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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8:45:19

창술

1. 개요2. 역사
2.1. 동양2.2. 서양
3. 종류
3.1. 양손 창술
3.1.1. 보법3.1.2. 기본 자세3.1.3. 그 외의 자세3.1.4. 공격과 방어3.1.5. 파지법3.1.6. 영상 예제
3.2. 훈련 방법과 도구
4. 실전
4.1. 장점4.2. 위치와 한계
5. 현재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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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창술(, spearmanship)은 을 사용하는 무술이다.

2. 역사

창술은 기원을 특정하기 어렵다. 창이라는 무기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생겼으며, 기원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인데, 이는 고대 수메르 왕국의 유적인 우르의 스탠다드의 그림이나 이집트 고왕국 유적 등에서도 이미 창을 든 병사들이 그려져 있어 창이 군대의 주요 무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에서 창을 쓰는 방법은 주로 던지는 투창방패와 창을 함께 쓰는 방법이었다. 《일리아스》를 비롯한 고대 서사시나 군대를 나타내는 자료에서도 방패와 창을 든 군대가 전열을 짜고 충돌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에는 창의 용법은 주로 찌르기 뿐으로, 전투 양상도 방패로 밀어붙이며 서로 찔러대는 방식이었으며 사용법도 매우 단순했다.

창술이 '무술' 수준으로 올라간 것은 양 손으로 창을 사용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방패를 사용하면 창의 길이를 절반밖에 살릴 수 없고 진형이 둔중해지며 개인장비가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보병교전시 상대의 창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고, 특히 훈련수준이 높기 어려운 병사들은 실패확률과 어려움을 내포한 창으로 창을 막는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방패를 주는 것이 전투에서 훨씬 유리했다. 따라서 고대와 중세까지는 방패와 창을 동시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손으로 창을 사용하면 조작도 더 수월하고 찌를 수 있는 거리도 길었기에 기법 면에서 한손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고, 방어도 창으로 해야 했으므로 기술적인 면에서 높은 수준이 필요했다. 이러한 창술은 유럽보다는 중국, 일본 등에서 더욱 발달했는데, 유럽은 갑옷의 발달로 창보다는 폴 암이 더욱 실전에서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15세기에 남겨진 검술서들은 창술 또한 수록하고 있는데, 검과 창을 동시에 잡고 쓰거나 창을 수직으로 세워 상대의 창을 방어하는 독특한 창술을 수록하고 있다.

2.1. 동양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활과 함께 창이 주력 무기였으니만큼 창술도 주요 군사훈련 종목인 궁술, 민속놀이인 택견이나 씨름과 함께 조선 초중기까지 잘 전승이 된 몇 안 되는 무술 중 하나였고 궁술과는 달리 화약무기의 등장 이후에도 그 중요성이 계속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에도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면서 장창을 가장 중요한 무예로서 가장 첫번째로 등재할 정도로 중시하는 성향을 보였다. 다만 이것이 중국의 장창술을 들여온 것으로 한국 고유의 장창술은 이때쯤 실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기창이 실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정식 군사과목으로 훈련시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란나찰을 창술의 근간으로 여겼으며 양가창법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중국무술에만 있는 독특한 개념인 '권병일치'[1] 덕분에, 중국 북파권법 유파 중 하나인 팔극권의 무기술인 '육합대창'[2]도 유명하다. 그 외 다양한 창술 유파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나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서적이 남아있는 것 혹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 민간에서 만든 것 정도다. 이것을 현대화하여 재정립한 우슈에서도 창술 과목이 있으나, 실전보다는 아름답게 기술을 보여주는 표연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들이다. 긴 길이를 활용해 전방을 향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전투시의 창술과는 달리 현대 우슈의 창술은 곡예화되어 회전하는 동작이 많아졌기에 창대의 길이도 대폭 짧아져 자신의 키와 같거나 약간 긴 정도의 창을 사용하고 심지어 한 손 동작과 경량화된 무게를 선호하는 현대 중국 무기술답게 한 손으로 창대 끝을 잡고 쓰기 편하게 가볍고 잘 휘어지는 목재로 만든걸 사용한다.

