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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vrolet Citation
1. 개요
미국 자동차 제조사인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쉐보레에서 생산했던 준중형 승용차이다.2. 상세
2.1. 1세대(1980~1985)
2.1.1. 개발 배경
1973년에 발생한 오일 쇼크는 미국의 소형차 시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당시 혼다 시빅과 어코드, 폭스바겐 래빗과 대셔와 같은 수입 전륜구동 소형차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미국차 점유율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또한, 경쟁사인 크라이슬러 그룹에서는 1978년에 심카 호라이즌을 기반으로 한 닷지 옴니와 플리머스 호라이즌을 개발·판매하기 시작했고 해당 브랜드의 베스트셀러로 성장하게 되었다. 제너럴 모터스에서는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소형차 시장에서 더 나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앞 엔진 후륜구동이었던 1세대 GM X 플랫폼을 적용한 쉐보레 노바 및 형제차들의 전륜구동 후속 모델을 1974년 4월부터 개발을 시작, 약 5년간 총 27억 달러를 투자했다.#당시 GM 역시 전륜구동 차량을 만든 적이 있었다. GM E 플랫폼을 토대로 1966년에 개인용 고급 승용차였던 캐딜락 엘도라도나 올즈모빌 토로나도, 오락용으로 만들어진 GMC 모터홈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의 대형차 및 특장차였으며, 당대 업계에서 유행하던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의 소형차 부분에서는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해당 차량의 개발 당시에 란치아 승용차를 역설계하면서 2세대 GM X 플랫폼은 위와 같은 차체 구조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구성된 2세대 X 플랫폼 기반 신차의 크기는 기존 쉐보레 노바보다는 작았으나 가로형 엔진을 탑재한 FF 레이아웃으로 개발하면서 사이즈 대비 실내 공간을 확보하고자 했으며, 연료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운사이징이 이루어졌다.
디자인은 1977년부터 GM의 총괄수석디자이너로 임명된 어빈 리비츠키가 참여했다.# 개발과정에서는 GM 계열사들에게 각 구성요소들의 개발을 분담시켰는데 전륜 서스펜션의 설계는 쉐보레, 후륜 서스펜션은 폰티악에서 담당했다. 첫 프로토타입 차량은 1976년 여름에 나와 총 600만 마일[2]의 주행테스트를 거치게 되었다.
해당 차량은 1978년형으로 출시될 예정이었으며, 쉐보레 노바의 이름을 단종시키고 '콘도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형차급인 GM A 플랫폼 차량의 출시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변경했고 쉐보레 임팔라 및 카프리스를 시작으로 쉐보레 말리부와 몬테 카를로의 사이즈 축소까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부품 공급업체들이 전륜구동 차량의 대량생산 기점을 맞추기 위해 1980년 초로 일정이 지연되었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2.1.2. 특징
초기형 5도어 해치백 사양 |
1979년 1월부터 생산되어 같은해 4월 19일부터 1980년형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2세대 GM X 플랫폼이 탑재됨에 따라 최초의 전륜구동 쉐보레 차량이자 가로배치 전륜구동 해치백 라인업이라는 의의를 업고 쉐보레 노바의 후속 차종으로 배정, 쉐보레 몬자와 쉐보레 말리부 사이의 라인업[3]을 담당하였다. 폰티악 피닉스, 뷰익 스카이락, 올즈모빌 오메가의 형제차였다. 라인업으로는 3도어/5도어 해치백, 2도어 노치백 쿠페로 구성되었는데[4], 3도어 해치백 사양은 사이테이션에만 적용되었다. 5도어 해치백은 폰티악 피닉스와 공유했으며 올즈모빌 오메가, 뷰익 스카이락에 제공되던 4도어 세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차량의 생산은 미국 뉴욕 주 노스 테리타운 어셈블리,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 시티 어셈블리와 멕시코 라모스 아리즈페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실내 구조는 윗급인 쉐보레 말리부와 유사했고, 트렁크 공간은 쉐보레 임팔라와 맞먹었다. 선행 차량이던 쉐보레 노바에 비해 전장은 약 50cm[5] 정도 짧은 4,488mm, 전폭은 10cm 정도 좁혀진 1,735mm, 공차중량은 약 362kg 정도 줄어들었다. 차량의 전고는 1,369mm, 휠베이스는 2,664mm였다. 때문에 런칭 광고에서도 작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2열 더블폴딩 시트를 접었을 때 쇼핑백 30개를 수납할 수 있는 대용량 적재공간, 성인 5명이 탈 수 있는 중형차급의 실내공간을 세일즈 포인트로 제시했다.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사이테이션은 초기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출시 당시 후술할 6,000달러 이하의 가격 선에서 경쟁차인 닷지 옴니 및 플리머스 호라이즌과 같은 미국산 경쟁차들보다 적용 장비들이 많았고, 여기에 제2차 오일 쇼크까지 겹치면서 호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GM에서는 수요 예측을 잘못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4기통 차량에 수요가 많이 있었지만, 사내에서는 V6 엔진 차량이 70%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았다, 이로 인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 능력을 보였다. 그럼에도 한 해 동안 81만 대 이상을 판매하면서 가장 성공한 런칭이었고, 결국 그 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승용차가 되었다. 여기에 자동차계의 권위가 있는 상인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파워트레인은 2.5L 아이언 듀크 I4 엔진, 최초의 GM 60˚V6 엔진 라인업인 2.8L LE2형 V6 엔진, X-11 사양에만 적용되다 이후 전 사양으로 확대된 2.8L LH7형(HO) V6 엔진 및 2.8L LB6형 MPFI V6 엔진이 탑재되었다. 이와 함께 터보 하이드라매틱 125(TH-125)형 3단 자동변속기와 4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되었다. 차량에 탑재된 GM X 플랫폼은 A 플랫폼 뿐만 아니라 GM L 플랫폼 및 GM N 플랫폼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1985년형을 끝으로 단종되었으며, 후속 차종은 쉐보레 베레타와 코르시카가 이어받았다. 총 1,642,587대가 생산되었다.
