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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5:13:45

김강률/선수 경력/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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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률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등번호 63번
김창희
(2003~2005)
김강률
(2007~2008)
이재학
(2010~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19번
오현택
(2010)
<colbgcolor=#ed1c24><colcolor=#fff> 김강률
(2011)
김창훈
(2012~2014.7.23.)
두산 베어스 등번호 20번
유재웅
(2007~2011)
김강률
(2012~2015)
안규영
(2016~2017)
두산 베어스 등번호 18번
성영훈
(2015)
김강률
(2016)
조승수
(2017)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홍상삼
(2016.9.4.~2016)
김강률
(2017~2024)
결번
}}} ||
김강률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6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8 KBO 퓨처스 북부리그 최우수 평균 자책점

파일:일구상 로고.jpg 2017 일구상 의지노력상
}}} ||

1. 개요2. 두산 베어스
2.1. 2007 시즌2.2. 2008 시즌2.3. 상무 피닉스 야구단2.4. 2011 시즌2.5. 2012 시즌2.6. 2013 시즌2.7. 2014 시즌2.8. 2015 시즌2.9. 2016 시즌2.10. 2017 시즌2.11. 2018 시즌2.12. 2019 시즌2.13. 2020 시즌2.14. 2021 시즌2.15. 2022 시즌2.16. 2023 시즌2.17. 2024 시즌2.18. FA
3. 두산에서의 기록
3.1. 투수3.2. 타자

1. 개요

김강률의 두산 베어스 선수 시절을 서술하는 문서다. 2007년에 입단한 이래 18년 동안 두산의 필승조와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2. 두산 베어스

2.1. 2007 시즌

LG가 1차 지명에 실패 하면서 200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결국 두산 베어스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게 되었다. 직구는 좋았으나 변화구가 영 별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2.2. 2008 시즌

9월 5일 처음 1군에 데뷔했지만 만루에서 강정호에게 3루타 싹쓸이 타점을 허용하고 평균자책점 36.00만 기록하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2.3. 상무 피닉스 야구단

선발로 뛰면서 2010년 대륙간컵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기도 했다.

2.4. 2011 시즌

복귀해 불펜 투수로서 노경은과 함께 활약, 일명 '강경 듀오'로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며 어수선했던 2011년 두산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5. 2012 시즌

전년도의 활약과 어린 나이, 군 문제 해결 등으로 두산에선 기대를 많이 걸고 있었다. 개막 엔트리 진입에는 실패했고 시즌 중반에 합류했는데, 시즌 후반부터는 아예 핵심 필승조가 되었다. 9월 8일 경기에서 8회부터 나와 3이닝을 혼자 막으며 무너진 불펜진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다만 경기 기복이 좀 심한 것은 단점. 역대급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0회초 무사 2, 3루에서 팀의 5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첫 타자 문규현은 2구만에 2루 땅볼로 잡았으나 다음 타자 손아섭의 번트 타구를 잡으려다 1루수 오재일과 충돌해 넘어졌고 넘어진 와중에도 1루로 송구했으나 송구가 빠져서 순식간에 2, 3루 주자가 모두 홈인, 스코어는 8:5에 주자 1, 3루를 만들고 말았다. 후속 타자 김문호홍성흔을 잡아내며 자신의 자책점은 없었다. 김강률은 이날 1이닝 10투구수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이날 스코어 8:5로 패하였으며 팀이 1승 3패로 탈락하는 바람에 이날의 경기가 김강률이 등판한 2012 준플레이오프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6. 2013 시즌

이번에도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5월 28일 1군에 합류했다. 필승조는 아니고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 많이 등판했는데, 간간이 보여주는 공심기 쇼와 나로호 발사는 여전했으나 투구수만 적정선에서 끊어주면 괜찮은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그런데 7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 더스틴 니퍼트의 6이닝 1실점 호투로 두산 베어스가 스코어 9:1로 크게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8회에 등판, 투아웃은 잘 잡은 후 김상수에게 안타를 내주더니 볼질이 시작되며 주자를 차곡차곡 쌓은 후 밀어내기까지 허용한 후 강판당했다. 교체된 투수 이정호이승엽에게 만루홈런을 맞아서 경기는 순식간에 9:6으로 치열해졌다. 7월 25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원정경기에서는 두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기록했지만 김민성에게 초구 솔로 홈런을 허용한 뒤 2연속으로 볼넷을 던지자 정재훈과 교체되었다. 다음 타자인 허도환이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며 2사 만루가 되었지만 문우람을 1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자책점이 늘어나지 않았다.

