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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23:26:37

강호동/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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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씨름 선수2. 방송인
2.1. 데뷔와 초기 활동2.2. 전성기2.3. 잠정 은퇴
2.3.1. 탈세 및 기타 논란
2.4. 방송 복귀 후 부진2.5. 부활, 새로운 도전

1. 씨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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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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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고 나서
"내 꿈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큰 웃음을 드림으로써 우리 국민 여러분들의 수명이 1년이라도 더 늘어나게 하는 것이 내 꿈입니다."
- 무릎팍 도사 윤도현 편에서 진행자로서 한 마디
(아는 형님에 강호동을 섭외한 까닭을 묻자) 강호동은 별 이유가 없었다. 강호동이니까 그냥 섭외했다.
- 여운혁 CP

2.1. 데뷔와 초기 활동

씨름 선수 현역 은퇴 후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이문세의 소개로 이경규와 인연이 닿아서 1993년 MBC 특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한다. 이경규의 증언에 따르면 씨름하던 강호동을 연예계로 데려오려고 찾아갔을 때 강호동은 계속 안 된다고 사양했지만 막상 자기 집에 불러놓으니 자기 집인 듯이 편하게 자고 갔다고 한다.[1]

초창기에 김승현이 진행했던 "도전 추리특급"이라는 프로에서 제일 인기를 얻었던 파트인 "김형사 강형사"를 탈북자 출신 연예인인 김용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이 코너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개그 스타일에서 한국식 만담과 일본식 만자이에 큰 영향을 받은 이경규로서는 바보 이미지와 딴죽거리는 이미지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경남 지역 후배 강호동이 탐나는 인재였고, "네가 실패하면 나도 방송 접는다."[2]라는 말을 하며 강호동의 개그맨 데뷔를 도왔다.

강호동의 개그맨 데뷔는 유명 씨름 선수가 연예계에 데뷔하는 것으로 한국방송사상 최초였기에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당시 최고의 스포츠 종목이었던 씨름에서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방송계에 진출, 그 방송계에서 운동 선수 출신임에도 웃음과 퍼모먼스 등 재능과 끼를 보여주면서 무명생활 없이 스타덤에 올랐는데 강호동은 이경규가 제안한 역인 "행님아!~"[3]로 대표되는 호동이 역으로 방송가에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

2.2. 전성기

MBC와의 전속 계약이 끝난 이후 SBS의 기쁜 우리 토요일 등에 출연하며 활동 폭을 넓혔으나 당시 MC로서의 경력이 짧고 캐릭터가 한정되어 있었던 강호동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다가 캠퍼스 영상가요를 진행하며 MC로서의 능력을 입증하고, 초전박살[4] 등에서도 활약하며 2세대 MC들 중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강호동은 캠퍼스 영상가요로 인기를 얻기 시작해서 공포의 쿵쿵따에서 유재석과의 콤비 플레이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바로 MBC로 넘어가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빅히트 시키면서 국민MC로 발돋움했다. 이후에도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야심만만, X맨을 찾아라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2003년과 2005년 SBS 연기대상 MC부문 특별상[5]을 수상했고, 2003년에 백상예술대상 TV 예능상을 수상한다.

이후 위의 프로그램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며 정체기가 찾아왔지만 곧 1:1 토크쇼인 무릎팍도사, 일반인 대상 예능인 놀라운 대회 스타킹, 리얼 버라이어티 1박 2일, 토크 배틀쇼 강심장 등 KBS, MBC, SBS 3사의 굵직한 프로들을 다 빅히트시키면서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예능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 결과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KBS, MBC, SBS 방송 3사에서 대상을 총 5회 수상한다.[6] 또 2008년에는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인이 최초로 받은 대상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7][8]