절강성의 군사령관으로써 왜구퇴치에 큰 공을 세운 척계광은 자신의 저서 기효신서에서 왜구를 무찌르기 위한 낭선, 당파를 비롯한 다양한 창과 창계열 폴암에 대한 해설과 사용법을 해설했고, 창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의견을 가필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현대 중국군에서는 총도 창이라고 부른다. 이는 고대중국의 군사교리상 각개전투의 기본이 되는 창병이 집단운용의 기초로서 현대의 직사화기를 운용하는 소총병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흔히 현대의 소총병의 과거판이라 오해하는 궁병은 현재 그 운용교리가 포병에 가깝다.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에서는 본래 방패와 창을 함께 쓰는 풍조가 있었으나[3], 소수 엘리트의 봉건무사들의 전투로 전쟁 양상이 변하면서 보다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나기나타에 밀려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도보전이 중시된 남북조시대에 들어서 양손으로 창을 사용한다. 아시가루를 징집하여 대규모 군대로 전투를 벌이는 풍조가 정착된 전국시대에는 가르치기 쉽고 집단전에서 나기나타보다 우월하다는 이유로 창이 주력 무기로 등극했으며, 4.5m를 넘겨 6m까지 넘기는 장병창(나가에야리. 長柄槍)을 쓰기도 했다.

길이 때문에 파이크와 비교하기도 하나, 장병창은 아직까지는 고안 이유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 또한 유럽처럼 전 병력이 다 장병창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었다. 사용법도 높이 올렸다가 내려치는 방식이 더 많았다.

일본 특유의 능선 지형에서 적을 찌르기 위해 길어졌다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느 쪽이던 간에 일본에는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보이는 기병 돌격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은 신빙성이 없다.[4]

유럽과 마찬가지로 장병창은 일반적인 창과는 사용법이 달랐으며 찌르고 방어하는 일반적인 창과 창술은 따로 존재했고, 이러한 창술을 가르치는 유파 중에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유파가 있다.

2.2. 서양

서양에서는 중세를 지나면서 등자와 겨드랑이 랜스 방식의 보급으로 기병의 양성이 쉬워지고 위력과 숫자가 늘어나, 과거의 보조적인 용도의 주력에 이를 만큼 큰 위치를 차지했으므로 자연히 보병들도 이에 대응하여 기동력과 리치를 추구하기 위해 방패를 잘 안 쓰게 되었다. 방패를 쓰면 4m짜리 창이라도 중간을 잡지 않고는 쓸 수 없었으므로 장점인 길다란 길이를 절반이나 희생했으며, 기병의 랜스돌격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병에 대응해서는 방패보다는 창을 두손으로 쓰는게 나았으며, 그 편이 개인장비의 무게가 줄어들고 진형의 유연성과 기동력도 높아졌으므로 그렇게 변화했던 것이다.

16세기에서 유럽에서는 창술이 크게 흥하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창술이 아니라 6m에 달하는 파이크라는 커다란 창을 쓰는 기술이었으며, 흔히 한국에 알려진 창술은 파르티잔과 같은 창계열 폴암의 기술로 계승된다. 파이크 창술은 개인이 창을 찌르고 휘두르기는 매우 힘든 거대한 창임을 감안하여 주로 제식동작과 명령에 따라 동작을 바꾸는 것을 중시했으며, 기병에 대응할 때에는 자루끝을 땅에 박고 창끝을 말의 몸통이나 머리 높이로 맞추었으며 이럼으로써 말이 창의 벽에 본능적으로 돌진을 못하고 멈춰서거나 돌격 속도가 느려져 랜스돌격의 위력이 크게 반감되는 효과가 있었다. 보병을 상대할 때는 창을 머리 높이로 올려 수평으로 눕혀 적의 머리나 가슴을 겨누었으며, 적과 접근하면 상대 창을 툭툭 때려 견제하다가 온몸으로 찌르는 방식으로 싸웠다.

흔히 알려진 루머 중 하나가 장창으로 방진을 짜면 돌격하던 기병이 우수수 찔려죽는다는 것인데, 당시의 전법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생기는 대표적인 오해이다. 파이크는 6m에 달하는 길이로 4.7m의 당시 기사 랜스와 비교해 길이면에서 우월하여 랜스돌격의 위력인 말의 속력을 상당부분 반감시킬 수 있었기에, 랜스 돌격을 맞기 전에 군마를 저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도 안 죽는 건 절대 아니며, 파이크 방진 측은 5열까지 대기병자세를 취해야 할 만큼 랜스 돌격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기존의 파이크와 폴암들은 군대에서 폐지되었으며, 창은 장교준사관/부사관이 소지하는 지위의 상징으로써 이용되었고, 이런 창을 스펀툰(Spontoon)이라고 불렀다. 길이는 1.8~2.2m 정도.

