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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2:23:50

해군 특수전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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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해군기.svg 대한민국 해군 작전사령부 직할 전단파일:gwt.png
파일:제5기뢰:상륙전단.png 파일:제7기동전단.png 파일:제8전투훈련단.png 파일:해군특수전전단_마크.png 파일:해양정보단.png
제5기뢰/상륙전단 제7기동전단 제8전투훈련단 해군특수전전단 해양정보단
※ 편제·직제·병과별 둘러보기: 해군의 편제
해군 특수전전단

Naval Special Warfare Flotilla
파일:해군특수전전단_마크.png
<colbgcolor=#001B69><colcolor=#ffcb08> 불가능은 없다
NOTHING IS IMPOSSIBLE
창설 1955년(수중파괴대)
1981년(특수공작대)
1983년(제25특수전전대)
1986년(제56특수전전대)
2000년(특수전여단)
2007년(특수전전단)
2009년(특수전여단)
2012년(특수전전단)
상징명칭 UDT/SEAL[1]
약칭 특전단, UDT
소속 대한민국 해군
상급부대 해군작전사령부
규모 전단
역할 특수작전[2]
전단장 준장 김학민(해사 47기)
핵심가치 희생, 명예, 단결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진해 해군기지
1. 개요2. 편제3. 역사4. 상징
4.1. 모토4.2. 부대마크·휘장
5. 특징6. 교육과정과 배경 역사
6.1. 신분별 특수전 초급과정
6.1.1. 부사관 교육과정의 변천
6.2. 훈련 여담6.3. 지옥주(Hell Week)6.4. 위탁교육6.5. 교육 문화6.6. 수료율
7. 실전경험 및 대내외활동8. 장비
8.1. 복제8.2. 병기
9. 해군 특전부사관
9.1. 체력평가9.2. 과거의 입교 평가9.3. 후보생 합격 점수대
10. 해군 특전병11. 해군 특전장교12. 사진 및 영상13. 역대 지휘관14. 출신 인물15. 등장 매체16. 기타1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特殊戰戰團, Naval Special Warfare Flotilla)은 대한민국 해군특수작전을 수행하는 특수작전부대이다. 해군작전사령부의 직할 전단으로 전단장은 해군 준장이 보임된다. 모체인 해군 수중파괴대[3]의 영문 약칭대로 통상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 또는 육·해·공 전천후 작전팀을 뜻하는 'UDT/SEAL(UDT/SEa, Air and Land)'이라 불린다.

대한민국 해군의 UDT/SEAL은 6.25 전쟁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관리와 미합중국 해군 수중파괴대(UDT)의 훈련 아래 활약하였던 영도부대 해상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 해군 수중파괴대(UDT)를 벤치마킹하여 창설되었으며,[4] 훗날 미합중국 해군의 UDT가 Navy SEAL로 발전한 것과 같이 UDT에서 UDT/SEAL로 발전한 것인데 이는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 폭파, 암살,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제거, 요인 구출 및 납치'라는 전통적 UDT임무에 확장되어 육상, 해상 및 공중 특수작전, 직접타격, 해상 대테러리즘, 경호경비' 등의 임무를 추가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 변화에 따른 부대의 변화는 UDT가 수행한 임무를 통해 알 수 있다. UDT는 1950년대에는 직접 북한해역 및 해외에서 공작임무를 수행하거나 1960년대에는 해군 정보부대에 배속되어 공작임무를 수행하였는데[5] 2011년엔 청해부대에 배속되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인질구출을 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특수전전단은 부대창설 과정과 SEAL 임무확장 과정에서 나타나듯 미합중국 해군네이비 씰(Navy SEAL)을 모티브로 삼고 해당 부대에게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6] 국내외에서의 임무 수행과 해외 군사교육 및 특수부대와의 연합 훈련 등 왕성한 해외 교류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2. 편제


진해 해군기지의 제1특전대대는 공중작전대, 해상작전대, 해중작전대의 3개 작전대[13]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1대대 대원은 이 3개 작전대 중 하나에 소속되어 해당 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장기복무자의 경우 몇 년이 지나면 순환 근무로 소속 작전대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 최소한 2개 이상의 제대를 섭렵한다.

제3특전대대와 제5특전대대는 동해와 서해를 담당하는 각 함대의 관할에서 벌어지는 특수작전 소요에 대비하는 파견부대이다. 이외에도 접적해역 모처 등에도 소수의 UDT 대원들이 파견근무하고 있다. # #

해군 특수전전단 특수임무대대(CT: Counter-Terrorism)는 국가급 대테러특공대로, 군사시설 또는 국외에서의 해상 대테러 임무를 담당하며[14] 그 외에 작전은 일부 극비이다.

해상 대테러(MCT: Maritime Counter-Terrorism)와 폭발물처리(EOD)[15]는 별도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며, 장기복무 요원은 해당 제대에 속하지 않더라도 자원하여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다.[16] 한편 MCT 및 EOD는 전문과정이라, 특수임무대대와 폭발물처리대대에는 특전병이 배속되지 않는다.[17] 해상 대테러(MCT) 교육의 경우, 청해부대 파견 전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정이다.

2018년 9월 1일, 제5성분전단 55구조·군수지원전대 예하의 해난구조대가 해군 해난구조전대(SSU)로 확대 개편 후 특수전전단으로 예속 변경되었다.

참고로 전쟁이 발발하면 대한민국으로 증원된 미국 특수부대들은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되고, 해군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와 육군 특수전사령부가 연합 특수전사령부(Combined Unconventional Warfare Task Force: CUWTF)로 창설된다.

3.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해군 특수전전단/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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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년 11월 9일 수중파괴대(UDT) 창설
  • 1968년 5월 1일 폭발물처리대(EOD) 창설
  • 1975년 UDT/SEAL로 명칭 변경
  • 1976년 1월 1일 특수전(SEAL) 임무 추가[18]
  • 1983년 1월 1일 제2전단 예하 제25특수전전대 창설
  • 1986년 2월 1일 제5성분전단 예하 제56특수전전대로 개편
  • 1993년 12월 1일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로부터 해상 대테러 임무 이관[19]
  • 1998년 4월 1일 특수선박대 창설
  • 1999년 5월 1일 육·해상 대테러 모두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특수임무대(CT) 창설[20]
  • 2000년 1월 1일 특수전여단 창설
  • 2007년 12월 21일 특전전대, 구조전전대(SSU), 기뢰전대를 예하부대로 특수전전단 창설
  • 2009년 1월 1일 특수전여단으로 개편[21]
  • 2012년 2월 1일 특수전전단으로 다시 개편[22]
  • 2017년 2월 1일 폭발물처리대대 창설[23]
  • 2018년 9월 1일 해난구조전대(SSU), 구조함 등 특수전전단에 예속
  • 2020년 2월 1일 선견작전대대 창설[24]
  • 2023년 1월 1일 특수임무전대 창설
파일:UDT건립사.jpg
파일:FB_IMG_1573010550008.jpg
UDT 창설배경
Going Gets Tough, UDT Men Get Going
파일:FB_IMG_1573620248602.jpg}}} ||
아무리 힘들어도 UDT는 한다!
한국 UDT 생도의 미국 유학을 보도한 미국 신문의 헤드라인.
미국 UDT 훈련인 B-6 과정을 받는 한국 UDT 생도의 모습이 담긴 1955년의 신문 기사이다.
6·25 사변을 거치면서 미군으로부터 전달된 특수작전부대 편성과 운영은 그대로 해군특전부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52년 2월, 미 정찰정보대(RIU·Reconnaissance Intelligence Unit)가 해체되면서 한국 해군에 정찰정보대의 창설을 기획했다. 이에 한국 함대정보국(NID·Naval Intelligence District)은 1952년 11월, 미 해군특수전부대 UDT 양성 교육과정인 B-6 과정에 김성권 중위를 유학시켰다. 당시 UDT 창설 목적은 '북한에 대한 요인암살 및 첩보수집'이었다. 김중위에 이어 1953년과 1954년 미 해군 B-6과정에 유학한 11명으로 대한민국 해군 UDT가 탄생됐다. 1954년 5월 17일 미국 UDT의 편제와 동일하게 내륙정찰조, 해안정찰조, 수중정찰조, 폭파조의 4개 작전대로 수중파괴대를 구성했으며,[25] 이후 같은 해 6월 23일 한국함대 제2전단 제21전대(상륙전대) 예하 해안대(상륙지원대)에 수중파괴대(UDT)를 편성했다.[26] 1955년 5월 25일 한국함대 B-6 교육과정이 발족되었고 같은 해 11월 9일 제 1기 과정 26명을 수료시켜 대한민국 해군 UDT가 창설되었다.[27]
파일:11412150_991814634192502_1946821546812272151_o.jpg
1955년 미국 UDT 교육과정 수료사진

당시 해군 지휘부에서는 한국 UDT가 창설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시 미군의 전쟁수행 핵심전략인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암살,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28]를 수행하며 큰 활약을 보인 미 해군 UDT를 모체로 하여 창설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미 해군 UDT의 선진 교육을 통한 작전개념 정립과 차기 국내에서 배출해야 될 UDT 요원들의 교관 확보와 더불어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장비 획득이 우선시 되어 1954년과 1955년에 해군 내 국가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체력이 우수한 대원을 공개 모집, 미 8군 주도의 영어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교 3명과 사병 4명 총 7명을 최종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해군은 선발된 7명을 두 차례로 나누어 미 해군 UDT 과정(B-6)에 유학을 보냈고 장인표 대위 등 7명 전원이 소정의 미 해군 UDT 과정(B-6)을 수료하여 한국 해군 UDT가 탄생되었다.

이들은 미 해군 UDT 교육과정에서 습득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UDT 창설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STU)에서 UDT 모집을 공고하였다. 지원 자격에 별다른 조건은 없었고, 직별 상관 없이 신체 건강한 해군 장병이면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수료 후 3급 문관에 준하는 특별대우와 미국 유학기회 보장, 파격적인 주ㆍ부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라 해군 내에서는 보급품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고 식사 및 의복 지원도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해군에서 제시한 조건은 해군 내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모집공고 후 300여명의 사병들이 지원하여 지원자들은 팔굽혀펴기, 달리기 등 1차 체력검정을 실시하고 다음날 해안대 방파제 앞 해상에서 2차로 수영 및 잠영 테스트를 거쳐 최종 80명이 선발되었다.
파일:THE UDT.jpg
UDT 창설 요원인 장인표 대위 등 33명

1955년 8월 5일 UDT 1기생이 입교했고, 8월 8일 UDT 체조를 시작으로 훈련이 진행되었다. 해군의 최초 UDT 교육은 교육훈련에 필요한 각종 교재와 장비 등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력단련과 수영위주로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항무) 주관으로 시작되었다. 비록 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지만 미 해군 UDT 교육과정과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하여 체력, 지옥주 훈련(극기주), 구보, 수영, 잠수 등의 다양한 교육훈련을 13주간 실시하였고 특히 이때 실시한 잠수(Skin SCUBA) 교육은 국내 잠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어 한국 잠수 역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강한 훈련에 생도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 해군 UDT 과정을 수료한 7명의 교관들은 UDT의 혼과 열정을 심어주기 위해 미 해군 UDT 과정보다 더 강한 훈련으로 생도들을 교육하였고, 1955년 11월 9일 마침내 병조장 이만수 등 26명은 대한민국 UDT 1기로 배출되었다.

1955년 11월 9일 UDT 1기 수료식과 더불어 장인표[29] 대위를 초대 지휘관으로, 교관 7명과 UDT 1기생 26명 등 총 33명으로 한국함대 제2전단 해안대 사령으로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유일무이한 특수전부대인 수중파괴대(UDT)가 창설되었다.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파일:FB_IMG_1573490433099.jpg
1968년 UDT 14기 수료식
(해군, 육첩(HID), 해병대 등 120여명 입교, 7명 수료)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00109153521.jpg
1971년 UDT 17기 수료식 사진

3.1. 영도유격대 해상대와의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영도유격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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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해상 회장님.jpg
영도유격대 해상대 출신의 한인섭 영도부대 전우회장. 베레모엔 한국 UDT 철제 휘장이 붙어 있다.
영도유격대 해상대는 비공식적인 최초의 한국 UDT이자, 공식 한국 UDT의 산파 역할을 하였다.

영도유격대는 한국 전쟁 당시 부산 영도에 본부와 훈련장을 두고 강원도 일대와 함경남·북도까지 공중과 해상으로 침투하여 활동한 유격대이다. 대원들은 동해안 지역에서 활동했으므로 '동해지구 반공 의병대'라고도 불렸다. 이 부대는 휴전 후에도 한 동안 당시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 어느 기관 소속이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부대장이 국군 현역 대위였으므로 국군 통제부대로 파악되는 경우도 있었고, 초창기 부대 창설 과정에서 미국 측을 도왔던 윤치영은 물론, 부대장마저 극동군사령부 소속으로 알 정도로 전쟁 당시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인지 몰랐다. 그러나 이 부대는 미 CIA 산하 유격대였다.

영도유격대는 동해안 북부지역을 작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함경남도와 북도, 강원도 등 동해 3도 출신을 주로 모집하였으나, 부산이나 거제도 등지로 피난 온 서울, 평안도 등 다른 지역 출신도 있었다. 월남 청년들 가운데, 대개 가족이 없는 경우를 대원으로 받아들였다. 가족이 있을 경우, 부양할 의무를 고려하여 원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해상대의 창설배경은 1951년중 대원을 대규모로 침투시켜 장기간 작전을 펼치도록 했으나 연락이 두절된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귀환율이 낮아, 작전 방침을 바꾸어 해안선 근처에서 단기간의 소규모 침투작전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1951년 6월경 해상대가 창설되었다.
해상대는 오박을 대장으로 대원 10인에 불과한 소부대로 출발, 기존 게릴라 대원과 해상대 교육대에서 엄선한 대원들로 구성하여 58명까지 늘어났다.

모든 유격훈련 과정을 마친 영도유격대원들 가운데 수영에 능숙하고 배를 잘 탈 수 있는 인원들을 해상대원으로 선발하여 미국 UDT의 조지 애치슨 대위(George Atcheson)와 조 파그넬라 상사(James C. "Joe" Pagnella)가 그들이 받았던 16주의 미국 UDT 과정을 이들에게 전수했다. 이는 정규 미국 UDT 과정에 입교한 사례는 아니지만 한국인이 받은 최초의 비공식 UDT 교육이다. 영도유격대 해상대 출신의 한인섭 영도부대 전우회장은 후에 “한국 UDT 정식 창설 시 교관으로 영도유격대 해상대 출신들이 지원나가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4. 상징

4.1. 모토

불가능은 없다

- 해군 특수전전단 표어(表語)
나는 명예와 긍지 속에 필승의 신념을 다지는 해군특전용사로서

하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
하나. 명령에 복종하고 특공작전에 목숨을 건다
하나. 전우애를 바탕으로 부대 단결에 앞장선다
하나. 승리 앞에 겸손하며 패배를 모른다
하나. 강자에게 당당하고 약자를 보호한다

- 특전용사의 신조(信條)

4.2. 부대마크·휘장

파일:해군특수전전단_마크.png
해군 특수전전단 부대마크
<colbgcolor=#001B69> 독수리 강인한 하늘의 포식자
공중침투를 하는 특수작전을 상징
앵커 바다를 무대 삼아 활동하는 해군의 일원임을 상징
기뢰 기뢰, 폭발물 처리 임무 수행
· 삼지창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전사들의 무기를 상징
파일:UDT_특수전휘장1.png
특수전 자격 휘장(정복)
특수전 자격 휘장(전투복)
===# 부대가 #===
우리는 사나이다 강철의 사나이
나라와 겨레 위해 바친 이 목숨
믿음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나이
나가자 저 바다 우리의 고향
아아 사나이 뭉친 UDT
이름도 남아다운 수중파괴대

우리는 사나이다 의리의 사나이
겨례의 안녕 위해 바친 이 목숨
사랑에 약해 정에 우는 사나이
나가자 저 바다 우리의 낙원
아아 사나이 뭉친 UDT
이름도 남아다운 수중파괴대
사나이 UDT[30]
어~머니 아~버지~ 날곱게 길~러~서
UDT에~ 보내려~고 이자식길렀~습니까
악마같~은 훈련~에도 이몸은 살아왔건만
보트~메고 훈련~하~는 올챙이 용~사~라~오

심술궂은 교관놈들 한테 기합도 많이 받았소
배곱프고 졸리워~서 난정말 못살~겠어요
악마같~은 지옥~주도 이몸은 살아왔건만
20~주만 지나고나~면 개구리용~사라~오

- UDT 지옥주가
내고향 처녀들은 나를 반겨 주는데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가고싶은 내고향
에헤야 가다못가면 데헤야 쉬어나가세
베르베르 치마저고리 사가지고 오세요

강남갔던 제비는 다시돌아 오는데
한번갔던 우리님은 아니돌아 오시네
에헤야 가다못가면 데헤야 쉬어나가세
말썽많은 이세상을 누굴믿고 사나요

앞집에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에 총각은 목을메러 간다
에헤야 가다못가면 데헤야 쉬어나가세
호박같은 이세상을 둥글둥글 삽시다
UDT 1기가[31]
양말도 없는 몸이 내복은 있을쏘냐
떨어진 슈트 입고 동해, 서해, 남해로다
바닷물만 철썩철썩 UDT 울리는데
정든친구 왜버렸나 UDT 신세
UDT 8기가
수중 훈련 6개월의 UDT 용사
해마를 새겨 달고서 뽐내는 UDT
체조 수영에는 투덜대지만
영자 식사에는 용감한 UDT
고무보트 울러 메고서 파도를 헤쳐 나아가면
상어떼도 기뻐 날뛰고 산호초 춤춘다

TNT C-3를 가슴에 안고
부수고 파괴하는 용감한 UDT
헤이 브라보 UDT 후야!
UDT 13기가[32]
사나이 대장부 가는 길
두 길이 있을쏘냐
UDT 용사들 가는 길
오직 한 길 뿐이다
하늘과 바다와 저 푸른 강토도
UDT 아니면 누가 지키랴
조국에 바친 몸 수중파괴대
UDT 24기가
돌진하자 UDT 거센파도 타고서
우리들은 사나이 피를 나눈 사나이 UDT
해마떼 가는곳에!(해마떼 가는곳에!)
나설자 누구냐!(나설자 누구냐!)
UDT 가는곳에!(UDT 가는곳에!)
싸울자 누구냐!(싸울자 누구냐!)

