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화 겨울왕국 2의 평가를 다룬 문서.2.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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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64 / 100 | 점수 6.9 / 10 | 상세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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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77% | 관객 점수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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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3.3 / 5.0 | 관람객 별점 3.7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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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7.065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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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81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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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7.4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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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7.2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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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7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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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80.59% | 별점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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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7.4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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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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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A- |
Frozen II can't quite recapture the showstopping feel of its predecessor, but it remains a dazzling adventure into the unknown.
겨울왕국 2는 전작의 화려하고 놀라운 느낌을 완벽히 되찾지는 못하지만, 숨겨진 세상으로 가는 눈부신 모험을 보여준다.
로튼 토마토 총평
겨울왕국 2는 전작의 화려하고 놀라운 느낌을 완벽히 되찾지는 못하지만, 숨겨진 세상으로 가는 눈부신 모험을 보여준다.
로튼 토마토 총평
전체적으로 영상미는 훌륭하지만, 스토리의 급전개가 상당히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 전작보다는 평이 좋지 않지만, 충분히 흥행할 만한 괜찮은 영화였다는 것이 중론.
3. 영화 평론가 평
미(왕)국의 기원을 찾아 새롭게 개척하기
허남웅 (씨네21) (★★★)
허남웅 (씨네21) (★★★)
정치적 올바름과 기술의 진보를 등에 업고 쌓은 디즈니 공주 왕국
이주현 (씨네21) (★★★)
이주현 (씨네21) (★★★)
방향도 결과도 모두 옳은 완벽한 귀환
심규한 (씨네플레이) (★★★★)
심규한 (씨네플레이) (★★★★)
현실과 통하는 디즈니의 마법
정유미 (더 스크린) (★★★★)
정유미 (더 스크린) (★★★★)
3.1. 영화 리뷰 유튜버 평
영화 리뷰 유튜버 크리스 스턱만은 전작보다 비주얼적으로 발전했고 노래도 '그냥 괜찮은 수준이지만 작중에서는 아무 감흥이 없는' 크리스토프의 것을 제외하고는 훌륭했으며 더빙의 질이 대단히 높았으나, 크리스토프의 캐릭터는 영화 내내 청혼 클리셰만 반복하고 올라프는 참기 힘들 만큼 짜증나며, 결말(엘사가 마법의 숲에 남고 안나가 아렌델을 통치하는 것으로 추정)은 캐릭터 파괴일 뿐더러 굉장히 중대한 결정임에도 너무 간단히 결정짓고 남들도 물 흐르듯 받아들여 최악이었다고 하며 C+을 주었다.제레미 잔스는 역시 비주얼적인 발전을 호평했고, 음악이 제법 좋았으며 후반부 몰입도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토리에 대해서는 착상은 좋았으나 잘 살리지 못했고 군데군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으며 반전이 너무 뻔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엘사와 안나가 함께 등장할 때는 좋으나 엘사가 안나로부터 분리되면서 재미없는 캐릭터가 됐고, 크리스토프는 그냥 전개에서 잘려나가 버린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올라프는 1편에서는 좋은 캐릭터였는데 제작진이 캐릭터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재활용하려다 보니 결과물이 썩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종합적으로는 '술 먹고 보면 좋을' 수준의 영화라는 평.
Nostalgia Critic 등의 캐릭터로 영화를 리뷰하는 유튜버 더그 워커는 제법 흥미로운 설정이 있었고 엘사가 나오는 부분(+안나 파트 일부)은 좋았으나, 크리스 스턱만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토프와 올라프의 캐릭터는 끔찍했다고 비판했고 쓸데없는(...) 캐릭터들에 분량을 할애하다가 스토리는 급전개되는데다 첫 5분만에 '반전' 요소가 뻔히 보이는데 영화 내내 중대한 비밀마냥 숨긴다고 비판했다. 또한 마지막에 아렌델이 휩쓸리더라도 댐을 파괴하는 안나의 결정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동화적 이야기에서는 나름대로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엘사가 물을 막아버려서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래의 경우 엘사와 안나의 노래(안나의 경우 상황 때문에 몰입하지 못했지만)는 좋았으나, 차세대 Let it Go를 몇 곡이나 만들어내려는 야망이 뻔히 보임에도 그 수준에 도달한 곡은 없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4. 긍정적 평가
4.1. 스케일의 확장
- 영상미가 발전했고 세계관의 규모가 커졌다. 훈훈한 결말을 낸 전작이 대히트를 쳤으니, 후속작에서는 가벼운 이야기, 또는 전작의 히트친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심각하고 세계관의 규모를 확장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호평하는 의견들이 보인다. 특히 2019년 후반을 기준으로 디즈니가 각종 할리우드의 영화 스튜디오들을 흡수 합병하여 문화 시장의 거의 절반을 먹어 버린 상태이다. 디즈니가 먹어버린 그 제작사들이 담당했던 영화 예술의 발전 대한 과감한 시도의 측면들까지 상업성을 기준으로 디즈니에 의해서 묻혀 버리고, 오직 대중에게 쉽게 먹힐 것 같은 블록버스터들, 그나마도 수십 년 전의 명작을 고민을 덜 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들, 또는 영화 시리즈의 관성의 힘을 많이 빌린 영화들이 나오는 상황에 대해 경고하는 영화계의 목소리도 많이 나오는 시점이었다. 그 때 마침 나온 이 영화는 그런 편한 길에 안주하지 않고, 주 타겟 대상에게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감수하고 과감하게 한 걸음 더나가고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것은 디즈니 영화들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시도라 보기 힘들지 몰라도, 저연령층을 타겟으로 세계 역대 애니메이션 매출 1위를 찍은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사실 선량하게 보였던 우리들이 나쁜 놈들이었어. 그래서 과감하게 모든 것을 직접 파괴해서라도 해결해야 해'라는 것을 핵심 주제로 삼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전반적으로 전작에서 제대로 회수되지 않았던 떡밥이나 복선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엘사가 가진 마법의 힘의 원천, 엘사와 안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진짜 이유,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연애의 마무리 등등. 다만 정리되지 못한 복선들이 이두나를 중심으로 있었기에 3편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갈 궁금증을 던지는 요소도 많이 남겼다고 볼 수 있다.[1]
4.2. 엘사와 안나의 성장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편의 마지막에서의 엘사와 안나의 모습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나아간 것도 훌륭하다. 1편의 엔딩은 완벽했지만 엘사가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다 되찾은 유대를 소중히 하면서도 자신의 힘에 고민하던 여왕에서 홀로 위험에 맞설 수 있는 정령의 모습으로 안나가 언니를 마침내 되찾았다는 안도감에서 그 언니를 잃어버려도 옳은 일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아렌델의 여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은 왜 이 2편이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 지가 납득이 될 정도로 큰 변화다. 대호평을 받은 1편의 엔딩의 완벽함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등장인물들에게 선사한 고뇌와 고난이 관객들에게 잘 설명되었다.
- 엘사의 성장 스토리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내적인 괴로움을 완벽하게 극복한 모습이며 감정선은 물론 액션씬이나 활약도 면에서도 전작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고 행동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히 알려 주는 정도가 아니라, 관객들이 느낀 이 영화의 좋은 인상을 거의 지배할 정도로 너무 잘 표현했다.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에 대해서 물어 보면 '엘사가 □□ 하는 장면', '엘사가 부른 노래', '엘사의 그 글썽거리는 모습', '엘사의 모습 변화'가 뇌리에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그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라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전작에선 설명되지 않았던 엘사의 능력의 기원, 부모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있을 장소에 대한 고민을 공감하기 쉽게 잘 표현해 주었기에 관객들은 더더욱 이해하기 쉽고 거기에 몰입하기도 쉬웠다.
- 안나의 성장 스토리 역시 엘사에 못지 않게 잘 연출되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불안' - '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의 절망' - '극복' -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게된 이별' 까지의 정서를 멋진 화면 구도 연출과 함께 잘 살렸고, 그것을 시각화 청각화하는 과정에서 장점이 많았다. 특히 동굴에서 바위를 하나하나 기어 올라가며 출입구에서 비쳐 오는 빛을 향해 올라 가는 장면과 그 장면을 거쳐 산 정상에 선 듯하여 멀리 보이는 댐과 눈높이를 마주하는 장면이 그 연출들의 정점을 찍는다. 그로서 제작진은 이 시리즈의 이야기의 메인 진행자는 안나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마침내 맨 마지막 전개에서 안나는 엘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해결의 발단은 댐을 부숨으로 안나가 열었고, 그 해결법으로 인한 파멸적인 결과는 클라이막스에서 엘사가 막았지만, 그러기 위해 잠자는 얼음강 속의 엘사를 깨운 것은 왕자님이 아닌 동생 안나의 역할이었다.
4.3. 더 깊게 스며든 OST 음악들
- OST에 대한 혹평란의 의견 요소들이 있음에도 이 점을 드는 것은, 전편과 비교 대상으로서, 혹은 하나의 팝송곡으로서의 완성도와 장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뮤지컬 OST로서의 장점을 말하는 부분이다. 다회차 관람에 대한 평이 쌓이면서, 팬들이 느낀 노래 연출들과 영상 화면 연출들과 이야기 내러티브 진행 요소들의 어우러짐을 종합적으로 비교한 평가들에서 언급되는 OST 곡들의 위상은 계속 올라가는 추세이다. 물론, 이 곡들의 장점이 전편의 영화사적인 의미까지 부여 받을 법한 그 렛잇고까지 능가했다는 평가 정도는 아니다. 대신에 이번에 소개된 7곡들의 이야기 내용과 유기적으로 얽혀서 작용하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호평 요소들의 평균이 전편 OST의 호평 요소의 평균보다도 더 발전했다는 평이다. 이야기의 숨겨진 열쇠와 복선으로 자리 잡다가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관객을 울게 만들었던 All Is Found며, 다섯 주요 멤버의 이야기의 시작점을 평화롭게 잘 도입한 Some Things Never Change며, 사건 전개의 시작을 열면서 이 영화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은 Into the Unknown이며, 이야기의 마스코트 올라프의 변화와 정령의 조우를 코믹하게 묘사한 When I Am Older며, 의도 전달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몰라도 의도를 알아본 이들에게는 재밌는 씬 스틸러가 되어 준 Lost in the Woods며, 이 영화의 중심에서 빛나는 두 기둥 Show Yourself와 The Next Right Thing. 이 곡들이 이야기 진행과 밀착해서 다소 의문도 생길 수 있을 법했던 내러티브에 강렬한 감성적인 힘을 부여하여 이 영화의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리는 데 공헌 했다고 볼 수 있다.
