 표현을 조심해서 쓰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는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최대한 법리적으로 판단해줄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편이 가장 안전하나, 이마저도 '내 탓이오'라고 속시원히 이야기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정서법과는 거리가 있다 보니 좋게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한테 자문받고 썼냐'는 비아냥을 듣는 사과문들은 대부분 이런 이유로 탄생한다.[9] 이는 반성하지 않는 뻔뻔스런 가해자가 스스로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가해자로 미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라고도 볼 수 있다.[10] 대표적인 예가 이 사건이다.[11] 주로 현금으로 구매해야 하는 유료 재화를 주는 경우가 많다.[12] 앞서 말했듯 사과문은 자유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무조건 넣지 말라고 강요할 순 없으나, 이걸 넣으면 거의 확정으로 후술할 4과문 취급을 받기 때문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면 자제하라는 이유로 서술했다.[13] 제일 빈번하게 일어나는 잘못된 사과문 중 하나이다.[14] 전형적인 자기합리화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남들까지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사회에서 남에게 잘못을 떠넘길 때도 쓰인다.[15] 이 경우가 제일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우이며, 명예훼손을 사유로 하는 법적대응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과와는 전혀 연관 없고 불필요한 내용을 담을 경우 읽는 이로 하여금 화를 치밀어 오르게 만들기도 한다.[16] 인플루언서나 연예인 등 대중들에게 관심 받는 직업군들의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인데. 잘못한 짓을 해 놓고 자신의 행위에 비판이 아닌 맹목적인 비난을 가하는 자들을 고소하거나 고소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과문에는 말그대로 진정성 있는 사과만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런 사과와는 전혀 연관 없고 불필요한 내용이 들어가면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적반하장으로 읽히기 마련이기에, 이런 내용은 별개로 선언하는 것이 좋다.[17] 전형적인 자기합리화 방식으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쓰는 사과문에는 굳이 다른 이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자신이 잘못을 했든, 상대도 잘못을 했든, 여러 사람들이 잘못을 했든 보통 용서를 빌기 위해 사과문을 쓰는 건 본인 한 사람이고. 사과문을 읽는 건 상대방 뿐이다.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 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18] 사과문에는 말그대로 사과만 담겨있어야 한다. 만약 정말 풀어야 할 정도로 억울한 부분이나 오해가 있으면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고 차후 푸는 것이 좋다.[19] 빈번한 일 중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잘못된 방식이기도 하다. 용서라는 건 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절대 남이 '잘못했다니까, 용서해라.'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안된다.[20] 최악의 경우이다. 사과문에 이런 뉘앙스의 표현을 쓴다는 것은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절대 할 수 없는 행위이다.[21] 물론 진짜 사과가 아니라 사과문을 밈화하여 광고 수단으로 쓴 것이다.[22] 예외적으로 팬덤이 강하거나, 엄청나게 오래 자숙하거나, 유튜버의 경우 아예 수익 창출을 포기할 각오하고 모든 영상을 내리는 등 진심으로 사죄를 하는 마음을 보이거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경우 오히려 동정 여론이 훨씬 많아진다. 대표적으로 엄청나게 오래 자숙하고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수준까지 간 감스트 등이 있으며, 케인 같이 사과 이후의 행보로 대중에게 진정성이 전달된 경우 사과문의 일부를 읽는 영상이 밈이 되기도 한다.[23] 다만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이 이런 사과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위치상 사과문 자체는 의혹이 나온 시점에서 내놔야 하는데, 이 경우 아직 의혹단계인 사건을 본인이 사실로 인정해버리는 증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정말 무고하지만 일단 급한불이라도 끄자는 생각에 사과문으로 인정을 해버리면, 후일 무고가 밝혀지더라도 사람들은 사과문에서 이미 스스로 자백했다며 후일 밝혀지는 무고함을 믿어주지 않는다.[24] 그래도 사과문을 일절 쓰지 않는 것보다는 여론이 좋아진다. 하지만 사과문을 쓰며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거나 피해자를 돌려까는 등의, '당장의 비판을 모면하려는' 시도로 여겨지는 자기변명, 자기합리화가 심각한 사과문을 작성할 시 작성하지 않은 것보다도 여론이 나빠지며 심각하면 아예 매장당할 수도 있다.[25] 이 쪽은 숲튽훈 드립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