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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15:09:47

총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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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오노파, 미조구치파, 나카니시파 등의 분파를 포함하며 후에 북진일도류, 일도정전무도류 등의 계파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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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류 무술과 현대 무도를 나누는 기준점은 메이지 유신(1868)으로 여겨지나, 창시가 그 기간에 걸쳐있거나 그 이후지만 고류의 형식으로 수련되고 있는 경우 여기에 넣었다.
일본 고류 무술의 유파들의 경우 창시 세기별로 분류해 외래어 표기법/일본어 기준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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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도(銃劍道)
구 일본군의 총검술 체계를 바탕으로 스포츠화된 현대 무도.

1. 개요2. 실전성?3. 중학생 무도 과목 중 하나로 포함?4. 관련 문서

1. 개요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일본군에는 다른 전근대 군대와 마찬가지로 총검술이 없었다. 유신의 혼란을 거치며 급히 서양 군비의 우월함을 몸으로 느낀 일본은 총검술을 채용하고자 하였으나 구 무사 출신이 많던 유신 초기의 일본군에서는 검술의 우위를 주장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이에 총검술과의 대련을 통해 우위를 증명함으로써 총검술의 채용이 결정되었다.

이 총검술의 우위를 주장하는 자는 프랑스에 유학갔다 온 사이토 도쿠아키(斎藤徳明)였다고 하며, 검술의 우위를 주장하던 자는 무진전쟁에서 활약한 관군의 야마지 모토하루(山地元治) 였다.[1]

초창기의 총검술은 서양식이 아니라 일본의 창술을 변형시켜 적용한 것이었으며, 보장원류, 사부리류, 관류 등의 창술의 기술을 적용한 것들이었다. 1880년 메이지 덴노가 토야마 육군병학교를 방문했을 때 이루어진 시범에서는 목총의 길이가 2.2m, 창술용의 호구를 사용하고, 창술 특유의 「繰り突き」(쿠리츠키)를 자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기술은 우리나라에는 당구치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 창을 쓸 때 왼손을 느슨하게 잡고 슬라이드하듯이 찔러 최대의 리치를 내는 찌르기 방법이다. 완전히 찔렀을 때에는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맞닿는다. 2.2m의 목총에 이런 창술스러운 방식으로 싸웠다면 장검이 이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리치, 레버리지, 컨트롤 모든 면에서 불리하다.) 실제 총검들은 착검시 170cm 전후쯤 되는 것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경향이었으므며 4~5kg의 무게 때문에 창처럼 운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1884년 8월에 프랑스에서 군사 고문으로 라뷔에 중위가 오자 그는 이러한 일본식 창술과 다를 바 없는 총검술을 폐지하도록 하고 프랑스식 총검술을 가르쳤다. 이후 1889년 출간된 교범에서는 프랑스식의 내용을 갖추고 있었으나 전통주의자로 1890년 취임한 토야마 육군병학교 교장 오쿠보 하루노(大久保春野)[2]는 프랑스식을 점진적으로 몰아내가려는 의사를 보였고, 1892년 11월에는 토야마 육군병학교 체육과장이자 마찬가지로 전통주의자이고 츠다잇텐류 계승자인 츠다 고주(津田教修) 대위가 검술교육의 전반적 개선에 나서면서 총검술도 개정하였으며 다시 목총과 창술호구를 사용한 총검술로 변화시켜나갔다. 이것이 구일본군 총검술의 기본이자 현대 총검도의 근원이 된다. 당시의 기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이후 여러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 일본군의 총검술은 매우 단순화되어, 1915년 개정된 교범에서는 단 3가지의 기술만이 남게 된다.

이 단순화된 내용이 바로 평시무도(平時武道) 총검도의 바탕이 된다. 평시무도라는 건 말 그대로 민간용의 무도를 말하는데, 엄연한 군용무술인 총검술이 민간계에 풀린 것은 1925년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에서 총검술을 독립과목으로 인정하여 교습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총검도라는 명칭은 1940년대에 등장하였고 1941년에는 대일본총검도진흥회가 창설되었으며 이게 현대의 총검도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이 총검도를 이용해 국방무도협회에서 민간인들에게 죽창술을 교습하기도 했다.