2.3. 잠정 은퇴

2000년대를 지나 2011년까지 제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들을 이끌던 도중인 2011년 8월 10일 갑자기 강호동이 1박 2일을 이번 달까지 촬영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11일엔 제작진 측에서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하차의사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 있을 때 내려오고 싶다는 의사였다고. 결국 1박 2일은 시한부 종영의 운명을 맞았으며, 강호동이 이를 사실상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면서 구설수에 휘말렸다. 한편으로 종편행을 위해 방송계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기존 하차 선언을 하고 내려온 인물들의 경우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던가, 예능에 앞서 본업이었던 다른 스케줄과 겹친다든가, 육체적 내지 심적 고통이 있었다든가 등의 납득가는 이유도 있었고, 또 이런 인물들은 대부분 프로그램의 중추신경적인 인물까진 아니어서 이들이 하차해도 프로그램 자체엔 큰 타격이 덜하였었고, 설사 저런 이유로 인해 하차를 고려했었다던 연예인들 중엔 결국 의리와 의지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 선례[9]도 많았었는데, 강호동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국민 MC'였던데다가, 신의와 믿음의 이미지로 똘똘 뭉쳐져있던 그에게서 납득가는 이유도 없이 하차 선언이 터져나오면서 그의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타 연예인 하차 소식 대비 더 크게 와닿는 관계로 그에 대한 비난은 걷잡을수 없이 커져만 갔다.[10]

여기까지는 개인의 결정에 관해 비판을 하는 문제였으나, 탈세로 알려진 세금 과소납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2.3.1. 탈세 및 기타 논란
최초 보도에는 탈세에 수십억 원의 추징금을 받았다고 나왔으나, 사실은 탈세가 아니라 필요경비 과다 계상에 의한 과소납부이다. 연예인의 경우 방송(일)에 사용되는 필요경비[11]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가사경비의 구분이 불분명하기에 이런 일이 특히 더 발생할 수 있다.# 어디까지가 방송이고 어디까지가 사생활인지가 모호하기 때문. 세무사와 변호사가 가사경비가 아니라 필요경비가 맞다고 국세청에 이의제기를 한 상태였으나[12], 논란이 터지자 대중의 비난으로 인해 철회했다. 최초로 해당 논란을 유포한 노컷뉴스에서는 국세청에서 탈세가 아니라고 판단했음에도 어쨌든 탈세라고 계속 우겼으나#, 영수증 등 모든 증빙자료가 있었기에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 과소납부가 되고 수억 원의 추징금을 내게 되었다. 2011년 9월 15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3년 동안 안 낸 이자까지 포함해서 7억 정도며, 1년/5억이 넘지 않아 국세청에서의 고소/고발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편 이와 별개로 한 시민이 직접 조세포탈 혐의로 강호동을 검찰에 고발했으나[13], 역시 같은 이유(5억원/1년 미달)로 각하 처리되었다.[14]

9월 5일, 추징금에 대한 해명을 했는데 필요경비 과다 계상에 의한 과소납부를 한 것임을 밝혔다.#[15]

강호동의 탈세 혐의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로 이의제기 조정 중인 사건을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 형태로 몰고 간 국세청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여론에 민감한 연예인의 특성상 이렇게 되면 정당한 이의제기였다고 해도 초반부터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국가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은 심각한 문제라는 시선.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선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이 국세청을 고소했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고소들은 대부분 결말을 검색해도 안나온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9월 9일 강호동은 위의 탈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기자회견을 열어 연예계 잠정 은퇴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16] 이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는 물론 YTN, MBN 등과 같은 케이블 채널 뉴스들까지 긴급 자막과 속보로 보도했고, 이후 정규 뉴스 코너에서 제대로 다루는 등 강호동이 가진 영향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참고로 강호동 본인이 추락을 경험한 적이 없는지라 안티와 이미지 추락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며칠 동안 계속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은퇴를 말렸으나 본인은 하루라도 빨리 기자회견을 열고 싶어 했다고 한다. 특히 유재석은 기자회견 직전까지 전화로 "형, 이건 아닌 거 같아!"라면서 은퇴를 만류했다고.[17]