2.7. 2014 시즌

8월 2일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예고되었지만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경기가 연기되어 선발 데뷔가 무산되었다. 다음 날 선발은 더스틴 니퍼트.

이후 8월 4일에 다시 선발로 예고되었지만 이날 경기도 우천으로 순연되었다.

8월 8일에 드디어 선발로 첫 등판을 했지만 채 2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4실점하며 강판되었다. 성적은 1⅓이닝 4실점(3자책). 팀은 등판하는 투수마다 실점을 하며 15:10으로 패배했다.

2.8. 2015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투구폼을 노경은과 흡사하게 백스윙을 매우 간결하게 고쳤다. 구속은 여전한데 이 투구폼이 의외로 제구력을 잘 잡아서 김태형 감독이 마무리 후보로 김강률을 낙점했다. 결과적으로 마무리는 윤명준으로 확정되었지만 우완 셋업맨 보직을 차지했다.

3월 14일 시범경기 kt wiz전에서 던지는 모든 직구가 전부 153km/h 이상에, 최고 구속 156km/h라는 강속구 쇼를 보여주면서 삼자범퇴로 세이브를 올렸다. 캐스터와 해설은 처음엔 스피드건이 고장난 거 아니냐며 의심하다가 고장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자마자 굉장히 놀라워했다. 파이어볼 피칭 영상 경기 후 조범현 감독은 "치지 못할 공을 던지는 건 반칙이다"라며 립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다. 본인은 아직 모자라다고 생각하며 최종 목표는 국내 투수 최초의 160km/h 공을 던지는 것이라고.

3월 28일 개막전에서 8회 등판해 볼넷을 하나 내 주었지만 나머지 세 타자를 모두 아웃 처리하며 깔끔하게 홀드를 챙겼다. 다음 날에도 8회에 등판해 이번엔 삼자범퇴로 홀드를 또 챙겨갔다.

4월 24일 KIA 타이거즈전 8회 초 등판하여 1이닝 1실점(무자책)을 기록했다. 이 날 경기는 시즌 초 슬라이더의 제구가 잡히면서 힘 있는 패스트볼과 함께 무시무시한 위력을 과시했다. 내야 수비진의 잇따른 실책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뜬공, 차일목을 상대로 바깥쪽 패스트볼로 루킹 삼진을 잡아내고, 투수 앞 땅볼로 이닝을 마무리하여 어느 때보다 자신 있는 투구를 선보였다. 이 날 중계를 맡았던 전직 두산 감독 김진욱 해설위원은 '지금 같은 위력이라면 두산의 마무리를 맡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평을 내렸다. 영상

4월 29일 9회에 나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팀이 9회말 6점을 뽑아내는 대역전승을 거둬 데뷔 첫 승을 따냈다. 이후로도 행운이 따라서 3승까지 거뒀고 드디어 포텐이 터지나 싶었지만...

5월 2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유네스키 마야의 후속 투수로 등판해 김상수를 범타 처리한 후 갑자기 쓰러졌다. 즉시 이송되었는데, 김태형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아킬레스건이 끊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기사 4일에 정밀진단이 예정되었고, 결국 수술 진단을 받아 시즌 아웃되었다. 이 날까지 김강률은 3승 1패 ERA 2.70이라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는데, 결국 가장 좋은 활약을 하던 중 시즌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팀은 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삼성 라이온즈를 연달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해 김강률에게는 더더욱 아쉬운 시즌이 되었다.

2.9. 2016 시즌

4월 1일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7회말 2아웃 상황에 함덕주의 뒤를 이어 등판,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홀드를 챙겼다. 다만 구속이나 구위는 다소 부진했던 시범경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중.