악마같은 UDT 깡다구에 UDT
우리들은 사나이 무쇠같은 사나이 UDT
해마떼 가는곳에!(해마떼 가는곳에!)
나설자 누구냐!(나설자 누구냐!)
UDT 가는곳에!(UDT 가는곳에!)
싸울자 누구냐!(싸울자 누구냐!)
UDT 25기가
야! 불사의!(불사의!) 해마떼!(해마떼!)
수중!(수중!) 파괴대!(파괴대!)

사나이의 의리 속에 굳게 뭉친 용사들
악마 같은 훈련에도 이겨 왔노라!
강철 같은 사나이가 모인 UDT
젊음 바쳐 내 조국 위해 싸워 나가자. 가자!
가자! 파도뚫고, 가자! 적진으로 가자!
선봉부대 수중파괴대
UDT 28기가[33]
보아라 용맹스러운
불굴의 사나이다
투혼의 드높은 의지
통일을 이룩하리
성난파도 힘차게 헤쳐가는 헤마떼
바다의 쾌남 UDT
지옥의 사자 수중파괴대 차!
피끓는 젊음의 정열
비켜라 물러서라
UDT 스쳐가는 곳
오직 승리뿐
UDT 30기가
사나이 불 같은 젊음을
푸른 바다에 바치고
장부의 웅지, 조국의 통일, 민족의 평화를 위해
보트메고 황혼을 등진 불사의 UDT
어둠을 뚫고! 파도를 넘어!
적진을 돌파하리
한번 품은 큰 뜻을 굳게 지키며
지옥 같은 훈련을, 이겨온 UDT
UDT 38기가
우리가 함께 쏟아부었던 땀과 눈물들
서로를 채찍질하며 몰아쉬던 턱숨들
거친 파도와 싸워나가는 우리는 무적 해마떼
세계 최강 사나이들 지옥의 용사
나가자 거친 바다로 우리는 무적 해마떼
대한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피땀 흘린다
오늘도 피땀 흘린다
UDT 46기가
지옥 같은 훈련과 끝없는 도전 속에
사나이 UDT는 바닷속을 헤맨다
고무보트 울러매고 성난 파도 넘고 넘어
적진으로 돌진한다
해마떼가 가는 길에 불가능이 왠 말이냐
우리에겐 승리뿐이다
사랑하는 부모형제 조국과 겨레 지키려
이 한목숨 다 바쳤다 세계 최강 UDT
UDT 53기가
야아! 길을 비켜라 UDT 나가신다!
아악! 소릴 높여라 우리가 UDT다!
패!배는 없다 백전백승 오직 승!리!뿐!(승!리!뿐!)
독품은 사나이 뜻을 뭉친 우린 U!D!T!(U!D!T!)
노래하세!(노래하세!) 헤쳐가세!(헤쳐가세!)
성난 파도 넘어! 피를 뿌릴 순간을 기다려왔다!
차.차디찬 파도속에! 치가 떨려도!
어금니 꽉 깨물고! 헤쳐 나가는 악바리 용사들!
UDT 60기가
악! 가자 62기!(62기!)
우리들은 지옥의 사나이 UDT 용사!
자! 보트메고 파도를 뚫고!
자유대한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피똥싸며 훈련을 한다!
아야!(아야!) 후야!(후야!)
악바리와!(악바리와!) 깡따구로!(깡따구로!)
오늘도 살아간다!
우리가 바로 작살나는 UDT SEAL!
UDT 62기가
아아!(아아!) 나가자!(나가자!) 바다로!(바다로!)
우리가 UDT다! 악! 보아라!(보아라!)
당당한 이 모습! 그 누가 우리를 막을쏘냐! 악!
길을 비켜라! 지옥의 용사! 63기가 나가신다!
악!(악!) 악!(악!) 악!(악!) 후야!
UDT 63기가
우리는 잘 웃지도 속삭이지도 않지만
보트에 맺은 정은 갯벌의 향기에 비기리오
깎아지는 수직의 암초도 무서운 파도도
UDT 앞길을 가로막지 못한다네
군함의 휘항한 불빛도 아가씨들의 웃음도 좋지만
UDT 오늘도 바다로 간다네
UDT 64기가
드넓은 가슴! 새까만 얼굴!
내가 바로 사나이란다
자장가 대신! 지옥주를 부르는!
내가 바로 UDT란다

악에 받친 나의 목소리
고향 땅에 울려 퍼지리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
사랑하는 님은 기다려

드넓은 가슴! 새까만 얼굴!
내가 바로 사나이란다
자장가 대신! 지옥주를 부르는!
내가 바로 UDT란다
UDT 65기가[34]
밤바다에 낭만없이 보트매고 우리는있지
빡빡머리 까만피부 누가 뭐라 해도
제일 잘 났지
사나이 청춘을 조국에 바쳤다
짠내 나는 올챙이들 개구리 된다네
불같은 젊음을 바다에 바치고
가슴팍에 휘장달고 당차게 간다네 HOOYA!
UDT 66기가
악바리의 사나이들 가슴팍에 휘장 달고서
악마 같은 파도 뚫고 67기 나가신다
밤바다를 무대삼아 달빛을 조명으로
고무보트 울러메고 지옥을 헤쳐나간다
SEa. Air.(악!) Land.(악!) 우린
불가능 따윈 모르는
회색 베레 해마복에
그 이름은 UDT란다
우리가 UDT란다!
Hooya!
UDT 67기가
헤이 육군! 배낭 메는 육군!
느그는 배낭 메고 따라와! 우리는 UDT의 아들들!
헤이 해병대! 총알받이 해병대!
느그도 배낭 메고 따라와! 우리는 UDT의 아들들!
헤이 공군! 날지도 못하는 공군!
느그도 배낭 메고 따라와! 우리는 UDT의 아들들!
헤이 UDT! 짠내 나는 UDT!
느그는 물 처먹고 따라와! 우리는 특전사의 아들들!
헤이 특전사! 탄피나 훔치는 특전사![35]
느그는 탄피 들고 따라와! 우리는 UDT의 아들들!
우리는 UDT의 아들들! Hooya!
테크 2기가[36][37]

5. 특징

파일:img1.daumcdn1.jpg
림팩 훈련에 참가한 UDT/SEAL 대원들

과거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기본적인 팀의 편제는 밑과 같다. 팀은 7인 1개조로 구성된다.

* PT(Point Man): 척후
* PL(Platoon Leader): 팀장
* RM(Radio Man): 통신수 - 통신장비 휴대
* AW(Automatic Weapon): 자동병기 사수 - 기관총 휴대
* GR(Grenadier): 투척수 - 유탄발사기 휴대
* APL(Assistant Platoon Leader): 부팀장
* RS(Rear Security): 후방경계

또한 그 유명한 개구리 뜀뛰기식 퇴출을 할 경우에도 위와 같은 작전 대열 순으로 한다. 미합중국 해군네이비 씰에서는 '필링' 퇴출 전술이라고 부른다.[38]
UDT 대원들의 퇴출 시범
1. 적들을 향해 일렬횡대로 늘어서고, 한쪽은 팀장 다른 쪽은 부팀장이 지휘하며 팀장과 부팀장 팀이 서로 '엄호사격→퇴출'을 반복한다. 다른 팀원들은 퇴출하는 동안 화력을 유지해준다. 퇴출하면서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
2. 퇴출 중인 대원이 퇴출 지점에 다다르면 대열의 끝단에 위치한 팀원이 다른 6인의 엄호를 받으며 대열의 반대쪽 끝으로 움직여 대열을 유지하며 질서 정연하게 퇴출한다. 퇴출하면서 엄호사격 중인 바로 다음 팀원의 어깨를 쳐서 자신의 퇴출을 알린 후 빠지는 것이 포인트.

미 해군 SEAL은 미국의 지속적인 전쟁 속에서 피를 흘려가며 전술을 개선, 발전시키고 있다. 해당 전술의 경우 비교적 구식의 전술이라고 볼 수 있으며, 미 해군 SEAL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는 한국 UDT/SEAL 또한 대외적 시범 및 팀전술 입문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다만, UDT/SEAL이라고 해서 꼭 네이비 씰의 전술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상황별 작전 절차에 따라선 영국 SAS의 전술도 도입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전술이라는 것은 상황이나 운용장비와 같은 부분에서도 영향을 받으며 특히 실전을 통해, 실전이 없다면 실전을 겪은 부대와 교류를 통해 계속 접목, 도태, 변형하며 발전한다.[39]
청해부대 UDT/SEAL 요원의 무사트 나이프 파이팅 방어술

대한민국 국군 내 가장 개방적이며, 선진화된 부대로 꼽힌다.[40] 그도 그럴 것이 접적 해역의 공작원과 아덴만의 소말리아 해적 등을 상대하면서 어찌됐든 실제 임무 상황을 계속 겪는 부대이고 국내, 국외 파병, 파견 해역에서 미 해군 SEAL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육해공군 특수부대들과 수시로 교류가 되기 때문에 장비, 전술 등이 동급으로 상향 평준화 된 경향이 있다. 무장도 제식병기인 K시리즈 병기와 별개로 특수임무대대는 주력병기를 MP5계열에서 HK416로 교체했다. 특히 미 해군 SEAL처럼 SOP[41]를 팀 단위로 적용하고 거기 맞춰 장비를 착용한다는 개념이 이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에도 미 네이비 씰, 그린베레와 같은 미 특수부대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해외 군사고문단 파병을 통해 다른 나라의 특수부대들과 꾸준히 교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국군 내 유일한 전투파병 부대인 청해부대에 소속되어 전투파병 임무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대테러임무의 경우, 해군 특수전전단 특수임무대대(CT)는 제707특수임무단과 같은 '대테러특공대'[42]로 분류되나, 특전전대는 해병대 특수수색대대와 같은 '대테러특수임무대'[43]로 분류된다(참고). 그러나 다른 대테러특공대에서 전술자료를 얻어가거나 UDT대원이 다른 대테러특수임무대로 파견을 나가 대테러교육을 하는 등의 위치로 한국군 내에서는 자리잡고 있다. 예비역들의 활동만봐도 사법기관 대테러특공대나 군 대테러특수임무대에 전술교육을 다니고 있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다.# #

6. 교육과정과 배경 역사

UDT 교육과정을 과거에는 'B-6 교육'이라고 불렀고, 현재는 '해군 특수전 초급반 과정'이라고 부른다.

병·부사관은 이 훈련을 수료해야만 특전(UDT)직별이 부여된다.[44]

6.1. 신분별 특수전 초급과정

신분별 과정 기초 훈련 과정 {{{#ffcb08 특수전 기본 과정[45]지옥주이다.]}}} 특수전 후반기 과정 공수 교육
과정[46] 신병 기초군사훈련 6주 특수전 기본 과정 6주 특수전 후반기 병 과정 5주 기본 공수 교육 3주
부사관 과정 부사관 기초군사훈련 4주[47] 특수전 기본 과정 6주[48] 특수전 부사관 초급반 과정 18주[49] 기본 공수 교육 3주
장교 과정 -[50] 특수전 기본 과정 6주[51] 특수전 장교 초급반 과정 18주[A] 기본 공수 교육 3주

6.1.1. 부사관 교육과정의 변천

초창기에는 해군 현역 장병만을 대상으로 모집하였으나 1988년 이후부터는 병, 부사관의 경우 민간 모병을 병행하였고 현재는 민간 모병을 통한 입대자가 대부분이다.[58] 다른 특수부대에 비하여 재복무를 희망하는 인원들의 지원율이 높은 편이다. 재복무 지원자가 많기 때문에 20대 중반 지원자들이 많다.[59]

연 1회 교육을 시행해 오다가 2007년 53기부터 연 2회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60]

과거에는 민간부사관 지원자[61]들은 처음부터 UDT 교육과정으로 입대하여 중간에 하사로 임관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임관 전에 퇴교하면 아예 귀가 조치되면서 군생활이 초기화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민간부사관 지원자들도 부사관교육대대에서 모든 교육을 이수 후 하사로 임관시켜 실무배치하고, 실무생활을 하다 추후 UDT 교육을 받는것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니 UDT 교육 수료 전까지는 수병들보다도 더 잉여 자원이 되어버렸다. 해군의 특성상 수병들도 후반기교육을 받는데, 민간부사관은 기초교육만 딱 받고 실무로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역들 뿐 아니라 타군에서도 지원이 가능한 교육과정에 민간부사관들만을 위한 과정만을 따로 만들수도 없었던 노릇이었다.

물론 현역 지원자라면 해당사항이 없었다. 장교, 부사관은 교육 중 퇴교하면 원대복귀 시키고, 수병도 다른 직별로 재분류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장교의 경우 초창기에는 초급반에 장교과정이 없어서 장교로 UDT에 들어오려면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야 했었다. 이처럼 한국 UDT 초급반 교육 대신 미국 UDT 교육을 받은 인원의 기수를 '특차'라고 한다. 이후 1972년 18기부터 장교 인원도 초급반 교육에 입교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초창기엔 교육 기간이 3개월이었고, 1960년대엔 4~5개월 정도였는데 1970년대에 6개월(24주)로 늘어났고, 이게 쭉 유지돼서 2006년까지 계속 24주였다. 그 후론 2007년~2010년 20주, 2011년 26주, 2012년 20주, 2013년~2017년 24주, 2018년 16주, 2019년 이후 24주로 해마다 교육기간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2017년
2017년에 모집하여 2018년 3월에 입영한 259기 해군부사관 부터 경우 잠시 동안 교육체계가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었다. 현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당 해에만 실행했던 것으로 현재 특전부사관에 지원하고자 하는 인원은 해당 내용을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1. 이제까진 해군교육사령부 예하의 기초군사교육단(구 해군 기초교)에서 임시입영 1주+부사관후보생 양성 교육 8주를 받아서 하사로 임관한 뒤 특수전전단으로 와서 UDT 교육(특수전 초급반 과정) 24주를 받았었다.

그런데 2018년 교육부터는 특부후생 양성 교육을 기존의 기초군사교육단이 아닌 특수전전단이 직접 맡아서 처음부터 특수전전단으로 입영을 하게 되었으며, 지옥주를 포함한 특수전 초급반 과정의 초반부 교육 상당 부분을 부사관후보생 양성 교육과정에다가 옮기고, 전체 교육과정이 '임시입영 1주+부사관후보생 양성 교육 12주 → 하사 임관 → 특수전 초급반 과정 16주'로 개편되었다. 즉 과거 방식으로 회귀한 셈이다.
2. 이 때, 임관 전 퇴소될 경우 귀가조치되며 임관 후 퇴소될 경우 특전단 내에서 남는다.
3. 실기 및 면접 등의 선발 일정은 비 특전계열 해군부사관과 다르게 진행한다.
4. 교육과정이 연 2회에서 연 3회로 늘어난다.

UDT/SEAL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연 3회차의 교육기수인 2018년 초급반 64-3기(해군 부사관 261기)는 41명이 입교하여 수료생 11명을 배출하였다. 연 3회 교육은 폐지되어 64-3기는 한 해에 세번째로 시행된 교육을 받은 기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64-3기 수료식

2019년 ~ 2023년
현재의 교육과정은 과거 교육과정의 문제점들을 보완한 방법이다. 퇴교를 하더라도 의무복무 대상자의 경우 해군 병사복무나 다른 병과로 변경하여 근무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부사관 교육대대에서는 기초군인화교육과 임관식만 하게 함으로써 잉여자원이 되는것도 방지했다.

1. 연 2회 모집하여 교육한다.
2. 해군교육사령부 해군기초군사교육단 부사관교육대대로 입영하여 1~4주차까지 기초훈련인 군인화 교육을 받는다.[62]
3. 5~10주차까지 해군 특수전전단 특수전교육훈련대대에서 지옥주를 포함한 특수전 기본과정을 받는다.[63]
4. 특수전 기본과정을 마친 후보생은 11주차에 다시 해군기초군사교육단 부사관교육대대로 돌아와서 다른 직별 후보생들과 함께 임관식을 준비한다.[64]
5. 하사 임관 후 특수전교육훈련대대에서 18주간 특수전 초급반 교육을 받는다.[65]

2024년
최근들어 일반 부사관들의 지원율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특전단 실무에 티오가 꽉찬 관계로[66] 이제 더이상 초급반에서 퇴교하면 유급하는 제도가 없어지고 다른 직별로 전환되는걸로 바뀌었다. 따라서 70-1기 부터는 다음과 같이 바뀐다.