강호동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최대한 제작진과 방송국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은퇴 당시 강호동이 진행하고 있던 프로그램은 KBS 1박 2일, MBC 무릎팍도사, SBS 강심장, 스타킹 등이었는데, 이 프로그램들 모두가 동시간대 시청률 1 ~ 2위권의 인기 프로그램들이고, 강호동이 보조 출연자도 아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중심인 만큼 강호동의 하차는 프로그램 종영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심각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이 중에서 무릎팍도사는 잠정 종영, 강심장은 이승기 단독 진행체제로 이어가기로 결정됐으며, 1박 2일은 남은 멤버로 2012년 2월까지 시즌1을 진행하고, 스타킹은 이특이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 때부터 스타킹은 3류 저질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그의 프로그램 하차 이후 각 프로그램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1박 2일은 남은 다섯 멤버로도 2012년 2월까지 그럭저럭 잘 꾸려 갔지만 2기로 개편된 후에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빼앗기는 등 상당한 타격이 있었다.[18] 스타킹은 방송의 밸런스를 잡아주던 강호동이 빠진 탓에 프로그램이 완전히 꼬였다. 후임MC 이특과 붐이 강호동의 빈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고, 동시간대 시청률 꼴찌로 떨어지기도 했다. 결국 박미선을 투입해 3MC체제로 변경. 강심장 또한 이승기와 패널들이 분투하긴 했지만 차츰 승승장구에게 추격당하더니 결국 승승장구에게 동시간대 1위 자리를 내줬다. 이승기까지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하차하고 신동엽이동욱이 강심장의 새로운 MC로 투입됐지만 전성기 만큼의 인기는 못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심장은 2013년 2월 19일부턴 화신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예 잠정 종영됐던 무릎팍도사야 말할 것도 없었고... 뒷날 강호동이 복귀하면서 무릎팍도사는 부활했지만 끝내 시청률 부진으로 2013년 8월 22일에 종영되었다.

또한 그의 잠정 은퇴에 대한 여론은 몇 가지로 나뉘었다.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19] 은퇴까지 할 만큼 큰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동정론이 있으며, 강호동다운 선택이었다며 강호동의 은퇴를 받아들이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잠정'이라는 단서를 남겨 적당히 몇 달 쉰 후에 자연스럽게 종편으로 복귀하려는 수작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있다. 또한 위에 서술한 동정론을 바라고 '잠정'이 붙은 은퇴를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서린 목소리도 있었다.
탈세 의혹이 잠잠해 지는가 싶더니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인 강원도 평창에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최초 구입은 2009년이긴 하지만, 개최 확정 후인 2011년 추가로 구입한 데다 이때 구입한 액수가 더 커서 비난 여론이 거셌는데 이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한 뒤였고 이후 반응도 딱히 없어 시간이 지나자 잠잠... 이후 강호동 측은 지인 말만 듣고 샀는데 그런 방면으로 전혀 무지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봉사와 기부활동을 해온 아산병원 사회복지재단에 평창 토지를 기부했다.

안타깝게도 이미지 실추가 많이 된 상황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강호동의 영향력은 방송계 곳곳에 남아있었다. 1박 2일에서는 잊을 만하면 직간접으로 강호동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곤 했다.
조폭연루설에 연장된 야쿠자 행사에 참석한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2011년 12월 1일 동아일보 소속의 종편방송 채널A의 개국 첫 뉴스로 강호동 야쿠자 연루설’을 방송한 것인데, 보도에 따르면 1988년 11월 14일 강호동 나이 19세일때 일본 오사카의 한 일식집에서 열린 일본 야쿠자와 국내 폭력조직 칠성파의 의형제 결연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강호동이 평소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부른 씨름계의 대부 김학용도 있었다고 채널A는 보도했다.

하지만 이건 좀 그런 게 당시 강호동은 고등학교 3학년 신분이었고, 프로씨름계에 막 데뷔했을 때였다.
강호동 측은 2일 “당시 감독과 코치를 따라가 밥을 먹은 자리였을 뿐이라며 “고3이 뭐를 알았겠는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몰랐는데 조폭과 연루된 것처럼 악의적으로 보도됐다”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결론은 그의 학창시절이 일반학생과 달리 거칠었을지언정 당시 고3이면서 막 씨름선수 데뷔할 시점에 스스로 판단해 일본 야쿠자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의견인 듯하다.[20] 애초에 체육계가 윗 사람이 까라면 까야하는 똥군기로 악명높은데 강호동이 뭘 할수 있겠나. 감독과 코치가 가자고 하면 가야 한다.