4.4. 디테일한 영상미
- 전작의 강점인 캐릭터 설정의 디테일(팔을 꼰 채로 움츠리거나, 눈을 마주치지 못하거나, 당황할 때 입을 가리거나, "Wait, what?(잠깐, 뭐?)" 대사를 자주 쓰거나, ... 이런 세세한 습관도 캐릭터의 특징과 결부시켜 배치 된)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잘 구사 된다. 제스쳐 게임 하나에서도 조물조물 거리는 몸짓 밖에 못하면서 자기 표현을 잘 못하다가 혼자 노래할 때만 되면 온 세상의 정기는 다 받은 듯 생동감 넘치는 엘사나, 반대로 표현을 너무 과하게 잘하다가 이야기 진행에도 도움을 주기까지 하는 올라프, 상대의 말을 잘 끊으면서 말을 잘 하지만 그걸 밉지 않게 하는 안나 등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에 대한 관찰과 연구 수준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후속작까지도 잘 표현 되면서 이 겨울왕국 영화 시리즈의 강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 전작의 또다른 강점인 아름다운 영상미와 캐릭터 디자인도 여전히 호평이 많다. 안나의 바뀐 헤어스타일이나 엘사의 최종 각성폼 등 캐릭터 개개인 뿐 아니라 겨울 풍경의 아름다움 등 외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특히 바뀐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는 엘산나 자매는 머리를 풀 수록 예뻐진다며 수많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중. 그 뿐만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홍채에 비친 상대방의 인물들까지 일일이 다 3D로 그려내고, 옷의 옷감 실의 질감까지 3D로 구현하며, 캐릭터의 실핏줄 하나하나까지 다 3D로 구현할 정도였다. 인간의 머리칼은 평균 10만 가닥 정도라고 하는데, 엘사의 3D로 재현된 머리칼은 약 40만 가닥이었다고 한다.
- 그래픽과 연출 면에서도 호평이 많은데, 작품 내 옷의 무늬의 디테일, 배경과 캐릭터의 조화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물이 나오는 장면도 상당히 많은데,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물과 눈이 3D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하기 가장 힘든 오브젝트라는 걸 생각하면 이 장면들에 들어간 정성도 대단하다. 원래 유체의 구현은 진짜 토나오도록 어려운 부분이다. 한가지 예시로 시네마틱 영상에는 이골이 나 있는 블리자드의 오버워치 단편 애니메이션 슈팅스타의 비 오는 장면을 애니메이션 팀이 구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다음부터는 비 오는 장면은 넣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특수촬영에서 구름효과는 실제로 수조에 물감이나 우유 같은 걸 풀어서 그 밑에서 찍는 전통적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 장면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실사영화에 쓰이는 연출기법을 많이 도입했다. 핸드헬드 패닝샷으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하나하나 훝는다든지 등장인물이 진짜 현실의 배우 움직임처럼 화면 앵글의 이미지너리 라인 밖으로 나가면서 장면전환이 된다던가,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 이동 속도에 맞춰서 주변이 흐릿해지는 기법을 3D 애니에서 구현해 낸다던가...참고로 안나의 키스씬은 실제 성우인 크리스틴 벨의 키스씬 장면들의 특징과 닮은 장면이 매우 많다. 가령 키가 작은 벨이 위로 올려다본다던가 하는 식이다. 또한 물의 정령 노크를 묘사할 때 물 속에서 따로 영역을 형성하고 움직이는 모습으로 구현했다. 그냥 자연의 물을 묘사한다면 물리 엔진을 쓰면 될 것인데, 자연이 아닌 마법 판타지의 물을 묘사한다면 물리 엔진도 복잡하게 써야 한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물의 영역 속에서 또 한 번 물'을 구현해 낸 것이다.
- 그 수많은 낙엽들조차도 하나하나 전부 색칠한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정성들여 묘사했다. 엔딩 크레딧에 이런 비주얼을 구현한 보면 3D 랜더러가 10명으로 파악된다.
이 퀄리티의 영상을 위해 구글의 슈퍼 컴퓨터를 대여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3D 그래픽은 퀄리티가 높을수록 제작과정부터가 녹록지 않기 때문. 특히 아토할란으로 가는 길에 물의 정령 노크와 싸우는 장면의 파도와 기타 물을 구현하려고 8개월을 공들였다고 한다.
4.5. 기존 팬들에 대한 예우의 측면에서
-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픽사는 2018년을 기점으로 주먹왕 랄프 2와 토이 스토리 4에 이어 겨울왕국 2까지 주연들의 성장과 이별을 테마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서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본다면, 바넬로피에 대한 과도한 랄프의 집착이 호볼호의 반응을 이끌어 낸 주먹왕 랄프2나, 전작 3작품에서 일관적이게 유지된 우디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흔들어 버린 점에서[2] 팬들에게 호불호가 있는 토이 스토리 4에 비해서 본작의 주인공들의 성장과 이별은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 제시했다고 보는 쪽이 우세한 편이다.
다른 작품들은 무언가 '더 좋아 보이는 요소'를 던져 주고, 그와 과거 이야기들의 요소와 비교하여 우열을 정하고 새로운 길로 나가는 것이 옳은 것처럼 묘사되며, 그런 과정에서 과거 작품들을 보면서 정서적으로 감동한 점이 마치 성장과 변화라는 명분으로 푸대접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의견들이 각종 팬들의 의견이 모이는 곳이나 SNS들에서 무시 못하게 보인다. 그런데 겨울왕국 2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이야기 요소들(과거사의 해결, 노덜드라와의 새로운 구도, 정령의 세계관,...)이 아렌델 국가와 아렌델 백성을 향한 두 왕족 자매의 애정이나, 두 왕족 자매의 서로를 향한 끈끈한 가족애, 그리고 주요 캐릭터들의 유대를 거스르지 않은 채로 평행하게 흡수되는 형태로 이야기는 귀결된다.
물론, 이는 이야기의 만듦새와 별개의 요소이다.[3] 그러나, 제작자들의 '의도'를 위해서 팬들의 추억과 정서를 희생시키는 듯한 판을 만들어버리는 두 작품들에 비해서, 팬들이 정서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지혜롭게 변화를 수렴한 겨울왕국2의 접근법은 현명했다고 볼 수 있는 요소이다. 그래서 혹자에게서 "디즈니 리바이벌에서 흔들리는 기조가 보였데, 겨울왕국 2를 보고 다시금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는 의견들도 보이곤 한다.
4.6. 훌륭한 한국어 더빙
- 전작과 마찬가지로 우리말 더빙의 퀄리티가 매우 좋다. 한국어 더빙판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디즈니 코리아의 정성이 돋보인다. 전작의 퀄리티도 좋은 편이었지만 본작은 히트작의 후속작이라는 점에 디즈니 코리아가 한국어 더빙판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 전작에서 잘 구성된 성우진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성우들의 대사 연기도 열연이 돋보인다. 2편이 개봉하기 전까지 6년이란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목소리는 1편과 거리감이 없으며 오히려 연기력은 2편 때 더욱 높아졌다. 한국판 OST의 완성도 또한 매우 뛰어나서 큰 호평을 받았으며 Into the Unknown 엔딩 크레딧 버전을 태연이 불렀다. 한국은 전작에 Let It Go 엔딩 크레딧 버전을 씨스타의 효린이 부른 것처럼 2편 역시 태연이 불렀다. 태연의 가창력 역시 매우 좋은 편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등지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 1편에서 소연과 목소리 차이가 커서 아쉬움을 남긴[4] 박혜나가 창법을 바꾸면서 소연과의 목소리 차이가 훨씬 덜해진 것도 장점. 박지윤과 이장원은 여전히 클래스를 보여주는데다가 2편에서 크리스토프와 조영경의 단독곡이 추가되면서 정상윤과 조영경까지 OST에 하드 캐리를 해주면서 관객들의 노래에 대한 만족도가 어마어마하게 크다.[5] 디즈니 갤러리, 겨울왕국 갤러리에서는 갓지윤과 갓혜나는 영원하다며 찬양하고 있다. 이 덕분에 겨울왕국 갤러리에서는 더빙을 보지 않았다면 한번쯤 보는 것을 권장하는 편이다. 퀄리티가 정말 뛰어나기 때문.
5. 부정적 평가
- 전반적으로 기승전결의 러닝타임 분배가 좋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서사의 규모는 커지고 볼거리와 비주얼은 더 좋아졌지만, 그 서사의 규모를 스토리텔링의 흐름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입하기도 전에 다음 상황이 연달아 펼쳐지고, 새 설정이 공개되어도 그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실한 채로 진행을 강행하는 이야기 진행의 경향이 보인다는 의견들이다.(##, ##) 그 점에서 상당수의 관객들이 개연성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결말 부분의 급전개가 상당히 심하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공통적으로 단점으로 꼽고 있다.
