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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C 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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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gle

1. 개요2. 배경3. 출시 및 생산
3.1. 연식별 변경 사양
4. 여담5. 둘러보기


AMC Eagle

1. 개요

미국자동차 업체인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이 1979년부터 1987년까지 판매한 준중형 크로스오버 차량이다.

당시 SUV픽업트럭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던 "사륜구동"이라는 개념을 영국 젠센(Jensen)과 일본 스바루에 이어서 일반 승용차에 채용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크로스오버 차량의 선구자들 중 하나로 역사로 기록되었다. AMC 브랜드로 출시된 마지막 차종이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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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식 AMC 이글 왜건. 처음에는 격자형 그릴 대신 세로 패턴의 그릴이 적용되었다.
1970년대 중후반의 AMC는 안팎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1차 석유파동 때만 해도 AMC는 소형차와 지프(Jeep) 브랜드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으나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도 연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1978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사륜구동차의 연비 규정[1]을 크게 강화하는 데 이르렀다. 이 조치는 총 31만대 가량의 차를 리콜하라는 판결, 당시 AMC의 기대주이자 각각 소형차, 중형차였던 페이서와 마타도어 쿠페의 무지막지한 개발비로 인한 손실까지 겹치면서 끝없이 추락하던 AMC라는 소규모 업체로써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나마 제너럴 모터스포드 모터 컴퍼니,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으로 대표되는 미국 3대 메이커는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라도 있었지만 AMC는 작은 규모에 상술한 이유로 재정적 여유마저 사라졌고, 결국 은행으로부터 대출까지 거절받은 AMC는 프랑스의 르노에 지분을 넘겨가면서 지원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그나마 AMC의 돈줄로 건재했던 지프조차 크게 흔들리던 상황에서, AMC의 엔지니어였던 로이 룬(Roy C. Lunn)이 적은 비용과 최소한의 자원으로 연비 좋은 사륜구동차를 만들 방안을 제시했는데, 당시 AMC의 준중형차였던 AMC 콩코드의 전고를 높이고 지프의 풀타임 사륜구동 설계[2]를 추가하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원래 로이 룬은 AMC가 지프를 갓 인수했을 당시 회장이었던 로이 채핀 주니어(Roy D. Chapin Jr)를 거쳐 AMC에 입사, 스바루 레오네를 모델로 당시 준중형 라인업이었던 AMC 호넷의 왜건 버전인 스포츠어바웃에 지프의 4륜구동 시스템 쿼드라트랙(Quadra-Trac)을 이식한 프로토타입을 제작했으나 유니바디 플랫폼 때문에 증폭되는 소음과 진동,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AMC가 4륜구동차 대상 연비규제에 대응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같은 제안을 "Project 8001 plus Four"라는 코드네임으로 승인하였다. 1976년 12월과 이듬해 1월 사이에 FF 디벨롭먼츠(Ferguson Formula Developments Limited, 줄여서 FFDL)[3]에 계약한 후 AMC 호넷 1대를 보내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게 했다. 이때 전고를 높인 뒤 기존의 14인치 휠을 15인치로 키우고 토크 스플릿이 기존에는 앞바퀴로 33%, 뒷바퀴로 66%가 분할되던 것이 50:50에 근접하게 맞추어진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고 이후 AMC에 반환되어 개발 과정에 활용되었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설계구성은 비스커스 커플링이 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LSD)로 적용된 NPG119 풀타임 4륜구동 트랜스퍼 케이스를 사용했으며, 프론트 디퍼런셜(차동장치)을 엔진 블록에 위치시키고 유니버설 조인트와 하프 샤프트를 통해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미국 4륜구동차 최초로 독립식 앞바퀴 서스펜션을 장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비스커스 커플링인데, 당시 기존의 4륜구동차에 쓰이던 수동 잠금식 트랜스퍼와 비교하자면 휠씬 부드럽고 조용하게 구동력을 전달하였고, 덤으로 구동력이 적은 환경에서 자동 잠금장치가 작동하면서 이전보다 항력이 낮았고, 연비도 훨씬 좋아졌다.