2.4. 방송 복귀 후 부진

파일:attachment/강호동/리스피아르_남자개그맨_순위.jpg
리서치 전문 업체 리스피아르에서 조사한 결과

프로그램 성적과는 별개로 2010년까지도 유재석의 뒤를 이어 인기도 2위를 달렸던 강호동의 인기도는 잠정 은퇴 이후 우려했던대로 많이 하락했다.

야심차게 신설한 KBS 달빛 프린스는 시청률 부진과 작품 자체의 악평으로 조기 종영을 맞이했으며, 달빛 프린스가 종영됐던 자리에는 우리동네 예체능이 새로 신설되어 진행 중이었다. 다행히 우리동네 예체능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위태롭게 유지하다가 신설된지 3년만인 2016년 10월 4일 날 녹화 도중 급작스럽게 폐지되었다. 이 외에도 같은 채널의 투명인간 MC로도 2015년 1월에 낙점되었으나,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3개월 만에 종영되었다.

MBC무릎팍도사는 당시에 KBS에서 방영하는 해피투게더에 밀려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종영되었으며(사실 해피투게더라는 표면적인 동시간대 경쟁프로그램보다도, '1인 게스트 집중탐구'라는 동일한 포맷을 가진 힐링캠프가 실질적인 경쟁 상대였다. 물론 그보다 몇년전의 김승우의 승승장구도 비슷한 포맷.), MBC에서는 몇개월 뒤에 별바라기가 새로히 생겼었지만, 혹평이 많았다. 스타와 팬들의 이야기가 주제라고는 하는데 해당 스타의 팬이 아닌 그냥 일반 시청자의 눈으로 볼 때는 팬미팅에서나 할 얘기를 왜 토크쇼에서 하나 싶은 구석이 있다는 듯. 어쨌거나 강호동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으며, 시청률도 매우 부진했었다. 결국 별바라기도 9월 18일 방송을 끝으로 5개월만에 종영되었다. #

이보다 앞서서 SBS맨발의 친구들아빠! 어디가?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크게 밀렸고, 특히 2013년 5월 5일 3회 시청률은 2.9%일 정도로 극심한 시청률 부진에 빠지고 2013년 11월, 끝내 종영되었다. 스타킹은 9 ~ 10%대 시청률로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점점 밀리기 시작하다가 화요일로 시간대를 바꾸었음에도 시청률 부진으로 종영되었다. 아는 형님과 비슷한 시기에 론칭했던 동물 예능 마리와 나도 2016년 4월에 5개월만에 종영했고 강호동은 아는 형님 강예원 편에서 이에 대한 상당한 아픔을 토로했었다.

이 시기 강호동이 진행하다가 시청율 부진으로 종영했던 프로그램들을 묶어서 라고 하는데, 나름 강호동의 아픈 손가락으로 부진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아는 형님에서 자학개그 소재로 써먹었다. 여기에 2018년에 잠시 했다가 망한 토크몬까지 합쳐서 별달맨투몬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2.5. 부활, 새로운 도전

"동생들에게 맡기고 그 흐름에 이끌려 가보고자 했다. '옛날 사람'이라고 무시를 해서 주눅도 들고 그랬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 JTBC 아는 형님 첫 팬미팅 중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면서 강호동도 한물 갔다는 평가가 계속 나오고 있던 중 신서유기 시즌1에서 본인의 강한 이미지를 버리고 스스로를 현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는 옛날 사람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예능인으로서 부활에 성공했다. 특히. 기존 강호동의 캐릭터에 거부감을 가졌던 시청자에게 많은 동정표를 얻음과 동시에 기존 시청자에게는 과거 1박 2일 식 개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프로그램 역시 당초 목표였던 2천만 뷰를 넘어 종영일 기준으로 4천 340만 뷰를 기록, 흥행에 성공했다. # 아무튼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 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

신서유기 시즌1에서 강호동이 히트를 치는 것을 보고 JTBC에서 강호동과 이수근을 특별 섭외해서 제작한 아는 형님 역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경쟁 상대가워낙 강하다 보니 이 쪽도 인지도나 평가에 비하면 시청률은 아쉬운 편이다. 시청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그래도 오랜만에 강한 캐릭터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편. 신서유기에서는 강한 캐릭터보다는 오히려 1박 2일 당시의 많이 당하는 모습과 요즘 예능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예능인이라는 캐릭터가 겹쳐 불쌍한 이미지가 더 강조, 부각되었다.