현대 총검술과 유럽 창술이 관련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초기 총검술은 머스킷의 긴 길이를 이용해 파이크를 대체하는 용도로 쓰여 창처럼 운용했지만, 점차 다양한 동작이 필요해짐에 따라 18세기경 스몰소드 검술을 토대로 재구성되어 근대 총검술이 되었다.[5] 다만 그 이후 총의 길이 자체가 짧아지고 총검술의 교리도 멀리서 찌르는 방식에서 개인의 보호를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변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현대의 총검술은 총 자체를 무기로 본다는 점에서 봉과도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군의 경우 찌르기 위주의 19세기식 근대 총검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다양한 초식(...)을 쓰는 연합군에게 근접전에서 밀리기도 했다.

3. 종류

크게 마상 창술과 지상 창술로 나뉜다.

마상창술은 신(新)아시리아 제국에서 기원전 900년경 세계 최초로 기병을 양성하여 실전에 투입한 것에서 시작되나, 이때는 아직 마상 활쏘기와 마상투창이 기본 전술이었으며 흔히 알려진 중기병 돌격 전술의 기원은 기원전 4세기 사르마티아인이 시초로 추정된다.

지상창술은 방패와 창을 함께 쓰는 경우와 창 하나만을 단독으로 쓰는 경우로 나뉜다.

3.1. 양손 창술

부르는 단어는 다르되 공통적인 자세들이 있으며, 각 자세는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근대 유럽과 일본의 용어를 사용한다.

3.1.1. 보법

기본적으로 왼발이 전방을 향해 앞으로, 오른발은 발꿈치가 왼발 뒤로 가도록 해서 발끝이 오른쪽을 향하게 한다. 90도 각도로 벌린 상태가 된다. 왼발의 발꿈치와 오른발의 발꿈치는 선을 그었을 때 항상 같은 일직선상에 위치해야 한다. 왼발과 오른발은 원래 조금 떨어지는 것이 기본이나, 때에 따라붙기도 한다. 근대 펜싱과 동일한 보법을 지니는데 이러한 보법은 사부리류오와리관류와 같은 일본의 창술 유파들도 똑같이 하고 있으며, 창술에서는 보편적인 보법이다. 이러한 스텝이 정착된 것은 창의 찌르는 무기로써의 아이덴디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측면 이동에는 불리하지만 찌르는 무기의 경우 빠르고 길게 찌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스몰소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찌르기를 중심으로 한 무기들은 모두 이러한 보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보법은 서로 상하관계에 있다. 직선으로 들어오는 적에게 트라이앵글 스텝으로 공격하면 적의 공격은 피하고 나는 산다. 둘 다 트라이앵글 스텝을 취하면 둘 다 공격이 맞지 않는다. 적이 트라이앵글 스텝을 취할 때 내가 볼타를 하면 적은 죽지만 나를 맞추지 못한다. 이러한 특징이 있다.

3.1.2. 기본 자세

3.1.3. 그 외의 자세

유럽에서는 중단/미들가드에서 창끝을 오른쪽/왼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티에르스/콰르트(Tierce/Quarte)라고 부른다. 펜싱에서의 방어 자세를 총검과 근대 창에도 적용시킨 결과. 검술에서의 티에르스/콰르트는 각자의 방향으로 들어오는 베기와 찌르기를 막기 위한 자세이지만 창술에서의 티에르스/콰르트는 중단으로 찔러 들어오는 적의 창을 오른쪽/왼쪽으로 창을 대어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상대의 창은 오른쪽/왼쪽으로 빗겨나가게 된다.

창을 수직으로 세우는 자세가 있다. 창에 대응하기 위한 자세로써 창이 찔러들어오면 대어 옆으로 밀면 그대로 엉뚱한 곳으로 빗겨나가게 된다는 논리. 조금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중세 서양 검술 매뉴얼에는 당당히 삽화로 들어가 있으며 일본의 봉술 유파에서도 창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르친다.

팔상/프라임 자세와 동일하나 창을 머리 뒤로 넘겨서 취하는 자세가 있다. 유럽 파이크 창술에서도 보이고, 일본에서도 보인다. 보법에서 서술한 볼타 자세를 취할 경우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세.