당시 AMC의 이사를 지낸 제럴드 메이어스(Gerald C. Meyers)는 연간 4만~10만대를 판매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토니 롤트는 원본인 호넷이 보급형 준중형차임을 고려하면 신차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질 것으로 전망하며 염려를 표했으나 AMC 측에서는 지프 왜고니어의 고급화 정책이 판매량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고급 4륜구동 SUV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 높은 마진까지 보장하고 있다고 설득했다. 또한 호넷 기반의 준중형차였던 콩코드도 퍼스널 럭셔리 카의 디자인 요소들을 수용하며 고급화를 단행했기 때문에 이글의 제품기획은 최종적으로 수용되었다.#

디자인 부문에서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신차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AMC의 수석 디자이너 리처드 티그(Richard A. Teague)[4]도 룬의 제안을 체택하였고, 룬의 프로토타입을 가져다가 휠아치와 그 주변에 폴리머로 된 스커트를 둘러 디자인을 보완했다. 디자인 과정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목표 판매량[5]도 어느 정도 잡히자, AMC에서는 1980년형으로 콩코드 기반의 3개 바디(4도어 세단, 2도어 세단, 왜건)을 출시한 뒤 소형차인 AMC 스피릿 기반의 바디(캄백과 리프트백)을 이듬해에 추가하기로 했다.

3. 출시 및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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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C 이글 2도어 세단
The Eagle Has Landed
이글이 상륙했다
- 1979년 TV 광고#[6]
1979년 8월. AMC에서 생사를 걸고 준비한 크로스오버 차량이 'AMC 이글(Eagle)'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판매되는 사륜구동차는 픽업트럭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SUV(및 지프)들, 아니면 구동력 보충을 위해 파트타임 4륜구동이 적용된 승용차의 두 부류로 크게 나누어졌는데, AMC 이글은 4륜구동 승용차이면서도 위에서의 두 부류의 중간을 메꾸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자동차 매체들도 승용차의 승차감 및 핸들링, 그리고 본격 사륜구동차의 험로 주파력이라는 각 장점들을 하나로 합친 "크로스오버"의 장점들을 높게 평가했으며, 수년간 아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던 소규모 회사가 만들어낸 혁신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혁신은 기존의 4륜구동차의 대안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냄은 물론, 미국 최초의 빙판길 주행시험장(Ice-driving school)에서 주행시험용 차량으로 채택되기까지 하였으며, 민간 고객들만이 아니라 의사와 경찰, 응급의료 종사자와 같이 응급한 상황을 자주 접하는 직종으로도 고객층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여러 가지 이루어졌다.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둬 차를 사기 위한 대기 기간이 6개월이나 되던 시기도 있었다.

1980년식으로써 처음 데뷔했을 당시에는, 콩코드를 기반으로 지상고를 76mm높인 2도어 쿠페와 4도어 세단, 4도어 웨건의 3가지 차체가 제공되었으며, 파워트레인은 114마력 4.2리터 직렬 6기통 엔진과 크라이슬러제 TorqueFlite[7] 3단 자동변속기, 풀타임 4륜구동의 단일 배합이 제공되었다. 기본 트림에는 파워 스티어링과 디스크 브레이크,[8] 15인치 휠, 흰색 섬유유리를 덧댄 화이트월 타이어가 적용되었으며, 리미티드(Limited)라는 상급 트림에서는 가죽시트 옵션과 두꺼운 제질의 차매트, AM 라디오, 우드그레인이 적용된 틸트 스티어링, 파워 락, 직물 썬바이져 등이 적용되었다. 선택 사양으로는 4스피커짜리 카세트 플레이어와 타코미터, 뒷유리 열선, 문루프, 크루즈 컨트롤, 안개등, 틸트 스티어링, 웨건 한정으로 제공되는 뒷유리 와이퍼와 워셔, 2종류의 트레일러 견인 패키지 등이 제공되었다.
파일:111220-1986-AMC-Eagle-sedan-2-e1605218306290-630x390.jpg 파일:111220-1986-AMC-Eagle-sedan-3-e1605218379740-630x390.jpg
1986년식 AMC 이글 4도어 세단. 세단형 크로스오버 4륜구동 차량은 지금도 상당히 보기 드문 존재이다.
한편, 쿠페와 왜건 한정으로 적용된 "스포츠(Sport)" 패키지에는 더럼(Durham)에서 만든 직물시트와 갸죽 스티어링, 티엠포(Tiempo)제 스틸벨트 레디얼 타이어, 스포츠 안개등과 하이빔(원거리용) 할로겐 헤드렘프, 검은색 그릴과 범퍼 및 전동 미러와 필러, 후미등 처리, 4X4 데칼 등이 적용되었다. 모든 이글에는 지바트(Ziebart)사의 부식방지 처리가 5년 이내에 반환 가능한 부식방지 워런티와 같이 제공되었으며, 타이어 이외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1년/12,000마일(약 19,312 km)간의 기본 워런티도 제공되었다. 모든 이글에는 알루미늄으로 도금처리된 나사와 모든 차체 페널에 적용된 전기도금, 에폭시 제질의 밑칠 페인트(프라이머), 플라스틱으로 된 펜더 라이너가 적용되어 나름 부식방지에 신경을 썼다.