1~5번까지는 2019~2023년 교육 과정과 동일하다.

6. 유급제도가 없어지면서 하사 임관 후에 퇴교하면 타 직별로 전환하여 남은 기간을 복무해야한다. 따라서 본인이 초급반을 수료할 수 있는 몸 상태인지 수시로 체크를 해봐야 한다. 지옥주 이후 퇴교하는 이유중의 절대다수가 부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지옥주 이후 버틸 자신이 없는데 다른 특수부대에서라도 복무하고 싶다면 하사 임관 이전 퇴교를 신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임관 이후에는 귀가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타 직별로 전환하여 복무하더라도 복무 기간 중에 실무에서 다시 UDT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은 하나, 앞에 받았던 교육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통의 지원자들과 똑같이 특수전 기본 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즉 지옥주를 다시 견뎌야 되며, 남들은 평생 한번만 받는것을 최소 두번이상 받게되는 셈이다.

6.2. 훈련 여담

지옥주 이후에 퇴교한 인원들은 부상 문제가 대부분이고, 이들 중 상당수가 재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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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명중 7명이 수료한 UDT전설의 기수중 하나인 14기 수료생의 인천(UDU)에서의 군생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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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료생을 비롯하여 퇴교생, 단기교육과정 이수자들을 해군 정보부대(현재 UDU로 불림)로 보냈다. 김신조 1.21사건 이후 퇴교생과 단기교육과정 이수자들을 대거 보내어 1968년 즈음의 UDU엔 수료생보다 퇴교생과 단기교육과정 이수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사진은 해군 정보부대원들이 UDT 해마 상징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1955년 1기부터 1970년 16기까지 모두 395명이 UDT 교육을 수료했다. 이 중 해군이 아닌 타군[67]에서 온 위탁생들이 63명이었다. 나머지 해군 소속으로 UDT 교육을 마친 332명 중 126명은 훈련 후 바로 해군 첩보부대로 전속됐다. 1971년 UDT 교관단이 해군 첩보부대에 발령받아 UDU 자체 교육대를 신설했는데, UDU 대원들을 별도로 선발하기 시작한 1971년 그 이전 기수인 UDT 1기에서 16기까지의 대원은 훈련 종료 뒤 즉시 북파공작에 투입되거나, 2~3년 간격을 두고 해군 첩보대 전속 명령을 받고 북파공작에 투입됐다. 반대로 UDU에서 교육수료 후 UDT에서 정년퇴직한 사례도 있다. 첩보부대에 자체적인 요원 양성 교육이 생긴건 71년인데 71년에 수료한 UDU 기수를 UDU 1기라고 하지 않고 UDT 기수를 그대로 물려받아 UDU 17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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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UDU에 UDT 교관단이 전출되어 UDU에서 자체 특수요원 양성이 시작된 이래, UDU에서 자체 B-6교육을 받고 복무하다가 UDT로 전출을 가서 복무한 인물의 진술서이다.
파일:FB_IMG_1575335523092.jpg
1960년 UDT 6기 수료식 후 찍은 사진이다. UDT 6기는 해군 14명, 육첩(HID) 19명이 수료했는데 해군 수료자들은 전원 해군 정보부대 해상정찰대(현 UDU)에 인사발령이 났으며, 후에 2명이 UDT로 복귀하여 UDT에서 전역한다.
파일:Point Blur_Nov062019_005123.jpg
초대 UDU 동지회 회장(UDT 4기 조OO)의 증언에 의하면 UDT에서 복무 중 당시 UDU 부대장을 하고 있던 UDT 창설요원이자 UDT 부대장이었던 장OO이 직접 불러서 UDU로 갔다고 한다.

6.3. 지옥주(Hell Week)

파일:지옥주.jpg
지옥주훈련중 갯벌에서의 모습
미 해군 NCDU의 선발훈련 중 극한의 1주일 교육이 바로 현재 Navy SEAL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유명한 지옥주(Hell Week)과정이다.[68] 이는 미군 네이비 씰의 지옥주를 완벽하게 복사해온 것과 그 난이도로 악명이 높다.[69]

이 지옥주 과정은 NCDU가 해체되고 부대원들이 미 해군 UDT로 편입됨에 따라 UDT로 전수됐고, UDT의 후신인 Navy SEAL의 BUD/S 교육에도 핵심과정으로 쭉 이어져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한 부대창설 준비단계부터 미 해군 UDT로 유학을 보내던 한국 UDT의 교육과정에 그대로 도입이 되었다. 한국 UDT에 육군 특전사와 해병대 수색대가 위탁교육을 보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육군 특전사의 해척조 교육, 해병대 수색대의 수색 교육에도 지옥주 과정이 전파가 되었다. 해군 첩보부대의 경우는 1970년까지 별도의 교육과정이 없었고 작전요원들은 UDT 요원들이었다가 1971년부터 교육대를 창설하며 UDT 교관들을 전입 받아 당시의 UDT 교육과정을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해군 첩보부대 또한 교육과정에 지옥주가 포함되어 있다.

24주 훈련기간 중 5주차에 지옥주가 있는 이유.

6.4. 위탁교육

해군 교육생 외에도 타군 위탁교육생도 참가하는데, 육군 특전사, 해병수색대 간부, 공군 SARTCCT 대원들이 그들이다.[70] 또한 대통령경호처, 국가정보원[71] 7급 공채 신입 연수 기간 중 한 달간 이곳에서 위탁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경까지는 육군 첩보부대[72]공군 첩보부대에서도 위탁교육을 왔고, 현재는 방글라데시 해군 특전대원들도 위탁교육을 오고 있다.[73] 방글라데시 위탁교육생들은 B-X번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위탁교육생 특성상 웬만하면 수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나(개인의 명예, 본국 복귀 시 인사고과 등등) UDT 특유의 혹독한 교육, 추위에 대한 부적응으로 수료율이 그리 높지는 않다.[74] 한주호 준위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방글라데시 해군 장교가 저체온증 쇼크에 빠져 입수를 거부하고 결국 퇴교 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전사, 해병수색대, 공군 특수부대, 방글라데시 해군 장교, 대한민국 해군 장교 및 부사관, 수병들이 함께 섞여 교육을 받게 되고 수료 시 UDT/SEAL 휘장을 부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간혹 특전사 인원중 가슴 상단에 UDT 휘장을 부착한 인원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UDT 교육을 수료 완료한 특전사 위탁교육생이다.[75]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모두 UDT 기수 인정을 받는다. 말 그대로 특전사이지만 UDT이고 방글라데시 해군이지만 UDT인 것이다. 특히 이들 위탁교육생들은 이미 자신들의 부대에서 훈련으로 단련된 사람들이라 교육기간에 민간부사관 UDT 지원자 훈련생들의 리더, 멘토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도 사람인지라 체력의 한계, 공포심에 부딪힌다. 수료식 날 특전사 베레모, 해병수색대 베레모, 공군 특수부대의 붉은 베레모를 쓰고 방글라데시 해군 정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사나이 UDT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전역 후 UDT 동기 모임에 이들 위탁교육생들도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파일:UDT9.jpg
1963년 UDT 9기 교육에는 해군 외 중앙정보부 1명, 공군 첩보부대 3명이 입교하였다. 조OO 대위(UDT 창설요원)가 교육대장을 맡고, 신OO 교관 등으로 구성된 UDT(B-6) 교육은 혹독하게 실시되었으며 공군 첩보부대 1명은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퇴교 조치 되었다.
나머지 공군 첩보부대(안OO, 김OO) 2명도 지옥주를 마치고 퇴교 조치 되었으나, 공군 첩보부대 본부 협조 아래 UDT 교관단과 함께 UDT 9기 훈련 종료 시까지 참관만 하게 된 것이다. 공군 첩보부대원(김OO 중사)은 실미도 684 부대 교관단으로 이동했고, 중앙정보부 1명은 UDT 교육 중 11주 교육만 이수하고 바로 중앙정보부로 복귀하게 된다. UDT 9기 수료 사진에는 공군 첩보부대 2명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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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이 육군 첩보부대 소속으로 UDT 6기 교육과정에 위탁되어 수료한 인물. UDT 6기 해군 수료자들은 수료와 동시에 전원 해군 첩보부대로 발령받아 임무를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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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684 부대 간부들 사진
앞줄 맨 오른쪽이 UDT 11기 과정을 수료한 도OO 소대장
파일:UDT5기 김OO1.jpg
파일:udt5기 김00약력.jpg
UDT 5기 김치준의 경우, 해군 UDT에서 복무 중 해병 장교로 신분 전환하였고 월남전 파병도 다녀왔다. 해병수색대에 발령받아서 가보니 당시 해병수색대에는 아직 제대로 된 교육훈련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해군 UDT 교육을 본떠서 단축시킨 해병 수색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시작했다. 이렇게 1969년부터 해병 수색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UDT 5기 김치준은 노환으로 2021년 4월 7일 별세.
파일:UDT스쿠버교육특전사해병수색.jpg
1973년 육군 특전사, 해병 수색대원을 대상으로 한 UDT 주관 단기 스쿠버 교육 사진이다.

극기훈련을 통해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의 체력과 독한 정신력을 강화시키고자 5일간 잠 안 자고 굴리는 UDT의 지옥주 훈련에 선수들을 참여시킨 적이 있었다.[76][77] # 여자 선수들은 끝까지 훈련을 받았으나 남자 선수들은 코치진들이 자기들의 동의도 없이 이 무지막지한 코스에 강제로 집어넣어 버렸다고 반발하며 모두 도중에 퇴교해버렸다고 한다. # 항명한 남자 선수들에게는 태극마크 박탈과 선수촌 퇴촌조치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78] #

6.5. 교육 문화

해군 특수전 기본 과정은 쉽게 말해 미합중국 해군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SEa, Air, and Land : 기초 수중파괴/전천후 특수타격)의 한국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79] 초창기 한국 UDT 간부들이 미국에서 위탁교육을 받아온 뒤에 미군의 오리지널 훈련과정에 각종 혹독한 얼차려 및 인간을 원초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사항들을 더 추가해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식사 전에 턱걸이를 실시하여 정해진 개수를 못 채우면 철봉 위에 매달려서 식사해야 된다든가, 훈련생도는 "예!" 대신 "악!"이라고 대답해야 한다든가, 밤에 묘지를 가거나 심지어 시체와 관련된 엽기적인 극한체험을신원불명 부랑자 등의 시체의 살점 일부를 먹거나 입에 물게 하는 등 하게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물론 시체 관련 체험은 나중에 없어졌는데, 사실 당연히 진짜 시체의 살점은 아니고 교육생들의 깡다구 상승 목적으로 동물 고기를 가지고 속인 것일 뿐이었다고 한다. 이런 특유의 가혹한 훈련 문화 중 일부는 위탁교육을 들어온 타군 교육생들에 의해 타 부대들에 도입되기도 했다. BUD/S 과정을 수료한 이근 대위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 교육과정과 한국 교육과정의 강도는 육체적으로 비슷하나 한국 교육과정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하였다.

교관들은 교육생을 수료시키기 위한 인원이 아니며 퇴교시킬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혹독하다. 부대 특성상 현재의 교관과 교육생이 추후 같은 팀으로 작전에 임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준 미달자는 가차 없이 퇴교시키는 분위기이다.[80]
UDT 20기 출신의 영상 수기이다. 돼지라 지칭하는 부분이나 인분으로 양치를 하는 등 당시의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영상 말미에 해군 31명, 해병 4명이 수료했다는 글이 나온다. MIU가 해체되어 1명이 해병수색대로 전속되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료한 해병 4명 중 3명이 수색, 1명이 MIU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매 기수마다 만들어지는 사가(비공식 군가)인 UDT 기수가(期數歌)들 중 일부는 타군 부대에도 전파되었다. 예를 들어 지금도 불리는 '해병수색대가'와 '특전사 해척조 사가'의 원조는 해군 UDT 13기 기수가이다. '고무보트 울러 메고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 상어 떼도 기뻐 날뛰고 산호초 춤춘다…' 이런 유명한 가사가 들어있다. 당시 히트했던 봉봉 사중창단의 '육군 김일병'이라는 노래를 개사하여 UDT 13기 기수가로 만들었던 것인데, UDT 기수가들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아 위탁교육생들에 의해 타군 부대로 전파된 것이다.

이 교육과정 중에는 132시간(5.5일) 동안 한숨도 못 자고 밤낮없이 훈련을 강행하는 지옥주(Hell Week)가 포함되어 있다. 이 지옥주 과정은 미 해군 SEAL의 전신인 미 해군 UDT 부대의 선발 교육 중에 있던 지옥주 과정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국 해군 UDT 교육에도 그대로 도입되었고, 한국 UDT 교육에 위탁 온 타군 교육생들에 의해 각군 특수부대의 수중침투 교육과정(해병 수색 교육, 특전사 해척조 교육)에도 전파되었다. UDU B-6 과정의 경우 UDT 교관단이 통째로 UDU로 전출을 가서 UDU 교육대 창설을 했으니 앞서 열거된 타군과는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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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U 자체교육 1기(UDU 17기)의 UDT 출신 교관진

교육과정이 언론매체에 다큐멘터리 등으로 여러 차례 공개된 적이 있는데, 특히 2002년 UDT/SEAL 48기 교육생들의 훈련과정이 KBS 수요기획에서 2부작(2002년 8월 7일 EP.68 '지옥에서 살아오라', 2002년 10월 30일 EP.79 '불사조로 거듭나다')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영되었다.[81] 이 프로그램에서는 천안함 인양 작전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가 교육훈련대 교육훈련반장으로 훈련시키는 장면이 등장했다. 순직 후 KTV에서 2010년 4월 3일, '한주호 준위! 당신은 진정한 군인입니다'라는 특집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되었다.

6.6. 수료율

UDT/SEAL의 수료율은 통상 평균 40% 미만으로 언론에 자주 보도되며, 특이 케이스인 UDT 14기(120여 명 입교하여 7명 수료)를 제외하고 기사에 따라선 20%, 30%라는 내용의 기사와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의 수기를 다수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수기로 해병수색대 김00 소령의 수기를 들 수가 있다. 김00 소령이 본인의 블로그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김00 소령은 해병대 수색대에 부임한 후 수색교육 7기를 수료하고 이듬해 해군 UDT 18기 과정에 입교하여 위탁교육을 수료하였는데 UDT 18기 당시 해군, 해병대를 비롯하여 육군 첩보부대, 공군 첩보부대에서 입교하여 총 148명 입교하였고 수료자는 31명이라고 밝혔다. 이 부분에서는 UDT 18기 동기생인 육군 첩보부대장을 역임한 박복규 예비역 대령의 회고와 다소 차이가 있다. 박복규 예비역 대령의 기억에 의하면 130여 명 입교하였으며 육군 첩보에서는 6명, 해병 수색에서는 11명이 입교하여 육군 첩보에서는 박복규 대령 혼자 수료하고 해병 수색에서는 3명이 수료하였다고 기억하고 있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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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T 18기 교육 중 사진이며 앞에 걷고 있는 인물은 당시 교육대장이었던 조광현 예비역 대령이다. UDT 18기는 강원도 양양 기사문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130여 명 입교하여 해군 30명, 육군 첩보 1명, 해병 수색 3명이 수료하였다.[83]

2010년 5월 25일. 수료율이 20% 안팎이라는 조광현 대령의 신동아 기사.
2018년 5월 28일. 초급반 수료율은 평균 30~40%에 불과할 정도로 '바늘구멍'이다. 탈락자 중 50%가 3주 이내에 고배를 마시며, 나머지 50%는'지옥주'기간에 짐을 싼다. '지옥주를 통과하는 인원은 최초 지원자 중 25%에 불과하다.'라는 내용의 국방일보 기사.

다만 2010년~ 2012년 수료율의 경우 78.4%라는 상당히 충격적인 통계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자진 퇴교 의사를 밝힌 교육생들을 교관들이 어떻게든 끌고 가려 노력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긴 하지만 다른 기수들에 비해 높은 수료율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기사에 나오는 국군 내 다른 특수부대와 비교하였을 때 그렇게 충격적인 통계자료는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UDT는 40% 미만의 수료율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통계자료가 아닐 수 없다.

UDT 부대 출신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해군본부 측에서 UDT의 규모를 늘리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천안함 폭침과 한주호 준위 사고를 계기로 상부에서 UDT 부대 규모 확충의 필요성을 더 통감[84]하게 되어 폭발적인 부대 규모 확충 계획이 시행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덴만 여명 작전이라는 메가톤급 폭발적 요인이 추가로 터짐으로써 아예 여단에서 전단으로 편제를 승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전단 승격의 준비작업으로 단기간 내 급격한 인력 확충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수료율 급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는 해당 부대 출신자의 전언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SBS의 기획취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기사에서 동종업계 타 조직(경찰, 해경)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며 그에 따른 인력 유출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인력 확충에 급급하여 신규 요원의 자질 논란이 내부적으로 있다는 대목이 있다. 기사와 해당 부대 출신자의 진술을 같이 참고해보면, 열악한 처우에 따른 인력 유출과 단기간 내 급격한 부대 규모 확장에 따른 수요 증가가 맞물려 내부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야기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 기사와 유튜브 등 자료를 찾아보면 UDT/SEAL의 수료율은 다시 예전 수준으로 낮아진 듯하다. 아무래도 전단 승격 작업이 완료되어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2014년 7월 15일.' 60-2기 교육생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초 94명으로 시작했지만 15일 현재 생존자는 58명이다. 극기주 종료 후 몇 명이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극기주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짐을 싸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의 국방일보 기사.
2018년 5월 29일. '최초 입교한 95명의 특전 부사관 후보생 중 특수전 기본과정을 통과한 인원은 단 19명이다.'라는 내용의 국방일보 기사.