- 특별히 결말 부분에서 러닝타임 분배는 아쉬운데, 중반까지 어찌어찌 필요한 부분과 강조할 장면과, 설명이 필요한 설정들을 부족한 대로 빠질 건 없이 빌드업한 영화가 결말 부분에서는 너무도 빨리 일사천리로 해결된다. 그런 과감한 선택과 고뇌의 결단을 내리는데 이미 영화 러닝 타임의 대부분은 끝나 있다. 그래서 댐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장면부터, 다 해결하고 재회하는 데까지 겨우 몇 분도 되지 않는 러닝 타임 내에 급격히 휙 하고 다 해결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안나가 댐을 무너뜨리고 마음 아파하는 장면을 더 추가해 주거나, 정령들이 서로 합의 하는 묘사를 추가 하거나, 깨어난 엘사가 해결하는데 난관이 있었고, 그걸 각성한 엘사에 맞춰서 멋지게 해결하고 나서 폭류를 막아냈거나, 이런 식의 해결 장면에서 갈등 요소나 극적 전개 등의 볼륨도 풍성하게 구성되어야, 빌드업한 이야기의 규모와 비교해서 균형이 좀 맞는데, 이 영화는 쌓아올 때는 공들여서 쌓다가 무너 뜨릴 때는 너무 쉽게 무너뜨리고 바로 에필로그로 간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러닝 타임을 늘려서 상황과 설정을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구간을 좀 더 늘리거나 추가했으면 이런 단점을 상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급전개는 필연적으로 설명이 부족하게 보이는 단점을 낳게 되고, 설명이 부족하면 서사와 장치를 너무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6]
- 어린 아이들이 쉽게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건 둘째치고, 그 주제를 명확하게 풀어내는 방식도 실패했다는 평이 많다. 아무래도 가해자 입장[7]에서의 이야기다 보니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엘사와 안나 중심의 서사이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인 노덜드라가 극적인 장치로 사용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후술된 혹평란에서 자세히 설명한 대로, 이는 마치 근래 이슈가 되고 있는 몇몇 국가들의 역사 문제처럼 가해자 중심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관점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러닝타임에 쫓긴 이 영화에서는 이 과거사 자체가 쌍방의 문제였던 것인 만큼, 피해자인 노덜드라 입장에서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 지, 거기서도 반발하는 요소는 없었는 지, 그들이 받은 고통은 어떻게 해소되었는 지에 대한 묘사들이 있어야 완결성을 갖춘 접근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요소가 생략되고, 철저히 가해자가 해결하면 그냥 아무 리액션 없이 순응하기만 하는 객체인 양 묘사했다는 점이 아쉬웠다는 관점이다.
- 이렇듯 부정적인 평가는 OST나 영상미 같은 부분이 아닌 스토리에서 주를 이룬다. 짧은 러닝타임에 비해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많았고 애들이 보기에는 심오하나 어른이 보기에는 얄팍한 주제. 등 소재적인 부분도 부족했고 정령의 강함을 주의시킨것에 비해 바위의 정령을 제외하면 엘사에게 바로 제압당하는 어이없음. 1에 비해 2의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비중이 없는 수준이다. 대중들의 평가는 물론, 본 문서 내에도 많은 부정적 평가에 대해 결국 러닝타임과 아동용 작품의 한계로 인해 개연성을 희생했다는 결론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보자면 영상미 OST에 비해가 아니라 그냥 전체적으로 스토리텔링과 주제전달 의식이 모자랐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스토리에 대해 생각하면 찝찝한 기분이 남는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겨울왕국 2는 아동용 대상 영화고, 어른들 마저 세세히 보아야만 개연성이 납득된다면 이미 그 영화는 실패한 것이다. 이유를 찾자면 찾을 수 있지만 영화내에서는 끝까지 명확한 개연성을 표출하거나 이해하기 쉽도록 그 이유를 보이지 못하고, 이해가 어렵고 불확실한 전개에 찜찜함은 부정적 평가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5.1. 음악에 대하여
- OST가 좋기는 했지만 1편보다 OST가 별로였다는 평이 많다. 이러한 반응은 1편의 OST가 그 Let it Go여서 그 임팩트가 비교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품 내적으로도 전편에 비해 전반적으로 너무 많은 노래가 수록된 탓에 노래 배치에 강약이 없어서 충분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관객들에게는 뭔가 한 곡을 대표적으로 인상 깊게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배치나 빌드업 면에서도 본작의 주제가인 Into the Unknown는 작품 초반부부터 엘사의 스토리 전개로 포석을 깔고 중반부에 터트리는 Let it Go와 달리, 별다른 포석도 없이 너무 초반부부터 나오는지라 충분한 발판을 깔아놓지 못했다.[8][9] 그리고 엘사의 Show Yourself가 비주얼 연출이 워낙 압도적이다보니 중요한 주제의 한 축인 다음 노래 안나의 The Next Right Thing이 첫 관람에서는 조금 묻힌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는 1편의 트롤들의 노래 Fixer Upper랑도 비슷한 단점.
- 노래의 전체적인 톤이 팝 음악스러운 노래에서 뮤지컬 노래에 가까워져 1편의 노래와 방향성이 달라졌다. 1편 역시 뮤지컬 장르적 특성이 강한 영화였지만, 이번 OST 들에는 그 1편 때보다 뮤지컬 장르적 특성이 더 강화되었기 때문에, 1편의 음악들을 기대하고 간 관객들에겐 실망할 수 있다. 또한, 1편과는 다르게 이야기의 전개와 진행, 화자의 생각의 변화가 노래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노래를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스토리 전개를 놓치게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자막판의 가사가 더빙판을 그대로 차용해서 들리는 뜻과과 약간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 물론 음악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
- 다른 노래들보다 특히 크리스토프의 Lost in the Woods에 대한 호불호 의견이 존재한다. 일단 노래 자체는 감미롭고, 원래 보컬 실력도 출중한 조나단 그로프의 아름다운 목소리와도 잘 어울렸다는 평에는 거의 다 동의한다. 그러나 그 노래가 왜 그런 이상한 센스로[10] 그 타이밍에 제법 긴 분량으로 자리잡았냐는 점에서 의견이 갈린다. 개그 센스였다고 하기에는 노골적으로 웃긴 요소가 적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기에는 90년대 미국 MV를 향유하기 힘들었던 영어권 외의 사람들이나 40세 이전의 사람들이 재빨리 알아보기 힘들 법한 패러디 연출들이었다. 그렇다고 개그 센스가 아니라 진심으로 넣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연출이 너무 쌈마이(...)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캐릭터들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전개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뭔가 영화가 이 음악으로 인해 단절된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이 노래가 나올때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혹평을 남겼을 정도.
- 영화 외적으로는 사운드 믹싱에 대하여 비판이 많았다. 주인공 엘사의 노래 중 고음 파트가 악기소리에 묻혀 영화 내내 잘 들리지 않는다. 특히 Into the Unknown은 이디나 멘젤의 시원한 고음이 들리지 않아서 갑갑하고 전율이 오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었다. 오죽하면 한국어 더빙 버전이 더 잘 들린다는 관객도 있었다. 이러한 음향 문제는 디즈니 배급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것이기도 하다.
5.2. 아쉬운 내용 전개
- 예상치 못했다지만 본인이 깨운 정령들 때문에 아렌델이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아렌델인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뻔 했는데도 안나에게 '정신나간 소리로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가 나쁜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은 듯해서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마법의 숲의 정령들을 깨웠다'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며, 아렌델의 상황보다 목소리나 정령에 신경쓰는 엘사의 태도가 캐릭터 붕괴라는 지적도 있다. 안나가 이 말을 듣고 "지금 그 말이 나와? 우리 왕국을 보라고."라며 어이없어 할 정도. 1편에서의 엘사는 본인의 능력이 왕국이나 타인에게 폐를 끼칠까봐 장장 13년간을 성안의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장갑을 끼고 살았고, 대관식때 안나와 싸우다가 무심결에 자신의 능력을 드러낸 후에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왕국이 피해보지 않게 영원히 북쪽 산에서 홀로 사는 삶을 택하려 했다.
- 엘사가 급히 떠나야 해서 안나가 크리스토프를 두고 가는 것도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였다는 말이 많다. 그냥 안나와 엘사가 길을 인도하는 불의 정령 브루니를 잡아 둔 채로 돌아와서 잠시 기다렸다가 크리스토프와 합류해서 같이 가도 되는 전개가 나왔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 전개에서 일행이 서둘러야 할 이유는 빈번해지는 정령들과의 조우로 인해 노덜드라 족을 위험하게 한다는 정도였다. 그 역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합류하고 같이 갔어도 되었을 일이었다. 즉, 이런 전개는 일행을 떨어뜨리기 위한 무리한 전개로 보일 수 있다.[11]
- 물론, 당장 떠날 것을 결심한 이유는 정령들과의 빈번한 조우라기 보다는 땅의 정령의 무서운 힘이 원인이었으며, 심지어 그들이 엘사의 존재를 느껴 주변을 배회하게 되었다는 점은 참작할 수 있다. 엘사의 능력으로도 제압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몇씩이나 주변을 헤집고 다니면 조그만 인간의 마을은 순식간에 박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증거로 게일과 브루니에게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제압했던 엘사가 땅의 정령은 보자마자 기겁하며 나무 뒤로 숨어버린다. 조금 뒤 긴장되지만 밝은 표정으로 뒤따라 나서 제압하려던 엘사를 안나가 뜯어말린 것을 봐서는 내용 전개에 따라 진짜 제압했을 수도 있다. 안나 말마따나 죽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나 이건 저연령층 대상 영화에 디즈니다. 따라서 조금 떨어진 위치 정도로는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한시바삐 길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 선택으로 볼 수가 있다. 또한 아렌델 주민들이 집을 잃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토프가 합류할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통치자의 선택이라 할 수 없다.