또한 2016년 3월에는 놀라운 대회 스타킹 역시 화요일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

그리고 전작의 여세를 몰아 제작된, 2016년 4월 부터 방영을 시작한 신서유기 2 역시 방영 4주만에 한국에서 2천 340만 뷰, 중국에서 1억 20만 뷰를 기록하는 등 흥행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강호동의 부활은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중. #

부활의 조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유는 힘과 카리스마로 대표되던 강호동 고유의 캐릭터를 버리고[21] 변화를 택했다는 점이 주효하게 먹힌 것이 크다. 실제 한번 녹화하면 4~5시간은 달리던 스타일에서 힘을 많이 빼고 진행을 주도하는 대신 출연자들에게 녹아드는 방식으로 진행 방식을 바꾸면서 민경훈, 김희철, 안재현과 같은 개성 강한 출연자들과의 케미도 살기 시작했다. 아는 형님 중간에 투입된 이상민이 첫 2주간은 새파란 후배들인 김희철, 민경훈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할 정도니. 2016년 7월 2일 방송된 아는 형님 예고편에서는 김종민에게 볼살을 잡히는 모습도 보였다. 이수근의 경우에는 예전처럼 그대로 부려먹다가 반항해도 가끔씩 당해 주는 경우도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22]

2016년 7월, 오랜 기간 MC로 출연하던 스타킹의 폐지가 확정됐다. 허나 이건 강호동의 부진과는 큰 관계가 없다. 스타킹이야 이미 옛날부터 혹평이 많았으며, 그나마 강호동 덕에 마지막까지 잘 버틸 수 있던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즉, 이건 프로그램 자체의 수명이 다 했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동년 10월 4일에 우리동네 예체능도 폐지, 그것도 양궁 진행 도중 정말 갑작스럽게 종영을 해 버렸는데, 공식 발표는 없지만 위에서 끝내라니까 끝낸 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 동안 예체능이 종목을 많이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내는 안정적인 프로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생활 체육과 관련된 전반적 종목들을 다 할 수 있어서 아직까지 소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돌연 끝내버린 것은 심히 의문이라는 평이 많다.[23]

또한 예체능 종영 무렵에 스승 이경규와 무려 23년만에 뭉쳐서 만든 예능인 한끼줍쇼 역시 잘 되면서 완전한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한끼줍쇼는 막강한 경쟁 프로 라디오 스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시청률에서 6%까지 찍었으며, 계속 4 ~ 5% 대를 유지하였다. 한끼줍쇼에서 이경규와의 티격태격 콤비 플레이와 기존의 친근한 이미지로 호평을 받았다.

2016년 12월, 비록 3사 연예대상에서는 모두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신서유기의 세 번째 시즌MBN 첫 진출작인 '내 손안에 부모님'까지 런칭되면서 기존 프로그램 개수를 합치면 4 ~ 5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모처럼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2017년 1월, 런닝맨에 합류한다는 기사가 났다. 10년 만의 유강조합 부활인 셈이었다. 기사 댓글을 보면 알다시피 기대 만발. 그러나 출연을 고사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마도 강호동의 합류 기사가 나온 후, 시즌2를 기획하던 중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한 김종국송지효가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어난 논란 때문으로 짐작된다. 실제 강호동 측에 따르면,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출연 여부가 시청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끼쳐드리는 상황을 결코 원치 않는다며 정중히 고사한다고 밝혔다. 기존 멤버의 정상적이지 못한 교체로 인해 런닝맨 제작진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인지라 강호동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다. 방송계에서 공과 사를 가리는 강호동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점, 그와 사적으로도 친한 김종국을 하차시키는 구상을 했다는 점에서 런닝맨 제작진 측은 이미 안될 패를 가지고 짜려고 했다는 의견이 많다. 참고로 강호동의 의사 결정 후, 시즌2는 없다며 프로그램 폐지를 발표했던 런닝맨은 출연진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기존 멤버들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게 되었다며 종영을 번복했다.[24]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런닝맨 참여가 불발되면서 2022년까지 지상파 방송 3사에서 강호동이 출연하는 방송은 전무했던 상황이다. 하지만 2023년에 KBS와 SBS에서 출연했다.