세단과 쿠페는 콩코드 DL이 기반이 되면서, 비닐을 덧댄 지붕과 오페라 원도우가 적용되었으며, 콩코드와 마찬가지고 범퍼 양끝에 커버를 씌우는 한편, 범퍼를 차체 쪽으로 더 밀어넣으면서 미국 환경보호청(EPA)으로부터 소형 트럭으로 인증되어 승용차에 적용되는 5마일(8km/h) 범퍼 장착 규정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6999달러(2015년 기준으로 20,033달러)의 기본형 쿠페부터 왜건의 7549달러(지금의 23,607달러) 사이의 가격으로 판매된 1980년식 이글은 4도어 세단이 9,956대, 쿠페가 10,616대, 왜건이 25,807대 포함된 45,379대가 생산되어 그해 AMC의 전체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18% 가량 늘리는 데 기여했다. 한편, VM Motori의 3.6리터 150마력의 터보디젤 엔진을 장착한 터보디젤 버전이 등장했고, 오버드라이브 옵션과 기존보다 큰 연료탱크를 장착해 총 주행가능거리가 최대 2,414km에 이르렀지만, 7천 달러라는 비싼 가격표 때문에 단지 7대만 판매되었다.

3.1. 연식별 변경 사양

1981년식 이글은 스피릿의 모든 라인, 즉 리프트백 쿠페와 캄백을 기반으로 하는 라인업(시리즈 50)이 추가되었는데[9], 마침 AMC 그렘린의 후속이자 디자인 변경 차량인 스피릿이 시판 첫해에 52,714대가 판매되면서 후속으로서 제 역할을 했기에 라인업 확장은 비교적 순조로웠다.[10] 우선은 리프트백을 기반의 차가 'SX/4'라는 이름을 달고 '길이 필요없는 스포츠카'로써 홍보되었으며, 캄백은 그 이전까지 2도어 쿠페가 맡고 있었던 저가 라인을 담당했다. 덩치가 작다 보니 중량도 가벼웠고, 자동변속기 버전은 공인연비도 훨씬 좋았다. 캄백과 SX/4에는 제너럴 모터스에서 가져온 82마력짜리 2.5리터 4기통 'Iron Duke' 폰티악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 파워 스티어링이 기본사양이였으며, 왜건과 쿠페에 적용되던 자동변속기와 스포츠 패키지를 SX/4에서도 선택할 수가 있었다. 전반적인 라인업에서는 범퍼 끝에 씌우던 커버 디자인이 차체와 일체화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으며, 그릴 디자인도 이전의 수평에서 격자형으로 바꾸면서 그릴 안쪽에 박힌 모델명 로고도 보닛 위로 이동했고, 스피릿에서 사용하던 보닛 디자인과 그릴 장식이 스포츠 패키지에 적용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넘어가자면, 시리즈 30에서도 2.5리터 엔진이 기본사양으로 내려오면서 4.2리터 6기통 엔진이 선택사양으로 강등되었지만, 대신에 이를 정숙성과 연료효율을 개량하는 동시에 무게를 무려 41kg나 감량해 202kg로 줄이면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직렬 6기통 엔진 중 가장 가벼운 엔진'으로 홍보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풀타임 4륜구동만이 아니라 '셀렉트 드라이브(Select Drive)'라는 이름으로 '사륜구동-앞엔진 뒷바퀴굴림' 구성의 파트타임 4륜구동 옵션을 제공했다는 점도 특징이었다.[11]