- 결국 엘사가 아토할란에서 본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보낸 얼음상 하나만 가지고 안나가 과거의 복잡한 전말을 단번에 이해했다는 전개는 모든 것을 본 관객이 보기에는 바로 알 수 있지만, 극중 캐릭터 입장에서는 개연성이 떨어진다. 결정적인 장면을 표시하는 얼음상과 함께 음성이 전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전후 전개도 모르고 그 때 그 자리에도 없었으며 못 본 인물이 나오는 그 한 얼음상을 보고 바로 핵심부터 바로 이해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전개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드립이 흥하게 된 건 덤 - 물론 한정된 러닝타임으로 인해 자세한 내면 묘사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고, 영화 극초반에 제스처 게임에서 엘사의 표현에 대해 정답을 하나도 맞히지 못한 안나가 엘사에게 '가족끼리 제스처 게임은 원래 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 엘사가 급박하게 보낸 얼음상 하나만으로 안나가 전후 사정과 댐을 부숴야 한다는 결론까지 도출해내는 장면은 그만큼 엘사와 안나 사이의 정신적 유대가 더욱 발전했고 안나가 왕위에 오르기 적합한 성품을 가졌다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극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럼에도 애당초 얼음상 하나로 어두운 과거사와 댐을 부숴야 한다는 결론까지 전부 도출하는 탐정 수준의 추리력은 상식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그나마 자연스럽게 연출한다면 물이 기억을 한다는 설정으로 얼음상에서 안나도 엘사와 같은 환상을 보거나, 플래시백처럼 엘사가 보고 들은 것을 안나도 알아채는 것 같은 묘사가 들어가는 것인데, 상술했듯이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작품에서 같은 장면의 반복이 될 수도 있고 어린이 대상 작품에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복잡한 장면이 될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핍진성을 희생한 연출상의 만화적 장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정령의 땅에서 갇힌 노덜드라 족은 삶의 터전이 거기라서 그렇다 쳐도, 같이 갇힌 아렌델 군인들은 거기서 군인 체계, 심지어 군복 복장까지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십년 간 싸움을 계속 유지했다는 식으로 전개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1~2년도 아니고 무려 34년 5개월 24일 동안 갇혀있었다고 나오는데 나이만 든 걸 빼면 무기도 깨끗하고 옷도 깔끔한 걸 보면 싸우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일 지경.
빨아 입었겠지심지어 주인공 일행을 만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노덜드라족이 사는 곳으로 같이 간다(...). 서로 영역을 정하고 침범하지만 않으면 싸우지 않기로 합의하고 휴전했을 수도 있다지만, 이를 납득시킬 만한 묘사는 부족했다. - 물론, 노덜드라와 군인들은 서로 안면이 있어보이고 마주치자마자 싸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쩔 수 없이 갇혀 있는 기간 동안 어느 정도 공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엘사 일행이 나타났을 때처럼 아주 사소한 것
누가 안나의 칼을 뺏느냐(...)으로 싸우게 된 적은 아주 많을 것이다.한마디로 경쟁이 아닌 분서상태그리고 아렌델 군인들이 군인 체계와 복장을 유지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채택한 방법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무인도에 떨어진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질서없이 여러 사람이 덩그라니 사회에서 떨어져 살게 되면 헝거게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숲에서 살아본 적이 없을 군인들로서는 더더욱. 게다가 적군인 노덜드라 족이 있는데 최대한 불필요한 내부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 그렇지만 작중 군인들이 도무지 노덜드라와 적군이라고 할 만큼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묘사조차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작중에서 노덜드라와 군인들이 서로 안면이 있고 주인공 일행이 개입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행동하는 묘사를 볼 때 정말 고립된 기간동안 적으로서 목숨걸고 싸우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데, 정말 서로 죽여야 하는 적이고 어쩔 수 없이 공생한다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침범하지 않도록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구역을 나누고 접촉 자체를 피하는게 차라리 자연스럽다. 이처럼 적군 같지도 않은 적군의 존재 때문에 군인 체계를 유지할 만큼의 설득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살생 묘사를 기피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 대상 작품이므로 이런 자잘한 설정을 묘사하기보다는 핍진성을 희생하면서라도 과거 인물을 등장시킨 장치에 가깝다.
- 안나가 댐을 부수는 것도 부수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아렌델을 보호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까지 싹 무시하고 일단 부수기부터 해야 할 정도로 급박했는 지는 의문이다. 영화상 묘사를 보면 정령들의 위협도 엘사 안나의 여정을 통해서 점점 완화되어가는 추세였다.
- 물론, 이는 당시 안나의 입장에서 보아야 할 문제이다. 정통성 있는 왕위 계승자이자 마법도 부릴 수 있는 엘사는 죽었지, 그 다음 왕위 계승권인 본인은 마법의 땅에 갇혔지[12], 더군다나 바깥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태에서 본인이 마지막으로 본 아렌델의 모습은 돌풍이 불고, 불씨가 모두 사라지고, 물이 마르고, 지진이 일어나는 개막장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댐을 무너뜨려 원상복귀 시키는 것밖에 없다. 물론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는 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좋겠지만, 아렌델은 한순간에 가장 정통성 있는 왕위 계승권자 두 명이 다 공석이 되어버린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태가 왕정 국가에겐 치명적인 일이라는 걸 안나 정도 되면 모를 리가 없다. 즉, 시간을 더 주고 고민을 한들, 안나에게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할 만한 옵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갇힌 시간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엘사는 잘 모르는거 같았지만몰랐으면 위험에서 안나를 보호하기 위해 얼음배로 떠나보내지는 않았겠지 - 오히려 이는 작품의 짧은 러닝타임에 한정된 묘사와 인물의 행동이 축약되어 일어난 연출+각성한 엘사가 해일로부터 아렌델을 지키는 연출을 하기 위해 개연성을 희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빌런이 생존해서 실질적인 위협을 하던 1편과는 달리 2편의 빌런은 이미 고인이 되어 존재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만행이고. 조상의 악행에 대한 속죄와 악행으로부터 시작된 증오를 끊는 것이 자매의 목적이 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위기를 좀 더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두 자매가 서로 낙오된 것도 작중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 위한 장치로 보는 것이 편하다.
- 지금껏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물론 미국 영상 매체 전부를 통틀어서 원주민-침략자 간의 갈등 시나리오는 너무나도 많이 쓰인 시나리오라서 북유럽 원주민의 과거사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의도와는 별개로 전개 자체는 매우 식상했다는 혹평이 많다. 당장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극 초반부에 댐을 건설해주었다는 파트부터 다소 아리송했을 것인데, 상술했듯이 댐은 인간에 의한 자연 통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며 댐 건설은 필연적으로 수몰지역을 발생시키고 환경파괴와 이재민을 초래하여 현대에도 분쟁의 요소가 되고는 하는데, 자연 친화적인 노덜드라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선물을 받고 좋아했다는 개연성 문제가 발생해버린다. 또한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인 루나드 왕이 아렌델-노덜드라의 분쟁을 초래하고 정령의 분노를 유발한 빌런이었다는 것은 작중에서는 엘사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밝혀낸 대단한 반전으로 밝혀지지만, 작품 외적인 시선으로 보면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밝혀지기 이전부터 매우 간단하게 짐작이 가능할 수 있는 요소이다.
- 물론, 각자의 창작물들에 익숙한 경험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클리세에는 역클리세도 있으므로 뻔한 반전인 줄 유도한 역 반전도 쓰이는 편이다. 그러므로 이런 '뻔해 보인다'는 의견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 수 없다. 이번 편에서는 다소 애매해졌지만, 어디까지나 겨울왕국 시리즈의 메인 타겟은 아직 창작물의 클리세와 반전을 접한 경험이 적은 미취학 아동 연령대이다.
- 또한 노덜드라 사람들이 댐의 건설을 반겼다는 것을 개연성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작중 배경 시대와 등장하는 집단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의견이다. 댐이 결과적으로 환경 파괴와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건설 이후 드러나는 문제들이며, 문명과 멀리 떨어져 있는 노덜드라족이 이를 알았을 리 없다. 아렌델은 본인들 기준에서 댐의 이로운 점만을 들먹이며 어디까지나 친화적인 목적(루나드를 제외하면)으로 댐 건설을 추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덜드라 족의 족장이 댐이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고서 연회때에 국왕에게 뒤늦게 얘길 꺼낸 것.
- 이 구도를 두고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 몇 가지 사실을 서술하자면 이런 내용들이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미국인 -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계에 비유되기 쉬우나, 아렌델의 모티브 국가가 노르웨이임을 떠올려 본다면, 노르웨이 정부의 사미족에 대한 탄압과 갈등 그리고 화해의 역사가 일차적인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 제작진 역시 마법의 숲 주민들은 사미족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며 사미족 공동체의 리더들에게 이번 영화의 자문을 많이 부탁했다고 인증했다.##. 아렌델의 배경이 된 노르웨이도 북부의 사미족, 원주민 등을 탄압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북유럽 3국의 공통된 역사의 어두운 면이며 이를 모티브로 한 동화도 있다.[13] 또한 평지와 드넓은 땅이 많아 땅을 빼앗고 원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미국에 반해 추운 숲과 호수가 많은 노르웨이는 특성상 댐과 호수와 관계된 갈등이 상당히 많았다.[14] 물론 주류민족과 소수민족, 원주민과 이민자 사이의 갈등과 전쟁은 전세계 어느 민족에게서나 벌어지는 일이므로 미국 -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대입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결국 설정과 전개에서 구멍으로 보이는 부분은 짧은 러닝타임으로 인한 묘사 생략과 어린이 대상 작품의 간략화 및 표현 수위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이런 것을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기획자와 스토리작가의 역량인 만큼 이것이 납득 가능한 수준인지는 관객마다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런 점들을 비판점으로 볼지. 작품을 위한 선택과 집중으로 볼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평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5.3. 결말에 대하여
-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와 그 갈등의 양상이 꽤나 진지한 것[15]임에도 불구하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 전형적이고, 가볍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 피해자인 마법의 숲 주민의 입장의 무게감을 묘사하지 않으며 이야기의 구조를 엘사와 안나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소재와 주제가 가진 무게감에 비해 결말이 너무 아동영화 스럽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16] 이야기의 주제 중 하나가 원주민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대한 자성과 사죄로 보이는데, 이러한 묘사가 빠진 부분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부분.[17]
내로남불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삭제된 결말 장면에서 아렌델이 쓸려나가고 여왕으로 즉위한 안나가 아렌델의 침략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아렌델과 노덜드라가 협력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더 나을 뻔했다는 평가도 많다.