2017년까지 섬총사, 한끼줍쇼, 아는 형님, 신서유기 4개의 프로그램을 주축으로 활동했으며 비록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인기 예능인으로서 성공적으로 부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8년 이후로도 강호동은 정규 예능에만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을 거듭했다.

SBS Plus 외식하는 날은 강호동 최초의 관찰 예능 출연 작품으로서 파일럿으로 시작했지만, 반응이 좋아 정규 편성이 되었다.

더 지니어스의 연출을 맡았던 정종연 PD와 탈출 예능인 대탈출을 런칭했고, 흥행에 성공해 2019년에 시즌 2가 방영되었으며, 시즌 3도 2020년에 방영되었다.

추석 파일럿으로 선보였던 가로채널이 정규 편성이 되며 약 3년만에 SBS 예능에 출연을 하게 되었다. 대상 후보에도 들었지만 그 때는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과 강하대 촬영을 하고 있어서 참석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 대신 이승기가 소감으로 '어딘가 집에서 보고 계실 우리 호동이형'이라고 언급했다.
2.5.1. 신서유기
나영석 PD가 1박 2일의 정신적 후속작으로 내놓은 작품. 시작부터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와 함께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는 형님보다 먼저 런칭[25]되었는데, 아는 형님과 마찬가지로 초반에는 적응하지 못하다가 나머지 세 멤버에게 많이 맡기고 진행은 많이 하지 않았는데, 신세대 예능이라는 타이틀과는 아무래도 맞지 않아서 힘들어 했다. 그러나 오히려 능수능란한 다른 멤버들과 달리 아재 컨셉으로 멘붕하고 다른 멤버들에게 놀림 받는 모습으로 재미를 주기 시작하더니 점점 적응하며 어느덧 다시 메인 진행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2.5.1.1. 강식당
신서유기 외전으로 본인 이름을 딴 외전 프로그램인 강식당이 런칭되었다. 나름 3까지 나오면서 외전으로는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2.5.2. 아는 형님
별바라기, 맨발의 친구들, 투명인간 등 지상파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오래 못 가고 줄줄이 폐지될 때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하게 된다. 우선 종편 중 이미지가 가장 좋고 젊은 세대들이 가장 많이 보고 지상파급인 JTBC를 선택하였는데, 마리와 나, 아는 형님, 쿡가대표까지 프로그램을 3개나 맡게 된다. 다만 아는 형님을 제외한 두 프로그램은 일찍이 종영되었고, 아형도 위태위태한 상황에 처해서 사실상 실패라고 보았는데, 아형이 형님학교로 컨셉을 바꾸면서 급부상하게 되어 2024년 3월 기준 9년 째 방송해오고 있으며, 큰 이변이 없는 한 롱런할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건 이 문서를 참고하자.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강호동 특유의 진행병을 버리고 이수근, 서장훈과 같이 어택과 쉴드를 적절히 갖추어 무게감을 주는[26] 역할로 변신에 성공을 해서 언론과 대중에게 제2의 전성기라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많이 순해졌다는 평을 듣는다. 옛날의 강호동을 아는 사람들은 정말 좋은 시절에 방송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2.5.3. 대탈출
대탈출은 강호동의 새로운 예능 도전기이기도 했다. 정종연이라는 추리 및 게임 장르로 매니아층을 많이 가지고 있는 PD와 같이 작업하는데, 첫 회에서는 프로그램 컨셉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에는 본인이 철저하게 연구하고 노력해서 대탈출에 있어서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여기서는 강호동의 노련미가 많이 드러나는 편인데 특히 공포편에서는 탈출러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많이 그려진다.
2.5.4. 라끼남
리는 자. 올리브영, tvN 등 CJ 엔터테인먼트 계열 방송국과 함께 유튜브의 채널 십오야에서 동시 송출된다. TV로 방영되는 분량은 6분 가량으로 매우 짧고, 풀버전은 유튜브로 나오니 사실상 유튜브가 메인이라고 봐야 한다.

