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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00:18:07

김숙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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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 혁거세 거서간 ~ 문흥왕 · 태종 무열왕 ~ 경순왕
왕녀 : 혁거세 거서간 ~ 진안 갈문왕 · 태종 무열왕 ~ 경순왕
※ 이름이 있거나 성년까지 생존한 인물만 기재
※ 『화랑세기』 에만 등장하는 경우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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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종 갈문왕의 왕자
김숙흘종 | 金肅訖宗
출생 535~537년[1][2]
사망 미상 (향년 불명)
본관 경주 김씨
숙흘종(肅訖宗) / 수힐부(首肹夫)? /
수을부(首乙夫)?
가족관계 부왕: 입종 갈문왕
모후: 지소태후
형: 김삼맥종
누이: 만호부인
딸: 김만명
사돈: 김무력
사위: 김서현
외손자: 김유신, 김흠순
외손녀: 김보희, 문명왕후
외손서: 김춘추
외증손: 김법민
골품 성골(聖骨)
관등 아찬? → 이찬?
직위 상대등?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4. 대중문화에서

[clearfix]

1. 개요

신라 중기의 왕족. 신라 제24대 왕 진흥왕의 남동생으로 진평왕에게는 외숙부 겸 종조부가 된다. 가야 출신 김서현장인이자 그 유명한 김유신의 외할아버지다. 아찬 수힐부 및 상대등 수을부와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

2. 생애

딸과 관련된 일화를 제외하면 숙흘종의 자세한 행적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수힐부·수을부와 같은 사람이라 가정할 시 585년에는 아찬으로서 양궁(梁宮)을 관리하는 사신(私臣)에 임명되었고, 588년 12월에는 이찬으로서 상대등의 직위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3. 가족 관계

만명부인가야 출신의 김서현과 사랑에 빠지자 반대했다. 비록 금관국 왕족 출신 김해 김씨를 신라에서 나름대로 높은 축에 드는 귀족 계급인 진골로 받아들여주긴 했지만 숙흘종은 왕의 동생으로 성골 김씨 중에서도 격이 높았다. 사실 김해 김씨의 경우 그나마 나라를 제 손으로 신라에 바쳤기 때문에 진골로 예우해 준 것뿐이었다. 가야계를 굴러들어 온 돌이라며 대놓고 깔보는 분위기가 만연했기 때문에 숙흘종은 딸을 집 안에 가두면서까지 둘의 연애를 막았다. 하지만 만명은 폭풍이 치는 날 창문으로 탈출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했고[3] 이후에 손주 얼굴 보고 화가 풀렸는지 어땠는지 김서현을 사위로 인정하게 된 듯, 김서현은 나중에 큰 전공을 세웠다. 뭔가 일일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부잣집의 여주인공 아버지 같은 인물.

정사에선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왕위 계승 순위를 높이기 위해 근친혼을 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아내는 왕족의 일원일 것이다.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선 만호부인이 숙흘종에게 재가해 낳은 딸이 만명부인이라고 나온다. 숙흘종은 만호부인의 오빠이므로 여동생과 혼인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화랑세기에선 숙흘종이 아니라 만호태후가 반대했다고 한다.

4. 대중문화에서

대왕의 꿈에서는 배우 서인석이 연기했다. 서인석은 삼국기에서 김유신 역을 맡았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김유신의 외조부 역을 맡은 셈.

초기엔 다혈질 권신 이미지였으나 뒤로 가면서는 위기에 몰린 덕만을 보필하거나 직언을 올리는 등 나름대로 충신스러운 모습도 보여주는 인물. 다만 뒷자리로 물러난 뒤에도 권력의 향수는 여전한지 다시금 중책을 얻게 되기를 희망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

초반에는 자신의 딸을 후려 간 김서현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유신을 무척 못마땅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손자 김유신에게 정이 듬뿍 들었는지 여러모로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담의 마수에 걸려 위기에 처한 김유신을 구해달라고 알천과 비담에게 무릎까지 꿇는 데다 가산마저 서슴없이 내줄 정도.

극 중에서는 증손녀 뻘인 선덕여왕의 치세 때 까지 나온 것을 보면, 상당히 장수한 인물로 나온다. 535년생으로 추정했을 때, 선덕여왕이 즉위한 시점에는 이미 98세의 노익장.

Why? 한국사 왕자와 공주 편에선 과거로 시간여행 온 강마루의 입방아로[4] 김서현과 딸 만명공주가 사귄다는 걸 알고는 격렬하게 반대했고 집안 사람들을 딸의 방 문 앞에 여러 명 세워서 못 나가게 지키게 하지만 결말은 모두가 아는 대로 전개되었다.


[1] 형인 진흥왕이 534년 출생[2] 울주 천전리 암각화에 따르면 537년은 입종 갈문왕의 사망 시점이다.[3] 삼국유사가 아니라 삼국사기에 나온다. 그리고 대놓고 야합 즉 정상적인 결혼이 아님을 암시한다.[4] 요새 만명이 어디로 외출을 나가냐고 물었더니 연애 중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딸이 아버지 몰래 연애한 것도 충격인데 당대 기준 망한 나라인 가야 출신 김서현과 사귄다고까지 말해 신라 왕족 성골 출신인 김숙흘종이 식겁해한다.[5] 당연히 실제로는 다른 경로로 딸의 연애를 알았겠지만 만화라 미래에서 온 아이들의 개입으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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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숙흘종의 아내(여기서는 만호부인으로 묘사된다)는 성골이 줄어든 만큼 진골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김서현의 고향인 가야는 껍데기만 진골이라며 반대했다.