- 마법의 숲 정령들의 분노한 이유와 그 해결 과정이 다소 애매하게 묘사된다. 일단 작중 초반에 묘사되기로 마법의 숲 정령들은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고 노덜드라인들의 일상 속에 섞여서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었지만, 정령이 분노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아렌델인들과 노덜드라인들이 마법의 숲에서 살육전을 벌이는 시점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령들이 분노한 원인은 아렌델인-노덜드라인들이 숲 안에서 분쟁을 벌인 일로 보이다. 그러나 작중 묘사에서 이 정령들의 분노는 안나가 댐을 부수자 마자 풀려서, 엘사는 얼음에서 풀리고, 아렌델의 정령에 의한 재앙들이 가라앉게 묘사가 된다. 그렇다면 정령들이 분노한 일차적 원인이 인간들 간의 전쟁이었는지, 정령이나 마법을 거스르는 댐이었는지, 만약 둘이 연결된 요소였다면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에 대한 묘사가 확실하지 않다. 물론 여러 장면에서 추론이 가능하다.[18] 그러나 이런 중요한 핵심 메시지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 작품 곳곳에서 세심한 작업을 해 왔던 제작진은 그 세심함을 발휘해 미취학 아동부터 전연령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연출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을 또 애매하게 넘어간다. 이 부분은 반론의 여지 없이 아쉬운 부분이다.
- 정령의 힘이 댐으로 인해 약해지고 마법의 숲이 단절되게 된 위기상황으로 묘사된 것 치고는 정령들의 반응이 애매하다.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은 그냥 장난치고 있을 뿐이고 그나마 분노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물의 정령이지만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길들여지지 않은 물귀신에 가까워서 엘사가 힘으로 길들여버린다. 특히 이질적인 것은 땅의 정령 바위거인들인데, 다른 세 정령은 엘사와 조우해서 그녀를 시험하고, 그녀에게 복종하는 과정을 공통적으로 다 거치는데, 유독 땅의 정령들은 엘사를 겪어 보지 않고도 엘사의 냉동을 풀어주는 데 합의 하고, 마지막에 복종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심지어 바위거인들은 아예 그냥 짜증나고 시끄럽다는 본능에 의해서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댐을 부숴버린다. 이렇게 전개해 버리면 댐이 위기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근거는 루나드의 발언 뿐이고, 정작 정령들이 직접 부수는 전개가 되면서 인간이 정령을 달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애매모호하게 표현되었다.
5.3.1. 반론
-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렌델의 대표인 안나는 분명 아렌델의 멸망을 각오해가며 속죄의 행동을 하였고, 댐을 부순 건 안나의 의지에 의해 유도된 행동이므로 정령 스스로가 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정령들이 댐이 부숴져서 분노를 풀었다기 보다는 엘사와 안나의 의지를 쭉 지켜보았고 최종적으로 시련을 통과한 것을 보고 용서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 이 같은 결론을 추론하자면 과거의 일의 또 다른 당사자들인 정령들이 어떤 의도를 작중에서 내비쳤는지 하나하나 고민해보아야 하며, 작품 내에서 잘못 인지된 사실들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 작품 초반에 엘사에 의해 깨어난 정령들의 첫번째 행동은 모든 아렌델 국민을 고지대로 쫒아내다시피 대피시키는 것이었다.[19] 말하자면 결말부에 댐이 파괴될 것을 정령들이 이미 전제로 두고 작품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후반부 안나가 언급하며 확인된다.
- 땅의 정령이 후반부에 댐을 부쉈듯 정령들은 댐을 파괴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 아렌델을 수장시킬 수 있었다.
- 다툼이 발생하여, 그리고 루나드 왕의 악한 의도를 알아 낸 정령들이 분노하긴 하였으나, 이두나의 호소에 아그나르를 구한것은 다름아닌 정령이었다.
- 댐을 부순 건 땅의 정령이나, 그것은 오롯이 안나와 아렌델 병사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 댐이 마법의 숲의 지반을 약하게 만들긴 하나, 정령들의 힘에 영향을 미친다는 묘사는 없으며 루나드의 의도는 약화된 지반으로 노덜드라 족이 아렌델에 더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결말부 엘사의 대사에 오역이 있었는데, 안나에게 아렌델의 왕위를 넘긴다는 것에 정령들이 동의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대사 "The spirits all agree, Arenedelle deserves to stand with you"를 정확히 해석하자면, 정령들이 안나와 함께하는 아렌델의 존속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20]
종합하여 줄거리를 함축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령들은 이두나와 아그나르의 관계를 통해 향후 역사를 바로잡고 댐을 무너뜨릴 사람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 대상이 둘의 딸이며, 다섯번째 정령이자 아렌델의 여왕인 엘사가 이끌고 온 안나였다. 결국 안나는 아렌델을 대표해 자기 나라를 무너뜨리면서까지 과거를 바로잡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서 정령들은 아렌델의 존재가치를 인정함과 동시에, 엘사를 도와 아렌델의 멸망을 막아주었다. 즉, 아렌델 사람이 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속죄의 의지를 보인다면 정령들은 언제든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댐이 정령들이 분노한 이유나 부수는 것이 갈등해소의 계기가 된다기 보다는, 루나드 왕의 후손들인 엘사와 안나가 그의 악한 의도가 담긴 결과물인 댐을 파괴함으로 그의 죄업을 청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령이 준비한 시련이었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이 영화에서는 공식적인 사과 장면이 나오지 않아 직관적으로 알기는 어려우나, 안나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고 나라가 수몰되는 걸 무릅쓰고서라도 댐을 부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 안나는 엘사가 죽은 줄만 알았고 부활할 거라는 것도, 그리고 아렌델을 보호할 것도 전혀 몰랐기에 사실상 (안나가 알기론 엘사가 죽었으니) 왕위를 승계 받자마자 처음 한 일이 아렌델이 파괴되더라도 할아버지의 과오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엘사 또한 본인의 자아 실현의 목적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여행을 했고 마침표를 찍었다. 목숨이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아토할란의 깊숙히 들어가 진실을 목격하고 이를 안나에게 전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무려 전제군주제 나라의 여왕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21] 모든 일 이후에는 자신보다 안나가 여왕에 어울림을 인정하고, 다섯 번째 정령으로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왕위에서 내려왔다. 노덜드라의 왕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숲의 보호자이자 축복을 베푸는 정령으로서 살기 위해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엘사 또한 본인의 자아 실현의 목적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여행을 했고 마침표를 찍었다. 목숨이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아토할란의 깊숙히 들어가 진실을 목격하고 이를 안나에게 전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무려 전제군주제 나라의 여왕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21] 모든 일 이후에는 자신보다 안나가 여왕에 어울림을 인정하고, 다섯 번째 정령으로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왕위에서 내려왔다. 노덜드라의 왕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숲의 보호자이자 축복을 베푸는 정령으로서 살기 위해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를 통해 아렌델은 그 어떤 말보다 과거에 대해 책임지는 행동을 한 것이며 이를 정령들이 분명히 알아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장에 이르러 아렌델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정령들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안나와 엘사의 행동에 적절성은 둘째치고 앞에서 언급된대로 노덜드라 인들이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는 비판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6. 다중 관점이 적용되는 평가
6.1. 엘사는 아렌델을 떠나야만 했나
엘사 이야기의 지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어 문단이 분리되었다.6.1.1. 부정: 전작의 결말을 부정한다
이 문단에서 전작의 결말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곧 기존의 엘사에 대한 캐릭터성이 왜곡되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겨울왕국 1의 과정에서 엘사는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외면당했던 자신의 능력을 백성들에게 보이며 그것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존중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으로 많은 시련이 있었으나 극복했고 아렌델을 사랑했기 때문에, 심지어 정령의 소리를 처음 접한 그 순간에도 Some Things Never Change를 부르며 현재의 상황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Into the Unknown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정령의 소리와 공명한 것 같은 느낌 하나만 가지고 안나에게 다짜고짜 그 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데다 왕국의 안위를 걱정하고 정령들의 소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안나와 다르게 자신은 '내가 느끼고 있어'라며 아렌델보다 초월적인 능력에 관한 호기심을 상위로 놓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관련한 사건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던 1의 행적과 연결해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혼란을 줄 수 있는 장면이다. 결정적으로, 불명확한 정령들의 합의를 언급하면서 안나에게 너무도 갑작스럽게 국왕의 직책을 양위하더니 '당신은 여기가 어울린다'는 허니마렌의 말에 망설임 없이 수긍하는 모습까지 보여줌으로써 간극의 깊이가 더욱 커졌다. 러닝 타임상의 한계로 생략이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을 엘사의 자아실현과 정체성 확립으로 본다면 다른 부분을 생략해서라도 고향보다 자신의 근원을 찾아 나서려는 엘사의 동기와 심리적 변화를 더 다루었어야 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엘사를 고려하면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상황이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원흉이면서도 부정할 수는 없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언제나 의문의 대상이었던 마법 능력의 근원을 밝히고 불완전하던 자아를 실현해가는 모습이 중요한 변화임은 이견이 없다. 그러나 최후반부 아렌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에서는 아렌델 여왕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다섯 정령 중 한 존재로서 소임을 다하는 제3자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져 다소 위화감이 든다. 오랜 시간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고는 하지만 행복하던 시절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아렌델은 그녀가 태어나 여러 추억들을 쌓아올린 소중한 고향이며 1에서의 사건이 해결된 이후에는 모두에게 여왕으로서 신뢰와 사랑을 받는 만큼 그녀 역시 아렌델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굳게 한 상태다. 그런 인물이 어느새 아렌델과는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로 남으며 안나에게 여왕을 물려주는 전개는 사뭇 엘사가 끝내 아렌델과 같은 일반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기이한 존재라는 의미로 보일 여지가 있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엘사와 안나를 통해 공동체 간의 오해를 풀고 정령들과의 소통과 조화를 다시 이뤄냈으니 문제가 명쾌히 해결된 상황이지만 캐릭터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엘사가 끝내 정령의 역할을 도맡기 위해 아렌델로부터 분리된 별도의 존재로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본인의 능력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정령이 됐지만, 본인이 사랑하던 곳과 관계들로부터 항시 떨어져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봤을 때, '이게 엘사의 진정한 성장과 행복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목소리를 듣고 아토할란으로 가서 다섯 번째 정령이 되는 서사를 과연 엘사가 마법의 영향 없이 온전히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자세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가? 결국 자신이 가진 마법 때문에 그 자리를 맡아야 하며 그것이 진실을 바로잡고 아렌델과 노덜드라 모두에게 올바른 결과를 가져다 주기에 보이지 않는 의무감을 자주적인 선택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작중 내용상으로는 이러한 의문점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요소들이 희박하다.