4월 19일 전까지는 꽤나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앞으로는 더욱 많이 기용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4월 19일 박경수를 상대하면서 공 4개를 던졌는데 모두 볼로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게 되면서 역시나 제구적인 부분에서 조금 미스가 났음을 보여준다.

이후 7월 10일 경기에서 2군에서 1군으로 다시 올라왔지만 그렇게 좋은 투구를 하지 못했다.

7월 23일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조기강판 된 선발 허준혁 다음으로 등판했다. 3-3 동점에 올라와 2⅔이닝 노히트 호투를 펼쳤지만 뒤에 나온 투수들이 무너져 승리를 얻어내지 못했다.

7월 26일 경기에서는 타자를 볼넷으로 보내고 병살타를 유도했으나 또 볼질로 만루를 만들고 이택근을 땅볼로 잡아냈다.

8월 3일 볼질 끝에 ⅔이닝만에 강판된 진야곱에 이어 등판, 1회 만루위기를 막고 2회와 3회를 퍼펙트하게 막았으나 4회 제구가 급격히 흔들리며 양석환에게 투런 홈런을 맞는 등 3실점하고 강판당했다.

한동안 잔부상으로 말소되어 있었다가 NC 다이노스와의 201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5점대 방어율을 찍은 2014년 다음가는 커리어 로우 시즌이었는데도 엔트리에 포함되어 상당히 의구심을 자아냈다. 김강률은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팀은 4연승으로 우승하여 반지를 공짜로 날먹했다. 사실 2016년 한국시리즈 내내 불펜은 이현승, 이용찬 빼고는 다 병풍이었지만.

2.10. 2017 시즌

파일:2017082401002027300149201_20170823011214672.jpg
2017년 8월 22일 문학 SK전에서
타자로 나와서 안타를 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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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

2.11. 2018 시즌

파일:18김강률.jpg

지난 시즌에 이어서 팀의 마무리를 맡게 될 전망이다. 이용찬은 선발로 갔고 함덕주가 앞에서 셋업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3월 24일 이원석에게 2타점 적시타[1]를 내주며 1⅓이닝 2실점했다.

3월 25일 1점차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올렸다.

3월 28일 2점차에서 등판, 1실점을 했지만[2], 변화구 대처가 좋은 편인 한동희를 직구로 루킹 3구 삼진으로 잡아내며 2세이브를 기록했다.

4월 8일 9:6으로 앞선 9회초에 나와 무려 1이닝 4실점을 기록하며 빗속에서 완전연소했으나 9회말 팀이 상대 실책을 놓치지 않고 2득점해 얼떨결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11일 7:5로 앞선 9회말 등판해 김상수를 좌익수 뜬공으로 잡았으나 이원석에게 솔로 홈런을, 다린 러프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강판되어 곽빈과 교체되었다. 곽빈강민호를 삼진으로 잡고, 배영섭에게 다시 안타를 내주며 2사 1,2루에 몰렸으나 김헌곤을 3루 땅볼로 처리하며 데뷔 첫 세이브를 올려준 덕에 자책점은 추가되지 않았다. 그러고도 방어율이 10.38이니 이닝당 주자 하나가 아니라 아예 점수를 하나 이상 주고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피안타율은 4할 초반, WHIP는 2점대 중반으로 마무리로서가 아니라 그냥 1군 투수로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니 두산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

결국 다음날 구위 회복 차원에서 1군에서 말소되었다.

4월 23일 다시 1군으로 등록, 김태형 감독은 함덕주와 더블 스토퍼로[3] 기용하겠다고 하겠지만 복귀전,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화려한 불쇼를 선보이며 당분간 필승조로 기용하기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월 3일 kt wiz와의 경기에 출장해 8회와 9회 2이닝을 1볼넷 4삼진으로 틀어막았다. 팀은 연장 접전 끝에 패배했으나, 김강률은 부활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어 5월 5일에 마무리로 등판해 1이닝 1삼진 1피안타로 세이브를 챙겼다. 다음날인 5월 6일에도 팀이 크게 앞서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으나, 9회를 8구로 매조지했다. 김강률의 분명한 반등세에 팬들도 소년 가장 불펜진에게 누적되던 부담과 피로를 줄일 수 있다고 반색하는 중.