첫 방송부터 라면 '끼리묵으려고'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도전을 했다.[27] 등산이 아니더라도 라면으로 끼니 한 번을 제대로 먹으려고 낚시를 하거나 김장을 하는 등 온갖 시도를 하는 것이 본 프로그램의 메인 스트림이다. 이 과정에서 열 시간 이상의 공복은 기본이다.


[1] 이경규가 무릎팍도사 출연 당시 직접 말한 묘사로는 자기 전까지 예의 바른 모습이었으나 아침에 깨우니 엄청나게 큰 '덩어리'가 인상을 '뜨윽' 쓰면서 일어났고, 그래서 순간 '아 잘못 데려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2] 물론 나중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는 강호동이 실패했을지라도 자기는 은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강호동이 이경규와 관련되어 언급할 때마다 나오는 것이며, 시상식에서 강호동이 상을 받을 때마다 마지막에는 이경규가 한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감사를 표한다.[3] 커다란 덩치에 어린애같이 찡찡대는 연기갭 모에를 제대로 어필했다. 마침 강호동이 그런 귀엽고 깜찍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보니 잘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호동이 자신의 후계자가 되길 원했다던 이만기의 드립에 따르면 씨름계에서는 강호동이 이왕 연예계에 진출했으면 천하장사의 위엄을 지키는 캐릭터를 밀고 나가길 원했는데 무슨 버짐핀 머리에 바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보고 저게 저렇게 먹고 살아야 하냐면서 거의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나 뭐라나.[4] 현재 관찰 예능의 시초이자 원류가 된 예능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강호동의 다이어트기를 보여준 자유선언 토요일의 코너다.#[5] 2004년은 유재석이 수상하였으며 별도 연예대상이 없던 SBS의 사실상 예능부분 최고상이었다. 사실상 지금의 연예대상과 비슷한 수준의 위상을 지닌 셈. SBS에서 제대로 된 연예대상이 시작한 건 2006년 이후의 일이다.[6] KBS: 2008, 2009년 2회 연속 수상/MBC: 2008년/SBS: 2007년, 2010년[7] MC몽 曰, 인물이 아닌 동물이 상을 받는 경우도 처음이라고 해요. 저도 이제 가능성이 있어요.[8] 5년 후인 2013년에는 유재석이 같은 상을 수상하게 된다. 참고로 이때 시상자가 강호동.[9] 이를테면 박명수. 딸 민서의 출생 이후 좋은 아빠로서의 길과 좋은 연예인으로서의 길 양 쪽 다 신경쓰려다가 결국 무력감과 허탈감, 여기서 온 경미한 실의감에 빠져서 상당한 슬럼프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결국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들속에서 하차한다 말 한마디 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냈다.[10] 사실 안티와 연관하여 설명하자면 1박 2일 하차보도가 나오기 직전까지는 안티들이 있어도 다수의 팬들에게 반박당하고 묵살당하는 형국이었다면 이후엔 팬들 스스로가 무력감에 빠져 옹호도가 약해지다보니 안티들이 더 극성으로 날뛴 경향도 있다.[11] 세율이 낮다[12] 원래 이게 일반적인 세무사의 일이다.[13] 이 사람은 전해인 2010년에 있던 신정환의 원정도박 및 뎅기열로 거짓말친 사건 때도 신정환을 고발한 적이 있다. 또 본인 주장에 따름 자기도 씨름 쪽에 있어봐서 강호동과 술자리를 같이 했던 적이 있고 여기서 루머에 대한 해명을 똑바로 안했다고 강호동을 때린(!!!) 적이 있다 했다. 만약 전부 사실이라면 오지랖 크기가 은하계 정도인듯.[14] 이론상 조세포탈액이 년 5억원을 초과하면 세무당국과 관련없는 제3자가 먼저 고발해도 공소 유지에 문제되지는 않는다.[15] 여담이기는하나 우스겟소리로 "어떻게 블루투스 스피커 조차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탈세를 할 수 있나?' 라는 말이 있다.[16] 기자회견 당시 강호동이 말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안녕하십니까? 강호동입니다. 최근 세금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문제로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저는 젊어서 씨름을 했습니다. 씨름 선수 시절 국민 여러분의 응원으로 천하장사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예인이 되어 다시 시청자 여러분들의 분에 넘치는 응원과 관심 속에 지금 많은 프로그램의 MC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강호동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제가 여러분들의 사랑에 실망을 드렸습니다. 