3.1.4. 공격과 방어

칼날이 튀어나온 겸창이나 스피툼이라면 걸기 뿐만이 아니라 찌르면서 칼날로 베어버릴 수가 있다. 또 상대가 창을 빗겨냈다고 하더라도 다시 끌어당기며 칼날로 베어버릴 수 있다. 또 단순히 걸어서 넘어트려도 상대의 다리를 베면서 넘어트리거나 하는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단순한 갈고리는 오히려 손에 잡혀서 자신이 옴짝달싹할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칼날이 튀어나온 종류는 잡을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점에서 보다 안심할 수 있다. 다만 실력이 좋은 사람은 오히려 자기 무기를 일부러 걸어 버텨서 반대로 봉쇄를 당하게 하고 다른 무기로 반격하는 경우가 있다.
총검술에서의 개머리판 사용처럼 창대 끝부분을 이용해 돌려 칠 수 있는데, 창이 길 경우 걸리적거리고, 창끝을 치우면 가장 강력한 방어를 해지하는 셈이므로 선제 공격 용도로는 쓰이지 않는 기술이다. 주로 상대가 창의 간격을 돌파해 접근해오면 그제서야 사용하는 기술로써, 풍전류 창술이나 보장원류 창술에서 해당 예제가 존재한다.

3.1.5. 파지법

기본적인 파지법은 왼손과 오른손 모두 정수(正手)로 잡으며, 왼손이 앞으로 간다. 그러나 창술에 따라 왼손을 역수로 잡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찌르기는 잘 안되나 창을 돌려가며 자유 자재로 사용하고 타격하는 데에 좋다. 프라임 자세에서 창을 머리 위로 아주 들어 올릴 경우에도 이렇게 잡는다.

쿠리츠키/슬립 스러스트를 할 때에 왼손은 단지 느슨하게만 잡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찔렀을 때에는 왼손의 손등이 위로 오도록 손을 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끝이 찌르면서 왼쪽으로 가버리게 된다. 걸레를 안쪽으로 짜는 것과 비슷한 손동작이다. 올바르게 했을 경우 창끝이 원하는 곳으로 딱딱 가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창대가 부들부들 떠는 것도 볼 수 있다. 힘이 완전히 제대로 창끝으로 전달되었다는 신호. 이렇지 않을 경우 물체가 제대로 뚫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창의 어디를 잡아야 하는가는 그때그때 다르다. 양가창법이나 파이크창술, 오와리관류등은 오른손이 창끝을 잡도록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뒤로 자루에 여유를 주고 잡기도 한다. 또 오른손으로 창끝을 잡도록 하는 유파라 하더라도 적이 근접하거나 기타 여러 상황에는 거리낌없이 창을 크게 뒤로 빼서 잡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파지법은 하나의 원칙적 경향만이 있을 뿐, 세부 사항은 각자 해봐서 자신에게 맞게 정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3.1.6. 영상 예제


풍전류 창술. 가장 기본적이고 세계적으로도 공통되는 창술의 원리를 선보인다.


가시마 신류 창술 강좌. 특유의 창 파지법, 오토나시노 카마에, 때리기의 활용 등의 특색을 주목하자.


가토리신토류의 창술. 창과 도검이 붙었을 때에 발생하는 하시카카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제압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일본 흥복사 봉납연무에서 시연된 창술 유파, 각각 오와리관류, 사부리류, 호소인류 다카다하 이다. 위 항목에서 설명된 각 유파별 특징을 주목하여 보도록 한다.


근대 유럽의 창술/총검술 체계 설명.

3.2. 훈련 방법과 도구

4. 실전

4.1. 장점


Academy of Historical Fencing의 집단 스파링


HEMA의 창 대 소드 앤 버클러 스파링



Academy of Historical Fencing의 개인 스파링.

