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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21:34:48

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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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형상3. 전술4. 부대단위5. 가공 매체의 기병창6. 실존하는 것 중 이 이름을 딴 것
6.1. SRBM(단거리 탄도탄)6.2. 자폭드론6.3. 수술용 칼6.4. 써멀 랜스
7.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www.medievalwarfare.info/spear_05.jpg
파일:external/www.medievalwarfare.info/lance.gif

Lance. 기병창. 말을 타고 돌격하며 사용하는 을 말한다. 거대한 원뿔형태를 한 창으로, 끝부분에 육중한 가드가 있다. 위의 두 사진에서 좌측은 라이트 랜스(Light Lance)고 우측은 헤비 랜스(Heavy Lance)이다. 라이트 랜스는 길이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창과 크게 다를 것이 없고, 헤비 랜스는 손으로 겨누고 겨드랑이로 고정할 수 있도록 뒷부분이 짧게 설계되어 있다.

2. 형상

베고 찌르는 것을 모두 하기 위해 화살촉 같은 삼각형, 또는 사각형의 촉을 쓰는 일반적인 창과 달리 송곳형의 촉이 달려 있다. 그래서 베일 수도 있는 일반적인 창의 촉과 달리 오로지 찌르기만 가능하다.[1] 토너먼트와 같은 대회용으로는 관통하지 않기 위한 '크라운' 이란 것을 달기도 한다. 길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전근대에는 보통 4m를 넘겼으며, 4.5m 전후가 일반적이었다. 19세기에는 2.5~3.2m정도의 길이로 많이 줄어들었다. 형상에 따라 무거운 헤비랜스와 일반 창과 다를 바 없는 라이트 랜스로 나뉜다. 중세 기사들이 14세기경부터 사용하던 헤비랜스는 무게도 무거우면 10kg 정도로 유럽의 경우 흉갑에 달린 걸쇠(랜스 레스트)를 받침대 삼아 랜스를 사용하였다. 보통 랜스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헤비랜스다. 라이트랜스는 일반 창과 별다를 바가 없다보니, 기사가 하마했을 때 일반창처럼 사용한 일도 제법 있다. 물론 급할 때는 헤비랜스로 창벽방진을 짜서 할버드 위주의 스위스 용병을 역으로 발라버린 적도있다.

기병창 하면 서양의 것이 유명하지만, 동양에도 이와 비슷하게 '마삭(馬槊)'이라는 기병 전용 창이 있었다.[2] 생긴 건 그냥 긴 창이다. 다만 쥐는 법은 카우치드 방식을 쓰기도 했고 가끔 끈 등으로 지지하기도 했다고 한다[3]. 가야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에서도 비록 창 부분이 부러져서 완전한 형태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창으로 무장한 중기병의 형상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파일:external/www.jfmhm.com/2014030113264373.jpg
마삭으로 무장한 청나라 기병.