2019년 3월 28일 체력 학원을 운영하는 특전사 출신의 이스톤이라는 유튜버가 올린 영상에 따르면 해군 특수전 64-3기 교육생 41명이 입교하여 11명이 수료했다고 한다. 2024년 1월 1일자 국방일보 기사에 따르면 해군 특수전 69기-2차는 교육 시작 인원 144명 중 장교4명, 부사관23명, 총 27명이 수료했다고 한다.

국방위원회 부승찬 국회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UDT훈련의 수료율은 35%이며 2016년부터 2023년까지의 지난 8년간 수료율은 평균 41.6%이다. 2024년 10월 14일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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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특수전 초급반 과정 59-2기 수료식 [85]

이런 자료들을 통합하여 판단해 볼 때 역대 수료율 평균 40% 미만은 사실로 판단되며, 부사관 교육의 경우 최근에도 20%대에 불과한 수료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극악의 수료율을 보인 UDT 14기나 수료율이 폭증했던 2010~2012년 기간의 기수들도 또한 사실로 판단된다.

UDT 교육은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 공군, 해병대, 외국군 등 다양한 군인들이 위탁교육으로 입교하여 같이 교육이 이뤄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를 비롯하여 수료율과 같은 사실들은 바로바로 전군으로 소문나게 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구조적 특성상 UDT 교육이 매우 혹독하지 않고 수월한 교육과정이라면 아마 국군 내 다른 부대에서 무시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UDT 교육을 수료한 육군, 공군, 해병대의 군인들 또한 UDT 교육 수료에 대해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UDT 교육이 혹독한 교육과정임에는 논란의 여지는 없어보인다

7. 실전경험 및 대내외활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해군 특수전전단/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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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창설 이후로 UDT/SEAL 요원들은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실전에 투입되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투입되고 있다. 정전 이후 실전 경험은 국군 내 어느 부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고 우방국 특수부대들과의 교류는 부대에 미군이 상주 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이다.

8. 장비

해군 특수전전단은 특수작전 장비 분야에 있어서 국내의 어느 부대, 기관보다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대응해오고 있다. 부대원 개인이 구매한 사제장비도 합당하다면 허용하는 등 장비사용의 자율성이 넓은 부대이다.

일례로 이글 인더스트리 社 CIRAS를 도입하여 방탄복 타입을 플레이트 캐리어로 가장 먼저 전환하였으며 멀티캠 패턴을 도입한다거나 9mm 화기에서 5.56mm 화기로 전환하는 세계적인 대테러화기 변화 추세에 따라 HK416이나 SIG-516을 도입하는 등 국내 타 특수부대, 타 기관보다 최소 5년에서 10년가량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참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 복무한 UDT/SEAL 대원들에 따르면 타부대로 위탁교육을 갈 때 멀티캠 패턴의 군복을 입고가면 색깔이 왜 인민군복과 비슷하냐? 인민군이냐, 미군을 따라하다가 이젠 군복까지 따라한다는 등의 비아냥을 듣거나 교육기간 동안 멀티캠 패턴의 군복을 입지 말 것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UDT/SEAL 출신의 한 예비역에 따르면 2011년 여름, 전지훈련을 가기위해 중간기착지인 평택시제2함대에 머무르며 재정비 하고 있을 때인데 색다른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는 모 특수부대 관계자가 찾아와서 장비를 사진 찍어가도 되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에 UDT/SEAL 관계자가 이유를 묻자, 자신이 속한 부대가 UDT/SEAL이나 707처럼 장비 보급이 잘 이뤄지지 않아 사진을 찍어 상부에 소요제기를 하려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개인병기의 경우 특전전대는 제식병기로 노후화된 K1A를 교체하고자 23년 12월, K13(STC16)을 도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특전전대도 때에 따라선 K1, K2, K3, MP5, HK416, SIG516, CAR816 등의 다양한 국내외 병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확인된다.[86] #
임무에 따라 독일제 돌격소총인 H&K HK416이 지급되었고,[87] 언론 보도에도 심심치 않게 멀티캠 위장 패턴으로 장비를 맞춘 모습을 볼 수 있다. 2024년 기준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UDT에서 멀티캠 패턴의 군복을 부대원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으로 당시 일어난 북한 도발의 응징보복작전을 준비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미국 SEAL과 정기적으로 교류가 잦은 편인 데다, 청해부대 파병 이후에는 타국 특수부대와[88]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져 신형장비나 전술의 피드백이 빠른 축에 속한다. 1990년대 중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에는 미군 BDU 전투복에 ITLBV 베스트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였을 정도다. 소말리아 파병 이후로 해군에서 UDT/SEAL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고, 특히 청해부대는 서방 특수부대 느낌이 날 정도의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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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파견 기간 중 프랑스
해군 코만도와 연합훈련 중인 사진.[89]
UAE에 파견된 아크부대 3진 해상작전대로 파견된 UDT/SEAL 대원들.[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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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중 모습. 탄창의 크기를 보면 대부분 H&K MP5를 사용하는 듯 하지만, HK416처럼 보이는 병기를 사용하는 대원의 모습도 보였는데 이후 2015년 공개된 당시 작전 영상에서 HK416 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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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장비로 무장한 UDT/SEAL 대원들
장비를 살펴보면 멀티캠 전투복과 옵스코어 사의 FAST 헬멧, LBT-6094 RS으로 무장하고 H&K HK416 소총에 도트사이트 등 각종 악세사리를 부착해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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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훈련 중인 아크부대 UDT/SEAL 대원들. 멀티캠 패턴을 입힌 옵스코어 FAST 헬멧에 멀티캠 컴뱃셔츠와 LBT-6094B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K1A 기관단총에 각종 장비를 부착했다.

8.1.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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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특수전전단의 다양한 작전복들

멀티캠 패턴 전투복, 수중침투복, 길리 슈트, 대테러복 등 임무와 작전 환경에 따라 다양한 복장을 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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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드랩 단색 전투복 레오파드 패턴 전투복 해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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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 베레모와 구형 국군 통합 우드랜드 전투복 회색 베레모와 신형 국군통합 디지털 픽셀 전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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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복과 우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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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T/SEAL 전용 디지털 픽셀 전투복과 회색 베레모

전투복의 위장무늬는 올리브 드랩 단색→레오파드 패턴→리프패턴 유사 패턴(해마복)→국군 통합 우드랜드 패턴→국군 통합 화강암 디지털 픽셀 패턴→UDT/SEAL 전용 디지털 픽셀 패턴으로 변화를 거쳤다. 디자인은 위장무늬 도입시부터 상의 4포켓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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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 UDT/SEAL 기수단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때 신형 전투복과 팔각모를 착용한 UDT/SEAL 전단장

2013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서 UDT/SEAL 기수단이 미 해군에게 지급되는 NWU 3형[91] 위장복과 유사한 패턴의 신형 위장복을 입고 나타나서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에 따르면 특전사의 신형 특전복처럼 UDT/SEAL 전용 전투복으로 새로 채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착용 중인 국군 통합 도트무늬 전투복과 멀티캠 전투복을 이것으로 통일하여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단, 특수전전단 대원 전원이 입지는 않고 일부는 그대로 통합 전투복을 입는다. 차이점으로는 왼팔 상박에 부대마크가 부착되어있다. 2015년 기준으로는 정식 지급이 완료된 듯하다.

모자는 경우에 따라 베레모, 부니햇, 팔각모, 체육모 등을 혼용한다. 베레모의 경우 육군 기갑부대의 얼룩 베레와 유사한 스타일의 얼룩 베레모를 착용했었으나, 해군 특수전전단으로 개편 이후 현재의 상징적인 회색 베레모로 바뀌었다. 준사관부터 모장 위에 철제 계급장을 부착하는데, 육군 및 해병대와 달리 개리슨 모에 부착하는 작은 크기의 철제 모장을 부착한다. 또한 병들이 사용하는 포제 약장의 크기가 일반적인 것보다 크기가 작다.

매체에 등장한 사진을 보면 복장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은데 대원 취향에 따라 미군 BDU(Battle Dress Uniform), 구형 사제 위장복, 멀티캠 전투복 등을 구매하여 활동복으로 착용한다. 장교의 진급을 위해서 특전사 근무가 필수인 육군[92]과는 달리 해군은 장교가 진급하기 위해 특전단을 꼭 거칠 필요가 없다. 따라서 SEAL은 부사관과 병은 물론이고 장교들 또한 정말로 특수전에 뜻이 있는 사람들만 오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조직이 좋은 방향으로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또한 해군 수뇌부들 중 특전단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고, 이들은 그냥 '나는 특전단엔 관심없으니까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라는 식으로 놔둔다. 이렇게 상부에서까지 방치를 하니까 역으로 국군 특유의 경직된 규율 및 감시망에서 벗어나게되고, 구성원들이 직접 알아서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부대를 끌고 갈 수 있게된 것이다. 관여와 단속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심지어 UDT/SEAL 내부에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입어야 맞는지 그런 규정도 잘 모를 정도로 규정이란 것 자체에 무신경해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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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 해군 제1함대 제3특전대대와 동해해경청 특공대간의 합동 대테러훈련 사진이다.
과감하게 소매가 컷팅된 UDT/SEAL대원이 눈에 띈다. UDT/SEAL 대원들이 보급 받는 CRYE PRECISION 社의 멀티캠 패턴 군복 상의의 경우 공식사이트 기준 240~286$ 선이다.

이 때문에 해군 특수전전단 내부에서는 “남북 통일보다 UDT 복장 통일이 더 어렵다”는 유머가 존재한다고 한다.

부대원들 또한 '자유로움'에 대해 강박스러울 정도이다. 행사 시가 아닌 평상시 오와 열을 맞추고 발을 맞춰 간다는 것을 수치로 받아들일 정도다. 단적인 예로 수료하고 올라온 후배들이 밥 먹으러 갈 때 '자유스럽지 않은 형태'로 이동을 하면 일부러 흩트려 놓을 정도다. 실제로 영내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닌다. 그런 부대의 분위기는 '작전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전제가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임무 수행 간 발생하는 돌발 상황을 타개하는 대처 능력은 규정으로 가득 찬 경직된 사고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93] 하지만 부대를 관리해야 하고 진급을 해야 하는 영관급 이상의 장교들에게서는 이러한 특성이 부대 밖, 군 수뇌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부정적으로 비칠 우려 때문에 부담으로 느끼기에(물론 안 그런 지휘관도 있고)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부대원들에겐 이를 대응하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실전 많은 미국 Navy SEAL은 안 그러는데 우리는 이런 거 가지고 트집이냐?'라는 파훼법이다. 그리고 부대 내 미국 Navy SEAL 대원들이 자주 돌아다니고 있고 미국으로 유학 다녀온 인원들이 강하게 주장하면 잘 먹힌다. UDT/SEAL이라고 한국군의 경직된 군 문화 굴레에서 모두 다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대원들의 이러한 노력과 설득 그리고 그것들이 합당하다면 최대한 존중하고 허용하려는 지휘관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부대 문화로 인하여 새로운 전술, 장비, 복제 도입 시 다른 군, 기관들보다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속이 해군이므로 모두가 동, 하정복근무복, 해군용 화강암 무늬 전투복, 함상복, UDT/SEAL 픽셀 전투복 등을 사물함에 갖추고는 있지만 입을 일이 많지 않다. 특전병의 경우 함상복(함상복 제정 이전 군번의 경우 해상병 전투복)이 미지급(혹은 4벌씩 지급되는 타 직별 병들과 달리 1~2벌만 지급)되고 해군용 화강암 무늬 전투복, UDT/SEAL 픽셀 전투복 중 하나 이상 대체 지급된다. 안 그래도 다양한 각종 UDT 전투복에 3군 중 가장 옷 많이 나온다는 해군 공통 피복이 더해지니, 설상가상으로 UDT 대원들의 복장 통일은 남북 통일보다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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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캠 컴뱃셔츠를 착용한 아크부대원 외국 특수부대처럼 멀티캠을 착용해 당시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8.2. 병기[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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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 1주기 기념행사의 UDT/SEAL 대원.
이스라엘제 MARS 레이저 통합형 도트사이트를 결합해 운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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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13진 대원의 모습.
이스라엘제 야간투시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옵스코어 FAST 헬멧에 달린 야간투시경 마운트가 흔히들 아는 방식이 아닌 이스라엘제로 바뀐 모습과, 장비중인 H&K HK416의 도트사이트로 MARS에 추가로 AN/PEQ-15A 표적지시기를 장착하고 있는 모습에 주의. 일루미네이터 기능을 위해 따로 장착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옵스코어 FAST 방탄 헬멧을 착용하고 HK416 소총을 사격중인 청해부대원의 모습. 여기서도 MARS 도트사이트가 결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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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경 3특전대대에서 HK416을 운용중인 모습이 확인되었다. 2015년 11월경 도입이 확인된 SCAR-L 소총

국군제식인 K1A, K2, K3, K13 등 K계열을 제식으로하며 임무나 상황에 따라서 MP5 기관단총이나 HK416, SCAR-L 돌격소총 같은 외국산 총기들을 주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SR-25 저격소총, M32 유탄발사기도 운용중이다.
청해부대 파병 초기에는 K1A에 M4 카빈 스타일의 개머리판과 RAS를 조합하고 각종 광학장비를 장착해서 운용했으나, 설계상의 한계로 SS109 계열 5.56mm 탄약[95]의 운용이 제한되는 점 때문인지 현재는 H&K HK416을 운용하고 있으며, 해당 소병기의 도입은 1회성에 끝나지 않고 2013년 6월 국군 플리커를 통해 공개된 사진을 보면 최신형인 HK416A5가 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기존 HK416에 A5용 개머리판을 끼운 것으로 도입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지만 2021년 MADEX에서 HK416A5상부를 기존 HK416 하부와 결합하여 운용중인 것으로 확인되어 UDT의 HK416A5 도입은 사실로 밝혀졌다. KBS의 UDT/SEAL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한 점을 미루어 볼때 청해부대에서만 운용되는 병기는 아닌 것이 확인됐고 실제로도 특정부대만이 아닌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다.[96] 2015년에는 707 특임대에 이어 FN SCAR를 도입한 것이 공개되었다. 대테러 특수임무대대나 청해부대의 경우 MP5 계열 기관단총을 주로 운용하나 MP5 계열의 9mm탄 사용에서 탈피하는 전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는듯 하다. 냉전 종식 이후 구 소련제 방탄복들이 헐값에 대거 민간시장에 풀리면서 테러리스트들의 방탄복 착용사례 또한 늘어남에 따라 과거처럼 인질구출작전 부분에서 MP5를 위시한 기관단총들이 독보적인 입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시못할 위력을 가진데다가, 소음 기관단총 등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소음기를 장착한 소총들보다는 소음효과가 한수 위인 점 등으로 인해 기관단총도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야간투시경 같은 경우에도 타 특수부대에 비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파일:external/www.funasia.co/3530211967_pLubylcG_udt_seal_12.jpg
파일:UDTMINI N SEAS.jpg
2010년대 초에는 PVS-04K를 사용. 2010년대 중후반에는 MINI/N SEAS 야간투시경을 사용.
파일:707특임대, UDTSEAL 등 최정예 특수부대 시범, F-35A 편대 비행 등 국군 역사상 최초 특수전 사령부에서 개최되는 72주년 국군의 날 행사 미디어데이 영상국방부 제공.mp4_000810509.png
파일:UDT GPNVG-18.jpg
2020년 9월 25일 경기도 이천의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진행된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PVS-31을착용한채로 등장한바 있다.2020년 10월 12일~15일 해양경찰특공대와 합동으로 실시한 대테러훈련에서 UDT가 4안식 야시경인 GPNVG-18도 운용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2016년 4월 이순진 합참의장의 UDT/SEAL 방문 당시 장비점검 사진. LRT-3[97]TRG M10 저격소총이 확인된다.
[navertv(831652)]
저격총의 경우에는 M700 AICS,[98] AW 계열, KAC SR-25 등을 운용중이며, LRT-3[99]LRT-3대한민국 해군 유튜브 같은 대물저격총도 운용중에 있다. 2016년경에는 신형 저격소총으로 TRG 시리즈로 유명한 핀란드 SAKO 사의 최신 개량형인 TRG M10 저격소총이 도입된 것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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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897 산탄총을 사용중인 예전 UDT/SEAL 대원들의 모습[100] 해마복을 입고, 윈체스터 M12 산탄총을 들고 있는 모습

산탄총의 경우 수년 전까지만 해도 2차대전의 유물인 M-12 산탄총도 목격되는 등 열악함 그 자체였으나 최근 공개된 사진을 보면 레밍턴 M870 MCS같은 괜찮은 산탄총들도 운용중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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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공개된 훈련 사진. 글록을 장비하고 있다.
권총의 경우 글록을 운용중에 있으며 청해부대 다큐멘터리에서 SIG P226도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밀코 M32 6연장 유탄발사기 등을 운용중이다.