1 대 1과 집단전투를 가리지 않고, 창은 백병전에서 제일 유용한 무기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냉병기가 주무기였던 시절에는 전쟁터에서 검은 보조무기였고, 주무기는 주로 창이었다. 서로 다른 무기로 개인간에 대결을 하더라도 길이가 긴 무기라, 거리나 간격의 이점이 크기 때문에 실력차가 확연하지 않으면 유/불리가 눈에 띠게 두드러진다. 개개 동호회에서 창을 상대로한 이종무기 대결 스파링이 많이 치뤄지고 또 유튜브를 통해 공유도 많이 된 상태인데, 그나마 방패라도 들어야 대처가 가능하지만, 길이가 짧은 단병기들로는 창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여러명이서 싸우게 된다면, 그 숫자가 3~5명 정도에 대열이 그리 촘촘하지 않더라도, 창을 든 쪽이 훨씬 유리하게 싸움을 전개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4.2. 위치와 한계

창술은 스몰소드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전진스텝과 찌르기가 중심이다. 이 때문에 찌르기 이외에는 별다른 효과를 가지기 어려운 무기의 특성과 한계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또한 스몰소드가 그러한 것처럼 공격과 방어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두박자 방어, 리포스트(Reposte)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존재하는 특성이다.

마찬가지로 그래서 측면으로 이동하는 상대에게 대응이 어렵다. 특히 창을 주로 쥔 손의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공격해 들어오면 대응이 무척힘들다. 가령 창잡이가 오른손 잡이인데, 상대가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창잡이의 왼쪽으로 이동해온다면 창잡이는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계속 따라서 돌아가야된다.

또한 창이라는게 길고 가볍지만, 찌르는 날도 작은데다, 날 이외에 다른 부속물이 없다보니, 상대가 창대를 붙잡거나, 제압하며[8] 공격을 들어올 경우 창대의 중간부위 만으로 상대를 저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대처하기 어렵다.[9] 특히나 상대가 갑옷과 방패 등으로 무장을 했다면, 창으로 찌르더라도 단 번에 제압되지 않기에 상대가 창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파고들어올 수도 있다.

전열을 짤 경우 이러한 단점은 상당부분 상쇄돼지만, 측면이나 후방에서 진입해오는 적이 창날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면, 대처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키노스케팔라이 전투, 피드나 전투 등에서 사리사를 든 마케도니안 팔랑크스가 검을 든 로마군에게 크게 패배하기도 했다. 위 장점 항목의 동영상에서도 나오는 장면으로, 창날이 잡히거나, 한 명을 찌르고 나서 창날을 못빼게 될 때 단병기를 든 상대방 여럿이 창수 한 명에게 몰려들어와서 각개격파를 하기 시작하면 딱히 대응방법이 없고, 동료창수도 도와주기 힘들다. 정면에서라면 창끝이 집중되어 저지를 받으니 이런 장면이 잘 등장하지 않지만, 측면이나 후방에서는 창끝이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단병기에 비해서 간격이나 거리의 이점이 커 전투에서는 유리했기 때문에 너무 무겁고 긴 창은 사장되었지만, 비교적 길이가 짧은 창은 사리사가 사라진 이후에도 많이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던 대열재정비나 대처가 힘든 측면이나 후방에서의 접전에서 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폴 암과 같은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창이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갑옷이 크게 발달하였고 개개인 단위의 전투가 절정에 달했던 유럽의 중세시기나 일본의 14세기에 들어서는 나기나타, 글레이브, 할버드, 폴액스 등이 전쟁터에서 대활약을 했다. 이들 무기는 공통적으로 날이 일반적인 창보다 크고, 자루는 보다 짧아, 창날 안쪽으로 파고들기 힘들고, 또 상대방이 날 안쪽으로 파고들더라도, 베기와 찌르기를 융통성있게 구사하며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도검이나 단병기는 물론이거니와, 개별적으로 싸울 때는 창과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곤 했다. 특히 폴액스나, 할버드 같은 경우 중량도 더 나가기 때문에 낙차를 이용하여 내려치거나, 횡으로 공격할 경우 갑옷 입은 사람을 공격할 때도 뛰어났다.


서양검술단체 MEMAG의 다양한 스크립트에 의한 폴액스술 재현.


가토리신토류의 나기나타술 예제. 7분 54초부터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창에 갈고리를 달거나 칼날이 옆으로 튀어나오는 무기가 등장한 적도 있다. 중화권에서는 극(무기)으로, 유럽권에서는 폴암으로 구분했다.