3. 전술

The captains or captaine that charges either with troups or troupe, cares not much whether the companies breake their launces or not, but desires them to enter resolutely, and to keep close together.
If they be wel conducted, their leaders command more than half of them to carie their swords or pistols in the bridle hand, rather than faile to vse the sword & pistoll, & quit their Lances;
but they wil be sure to place the best of the Lantiers in the forefront. Lightly of euery hundred, 15. or 20. know how to breake:
being wel broken, with care of the goodnesse of the staffe and head, the blowe of the Launce is little lesse in valor vnto the pistoll:
the charge of the Lantiers is terrible and resolute, being in carier to breake, the enemies perceiues their resolution is to enter, and not to wheele about like vnto the pistolers.
......
The most Chiefes or Souldiers of account are armed at the proofe of the Pistoll. If the Leaders commaund their troupes to spoyle horses, the Launces are more sure.
창기병대와 함께 돌격하는 부대장들은 부대원들이 적을 제대로 찌르든 안 찌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그저 단호하게 진격하고 서로 가까이 선 대형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제대로 지휘된다면, 지휘관들은 창기병들 중 절반 이상이 고삐를 잡은 왼손에 검이나 권총을 쥐고 있으라고 지시하며, 그렇게 해서 (백병전에서) 랜스를 버린 뒤 검과 권총을 쓰지 못하게 되는 일을 방지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창기병들 중 정예들, 즉 일반적으로 100명당 창을 잘 다루는 15-20명을 제일 앞열에 배치할 것이다:
좋은 품질의 창대와 창날로, 잘 겨냥된 랜스의 타격은 권총 사격에 비교할 때 기백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창기병들의 돌격은 무섭고 단호하다, 그들이 창으로 찌르기 위해 진격하는 모습을 본 적들은 그들의 확고한 결심이 권총기병처럼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지휘관들이나 중요한 기병들은 방탄인증된 갑옷으로 무장하며, 따라서 지휘관들이 부하들에게 (갑옷을 입은 기수 대신) 말을 공격하라고 명령한다면 권총보다는 창으로 이 명령을 수행하기가 더 쉽다.
Williams, Roger, Sir (1540?-1595), 'A briefe discourse of warre. written by Sir Roger williams Knight; with his opinion concerning some parts of the martiall discipline]'
"창날이 기병의 갑옷 두 겹을 뚫고 지나갔는데 그자는 무사했다는군."
내가 "어떻게 그가 무사할 수 있었지요?" 라고 묻자 프랑크인 기병은 "창날은 기병의 허리 피부만 관통했습니다." 라고 답했다.
나는 그 창의 일격으로 그가 무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한마디 하겠다. 기병은 창으로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손과 팔로 창대를 몸 옆에 밀착시켜 아주 힘껏 잡고, 자신의 말은 달리게 두어야 한다. 그래야 찌를 때 효과가 있다. 창을 잡은 손을 움직이거나 뻗으면 일격을 가해도 상대방에게 영향이나 해를 입히지 못한다.
우사마 이븐 문끼드(1095-1188) 저, 김능우 역, '성찰의 서'

공격방식은 단순하다. 오로지 말을 달려서 그 주력(走力)을 실어 쑤셔박는 것. 그래서 카우치드 방식으로 랜스를 잡는다. 단순한 장창병이었으면 그만한 위력은 나오질 않지만 말이라는 동물과의 조합은 강력한 위력을 내게 해주었다.

하지만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큰 충격을 줄 때 공격자가 받는 반발력도 엄청나서 이러한 충돌 시의 반발력을 버텨내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무리로, 사용에는 상당한 완력과 단련이 요구된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갑옷의 방호력이 상승하였고, 갑옷의 방호력이 정점에 이른 13세기 유럽의 경우 랜스 돌격으로 갑옷을 뚫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졌다. 갑옷을 뚫지 못해도 충격만으로 직격당한 자가 중상을 입는다는 낭설이 있지만, 랜스 차지는 일반 창보다 전체 질량이 큰 긴 창이 가진 질량과 말의 속도로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데 관통되지도 않고 즉사할 정도의 운동에너지를 만들어 내기에는 질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설사 가능하더라도 창을 들고 있는 기사도 같은 양의 반작용을 얻어야 하는데 차지를 건 기사가 멀쩡할 리가 없으므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이런 경우 전체 질량은 무겁지만 부분 질량은 일반 창보다 더 가벼운 랜스가 먼저 부러지게 되어 모든 운동 에너지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전에 랜스의 명중률 자체가 좋질 못했다. 랜스에 맞기도 힘들지만 맞아도 그 리스크를 감당할 데미지를 못 준다. 15세기의 콘도티에로 피에트로 몬테는 오직 어리석은 자들이나 말이 아닌 기수를 겨냥한다고 주장했으며 16세기의 군사저술가 프랑수아 드 라 누이는 갑옷을 입은 기병이 창에 맞아 죽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동시대 카스티야의 기사인 후안 퀴자다도 일단은 기수의 배를 찌르라고 조언하지만 기수가 아닌 말을 찌르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인다. 실제로 이 시기의 창기병들은 랜스로 적 기병을 노리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중무장한 군마를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의 군마는 품종의 개량을 통해 마구와 마갑의 무게를 견뎌내도록 훈련받았으며, 현대의 경주마처럼 속도를 내기보다는 굵고 튼튼한 뼈에 근육이 많은 체형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현대의 대형 노동마인 '샤이어' 정도의 덩치는 아니고, 마갑과 중세 미술사 연구 등을 통해 추정한 결과로는 5~600kg 정도 되는 중형마 체급이었다. 리인액트 등을 통해 기병 돌격의 충격량을 결정하는 데 군마의 무게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전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말의 덩치와 힘이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4]

중요한 것은 실제 기병은 영화 등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어디를 가든 항상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5] 말도 생물이고 당연히 무게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군마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도, 말도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는 오래 달리기는 힘들다. 각종 매체에서는 기병이 등장할 때면 어디를 가든 두다다다 풀 갤럽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 사료에 묘사되는 기병돌격에서 갤럽으로 최고 속력을 내는 구간은 목표물 50m 전방 지점 정도였다.