1982년식은 항력이 낮은 디스크 브레이크와 셀렉트 드라이브 시스템이 기본사양으로 적용되었고, 자동변속기의 연비 개선을 위해 기어비를 더 넓게 잡았으며, 기존의 4단수동 말고도 5단 수동변속기가 선택사양으로 추가되었다. 2도어 쿠페에서는 스포츠 패키지가 삭제되었으며, 이마져도 캄백과 함께 1982년에 단종었고, 생산 공장인 케노사 공장에 생긴 여백은 르노 차량의 현지생산으로 매꾸었다.[12][13] 5종류나 되는, 단일차종으로써는 아주 넓은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가장 잘 팔렸던 것은 20,899대가 생산된 왜건이였고, 4도어 세단이 소폭 오른 4,091대, 2도어 쿠페가 1,968대, SX/4가 10,445대, 캄백 520대로 1982년형 이글의 총 생산량은 소폭 오른 37,923대를 기록했다.

1983년식의 경우, 비용절감을 위해 캄백과 2도어 쿠페가 라인업에서 사라졌고, 4도어 세단의 리미티드 트림도 단종되면서 기본형 세단과 SX/4, 왜건(기본형, 리미티드, 스포츠)로 라인업이 축소되었다. 대신, 1983년 1월부터 GM에서 가져온 2.5리터 4기통 엔진을 AMC 자사의 2.5리터 4기통 엔진으로 바꾸었고, 4.2리터 6기통의 압축비를 8.2:1에서 9.2:1로 높여 주었으며 노크센서와 CEC(AMC의 컴퓨터식 엔진 관리 시스템), EFC(공연비 자동제어장치)가 장착되었다. 1983년식 이글은 SX/4가 2,259대, 세단이 3,093대, 왜건이 12,378대로, 모두 합해서 예년 대비 2만대 이상이 줄어든 17,730대가 생산되어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1983년식 이글은 전국스키순찰대(National Ski Patrol)의 공식 차량으로 선정되었다.

1984년식 이글은 SX/4마저 단종되면서 세단과 왜건만이 살아남았고, 스포츠 트림도 왜건에서만 고를 수 있었다. 1984년식 이글 역시 4.2리터 6기통 옵션과 2.5리터 4기통 기본엔진이 제공되었는데, 4기통 엔진은 4단 수동에서 시내 10.2km/l과 고속도로 12.8km/l, 5단 수동에서 고속도로 13.6km/l이라는 높은 연료효율을 인증받고도 6기통 엔진에 밀려 147대에만 적용되었다. 셀렉트 드라이브 시스템도 손질이 가해지면서 시프트 온 플라이(쿼드라트랙) 기능이 들어가면서 주행중에도 일정 속도 범위만 맞춘다면 구동 방식을 변경할 수가 있었다. 1984년식 이글은 세단 4,241대와 왜건 21,194대가 생산된 총 25,539대로 지난해보다 대폭 늘었으며, 르노차의 현지 생산을 맡게 된 케노사 대신 캐나다 온타리오의 브램턴(Brampton) 공장으로 생산지를 옮겼다.

1985년식 이글은 예전에 단종된 스피릿 기반의 라인업에서 쓰던 'Power Bulge' 후드 디자인을 적용했고, 기존의 42amp짜리 알터네이터를 56amp짜리로 교체한 뒤 디지털 라디오를 도입했다. 4.2리터 6기통 엔진과 5단 수동이 기본사양으로 적용되었고, 리모컨키와 파워 락이 새 선택사양으로 추가되었다. 1985년식 이글의 판매량은 AMC가 르노 승용차와 지프 체로키/왜고니어 XJ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AMC 브랜드와 이글을 더이상 강하게 밀어주지 않자 세단 2,665대와 왜건 13,335대를 합친 16,990대로 크게 주저앉았다.

1986년식 이글은 자동변속기에서 직결 클러치를 삭제했고, 모든 라인업에 썬팅유리와 플라스틱으로 된 '4 Wheel Drive' 엠블럼을 적용했으며 오픈 디퍼런셜 형식의 새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하는 정도의 변경만 있었다. 지프 랭글러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었으며, 신선도가 크게 떨어진 탓에 세단 1,274대와 왜건 6,943대를 모두 합쳐 총 8,217대가 생산되면서, 1985년식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기록인 동시에 이글 사상 처음으로 1만대 이하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1987년식은 AMC가 4리터짜리 연료분사식 직렬 6기통 엔진을 새로 내놓았는데도, 이글에는 적용되지가 않으면서 사실상 방치 상황에 놓여 있었다.[14] 생산대수는 자료 출처에 따라서 변동이 있지만 세단 454대와 왜건 4,564대, 혹은 5,468대를 합쳐 총 4,564~5,922대 사이로 기록되어 있다.