대물 저격총인 바렛 M107A1을 소음기와 함께 운용한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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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에 브루나이싱가포르 일대에서 실시된 14개 국가 참여 해양 대테러 국제연합훈련에서 한국의 육군 특전사 707특임대와 해군특수전전단의 대테러특임대원들이 합동팀을 이루어 참가했다. 그런데 그 훈련 사진들에서 특전사와 UDT 대원들이 FN P90을 쓰는 모습이 공개되어 군사무기 매니아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잠시 있었지만, 싱가포르군이 빌려준 것으로 드러나 잠잠해졌다.

다산기공이 UAE(아랍에미리트) 카라칼 사로부터 CAR816의 라이센스를 받아 국내에서 수리가 가능한 점과 총기의 부품수급이 쉽다는 점, 또 HK416과 SIG516의 버그를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며 해군 특수전전단 쪽에 홍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17년 2월 밀리돔의 한 유저가 다산기공 측에 직접 문의한 결과 해군 특수전전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는 했지만 채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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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국방홍보원 페이스북에 공개된 UDT 특임대 모습으로, 양 끝의 2명은 H&K HK416으로 무장했지만 가운데의 5명은 SIG사의 SIG516으로 무장한 것이 보인다.
UDT/SEAL의 SIG-516 도입 비화
2018년 말 다산기공과 CAR816 60여정을 계약했다고 한다.

한편 국산 K1A도 개량을 거쳐 K100탄의 효과적 운용이 가능해짐에 따라 활용폭이 커질것으로 보인다.
파일:udt k13.jpg
2024년 3월 UDT 제5특전대대 대원이 무장한 K13.
2023년 12월, K13 기관단총을 도입하였다.

9. 해군 특전부사관

해군 지원사이트

9.1. 체력평가

해군부사관 필기평가는 폐지되었고 UDT 체력평가는 2025년부터 다음과 같이 개정되어 시행된다.

개정 체력평가 방법과 만점(UDT 71기부터 해당)위 수치는 어디까지나 입교를 위한 만점 기준일뿐이다. 입교하게 되면 턱걸이는 위 기준의 배 이상을, 달리기는 훨씬 긴 코스를 빠른 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양성 과정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네이비 씰 지원자의 SCREENING TEST(입대 전 선별 과정 테스트) 권장 특급 기준. 체력심사에서 이상적인 기준으로 꼽는다.[101] 출처UDT 교육은 보통 군대처럼 모두 어떻게든 끌고가는 양성 교육[102] 이 아니라 기준에 만족하지 않는 후보생은 탈락시키는 것이 당연한 선발 과정(Selection)[103]이다. 실제 교관들도 지옥주 수료전까지는 옆에 있는 사람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할 정도이다. 이는 같은 해군에 있는 SSU 양성과정과도 다소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높은 수준의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밖에서 운동 좀 하고 왔다고 해도 요구되는 수준은 매우 높고 또한 훈련이 위험하기 때문에 각종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퇴교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혹독하게 몰아가며, 저체온과 배고픔까지 겪기 때문에 겉보기에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어 체력적으로는 절대 퇴교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 조차도 퇴교하기 부지기수다. 여기에 다른건 다 문제가 없는데 수영이나 잠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해서 쫓겨날 수도 있으니 여기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또한 훈련 기간 내내 교관과 팀원간 상호 평가가 계속 진행되어 극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비협조적이라면 역시 부적합자로 퇴교 당할 수 있다.[104] 좋아보이는 몸이 탈락하는 이유, 실제 특수부대에 적합한 몸에 대해서는 여기를 읽어보자

금전, 시간이 빠듯하다면 1.평영/입영 2.턱걸이 3.구보 4.잠영 5.스킨다이빙에 우선순위를 두고 준비하는게 좋다.[105]

2024년 7월 6일 해군은 해군부사관 필기시험 폐지를 발표하였다. 때문에 2025년부터는 필기 없이 개정된 체력평가와 면접, 신체검사, 신원검증으로 입교여부를 결정한다.

9.2. 과거의 입교 평가

필기의 경우 과거에는 과목별 과락만 넘기면 된다는 얘기가 있었다.[106] 다만 2020~2021년 초까지는 가짜사나이 등의 유튜브 매체로 인하여 지원자가 굉장히 많았던 때가 있어서 경쟁률이 상당했기에 일반적인 시기라면 합격하고도 남았을 점수로 최종발표에서 불합격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필기의 경우는 일반적인 해군 부사관 시험과는 과목수 차이를 제외하고는 다를 게 없으니 난이도가 궁금하다면 일반 해군 부사관 시험을 참고하면 된다.

실기 일정의 경우는 아래와 같다. 다만, 선발 인원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문신이 있다면 실기를 맞기 전까지 흔적도 없이 지워야 한다.

실기 진행순서는 요일별로 다르다.[108]

1. 지상종목 측정 후 수영종목 측정
2. 수영종목 측정 후 지상종목 측정
1, 2 방식 정해진 게 없으므로 둘 다 준비하는 걸 권장한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109][110] 3㎞ 달리기.[111] 참고로 평가관은 기록을 말해주지 않는다.
지상종목 측정 참고영상
자유형 200m 제한시간 5분, 평영 200m 제한시간 5분, 입영 3분[112] 수영 자세가 많이 이상하다면 퇴수당할 수 있다.

수영종목 측정의 경우, 자유형→평영→입영 순으로 실시된다.
대개 5명이 1조를 이루고 측정을 받는다. 해당일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개조~4개조[113]로 이루어진다. 수영장 물이 일반적인 수영장 물 보다는 더 차갑다는 걸 유의하자. 낮은 수온과 더불어 평가인 만큼 긴장할 수 있어서 평소보다 쥐가 나기가 쉽다.

측정 순서의 경우,
  1. 자유형 측정 후 휴식 없이 평영 측정
  2. 조별 자유형 측정 후, 다시 조별 평영 측정
1, 2 방식 정해진 게 없다. 차수마다 다르므로 둘 다 준비하는 걸 권장한다.

입영의 경우 평영킥과 로터리킥을 사용할 수 있다. 양손 스컬링을 쓸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입영시 목 부근이 잠기면 퇴수당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실기에서 유의할 점은 22:00 이후로 공복이란 점이다.
지원자의 경우, 대개 실기 전날 방을 잡고 저녁을 먹은 후 공복인 상태가 된다. 다음날을 위해 소화가 빠른 간식류를 소량 챙기기를 매우 강력히 추천한다.

다음날, 특수신검을 마치게 되면 보통 12시 쯤이 된다. 일정에 따라 점심 식사를 하지 않는 날도 있다.
따라서 실기검정이 진행될 때는 대개 14시간에서 16시간까지 굶은 상태가 된다.

실기 측정 시 본인의 평소 기록에 비해 더 낮은 기록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참고로 55-1기 수석 수료생 출신 로건에 따르면이 정도의 수준으로 준비하는게 좋다고. 물론 로건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만 하자

9.3. 후보생 합격 점수대

차수별 진행 방향과 기수별 지원자 점수대에 따라 다르니 참고만 할 것.

10. 해군 특전병

해군 특전병 안내
부대의 행정 및 지원 업무를 맡는 육군의 특전병[118]과는 달리, 해군 특전병은 병 과정 교육 수료 뒤 멀티캠 전투복/플레이트 캐리어/GPNVG-18/HK416/GLOCK17 등 부사관, 장교들과 똑같은 장구류를 보급받고 실제로 작전팀에 편제되는 등 초임 하사와 동일하게 취급받는다.

병 과정을 수료하고 곧바로 특전사나 해병대로 가서 공수기본 교육을 이수한 뒤 잠깐 동안 진해 본대에서 생활하는데, 이때 본대인 진해에 위치한 부대(제1특전대대, 특수임무대대 등)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작전 팀에 배속되지 않고 대기한다. 그러다 전방 파견부대(제3, 5특전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1년 윗 기수 특전병 선임들이 전역함과 동시에 전방 파견부대로 실무 배치된다. 전방 파견부대(제3, 5특전대대)[119]에 올라가면 작전 팀에 배속이 되는데, 파견부대이지만 실전에 출동을 하고 해양경찰특공대 등의 유관기관과 같이 하는 합동훈련, 국가정보원 및 함대 주관 대테러 훈련이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훈련에도 참가할 수도 있다. 특전병이라 할지라도 특수전 후반기 병 과정 수료 직후 특전사의 공수기본과정 또는 해병대의 기본공수과정에 위탁 보내지며 실무 생활 시 기본적인 헬기 패스트로프[120], VBSS 정도의 훈련은 받는다.

복무기간은 다른 현역 수병들과 동일하게 20개월이며, 월급은 일반 의 월급과 특전 수당이 합쳐져서 지급된다. 각종 수당들을 합치면, 파병 인력을 제외하고 국군 병들 중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다.

특전병이 부사관으로서 계속 복무를 하고 싶다면 기존에는 병에서 하사로 신분 전환을 해야 해서 사실상 재입대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당연히 지옥주가 포함된 특수전 기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현재 임기제부사관(전문하사)이 전 직별에 개방되어 운용되고, 몇 가지 개정을 거침에 따라, 특전병이 장기복무를 하고 싶다면 임기제부사관을 3년 이상을 신청한 뒤 본인 의사로 초급반 과정을 이수하거나, 임기제부사관 6개월 이상 복무 중에 단기하사 전환을 통해 초급반 과정을 이수하면 장기복무에 지원할 수 있다.

즉 특수전 기본 과정(일반학)과 기본공수는 특전병 시절 이미 수료했으므로 지옥주 이후의 초급반 과정(18주)만 밟으면 되는 셈이다. 물론 초급반 과정도 힘든건 마찬가지겠지만 일단 지옥주가 없는데다가 초급반의 경우 전술훈련과 이론교육 비중도 꽤 되기에 마냥 육체적으로만 굴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미 특전병 때와 임기제부사관 기간 동안 다 해봤던 거라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교육은 아니다.

현재 1년에 1번[121] 모집[122]을 받아서 수십 명을 선발한다. 선발 취소나 귀가 등을 감안해서 선발 인원은 계획 인원보다 약간 많은 편이다. 신체조건은 부사관과 동일한 것을 요구하고 특수 신체검사도 받아야 한다. 수영 실력은 필수다. 그리고, 거주지 인근 해군 부대나 병무청에서 면접을 보는 일반병·기술병들과 달리 특전병은 심해잠수병(SSU)과 함께 진해에서 면접과 체력 검정을 하기 때문에 타지 거주자들은 진해로 내려와야 한다.

일반 해군 신병들과 동일하게 해군기초군사교육단에서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뒤, 해군사관학교 옆에 위치한 특수전전단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교육 기간은 부사관 교육 기간의 절반이 채 안되는 11주로, 교육 중 탈락 혹은 자의로 퇴교하면 병종(특기)이 재분류되어 가까운 후반기 교육 차수에 들어가게 된다.

병종 재분류 뒤엔 군사경찰 등으로 가지 않는 한[123] 해상병 전투복(샘브레이, 덩거리) 등도 다시 지급된다. 과거에는 지옥주를 지나 탈락한 인원은 일단 나머지 훈련은 전부 열외시키는 대신 교육 기간 동안 전단 교육대에 남아 각종 작업원으로 근무하게 했고, 교육이 끝나면 이들을 특전병으로 수료시켜 전단 및 예하부대에서 전투업무 대신 행정이나 작업 등의 지원업무를 맡겼는데, 이를 '행정 수료'라고 불렀다. 결국 온전히 수료를 해야 해군 특전병으로서 복무를 하게 되는데, 평균적으로 선발된 수십 명 중 절반도 안 되는 인원만이 수료를 하게 된다. 그렇기에 UDT 병이 연 10명도 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병의 복무기간 단축으로 인해 병 자원들의 전투 보직을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할지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있어왔지만, 정작 국방부 입장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해군 특전병의 존재 의의가 정예 전투병력인 부사관들의 업무 피로도를 낮춰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124]

병 복무기간 단축 확정 이후에도 해군과 국방부 측에서는 매년 10월 말~11월 초 UDT 특전병을 선발한다고 공고를 내놓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폐지에 대한 언급은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수병들도 당장 특전병으로 의무복무만 해도 그 즉시 '경찰특공대해양경찰특공대(특공분야, 구조분야) 응시자격'이 부여되고 임기제부사관 제도 등을 통해 일정기간 이상 부사관으로 근무하면 소방 등의 특채 지원[125]도 가능하다. 병들 입장에서도 추후 취업 등에서 도움을 받고 간부들도 피로감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서로 윈윈인 셈이다.

인력부족 문제에 대해 UDT 부사관을 더 뽑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지만, 각 군의 부사관 T/O는 단순히 해군이 늘리고 싶다고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높게는 국방부까지 올라가서 부사관 T/O 늘리기를 허락 맡아야 하고, 국회에서 허가도 내주고 예산도 줘야 한다. 전 군이 부사관을 확충하고 싶어 할뿐더러 각 군의 특수전뿐만이 아니라 해군 안의 다른 직별 및 근무지에서도 부사관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과거에 비해 한 번에 부사관을 모집하는 인원이 상당히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적절히 걸러내지 않고 자격미달자까지 다 임관시켜 버리면, 나중에 전투력 하락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진다. 한 명의 관심 간부는 열 명의 관심 수병를 아득히 넘어서는 불안요소이기 때문.[126]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UDT가 가진 부대 문화 특성이 실무 인원이 모자라도 대충 뽑지 않고, 최대한 빡세게 검증하여 확실한 자질을 가진 인물만 남기는 쪽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장교나 부사관 조차도 UDT에서 필요한 자질이 모자라면 수료 인원이 적어도 가차 없이 탈락이기에, 부대 정원만 늘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강하다고 한다. 즉, 장기복무 간부여도 자격미달인 인원을 받아주는 것보다는 짧게 복무하는 수병이더라도 자질을 갖춘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

특전병 지원의 경우 최근 경쟁률이 11.3대 1 정도이고, 합격 커트라인이 부사관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양질의 인원만이 합격 할 수 있다.[127]

2025년 2월 입영하는 24-11회차 모집을 끝으로, 특전병 폐지가 확정되었다.

11. 해군 특전장교

장교의 경우 부사관, 수병과 조금 다른 특징이 있다. 부사관과 수병은 선발 시부터 특수전 특기로 뽑아서 '특전 직별'이란 게 있지만, 장교는 함정 병과[129]를 가진 장교가 실무 복무 도중 지원해서 온다.

해군 특수전 장교를 희망하는 경우, 먼저 해군 함정 장교로 임관해야 한다.[130] 우선, 해군 장교로 임관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4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임관하는 방법, 해군 학생군사교육단(NROTC)을 통해 임관 자격을 얻어 임관하는 방법,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해 학사를 취득한 뒤 해군사관후보생(OCS)으로 지원해 11주의 훈련과정을 거치고 임관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함정 장교로 임관 이후, 약 1년간 함정 근무를 수행해야 하며, 이후 1년차 근무가 끝나가는 시점에[131] 해군 국방정보망, 부대마다 배부되는 지원팜플랫, 포스터, 혹은 온나라 체계 등을 통해 공지되는 특수전 장교 지원 방법에 따라 지원하게 된다.

필기는 이미 군인으로 복무중인 상태이기에 실시하지 않으며, 실기의 경우 임관종합평가 시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더라도 특수전전단 지원 시 체력검정을 다시 받아야 한다. 체력검정 기준은 부사관의 기준과 같다.

참고로 장교들은 UDT에서 근무하다가 진급 때문에 승함 경력[132]을 쌓으러 도중에 함정을 타러 가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래도 일반적인 함정장교와는 달리 소령 까지는 배를 타지 않아도 크게 뭐라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중령부터는 좀 요구하는 수준.

