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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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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그리스어 Επιστολή προς Γαλάτες
라틴어 Epistola ad Galatas
영어 Epistle to the Galatians
한자(한국어) 가톨릭: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갈라티아書)
개신교: 갈라디아書
중국어 간체자: 迦拉达书
정체자: 迦拉達書
일본어 ガラテヤの信徒への手紙(ガラテヤのしんとへのてがみ)
기본 정보
저자 사도 바울로
기록 연대 AD 55년경
분량 6장
수신자 갈라디아 교회

1. 개요2. 저자와 기록연대3. 쓰게 된 동기와 목적4. 구조와 내용
4.1. 내용 요약
5. 신학적 중요성6. 오해7.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8. 여담

[clearfix]

1. 개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공동번역 성서)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1]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4절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55번째/48번째 권.

신약성경의 한 권으로 사도 바울로가 쓴 서신 중에서 신약에서의 배치 순서상 4번째 서신이다. 갈라티아아나톨리아 반도 중부 내륙의 켈트족이 사는 지역[2]을 일컫는 말로 현 튀르키예 앙카라 인근이다.

2. 저자와 기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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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쓰게 된 동기와 목적

바울로가 갈라티아서를 비교적 급하게 쓸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목적은 당시 갈라티아 교회의 상태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갈라티아 교인들은 어느 정도 믿었던 신앙인이라기 보단 초신자들이었다. 그들에겐 여전히 구약성서관습, 특히 할례와 특정한 식사 제한에 묶여 있다고 설교하는 유대교 출신들이 있었고 이로 인한 문제를 겪었다.

그들은 바울로가 전한 복음 중 할례 등의 유대 율법적인 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교리라 주장하면서, 바울로는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바울로는 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굳건히 하고, 유대교의 율법이 복음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변론해야 했다. 바울로는 할례와 율법을 구원조건으로 삼는 교리를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으로 봤고, 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로는 펜을 들어야 했다.

4. 구조와 내용

4.1.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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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학적 중요성

본 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핵심을 구약성서에 나와 있는 내용과 논리적인 변증을 통하여 변호하고 해설하며,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와 은혜의 복음의 참됨을 전달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율법 아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안식일, 할례 등의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머리로 믿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고, 모든 율법의 근원이 되는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게 되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게 되고, 육신의 욕망을 이루지 않게 되는데, 갈라디아서는 그런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신칭의 사상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 위한 원리가 되었다.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바울로의 주장은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한 핵심적인 진리이며, 정통 교회들이 지키고 이행해야 할 규범이라 볼 수 있다.

6. 오해

갈라디아서가 율법주의자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고, 구원과 행위를 조금이라도 연관시키면 율법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갈라디아서에 대한 매우 잘못된 이해다.

바울로 서신을 전반적으로 보게 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육체가 아닌 성령을 따르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경고하는 율법주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 자연히 교만하게 자신의 율법적 행위를 자신의 의로 내세울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그것은 성령과 조화될 수 없는 가짜 믿음이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것은,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유대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어떤 행위를 자신의 의로 삼으려는 교만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성령을 따르는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히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고,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갈라디아서의 가르침을 확장시켜 현대 교회에 적용해보자면, 교회에서 한 봉사, 교회에서 받은 직분, 교회에 한 헌금 액수, 자신의 성경 지식, 자신이 받은 은사 등을 자신의 의로 내세우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면, 자신의 구원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7.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πίστεω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그리스도를 믿는 믿음(πίστεως Χριστοῦ)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갈라디아서를 포함하여 바울로 서간 전반을 보면 사람은 π́ιστι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피스티스 크리스투 예수)[12]로 의롭게 된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이 구절에서 피스티스는 믿음이라는 뜻이고 크리스투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의 소유격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한국어 성경은 후자로 번역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갈라디아서에서 비판하는 율법주의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말하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반박하려 하는 문맥을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3]

반면 이러한 주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교리적ꞏ형식적으로만 남고 불필요한 유대 율법 준수에 온 신경을 쏟게 되므로 이 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 참되게 믿는 것에 집중하라는 글이라고 반박한다. 또한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나오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ἐπιστεύσαμεν(에피스튜사멘) 했다는 구절은 이견의 여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뜻이므로, 그것의 원인이되는 π́ιστι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피스티스 크리스투 예수)로 의롭게 된다는 말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다소 어색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후자의 주장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해석하게 된다면 이 구절에서 논리의 비약이 일어나게 되며, 이러한 해석에서 해당 구절이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결과로 인한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는 명제(혹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택함받은 자들에게 강권적으로 믿음이 주어진다는 칼빈주의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결과로 택함받은 자들에게 믿음이 주어졌다는 명제)가 생략되어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믿음을 가져라/하느님을 믿어라(Ἔχετε πίστιν θεοῦ)."
마르코의 복음서 11장 22절

이와 같은 해석의 차이는 마르코의 복음서 11장 22절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구절의 원어 역시 하느님이 소유격으로 쓰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하느님의 믿음을 가져라와 하느님을 믿어라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보통은 상식선에서 후자로 번역하며, 이는 갈라디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원뜻을 훼손하는 의역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놓고 봤을 때에 일관성 있는 번역임을 보여준다.

8. 여담



[1] 사람은 하느님 빼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무엇이든지 중독될 수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절제해야 하지만, 하느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은 쉽게 식어버리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2] 기원전 3세기에 트라키아에서 이주 정착해 기원후 4세기까지 켈트계 언어를 유지했고 바울로의 선교로 기독교화의 싹이 터 기독교 공인 후엔 완전히 기독교화된다.[3] 사실 베드로는 이미 환상을 통해 이방인들 역시 구원의 대상임을 깨달았었다(사도행전 10:9-15, 34-35). 그럼에도 이런 위선을 행함으로서 바울로의 책망을 산것이다.[4] 자신의 어떤 행위를 자신의 의로 삼으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뜻인데, 유대인들이 유대 율법을 전통문화로서 지키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5] 아브라함처럼 현세에서 부자가 되는 복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복을 말한다.[6] 하박국 2장 4절[7] 신명기 27장 26절[8]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9] 구약 시대에도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나, 그 때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어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율법이라는 보조수단이 필요했다. 또한 구약 시대의 믿음으로는 구원은 받았어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얻지 못했다.[10] 어떠한 종류든 도파민 중독에 의한 특정 행위에 대한 탐닉은 전부 방탕한 행위이자 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지만, 의존성을 부추기어 사람을 믿음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자극적인 것들을 되도록 멀리하거나, 그런 것들을 접해도 그 자체가 죄가 아닌 이상 감사함으로 마음이 죄로 기우는 것을 방지해야 하고, 하느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이다.[11] 머리로 믿기만 해도 구원 받지만 이왕이면 착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철저한 회개와 자기부인으로 성령의 열매들이 삶에서 나타나는 믿음이어야 구원받는다는 말이다.[12] 본문의 πίστεως(피스테오스)는 π́ιστις(피스티스)의 소유격[13] 이진섭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해석하면, 2장 15절에서 바울로가 우리는 본디 유대인이고 이방 죄인이 아니라고 한 것 때문에 바울로가 의롭게 되는 두 가지 방법을 말한 것이 되는 문제점이 있고, 2장 15-16절 자체가 서서히 논리를 발전시키는 구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으나, 우리는 본디 유대인이고 이방 죄인이 아니라는 말은 단순히 바울로가 살았던 유대 사회에 깔린 선민 의식을 나타내는 말이고, 바울로 서간 전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구원 받지 못한다는 말이 많이 있는데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해석도 자연스러운 논리의 발전이 일어난 것이기에 이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