이글의 마지막 연식인 1988년식은 AMC의 새 주인인 크라이슬러에 의해 판매가 이루어졌다.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라인업에는 세단과 고급형 왜건이 사라져 기본형 왜건 하나만이 제공되었으며, AMC 브랜드가 폐기되면서 '이글 왜건'이란 이름으로 판매가 이루어졌다.[15] 에어컨과 할로겐 헤드램프, 뒷창문 열선, AM/FM 스테레오 라디오, 엔진룸과 글로브 박스, 지붕에 깔리는 실내등 세트, 조절식 스티어링 휠 등 이전까지 옵션이었던 사양들을 기본으로 장착했다. 1987년 12월 14일에 197,449번째이자 마지막 차가 브램턴 공장을 떠나면서 AMC와 함께 명을 달리했으며, 이후 이글의 이름이 1988년에 AMC를 대체하는 새 브랜드로 등장했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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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1년까지 미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사륜구동차의 평균연비를 15mpg(약 6.4km/l)까지 끌어올리라는 내용이다.[2] 이 지프의 풀타임 4륜구동 시스템은 아우디, 토요타, 심지어 스바루보다도 훨씬 앞서 대량생산차에 처음 적용된 것이었다. 특히 1984년에 아우디 콰트로가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나온 토요타 터셀(스프린터 카리브)과 스바루 레오네는 파트타임 4륜구동, 즉 풀타임처럼 사시사철 내내 4륜구동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4륜구동을 사용하는 방식이였기 때문이다.[3] 1971년에 토니 롤트(Tony Rolt)가 설립하여 퍼거슨 방식(Ferguson Formula)의 4륜구동차 시스템을 활용하고자 했으며 재규어, 제너럴 모터스, 맥라렌 등의 다른 업체들과 협업해서 차량을 개발했다.[4] 1959년부터 1983년까지 AMC의 디자이너로 근무했으며, 1964년부터 수석디자이너로 승진해 은퇴 때까지 디자인 부서를 이끌었다. AMC 시절에 담당한 대표작으로 AMC 페이서와 그렘린, 호넷, 그리고 지프 체로키 XJ가 있다.[5] 모든 개발비를 건지려면 1만 5천대가 판매되어야 했다.[6] 이글이 런칭한 해에 방영했던 TV 광고들 중 하나로, 전륜구동차인 쉐보레 사이테이션과의 빙판 줄다리기를 포함한 각종 스펙타클을 구사하며 가족용 4륜구동 컴팩트카로서 타 차종들 대비 우월한 구동력과 어디든지 달릴 수 있는 험로주파력을 과시했다.[7] AMC에서는 TorqueCommend로 칭했다.[8] 앞바퀴 한정. 뒷바퀴는 드럼식이 적용되었다.[9] 기존에 판매하던 라인업인 세단/쿠페/왜건은 '시리즈 30'으로 따로 분류된다.[10] 반면 스피릿은 한 해 판매량이 7만대 가량으로 떨어졌다.[11] 일본 업체들이 4륜구동 승용차를 만들 때 자주 쓰던 방식으로, 약간 개선된 연료효율뿐만이 아니라 저렴한 가격도 하나의 장점이기는 했지만 구동방식을 바꿀 때마다 차를 세우고 나서 바꿔야된다는 흠이 있었다.[12] 마침 르노에서는 AMC의 지분을 49퍼센트까지 매입한 참이였고, 그 전에는 이미 46.6퍼센트를 매입하면서 AMC의 회장 자리에 르노 출신인 호세 데디워더(Jose J. Dedeurwaerder)가 들어와있었다.[13] 사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AMC의 1년간 생산량이 10만대 밑으로까지 떨어졌고, 부실한 라인업에 빛도 산더미였으며 만회할 개발비도 없다시피한, 말 그대로 실패에 가까운 상황이었다.[14] AMC 스스로도 이글보다는 르노 21의 현지 사양인 이글 메달리온(Medallion)의 출시에 더 많았다.[15] 다만, 섀시 번호와 기타 부품에 적용되었던 AMC 로고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