1군 등록 이후 5월 20일까지 12경기에서 1세이브 1홀드 12⅔이닝 평균자책점 2.84로 호투했다. 이어 6월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곽빈이 부진 끝에 이탈한 불펜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7월 들어 피안타와 피홈런 모두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다시 털리고있다. 4점대 중후반까지 내렸던 ERA가 다시 5점대 중반까지 폭등한 상태.

매 달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3~4월 ERA가 10.50에 피안타율이 4할대를 찍을정도로 부진했다가, 5~6월 두 달동안 ERA 2.00을 찍는 솔리드한 모습으로 부활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7월 ERA가 9.95를 찍을 정도로 다시 페이스가 처진 상태.

8월 초반에도 흔들리다가 아시안게임 브레이크를 앞두고 안정감을 찾았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이후 등판하는 경기들마다 영 좋지 않은 피칭을 보여주면서 또 롤코를 타고 있다.

9월 들어 다시 작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월 15일 NC전에서 본인이 자청해서 길게 던진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밸런스가 잡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특히 9월 25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3:2로 살얼음판 리드상황인 6회 무사 1,3루에 위기에 등판하여 김민성고종욱을 삼진 처리하였고 동시에 샌즈의 도루까지 저지하여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날 성적은 3이닝 5삼진 무자책. 김강률의 호투에 타선도 7회말 메가베어스포가 폭발하였고, 결국 홈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9월 29일 LG 트윈스전에도 7회 초 1사 만루에서 올라와서 위기 상황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8회 초도 깔끔하게 막아주었고, 타선도 역전에 성공하여 8:9로 승리, 오랜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작년의 혹사로 인해 초반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후 제 페이스를 찾으며 필승조로서 두산의 정규 시즌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0월 23일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오른발 아킬레스건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어서, 다음 날 한국으로 귀국해 정밀 검진을 받게 되었다. '두산 대형 악재' 김강률, 아킬레스건 손상…귀국 후 정밀 검진 결국 귀국 이후 정밀 검진에서도 아킬레스건 파열 증세를 보여 한국시리즈 등판은 무산되고 26일 수술을 받는다. 내년 상반기까지도 보기 힘들 것으로 보이니 개인 입장에서도 팀 입장에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결국 두산 베어스는 한국시리즈 첫 경기부터 김강률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며 투수진 붕괴로 패배했다.

또한 그 여파로 2018년 곰들의 모임마저 취소되었다. 그라운드 공사 때문이라고 하지만 믿는 팬들은 거의 없다.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해서 사실상 취소했을 가능성이 높다.

2.12. 2019 시즌

6월까지 라이브 피칭을 하는 등 순조롭게 재활을 이어가던 와중 7월 25일 오전 단거리 러닝을 하다가 우측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다. 오른발의 누적된 부상으로 인해 사실상 시즌 내 복귀는 힘든 상황이며 2019 시즌에는 사실상 재활로 시즌을 종료할 것으로 보인다.

부상으로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고 시즌이 종료됐다. 긴 재활 끝에 몸상태가 회복되며 정상적인 훈련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잠실 마무리 캠프에 합류했고, 내년 시즌 개막에 복귀가 가능할 전망이다.

2.13. 2020 시즌

파일:20김강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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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복귀 후 성공적인 연착륙 시즌.

2.14. 2021 시즌

파일:경기를 마무리하는 률타니 쇼헤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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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즌 평균자책점 2점대, 20세이브를 기록하며 표면적으로는 커리어하이 시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롤러코스터[4] 그 자체. 그럼에도 1년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시즌.

2.15. 2022 시즌

파일:22김강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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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에는 극강의 모습을 보였지만 6월달 부상에 빠진 후 시즌말미에 복귀하였다.

2.16. 2023 시즌

파일:2023김강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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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에도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막판에 반등하는데 성공하였다.