즉, 기병대가 처음 기동을 시작할 때에는 대열을 맞춰 나아가야 할 필요성도 있고 말의 체력을 보존해야 할 필요도 있었으므로 트롯과 같은 가벼운 속보로 대부분의 거리를 주파했으며, 목표물을 100m 정도 둔 지점에서부터는 캔터로 달리기 시작하여, 그리고 마지막 50m부터는 최대 '스퍼트'인 갤럽으로 질주하여 돌격을 개시했다.

즉 영화에서는 기병들이 돌격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엄청난 속도로 엄청난 거리를 주파하며 적진에 들이받는데, 놀랍게도 실제 전투에서는 말의 체력에 분명히 한계가 존재하는 탓에 화살이나 총포가 쏟아지는데도 목표물 100m 앞 정도까지는 조금 빠른 속보 정도로 터벅터벅 이동했다. 괜히 기사들이 용감해야 했던 게 아니다

그나마도 서로 무릎과 무릎을 맞댄 기창돌격 진형을 유지할 경우 최고 속력은 빠른 캔터나 느린 갤럽(15km/h 전후) 정도였으며, 지형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느린 캔터로 충돌한 경우도 흔했을 것이다.[6] 기병 충격 전술은 속력이 느려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진형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으므로 충동적이고 단순무식한 기사의 이미지와 달리 인내와 규율이 중요했다. 1220년대에 편찬된 윌리엄 마셜의 전기에는 토너먼트 단체전에 참가한 기사들이 레이디들이 지켜보는 것을 보고 의욕이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밀집대형으로 동료들과 열을 맞추면서 일정한 속도로 상대편 부대를 향해 진격했다고 묘사된다.[7]

'무릎과 무릎을 맞댄 밀집대형'이라는 표현은 비유나 과장이 아니며, 회전에서 대열을 이루고 돌격하는 기병들은 말 그대로 무거운 장화나 다리 갑옷을 신지 않으면 짓눌려서 부상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다리를 딱 붙인 채 느린 속도로 달렸다. 12-13세기 기사문학의 표현을 빌리면 '장갑이나 과일을 위에 던져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창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어야 했다.

랜스 돌격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제일 앞열에 선 숙련된 창잡이(5-6열 종대의 경우 100명 중 15-20명)였다. 나머지 인원이 든 랜스는 거의 장식에 가깝고 진형 잘 유지하면서 따라가기만 해도 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졌다. 절반(즉 1-3열) 이상은 검 같은 근접무기를 바꿔 들기 편하게 왼손에 미리 들고 있으라고 지시받는다.

한국에서는 기사들이 일렬씩 순차적으로 돌격하여 랜스로 찌르고 난 뒤, 곧바로 방향을 돌려 빠져나와서 후방으로 가서 다시 랜스를 보급받으며, 후열이 먼저 돌진한 앞열을 엄호하면서 연쇄적으로 돌진했다는 설이 2011년 한 역사 커뮤니티에서 있었던 논쟁으로 퍼져나간 적이 있었는데, 사실은 이것이 보편적인 랜스 전술이었다는 근거는 커녕 실존했다는 근거조차 없다. 왜 이런 오해가 시작되었는지 명확한 기원을 찾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다음의 링크에 나오는, 몇 개의 제대로 나뉘어서 사선 대형으로 달려가다가 첫 번째 제대의 돌격이 성공하면 두 번째 제대가 전과를 확대한 다음 이후 제대들은 상황에 맞게 싸우고, 첫 번째 제대의 돌격이 실패하면 후속 제대들의 엄호 하에 돌아온다는 자료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 그리고 이 자료에서는 랜스가 마구 소모해도 되는 물품이 아니라 허무하게 잃으면 불명예로 여기거나, 적을 꿰뚫는 명백한 전과를 올리고도 랜스를 놓지 않았다가 전사하는 사례가 나올 정도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헤이스팅스 전투 같은 현실의 기병 연속 돌격 사례들은 전부 돌격이 실패하고 패주한 것이거나 유인후퇴전술이었다. 중세의 중기병들은 아무리 얇은 선형진이라도 2~3열 두께를 유지했고, 백병전을 대비해서 5~6열의 두꺼운 대열을 만들기도 했다. 16세기 폴란드 후사르도 정예부대라면 3열까지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실전에서는 5~6열이 일반적이었다. 17세기 이후에야 2~3열의 얇은 선형진이 흔해진다. 그리고 여기서 창을 든 기병들은 중세 로마군의 보병대열처럼 가장 앞 대열에 위치하지 그 뒤는 검과 둔기를 든 기병들이다. 모두가 창을 든 것이 아니다.

