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고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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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장기영 | ||
비판 및 논란 | 비판 및 논란 | ||
고민정 등 민주당 54인 신천지 손가락 제스처 논란 · 고민정 반려동물 지지선언 릴레이 논란 | |||
별명 | 별명 | ||
관련 단체 | KBS · 더불어민주당 · 비이재명 |
1. 초기
1979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중곡동(현 광진구 중곡동)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중마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구의중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이주하여 수내중학교와 분당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8년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A] 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했다.2. 시인을 사랑한 여자
남편 조기영은 11살 연상으로 고민정이 대학교 동아리 회장을 맡으면서, 여러 조언과 도움을 주며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 '작은연못'이라는 단과대학 민중가요 노래패 동아리. 동아리 방명록에 남긴 글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고, 전체MT에 당시 졸업생인 조기영이 놀러가면서 처음 만났다고 하지만 같은 동아리는 아니다.각각 중어중문학과 98학번, 88학번이라 학교생활을 같이 한 적은 없고, 주말에 만나는 비밀 연애를 했다. 그러던 중 과 선배가 졸업한 선배가 많이 아프다며 말했는데 바로 그였다.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고향으로 내려간 그를 만나러 주말이면 4시간 기차를 타고 오갔다.
어느 날 남편은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헤어지자고 말하며 나갔고, 홀로 병실 침대에 앉아 스스로 질문했다. '정말 감당할 수 있겠니?', '열한 살 차이의 남자,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내게 처음으로 '존경'이란 단어를 느끼게 해준 그를 잃지 말자' 라고 되뇌었다고 한다. 남편의 병세는 회복하며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되었고, 수차례 먼저 결혼하자는 그녀였지만, 계속 다음을 기약했기에 아나운서가 된 후 2005년 결혼했다.
고민정의 결혼이야기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인터뷰 기사11살 연상의 가난한 시인에게 5번 청혼한 끝에 결혼한 아나운서 고민정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책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방송으로는 2013년 KBS2 예능프로그램 가족의 품격-풀하우스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당시 친정 부모님도 모르셨던 남편의 투병 사실을 처음 공개했고, 의도와 다른 기사와 반응으로 심경을 블로그에 게시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KBS2 결혼이야기라는 논픽션 일일 드라마 프로그램에 남편 조기영과 함께 진행을 맡았고, 4화에는 '시인과 결혼한 아나운서'라는 제목으로 자신들이 이야기가 방영되었다.1부2부3부4부
조기영 시인 '청혼', 고민정 낭독 |
3. KBS 아나운서
2004년 KBS 30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다. 이 때 KBS 아나운서 선발 동기가 박지윤, 한 기수 후배가 배성재. 그리고 배성재 아나운서와는 2017년 청와대 행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 KBS 입사 할 때, 당시 KBS가 블라인드 채용을 해서 입사가 가능했다고,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블라인드 채용을 통한 지방대 인재 등용의 좋은 예로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하기도 했다. 근데 경희대 국제캠은 용인시에 있다는 것.입사 후 2005년까지 KBS전주방송총국을 거쳐 KBS창원방송총국에서 지역근무를 했다. 이후 '지구촌 뉴스', '무한지대 큐', '책 읽는 밤', '국악한마당', '생로병사의 비밀', '스펀지', '생방송 오늘', '특명 공개수배' 등 주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또한 라디오 '고민정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청취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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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7일 KBS2 '지구촌 뉴스' |
2008년 8월 8일 정연주 KBS 사장 해임제청안 재가를 위해 기동대원들이 사복을 입고 이사회장 주변으로 투입되는 일이 있었다.[2] 3일 뒤 열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 행동' 출범식에서 오태훈 아나운서와 함께 사회를 맡았으며 "언론인으로서 참된 진실과 희망을 알리고자 꿈을 갖고 들어왔으나 지난 한 달 너무 어려운 시간이었다. 선배들이 지켜온 KBS 지켜가겠다는 바람으로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2009년 휴직계를 내고, 남편과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 칭다오 대학에서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학생으로 배우기도 하며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펴낸 책이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이다. 답답한 현실을 떠나 이상향을 찾고 싶었던 성장통 이야기로, 실제 한 달간 샹그릴라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샹그릴라를 찾아가는 게 인생”
2010년 12월 KBS 새노조 조합원이 징계를 받게 되자 트위터에 "우린 언제까지 그냥 회사원이어야 하나요. 언론인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런 KBS인이 되면 안되는 건가요? 당장 내일이 편한 삶 말고 평생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 건가요? 따지지도 말라, 흥분하지도 말라! 우린 기계가 아니에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언론사 파업 당시 KBS 새노조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2017년 1월, 14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한 KBS에 사표를 제출했고, 20일 퇴사처리 됐다.
