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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2:59:09

9번 교향곡의 저주

1. 개요2. 원인3.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4. 9번까지도 못 가 본 작곡가들5. 번호를 아예 안 붙인 작곡가들6. 저주를 극복한 작곡가들7. 저주와는 거리가 먼 다작가들8. 관련 문서


1. 개요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이후[1] 작곡가들은 9번을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한다는 징크스. 클래식 음악계에서 꽤 자주 언급되었고 현재에도 간간이 언급되는 유명한 떡밥 중 하나.

2. 원인

고전 시대까지는 한 사람이 작곡한 교향곡의 숫자가 무척 많은 편이었다. 모차르트의 경우 41번까지의 교향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68번까지 작곡했으며,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하이든은 현존하는 교향곡을 기준으로 무려 107곡을 남겼다.[2] 하이든 때만 해도 교향곡이 귀족 등 특권층의 여흥 음악이 주류였기 때문에 거의 브금에 준하는 용도로 대량으로 작곡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의 개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베토벤 이후에는 교향곡이 주문에 맞춰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창작하는 대작(masterpiece) 장르로 격상되었다. 그 결과 교향곡은 작곡가에게나 음악팬들에게나 작곡자의 작곡 능력과 음악적 개성을 과시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향곡 장르는 견고한 형식 안에서 작곡자의 개성과 독창성을 표출해야 하며, 때문에 제대로 작곡하려면 상당한 능력과 노력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청년 시절에 수십 편의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는 초안을 남겼지만 30살이 되어서야 교향곡 제1번 단 한 곡을 완성했으며 나머지는 장년기 시절 이후에 작곡되었다. 브람스는 한술 더 떠서 교향곡을 구상한지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1번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 정도면 9번 교향곡을 써서 죽는다기보단 죽음이 올 때쯤 9번 교향곡을 쓰게 되는 것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을 듯하다.[3]

이런 작곡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베토벤이 모두 아홉 곡의 교향곡을 남기고 타계한 뒤로 수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대부분 9곡 이상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거나 9곡을 작곡한 이후 절필하는 바람에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떡밥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사실 베토벤 이후에도 교향곡 수가 9곡을 훌쩍 넘긴 작곡가들이 꽤 있지만, 대부분은 유명하지 않고 작품들도 대부분 음악적인 가치가 크지 않아 잘 언급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아무 작곡가한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는 대작곡가의 작품으로 현재까지 널리 연주되고 전집 음반이 발매되는, 그야말로 '고전'(classic) 음악계의 거장들에 한정된다고 보면 된다. 베토벤 이후 교향곡 분야의 대작곡가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작곡가는 대체로 브람스/차이코프스키/브루크너/말러/쇼스타코비치며 여기에 사람에 따라 슈베르트/베를리오즈/멘델스존/드보르작/시벨리우스/프로코피예프 등을 추가한다.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사람은 쇼스타코비치가 유일하다.

21세기에 활동하는 작곡가들은 의학 기술의 발달로 대부분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넘길 여건이 되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10개를 좀 넘긴 경우가 대부분이고 교향곡 문서에서 설명하듯 현대의 작곡 경향, 장르의 위상 등이 과거와는 또 다른 만큼 기계적으로 비교하기는 애매하다.[4]

3.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

4. 9번까지도 못 가 본 작곡가들

5. 번호를 아예 안 붙인 작곡가들

6. 저주를 극복한 작곡가들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의학이 발달한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들이다. 21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라면 뒤늦게 작곡을 시작하지 않은 이상 가뿐히 극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들 역시 19세기 이전에 태어났다면 저주를 극복할 만큼 장수하지 못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7. 저주와는 거리가 먼 다작가들

20곡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해 아예 저주 자체를 파괴해버린 작곡가들도 존재한다.

8. 관련 문서



[1] 41번까지 작곡한 모차르트(1756~1791)는 베토벤(1770~1827)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니 논외.[2]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라고 여겨지고 있다.[3] 요절한 슈베르트도 저주의 예시로 드는 경우가 있는데 슈베르트의 교향곡은 완성작만 따지면 7개이고 사실상 완성작급 인지도를 가진 미완성 교향곡까지 쳐도 7.5개라고 할 수는 있겠다. 물론 워낙 다작가라 이 만큼을 완성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지만.[4] 쇼스타코비치 이후에는 한스 베르너 헨체나 필립 글래스가 교향곡 다작의 계보를 이어가긴 했으나 잘 연주되지도 않고, 필립 글래스는 작곡 스타일 상 작품을 많이 쓰기 용이한 게 사실이라 굳이 빗대자면 낭만주의~근대보다는 바로크~고전주의 시기와 비교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글래스 스스로도 고전주의자를 표방하기도 했고.[5] 대지의 노래는 사실 연가곡집이라고 우겨도 교향곡이라고 우겨도 양쪽 다 납득이 갈 정도로, 그 사이에 있는 애매모호한 작품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지의 노래 문서 참조.[6] 폴리스타일리즘으로 쓰인 굉장히 도전적인 색채의 대곡으로, 소련 당국의 연주 방해를 받았음에도 소련 음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7] 베토벤의 제자로 현재는 음악보다 베토벤의 제자 및 멘델스존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8]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들이다.[9] 다만 작곡가 스스로 리허설해보고는 마음에 안 든다며 연주를 포기했고, 공개 연주도 1991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한다.[10] 맨해튼 삼부작과 가을정원 등을 포함하면 10곡이 넘기는 한다.[11] 혹자는 글라주노프가 9번 교향곡의 작곡을 포기한 덕분에 장수한 것이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12] 한국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었다는데, 해외에서는 그냥 제목 없이 불리는 경우가 많다. 뭐야 이거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의 부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단악장의 작품인데 한국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주제가 인용된다.[13] 영문 위키백과, 국내 뉴스, 해외 뉴스[14] 예를 들어 베토벤 9번이나 말러 2, 3, 8번 같이 합창이 딸린 교향곡도 있는데 왜 합창곡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편성을 보면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바이올린, 비올라가 빠진 5관 편성에 피아노 2대가 쓰인 파격적인 편성이라 전통적인 의미의 교향곡이라고 보기가 애매하다.[15] 생전의 윤이상도 헨체가 젊은 나이에 너무 잘 나간다며 시샘했다고 한다.[16] 자기표절(...) 의혹이 자주 제기된다. n번 교향곡을 조금 바꿔써서 n+1번 교향곡이라고 발표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들이 볼때는 그냥 같은 n번의 개정판 정도로 보인다.[17] 쇼스타코비치의 말로는 제자들에게 '자네들이 쓰는 건 다성 음악이 아니라 잡성 음악'이라 지적했다지만, 정작 본인도 잡성 음악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15곡을 쓴 쇼스타코비치 입장에서도 먀스콥스키의 27곡의 교향곡이 어지간히 양산형으로 느껴졌던 것으로 보인다.[18] 동향인 핀란드의 선배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