아르헨티나 시장에서는 1978년에 제너럴 모터스가 해당 시장에서 철수한 상황이라 직판이 아닌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수입 판매가 이루어졌다. 또한 일본에서는 제휴업체였던 이스즈를 통해 쉐보레 셰베트, 뷰익 스카이락과 함께 정식 수입되었다.## 한국에서는 판매된 적이 없지만, 신문 기사를 통해 미국인들이 이런 차들을 타나고 할 때 소개되거나 리콜 내용이 있었다는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기사 1, 기사 2
연식별 변경 사항
쉐보레 사이테이션 변경 사항 | |
연식 | <colbgcolor=#fff> 변경 사항 |
<colbgcolor=#cf9835> 1980년형 | 1979년 4월 출시: 기본형/X-11 사양 첫 해 81만대 판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승용차+1980년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 당시 시작가 6,000달러[6] |
1981년형 | 외장 디자인 일부 수정 그릴 디자인 교체: 기존 달걀판 형태 그릴+주황색 방향지시등 적용 2도어 쿠페 사양 단종[7] 2.8L HO형 V6 엔진: X-11 사양에만 적용, 135마력 |
1982년형 | 외장 디자인 일부 수정 그릴 디자인 교체: 기존 달걀판 형태 그릴 → 말리부와 유사한 수평 그릴 주행 성능 및 연료 효율성 개선 연료 주입식 2.5L 엔진 탑재 회전 저항이 적은 타이어 전 사양[8] 적용 2도어 쿠페 사양 재생산 위·아랫급 라인업 변경: 쉐보레 몬자 → 쉐보레 카발리에[9]/ 쉐보레 말리부 → 쉐보레 셀레브리티[10][11] |
1983년형 | 실내 중심의 차량 변경 풀 위드(full-width) 벤치 시트 삭제 → 헤드레스트 장착 버킷 시트 변경 대시보드 디자인 변경 2.8L HO형 V6 엔진: X-11 사양 → 전 사양으로 확대 |
1984년형 | 사이테이션 II 출시:로고 변경 외 큰 차이 없음[12] X-11 및 기존 라인업 유지 이전 연도 대비 처음으로 생산 증가[13] |
1985년형 | 마지막 생산 연식 사이테이션 II 단종/X-11 사양 지속 판매 수평 장착 라디오 및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디자인 변경 2.8L HO형 V6 엔진: 연료 분사 방식으로 변경 (출력 130마력으로 감소) |
판매량
쉐보레 사이테이션 변경 사항 | ||||
연식 | <colbgcolor=#fff> 쿠페 | <colbgcolor=#fff> 3도어 해치백 | <colbgcolor=#fff> 5도어 해치백 | <colbgcolor=#fff> 총 판매량 |
<colbgcolor=#cf9835> 1980년형 | 143,249대 | 210,258대 | 458,033대 | 811,540대 |
1981년형 | - | 113,983대 | 299,396대 | 413,379대 |
1982년형 | 9,102대 | 29,613대 | 126,932대 | 165,647대 |
1983년형 | 6,456대 | 14,323대 | 71,405대 | 92,184대 |
1984년형 | 4,936대 | 8,783대 | 83,486대 | 97,205대 |
1985년형 | - | 7,443대 | 55,279대 | 62,722대 |
누적 판매량 | 163,743대 | 384,403대 | 1,094,531대 | 1,642,677대 |
2.1.3. 논란 및 평가
문제가 있었던 GM X 플랫폼이 적용된 차량이었는데, 1980년에는 변속기 호스 결함으로 하부에서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부분으로 인해 225,000대의 리콜 명령이 떨어졌다. 또한, NHTSA에서도 무기한 손해 배상 청구 사례의 대상으로 지정된 바 있었다. 이는 제동 시 통제력 문제를 포함한 파워 스티어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브레이크로 제동을 걸 시, 후륜 바퀴가 잠기게 되어 차량이 통제력을 잃고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브레이크의 경우, X 플랫폼 신차들의 초동생산이 시작된 직후인 1979년 3월 18일에 자동변속기 사양에 한해서 브레이크 라이닝을 마찰력이 적은 제품으로 교체하는 후속조치가 승인, 5월 1일부터 신차생산분과 부품 전산망에 적용되었다. 하지만 이 조치는 회사 외부로 알리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초동생산분 차량을 구입했던 고객들이 불안정한 제동성능을 불만사항으로 올림에 따라 NHTSA가 제동성능 테스트를 다시 시행했다고 NHTSA의 내부문건이 밝혔다. 