4. 정치 경력
4.1. 문재인 대통령 선거 캠프
2017년 2월 4일 당시 문재인 전 대표와 자신의 모교인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2017년 대선 인재영입 1호로 '더문캠'에 합류했다. 미디어본부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고, 문재인 후보가 당내 최종 후보로 선출되고 경선 캠프가 당의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와 결합하게 되면서 선대위에 합류했고 같은 직책을 맡았다.<nopad> |
'문재인 대표님께 바라는 건 오직 한 가지입니다. 모두 어려울 때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어 주십시오. 나침반 속 지남철은 늘 여윈 바늘 끝을 떱니다. 하지만 그 전율이 멈추면 더 이상 지남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득권은 끊임없이 대표님을 흔들겠지만, 전율을 멈추지 않고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돈이나 권력이 아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어주십시오. 살고 싶은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저 또한 작은 지남철이 되어 그 길을 함께 하겠습니다.'
2017년 2월 4일 북콘서트에서 인재영입으로 합류하며 쓴 편지 中 영상 기사
2017년 2월 4일 북콘서트에서 인재영입으로 합류하며 쓴 편지 中 영상 기사
4.2. 청와대 대변인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17일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청와대 부대변인이 된 이후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주재 '광화문 1번가'의 공개행사에서 시민에게 정책홍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 8월 KTV '시민의 한 수'의 근황 인터뷰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격무에 시달린다고 한다. 아나운서 시절이 더 나을 지경이라고 한다.
2017년 11월 3일부터 청와대에서 제작하는 홍보 영상인 LIVE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의 진행자를 맡고 있다. 주로 청와대의 소소한 홍보 영상이나 뒷이야기를 전하며 가끔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 현안을 설명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청와대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을 통해 진행되므로, 라이브 동영상에 괜한 오해를 살 댓글은 절대로 달지 말자.)
2019년 2월 21일 청와대에선 고민정 전 부대변인을 선임행정관(2급)에서 비서관(1급)으로 승진시켰다고 밝혔다. 사유에 대해선 대변인실의 기능,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며 이번 인사는 현행 고위공무원단 정원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비서관이나 선임행정관이나 둘 다 고위공무원단이기 때문에 다른 비서관 자리가 없어진 건 아니라고 밝혔다.
김의겸 전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인한 사퇴 이후, 2019년 4월 25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자신있고 당당하게” 文 대통령이 고민정 대변인에게 당부 역대 2번째 방송 아나운서 출신 청와대 대변인이며 (최초는 참여정부 당시의 송경희 전 KBS 아나운서), 부대변인에서 대변인으로 내부승진한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하여 2020년 1월 15일 청와대 대변인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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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5일 청와대 대변인 마지막 모습 |
4.3. 국회의원 활동
2020년 2월 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청와대 대변인 시절에는 공직자였기 때문에 당적을 보유하지 않았으며, 언론계 인사 4명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2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전략공천위원회의 2차 전략공천지역 후보자 선정 결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지역구였던 광진구 을에 출마가 확정되었다. 3월 3일,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출마준비를 하여 3월 26일, 정식으로 후보 등록을 마쳤다.그리고 미래통합당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마해 사실상의 1:1 빅매치가 성사되었다. 민주당에서는 이 곳을 수도권 전체의 최대 승부처로 보고 고민정 후보를 총력지원했다. 광진구 을은 비록 추미애가 5선까지 한 곳이지만, 정치 신인인 고민정이 추미애의 지역 기반을 그대로 승계할 수 있을 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연달아 선거에서 패배한 전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름값이 낮지 않은 정치 거물인 오세훈이었다. 그래서 선거 기간 내내 두 후보의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접전을 벌였다.
개표율 80%~90%대에서는 몇 백표 차이로 당락이 갈릴만한 초접전을 벌였으나, 오전 5시를 즈음하여 표 차이를 다시 벌려 오세훈 후보를 2,746표(2.55%p)차로 제치고 당선을 확정 지었다. 서울을 넘어, 수도권 민주당 당선인 중 최소 표차다. 원래 이곳은 민주당 내부적으로 '가장 어려운 지역구'로 꼽았던 곳이다. 대진 확정 시점부터 총선 승부처로 꼽히던 곳이었는데 실제로 고민정이 이 곳에서 오세훈 후보를 꺾으면서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역구로만 160석을 넘게 당선시키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승리의 최대 공헌자가 되었다.
