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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공수특전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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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colbgcolor=#ffffff,#191919> 1974년 10월 1일(제9공수특전여단)
상징명칭 귀성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육군특수전사령부
규모 여단
역할 특수전
여단장 준장 안무성(육사 53기)
위치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1]

1. 개요2. 상세3. 편제
3.1. 여단 직할대3.2. 제51특전대대3.3. 제52특전대대3.4. 제53특전대대3.5. 제55특전대대
4. 출신인물
4.1. 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5.2. 부대가5.3. 부대영상
6. 사건사고7.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c1.staticflickr.com/15458306383_455bc695a8_b.jpg?width=720&height=382.jpg
침투 훈련 중인 제9공수특전여단 대원들
제9공수특전여단은 1974년 10월 1일 창설된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공수특전여단이다.

2. 상세

12.12 군사반란 당시 서울특별시 근교 부대 중 유일하게 반란군에 협조하지 않고 육군본부의 지휘를 따르던 부대였다. 당시 제1, 3, 5 공수특전여단장[2]과는 달리 제9공수특전여단장이었던 윤흥기 준장하나회 출신이 아닌 갑종장교 출신이어서 하나회의 회원들로 이루어진 신군부의 영향력 안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신군부 전두환 측의 명령이 아닌, 본연의 정상적인 명령 계통에 따라 육군특수전사령관정병주 소장의 명령에 따랐다.[3] 반란군을 제압하기 위해 경복궁을 향해 출동하였으나, 그쪽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반란군과 육군본부 사이에서 맺어진 일명 '신사협정'[4]으로 인한 육군본부의 회군 명령에 따라 다시 부대로 복귀한다.[5]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1980년대 이후로는 제9공수특전여단 역시 하나회에서 철저히 장악하는 부대가 된다. 12.12 군사반란이 끝나고 며칠 후 윤흥기 준장이 경질되고 대신해서 하나회 출신인 이진삼 준장(육사 15기)이 여단장으로 부임했다.[6] 비단 제9공수특전여단 뿐 아니라 사실상 대한민국 육군 전체가 하나회에 의해 장악된다.

육군특수전사령부 휘하 5개 공수특전여단들 중 부대 역사 면에서는 가장 깨끗한 부대다. 12.12에 동원되어 반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5공수특전여단 (현 국제평화지원단)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다수 저지른 제7공수특전여단제11공수특전여단, 반란과 학살 모두에 가담한 제3공수특전여단에 비하면 제9공수특전여단은 그러한 흑역사가 없다.

3. 편제

제9공수특전여단 편제
대대 직할대
51대대 52대대 53대대 55대대 특임대 본부대 정통대 장정대
1·2·3 지역대 4·5·6 지역대 7·8·9 지역대 10·11·12지역대 1중대 ~ 5중대 ·
지역대별 5개 중대[7][8] ·

3.1. 여단 직할대

3.2. 제51특전대대

3.3. 제52특전대대

3.4. 제53특전대대

3.5. 제55특전대대

4. 출신인물

4.1. 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여단장.
역대 제9공수특전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노태우 예) 대장 육사 11기 국군보안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9사단장 제 13대 대한민국 대통령 역임
02대 윤흥기 예) 소장 갑종 35기 여단장 [9]
03대 이진삼 예) 대장 육사 15기 육군참모총장
04대 이문석 예) 대장 육사 17기 제1야전군사령관
00대 송유창 예) 준장 육사 31기 부사관학교
00대 박원동 예) 준장 육사 34기 여단장
00대 이승호 예) 준장 육사 38기 제205특공여단
24대 권삼 예)소장 육사 43기 제31보병사단장, 육군동원전력사령관
25대 김용철 예) 준장 학군 24기[10] 여단장 [11]
26대 서영만 예) 준장 육사 43기 특수전학교 [12]
27대 문석호 예) 준장 육사 45기 제2군수지원사령관 [13]
28대 박성제 소장 학사 17기[14] 제37보병사단 [15]
29대 김영섭 준장 육사 48기 여단장 [16]
30대 강부봉 준장 학군 33기[17] 육군항공학교 [18]
31대 안무성 준장 육사 53기 여단장 [19]

4.2. 장교/부사관

4.3.