내부문건에 따르면 사이테이션을 포함한 신차들은 대체로 테스트 조건을 통과하는 안정적인 제동성능을 보였으나 수동변속기 사양에서 급제동 시 운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불안정한 거동을 보임을 발견했고, GM에서는 이 부분을 감추고 나머지만 강조하며 X 플랫폼 신차들의 제동성능이 양호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7월 9일의 첫 접수를 시작으로 시정조치가 적용되지 않은 차량들[14]의 제동성능 결함이 NHTSA에 보고되고 매체에서도 이 문제를 혹평하는 등으로 논란이 계속 커지다가 수 차례의 리콜명령으로 이어졌고, 1983년 8월 3일에는 GM이 의도적으로 결함을 은폐했다는 주장과 함께 1980년형 X 플랫폼 차종 110만대에 대한 리콜 요구가 포함된 NHTSA의 4백만 달러 규모 소송으로 이어졌다.# 또한 자동차 잡지사들이 테스트를 했을 때 미리 차량의 고질병이었던 토크 스티어를 문제 개선한 차량을 제공해 속아버리게 되었고, 이후 카앤드라이버 지의 패트릭 베다드가 후에 수동변속기 사양의 시판차를 운전했을 때 극단적인 토크스티어 문제가 발생하며 이에 완전히 놀랐다고 언급한 바 있었다.#
결국 위의 소송에서는 GM이 승소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GM과 계열사 전반의 평판에 심각한 타격을 안겼고, 때문에 사이테이션을 포함한 전륜구동 X 플랫폼 차종들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미국의 클래식카 전문 보험 회사인 '해거티' 사에서는 해당 차량을 불쾌한 시대(Malaise era, 제 1차 석유파동부터 1980년대 초 경제불황에 이르는 혼란기)에 만들어진 가장 불쾌한 자동차 중 하나였고, 달갑지 못한 리콜 기록과 저조한 품질 관리가 합쳐지며 GM의 평판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평했다.
2.1.4. X-11 사양
사이테이션의 퍼포먼스 지향 사양이다. 자세한 부분은 쉐보레 사이테이션 X-11 문서 참고.3. 수상 이력
1980년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15] |
4. 경쟁차량
통칭 크라이슬러 K카로 불리는 차량들로, 사이테이션과는 달리 세단과 왜건 사양이 있었다.
K카 출시 이전에 판매되었던 차량들이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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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
쉐보레 사이테이션 | 쉐보레 카마로 Z28 | 르노 얼라이언스 | 쉐보레 콜벳 | ||
1985년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
폭스바겐 GTi | 포드 토러스 LX | 포드 썬더버드 터보 쿠페 | 폰티악 그랑프리 | 포드 썬더버드 슈퍼 쿠페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올해의 트럭 부문 |
[1] 동 시기 TV 광고에도 쓰인 캐치프레이즈였다.## 이외에도 광고에 따라서는 넓은 실내공간, 2열 더블폴딩 시트로 구현한 유연한 대용량 적재공간처럼 가로배치 전륜구동 해치백의 이점을 강조하며 신개념의 다재다능한 컴팩트카임을 강조하는 "The whole new kind of compact car"나 "The First Chevy of its kind"가 쓰이기도 했다.[2] 약 9,656,064km.[3] 이후에는 쉐보레 카발리에와 셀레브리티 라인업으로 변경되었다.[4] 형제차였던 폰티악 피닉스, 올즈모빌 오메가, 뷰익 스카이락 쿠페처럼 3박스 2도어 패키징을 갖추되 이들의 각지고 두꺼운 C필러가 아닌 얇은 C필러가 완만하게 누워 있는 루프라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5] 쉐보레 베가와 비교했을 때는 약 2cm 정도 긴 편이었다.[6] 당시 환율 평균 계산 후 환산 시 가격 약 2,022만원[7] 원인은 저조한 판매량 때문이었다.[8] X-11 사양 포함[9] 자체적인 쿠페, 해치백, 세단 및 스테이션 왜건 라인업으로 판매되었다.[10] 세단 및 스테이션 왜건 사양만 있었다. 또한, 사이테이션과 섀시를 공유했다.[11] 여담으로, 같은 시기에 토요타 캠리 세단과 왜건이 처음 소개된 해기도 했다.[12] 리콜 및 품질 문제와 관련하여 소비자의 관심을 돌릴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3] 물론 100,000대 이상은 못 팔았다고.[14] 수동변속기 사양 전반, 1979년 5월 1일 이전 생산된 자동변속기 사양.[15] 해당 차량이 수상한 이후 2009년에 경쟁사인 카 앤 드라이버 지의 편집장은 낮은 제작 품질 및 차량의 내구성으로 인해 이 차가 수상받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