이런 단체들은 모두 국민총동원을 위한 단체였으며 일본군의 백병돌격에 노이로제가 걸린 미군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1945년 패전하면서 모든 일본의 무도가 금지되는 가운데 총검도도 이것을 피해갈 수 없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무도들이 부활하면서 사단법인으로써 출발한 것이 바로 전일본총검도진흥회.

장비는 30식 아리사카 총검을 착검한 38식 소총을 상정한 166cm(초딩 133cm)의 목총, 검도 호구에 어깨와 팔 보호대가 붙은 호구, 그리고 30식 아리사카 총검을 착검하지 않고 손에 들고 싸우는 것을 상정한 단검도(短劍道)가 포함되어 있다. 단검도에서 쓰는 것은 길이 53cm의 짧은 죽도이다. 복장은 전통적인 하카마와 그냥 현대적인 바지가 있다. 경기는 사방 10m의 경기장에서 3판2승제로 치루며, 득점포인트, 즉 격자부위는 손목, 머리, 목, 가슴과 배 정도이다. 단검vs총검 대결도 한다.


(총검술 기술 시연)


(단검도 시합 영상)


(총검 vs 단검)

2. 실전성?

총검도의 근본이 된 일본군 1915년 교범은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에서 이미 큰 좌절을 겪은 바 있었다. 죽도와 호구를 이용한 검술도 그렇지만 근접전이나 몸싸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총검 끝으로 투닥거리기만 하는 총검술은 실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전혀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 점 때문에 일본군은 1934년 근접격투와 개머리판 기술을 포함한 검술교범을 급히 개정 배포했고 몸싸움과 이종검술을 포함한 실전적인 훈련으로 전환했으나, 평시무도 총검도에서는 이런 내용이 반영되지 못했다.

이런 점 탓에 1915년 교범의 내용대로 찌르기만이 인정되고, 베기나 개머리판은 반칙이다. 격자부위는 목과 가슴, 배만 허용되므로 얼굴도 찌르지 않는다. 왼손은 목총에 백색줄로 표시가 되어 있을 정도로 잡는 위치가 정해져 있으니 오른손과 가깝게 잡아서 리치를 늘려볼 궁리도 안된다. 상대의 견제와 방어를 넘어 득점부위를 찔러주면 이기는, 명실상부한 스포츠가 된 것이다.

그래서 호신을 목적으로 하거나, 전통문화의 향유를 추구하는 현대 무도 시장에서는 심각하게 외면받았다. 그래서 민간인들에게는 전혀 인기가 없다. 애초에 민간 단체화된 이유가 국민들에게 총검술을 가르쳐 본토결전을 시키려는 의도라 동기도 불순하다. 순수하게 재미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호구를 쓰고 목총을 드는 것 자체가 전통무도라는 개념에 익숙한 일반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색해 보이는데다, 경기 양상조차 겉보기에도 심심해서 이렇다 할 임팩트도 안 보인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총검도 수련자는 자위대원들이지만, 이미 자위대는 과거의 구일본군도 1934년의 총검술 교범 개정을 통해 실전적인 훈련으로 전환했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인지 찌르고 베고 차고 밟는 실전적인 현대 총검술을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그렇기에 1915년 교범의 내용에 기반하는 총검도를 수련하고 있는 자위대원들도 실전적인 이유로 총검도를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구일본군의 근대 총검술을 계승한 자국의 전통적인 군대의 무도라는 측면 탓에 총검도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총검도 대회를 열면 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자위대원들이 대부분일 정도.

일부 평화주의 운동가들이 총검도의 확산에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이것이 구 일본군의 유산이자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이며,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인명살상용 훈련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그래도 듣보 수준인데 반대운동 또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3. 중학생 무도 과목 중 하나로 포함?

2017년 아베 신조 내각의 중학교 학습지도 요령의 무도 선택 과목 중 총검도가 포함되어서 군국주의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도 모자라서 아베 정권은 교육에 관한 칙어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 관련 문서



[1] 야마지 모토하루는 무진전쟁의 도바 후시미 전투에 참전하여 용맹을 과시하였고, 이 도바 후시미 전투는 일본 전쟁사상 몇 안되는 검술과 장검이 주력으로 이루어진 전투였다. 무진전쟁은 도검 백병전이 심심찮게 일어났고, 그런 실전경험 속에서 살아온 그가 총검을 불신하고 장검을 쓰는 것을 선호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최종계급은 육군 중장. 1897년 56세로 사망.[2] 바로 남한 대토벌 작전의 총지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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