일단 UDT 자체가 워낙 거르고 거른 극소수정예 인원이고, 그 중에서도 장교 자원은 더더욱 적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장교들은 각종 훈련 외에도 행정업무까지 도맡아야 하기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133] 물론 2024년 부터는 UDT에서 근무해도 승함경력이 채워지는 것으로 바뀌긴 해서 배를 거의 타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이긴 하나, 군대라는 곳은 항상 예외사항이 많기 때문에 무조건 배를 안탄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중령 이후로는 배를 타야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따라서 배 탈 때는 배를 타는 것 때문에 힘들고 배에서 내려서는 다시 UDT로 돌아가서 각종 힘든 훈련과 행정업무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UDT 장교는 다른 병과의 장교들보다 인력난이 더 심하다. 해군 자체가 장교의 인력난이 심하기는 하지만 특히 해군 특수전전단(UDT)에서는 그 현상이 더욱 심하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인해 UDT 장교들은 장기복무는 거의 100% 보장되며 중령까지도 진급이 매우 수월하나[134] 대부분 경력만 채우고 전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대령, 제독(장성)으로의 진급은 어려운 편이긴 하나 이는 해사 출신 함정장교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12. 사진 및 영상

파일:킬박스CQC.jpg
파일:청해저격수.jpg
킬박스 CQC 해상사격
파일:조난선박구조1.jpg
파일:조난선박구조2.jpg
아덴만 해역에서 조난당한 선박을 구조한 청해부대
파일:전개1.jpg
파일:전술기동사격.jpg
파일:진압1.jpg
파일:권총사격.jpg
파일:시범1.jpg
파일:연합훈련.jpg
파일:한주호준위.jpg
잠수에 투입되기 위해 잠수복만 입고 있는 故 한주호 준위와 후배들 사진이다.
故 한주호 준위 뒤쪽 잠수복만 입고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 중 첫 번째 인원이 2021년 영예로운 제복상을 수상한 김정호 준위.
파일:707 UDT 특임대 합동훈련.jpg
해군 특수전전단 특임대원들과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 특임대원들의 합동 훈련 후 망중한
파일:2021년 해군특수전전단 제5특전대대 훈련.jpg
2021년 5월 24일 제5특전대대가 중부해경특공대와 합동 대테러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파일:유디티2020.jpg
2020년 서해해경특공대와의 합동 대테러 훈련 모습
파일:FB_IMG_1470915120264.jpg

13. 역대 지휘관

UDT는 특수전여단에서 SSU와 편제상 결합하여 특수전전단이 되었다가 이내 얼마 못 가 분리되며 여단으로 환원이 되었으나 2012년 독자적으로 다시 특수전전단으로 편제승격되었다.[135]

여단장
전단장
여단장
전단장

14. 출신 인물

이름 상세
최문석 UDT 2기. 1950년대 원산 앞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
맹휘강 UDT 7기. 1965년 UDT 전역 후 1965년 4월~ 1970년까지 만 5년간 중앙정보부 5국 소속 북파공작원으로 활동, 대북작전을 수행했다. #
김영춘 UDT 8기. 1960년대 UDT 복무중 해군 정보부대에 배속되어 대북작전을 15회 수행하였으며 해군중 최다수행자이다. #
조광현 UDT 특차.[136] 해사 16기. 대령 예편. 1967년 美 해군 BUD/S[137] 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하고, 이듬해 제9대 UDT 부대장으로 취임하였다. UDT 초대 전대장까지 역임한 이후, UDT 지휘관 뿐만이 아니라 해군첩보부대 지휘관, 함장 등을 역임하고, 1989년에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안 그래도 힘든 미국 네이비 씰의 오리지널 BUD/S 과정에다가 동양 특유의 군대문화인 독한 얼차려 기합들을 더 추가해서 초급반 교육을 한국적인 UDT 교육판으로 현지화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장본인이다.[138] 6, 70년대의 UDT 교관들 중에서도 빡세기로 유명한 전설적인 존재였다. 오죽하면 별명이 '조악마'.[139]
한주호 UDT 22기. 미 해병대 특수전 단기과정, 육군 폭발물 처리과정 등을 수료. 수중파괴대(UDT 전신) 소대장, 폭발물처리대 중대장, 특전대대 팀장, 교육훈련대 주임반장, 특수임무대대 지원반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특히, 35년의 군 생활 중 19년 6개월을 교육훈련대 교관으로 재직했다.[140] 청해부대 1진에 검문검색대 작전팀 부팀장으로 파병을 다녀왔다.[141]
준위로 근무하던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구조작전 도중 잠수병으로 전사했다. 이후 충무무공훈장이 추서 되었고, 국립대전현충원 제3장교 묘역에 안장되었다.
엄홍길 UDT 28기 출신 예비역 하사. 세계 최초 해발 8,000m 이상 산악 16좌를 완등한 산악인. 해군 수병으로 입대, 갑판병이 되어 함정 근무를 했다. 타던 경비정이 화재로 퇴역 처리된 뒤 퇴역함 관리병이 되었고, 이를 지루하게 느껴 UDT에 지원했다. 초급반 교육 수료 후 UDT 대원으로서 근무, 3년간의 의무 복무를 마치고 하사로 전역했다.
유병호 UDT 29기. 준위 예편. 유튜브 채널 'UDT유병호'를 운영하는 유튜버.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침투한 북한 잠수함의 최초 내부 수색작전에 참여했으며, 제1연평해전, 항구적 자유 작전 아프가니스탄 파병, 청해부대 4진, 11진 파병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33년 9개월의 군 생활 대부분을 교육훈련대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UDT 요원들을 키워낸 교관으로도 활약했다. 2012년 국방부의 '위국헌신상' 용기부문을 수상했다.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운동 영상을 공개했는데 환갑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엄청난 근육질 몸매와 경이로운 운동 수행능력을 보여주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으며 첫째 아들은 자신의 뒤를 이어 UDT에 입대하여 병장으로 전역했고, 둘째 아들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 해군 장교로 임관했으며, 최근 UDT 초급반 67-1기를 수료하고 해군 특수전전단에 근무 중이다.
김판규 UDT 30기. 해사 37기. 중장 예편. 前 해군참모차장. 제56전대 시절 지역대장[142]을 역임했고 대령 계급으로 특수전여단장 재임 중 준장으로 진급했다. 초급 장교 시절부터 특수전과 잠수함 분야에서 근무하여 제독까지 오른 케이스이며 특수전여단, 9전단(잠수함사령부 전신) 최고 수장 자리를 모두 거쳤다.
남영우 UDT 42기. 해사 49기. 대령 예편. 미국 네이비 씰 BUD/S 과정 수료.[143] 현 UDT 교육과정에 네이비 씰 훈련과정을 도입시킨 장본인. 제1특전대대장과 제3특전대대장(제1함대)과 교육훈련대대장을 역임. 제1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27호정 정장으로 참전했다(당시 대위).
최영순 현 해군 중령. 학군 41기. 제3특전대대장(제1함대)과 제5특전대대장(제2함대)을 역임. 제2연평해전 당시 232편대 기함이었던 참수리 358호정 정장으로 참전했다(당시 대위).
전영주
(우디)
UDT 48기 출신 예비역 중사. 스쿠버 다이빙 및 전술사격 강사이자, 유튜브 채널 '네이비씰형'을 운영하는 유튜버. 전투경찰 만기 전역 후 UDT로 재입대했다.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해상작전대, 제3특전대대와 교육훈련대대에서 근무. 해상대테러 및 폭파학 교관으로 재직했으며, 미국 네이비 씰 BUD/S 과정 유학을 다녀왔다.[144] 교육생 시절 UDT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으며,[145] 특전대대에 근무하며 UDT 최우수 특수전 요원에 선발된 적이 있다. 전역 후 해상보안업체(PMC)에서 근무했으며, 밀리터리 웹예능 '헬위크'에 교관으로 출연했고, SBS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더솔져스'에 조교로 출연했다.
지중기 UDT 45기. 전술 컨설팅 회사인 무사트(기업)의 대표이사. 가짜사나이 등 대형 유튜브 컨텐츠 콜라보로 인해 대중들에게 해외에나 있을 법한 전술 컨설팅 회사가 국내에도 존재함을 어필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았지만,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작전 과정에서의 의혹, 임금 체불, 노동 착취, 심지어 군사기밀정보 유출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에 휩싸여 있다.
김규환 해사 57기, 현 해군 중령. 前 청해진함 함장,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역으로, 청해부대 6진 파병 당시 검문검색 작전팀장으로 참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를 경남 통영함에서 인계받아 문무대왕함에 탑승하여 진해군항까지 봉송했다.
김규대 UDT 50기. 2004년, 특수전여단에 입대했다. 강하훈련 중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휠체어 육상선수로 전향하여 2013년 리옹 장애인 세계선수권에서 800m 금메달을 수상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패럴림픽위원회 육상 선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현대
(테니)
UDT 51기 출신 예비역 중사.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테니 X-FIT'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공중작전대, 선견작전대 그리고 특수임무대대에서 근무했으며, 청해부대 파병을 다녀왔다. 특전대대에 근무 당시 UDT 최우수 특수전 요원에 선발된 적이 있다.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에 마스터로 출연했다.
이정민
(유디티)
UDT 51기 출신 예비역 병장. 아프리카TV BJ이자, 유튜브 채널 '유디티TV'를 운영하는 유튜버. 특전병 출신으로, 현역 시절 제5특전대대에서 복무했다. 아프리카TV 방송과 유튜브의 주요 컨텐츠는 먹방.
장재성
(야전삽 짱재)
UDT 53-1기 출신 예비역 하사. 유튜브 채널 '야전삽짱재'를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해중작전대 그리고 제5특전대대에서 근무. 밀리터리 웹예능 가짜사나이 1기2기에 교관으로 참여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황지훈
(에이전트 H)
UDT 53-2기 출신 예비역 하사.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미션 파서블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저격수로 근무했으며, 청해부대 2진 파병을 다녀왔다. 밀리터리 웹예능 가짜사나이 1기2기에 교관으로 참여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최하능
(하능)
UDT 53-2기 출신 예비역 하사. 헤어 디자이너, 기업인 및 유튜브 채널 '하능 is'를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저격수로 근무했으며, 청해부대 2진 파병을 다녀왔다.
김경백 UDT 53-2기 출신 예비역 상사.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 교육훈련대대, 제5특전대대 등을 거쳐 15년간 근무했으며, 전역 후 피지컬 100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채널A/ENA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3'에 UDT 팀장으로 출연했다. 이근이 네이비씰 SQT수료 후 개설한 전문화과정을 최초로 이수했다고 밝혔다.
이근 UDT 54-1기 출신 예비역 대위. 사후 102기.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ROKSEAL'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공중작전대, 해중작전대, 그리고 특수임무대대와 교육훈련대대에서 근무. 청해부대 1, 2진 검문검색대 작전팀장으로 파병.[146] 특전사 SOTAC 과정, 미국 네이비 씰 BUD/S 과정,[147] 장교 과정, SQT[148] 과정 등을 수료.[149] 다수의 방송 출연과 PMC 전투파병, 군/경 전술 컨설팅, 정부기관 및 국제기구의 안보 및 보안 담당 직업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밀리터리 웹예능 가짜사나이 1기에 교육대장으로 참여, 현재의 UDT 붐을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서일영 UDT 54-1기 출신 예비역 하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폭발물처리대대에서 근무. 전역 후 PMC 해상보안요원 생활을 한 경력이 있다.[150]
김준영
(로건)
UDT 55-1기[151] 출신 예비역 중사. 유튜브 채널 '강철의 로건'을 운영하는 유튜버. 육군 상근예비역 만기 전역 후 UDT로 재입대했다. 현역 시절 제1특전대대 공중작전대 그리고 선견작전대에서 근무했으며, 아크부대 파병을 다녀왔다.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UDT 수기를 작성하면서 UDT 준비생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있었으며, 밀리터리 웹예능 가짜사나이 1기2기에 교관으로 참여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윤종진 UDT 58-1기 출신 예비역 하사. 전역 후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2'에 UDT 팀장으로 출연했다.
조영직 UDT 59-1기 출신 예비역 병장. 국민의힘 소속의 정치인이다.
김계란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를 운영하는 유튜버. 빡빡이 아저씨 전직 UDT 출신이란 것 외에는 본인의 자세한 신상을 밝힌 바 없다.[152] 밀리터리 웹예능 가짜사나이 시리즈를 기획해 흥행시켰다. 특전병 출신 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이것도 확실하진 않다.
김상욱 UDT 60-1기 출신 예비역 병장. 현역 종합격투기 선수이다. 특전병 출신으로, 현역 시절 제5특전대대에서 복무했다.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에 UDT 팀으로 출연했다. 김동현의 체육관 팀스턴건 소속으로, 김동현과는 사제지간.
김민준
(민미네이터)
[153]
UDT 60-2기 출신 예비역 중사. 카페를 운영하는 개인사업자 및 유튜브 채널 '민미네이터'를 운영하는 유튜버. 해군 수병[154] 만기 전역 후 UDT로 재입대했다.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근무.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에 UDT 팀장으로 출연했다.
정종현 UDT 60-2기 출신 예비역 중사.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근무했으며,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 강철부대 3에 UDT 팀으로 출연하여 활약하였다.
공기환 UDT 61-1기 출신[155] 예비역 중사. 전역 후 SBS의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솔져스'에 브라보 팀으로 출연했다.
박성민 UDT 61-2기 출신[156] 예비역 중사. 전역 후 SBS의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솔져스'에 델타 팀으로 출연했다.
이정준 UDT 61-2기 출신 예비역 대위. 전역 후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3'에 UDT 팀으로 출연했다.
박종승
레드셀(유튜버)
UDT 62-1기 출신[157] 예비역 하사. 기업인이자, 유튜브 채널 '레드셀'을 운영하는 유튜버. 현역 시절 교육훈련대대에서 근무.[158] 군생활 썰이 대부분이던 한국 유튜브 밀리터리 컨텐츠 분야에서 영화, 게임을 전술적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실제 전술(CQC) · 사격술 소개, 미국 그린베레 출신과의 협업 등 한국 밀리터리 채널에서 그간 볼 수 없었던 컨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159]
육준서 UDT 62-1기 출신 예비역 하사. 유튜브 채널 '육준서 6dory'를 운영하는 유튜버 겸 미술작가. 현역 시절 폭발물처리대대에서 근무.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에 UDT 팀으로 출연했다. 방송 출연 전에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로 인지도가 있었으며, 강철부대 출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김진영
(덱스)
UDT 62-2기 출신 예비역 하사. 유튜브 채널 '덱스101'을 운영하는 유튜버 겸 방송인.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근무했으며, 아크부대 파병을 다녀왔다. 2019년 '해군 모병 홍보전사'[160] 및 '국군 화보 프로젝트'[161]에 선발된 경력도 있다. 전역 후 밀리터리 웹예능 가짜사나이 2에 막내 교관으로 출연했으며 이후 넷플릭스솔로지옥 2, MBC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국내외 인지도를 쌓아, 현재 UDT 출신 중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162]
선동우
(쎈동)
UDT 62-2기 출신 예비역 하사. 현역 시절 특수임무대대에서 근무했으며, 청해부대 파병을 다녀왔다. 전역 이후 밀리터리 웹예능 가짜사나이 2에 교관으로 출연했다.
이한준 UDT 63-1기 출신 예비역 하사. 전역 후 채널A/SKY의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3'에 UDT 팀으로 출연했다.

15. 등장 매체

16. 기타

2010년대 이후로 열악한 급여로 인해 근무경력 6~20년차의 정예대원들이 대거 전역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일반 부사관과의 봉급 차이는 특전부식비(7만 원), 특전수당(20만 원 내외)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 힘든 훈련과 임무수행(파병, 출동 등), 체력단련, 군대 특유의 상하관계 등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부상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일을 하는 해양경찰특공대와는 수당, 근무여건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UDT를 우당탕으로 읽거나, 과거 방위병이 있던 시절 Uri Dongnae Teukgongdae의 줄임말이라는 농담의 소재로 쓰이곤 했다.

UDT라는 명칭이 익숙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영어권에서는 그냥 UDT를 생략하고, KOREAN NAVY SEAL로도 통하는 듯하다. 아이러니한 건 UDT라는 표현도 자주 쓰이는 용어라는 것. 그냥 네이비 씰이 더 인지도가 높아서 그런 듯하다.

데브그루와는 오래 전 교류했었다. 영상 6분 56초에 데브그루와의 연합훈련 기념패가 보인다.

2020년, 한국 유튜브 최대 흥행 컨텐츠인 가짜사나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물론 가짜 사나이에 참여한 교관들은 전역자인데다가 교육 내용도 UDT 교육이 아닌 무사트 교육이지만, 교관들이 모두 UDT 출신들이고 컨텐츠 자체도 UDT와 상당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덩달아 UDT의 인지도가 상승했다. 또한, 이로 인해 특수부대 출신 유튜버들이 늘었고, 특수부대 관련 컨텐츠들이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다. 특히 가짜사나이 흥행의 일등공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이근의 경우 인기가 그야말로 수직상승했다.[167] 가짜사나이 덕분에 UDT 지원율도 급격히 상승했다고.[168]

2021년, 최강의 특수부대를 가리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에 UDT 출신 전역자들이 출연하여, 프로그램에 참가한 부대 중 가장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가짜사나이의 흥행 이후 이어진 특수부대 밀리터리 붐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2021년 10월에는 가짜사나이 붐의 주역이었던 이근이 기획한 웹예능 '헬위크'(HELL WEEK)가 공개되었으며, 주된 내용은 UDT/SEAL과 네이비 씰 BUD/s 교육을 약 5일간 지옥주 분량만큼 축약시켜 무수면하에 교육생들에게 실시하는 것이다.