나중에 이데일리에서 입수한 '주요 격전지 정치자금 회계보고서'에 의하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고민정과 이수진 두 사람에게 총합 1억 원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는데 이 중 고민정에게만 6500만 원의 자금이 배당됐다고 한다.# 당 차원에서도 오세훈 후보의 지명도에 고전 중이었던 고민정 의원의 당선을 총력지원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때문에 대승을 이끈 민주연구원의 총선 전략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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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3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거리 유세 |
특이하게도 지역구 사무실이 단독 주택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역시도 지역구민과의 소통을 위해서 공공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한편 오세훈에게서 승리를 거두고 난 후 그를 몇 차례 조롱했는데, 오세훈이 2020년 10월경 대권 도전을 선언했을 때는 '패배해 놓고서도 여전히 환상에 빠져 있다' #, 오세훈이 안철수의 입당 여부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를 결정하겠다고 조건부 출마 선언을 하자 '광진을 주민들에게서 선택받지 못 해 놓고도 조건부 정치를 한다' # 등의 비판을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고 의원이 과거 21대 총선 때 당선 조건부로 재난지원금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이력을 언급하며 아시타비(我是他非)라고 고 의원을 비판했다.#
그런데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고 만다. 2021년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 캠프 대변인을 맡으며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전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 과거 "피해호소인" 언급 논란으로 선거전 시작하자마자 캠프 대변인에서 사퇴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 유세 과정에서 SNS 감성 메시지를 올릴 때마다 여러 논란만 일으키면서 오히려 악영향만 끼쳤다. 오세훈 후보가 당선된 후 본인 계정의 페이스북 댓글창에서는 오세훈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 되었다고 조롱받았다.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자가격리 등으로 인해 본회의에도 불참하는 등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가 5월 13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면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6월 들어 재보궐선거 이후 한동안 자제하던 SNS 활동도 재개하는 등 다시 이전처럼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6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진행된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청와대 출신이란 이유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정중동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로 당의 후보가 확정된 이후부터는 여러 정치 미디어에 출연해 이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재보궐선거와 달라진 모습 없이 감성팔이 등의 행동으로 팀킬을 했으며 이후 박홍근 원내지도부에서 원내전략부대표를 맡게 되었다. #
2022년 4월 26일, 한동훈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수사중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직업윤리가 없다고 발언하였다. # 한동훈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인권 및 기본권 측면에서 형사피의자가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이 주장과는 배치되는 발언이다. 이후에도 한동훈 법무부장관과는 예결위에서도 설전을 이어가는 등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2022년 7월 19일, 자신이 친이재명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이재명 의원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이재명, 문재인 모두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7월 28일, 예비 경선 컷오프를 통과했다. 8월 1일 나온 여론조사에서는 최고위원 지지율 12%로 2위를 기록했다. # 8월 19일 기준 권리당원 누적 득표율 22.11%(5만 2985표), 1차 국민여론조사 21.57%로 2위를 기록하며 非이재명계 중 유일하게 당선권 안에 들어와 있다. #
8월 10일, 자신의 SNS에 "오늘 '평산마을 평화지킴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개설됐다.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의 평화를 기원한다"며 구독을 부탁하는 글을 올리자 "이시점에 문통팔이, 정말 역겹다", "문명(문재인· 이재명) 갈라치기냐"며 친문표를 겨냥한 선거전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득표율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득표율 1위는 정청래.
2023년 9월,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가결 당시 웃음 논란으로 당원들에게 사표 압력을 받았다. #, (영상)
2024년 2월 27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컷오프에 반발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 홍익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의 설득 끝에 결국 13일 만에 최고위원직 사퇴를 철회하고 지도부에 복귀했다.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광진구 을 선거구에서 오세훈계인 국민의힘 오신환 후보를 4,015표, 3.87%p차로 누르고 2연속 과반으로 당선됐다. 총선에서 서울지역 여야 득표율 격차는 6%포인트 정도이며 연이어 오세훈(계)에 강한 모습을 보인만큼, 광진을에 계속 출마할 수도 있지만 체급을 키워 서울특별시장에 도전할 수도 있게 되었다. #
2024년 5월 24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종합부동산세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전에는 종부세 폐지에 반대했지만, 유권자들을 만나보고 의견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을 욕망으로 치부해 버렸다는 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3]
[A] [2] 경찰이 KBS 사내에 진입한 것은 18년 만이다. 2008년 8월 KBS에 난입한 대규모 경찰 병력과 KBS 구성원들 충돌.[3] 22대 총선 때 민주당이 서울에서 압승하긴 했으나, 종부세에 걸리는 한강 벨트에서는 정권심판론에도 불구하고 고전하거나 일부 지역구를 못 가져올 정도로 여전히 부동산 표심은 민주당에 차갑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본인 역시 4%p도 안 되는 표차로 신승해서 더 이상 부동산 표심을 무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