2.17. 2024 시즌

파일:김강률-202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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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투마카세 6인방[5] 중 한축을 맡으며 필승조 역할을 충실히 실행한 시즌.[6][7] 시즌이 끝난 후 FA 권리를 행사해 LG로 이적하면서 이 시즌이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2.18. FA

선수 생활 장장 18년 만에 FA 자격을 얻으며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1988년생으로 나이가 상당히 많은 편이나 갖은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준필승조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었고, 35세 이상의 신규 FA 선수라 C등급[8][9]이라는 점 덕에 불펜 보강이 필요한 팀에게 매력적인 매물일 수도 있겠다. 다만 두산 베어스 팬들은 대체로 팀에 고액 연봉을 받는 베테랑이 너무 많고, 젊은 불펜 투수들이 많이 성장한데다 불펜에 거금을 쏟아붓는 게 리스크가 상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박세혁처럼 교감 없이 보내주거나 잔류시킬 거면 유희관처럼 싸게 후려치거나 홍건희처럼 옵션을 덕지덕지 붙이라는 반응이다.

두산이 스토브리그 초반부터 코치진을 대거 물갈이하고 허경민을 옵트아웃으로 kt wiz로 보내주는 등 본격적으로 리빌딩 계획을 짜느라 FA 관련 소식은 다소 조용했는데, 11월 13일 기사를 통해 두산 프런트는 외부 FA 영입 없이 내부 FA 단속에 집중할 것이라는 보도를 하면서 김강률을 잡을 계획이 있음을 천명했다. 2025 시즌부터 세대교체를 반쯤 선언한 상황에서 이런 기사는 다소 이례적인데, 김강률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베테랑이 팀의 중심을 잡아줄 구심점 역할로서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런 보도를 낸 것 같다.

21일 두산에서 김강률 측에게 금액을 제시했다고 밝혔으며, 계약금보다는 계약 기간과 관해 좀 더 협상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세부 옵션에서 조율이 필요한 듯하다. #[10] 이적은 다른 구단들은 대부분 이미 샐러리 캡이 꽉 찬 상태이므로 김강률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인 탓에 거의 가능성이 없어보였고 사실상 두산의 단독 입찰이 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그럼에도 두산 프런트의 제의가 못마땅한지 협상이 질질 끌리며 12월로 넘어간다.

결국 12월 7일, 유영찬이 수술로 이탈하며 추가적인 불펜 보강을 원했던 LG 트윈스가 김강률에게 3+1년에 10억 원대 중반 금액을 오퍼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LG 이적이 유력해졌다. # 이렇게 된다면 LG는 지난 2017년 11월 김현수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두산 출신 FA를 영입하게 되는 것이다.[11]

12월 9일 야구부장의 라이브 방송에 따르면 시장이 열린 직후부터 LG 프런트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 맞지만 처음에는 염경엽 감독이 "굳이 추가 영입이 필요하지 않다."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영찬의 부상 및 수술 이후 상황이 급변하며 현장에서도 필요성에 동의해 영입이 타진되었다고 한다.

한편 두산은 상술했듯 계약 기간[12]과 관해 협상을 계속 이어갔다고 하며, 총 금액은 LG 측이 제시한 연봉과 큰 차이가 없으나 역시나 셀러리 캡[13]이 발목을 잡았고,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투수진 세대 교체[14], 보호명단 등의 문제로 인해 김강률에게 긴 계약기간을 제시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결국 홍건희처럼 옵션을 붙이면서 협상에 이견 차가 난 것으로 보이며 두산 측은 LG와 비슷한 금액대에 2+2년 계약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두산 팬들은 딱히 아쉽다는 반응보단 순응하는 반응이며 같은 돈이어도 더 보장해준다 하면 당연히 이적할 수밖에 없다는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이 중론. 그렇다고 허경민처럼 시즌 전후로 오랄질을 한 적도 없고 조용히 오랫동안 뛴 팀을 이적하는게 쉽진 않았다는 짤막한 코멘트만 남겨 커리어 잘 마무리 지으라는 훈훈한 반응이 많다.

LG 이적 이후 행보는 참조.