다만 상대의 진형이 무너지지 않았을 경우 (때에 따라 예비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뒤로 빠진 다음 재정비 하고 나서 재차 돌격하는 것 정도는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16-17세기 폴란드의 후사르는 한 전투에서 최대 3-4번의 돌격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13세기 성전기사단의 일반 기사단원들도 각각 2필의 전투마를 지급받도록 규정되었으므로 대략 2-3번의 돌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살라딘의 측근이었던 바하 앗딘은 아르수프 전투에서 십자군 기사들이 도망치는 무슬림 기병들을 추격하다가 매복을 경계하며 멈춰서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추격하는 식으로 총 3번의 돌격을 가했다고 표현한다. 프랑수아 1세는 마리냐노 전투 이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장다름이 스위스군에게 가한 30번의 돌격을 자랑했지만, 이게 각 부대가 30번씩 돌격했다는 의미인지, 얼마나 진지한 의도로 말한 숫자인지는 알 수 없다.

총이 나오기 이전에는 아예 너죽고 나죽자식으로 달라붙어 싸우질 않는 이상, 보병 부대가 기사를 견제할 만한 수단은 자기들이 지키는 궁사 정도 뿐이었고, 활은 곡사화기인 데다 총에 비해서 화력이 밀렸으므로 기사를 완벽히 막진 못했다. 총기의 발명 이후에도, 총검이나, 플린트락 머스킷의 보급 이전에는 총병대가 이전 시대의 궁수마냥 근접 보병대와 분리되어 있었고, 따라서 두 병과의 유기적인 운용으로 기병을 막기 위해 테르시오로 대표되는, pike and shot 형태의 복잡한 진형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머스킷이 보병 대부분이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되고, 근접전에서 이전 시대의 창처럼 활용할 수 있는 총검까지 보급된 후에야 보병이 독자적인 대기병 방진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방법은 공격할 것처럼 다가가서 충돌 직전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에 유인돼 많은 적보병이 추격에 나서 대형이 무너진다. 그러면 중기병대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말 머리를 돌려 흩어진 적보병을 짓이겼다. 그런 전술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 쓰였다. 아즈텍을 정복한 코르테스도 테노치티를란을 공략할 때 도시 내부에서 자주 써먹었다.

물론 아무리 우수한 기병이라도 제대로 대형을 짜놓고 훈련도 잘 된 튼튼한 보병 방진에 정면으로 돌격하는 건 미친 짓인 게 여전했고, 따라서 돌격하기 전에 사격 무기 등으로 방진을 어느 정도 흐트리고 나서 공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는 게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전쟁으로 폴커크 전투에서 잉글랜드 기사들은 스코틀랜드의 쉴트론을 붕괴시킬 수 없었다. 그러자 에드워드 1세는 장궁병을 동원하여 쉴트론 방진을 붕괴시켰고 그틈을 놓치지 않고 잉글랜드 기사들이 돌격하여 스코틀랜드군을 궤멸시킨다. 반면 배녹번 전투에서 잉글랜드 기사들은 장궁병의 지원도 없이 쉴트론에 돌격을 감행했고 결국 우수수 낙마하여 몰살당했다. 화약 발명 이후 기병대가 휠락 방식 단총이나 권총, 시대가 지나면서 용기병, 카빈, 리볼버 권총에서 레버액션 라이플까지 보병총보다는 작고 불안정하지만 작으면서도 높은 근접 화력을 가진 소형 총기를 사용 한 것도 이유가 있는 셈이다. 다만 보병대가 대부분 전열보병으로 전환된 시기에는 아무리 근접 화력 보조용 총기를 들고 다녀도, 크고 아름다운 보병총으로 일제사격을 가하는 전열보병 방진 앞에선 교환비가 당연히 좋지 못했다. 물론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리볼버, 레버액션 라이플 등이 나오면서 총기장비는 대세가 되었고 결국 기병의 주류는 총과 검을 든 검기병과 총기병, 용기병들이 차지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빠르게 돌입해야 하는 창기병들에게 총기는 상성이 매우 좋질 않았고 그래서 당대 랜스의 주 사용자인 울란 창기병대 등은 어설픈 총기 사용 없이 랜스 그 자체를 주로 활용해서 적절한 시점에서의 돌격을 한다.