17. 관련 문서


[1] Underwater Demolition Team/SEa, Air, and Land의 약칭으로, 해군 해난구조전대(SSU) 제외 예하 특전대 통칭한다.[2] 특수정찰, 직접타격, 대테러, 폭발물처리, 인질구출, 선견작전, 수중탐색 및 폭파, 선박 검문검색, 요인암살, 국가 주요시설 및 인원 경호 등.[3] 미합중국 해군UDT를 직역하여 명명.[4] UDT 훈련수료 포상으로 1.전과말소 2.3급문관대우 3.공군파일럿에 준하는 대우 4.미국UDT에 준하는 수당지급 5.최고수준의 식사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피훈련자들을 모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켜진 약속은 최고수준의 식사 빼고는 모두 거짓이었다고 한다. UDT 1기 교육 막바지 북한 해안정찰을 수행하고 인천에 입항하자 당시 제3대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정긍모 중장이 환영파티를 열어주며 '니들은 한때 돼지같이 길러 잡아 먹을거다'라고 발언했다고 석경식 UDT 1기생은 회고한다.[5] UDT 출신 유튜버 '사나이 김소장'과 석경식 UDT1기생의 대담자리에 동석한 UDT 11기 이강현 특수임무유공자회 부산남부 연합지회장은 해군 정보부대에서 작전요원이 필요 할 때마다 당시 막강한 권한을 자랑하던 중앙정보부의 지시로 정보부대에서 근무하던 UDT선배들이 진해까지 내려와 맘에 드는 인원을 2~3명 골라서 발령내버렸다고 한다. 그러다 60년대 말부터는 수십명씩 인천으로 갔다고 회고 한다.(김건식 UDT 14기생에 따르면 60년대 말부터는 UDU에 정식 UDT수료생보다 퇴교생, UDT단기교육 이수자들이 더 많았다고 회고.)[6] 부산 해군기지에 파견 된 현역 네이비 씰 외에 따로 예비역 씰 대원들이 부대안에 상주하며 전술을 교육시키고 같이 훈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 특수임무전대 창설과 동시에 교육훈련전대는 없어지고 예하 교육훈련대들은 각자 전대 직할로 배속이 되었다[8] 2023년 1월 1일부로 특수임무전대를 창설하여 전투 작전수행 능력을 보강 중. #[9] 1993년 12월 육군특수전사령부제707특수임무대대로부터 해상 대테러 임무 이관. 제1, 3, 5특전대대 모두 '군 대테러특수임무대' 해상 임무를 맡고 있으나, 국가급 '대테러특공대' 해상 임무는 특수임무대대에서 맡고 있다.[10] 1968년 5월 1일 창설(국방명령 제16호), 2017년에 대대급 부대로 증편되었다.[11] '선견'이라는 뜻은 먼저 보낸다는 뜻이고 '선견작전'은 대규모 부대의 상륙 진출에 앞서 파견되어 작전함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해병대의 '상륙작전 능력 보강 계획'에 따라 특전전대 예하에 초창기 수중파괴대(UDT)를 모체로 하는 '선견작전대대'가 창설되었다. #[12] 대한민국 국군특수부대특수작전(특수전)부대와 특수임무부대로 나뉜다. 해군 해난구조전대(SSU)는 편재상으로는 특수전전단에 예속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다르게 움직인다. 직별자체도 UDT대원들과는 다르게 잠수이다.[13] 예전에는 육군특수전사령부처럼 지역대라는 명칭을 썼지만 이후 작전대라는 명칭으로 바꿨다.[14] 육군특수전사령부제707특수임무단과 같이 경찰력의 한계로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여 대책본부의 장이 요청하는 경우, 군사시설 밖에서도 경찰의 대테러 작전을 지원할 수 있다.[15] 폭발물처리(EOD) 임무는 국방명령 제16호 1968년 4월 22일 부여되었다. 임무 부여에 따른 사전작업으로 1966년 장교 1명, 부사관 2명이 미 해군 폭발물처리 교육과정에 보내졌으며 최종적으로 1968년 5월 1일에 폭발물처리대가 창설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이후 2017년에 확대 개편하여 폭발물처리'대대'로 승격, 독립시켰다. 이는 폭발물처리 임무를 수행하는 단위부대 중 전군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대이다. #[16] 요즘은 소속 작전대와 상관없이 초임하사들이 초급반 교육과정 수료 이후 이어서 해상대테러(MCT) 교육을 이수하는 추세이다.[17] 특전병이 배속된다 하더라도 이는 작전요원으로 배속된 것이 아니다.[18] SEAL 임무는 미국의 UDT가 Navy SEAL로 바뀌었으므로 미군의 편제와 임무를 따라가는 한국군도 자연스럽게 UDT에게 보다 넓은 범위의 작계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19] 처음부터 지상 임무에 특화된 육군 특전사 707특임대에게 해상대테러 임무를 부여했다는 사실이 넌센스다. 부대원 개개인의 해상작전 숙련도 차이는 물론이고 707특임대는 바다와 거리가 먼 내륙에 있어 해상훈련을 시행하기도 마땅치 않으며 해상대테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자산 운용 또한 해군의 협조 없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20] 제1, 3, 5특전대대 모두 '대테러특수임무대' 임무를 맡고 있으나, 국가급 '대테러특공대' 임무는 특수임무대대에서 맡고 있다.[21] 기뢰전대는 제5성분전단 소속으로 예속, 구조전전대는 해난구조대로 개편후 제5성분전단 제55군수지원전대 소속으로 예속되었다.[22] 쉽게 설명하자면 2007년 UDT/SEAL + SSU + 기뢰전대 = 특수전전단 → 2009년 특수전여단(UDT/SEAL) → 2012년 특수전전단(UDT/SEAL). 2007년의 특수전전단이 UDT, SSU, 기뢰전대 등 여러부대 통합의 전단이었다면 2012년 탄생된 특수전전단은 UDT 독자 확대개편의 특수전전단이다.[23] 제1특전대대 산하의 한 작전대로 있었던 폭발물처리대(EOD)를 독립대대로 확대개편시킨 폭발물처리대대가 창설되었다. 폭발물 처리 부대로서는 전군 최대 규모. #[24] 해군/해병대의 '상륙작전 능력 보강 계획'에 따라 초창기 수중파괴대(UDT)를 모체로 하는 선견작전대대가 창설되었다. #[25] 작전기밀 제58호[26] 원래 장교 13명, 부사관 16명, 병 103명 총 132명으로 편성되었으나, 실제로는 지휘부 21명, 각 소대 23명 씩 4개 소대로 총 113명으로 편성되었다. 다만, 1981년 특수공작대로 개칭되기 전까지 단 한번도 완편된 적은 없다.[27] 해본기밀 제1762호, 단기 4287년, 서기 1954년 6월 19일[28] UDT/SEAL의 창설 당시 명칭이 수중파괴대였다는 점을 근거로 UDT는 해군의 공병부대라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도 했으나 한국 UDT는 창설 기획부터 미국 UDT를 모델로 하였고 미국 UDT 교육과정을 수료한 인원들로 창설되었기 때문에 창설 당시부터 공병부대와는 다른 성격의 부대였다. 실제로도 당시 한국 UDT는 부대차원에서는 북파공작을 위한 요원 양성을 담당했고 UDT요원은 북파공작을 실행했던 만큼 이러한 주장들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즉 처음부터 해군 특수전을 위한 부대였다. 현재는 스쿠버가 대중화 되어있지만 당시엔 스쿠버는 군대가 아니면 어디서 배울 수도 없는 초고도의 기술 그 자체였다.[29] 해사 5기, 美 UDT 11기, 해군 대령 예편[30] 1969년에 개봉된 남태권 감독의 영화 '사나이 UDT'의 주제곡이다. 그 이전에도 UDT 부대가가 있었으나, 프로 음악가가 작사, 작곡하여 완성도가 더 높은 이 곡으로 갈아탄 것으로 추정된다.[31] 김지훈의 '내고향 처녀'가 원곡.[32] 봉봉 사중창단의 육군 김일병이 원곡으로 UDT 교육 매 기수마다 만들어서 부르는 기수가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아서 UDT 교육에 위탁교육 들어온 타군 요원들에 의해 특전사와 해병수색대 등의 타 부대들에까지 퍼지게 된 대표적인 히트 싸가이다. 특히 해병수색대에서는 '수색대가'라는 제목으로 해병수색대의 대표 군가로서의 지위까지 가지고 있다. 저 기수 당시는 교육기간이 4개월이었기 때문에 원래 가사는 "수중 훈련 4개월의~ " 였으나 그 후 교육기간이 6개월로 정착된 후에는 자연히 저 싸가 가사에서도 '6개월'이라고 바꿔서 부르게 되었다. 2011년 3월 4일 KBS 2TV 금요기획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 세계 최강 UDT/SEAL'에서 대원들이 직접 부르는 모습이 나온다.[33] 미국민요I've Been Working on the Railroad가 원곡. 대원들에게 가장 애창되는 군가 중 하나이다.[34] 나훈아홍시가 원곡이다.[35] 부대를 개판으로 운영하는 장교들때문에 실전적인 훈련을 못하는 현 특전사의 실태를 풍자한 가사다.[36]네이비 씰의 대표적인 군가 'We are the sons of UDT'를 개사해서 만든 노래다. 한명이 독창으로 한마디씩 선창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똑같이 한마디씩 따라 부른다. 타군에서 온 위탁 교육생들과 함께 부르며, 중간에 UDT를 풍자한 가사는 타군이 부르고, 답가로 특전사를 풍자한 가사는 UDT만 부른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센스있게 서로를 풍자하는 것이 특징. 63-2기 인원들이 수료식에서 해당 군가를 부르는 영상.[37] 보통 연 2회차 교육인 테크 2기에 타군 위탁 교육생들이 입교한다. 특전병 교육생들은 테크 1기에, 타군과 타국 위탁 교육생들은 테크 2기에 입교.[38] 영화 태양의 눈물 참고.[39] 참고로 전술의 노출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동맹국이나 우방국이라 할 지라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부분은 연합훈련을 하며 순간적으로 캐치하거나 부대원 간 개인적 인맥, 군 수뇌부의 정치외교적인 노력이 총동원된다. 네이비 씰이라고 한 없는 아량으로 대한민국의 해군특수전전단(UDT/SEAL)을 교육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런 이유로 UDT/SEAL의 본진인 진해 해군기지 소재 부대는 대한민국 국군경찰특공대, 해양경찰특공대와 합동훈련을 꺼리고 합동훈련을 하더라도 전술 노출을 최소화한다. 이 때문에 UDT 출신 해양경찰공대원이 훈련 협조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40] 어디까지나 한국군 내에서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지 미군 수준의 자유분방함을 기대하고 입대를 하면 안된다.[41] Standard Operation Procedure. 어떤 임무에서는 어떤 장비를 착용하고 어떤 전술을 사용한다 등을 모아놓은 절차. 보통은 팀 단위로 SOP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자기 팀 안의 SOP와 자기 보직에 따라 행동양식과 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42] 대테러특공대는 제707특수임무단, 경찰특공대, 해양경찰특공대가 포함된다.[43] 대테러특수임무대는 공수특전여단 특수임무대, 해병대 특수수색대대, 공군 특수임무대, 제35특수임무대대 등이 포함된다.[44] 해군장교는 특수전 병과가 따로 없다.[45] 신분 불문 동일하게 교육 받은 뒤 각 신분에 따라 후반기 과정이 이루어진다. 해당 과정의 마지막 주가 바로 그 유명한[46] 부사관,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1년에 두 기수씩 뽑다가 특정 기수 이후로 1년에 한 기수씩만 선발하고, 일반적으로 그 해 첫 기수에 입교한다. 이례적으로 2017년에는 2차례 선발하였다(63-1기, 63-2기).[47] 군인화 교육으로, 민간에서 바로 특전부사관으로 지원한 인원은 물론 수병과 타군 현역들도 일괄적으로 교육사령부 부사관교육대대로 입교하게 된다. 그곳에서 다른 직별의 부사관후보생들과 동일한 부사관 기수를 부여 받고, 동일한 기초군사훈련을 4주간 받다가 특수전교육훈련대대로 넘어가게 된다.[48] 이미 임관하여 실무 생활하는 중인 다른 직별의 현역 해군 부사관은 곧바로 해당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신병교육대 내지는 부사관교육대에서 군인화, 간부화 교육을 진즉 수료하고 임관했기 때문에 본인의 부사관 임관 기수는 유지되고 특전과정 교육 기수만 새로이 부여 받게 된다.[49] 특전 직별의 임기제부사관(해군특전병 출신 전문하사)이 단기하사 전환 혹은 연장 복무로 인하여 입교하게 될 경우 이 과정만 받는다. 병 신분일 때 이미 이수한 특수전 기본 과정과 기본 공수 교육은 받지 않는다.[50] 장교의 경우 특수전 병과가 따로 없기에, 함정 병과로 임관 후, 실무에서 함정 근무를 하다가 차수에 맞추어 지원해야만 한다.[51] 다른 직별 현역 해군 부사관의 특전부사관 지원과 마찬가지로 기초 군사 교육을 생략하고 해당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A] 명칭만 장교 초급반 과정일 뿐, 부사관의 초급반 교육과정과 동일하다. 부사관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수료식도 같이 한다. 교육에서는 병, 부사관들과 똑같은 위치의 교육생이기 때문에 훈련교번을 받을 때 앞 번호를 받는 것 말고는 어떠한 장교로서의 대접(?)도 없다. 교관들이 그래도 부사관이기에 장교 교육생에게 존대는 해준다. 하지만 말만 존대할 뿐 언행이나 행동, 구타까지 부사관에게 하는 행동과 똑같다고 한다. 예를 들어 "1번 니는 ㅅㅂ 뭐하세요?"라던가 "니가 그러고도 장교에요?"라던가 "그 따구로 할꺼면 배나 쳐 타러가세요"라던가... 존중받으면서 갈굼을 받는게 어떤 느낌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사전에 교관들도 계급장 때고 대우할 것을 고지하고 퇴교하거나 수료하고 찾아오면 정중하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하고 훈련에 임한다.[53] 일반학(지옥주가 포함된 특수전 기본 과정)과 잠수학(부사관/장교 초급반 과정의 일부)까지 같이 교육을 받았다.[54] 특수전 기본 과정 5주+특수전 후반기 병 과정 5주[55] 특수전 기본 과정 6주+특수전 후반기 병 과정 5주[56] 이 경우에도 임관 후 대략 2~3회 정도의 UDT 지원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A] [58] 장교는 여전히 실무 인원만 지원 가능하다.[59] 출신 예비역에 따르면 인원이 워낙 적은 공군 쪽 특수부대를 제외한 모든 특수부대 출신자들이 UDT에서 재복무했었거나 재복무 중이라고 하며 특수부대들 중에는 다른 특수부대 복무 경험자나 퇴교 경험이 있는 인원들의 지원을 꺼리고 입교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부대들도 있는데 UDT는 재복무를 희망하거나 심지어 퇴교 경험이 있는 인원들 일지라도 입교 테스트에 합격만 한다면 출신 부대나 과거의 실패에 대한 편견 없이 입교 시켜주는 편이다. 물론, 면접관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질문하였을 때 소명을 잘하고 앞으로의 각오를 잘 밝혀야 한다.[60] 2018년 단 한차례, 연 3회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61] 실무생활을 하다 UDT에 지원한 현역부사관이 아닌, 민간에서 UDT 부사관을 지원한 자[62] 이 과정에서 퇴교하면 귀가하거나, 미필자들은 해군기초군사교육단으로 편입해 남은주차 교육을 받고 해군 수병으로 전환하여 복무할 수 있다.[63] 이 과정에서 퇴교하면 귀가하거나, 미필자들은 귀가 혹은 해군 수병 전환 후 복무 둘 중 선택할 수 있다.[64] 지옥주 이후에 일주일간의 회복 기간이 주어진다고 보면 된다. 이 기간 동안 임관식 준비를 한다.[65] 하사 임관 후에 퇴교하면 타 직별로 전환하여 복무를 하거나, 본대에 남아 유급을 하여 다음 기수의 초급반 교육에 다시 입교할 수 있다. 참고로 타 직별로 전환하여 복무하더라도 복무 기간 중에 실무에서 다시 UDT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66] 정말로 TO가 꽉 찼다기보다, TO자체를 줄였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해군은 여타의 군들보다 인력난이 심한 상황이다.[67] 육군, 해병대, 공군[68] NCDU와 UDT는 미 해군의 단독부대들이었고,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상륙작전에 앞서서 수중 지리 조사, 수중 장애물 제거, 해안의 적 경계병 제거, 레이다 시설 파괴, 해안정찰 및 습득한 정보 보고, 해안 기습타격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69] 지금의 한국 UDT현역대원들이 미국 네이비씰의 BUD/S 에 지원하기 위해선 영어능력이 어느정도 되어야한다. 뜻이 있는 UDT현역들 중에서 영어회화 공부를 하다보면 20대후반 ~ 30초반이 되어서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국 네이비씰 BUD/S 과정을 퇴교하기도 한다. 신체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영어회화가 안된다면 미국 유학은 꿈도 못꾼다. 여기서 운동수행능력이 뛰어난 수많은 유소년 엘리트체육 출신들이 걸러지는 것도 이러한 현상에 한 몫 한다.[70] 여담으로 UDT/SEAL 전우회 사이트에 명시되어 있는 전우회 가입 자격요건에 따르면 타군 수료자 또한 전우회에 가입 할 수 있다. 교육을 수료했다면 해군이 아니더라도 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듯 하다.[71] 속칭 양복아저씨들. 이들은 여기 외에도 육군 특전사에서도 공수교육을 추가로 받는다고 한다.[72] HID(정보사령부 육상)는 그 후로 교육 기간이 짧은 특전사의 해척조(SCUBA) 교육으로 위탁교육을 갔다고 한다. 2000년대 중후반 정보사령부 육상 측에서 단기 스쿠바 교육과정을 의뢰했으나 UDT 측에서 새로운 교육과정 개설은 안되고 교육 수요가 있으면 UDT 초급반 위탁교육 T.O를 줄 테니 초급반에 입교하라고 하여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된 일화가 있다. 이후 HID에도 자체적으로 해상교육을 만들어 실시하고 있다.[73] 언론에 공개된 사실로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체에서 한국형 호위함 FFK 3척을 방글라데시 해군에 수출하였는데, 그에 대한 리베이트의 성격을 띠고 있다.[74] 참고로 방글라데시 해군 군복, 정복에 UDT 휘장이 달려있으면 현지에서 넘사벽 아이템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75] 보통 특전사의 해상 특수전 교육은 해상척후조(SCUBA/COMBAT DIVER)나 UDT 초급반 위탁교육 둘 중 하나만 받으며, 장기복무자들 중엔 두 교육을 모두 수료한 대원들도 존재하나 이 경우는 극히 드물다.[76] 물론 군인 피교육생들과 같이 진행한 게 아니라 교육을 체험하러 들어온 양궁 국가대표선수들만을 위해 별도로 교육과정을 마련했다.[77] 군사훈련과 운동선수들의 훈련은 목적도 다르고 종목 경기력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내부적인 기강 확립이나 동기부여 목적이었을 확률이 크다.[78] 최초 5년간 선수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으나, 이듬해 협회의 선처로 징계가 풀렸다고 한다.[79] 참고로 미 해군 SEAL의 경우는 BUD/S 수료 후에도 SQT(SEAL Qualification Training: SEAL 자격 훈련)라는 추가적인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80] 그래서 현재까지도 훈련 중 욕설과 구타/가혹행위가 남아 있는 부대다. 