최근에 벌어진 세금 문제는 그 이유를 막론하고 어쨌든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제 불찰이고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국민 여러분들의 실망과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TV를 통해 시청자분들께 웃음과 행복을 드려야 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명령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어찌 뻔뻔하게 TV에 나와 얼굴을 내밀고 웃고 떠들 수 있겠습니까? 제 얼굴을 본들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어찌 마음 편히 웃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시청자분들께 다음과 같이 제 결심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 강호동이는 이 시간 이후로 잠정 연예계를 은퇴하고자 합니다. 저 무식한 강호동이가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입니다. 저는 젊어서는 씨름 밖에 몰랐고 그 위에 방송 밖에 모른 채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자숙의 시간 동안 비단 세금 문제 뿐만 아니라 정신없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제가 그동안 놓치고 살아온 건 없는지 또한 초심을 잃고 인기에 취해 오만해진 건 아닌지 찬찬히 제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제작진과 상의를 통해 최대한 방송국과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을 하여 하차 시기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죄드리며 저는 지금 떠나지만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지금껏 받은 분에 넘치는 사랑, 절대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7] 원래는 기자회견 현장에 찾아갈 생각이었으나 촬영 스케줄로 인해 매니저를 보냈다고 한다.[18] 물론 KBS의 파업 여파와 동시간대 런닝맨의 상승세 같은 외부 요인도 있었고, 가장 큰 요인으로 바뀐 PD와 멤버 미스캐스팅이 말아먹은 게 크다. 다행히 3기는 시청률 회복을 하면서 선전했으나,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당분간 제작이 중단되었다가 4기로 재개되었다.[19] 상술했듯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과소납부 판결에 이의제기를 했고, 조정 중에 난데없이 기레기발 뉴스로 탈세 논란으로 비화되어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이의제기를 철회하고 과소납부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20]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의견은 강호동이 1박2일을 그만두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세금탈루로 물의를 빚은 상황에서 종편으로 이적하는 게 어려워지자 채널A 측이 강호동에 대한 보복성 기사+노이즈 마케팅을 취했다는 것이다.[21] 강호동이 자학개그로 늘 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허나 이는 강호동의 예능감이 떨어졌다기보다 근래 인기 예능의 트렌드가 메인 진행자가 나서서 프로그램을 이끄는 게 아니라, 출연진 다수가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흘러가는 양상이어서 본인의 스타일을 바꾼것이 더 맞다.[22] 물론 1박 2일에서도 초창기엔 김종민에게 곡괭이(팔꿈치로 찍는 것)를 당해주거나, 이수근과 톰과 제리 기믹으로 당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애초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찌를 틈을 만들어주어 상대 출연진이 이를 찔러줄 때 반응하는 것이 강호동의 주된 개그 패턴 중 하나였다. 다만 현재는 그 빈틈을 더 넓게 보여주고, 이전의 강압적인 모습은 거의 없애버린 상황이다.[23] 그리고 우리동네 예체능의 후속으로 들어간 트릭&트루TWICE, Red Velvet, 여자친구 등 당시 최정상의 주가를 올리던 아이돌을 게스트로 매우 자주 기용하고도 심각한 부진을 이어가다 반년 만에 종영되었다. 후속작들도 하나같이 개죽을 쑤며 현재 화요일 밤은 KBS 예능의 무덤이 되었다.[24] 이때 재차 강호동을 영입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런닝맨 측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였다.[25] 인터넷으로는 먼저 런칭되었으나 TV에는 좀 더 늦게 나왔다.[26] 콩트나 게임에서 애매한 상황일 때에는 강호동이 손수 규칙을 정하거나 아예 개조를 한다. 게스트에게 패했을 때는 배째기도 한다.[27] 1~3회가 모두 천왕봉 등정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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