따라서 보병방진의 와해는 지치거나 사기가 떨어져 스스로 진형을 흐트러트리거나 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19세기 나폴레옹 전투에서도 나타난 일이다. 이러한 보병방진의 붕괴는 곧바로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인지라 앞의 보병방진이 붕괴해서 병사들이 도주하면 뒤의 보병방진도 연달아 붕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도주한 보병이 뒤의 아군 보병방진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방진이 와해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도 있었다.

승마보병과 장궁병의 조합이 유행한 14세기 이전까지 창기병의 기병창돌격은 지휘관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돌격옵션 중의 하나였다. 총기시대에는 총과 검을 든 총기병들과 검기병들(중용기병과 경용기병으로 통합한 영국을 비롯해서 각국의 기병편제가 전부 달라서 어느 하나로 통칭이 불가능. 즉 같은 흉갑기병인 퀴레시어조차 어느나라는 직검만으로만 무장했다면 어느나라는 직검에다가 총기까지 쥐여주기도 한다.)이 득세함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울란이나 폴란드윙드 후사르는 일반적인 랜스와 파이크의 길이를 넘어서는 월등히 긴 랜스(약 5미터)를 이용해 활약을 펼쳐 1차대전때까지 매우 소수로나마 창기병대가 유지될 수 있도록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단 이때로 넘어가면 창기병들의 병과는 경기병으로 바뀌고 이로인해 전투마도 무거운 중량도 견딜수 있는 체급좋은 전투마가 아닌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경기병용 전투마를 지급한다.

그 웅장하고도 세련된 형상에 힘입어 전장만이 아닌, 식전에서의 예식용이나 마상시합(토너먼트, 주스트) 등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보통 랜스의 끝에는 깃발을 다는데, 중세에는 자기 자신이나 가문을 표시하는 문장의 역할을 했고, 르네상스 이후로는 부대나 국가를 나타내는 국적 마크 역할을 했으며, 돌격시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창끝이 처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었다.

전투용 랜스와는 달리 토너먼트 시합용 랜스는 보다 가볍고 약한 목재를 사용하고, 창날 대신 코로넷이라 부르는 왕관 모양의 장식을 달거나 목제 그대로 사용했다. 시합 시에 창이 부러져야만 제대로 일격을 먹인 것으로 간주했으므로 쉽게 부러지도록 약한 재질의 나무를 사용하고, 창대에도 홈을 파두곤 했다.

물론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의 속도는 큰 차이가 없을테니 파괴력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프랑스의 왕 앙리 2세는 딸의 결혼식 때 열린 토너먼트에 이벤트성으로 참가했다가 부러진 랜스 조각이 투구 틈새로 들어가 눈에 박혀 사망했다.[8]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프랑수아 2세는 16세 소년에 불과했던 데다 바로 이듬해에 죽었고, 다시 그 뒤를 이어 샤를 9세가 11세의 나이로 즉위.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에 위그노 전쟁이라는 헬게이트가 터졌다.

파일:external/farm3.static.flickr.com/4047375520_054090d349.jpg
갑옷이 퇴보하면서 일시적으로 창기병도 사라지는 듯했으나, 윙드 후사르의 전통을 이어받은 폴란드 랜서(울란 Uhlan)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대활약을 하면서 전유럽에 유행처럼 창기병이 부활했다. 물론 전 시대와 같은 갑옷을 입은 적이 사라졌기에 일반창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고, 길이도 줄어들었다(2.5m~3.2m 정도). 사용법도 겨드랑이에 끼우는 카우치드 랜스 방식과 더불어 전후좌우의 적병을 손으로 찌르는 방식도 써야 했으므로 길이가 318cm나 되면서도 무게는 1.6kg밖에 안 된다.