물론 결말부에서 안나의 편지를 통해 언제든 아렌델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표현이 나타나 있어 그 위화감을 경감시키기는 한다. 밑의 항목들처럼 사는 장소가 다르다고 반드시 관계가 멀어지리라는 법은 없으며 엘사와 안나 서로 각자의 역할을 위해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 뿐, 두 자매가 다시금 정신적으로 갈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시리즈물로서의 연장선, 곧 캐릭터들의 진취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 기존 캐릭터성을 왜곡시키는 듯한 전개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하며 설령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를 뒷받침할 전개나 설명이 부족함 면에서도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겨울왕국 1의 결말과 겨울왕국 2의 초반부 노래를 생각하면 엘사는 본인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여 아렌델에서 고통을 겪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들에게서 벗어나 초월적인 상태가 되어 지금이 최적이라고 말하는 결말이 영화를 보는 청자로 하여금 모순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즉, 엘사가 안나와 떨어져서 지낸다는 결말이 기존의 겨울왕국의 주제와 부합하지 않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겨울왕국 1의 주제가인 Fixer Upper에서는 사람은 다양하며 각기 부족한 점을 지니고 있지만 서로 함께 고쳐나갈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비단 1편만이 아니라 겨울왕국 열기의 스토리나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엘사와 안나의 듀엣곡에서도 엘사와 안나가 가족으로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재차 강조한다. 이는 자신은 초월적이고 타고난 존재였으니 이제서라도 나의 근원을 마주하여 나답게 살겠다 선언하는 2의 핵심곡 Show Yourself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즉, 엘사가 스스로 아렌델에서 일반적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선언한 거나 다름없다.
향후에 상호교류 및 활발한 소통이 오고 간다 해도 엘사는 아렌델과는 엄밀히 분리가 된 상황이다. 서로가 자주 왕래하면 된다는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둘을 다시 분리시키는 '원인'과 '결과'에서의 문제다. 겨울왕국 1에서는 다름에 대한 반대 급부를 넘어서 분리가 아닌 진정한 사랑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반면, 2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만 둘 사이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괜찮다는 식의 애매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엘사가 품은 갈등의 원인을 깊이 풀어내는 대신 뮤지컬 장르를 활용하여 과도하게 생략한 방식을 택했지만, 그에 따른 결과 역시 급격한 전개로써 마무리지어버려 결국 한 집단 내에서 다름을 극복하지 못 하고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집단으로 가버린 인상을 받게끔 만들었다.[22] 2의 서사에 대입해보면, 1에서 표출된 엘사의 문제는 진정한 사랑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은 셈이다. 이에 따르면, 안나는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을, 엘사는 타인을 위해 다가설 수 있는 사랑의 개념을 깨닫는 정도에 그쳤으며 마법과 관련한 엘사의 내면 갈등은 3년이 흐른 2의 시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였다는 말이 된다. 진정한 사랑으로 자매간의 소통을 회복하고 상처입던 각자의 내면성 역시 극복했다는 1에서의 결말과 다르게 2에서는 이를 손바닥 뒤집듯 사실 제대로 해결되지는 않았고 엘사는 내면을 극복하여 신화적이고 독립적인 인물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을 전제로 삼고 있으니 이전의 엘사에 대한 캐릭터성[23]을 잘 숙지하고 있는 팬들로서는 강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종합하자면, 엘사가 아렌델 사람과 다름을 깨닫고 아렌델도 그녀의 능력을 받아들여 아렌델에서 지낼 수 있는 방식처럼 기존의 핵심 주제를 아우르며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레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순응적인 환경이 제격이라며 자신의 직위를 양위하고 떠나는 전개로 흘러가야 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더 필요했다. 1 이후로 아렌델에서는 엘사를 배척하거나 격이 다른 초월적 존재로 대하지도 않았고 엘사 역시 아렌델인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안 것만으로 '아렌델이 아닌 여기가 내 자리야' 시원스레 선언하며 안나에게 일사천리로 왕위를 물려주는 전개는 영화의 러닝타임 속에 드러난 내용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한데다 1에서 드러난 캐릭터성과 간극이 벌어질 정도로 엘사에게 신화적 인물상으로서의 서사와 역할을 과중하게 부여했다. 정령의 책무를 받아들이고 안나와 아렌델을 떠나는 결말은 1에서 강조하던 달라 보여도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감상보다 서로 다른 존재로서 행복하게 살아가자라는 인상을 더 많이 주는데, 이처럼 1의 정체성과도 같은 구조를 손대면서까지 성장을 위한 분가의 결말로 낼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본래 후속작 계획 없이 완결을 냈던 작품이니만큼 감안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 작품은 엄연히 1 이후를 다룬 시리즈물이다. 그렇기에 1과의 연결성, 특히 1에서 나타난 엘사의 캐릭터성과 처지에 주목하고 공감하던 사람들이라면 2에서 나타난 엘사의 면모에 의문을 품거나 실망할 여지가 분명 존재한다.
6.1.2. 중립: 엘사는 여전히 아렌델과 함께한다
위의 주장은 한가지 질문으로 돌파가 가능하다. "가족은 반드시 한 장소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가?"살다보면 가족끼리라도 많은 헤어짐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어른으로 독립하기 위해, 누군가는 결혼을 해서, 누군가는 이민을 가서.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 멀리 떨어졌든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가 있고 엘사는 마침내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았을 뿐이다. 이를 두고 "엘사는 결국 아렌델에 속하지 못한 것인가?"라는 것은 1차원적인 질문이다. 이전에도 엘사는 북쪽산에 얼음성을 만들었으나 이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도피처에 불과했다.[24] 그러나 정령으로 각성한 시점에선 엘사는 정령과 마법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땅에 남아 정령을 다스리는, 정확히 말하자면 정령을 달래고 인간과 중개하는 소임을 다하고 안나는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 통치의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앞서 주먹왕 랄프 2, 토이 스토리 4와 마찬가지로 이별과 독립이라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의식을 따르는 것에 맞추어 겨울왕국 2도 그렇게 한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정령의 숲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벽지로 그려지지 않았으며, 그 동안 안개가 왕래를 막고 있었을 뿐 거기까지 가는 길이 험하게 묘사되진 않았다. 순록을 타고 하루 정도 달려가면 되며, 선대의 잘못 이전에는 평화로운 공존과 교류를 하던 지역이다. 이것을 멀리 떨어진 곳에 남아 세상을 등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주먹왕 랄프 2의 경우 바넬로피는 랄프가 사는 오락실로부터 꽤 먼 슬로터 레이스라는 인터넷 게임에서 살게 되었고, 랄프와 바넬로피가 만날려면 통신으로 대화해야 하고, 새벽이 지나면 오락실이 문을 열어서 그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오래 놀지도 못한다. 애초에 WI-FI는 고전압 방지기가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토이 스토리 4의 경우도 5편이 나오지 않는 한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레귤러 멤버들과 우디의 접점은 더 이상 영원히 없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25] 그러나 겨울왕국 2의 경우 엘사-안나는 친구 관계인 앞의 두 작품과 달리 가족 관계이며, 클라이맥스 장면,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보듯 엘사는 노크를 타면 순식간에 주파가 가능하다(...).[26] 안개가 걷힌 이후, 아렌델과 노덜드라는 동맹국으로서, 앞으로도 교류가 활발할 것이고 외교 상대 1순위가 노덜드라일 것이기 때문에 엘사의 방문이 잦을 것이 뻔하다. 결말 부분에 간접적으로 묘사되긴 했으나, 안개가 걷힌 후 아렌델 본국과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지는 묘사가 있었다면 더욱 명쾌했을 것이다.[27][28]
6.1.3. 긍정: 전편에 이은 성장의 연장선이다
엘사가 겨울왕국 1 때보다 더욱 성장한 모습이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며 상영 후 여러 평가 및 분석, 제작진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 해석이 보편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하자면 1편의 엘사는 자기 능력을 두려워하고 통제되기만을 바랬을 뿐 자신에게 왜 능력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가지고 태어났는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통제력이 생기고 주변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생긴 여유로 점차 능력을 통제하거나 잘 사용하는 것을 넘어, 마음껏 능력을 펼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엘사가 마법의 땅에 도착해 1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능력을 펼쳐 시련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대변된다.[29]사람의 성장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한 논리인 것이, 시기적으로 개인차가 있으나 청소년기는 자신의 적성을 찾아 헤메고 괴로워하다 자아 실현의 방향성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쫒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면 더더욱 그렇다. 이후 그런 일을 찾아 해메다 결국 자신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필요로 해주는 곳을 찾게되면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30]