3. 두산에서의 기록

3.1. 투수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김강률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07 두산 1군 기록 없음
2008 1 0 0 0 0 1 36.00 3 0 1 0 1 4.00 875.06 -0.07
2009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0
2011 19 0 0 1 3 25⅓ 3.91 30 2 13 1 20 1.70 97.01 0.52
2012 30 0 0 0 0 34⅓ 2.88 28 1 17 2 27 1.31 77.48 0.90
2013 17 0 0 0 0 19⅔ 3.20 18 1 17 0 17 1.78 78.64 0.31
2014 14 0 1 0 0 16⅔ 8.10 25 5 7 0 13 1.92 164.86 -0.18
2015 16 3 1 0 3 14⅔ 2.45 14 1 10 0 7 1.64 53.53 0.09
2016 25 0 2 0 4 28 5.14 31 2 17 2 21 1.71 105.13 0.12
2017 70
(3위)
7 2 7 12 89 3.44 89 6 32 3 73 1.36 73.47 1.52
2018 65 5 0 6 11 76 4.62 72 7 24 3 81 1.26 94.21 0.80
2019 1군 기록 없음
2020 30 2 2 0 0 28 3.54 36 1 20 4 28 2.00 79.17 -0.37
2021 50 3 0 21 3 51⅔ 2.09 54 2 25 1 41 1.53 49.97 1.81
2022 26 3 4 9 1 24⅔ 4.38 28 2 8 2 15 1.46 113.13 -0.33
2023 32 1 0 1 7 25⅓ 4.21 23 2 12 2 21 1.36 105.73 0.40
2024 53 2 2 1 12 42 3.00 41 1 21 2 33 1.48 62.75 1.64
KBO 통산
(14시즌)
448 26 14 46 56 476⅔ 3.81 492 33 224 22 398 1.50 85.28 7.15

3.2. 타자

역대 타자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7 두산 1 1 1.000 1 0 0 0 1 0 0 0 1.000 1.000
KBO 통산
(1시즌)
1 1 1.000 1 0 0 0 1 0 0 0 1.000 1.000


[1] 김재환의 행복수비가 겹친 안타였다.[2] 손아섭에게 내준 2루타도 김재환의 실책으로 내준 것이 크다.[3] 아마 좌타자 상대론 함덕주, 우타자 상대론 김강률을 기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함덕주는 체인지업이 주무기라 우타자를 상대로 강해서 이는 아닐 수도.[4] WHIP가 1.53에 블론세이브가 무려 7개.[5] 나머지는 김택연, 이병헌, 최지강, 홍건희, 이영하.[6] 그러나 WHIP가 1.5라는 점에서 2015년 윤길현을 떠오르게 한다.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준수하지만 상당히 불안했다고 볼 수 있다.[7] 특유의 유리몸으로 잔부상이 잦아 풀 시즌을 뛴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굉장히 잘 마쳤다고 볼 수 있다.[8] 보상선수를 내줘야 하는 A, B등급과는 달리 직전 년도 연봉의 150%만 원 소속팀에게 보상해주면 된다.[9] 물론, A, B등급도 보상선수 없이 직전 연봉의 300%와 200%를 보상해주면 되긴 하나, A등급은 20인 외 + 200% B등급은 25인 외 선수 지명 + 100% 중 선택할 수 있기에 연봉 전액 보상은 적은 편이다. 구단이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기 때문에 몇억을 받는 것보단 키울 만한 선수를 한 명 데리고 오는 게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10] 앞선 오퍼 때도 계약 기간에 문제를 짚은 것, 또한 마찬가지로 C등급인 원종현이 4년, 임정호가 3년 계약을 따낸 것 때문에 최소 3년 계약 이상을 원하는 듯 하다.[11] 이는 LG의 두 번째 김강률 영입 시도인데, 첫 번째 영입 시도는 2007년 1차 지명으로 김강률을 지명하려 했지만 타 지역(경기도 고양시)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생인 것이 알려져 실패하고 김강률 대신 김유선이라는 희대의 망픽을 해버려 픽 하나를 날린 채 또 다른 1차 지명은 봉중근을 지명해 계약했다. 두 번째 시도는 이번 FA로 무려 17년 만에 영입 시도인 것.[12] 이로 보아 금액에는 별 이견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3] 두산은 양의지, 양석환, 김재환 등 고액 FA 선수들이 상당히 많아서 상대적으로 여유롭지 않다.[14] 두산의 필승조와 마무리는 홍건희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20대 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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