윈스턴 처칠도 군에 복무할 때에는 창기병으로 싸웠지만, 정작 전투 전에 팔을 다쳐서 창 대신 권총을 쏘며 싸웠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초까지 창기병은 여전히 유럽각국의 편제상에 남아 있었지만, 참호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참호기관총이 전장을 고착시키자 기병의 효용성이 사라져 대전 초반에 대부분 용기병과 유사한 부대로 변해가거나 아예 기갑부대로 전환되기도 했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까지 창기병을 보유[9]하고 있었으며, 독립직후의 대소련 전쟁 등에서 얻은 명성으로 독일병사들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독일 기갑부대와의 어쩔 수 없는 대결을 벌이다가 사라져 갔다.

현재는 실전부대로서의 창기병은 없고, 왕실이 유지되는 몇몇 국가에서 의장부대로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4. 부대단위

중세 내내 이러한 랜스 돌격 전술 및 그 핵심인 중기병, 즉 기사의 중요성은 매우 높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용병술이 발달한 까닭에 나중에는 그 자체가 부대 단위의 일종이 되었다.

중세시대 랜스는 기본적인 부대 단위로서 기사 한 명과 그의 종자나 병사 등으로 구성되었다. 다만, 절대왕정기 상비군의 등장 전까지 하나의 표준안에 따라 통일된 군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병종 구성은 크게는 현지 군사문화부터 작게는 랜스를 편성해야 할 기사 본인의 주머니 사정, 혹은 전황상 필요에 따라 달라졌다. 자기가 병사를 고용해서 소규모라도 부대를 편성하는 시점에서 돈 좀 있거나 장원이나 영지를 가졌다는 의미이니, 랜스의 기사는 기사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갔다.

랜스 다수가 모이는 경우, 랜스가 흩어져 기사 같은 중기병들은 중기병들끼리, 보병들은 보병들끼리, 궁수는 궁수들끼리 모이는 식으로 병종별 재편을 해서 부대를 운용하기도 했다.

중세 이후에도 기본적인 부대단위의 명칭으로서 남았고, 이후 베네치아에서는 용병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용병을 고용할 때 독립된 대규모 용병대가 아니라 소규모의 랜스 단위로 고용하고, 지휘관급 용병들에게 랜스를 몇 개씩 골라 붙여주는 용병운용법을 썼다. 그리고 이런 용병들과 자유 기사들을 지칭하는 어휘로서 프리랜서가 파생하였다.

오늘날에도 부대 단위를 지칭하는 랜스의 흔적은 계급인 랜스 코포럴(lance corporal)에 남아있다. 랜스 코포럴은 부사관 중 가장 낮은 계급으로 코포럴(하사)보다 낮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해당되는 계급이 없다. 랜스 코포럴이 지휘하는 인원은 약 5~10명으로 옛날에는 이 인원을 일개 랜스로 부르곤 했다.

5. 가공 매체의 기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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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존하는 것 중 이 이름을 딴 것

6.1. SRBM(단거리 탄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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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자폭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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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수술용 칼

외과 수술에 사용되는 칼. 오늘날 사용되는 랜스는 과거보다 칼날이 작아서 란셋(lancet)이라고도 불린다.

외날인 스칼펠(메스)과 달리 칼날이 두 개이며 끝부분이 뾰족하다. 따라서 절개용인 스칼펠과 달리 랜스는 꿰뚫는 용도로 많이 이용된다. 즉 스칼펠은 슥 하고 그어서 칼집을 내고, 랜스는 쿡 하고 찔러서 구멍을 낸다. 이름이 랜스(창)인 이유도 그것.

주로 종기 같은 화농성 병변을 개방하여 배농(고름을 제거)하는 시술에서 활약하는 도구이다. 랜스로 피부를 찌르지 않고 스칼펠로 피부를 째면 개방부가 커져서 나중에 반흔이 남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스칼펠에 비해 활약할 일이 별로 없지만[10],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외과 학술지의 이름은 스칼펠이 아니라 란셋(The Lancet)이다.