겨울왕국 2의 엘사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자신의 업을 찾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럽다. 작품 초반에 정령의 소리와 공명한 것 같은 느낌 하나로 다짜고짜 그 소리를 찾을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이, 이는 엘사가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아니라 이미 품고 있던 마음을 끌어낸 것이다[31]. 안나처럼 엘사 또한 지금의 행복한 생활이 변치 않음을 바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법의 힘이 있는 이유를 쫒고 그를 마음껏 발휘하고 싶어하는 강한 갈망이 있었으며, 그 답이 정령의 목소리를 따라간 끝에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32] 이러한 마음은 본인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주변도 그러한 재능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여주고 또 응원해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33] 이러한 갈망을 바탕으로 엘사는 방황 끝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는 집(아렌델)으로 돌아온 뒤, 본인의 재능을 발휘할 업(마법의 땅)을 찾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가에 대한 범주가 엘사의 지향성이 중심이다 보니 엘사에 관한 서술이 집중되었지만 겨울왕국은 엘사와 안나를 결코 분리시켜서 해석할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컨텐츠이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두 인물의 변화를 모두 다뤄야 한다 . 겨울왕국 1과 2의 감독 크리스 벅은 겨울왕국 2 아트북에서 1과 2가 만나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라는 언급을 한 바 있다. 즉, 2의 이야기가 전작의 결말을 부정하거나 수정하기는커녕 1의 연장선이자 서로 간의 이야기를 보완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애초에 위의 전작의 결말을 부정하는 문단에서는 주장과 근거를 오로지 1의 관점, 그것도 1에서 발현된 엘사의 특징과 아렌델이라는 공간을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고정값으로 두는 편협한 시각을 유도하고 있다. 당장 Show Yourself를 엘사가 일반사회에 속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여기는 점부터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엘사가 정령이 되어 아렌델을 떠난다→행복 그 자체인 아렌델을 떠나는 것은 부정적인 행위이다→엘사와 같은 타고난 자들은 아렌델로 표상되는 행복한 일상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식의 도식부터가 그릇된데다 핵심에서 벗어나기까지 한 해석이다. 일반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늘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내려 놓아야 했던 일반사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오히려 Show Yourself는 인생 전부를 마법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엘사가 정령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히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순간이며, 동시에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죄책감과 아픔에 더는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 인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선언과도 같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각성에서 멈춰버린 Let It Go를 진정한 의미에서 완성시키는 곡이다. 그에 따라 2의 주제 역시 '다른 존재니 알아서 잘 살아가자' 라는 애매모호한 결말이 아니라 다름을 온전히 인정하고 이별을 받아들임으로써 두 자매가 정상적으로 형성하지 못한 성숙한 관계를 이뤄간다는 아주 확실하고 뚜렷한 메세지를 표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겨울왕국 1이 서사로서는 완전한 해피엔딩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끝맺음으로는 충분한 감동과 여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자매간의 문제 및 각자의 내면에 관한 문제가 무조건 다 해결됐다고 보는 시각도 1을 최우선으로 두는 편협한 시각이다. 엘사와 안나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1에서 완결로 끝나도 작품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두 캐릭터의 모든 문제가 1 내에서 완벽하게 매듭지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 후로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이미지가 절대적인 여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겨울왕국 1의 에필로그는 아름답게 끝나면서도 그 뒷 이야기를 몹시 궁금하게 한다. '과연 이 두 자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매듭지어졌으나 그 동안의 아픔이 과연 온전히 치유된 것인가? 도중에 계속 오해하고 싸울 수도 있지 않을까? 마법을 가진 한 엘사에게 닥칠 일은 어쩌면 더 험하지 않을까?' 등과 같이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두 자매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1은 서로 다름을 이해한 것이지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다름을 제대로 마주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1은 소통의 단절로 인한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전통적인 디즈니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34] 따라서 후속작을 내기 위해서는 이 둘의 관계를 다시금 건드릴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완전한 성숙을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2의 서사이다. 엘사는 두려움은 극복했으나 Let It Go 에서 보인 반쪽짜리 정체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내심 고민하는 중이었고 안나는 기적적으로 회복한 자매관계가 설상 다시 금이 가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결코 엘사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다소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태에서 정령 소동이 터지고 갈등은 증폭된다. 엘사는 여전히 안나를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 일체 위험에 엮이지 않게 하겠다는 명목으로 밀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안나는 안나대로 엘사를 과보호하며 지속적으로 아렌델에 돌아가야 한다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인다. 1보다 덜할 뿐이지 갈등 양상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며 곧 엘사와 안나는 아직도 서로를 전적으로는 믿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1은 소통의 단절로 정상적인 사랑의 과정을 겪지 못한 두 자매가 소통의 극복과 이해의 과정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는 내용이며 2는 관계를 회복한 두 자매가 비로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을 위해, 그러나 1에서처럼 서로 물리적인 단절로 인한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꿋꿋하게 각자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성장한 어른으로서의 새 발걸음을 상징한다. 13년 간의 단절로 아픔을 겪은 끝에 다시 하나가 된 자매이니만큼 둘이서 계속 함께 한 자리에서 행복하게 지낼 것을 꿈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가 바라는 인생의 길은 동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 이별하지만 과거와 같이 서로에게 매달리지는 않으며 이별한다고 해서 둘의 관계는 약해지지 않음을 강력하게 확신하는 이른바 정신적인 성숙이다.
특히나 2는 주인공인 안나와 주제의식 간의 관계를 한층 더 부각시키기에 더욱 서사로서의 완결성을 자아낸다. 2에서의 안나는 아렌델이 뒤틀린 이후부터 엘사를 향해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매우 불안한 태도를 보이는데 그녀에게는 산전수전 다 겪은 1에서의 고생 끝에 기껏 얻어낸 행복을 다시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엘사가 3년 내내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담아두고 있던 것처럼 안나 역시 1에서 겪은 단절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태이다. 그 탓에 자꾸만 목소리를 쫓아 가려는 엘사를 보며 자신과 다르게 특별한 존재라는 위화감을 느끼고 평범한 자신을 기어코 떠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보인다. 그러다 일련의 여정을 통해 그 자체로 타고난 엘사에게 아렌델에서의 삶보다는 정령으로서의 삶이 더 행복하리라는 비정한 사실을 끝내 인정하며 진실로 언니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게끔 놓아주는, 1에서 보인 관계에 대한 강박적인 모습 및 관계의 단절로 인한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내는 성장형 주인공으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35] 즉, 엘사와 안나의 이별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단계를 넘어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언제 어디에서라도 서로를 향한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으로 발전해나가는 성장통이자 위의 크리스 벅의 언급대로 1과 2과 엮어져 단절-회복-성장의 삼박자가 조화하는 최종 관문과도 같다.
서사가 진행되는 전체적인 구조도 2는 1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안나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한 명의 인간이지만 1에서나 2에서나 엘사를 위해서면 어떤 위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든 해 나가려 하며 엘사는 그런 안나를 보며 항상 위험으로부터 다가서지 못하게 하려는 보호의 대상으로서 다루려 한다. 그러다가 엘사는 강압적인 힘을 써서라도 안나를 밀어내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신화적인 인물인 엘사는 정작 결정적인 위기에 처하고 동화적인 인물인 안나에 의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보호의 대상이지만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안나에 의해서 정작 엘사가 구해지고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서사는 1, 2 모두 들어맞는다. 이는 곧 2의 주제는 1에도 대입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겨울왕국 갤러리에서 이 테마를 놓고 상당히 자세하게 분석한 글이 있다.#
종합하자면 겨울왕국 2의 내용은 올라프가 성장에 뒤따르는 고뇌를 어떻게 극복하냐고 자문을 구하고 다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엘사는 자신의 재능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이를 펼칠 장소를 원했고[36], 안나는 그런 엘사의 모습을 꿰뚫어보고 떠나보내는 것이 싫어 과보호 심리가 작용하여 다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물들 개개인의 성장을 통해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는 내용이 이번 2편의 내용인 것. 안나의 성장 스토리가 뭔지 상기해보면 간단한 게, 안나는 작품 내내 언니가 어디론가 떠날까 두려워 붙잡기만 했으며 결국에는 기꺼이 보내줄 수 있을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엘사도 안나도 청소년기를 지나고 가족의 품을 떠나 한명은 정령의 여왕으로, 한명은 아렌델의 여왕으로 독립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겨울왕국 1은 개인의 다름을 본인도 주변도 사랑으로 받아들여 한때 단절되어버린 가족의 행복을 되찾아 함께하는 회복의 과정이며, 겨울왕국 2는 함께하는 것을 넘어 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독립을 또 한번 사랑으로 받아들여 사랑의 지평을 넓혀가는 성장의 과정으로 서로 방향성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2편은 1편에서 다하지 못한 성장의 연장선이자 엘사와 안나 '자매' 이야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며 전작의 내용을 부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1] 1편이 워낙 잘 만들어져서 2편은 아그나르와 이두나가 어디로 향했는가. 엘사의 힘의 기원은 무엇인가 딱 2가지 정도밖에 쓸 이야기가 없었다. 여기서 추가를 한다해도 크리스토프의 사랑의 행방 정도? 그리나 제작진은 이런 작은 요소들을 토대로 세계관을 훌륭하게 넓혀놓았고, 그 능력이 건재하다면, 다음 편이 나온다고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2] 물론 잘 흔들었는 지, 잘 흔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팬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납득이 되는 지는 의견이 갈린다.[3] 각종 공신력 있는 평가에서 토이 스토리 4는 겨울왕국 2를 제법 높은 차이로 앞지르고 주먹왕 랄프 2도 겨울왕국과 별 차이는 없다.[4] 자세히는 목소리가 소연보다 영어판인 이디나 멘젤에 가까웠다는 평. 유튜브에서 각국에 Let It Go를 비교하는 영상에서 한국판과 영어판 목소리가 유사하게 들렸다는 반응이 많았다.[5] 특히 짧긴 했지만 조영경의 Show Yourself에서 '어서 오렴 아가야' 부분이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울컥했다는 관객들도 많았다. 