5. 현재

현대에는 기본적으로 그놈의 간지가 안난다는 편견과 엘리베이터 문짝에 걸리는 휴대성 때문에 검술보다 인기가 없으며 검술보다도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창술 그 자체에 대한 복원보다는 한스 탈호퍼, 피오레 디이 리베리 등의 마스터들의 저작에 수록된 스크립트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창술을 보조적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복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검술, 그중에서도 평복 전투를 전제로 하는 blossfechten 이며, 갑주 검술이나 창술은 보조적이고 마이너한 종류이다. 그에 비해 파이크 창술은 복잡한 무술적 원리를 내포하지 않았으며 제식훈련에 대부분의 훈련 중점을 두므로 전쟁 재현을 하는 리인액터들이 행사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시연한다. 18~19세기의 부사관용 단창인 스펀툰(Spontoon)도 마찬가지 처지이며, 서양 창술의 처지는 아직 무술적 복원이 아니라 형태만을 재구성하여 복원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우슈 표연의 한 종목으로써 스포츠화가 완료된 상태. 과거 창술의 기술들이 전부 실전되었다고도 하는데 이는 대부분 근거없는 소리이다.

일본에서는 창술을 가르치는 고류 유파들이 일부 현존하고 있으며, 아예 창술을 주로 하는 류파로는 풍전류, 호조인류, 오와리관류, 사부리류등이 있으며 그밖에도 가토리신토류, 가시마신류에도 창술이 전해내려오고있다. 다른 지역의 창술이 실전되거나, 복원되고 있으며, 혹은 실전성을 잃어버린 것에 비해 과거의 훈련 시스템과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지구상에서도 오직 일본의 창술만이 가진 장점. 다만 고류검술도 수련자가 별로 없는 현 상황에서[10] 창술은 더욱 마이너한지라 창술 전문 유파들은 처지가 별로 좋지 않다. 보장원류의 경우는 보존회를 결성해 유지해 나가고 있으며, 오와리관류의 경우는 전통적인 부분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현대적인 커리큘럼을 새롭게 도입하고 고류 특유의 딱딱함과 보수성을 어느정도 배제하면서 어린 아이들이나 성인 수련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으로, 이들 유파는 지역적인 토착성과 더불어 현대의 사회환경에 대해 알맞게 변화를 하여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던 축에 속한다.

6. 관련 항목



[1] 권법은 무기술을 익히기 전 기본을 닦는 용도로, 권법을 몸에 익히면 자연스레 무기술에 응용할 수 있게 된다는 개념.[2] 길이만 3m나 되는 긴 창이다.[3] 이런 창은 '호코(矛)'라 불린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4] 물론 '일본에 기병이 없었다'라거나 '일본 기병은 말에서 내려 싸웠다' 등의 이야기 또한 확실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일본 군마가 작다 하여 충격력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 또한 어폐가 있다'라는 주장(전국시대 당시 일본인의 평균 신장이나, 비슷한 크기의 몽골 군마 등을 근거로 들어 일본 군마의 충분한 충격력을 이야기하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일본 열도 내에서의 기병 운용이 서양에서의 그것처럼 규모가 크고 활발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일본의 나가에야리와 야리부스마 등이 대 기병용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5] 스텝이라던지 휘두르는 것, 내지르는 것등에서 많이 차용했다.[6] 다만, 헤타이로이는 언더핸드보다는 상술돤 투핸드 방식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이 시대에는 아직 등자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7] 창날에 소켓이 붙어있어 나무 자루를 연필처럼 깎고 창날을 끼운 다음 못으로 고정하는 방식. 흔히 창 하면 떠올리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방식이다. 만들기가 쉽지만 소켓부위의 자루가 부러지는 것이 단점. 서양에서는 베고 때리는 폴암의 경우 확실히 문제가 되었으므로 랑게트라는 보강 철판을 자루로 연장시켜 강도를 강화하는 대책을 썼었다.[8] 무기로 창대를 눌러버리면서 파고 들어 공격하는 것을 하시카카리(橋かかり)라고 한다[9] 가토리신토류등에서 이러할 때를 대비한 기술이 있지만, 창의 근본적인 약점이라 온전히 다 극복하기는 힘들다[10] 현재 일본의 고류 유파는 강해지고 싸우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전통 문화의 보존이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면이 매우 강하고, 기술 유출에 민감해서 상당히 폐쇄적인 성향을 띄는데다가 도장의 수 역시 적고, 그마저도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신규 수련자가 유입되기에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수련의 형식 역시 시참(베기술)이나 대련과 같이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의 비중이 적고, 형 수련 등 다소 지루하다고 느끼기 쉬운 부분의 비중이 높다보니 젊은 수련자들은 특히 고류가 고리타분하다고 느끼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