물론 훈련 시작 전에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감당하겠다는 동의서를 받고 교관들도 교육생들에게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지, 퇴교생에게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훈련 중 가혹행위라는 건 변함이 없기에 교관들이 퇴교생 부모들에게 전화로 항의를 받거나 방첩사에 신고당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이곳은 누가 오라고 강요해서 지원하는 곳 아니고 본인이 직접 원해서 지원해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지원할 것이면 이 점을 잘 생각하고 지원해야 한다.[81] 해당 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훈련받던 시기가 딱 월드컵 기간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미국전이 열린 2002년 6월 10일이 지옥주 시작일이었다. 실제로 점심 식사 후 남은 시간에 오 필승 코리아 구호를 연습하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중요한 훈련 중 하나인 지옥주 기간이었기 때문에 경기 시청 그런 건 없었다. 카메라가 밖의 교육생들과 당시 후반 35분을 자나던 TV 경기 장면을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82] 김00 소령 본인이 블로그에 밝힌 군 복무 약력에 따르면 수색 교육과 해군 UDT 18기 위탁교육을 수료하였으며 해병 수색대장 역임을 비롯하여 해병 북파부대였던 MIU에서 복무, MIU의 해체 이후엔 해군 UDU에도 복무했다고 밝히고 있다.[83] 육군 첩보부대장을 역임한 박복규 예비역 대령 회고.[84] 당시, VIP의 직접지시라는 말이 있다.[85] 59-2기는 모병 자원 없이 실무에서 근무하고 있던 부사관, 장교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됐다.[86] 현재 국방부는 특수작전부대들의 노후화된 K1A를 교체하기위한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을 진행중이며 이에 앞서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2형 사업이라는 사업을 통해 도입되는 K13(STC16)은 전시에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는 해군 특수전전단 특전전대(UDT/SEAL), 특전사 13특수임무여단, 공군 5공중기동비행단 259특수임무대대 공정통제반(CCT), 정보사 특임부대에 본 사업이 성사되기 전에 우선 지급된다.[87] 청해부대 초기 인원들은 당시 한국군 기준으로는 혁명적 신문물인 레일과 광학장비를 결합한 5.56mm의 K1A를 가지고 갔다. 당시 한국군 기준으로 레일과 광학장비를 결합한 대테러 주력화기로 5.56mm의 화기 사용은 혁명이었다. 추후에 청해부대 K1A는 HK416으로 대체하였다.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HK416사용[88] 청해부대 파병을 통해 미군이 아닌 프랑스 해군 코만도를 비롯하여 노르웨이, 스페인과 같이 우리나라와 군사적 교류가 드문 국가의 해군 특수부대들, 심지어 일본 해상자위대 특별경비대와도 연합훈련을 할 정도이다.[89] 청해부대 파견 초기라 현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장구류와 개인 병기들의 모습을 잘 보도록 하자.[90] 방탄모 뒤쪽과 오른쪽 어깨에 팀내 자신의 보직을 표기한 패치를 붙여둔 점이 인상적이다. AW(자동화기사수)가 K1A를 들고있는 이유는 실내전 훈련이기 때문이다.[91] AOR2라고도 불린다[92] 야전부대에 있다가 소령 때 지역대장을 하기 위해서 특수전에 관심이 없어도 진급을 위해 들락거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당연히 임기만 채우고 떠나게 되는데 정작 그러면 또 야전에서 적응을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가 될 위험성이 있다.[93] 보급 군화를 신지 않고 개개인이 편한 등산화나 기타 전술화를 신어서 전투력에 향상이 온다면 'OK' 부무장인 권총을 어디에 착용한다던지 기타 장비들을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장착할지는 대원 네가 편하고 경험 많은 선배들이 봤을 때도 합당하다면 'OK' 이런 식이다. 원래 특수부대라면 정말 당연한 것들이다. 다만 부무장 착용 위치 같은건 보통은 팀 단위 SOP에 포함되어 있다.[94] 육군의 '화기'를 말한다. 해군의 특수부대인 관계로 해군 용어인 '병기'로 표기한다. 참고로 공군에서는 '총기'라 한다.[95] 국군의 K100 계열탄[96] 제 3 특전대대에서도 사용중인 걸로 확인됐다.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80209&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005[97] TAC-50C로 혼동할 수 있으나 탄알집의 형상이 다르다. 해당 총기는 LRT-3의 리시버를 Cadex Defense의 .50cal용 Dual Strike Chassis와 조합한 것으로 TAC-50C도 동일한 형상의 Chassis를 TAC-50용으로 조립한 것이다.[98] 'Accuracy International Chassis System'의 줄임말로 M700을 아틱 워페어 타입 총몸(그 중 L96 타입)으로 컨버전한 모델.[99] 캐나다제 50구경 저격총[100] 그 뒤엔, 레밍턴 870이 보이고, 더 뒤는 M1897 버전 트렌치 건도 보인다.[101] UDT에서 대위로 전역한 이근은 미 SEAL의 초급반 과정이 UDT 초급반 과정보다, 정신적으로는 더 수월하지만 육체적으로 더 힘들다고 이야기 했다. 정확히는 정신적인 시험이냐 육체적인 시험이냐를 놓고 세부적인 부대문화에 따라 훈련 방향이 엇갈린 것이다. 미 씰 전역자들이 이야기하는 권장기준도 평가 실시 거리나 자세를 제외하고는 해군 특수전전단 전역자들이 이야기하는 권장기준과 대놓고 같다. 애초에 해군 특수전전단은 Navy SEAL의 상당부분을 벤치마킹하여 만든 부대이기 때문. 참고하자면 Navy SEAL 지원자들의 평균적인 BMI 수치는 25라고 한다. 키 175cm 기준으로 77~79㎏이니 참고해두면 좋을 것이다. 체지방이 있는 편이 추위를 견디는데 조금 더 수월하다.[102] 이를테면 현역징집병의 경우 어지간한 폐급이라도 큰 사고만 안치면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에 배치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훈련부대 입장에서는 골치아픈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 지휘관에게도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어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묻고 수료시키는데 집중하기 때문.[103] 우수한 자원을 선발하기 위해 골라내고 떨어뜨리는 과정. 그래도 의외로 가능성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도록 놔두지는 않는다.[104] 특정 기수 이후로 체력배양, 수영능력배양 기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갑자기 난이도가 높아졌다.[105] 순위가 이렇지만 위의 구보기준은 짧은 시간 준비해서 충족시키기가 상당히 힘들다.[106] 해군부사관 261기(UDT 64-3기)부터 특전(UDT), 잠수(SSU)계열은 영어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107] 테크3 교육일정의 경우 2018년 261기(UDT 64-3기)에 단 한번 실시되었고, 그 이후로는 실시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 교육의 진행에서의 교관, 교육생의 피로도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있고, 해군모집 질의응답 게시판에 비슷한 답변이 게재되었다.[108] 수영장 이용 가능 시간, 해양의료원 이용 시간 등 일정에 따라 달라진다.[109] 턱걸이 시 장갑 사용은 불가능하다.[110] 턱걸이의 경우 2010년대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만점기준이 20개였는데 현재 2020년 기준으로 14개가 만점이다. 턱걸이 만점기준 하향의 이유를 전화로 문의한 결과, 육상 선출과 같이 달리기를 잘하는 인원을 뽑기 위해 턱걸이의 비중을 낮췄다고 한다.[111] 날씨에 따라 맞바람이 치기도 하며 바닷가라 기본적으로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는다.[112] 원래는 자유형 200m 시간제한 없음, 평영 200m 시간제한 없음, 입영 5분 이였으나, 263기(65-1차) 후보생 대상자 실기검정부터 자유형 200m 제한시간 5분, 평영 200m 제한시간 5분, 입영 3분으로 새롭게 실시되었다.[113] 지원자 수에 따라 달라지나 대개 비슷하다.[114] 단, 실기 점수 69점으로 최초합격한 후보생이 있다.(65-1차 합격생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115] 총점에서 필기 점수 배점이 실기 점수 배점보다 높다. 총점 270 = 필기 130 + 면접 40 + 실기 100 (+ 가산점).[116] 실기 점수 최소 95점.[117] 해군 부사관 지원자 중 특전 계열 지원자들도 필기 시험 성적우수자가 많았다(275기 특전 1등 122점). 어학 및 자격증 가산점 등으로 20점 이상 가산점을 얻지 못했거나, 면접에서 매우 우수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면 필기 100점 미만은 실기에서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더라도 입교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역대급 지원자 수 폭등으로 합격자 컷이 필기+실기 점수 합 200점 이상으로 예상되었다고.[118] 2001년을 마지막으로 전투 보직이 없어져서, 현재는 작전팀으로 배속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공수기초교육을 모두 수료했지만, 현재는 낙하산 등을 정비하는 장비정비대 소속 병사를 제외하면 공수기본훈련을 본인이 선택하여 이수하는것으로 변경되었다. 현재는 부대일정등에 밀려 교육을 받고싶어도 못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119] 부사관과 장교의 경우,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 진해 본대 인원이 전방 파견부대로 순환 배치된다.[120] 막타워가 아닌, 실 헬기 패스트로프이다.[121] 부사관,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1년에 두 기수씩 뽑다가 특정 기수 이후로 1년에 한 기수씩만 선발하고, 일반적으로 그 해 첫 기수에 입교한다. 이례적으로 2017년에는 2차례 선발하였다(63-1기, 63-2기).[122] 매년 10월 말~11월 초[123] 다만 대부분은 갑판병으로 빠진다.[124] 의무복무만 끝내면 집에 가는 특전병들이 무조건 전방 함대로 배치받는 이유이다. 간부 대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서는 후방으로 보내 새로운 훈련을 받게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복무를 할 수 있게 휴가와 같은 휴식으로 피로도를 조절해 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전방을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를 위해 특전병들이 전방 자리를 채워주고, 대신 간부들은 전방-후방 순환 근무를 하며 개인 역량 강화에 힘을 쓸 수 있게 하는 것.[125] 3년의 근무경력이 요구되며 이중 하사로 최소 1년을 근무해야 한다. 참고로 병 때 근무한 경력도 모두 산입해주기 때문에 20개월의 병 복무기간을 완료하고 약 16개월만 임기제부사관으로 근무하면 특수부대 특채 중 허들이 가장 높은 소방 특채까지 가능해진다.[126]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지금 전 군에 필요한 것은 관리 감독하고 명령 하달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간부가 아니라 직접 총 들고, 장비 조작하고, 어느 정도 눈치 보며 착실히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숙련된 병이 필요하다. 참고로 징병제를 시행하거나 했던 타국에서는 직업군인 신분의 병이 존재하여 특정 병과나 부대는 사실상 모병제 군대처럼 돌아간다. 러시아군도 소련시절부터 징병제를 시행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해군과 공군은 모병제로 운영한다. 한국도 육군 일반병과 상근예비역 정도를 제외하면 해, 공군, 해병대, 육군특기병은 엄연히 모병으로 취급되지만 현실은 육군 징집병의 대체복무처럼 취급해버린 탓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127] 민간 지원자들은 특전병, 특전부사관에 모두 지원 가능하지만 이미 복무 중인 수병, 해군 부사관, 타군 현역들이 UDT 대원이 되고자 지원할 경우 특전부사관 말고는 없으니 전반적으로 특전병보다 특전부사관으로 인원이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경쟁률이 높아지고 장기인력이 될 수도 있는 인원이다보니 평가도 깐깐해지는 것은 당연지사.[128] 다만 선발 인원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129] 함정 병과를 보면 항해와 기관 장교만 있을 것 같지만 UDT 장교처럼 육상 근무자도 있다.[130] 함정 병과 장교만 특수전전단에 지원이 가능하다. 정훈, 정보, 재정 등 함정 외 병과의 장교는 지원이 불가능하다.[131] 일반적으로 중위(진) 시기를 말한다.[132] 장교들은 진급을 위해 반드시 승함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UDT에서 근무를 해도 승함 경력이 채워졌으나 형평성 논란으로 UDT 장교도 배를 타야 되는 것으로 바뀐 상황이다. 물론 특수전장교의 특성상 꼭 필요한 수준만 채우면 용인해주기에 타 함정 장교들에 비해선 그 구실만 갖추라는 수준이지만, 적절한 정책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결국 2024년 기준으로 특수전전단 내부에서 근무해도 승함 경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바뀐 상황이다. 다만 진급 심사 측면에 있어서는 함정을 타는 장교들보다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133] 참고로 이 점은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장교 오퍼레이터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한다.[134] 해군 장교 자체가 장기 진급이 잘 되기는 하지만 UDT 장교의 경우 특히 장기가 잘 되는 편이라고 한다.[135] 2018년 SSU가 다시 편제상 특수전전단으로 들어왔다.[136] 미국 UDT로 유학을 가서 B-6 교육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당시에는 한국 UDT에 장교과정이 없어서 UDT 장교로 근무하려면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야 했다. 이후 조광현이 부대 지휘관을 역임하며 18기부터 장교 인원을 초급반 교육에 입교시켰다.[137] Basic Underwater Demolition/SEAL[138] 그 외에 1968년 특수전 자격 휘장을 도입, 1983년 전대 창설 당시 지금의 전단에 쓰이고 있는 부대마크와 “불가능은 없다!”라는 부대모토를 만들어내는 등 초창기 부대의 지반을 다지는 데 공헌한 바가 크다.[139] 인터뷰 기사[140] 생전 교육훈련대 재직 당시 모습. #[141] 당시 팀장은 이근.[142] 현재의 바뀐 명칭으로는 작전대장.[143] 239기[144] 하지만 지옥주 끝나고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퇴교했다. 미씰 버즈 과정은 지옥주만 통과하면 롤백할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라 롤백하려 했지만 본국에서 복귀 명령이 떨어져 어쩔수 없이 최종퇴교 확정짓고 귀국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145] 초급반 과정 중 지옥주와 생식주를 촬영한 KBS의 다큐 수요기획 '지옥에서 살아오라!' 편과 '불사조로 거듭나다!' 편에 출연했다.[146] 1진 당시 부팀장은 한주호.[147] 294기[148] SEAL Qualification Training[149] 특전사 SOTAC 과정과 미 네이비 씰 장교 과정, SQT 과정은 UDT 최초로 수료했다.[150] 인터뷰 1 인터뷰 2[151] 특히 수료율 7%(장교 포함 15명 수료라고 한다.)의 악명 높은 기수인 55-1기를 수석 수료해서 '강철의 로건'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 기수는 위탁교육을 받으러온 해병대 특수수색대원 전원이 퇴교 조치를 받았을 정도 였다(!!).[152] 53-2차인 에이전트 H를 선배로 칭하는 것으로 보아 54차 이후 기수로 추정되며, 최근 이근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김계란이 자신의 교육생이었다는 것을 밝혔다. 참고로 이근의 교육 기수는 59~60.[153] 개명 전 이름은 김범석.[154] 헌병으로 복무.[155] 2014년 3월에 입대, UDT 61-1기 수료, 2019년 5월부로 중사 전역. #[156] 2015년 3월에 입대, UDT 61-2기 수료, 2019년 5월부로 중사 전역. #[157] 원래는 60-1기 교육에 임했으나 퇴교하고 다음해에 다시 도전했다 또 퇴교하다 그 다음해에 결국 수료해 도전을 3번해서 끝내 수료한 근성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이로인해 진급 순서가 밀려서 결국 하사로 전역할수 밖에 없었다.[158] 미국에서 성장하였으나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으로 귀국. 중앙대에 입학하여 다니던 중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159] 영상 전공자 답게 세련된 영상미가 돋보이며 해외 네티즌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끌어내어 외국인 구독자 비율도 높은 편이다.[160] 대한민국 해군2019 해군 홍보전사 화보촬영 Making Film![161] 대한민국 국방부[대한민국 최.극.강. 국군] 불가능은 바다에 묻었다[162] 2023년 제2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시상식에서 '신인남자예능인상'을 수상하였으며, 2023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163] UDT 출신은 아니고 육군 대위 출신이다.[164] 실제 국군에선 해군 전역 후 육군으로 재입대하지 않는한 이런 타군간 차출 이동이 불가하다.[165] 삭제 장면에서도 덩치 있는 깡패 한명이 박창민한테 도발 했다가 역으로 도발에 걸려 덤볐다가 바로 제압 당한뒤 "내 UDT잠수기록 최고 6분 35초인데 한번 버티면 살려줄게" 하는둥 뒤에 많은 말단조폭들이 있었지만 덤비질 못하고 고건수집에 들어왔을때도 "너때문에 잠수기록 또깼다"고 말한다.[166] 종종 외국영화에서 전직 특수부대 NAVY/SEAL 출신이 악역으로 나오는걸 모티브를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167] 하지만, 이후 크고 작은 과거의 행적들이 폭로되었고, 다른 교관들의 과거 행적까지 연이어 폭로되며 논란을 겪기도 했다.[168] 2021년 UDT/SEAL 지원자 수는 1800여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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