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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9 13:25:31

극(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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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전형적인 극의 형태 다과극(多果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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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극. 월아가 한쪽에만 있으면 청룡극, 양쪽에다 있으면 방천화극이라 부른다. 월극(鉞克)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극이 있다.

1. 개요2. 역사3. 매체에서

1. 개요

戟. 중국의 고대 폴암으로 긴 손잡이 끝에 단검이 붙었고 그보다 조금 밑에 보조날이 달린 무기.

2. 역사

초기에는 서주 이후 폴암으로 개량된 를 붙인 형태였다.

춘추전국시대까지는 단순히 자루 하나에 과와 모의 날을 동시에 결합하여 만든 형태였으나, 양한대 이후로는 두 부분을 일체화시켜 만든 날을 자루에 붙인 형상이 일반적이 되었다. 자전 등에는 '가지창'이라고 하여 해괴한 도해를 소개하지만, 실제의 극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삼국지연의여포 역시 방천화극을 사용했다고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초기 형태의 극을 사용했고 를 사용한 기록도 있다. 창이 일반화되고 월도가 등장한 이후로 극은 제식병기의 자리에서 물러나 의례용으로, 간간이 개인 무장으로 사용되었다.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을 조합하여 하나의 무기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서양의 할버드와 유사한 점이 많다. 다만 나온 시대의 차이는 매우 크다.

삼국시대엔 극을 대신하여 이 우세해졌다. 유목민족과의 접촉으로 마상궁술의 개념이 확립되었으며 날이 하나뿐인 도(刀)가 날이 두 개인 검(劍)을 거진 완벽히 대체한 것으로, 이 세 가지 변화는 삼국 시대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시작되었는데, 아직 극은 광범위하게 현역으로 사용되었고, 중국인 마상궁수가 모는 궁기병은 삼국 시대 이전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중국 군대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즉, 삼국시대가 진행되는 와중 극의 쇠퇴가 심화되고, 중국인 마상궁수가 유목민 마상궁수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사학자 린보우안은 극(戟)을 대신해 창 사용의 증가가 나타난 현상을, 유목민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기 위한 일환이라 설명한다. 보병을 타격하기 위해, 기병은 말 등에 얹고 다니던 매우 긴 '마상창'을 활용했다. 이에 보병 또한 훨씬 긴 창을 도입해 타격범위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항했다.

다만 삼국시대 전기에는 여전히 주된 병장기로 사용되었다. 위나라의 장수 장료는 극 하나를 꼬아쥐고 적 대열 속으로 돌진했고, "수십에 달하는 적을 참살하고 장수 2명의 목을 베었다." 전위는 한번에 두자루 이상의 극을 사용했으며, 쌍극의 무게는 약 80근을 헤아렸다고 전한다.[1]

허나 3세기 전장에서 극은 이미 사라지는 추세였는데, 주요 장수들은 물론이고 일반병들 역시 창으로 갈아타던 추세였다. 긴 창을 활용한 창술에 능숙한 관서 지역 병사들의 강력함에 대해, 조조는 경고를 들은 바 있다.

오호십육국시대의 군벌인 진안은 큰칼을 왼손에 들고,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오른팔에 들었다. 진안은 이 두 무기를 한번에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용맹했다고 하지만 일기토를 벌이다가 장팔사모를 빼앗겼다고 한다.

타고난 전사이자 장군이었던 공손찬은 말에 탄 채로 쌍창을 능숙하게 휘둘렀고, 친위기병대를 이끌고 적 대열에 돌진하여 수십 명을 참살하거나 다치게 하였다.

3. 매체에서

3.1. 만화

3.1.1. 문정후 초한지

당시 고증에 따라 작중 장졸들이 진영을 막론하고 대부분 극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작중 대우는 영락없이 여타 매체의 창과 다를바 없어서 항우가 초천검을 한번 휘두르니 병졸이나 장수들이 들던 극이 주인과 함께 토막이 나는 장면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5권에서 한 진영의 포위를 뚫는 항우가 주인없는 극 하나를 다른 손에 들고 초천검과 함께 휘두르며 무쌍을 찍는 장면이 나오며 의외의 대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3.1.2. 화봉요원

여포, 전위, 손책 등 네임드 캐릭터들이 사용한다.

여포는 초반에는 자루가 창처럼 긴 극을 사용했으나 그 후로는 자루가 짧은 극 두자루를 쌍으로 사용하며, 전위와 손책 역시 자루가 짧은 극 두자루를 쌍으로 사용한다.

3.2. 게임

3.2.1. 도미네이션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칭룽 지(도미네이션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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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쌍은 두 자루이므로 한 자루에 40근(9 kg)...은 인간이 전투용으로 휘두를 수 없는 무게인데다, 호왈백만의 나라 중국에선 80이라는 숫자가 대충 큰 수 대신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냥 평균보다 좀 무거운 정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