6.4. 써멀 랜스

초강력 절단기로, 4000~5000도의 고열을 이용해 강철을 무 베어내듯 잘라낸다. 일반 용접기보다 1000도 이상 높은 온도를 사용하므로 강철제 랜스 자체가 녹아내리며, 계속 교체해가며 사용한다. 랜스라 불리는 이유는 창처럼 길다란 봉 형태이기 때문.

원리는 산소를 이용한 고열 연소. 뭔가 연소할 것(연료)을 장전한 강철제 튜브를 액화산소 탱크에 연결하고, 산소를 흘려보내는 상태에서 연료에 용접기를 이용해 점화하면 고압 산소로 인해 엄청난 고열의 연소가 일어난다. 연료로 사용되는 것은 주로 강철이나 알루미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중장비 등을 해체할 때, 또는 용광로에 통째로 집어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강철제 부품, 예를 들어 차축이나 용골 등을 절단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주로 거대한 강철 구조물을 잘라내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써멀 랜스로 자르는데도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 써멀 랜스로 거대한 베어링을 해체하는 장면. 작업 환경 때문에 소리가 매우 크니 주의하자.

SF풍의 게임이나 창작물에서 근접무기로 드물게 등장한다. 작품에 따라서 절단기나 가스토치에 가깝게 묘사되기도 하고 화염방사기나 혹은 랜스란 이름대로 그냥 고열을 발생하는 창처럼 나오기도 하는 등 묘사는 제각각.

써믹 랜스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Thermic과 thermal은 동의어이므로 실제 절단기 역시 써믹 랜스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인 예로 95년작 엑스컴에서는 수중에서 사용 가능한 고성능 근접무기로 등장하고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는 공구에 가까운 형태의 무기로 등장한다.

7. 관련 문서



[1] 다만 라이트 랜스의 경우, 일반적인 창과 같아서 베기도 불가능하진 않다.[2] 그냥 삭(槊)이라고 하면 장창 전반을 가리킨다.[3] 그러나 유럽의 기사들이 랜스의 끝 부분을 쥐고 돌격했던 것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삭의 중간 부분을 잡고 돌격했기 때문에 적에게 가해지는 충격력은 유럽 기사들이 했던 것보다 약할 것으로 추정된다.[4] Ann Hyland 저작의 The Medieval Warhorse: From Byzantium to the Crusades, 1994 등 참조.[5] 충격기병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현대의 전차도 어떻게 보면 이와 비슷하다. 일단 더럽게 무거워서 연비가 바닥을 기는 데다가, 장거리 야지 주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이럴 경우 궤도나 현가장치 등 주행계통 정비에 애로사항이 꽃피는지라 전선까지는 철도나 전차운반차량에 적재되어 이동하고, 전장에서만 거친 기동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6] 물론 이것도 말의 기준에서나 느린거지 인간에게 있어선 충분히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인데, 마차 시위 당시 취재원들이 마차를 따라잡으려 달렸지만 운동이 부족한 현대인의 한계점이 있어도 이 속도마저 비무장 상태의 인간이 달려서 따라잡지 못할 수준임이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육군의 뜀걸음 특급 기준인 4km를 12분 30초 내로 달리는 정도 속도로, 결코 느린 게 아니다.[7] But they rode to meet them steadily in good, close formation, no one going ahead of the rest[8] 앙리 본인이 청년 시절부터 마상시합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출전하기도 한 모양이지만, 당시 나이가 41세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상대로 직접 근위대장을 고르면서 '왕이라고 적당히 할 생각 말고 제대로 하라' 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 앙리 2세는 며칠 동안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죽기 직전에 정신을 수습하고는 근위대장의 잘못이 아니니 죄를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9] 사실 이 폴란드 '창기병'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전부 개인화기로 무장하고 기관총같은 중화기도 충실히 장비하고 있으며, 일부 차량화까지 진행된 정예 기동부대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한 부대였다. 물론 창기병이란 이름값은 하여서 기병창을 지급받아 관련 훈련도 받았고, 실제로 기병돌격을 통해 독일군 보병중대를 패퇴시킨 전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총기를 사용하여 전투에 임했다.[10] 랜스의 주된 사용처였던 배농용으로도 현재는 해당 용도에 적합한 형태로 만든 스칼펠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