초반부 All Is Found에서도 자장가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후반부에 다시 똑같은 소절을 들으니 감격 그 자체였다는 평.[6] 후술하는 내용에 자세히 서술했듯이, 외부 세계와 격리된 아렌델의 군인들이 그 상태를 30여 년동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 것에 대해서 한 예를 들 수 있다.[7] 아렌델이든 영화를 만든 미국이든[8] 내용의 흐름상 Into the Unknown이 나오는 위치는 겨울왕국 1편으로 대입하자면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이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의 파트에 해당한다.[9] 작중 역할을 보면 Into the Unknown보다는 Show Yourself가 Let it Go에 가깝지만, 후반에 나오는 곡이라 이 곡을 메인으로 삼았다간 영화 보기도 전에 스포일러를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Into the Unknown을 사용한것으로 보인다.[10] 개그성 연출이었는데 곳곳에 제작진이 약을 빤(...) 느낌이 다분할 정도다.[11] 안나는 언니를 혼자보내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저 멀리 숲속으로 가버린 크리스토프를 찾지도 못하고 엘사를 서둘러 따라가느라 크리스토프가 낙오했다. 이후 후반부에 댐이 붕괴된 후 안나가 크리스토프에게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크리스토프가 괜찮다면서 안나를 다독여주는 장면이 묘사된다.[12] 엘사&안나 자매 말고는 그 시점에서 현재 아렌델 왕국엔 왕족이 없다. 크리스토프와도 연인 관계일 뿐, 아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토프가 부군으로써 국왕대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 둘 다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아렌델의 권좌는 공석이 되어 버려 국민들이 새로 왕을 뽑거나, 최우방 국가에서 아렌델을 합병하게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13] 스웨덴인의 탄압으로 인해 일곱 겹의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지하실에 가둬놔도 북극의 별빛을 보고 노래하는 마법쓰는 라플란드 소녀 얘기 같은...(핀란드 낭만주의 아동 작가 '사크리스 토펠리우스'의 '별의 눈동자' 이야기이다.) 다만 핀란드의 경우 본인들의 정체성을 '수오미'에 놓고 있고 국토 자체도 라플란드에 상당히 걸쳐 있기 때문에 노르웨이나 스웨덴에 비해서는 조금 덜한 편이다.[14] 특히 당국인 노르웨이의 경우 1970-80년대까지도 사미족 거주지역에 alta 댐을 건설하여 환경 단체와 사미인들의 강력한 반대운동을 낳아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작중의 댐에 관한 갈등 역시 이 사건을 참고한 듯 하다.[15] 아렌델 왕국과 마법의 숲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사실, 아렌델 왕국이 침략의 의도를 숨긴 채, 접근한 것이었다. 즉, 마법의 숲 주민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몇십년간 그 숲에 갇혀버린 꼴이 된 셈이다. 즉 그 숲의 주민들은 명백한 피해자이고, 아렌델은 가해자인 셈이다.[16]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더라도 아렌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노덜드라족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공식적으로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17] 비단 이 영화의 이야기가 단순히 원주민과 백인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특정국가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역사로 대입이 될 수 있다. 이 국가들 사이의 문제는 미국이 겪었던 문제와는 다르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과거에 대한 책임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는 해피엔딩이 되려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18] 물론 작중에서 밝혀지듯이 이 댐은 선선대 왕인 루나드가 마법의 숲 지역의 정령이나 마법의 힘을 약하게 하여 그들을 모시고 사는 노덜드라인들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사악한 의도로 건설한 것이었으며, 노덜드라인의 부족장 역시 루나드에게 이를 항의하다가 루나드가 이를 말을 돌리며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무방비 상태로 꾀어낸 다음 뒤에서 살해하는 장면이 묘사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댐 자체가 노덜드라에 대한 아렌델의 분쟁과 탄압의 상징이기는 하다.[19]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정령에게 아렌델 국민을 헤칠 의도가 안 보이며, 특히 게일과 땅의 정령은 모든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유도한다.[20] 자세한 것은 겨울왕국 2 오역 문단 참조[21] 처음에는 벽을 부수라는 안나의 말에 고민하던 병사들도 안나가 '언니가 진실을 위해 목숨을 바쳤어요.'라고 하니 곧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만큼 엘사의 목숨은 국가 자체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아렌델 국민에게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22] 비슷한 예로 주먹왕 랄프 2, 토이 스토리 4처럼 최근 디즈니 계열 애니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마냥 이전 시리즈들에서 지속적으로 말하던 메세지와는 사뭇 다른 이별과 독립을 강조하는 듯한, 디즈니로서는 극히 드문 새드 엔딩으로 해석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준 결말을 보여주는 추세다. 이 때문에 기존 시리즈의 주제의식에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으며 겨울왕국 2도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결말을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23] 1에서의 엘사는 세상을 주무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가졌지만 안나를 실수로 죽일 뻔한 이후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타인이 해를 받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여 아버지의 뜻과 함께 스스로 방 안에 갇히길 자처했다. 13년 동안 유폐된 삶을 살아오면서 되려 능력을 저주하고 한탄했으며 렛잇고를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작중 내내 마법을 쓰면 고통스러움을 내비친다. 즉, 그녀는 신과 같은 초월적이고 예외적인 인간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생, 아렌델 사람들과 매일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간절히 바래던 인물이며 안나의 희생을 통해 그 결실을 비로소 맺었다.[24] 작중에서도 엘사는 이 시절의 기억을 보자마자 흑역사가 들춰진 사람마냥 민망해 한다(...)[25] 심지어 픽사는 토이 스토리 4를 끝으로 더 이상 픽사의 속편은 없다고 확실하게 못 박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26] 엘사는 그냥 재노덜드라 아렌델 외교관 정도로 해석해도 된다.[27] 그냥 간단히 결말이나 쿠키 영상에서 축제나 무도회 장면에서 노덜드라인들이 아렌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했으면 됐을 문제. 추후 후속작이나 특별편이 나온다면 엘사와 노덜드라인들이 안나를 비롯한 아렌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그려질 가능성이 있다.[28] 엘사, 안나 성우는 모두 후속작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현실적으로 2편 또한 역대급 흥행작이었던 1편의 흥행기록을 갱신하면서 겨울왕국 프랜차이즈의 상업성은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고, 3편의 제작이 상당히 유력해 보인다. 아무리 요새 디즈니가 감을 되찾았다지만 겨울왕국 동급의,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새로운 흥행 프랜차이즈를 런칭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디즈니 리바이벌 말 나오기 시작한 건 라푼젤이라도 본격적으로 회자된 것은 겨울왕국이고, 리바이벌 안에서도 디즈니 애니 영화 중 겨울왕국 두 편 모두 뛰어넘는 영화가 아예 없다. 겨울왕국 1편의 한 방이 아닌, 시리즈 자체의 흥행력이 입증된 지금, 자본의 상징인 디즈니가 3편을 안 만들 리가.. 물론 그와 별개로 감독이 우선 엘사의 스토리가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긴 했다. 즉 3편이 나온다면 안나와 아렌델의 이야기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엘사의 이야기가 배제되진 않을 것이다.[29] 매슬로의 욕구계층이론으로 따지면, 인간에게는 하나의 욕구가 충족이 되면 더 윗 단계의 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엘사가 자신의 마법을 두려워하고 통제되기를 바라는 시점은 존중 욕구 정도의 하위 단계인 결핍 욕구였다면,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궁금해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은 자아실현 욕구 정도의 상위 단계인 성장 욕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엘사가 Into the Unknown을 노래하는 단계에서 그러한 욕망이 극대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30] 물론 현실에서는 금전적인 사정이란 변수가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31] Into the Unknown의 가사 내용은 능력으로 인해 아렌델이 아닌 다른 곳에 가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마음을 지금껏 억누르고 있었는데 구태여 자극하지 말라고 떼쓰는 것에 가깝다.[32] 자신의 갈망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를 어떻게 아는지 찬찬히 생각해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광경을 실제로 보고 싶다면 본능적으로 종이와 펜이 필요함을 알고 그림부터 그릴 것이며, 머릿속에 울리는 음을 듣고 싶다면 자연히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찾고 악보를 완성할 것이며, 공을 차고 싶다면 공을 사고 공터로 나갈 것이다. 엘사가 정령을 따라가고자 마음먹는 것은 이와 다를 것이 없다.[33] 억압적인 환경,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의 멸시 가득한 시선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획일화되도록 하는지는 우리나라나 일본 등의 가까운 나라들의 교육 환경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지 않은가.[34] 겨울왕국 1은 여러 차례 기획이 엎어진 프로젝트이며 Outtake 곡들을 기반으로 할 때까지만 해도 현재의 1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엘사는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자신을 예언으로써 간주하는 아렌델을 줄곧 원망하다가 페이크 빌런으로 잠시 등극하기도 한다. 안나는 포용력과 이해심, 용기가 덜했고 보다 말괄량이적 기질이 강한 편이며 늘 잘난 언니에 비하면 장점이 없어서 늘 비교당하는 둘째로서의 열등감과 질투심을 품고 있다. 본래는 이런 두 자매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쌓아가다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나중에 가서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흐름이 될 터였다. 그러나 이디나 멘젤이 당시로서는 빌런으로서의 각성을 이끌어내는 Let It Go를 부른 후, 제작진은 이 캐릭터를 빌런으로 활용하는 구성은 적절하지 않다며 캐릭터성에 큰 변경을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엘사는 타고난 마법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속박하고 안나를 내치는 인생을 살아온 끝에 도피해버리고, 안나는 지속적으로 무시와 거절을 당해왔음에도 굳은 믿음과 용기를 바탕으로 엘사의 뒤를 계속 쫓아 화해하고 싶어하는, 이른바 도망가는 자와 쫓아가는 자의 술래잡기로서 나타나는 '자매의 아픔'을 정통적인 디즈니풍에 맞게 그려 내는 스토리 및 캐릭터성으로 대폭 수정이 가해졌다.[35] 1에서는 엘사의 두려움이 해결되었다면 2에서는 안나의 두려움이 해결된 셈이다.[36] 결국 그 장소를 찾았다고 확신했을 때(Show Yourself) 유난히 해방감을 드러낸 것은 그녀가 살아온 십수 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능력을 가져야만 했던 이유와 해답, 보상을 드디어 찾아낸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