5. 기타

5.1. 근무환경

5.2. 부대가

구름을 내려치는 번개와 같이
보아라 피끓는 사나이 세계
그렇다 너와 나는 베레모 사나이
충성 한 가닥에 목숨을 건다
아아 우리는 9여단 용사

하늘로 땅으로 적진 어디메뇨
무찔러 이겼다 전우여 기뻐하라
그렇다 너와 나는 베레모 사나이
조국 위한 마음 이 몸 불살라라
아아 우리는 9여단 용사
제9공수특전여단가

초대 여단장이었던 노태우직접 작사, 작곡했다.

5.3. 부대영상




6. 사건사고

7. 여담



[1] 정문은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고 후문이 부천시에 이어져 있다.[2] 당시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박희도 준장(육사 12기), 제3공수특전여단장은 최세창 준장(육사 13기), 제5공수특전여단장은 장기오(육사 12기)로 모두 하나회 멤버였다.[3]노태우와는 인연이 있었다. 전임 여단장이 노태우였기 때문이다.[4] 서울특별시 내에서의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맺어진 협정이었다. 물론 이 협정을 먼저 제시했던 전두환이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었건만 육군본부 측은 이를 큰 의심없이 받아들여버린다.이 사건은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묘사가 되었다.[5] 만약 그때 신사협정이 안 맺어져서 육군본부가 회군 명령을 내리지 않아 제9공수특전여단이 그대로 경복궁으로 갔더라면 전두환을 위시한 반란군의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정을 상상하는 이도 일부 있다. 그러나 수도기계화보병사단제26보병사단이 출동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경사 예하 30, 33경비단제9보병사단, 제20보병사단이 반란군 주력이라, 제9공수특전여단이 그대로 돌입했어도 큰 화력이 없고 인원도 적은 특수부대의 특성상 훨씬 많은 병력수와 화력을 갖춘 반란군 측 정규전 부대들을 모두 이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만약 특전사가 아니라 대규모의 보병부대기계화보병부대가 진압군으로 출동했더라도 서울 시내에서 현실적으로 대규모의 병력과 화력을 갖춘 아군끼리 대형참사를 야기시킬 치명적인 전투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제9공수특전여단이 특수부대로서의 장기를 활용해서 보병부대와의 정면 충돌이 아닌 기습으로 경복궁 제30경비단을 신속하게 장악하고 반란군 지도부를 싹 체포했다면 반란군측이 대규모 정규전 부대들을 미처 동원하기 전에 반란이 진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반란군 측에서도 제1공수특전여단 소속의 얼마 안 되는 병력이 국방부와 육군본부을 기습하여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위시한 대응군 지도부를 신속하게 체포함으로써 더 이상의 국군간 큰 충돌 없이 반란을 성공시켰듯이 말이다. 수도경비사령부에도 야포단이 있었고 경복궁에 포를 조준만 했을 뿐 쏠 수는 없었다. 제9공수특전여단의 출동 소식을 듣고 노태우가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6] 같은 맥락에서 같이 장악되었던 부대가 제9보병사단이다.[7] 중대는 일반적으로 장교 2명, 부사관 10명 총 12명으로 구성된다.[8] 장교: 중대장(대위), 부중대장(소위~중위) / 부사관: 주특기별 2명씩 총 10명 (정작2, 화기2, 폭파2, 의무2, 통신2명). 간혹 주특기 인원이 3명인 경우도 있다.[9] 12.12 군사반란 당시 여단장[10] 중앙대학교[11] 2014.11.04~[12] ~2018.06.04[13] 2018.06.04~2019.12.18[14] 영남대학교[15] 2019.12.28~2021.06.02[16] 2021.06.02~2022.12.26[17] 동아대학교[18] 2022.12.26~2024.04[19] 2024.04~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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